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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2019
  • 빛의 과거
    은희경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8월 "당신에게도 있는, 은희경을 만나다"

    2017년의 내게는 "가장 친한 친구가 아닌 것과는 상관없이 그녀는 나의 가장 오래된 친구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친구 '그녀'가 있다. 40년 전, 1977년 여자대학 신입생 기숙사에서 처음 만난 그녀는 현재 그럭저럭 신작을 꾸준히 발표할 수 있는 소설가가 되었다. 말을 더듬는다는 약점을 늘 의식하느라 '소심함과 자기합리화의 조합인 어정쩡한 온건함'을 지녔던 나는 그녀의 직선적인 성격을, 자기중심주의를, 우월감과 피해의식을 편하다고 생각하며 그녀와의 관계를 지속해왔다. 그녀는 우리의 기숙사 시절을 <지금은 없는 공주들을 위하여>라는 이름의 소설로 발표한 적이 있다. 오래 알고 지내면서도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던 그녀의 소설을 읽기 시작하는 '나' 김유경. 그녀라는 필터를 거친 스무 살 '김유경'이 낯설다. 소설에 묘사된 그녀의 기억과 나의 기억은 너무도 다르다.

    소설가 은희경이 묘사하는 여자대학 기숙사. 평론가 신형철의 추천사가 말하듯 당대의 문화에 대한 세밀한 묘사, 날렵하고 적절한 문장, 여성의 경험적 진실에 충실하고 당대의 모순을 날카롭게 포착하는 시선, 무엇을 기대하든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정숙 노력 순결'이 교훈이던 지방 여고를 벗어나 처음 접한 서울, 낯섦과 다름이 파열음을 만들어내는 공간을 채우는 여성들의 개성을 은희경다운 날카로움으로 섬세하게 그려낸다. 미팅을 주선하며 '남자의 외모나 조건을 따지지 않고 지성인의 양심과 진실함에 더 가치를 두는 현명' 하며 '남자들이란 타고나기를 여자의 외모를 따지도록 되어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지혜로움'을 지닌 여성을 당당하게 찾는 모순을, '학도호국단 구령을 붙이기 위해 높은 사다리를 기어올라 가는 악몽을 자주 꾸는' 시대가 만들어내던 공기를, 2017년을 사는 김유경은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약점이 있는 사람은 세상을 감지하는 더듬이 하나를 더 가진다' 같은, <새의 선물>을 사랑하는 독자가 기다렸을 섬세한 문장을 통해 소설은 감지했으나 아무 것도 바꾸지 못했던, 어떤 시간들에 대해 정직하게 회상한다. "은희경을 읽는다는 것은 언제나 한국 현대 여성의 목소리를 듣는 일이다. 나와 닮은 목소리를 드디어 만나 그이의 차분하지만 낯설고 독보적인 말에 과녁처럼 관통당하는 일이다."라는 소설가 정세랑의 추천사처럼, 은희경을 사랑하는 독자에겐 모두 그들 자신만의 은희경이 있다. 오랫동안 좋아한 소설가가 발표한, 여전히 동시대의 욕망과 정확히 같은 속도로 호흡하는 소설을 만날 수 있다는 건 무척 기쁜 일이다. 우리의 현재, 은희경을 읽는다.

  • 파란 1
    정민 (지은이) | 천년의상상 | 2019년 9월 "청년 다산이 온다"

    이 책이 나오기 전엔 알 수 없었다. 그동안 우리가 읽어 온 다산이 40대 이후 유학자로서의 모습에 치우쳐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자타공인 다산 전문가인 저자 정민 교수 역시 처음 접하는 다산의 모습에 적잖이 놀랐다는 사실을 말이다. 게다가 그의 이번 작업으로 드러난 청년 다산의 발자취는 그 양도 방대할뿐더러 선명하기까지 해서 단 두 권으로 정리해 내는 작업도 만만치 않았다는 후문이다. 이쯤 되면 그동안의 다산 연구가 반쪽에 불과했다는 말도 가능할 정도다. 물론 관련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천주교와 국학에서 다산을 바라보는 관점이 너무 양극단으로 갈려 있음을 꼬집는다.

    정민 교수는 신자와 유학자 사이의 중간 지점에서 다산의 삶을 바라보고자 했다. 다산이 읽던 책에 남긴 메모, 로마 교황청에서 찾은 서신, 다산을 중용하려 했던 정조의 마음이 담긴 실록의 기록 등을 면밀하게 살펴 천주교에 몰입했던, 그리고 정조와 함께했던 '2040'의 청년 다산을 생생하게 복원했다. 그렇게 밝혀진 새로운 다산의 모습은 많이 낯설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어 기쁜 마음이 더 크다. '정민의 다산독본'이라 명명된 이 뜻깊은 작업에 경의를 표하며, 중년 이후의 삶을 조명하게 될 시리즈의 후반부 작업도 기대한다. 그에 앞서, 책을 준비하느라 당뇨까지 왔다는 선생의 건강을 기원함은 물론이다.

  • 모르면 불편한 돈의 교양
    경제브리핑 불편한 진실 (지은이) | 청림출판 | 2019년 8월 "이제 경제적 불안에서 벗어날 때"

    바야흐로 기본을 튼튼히 하고 미리 대비하는 자세가 요구되는 시절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들어 실전 투자서보다는 경제 상식과 지식, 즉 기본기를 전하는 책들이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인기 팟캐스트 '경제브리핑 불편한 진실' 팀의 전문가들이 책을 매개로 한 자리에 모인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들은 모르면 불안하고 불리할 최신 경제 이슈를 전한다. 그렇다고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다. 교양은 본래 차근차근 쌓아 나가는 것이니, 알아 두면 유리한 나만의 지식으로 소화 흡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겠다.

    책에는 전문가들 각자의 개성이 묻어 나는 다채로운 이야기가 담겨 있다. 3만 달러 시대의 전망에서부터 최신 창업 트렌드와 투자 아이템, 보험과 국민연금의 비밀, 그리고 소고기 마블링으로 살펴본 무역의 현실까지, 실물 경제의 핵심 키워드들을 종합적으로 다룬다. 평소의 우리 생활과도 밀접한 주제를 최신의 정보와 함께 전하고 있어 일종의 트렌드서라 보아도 무리가 없다. 아니나다를까, 이 책은 그 반응 여하에 따라 매년 출간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자, 공은 우리에게 넘어왔다. 물론 선택은 독자들 각자의 몫이다.

  • 맨해튼 비치
    제니퍼 이건 (지은이), 최세희 (옮긴이) | 문학동네 | 2019년 8월 "2018 'One Book, One New York' 1위"

    매년 뉴욕 공립도서관이 주관해 뉴욕 시민들의 투표로 '함께 읽고 싶은 한 권의 책'을 선정하는 'One Book, One New York' 캠페인에서 2018년 1위로 꼽힌 <맨해튼 비치>. <모비 딕>의 한 구절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2차 세계대전 시기의 뉴욕을 생생히 재현해낸다. 선박을 건조하고 수리하는 해군 공창의 건실한 노동 현장부터 무법천지인 항구 뒷골목, 밤이면 끝없이 달아오르는 거리의 열기와 공동주택에서 풍기는 평범한 일상의 냄새까지. 저마다의 부푼 기대가 공기 중에 감도는 1940년대 맨해튼, 세 사람의 운명이 서로 스친다.

    이탈리아식 본명을 전형적인 미국 이름으로 개명하고 지하 세계에 발을 담궈 조직의 큰 손이 된 '덱스터'.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며 사교계의 거물로 발돋움한 그는 야심을 감추지 않는다. 아일랜드 이민자로 한때 주식으로 큰 돈을 벌었으나 대공황으로 모두 날린 후, 가족 부양을 위해 닥치는 대로 일자리를 찾다 덱스터와 얽히게 된 '에디'. 그리고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어깨 너머로 그의 일을 짐작할 뿐인 딸 '애너'. 에디의 갑작스런 실종 이후 그의 자취를 찾으려 안간힘을 쓰던 애너는, 생계를 위해 브루클린의 해군 공창에서 일하다 우연히 심해로 잠수하는 다이버에 매혹되어 거칠기로 손꼽히는 그 자리에 지원하기에 이른다. 아름다움과 망망한 공포를 동시에 지닌 바다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끌리는 세 사람. 저 너머의 세계를 갈망하는 이들 앞에는 높은 파고가 기다리고 있다.

9.62019
  • 어른의 그림책
    황유진 (지은이) | 메멘토 | 2019년 9월 "마음의 온도를 재는 시간"

    카드 결제일을 계산하고, 하루 종일 정신없이 업무를 처리하고, 아이 학교생활을 걱정하는, 합리를 좇으며 사는 날들. 이성만 들어찬 마음은 점점 딱딱해져 간다. 그대로도 잘 살 수 있다면 문제없겠지만 마음은 본디 그렇게 생겨먹질 않아 결국엔 터지고 찢어져 버린다. 바쁜 일상의 귀퉁이를 헐어 굳은 마음을 말랑하게 조물거리는 시간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저자는 어른들과 함께 그림책 읽는 모임을 이끌고 있다. 아이 없이 어른들만 모여 그림책을 읽는다니 왠지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함께 둘러앉아 그림책을 읽고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이 때가 이들에겐 마음의 온도를 재는 시간이다. 너무 과열되진 않았나, 나도 모르는 새 차가워지진 않았나, 그림책을 보며 지금 마음의 상태에 주의를 기울인다. 뜬금없는 눈물이 터지기도, 순수한 웃음을 짓기도 한다. 마음을 쓰다듬는 과정이다.

    모임에서 함께 읽었던 그림책들과 그에 관련된 작가의 이야기를 모았다. 담담히 풀어놓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이 온화한 분위기가 그림책을 읽는 시간으로부터 온 건가 싶다. 저자가 소개하는 그림책들이 궁금해져 한 권 한 권 표시하다 보니, 어느새 모든 그림책에 동그라미를 그리는 나를 발견한다. 이런 사태(?)를 예견한 건지 친절한 저자가 그림책 모임을 진행하는 구체적인 방법까지 부록으로 실어놓았다. 이참에 시작해보아야겠다.

  • 부의 원천
    타라 스와트 (지은이), 백지선 (옮긴이)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8월 "삶에 집중하라, 의식적으로!"

    12년 전, <시크릿>의 열풍은 대단했다.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우리를 도울 것이라는 '끌어당김의 법칙'으로 전 세계 독자들을 사로잡았던 것. 한편으로는 '믿음'의 영역으로 치부되기도 했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에 보다 집중하도록 만드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한 것도 사실이다. 이후 유사 도서들이 많이 출간되었는데 특히 '부'와 관련된 책들이 많았다. 그러나 아직도 부자가 되지 못한 독자들은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간절함이 부족했던 걸까. 과학적인 근거가 있기는 한 걸까. 그 의문점을 풀어 줄 학계의 권위자가 나타났다. 정신의학과 신경과학 두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는 MIT와 킹스칼리지런던의 교수인 저자가 그 주인공이다.

    저자는 자신의 전문 분야인 신경과학, 정신의학, 그리고 인지과학계의 최신 연구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 핵심은 몸과 마음은 함께 작동하며 행운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이를 종교나 영성으로 국한하여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당신이 무의식을 의식화할 때까지 무의식은 당신의 삶을 조종할 것이며, 당신은 그것을 운명이라 부를 것이다." 저자가 좋아한다는 카를 융의 말인데, 우리는 운명이라는 말로 삶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나를 통제하지 못한다면 누가 대신한다는 말인가.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당신부터 먼저 변하라."는 간디의 말처럼, 적극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자는 책의 주장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 귀신 감독 탁풍운
    최주혜 (지은이), 소윤경 (그림) | 비룡소 | 2019년 9월 "제7회 비룡소 스토리킹 수상작"

    신선이 되기 위해 인간계에서 실전 수행 평가를 치르고 있는 신선 후보생 탁풍운. 어느 날, 싱크홀로 인해 봉인이 해제된 악귀들이 도시에 출몰하고, 풍운은 이들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귀신 무리 중에서 악귀들만 골라 봉인해야 한다는 것. 풍운은 과연 악귀들을 봉인하고 무사히 신선이 될 수 있을까?

    지박령, 두억시니, 신선 등 옛이야기 속 존재들을 현대 도시 생활 속에 재미있게 녹여냈다. 귀신 이야기를 소재로 하면서도 현실감이 가득한 작품으로, 누가 착한 귀신이고, 누가 악귀인지, 선과 악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지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작가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구멍귀를 통해 사회에서 소외된 존재들까지 따스히 조명한다. 이름조차 없이 가슴에 구멍이 뚫린 채 귀신이 된 구멍귀들. "살아있을 때도 귀신이었다."는 이들의 아픔을 마주함으로써, 풍운은 비로소 귀신들의 외면이 아닌 내면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무서움과 불의에 맞서는 용기, 약한 자를 껴안는 따뜻함을 갖춰가며 한 걸음 한 걸음 성장해가는 '신선 후보생 풍운'이 이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아픔까지도 봉인해줄 수 있는 '진짜 신선 탁풍운'이 되기를 힘껏 응원해 본다.

  • 캉탕
    이승우 (지은이) | 현대문학 | 2019년 8월 "기도이자 일기이자 <모비 딕>, 이승우 소설"

    한중수는 자신의 친구이기도 한 정신과 의사 J에게 처방을 받았다. 하던 일을 그대로 두고, 책상을 치우려고도 하지 말고, 그냥 몸을 일으켜 떠나라. 하지 않던 일을 하고 가지 않던 곳으로 가라. 걷고 보고 쓰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유일한 처방이다. J의 처방은 한중수에게 '이제 형기를 마쳤으니 문을 열고 나가도 된다는 간수의 선언'처럼 느껴지고, 그렇게 그는 서둘러 집을 나선다. 대서양에 닿아있는 작은 항구도시 '캉탕'을 향하는, 기도이자 일기이자 한 인간의 <모비 딕>인 이승우의 소설이 이렇게 시작된다.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했으나 '처방'이 필요한 한중수. <모비 딕>에 매료되어 우연히 배가 정박한 곳에 '피쿼드'라는 이름의 선술집을 열어 새로운 삶을 시작한 핍, 유배지 아닌 유배지에서 자신의 인생을 글로 쓰고 있는 선교사 타나엘. 이들의 삶이 '캉탕'에서 교차한다. 자유로워지기 위해 세상의 끝에 당도한 이들에게는 '내버려둠의 상태를 자유와 혼동하지 말 것'이라는 지침이 주어진다. '모비 딕'을 향한 끝없는 추구와 좌절. 참회와 구원의 문제를 이승우다운 단단한 문장으로 희구한다.

9.102019
  • 우먼 인 윈도
    A. J. 핀 (지은이), 부선희 (옮긴이) | 비채 | 2019년 9월 "뉴욕타임스 베스트 1위 스릴러"

    열린 공간에서 극도의 불안을 느끼는 광장공포증 때문에 집 안에서만 생활하는 전직 정신과 의사 애나. 그의 일상은 각종 처방약과 와인, 스릴러 영화와 환자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로 이뤄져 있다. 그 중에서도 애나가 가장 즐기는 취미는 DSLR에 망원렌즈를 장착해 바깥의 삶을 구경하는 일. 새로 이사온 옆집 가족의 단란한 모습에 더이상 함께 살지 않는 남편과 딸을 떠올리며 회상에 잠기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애나의 카메라 렌즈에 충격적인 광경이 포착된다. 옆집 여자가 칼에 찔려 피를 흘리고 있는 것. 하지만 애나의 신고를 받고 도착한 경찰은 아무도 죽지 않았으며, 애초에 그런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뉴욕타임스,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라는 화려한 기록과 함께 에이미 애덤스, 게리 올드먼, 줄리언 무어 주연의 영화화가 결정되어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환상과 망상, 진실을 넘나드는 역작"이라는 루이즈 페니의 추천사를 비롯해 스티븐 킹, 길리언 플린 등 대표 스릴러 작가들이 먼저 알아보고 소개하기도 했다. 애나는 살인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라 호소하지만, 사람들은 모든 것이 향정신성 약물과 그녀가 보고 있던 서스펜스 영화의 조합에서 나온 망상일 뿐이라 여기고 믿어주지 않는다. 진실과 거짓을 오가는 겹겹의 반전이 돋보이는 매혹적인 스릴러.

  • 삼순이 : 식모, 버스안내양, 여공
    정찬일 (지은이) | 책과함께 | 2019년 9월 "여전히 남아 있는 순이들을 위하여"

    식모 식순이, 버스안내양 차순이, 여공 공순이, 이른바 '삼순이'들의 삶은 처절했다. 빈곤층 가계의 '한 입 덜기' 전략으로 고향을 떠나야 했던 식순이들은 집주인의 구타와 폭행에 시달렸고, 특히 어린 식모들은 주인댁 아이들에게 모멸감마저 느껴야 했다. '상냥하고 친절한 여자에게 승객을 안내토록 함으로써 명랑한 시민교통을 이루어야 한다'는 이유로 고용된 차순이들은 매일같이 승객들과 실랑이를 벌여야 했으며 회사의 '삥땅' 의심에 몸 수색까지 당해야 했다. 산업역군이라는 명목하에 '벌집'에 다닥다닥 모여 살던 공순이들은 회사의 탄압에 맞서다 똥물을 뒤집어써야 했다. 불과 반세기 전 우리 어머니, 언니, 누이의 삶이 그랬다.

    삼순이들은 1960년대 초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생활 전선에서 맹활약한 시대의 아이콘이다. 그들은 돌연 사라졌고,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조차 어렴풋한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 저자는 그들의 기억을 되살리고자 한다. 아홉 명의 삼순이들을 찾아 가까스로 인터뷰를 마치고 파편적 정보를 한데 모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그들의 삶을 온전히 복원했다. 저자는 말한다. 순이들은 다른 이름으로 우리 주변에 여전히 남아 있다고. '순할 순'자가 강요했던 이미지 그대로 말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가 '순이'에 대한 편견을 떨쳐낼 수 있을까. 고단했던 여성노동자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들춰낸 이 책이 그 반성의 단초를 제공하길 기대한다.

  • 감각의 역사
    진중권 (지은이) | 창비 | 2019년 9월 "진중권 교수 '감각학 3부작'의 서막"

    <크로스: 정재승+진중권>,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등 전작들에서 쉽고 재미있는 글쓰기를 선보였던 그가 이번엔 전공을 살린 묵직한 지적 탐구로 돌아왔다. 깊이 있는 미학서를 원했던 독자들에겐 반가운 소식이다.

    '감각론'이 익숙한 용어는 아니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지각하는 인간 감각에 대한 탐구는 그 기원을 철학의 시작과 함께하지만, 철학이 이성중심주의로 흐르는 분위기 속에서 도외시되어왔다. 이에 진중권 교수는 철학적으로만 탐구 가능한 감각의 특성을 제시하며 감각론의 부활을 요구한다. 감각학 3부작의 첫 권인 <감각의 역사>는 그 잊힌 역사를 복원한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이번 감각학 3부작은 그간 미적 영역에만 국한되어 있던 미학의 한계를 넓혀 감각론을 통한 사회적 이해까지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시작으로서 <감각의 역사>에서 다진 이해와 통찰은 후에 <감각의 미학사>, <감각의 사회학>으로 뻗어나가는 논의의 굄돌 역할을 한다고 하니, 더 중요한 의미를 갖겠다. 진중권 교수가 안내하는 장대한 지적 여정의 시발점이다.

  •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Vol.4 세트 - 전6권
    황인숙, 박정대, 김이듬, 박연준, 문보영, 정다연 (지은이) | 현대문학 | 2019년 8월 "황인숙, 박연준, 문보영 참여, 시인 X 음악"

    시인과 시와 음악들. "잘하건 못하건 예술을 한다는 것은 진짜로 영혼을 성장하게 만드는 길이다"라는 커트 보니것의 말을 믿으며, 김이듬은 허수경 시인이 사는 뮌스터에 갔다가 리스본을 경유해 저녁마다 파두를 들었다. '세상을 향해, 밤에 깨어 있는 자를 향해, 오래된 벽이나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지붕에게', '말과 음악을 동시에, 보내고 싶었다'고 말하며 박연준은 심야 디제이가 되고 싶었던 열두 살의 꿈을, 이 음악과 함께라면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던 스물두 살을 기억한다.

    '음악'이라는 같은 테마를 자신의 언어로 해석해 낸 여섯 권의 시집이 함께 출간 되었다. 핀 시리즈 시인선의 네 번째 컬렉션. 황인숙, 박정대, 김이듬, 박연준, 문보영, 정다연의 시와 음악을 주제로 한 에세이, 경현수 작가의 페인팅 작품이 만나 감각적인 소시집이 탄생했다. 명랑과 우수, 선량한 시선이 빛나는 황인숙의 <아무 날이나 저녁때> 부터 온라인 게임 속 섬을 문학적 무대로 탄생시킨 문보영의 <배틀그라운드>까지, 다채로운 빛깔로 언어를 연주한다.

9.172019
  • 죽음의 에티켓
    롤란트 슐츠 (지은이), 노선정 (옮긴이) | 스노우폭스북스 | 2019년 9월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구나"

    잘 안다고 생각했던 것에 대해 사실은 아무것도 몰랐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이를테면 대상의 과정이나 기능에 대해 분절된 단위의 설명을 들을 때 그렇다.

    죽음을 안다고 생각해왔다. 다양한 종류의 이야기에서 흔히 등장하기 때문이다. 편집되고 가공된 죽음을 보며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그 추상적 앎의 허를 찌른다. 저자는 책을 읽는 '당신'이 죽음의 과정을 지나고 있다고 상정하고, 그 죽음에 대해 설명한다. "당신은 변하기 시작합니다. 육체가 먼저 변하기 시작합니다." "마지막 며칠 동안은 심한 불안감에 휩싸일 수 있습니다." 죽은 이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결국 당신 사체의 근육은 축 늘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당신의 옆에 있으면서 당신의 몸을 씻기는 사람들은 아마 그 첫 징후를 감지할지도 모릅니다." 구체적으로 설명되는 죽음 앞에서 '당신'은 아연해질 수도 있다. 구석구석 너무나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면할 순 없다.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필연적으로 닥칠 미래다.

    추상적인 앎과 실제적 진실의 간극은 크다, 때로 완전히 다른 것으로 느껴질 만큼. 이 책은 그 사이를 촘촘히 메우는 다리다. 실제 죽음이 닥쳐왔을 때 깨달으면 너무 늦다. 뒤늦은 한탄을 원하지 않는 '당신'들을 위한 '죽음 간접 체험'이다.

  • 그렇게 물어보면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없습니다
    김호 (지은이)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9월 "질문을 디자인하라!"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우문현답이라는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응답자의 재치와 순발력을 강조할 때 주로 쓰이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질문자에 보다 집중해야 한다. 우문현답 혹은 현문우답의 상황이 현실에서 결코 자주 일어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질문이 훌륭하면 대개는 훌륭한 답을 들을 수 있는 법이다. 같은 사람을 인터뷰해도 누가 했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자 이제 우리가 책에 물을 시간이다. 좋은 질문이란 무엇인가? 정말 질문 하나로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을까?

    책은 질문 설계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그 핵심은 내가 듣고 싶은 답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다. 질문의 목적을 명확히 하는 것은 좋은 질문을 위한 첫 단계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는 세세한 스킬도 함께 전하지만 그건 그다음 문제다. 무엇을 어떻게 물어야 할지 모르겠다면, 감성을 배제한 채 논리적으로만 물으려 했다면, 후속 질문에 약해 대화를 이어가지 못했다면 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질문이야말로 소통의 핵심이니, 그 어떤 화술 책보다도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겠다.

  • 정연우의 칼을 찾아 주세요
    유준재 (지은이), 이주희 (그림) | 문학동네 | 2019년 9월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적이 있나요?"

    아끼던 장난감 칼을 잃어버려 펑펑 울고 있는 연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친구들은 자신들도 그런 적이 있다며 소중한 무언가와 이별했던 기억을 하나씩 꺼내놓는다. 할머니가 떠주신 목도리, 어릴 때부터 함께했던 인형, 가족이 되어주었던 고양이, 그리고 엄마…. 얽힌 추억도 질감도 다르지만 이별을 겪은 아이들이 물리적 상실을 극복하고 함께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그림책이다.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의 힘과 그것을 동력으로 이어지는 내일을 이야기한다.

    누구에게나 잃어버린 보물이, 온 곳을 찾아 헤맸지만 되찾지 못한 것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일들은 몇 번을 반복해도 무뎌지지 않고 늘 새로운 상실감으로 다가오지만, 무언가를 진짜로 잃어버리는 순간은 곁에서 사라진 때가 아니라 기억에서 사라질 때이지 않을까. 지금 있는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느냐고. 언젠가 꼭 다시 만나자고. 마음속 한편에 간직해두고 이따금 안부를 물어보자. 잊지 않고 기억한다면 언제까지나 이어져있을 테니까.

  •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위화 (지은이), 문현선 (옮긴이) | 푸른숲 | 2019년 9월 "신형철 추천 "생을 헐어 쓴 글의 힘" 위화 산문"

    에세이집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 강연을 바탕으로 엮은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에 이어 위화 작가의 네 번째 에세이가 출간되었다. 앞서 출간된 세 권의 책에서 힘 있는 문장으로 깊이 있는 산문을 보여준 그가 이번 책을 통해 문학과 음악에 심취하여 보낸 청년기의 위화를 회고하고, 작가로서의 삶과 창작 활동에 영감을 준 다양한 예술 작품의 세계로 안내한다.

    아이작 싱어, 윌리엄 포크너, 루쉰, 카프카, 보르헤스 등 탁월한 작가는 물론, 말러, 차이콥스키, 브람스 등 위대한 작곡가까지, 위화 작가가 젊은 시절에 만난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들을 예리한 시각으로 분석하고, 적절한 비유를 가미하여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유연하게 펼쳐 보인다. 작가에게 문학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문학의 지속성과 광대함을 깨닫게 해준 할도르 락스네스의 <청어>와 스티븐 크레인의 <소형 보트>, 글쓰기에 영향을 미친 음악 등 현재의 위화를 만들어준 문학과 음악에 관한 매혹의 기록이다.

9.202019
  • 혼자가 혼자에게
    이병률 (지은이) | | 2019년 9월 "이병률 신작 산문집"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내 옆에 있는 사람> 세 권의 여행 산문집으로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이병률 작가가 이전 산문들과는 조금 다른 결의 이야기로 독자들 앞에 다시 섰다. 전작 여행 삼부작이 여행지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에 관한 기록이었다면, 이번 책에서는 혼자 여행하고, 혼자 걷고, 혼자 있는 시간들에 집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제주의 작업실, 기차, 인적이 드문 통나무집, 눈 덮인 시골길, 게스트하우스, 술집. 책 속에는 여행지 혹은 일상에서 머물렀던 혼자만의 공간들이 다양하게 등장한다. 작가는 각각의 장소에서 '혼자 시간을 쓰고, 혼자 질문을 하고, 혼자 그에 대한 답을 하게 되는 과정'을 보내며 그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마주하게 되는 외로움이란 감정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시인만의 감각적인 언어와 담백한 문장으로 써 내려간 산문뿐 아니라, 작가의 시선으로 포착해낸 감성적인 사진들이 풍성하게 담긴 <혼자가 혼자에게>, 책과 함께하는 시간만큼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 판결과 정의
    김영란 (지은이) | 창비 | 2019년 9월 "김영란 전 대법관, 판결이 추구하는 정의"

    '판결은 선택이 되기도 한다.' 판관은 법조문에 따라 법리적인 판단만을 한다고 굳게 믿고 있던 김영란 전 대법관이 대법원에서 첫 근무를 시작할 때 받은 충격의 깨달음이었다. 그렇다면 선택의 기준은 무엇인가. 이 고민을 품고 6년간 대법관으로 살아온 그가 이제 대답을 꺼내놓는다.

    전작 <판결을 다시 생각한다>가 김영란 자신의 판결에 대한 개별적 분석이라면, 이번 신작에서 그는 대법관 퇴임 후 한국 사회의 논쟁적 판결들을 통해 판결이 추구해야 할 가치를 말한다. 법은 외딴섬에 있지 않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가운데에 놓여 있다. 그렇기에 판결에는 사회적 맥락과 판관 개인의 가치판단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고정적이지 않다. 변한다. 책에 인용된 문구처럼 "법규범은 그대로의 세상만을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있어야 할 세상에 대한 어떤 사회의 생각 또한 반영"하기 때문이다. 책은 계층적 사유,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흐름, 정치와 사법이라는 세 개의 주제로 한국 사회의 판결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저자는 책 제목에 '정의'를 넣는 것을 마지막까지 고민했다고 한다. "30년 가까이 재판을 했지만 여전히 진정한 정의는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의는 완결형이 아니라 언제까지나 추구해야 할 지점이기에, 사법 불신이 팽배한 지금의 한국 사회가 그의 깊은 고민과 대답을 듣는 것은 정의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일 것이다.

  • 피어클리벤의 금화 1
    신서로 (지은이) | 황금가지 | 2019년 9월 "용의 한 끼 식사로 잡혀온 소녀, 세상을 바꾸다"

    '용에게 잡혀간 공주' 울리케 피어클리벤. 그러나 어쩐지 '서장'부터 예상치 못한 곳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가난한 남작의 여덟 번째 딸로 태어나 영주의 딸임에도 농사일을 직접 해 온 울리케. 사슴을 능숙하게 발라내고, 자신을 한 끼 식사로 처리하려는 용을 상대로 화려한 언변으로 협상을 시도한다. 자신의 능력으로 스스로를 구해내는 '공주'가 있고, 자신의 압도적인 힘을 과시하는 대신 인간의 이야기를 듣고, 인간과의 대화를 통해 원하는 바를 얻으려는 '드래곤'이 있다. 신서로의 판타지 장편소설 <피어클리벤의 금화>는 이처럼 예상 가능한 설정을 예상치 못할 방식으로 사용해 이야기의 매력을 만들어 낸다.

    온라인 소설 플랫폼 브릿G에서 최장기간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인기작이 종이책으로 출간된다. 조력자인 용과 함께 영지로 돌아온 울리케는 고블린 부대의 습격을 받는 마을을 구하기 위해 고블린인 아우케트와의 교섭에 나선다. 인간과 고블린, 모두에게 이득이 될 길을 찾기 위한 설득과 이해가 가능한 판타지 세계. 전형을 깨트리는 개성적인 인물들과 화려한 문체로 묘사되는 환상 속 세계가 정통 판타지 문학의 귀환을 알린다.

  • 사랑해 아니요군
    노인경 (지은이) | 이봄 | 2019년 9월 "그림책 작가 노인경의 사랑스러운 그림 에세이"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에서 2012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된 그림책 작가이자, <책청소부 소소> <곰씨의 의자> 등의 그림책을 펴낸 노인경 작가가 처음으로 어른을 위한 그림 에세이를 선보였다. 엄마 노인경은 무엇이든지 거꾸로 답하는 아이, 일명 '아니요군'인 아들 '아루'의 0개월에서 36개월까지의 모습을 아루가 잠든 밤마다 그림으로 남겼다. <사랑해 아니요군>은 아루를 통해 경험한 반짝이는 순간들을 간결하면서도 아기자기한 그림으로 가득 담은 책이다.

    이빨 뾰족한 나쁜 애들, 이를테면 늑대, 티렉스, 상어, 뱀파이어, 악어를 좋아한다며 나중에 크면 나쁜 애들하고만 놀 거야,라고 엉뚱한 말을 내뱉는 아루. 개랑 고양이를 무서워하는 엄마에게 무서워할 필요 없다고, 멍멍은 안녕이고, 야옹야옹은 안녕안녕이야,라는 귀여운 말들로 엄마를 안심시켜주는 아루. 모든 이유식에 파르미지아노 치즈 가루를 넣는다는 이탈리안 아빠 다니엘레. 아이의 천진난만한 모습과 풍부한 상상력으로 채워지는 일상과, 다를 수밖에 없는 셋이 천천히 가까워지며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이 한 페이지 한 페이지에 따스하게 녹아져 있다. 아이가 있든 없든, 웃음 짓게 만드는 <사랑해 아니요군>, 혼자만 읽기 아까운 사랑스러운 책이다.

9.242019
  • 말하기 독서법
    김소영 (지은이) | 다산에듀 | 2019년 9월 "독후감 '쓰기'보다 '말'하게 하라!"

    아직 읽기도 서툰 아이에게 독후감을 쓰게 하면 독서는 힘들고 귀찮은 일이 된다. 하지만 재미있는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건 즐겁다. 글로 쓰게 하면 3분도 힘들어하던 아이가, 말하는 건 30분이 넘도록 신이 나서 이야기한다. '쓰기' 대신 '말'하게 하면 책 읽기가 즐거워진다. 책 읽기의 즐거움을 깨쳐야 읽기 능력이 생기고, 읽기 능력이 자리 잡으면 이는 글쓰기 실력으로 이어진다.

    저자는 왜 독서에서 말하기가 먼저인지를 자세히 풀어준다. 그리고 그림책, 동화책, 지식 책 등 책의 주요 갈래별로 아이가 책을 읽은 뒤 어떻게 말하게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한다. 10년 넘게 어린이 책을 만들고, 이후 독서 교실을 운영하며 경험한 독서 교육의 필수 지침과 구체적인 방법을 이 책에 모두 담았다.

  • 희망 버리기 기술
    마크 맨슨 (지은이), 한재호 (옮긴이) | 갤리온 | 2019년 9월 "거침없이 써 내려 간 희망의 역설"

    '참 거침없는 친구가 나타났군!' <신경 끄기의 기술>, 아니 저자 마크 맨슨에 대한 첫인상은 그러했다. 에둘러대지 않고 할 말은 하고야 마는 그의 화법은 원서 제목만큼이나 투박스러웠지만 연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강한 흡인력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의 책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방금 딴 캔콜라 같은 속 시원함을 원했던 독자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방증인지도 모른다. 그런 그의 신작이라니, 이번에는 또 어떤 '쎈' 이야기로 우리의 가려운 곳을 긁어 줄지 기대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제는 행복을 찾지 말고 희망마저 버리란다. 물론 그의 본심은 아닐 터다. 그가 그렇게 말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전작을 읽은 독자들은 알겠지만, 그것은 마크 맨슨 특유의 이야기 방식이다. 그러니 일견 냉소적인 책의 메시지를 남은 삶에 일말의 기대도 하지 말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나는 <신경 끄기의 기술>이 사실상 신경 '쓰기'의 기술이라고 소개한 바 있는데, 이 <희망 버리기 기술> 역시 같은 맥락에서 희망 '되찾기' 기술이라 부르고 싶다. 희망을 버리려면 그 희망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하고, 그렇게 희망을 생각하다 보면 그 생각을 멈출 수 없게 되니, 결국 희망을 버릴 수 없게 된다. 희망을 버리려 함으로써 희망을 되찾게 되는 이 책은 마크 맨슨이 인문학적 통찰을 가득 담아 반어법에 버무려 쓴 희망의 역설이다.

  • 내 안에 공룡이 있어요!
    다비드 칼리 (지은이), 세바스티앙 무랭 (그림), 박정연 (옮긴이) | 진선아이 | 2019년 9월 "유쾌한 상상으로 표현한 아이들 마음"

    악셀은 매우 얌전하고 착한 아이이다. 친절하고, 장난감을 친구와 사이좋게 가지고 놀며, 숙제와 정리를 좋아한다. 정말? 아니, 아니, 그럴 리가. 방 정리를 시작한 악셀은 점점 무시무시한 공룡이 되고, 엄마 아빠의 애원도 소용이 없다. 이 화난 '브론토 메갈로 사우루스'를 달래는 것은 오로지 시나몬 향이 솔솔 나는 할머니의 사과 파이뿐. 자, 다시 얌전한 아이 악셀이 돌아왔다. 친절하고, 장난감을 친구와 같이 가지고 놀 줄 알며, 숙제하기와 식탁 정리 돕는 것도 좋아하는 아이.

    <완두> 시리즈로 아이들에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마음과 용기를 이야기했던 다비드 칼리와 세바스티앙 무랭의 새 그림책.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할 때 아이들의 속마음은 어떨까? 제멋대로 세상을 휘젓고 다니는 공룡이 된 악셀의 모습으로 '착한' 아이들의 숨겨진 마음을 솔직하게, 유쾌하게 보여준다.

  • 정치적인 식탁
    이라영 (지은이) | 동녘 | 2019년 9월 "식탁 위의 약자가 곧 사회의 약자다"

    정희진 여성학자는 "밥상에는 깍두기를 먹는 사람과 깍두기 국물을 먹는 사람이 따로 있다"고 했다. 같은 식탁에 앉아 있지만 각자가 속한 세계는 다르다. 깍두기 국물의 세계를, 아마 누군가는 영원히 모를 것이다. 권력을 가진 자는 굳이 주변을 살피지 않아도 사는 데 문제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저절로 '알아질 일 없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그 세계에 속한 이들은 남편에게 밥을 해 먹이는 것을 평생의 의무로 강요받는다. 아이가 남긴 엉망이 된 밥을 먹지 않으면 모성이 없는 엄마 취급을 받는다. 몸매가 사회적 시선에 의해 관리되어 먹는 것에 제약을 받는 한편, 잘 먹는 모습은 포르노적으로 소비된다. 이들의 몸은 '먹힘'의 대상으로 전락하기 일쑤다. 부위별로 먹거리에 빗대어 대상화된다.

    식탁 위의 약자는 곧 사회의 약자다. '먹는다'라는 일상적인 행위에 차별과 소외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저자 이라영은 특유의 직설적인 언어, 시니컬한 유머로 그 일상적 부조리를 예리하게 파헤친다. 차별에 대해서는 아무리 예민해도 지나치지 않다. 더 세밀하게 파고들고, 모든 당연함을 없애야만 우리는 비로소 같은 식탁, 같은 세계에 있을 수 있을 것이다.

9.272019
  • 핵을 들고 도망친 101세 노인
    요나스 요나손 (지은이), 임호경 (옮긴이) | 열린책들 | 2019년 9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돌아왔다!"

    100살 생일 파티를 앞두고 양로원 창문을 넘어 도망쳤던 알란. 우연히 손에 들어온 갱단의 돈가방에서 비롯된 기이한 모험을 함께한 후 막역한 친구 사이가 된 율리우스와 발리에서 유유자적 중이다. 101살 생일을 맞아 열기구를 타고 샴페인 파티를 하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건만, 돌발 사고로 경로를 한참 이탈해 망망대해에 떨어지고 만다. 조난 신호탄을 보고 이들을 구하러 온 배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농축 우라늄을 몰래 운송 중이던 북한 화물선이다. 목숨을 구하기 위해 선장에게 자신이 핵무기 전문가라고 거짓말을 해버린 알란과 졸지에 그의 조수가 된 율리우스는 꼼짝없이 북한으로 이송되는데… 이들은 과연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인구 900만의 스웨덴에서 120만부 판매되어 큰 화제를 모은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두 번째 이야기다. 얼핏 보면 평범한 할아버지 같지만, 백년 넘게 살면서 20세기의 주요 정치 사건들에 좌충우돌 휘말린 역사를 지닌 알란. "잘못된 때에 잘못된 장소에 가 있는 재주가 특출”난 그는 이번에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어쩌다 보니 평양과 뉴욕, 스톡홀름과 세렝게티를 넘나들고, 김정은과 트럼프를 비롯한 인물들과 우연히 맞닥뜨리며 기상천외한 모험을 이어간다. 그 여정도 웃기지만, 어떤 황당무계한 상황에도 놀라지 않고 여유를 갖는 101세 노인의 연륜이 큰 웃음을 자아낸다. “내가 살아오면서 암울한 때가 여러 번 있었는데, 아직도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잖아? 자, 진득하게 기다려 보자고. 바람의 방향이 바뀔 테니까. 아니면 다른 일이 일어날 수도 있고."

  • 로마법 수업
    한동일 (지은이) | 문학동네 | 2019년 9월 "2천 년 전 법으로부터 길어올린 물음"

    <라틴어 수업> 저자 한동일이 이번엔 로마법으로 명강의를 이어간다. 로마법이라는 딱딱하고 냉철해 보이는 주제 앞에서 수강을 망설일 필요는 없다. 한동일 교수는 2천 년 전의 법이라는 렌즈를 장착하고 지금 우리 사회를 본다. "내 삶과 마음을 건드리지 못하는 공부는 금방 잊히며 결국 아무 데도 써먹지 못한다"는 그의 말처럼, 책의 내용은 연신 마음을 두드린다.

    노예를 다루던 시민법을 설명하며 오늘날의 "당신은 자유인인가 노예인가"를 묻고, 로마의 결혼법을 말하면서는 "우리 사회는 결혼이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청년들에게 어떤 경제적, 정서적 지지를 제공하고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시민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것들을 정해둔 로마법은 오늘날 우리가 인간답게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데에도 여전히 유효한 기준이 된다. 먼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책은 결국 하나의 문장을 남긴다.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 물 만난 물고기
    이찬혁 (지은이) | 수카 | 2019년 9월 "신보 '항해'의 출발점, 악뮤 이찬혁 첫 소설"

    앨범 발매를 앞두고 창작의 한계에 부딪치자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가로서의 삶을 찾기 위해 작업을 중단하고 일 년간 여행을 떠난 '선'. 마지막 여정의 깊은 밤, 파도가 부서지는 갑판 한가운데에서 우연히 한 여자의 목숨을 구하게 된 선. 삶의 답을 찾기 위한 여정을 함께하는 동안 그녀에 대한 의문과 불안에 휩싸이게 된다.

    악동뮤지션의 음악을 통해 반짝이는 가사로 자신만의 독특한 시선을 펼쳐온 이찬혁이 소설가로 첫 책을 출간했다. 같은 시기 공개된 새 앨범 '항해'의 출발점이 된 이야기이다. 뱃노래, 물 만난 물고기, 달, 고래 등 노래와 제목을 공유하는 차례를 찾아 읽으며 예술가로서 이찬혁이 꿈꾸는 삶의 소중한 순간의 이미지를 더욱 깊게 경험할 수 있다.

  • 초등 자존감 수업
    윤지영 (지은이) | 카시오페아 | 2019년 9월 "오뚝이샘이 전하는 교실 속 자존감 이야기"

    오뚝이샘이라는 필명으로 초등 교육 콘텐츠 블로그를 운영하는, 14년 차 초등교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저자는 초등학생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존감'을 키우는 것임을 강조한다. 친구 관계에서부터 성적관리까지 초등학교에서 맞닥뜨리는 다양한 과업이 결국 아이의 자존감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자존감은 학교나 학원에서 키워줄 수 없다. 아이와 가장 가까운 사람, 부모가 자존감 형성의 뿌리이다. 이제 초등학교라는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아이들, 부모는 어떻게 해야 아이의 자존감을 키울 수 있을까?

    아이도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하지만, 부모도 아이를 키우는 일이 처음이다. 아이의 친구 관계, 학습, 학교생활, 다른 부모와의 관계, 예상치 못한 상황과 아이의 반응 등 아이보다 오히려 부모가 불안해지곤 한다. 자존감 수업은 이런 불안을 딛고, 아이를 믿어주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저자는 교실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자존감을 설명하고, 자존감을 키울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방법을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