여성 서사와 나, 나와 우리 역사,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이 보여주는 세계는 여성-역사-나를 잇는 깊고 내밀한 빛으로 가득하다. 좋았던 마음을 잃지 않고, 좋았던 시간을 기억하는 여성 4대의 삶은 시대의 특수한 통증과 관계의 상처를 빛으로 감싼다. 주인공 지연은 증조할머니와 할머니, 어머니와 나에 이르는 가족사를 통해 여성 역사의 이해와 자아 통찰에 이른다. “나는 희령을 여름 냄새로 기억한다”로 시작하는 소설. ‘희령’이라는 작은 바닷가 마을은 책장을 펼친 독자가 어디에 있든 단숨에 바로 그곳으로 끌어당긴다. 바닷가의 냄새가 지금 여기에서 맡아지는 감각은 최은영 작가의 담담하고 섬세한 문체에 기댄다.
삶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서로의 손을 잡았던 여성들은 이렇게 살아남았다. 소설의 인물이 별을 바라보는 사람인 것이 우연은 아니다. 오래전 멀리서 출발한 별빛이 긴 시간을 달려 당도하듯 잊힐 뻔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이야기의 빛으로 우리의 밤을 밝힌다.
최은영 작가를 21세기에 만난 건 당대 독자로서 축복이다. 최은영의 소설 덕분에 우리 역사의 귀퉁이에서 부서질 듯 부서지지 않은 여성들의 삶을 기억하며 한 번 더 문학의 힘을 믿게 된다. 밝은 밤이 된 그날을 다시 살아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