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헤더배너
8.32018
  •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
    무라카미 하루키, 가와카미 미에코 (지은이), 홍은주 (옮긴이) | 문학동네 | 2018년 8월 "이보다 더 솔직할 수 없다! 하루키 인터뷰집"

    138회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한 소설가 가와카미 미에코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만났다. 십대 시절부터 하루키의 작품을 읽어온 오랜 독자이자 팬인 인터뷰어 가와카미 미에코는 '무라카미 씨의 우물을 위에서 엿보며 상상하는 대신 직접 우물 속으로 들어가는' 심정으로 인터뷰에 임했다고 언급한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출간 후와 <기사단장 죽이기> 탈고 후, 총 네 번에 걸쳐 심도 있게 진행된 인터뷰를 고스란히 담은 이 책에서 '하루키의 거의 모든 것'을 낱낱이 공개한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기사단장 죽이기>가 주가 되면서도, 틈틈이 하루키가 집필하고, 번역한 다채로운 작품들이 등장하여 인터뷰 주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장르 불문하고 글을 쓰는 원리, 즉 보이스를 한층 리얼하게 만드는 방식인 '매직 터치', 이야기를 '담갔다 건지기', 장편을 쓰는 방식, 고쳐 쓰기, 작품 속 악의 형태 등 하루키만의 창작 세계에 관한 이야기뿐 아니라, 작가로서 일본 사회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에 관해서도 솔직하게 밝힌다. 신선하고 날카로운 질문이 이어져 따분해할 여유라고는 없이 흥미로웠다고 평가한 인터뷰이와 하루키의 '매직 터치' 순간을 고스란히 체험했음을 고백한 인터뷰어. 인터뷰이와 인터뷰어 각자의 책임을 다한, 환상의 컬래버레이션 장이었던 것. 마지막 페이지까지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다.

  • 죽음을 선택한 남자
    데이비드 발다치 (지은이), 이한이 (옮긴이) | 북로드 | 2018년 8월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의 귀환"

    지구상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로 꼽히는 워싱턴 FBI 본부. 총성소리가 아침을 깨운다. 정장 차림의 한 남자가 지나가던 여자에게 총을 쏘고 자살을 시도한 것. 마침 그 장면을 목격한 FBI 요원 에이머스 데커에게 사건이 배정되지만, 완벽한 기억력으로 무장한 그에게조차 이번 사건은 미궁에 가깝다. 컨설팅 회사 사장인 가해자와 가톨릭 학교 교사인 희생자 사이에 아무런 연결점이 없어 보이기 때문. 파고들수록 분명해지는 한 가지는 거대한 어둠의 세력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것뿐이다.

    영미 스릴러의 거장 데이비드 발다치가 창조해낸 독보적인 인물 에이머스 데커가 돌아왔다. 미식축구 선수 활동 당시 사고로 얻은 '과잉기억증후군' 탓에 듣고 본 모든 것을 기억하게 된 그의 매력에 전 세계 1억 3천만 독자가 열광했다. 이번 신작은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이후 세 번째 이야기로, 영미 주요 매체에서 큰 호평을 받으며 출간 즉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 나는 뻔뻔한 엄마가 되기로 했다
    김경림 (지은이) | 메이븐 | 2018년 7월 "육아, 너무 열심히 하지 맙시다!"

    저자 김경림은 육아지 기자로 일하던 시절 첫 아이를 낳았다. 그동안 쌓은 전문지식을 유감없이 발휘해 누구보다 아이를 잘 키울 거라 자신했다. 아이는 영재 판정을 받았고, 이대로 아이의 앞날은 탄탄대로일 거라고도 여겼다. 그러나 아이는 아홉 살이 되던 해에 희귀암에 걸렸고, 완치와 재발을 반복하며 10년 동안 힘겨운 투병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아픈 아이를 돌보면서 저자는 이제야 '엄마 노릇'을 배웠다고 한다.

    아이가 아프면 당장 엄마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라는 질문과 함께, 죄책감과 불안에 시달린다. 보통의 엄마들도 마찬가지다. 아이의 미래가 엄마 손에 달렸다고 믿고,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하리만치 노력하면서도 본인들은 60점이라고 말하는 엄마들. 저자는 엄마란 아이의 운명을 바꾸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가 제 운명을 감당할 때 그저 옆에 있어 주는 사람일 뿐이라고 말한다. 엄마가 자신의 삶을 힘껏 살아갈 때 아이도 인생의 소중함을 알게 될 것이다. 엄마들이 스스로 평가한 60점 엄마, 딱 그만큼이 아이에게는 최고로 좋은 엄마이다.

  • 수학 탐정스 1
    조인하 (지은이), 조승연 (그림), 이승남 (기획) | 미래엔아이세움 | 2018년 7월 "납치된 선생님을 구하려면 수학 퀴즈를 풀어라!"

    수와 연산 문제를 잘 풀며 먹는 걸 끔찍하게 좋아하는 나연산, 무서움을 잘 타지만 도형과 측정 부문에서는 따라올 자 없는 이도영, 깔끔한 성격의 새침데기이자 뛰어난 관찰력과 추리력의 소유자 주아영. 꽃담 초등학교 2학년 수학 탐정들이 행방불명된 담임 선생님을 찾아 나선다.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는 수많은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바로 수학 퀴즈를 하나씩 풀 때마다 선생님을 납치한 무시무시한 범인의 실체에 조금씩 다가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스토리를 통해 개념을 이해하고, 퀴즈를 풀며 문제 해결력을 키울 수 있도록 만든 수학 추리 동화다. 도형과 길이, 곱셈과 곱셈구구, 덧셈과 뺄셈 등 알쏭달쏭한 수학 문제가 숨은 그림 찾기, 틀린 그림 찾기, 미로 찾기와 결합되어 놀이하듯 즐겁게 개념과 원리를 정리할 수 있다. 쓴 약에 꿀을 발라놓은 것처럼 수학을 어려워하는 아이들도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는 책이다. '수학이 얼마나 재미있는 건지 알려주겠다'는 김영롱 선생님의 당찬 포부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웃음 폭탄을 장착하고 있다.

8.72018
  • 수학이 필요한 순간
    김민형 (지은이) | 인플루엔셜(주) | 2018년 8월 "수학이란, 이 책과 같은 것입니다"

    돌아보면 정답 없는 수학 문제를 풀어본 기억이 없다. 수학은 정답을 찾아내는 효율적이고 정확한 방법이고, 정답을 찾아내지 못한 수학은 실패로 여겨진다. 그토록 많은 수학 책이 ‘쉽게, 재미나게, 흥미롭게’에 도전했지만, 여전히 수학에 대한 감각과 이해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까닭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옥스퍼드대 수학과 정교수로 임용되어 화제를 모은 수학자 김민형은 수학의 정의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수학만 논리적인 학문이라는 주장도 근거가 없거니와 수학 역시 논리학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다 보면, 불완전한 "인간이 하는 작업이 완벽하고 영원불멸하기를 기대하는 것"이 무리 아니냐는 반문에 수긍하게 된다.

    이렇게 수학에 대한 고정관념이 사라지니, 비로소 수학이 무엇을 어떻게 하는 학문인지 편안하게 들여볼 수 있게 된다. 수학이 문제를 만들고 풀어가는 방식, 그렇게 찾아낸 방법과 답안의 조건을 바꿔가며 섬세하게 한계를 넓혀가는 모습에서, 이미 익숙하게 사용하는 수학적 사고를 확인하는 동시에 이러한 수학적 사고가 얼마나 아름답고 매력적인지 깨닫게 된다. "수학은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인간이 답을 찾아가는 데 필요한 명료한 과정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면, 이 책이야말로 수학에 가장 가까운 수학 책이라 할 수 있겠다.

  • 맥파이 살인 사건
    앤서니 호로비츠 (지은이), 이은선 (옮긴이) | 열린책들 | 2018년 8월 "추리소설가의 죽음과 편집자가 밝혀낸 진실"

    편집자 수전은 인기 추리소설가의 신작 초고를 설레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던 그 날을 회상한다. 소설 속 원고의 배경은 50년대 영국의 조용한 마을. 대저택에서 벌어진 의문의 살인 사건과 탐정 수사가 한창 펼쳐지다 결정적인 대목에서 원고가 뚝 끊긴다. 이를 항의하려 상사에게 연락한 그녀는 작가의 사망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한다. 어떻게든 원고 뒷부분을 찾아 책을 출간해야 한다는 일념 하에, 수전은 미완의 원고와 다년간의 추리소설 전문 편집자 경력을 총동원해 작가의 사망 배후를 파헤친다.

    영국 미스터리의 대가 앤서니 호로비츠의 신작. 고전 탐정소설의 수법을 계승하면서 현대 출판업계의 모습을 액자소설의 형식으로 담아 풍부한 결의 추리소설을 완성했다. 소설 속 소설을 바탕으로 현재를 추리하는 재미가 쏠쏠하고, 편집자 수전이 사라진 원고를 찾아 탐정으로 변신하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소설 곳곳에 녹아있는 애거서 크리스티에 대한 오마주는 팬들이라면 반가워할 대목이며, 애너그램과 아크로스틱 등 독자가 탐정으로 개입할 수 있는 장치가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 워싱턴 포스트 선정 '올해의 책', 데일리 메일 선정 '올해 최고의 범죄 소설'으로 꼽히는 등 영미권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 박완서의 말
    박완서 (지은이) | 마음산책 | 2018년 7월 "시절을 보듬고 시대를 직시하는 말들"

    박완서의 글을 동시대에 읽고 자란 세대는 아니지만, 1990년대에 이루어진 박완서의 인터뷰를 담아낸 이 책에 흠뻑 빠지는 데에, 그런 상황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1931년생이니 살아있다면 올해 미수를 맞았을 테고, 인터뷰가 진행되던 시기에도 이미 60대에 접어들었을 때인데, 이렇게 나이로 생각의 모양을 가늠하는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그는 오늘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호흡과 온도로 전하고 있었다.

    그의 말은 읽는 내내 무척 따스했다. 스스로 500년은 지나온 것 같다고 말하듯 숨가쁘게 변하는 세월을 살아온 때문인지, 그는 자신을 흔드는 바람마저도 품에 안고 귀를 기울이는 듯한 모습이다. 더불어 읽는 내내 당대에 더불어 2018년 오늘이 겹쳐 보였다. 그가 직시한 시대의 문제가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건 아닐 텐데, 그가 문제의 껍데기가 아니라 알맹이를 짚어냈기에 마치 오늘의 상황을 두고 이야기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기분 좋게 어른과 이야기를 나눈 일은 정말 오랜만이다. 자신을 본질적으로 명랑한 사람이라고 여기며, 늙어서도 그것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는 그의 바람은 이루어졌던 게 분명하다. 스스로 늙었다는 생각이 들 때, 늙어서 안 된다는 핑계가 피어오를 때, 언제고 박완서를 찾아 읽으며 명랑함을 채우고 나눠야겠다.

  • 흐르는 편지
    김숨 (지은이) | 현대문학 | 2018년 7월 "<한 명> 이후, 김숨의 증언"

    열다섯 소녀는 흐르는 물에 편지를 쓴다. "어머니, 나는 아기를 가졌어요. 오늘 새벽에는 초승달을 보며 아기가 죽어버리기를 빌고 빌었어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살아야 했던 그 시간을 눈을 부릅뜨고 본다. '눈송이가 녹듯 아기가 내 몸에서 소리 없이 사라져버렸으면.' 차마 발췌해 묘사하기 어려운 지난한 고통의 감각을 김숨은 소설의 윤리로 정확하게 묘사한다. 취재한 증언과 자료를 바탕으로 위안소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쓸 '용기'를 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고 작가는 말한다.

    2016년 출간된 장편소설 <한 명>은 '위안부' 피해자가 세상에 한 명뿐인 상황을 가정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당시 생존자는 40명. 2018년인 지금은 27명의 피해자가 생존해 있다. 이 처참한 비극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할 이유일 것이다. 김숨의 증언소설, 길원옥 할머니의 이야기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와 김복동 할머니의 이야기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래>도 출간 예정이다.

8.102018
  • 파워풀
    패티 맥코드 (지은이), 허란, 추가영 (옮긴이) | 한국경제신문 | 2018년 8월 "직원들의 성장이 먼저다"

    우편으로 DVD를 대여하던 넷플릭스라는 작은 업체를 세계적 미디어 플랫폼으로 만든 비결은 누가 뭐래도 우수한 콘텐츠 전략에 있을 것이다. '하우스 오브 카드'를 위시한 자체 제작 시리즈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독점적인 시장을 확보한 것이 특히 주효했다. 뭐, 콘텐츠 기업이 콘텐츠로 승부를 봤다니, 당연한 이야기겠다. 그렇다면 그 일은 누가 해냈을까?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 인사 책임자였던 이 책의 저자? 아니다. 넷플릭스의 직원들이야말로 성공의 주역이다.

    이 책은 그 인재들, 정확하게 말하면 그런 인재를 불러 모으고 그들이 최상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기능했던 회사의 인사 정책과 사내 문화에 공을 돌린다. 어쩌면 일종의 환경결정론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훌륭한 사내 문화를 정립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 시장 경쟁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을 '저지를' 훌륭한 직원들이 먼저다. 그런데 그런 그들을 독려하고 붙잡아 둘 수 있는 건 결국 훌륭한 사내 문화다. 그러니 경영자라면 조직 관리에 보다 힘을 쏟아야 한다.

    응당 이 책의 1차 독자는 기업의 경영자 혹은 HR 관리자일 것이다. 그렇지만 리더가 아니라고 이 중요한 문서를 지나치면 곤란하다. 직장인들은 보다 성공적인 커리어 설계를 위해 이 책을 역으로 활용해 볼 수 있겠다. 세계적인 기업은 어떤 인재를 중용하는지, 어떤 덕목에 가치를 두고 일하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책에 담긴 넷플릭스의 사례는 직원의 성장이 곧 회사의 성장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시켜 준다. 경영자와 직원들 모두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초크맨
    C. J. 튜더 (지은이), 이은선 (옮긴이) | 다산책방 | 2018년 7월 "분필 표식이 나타나면 누군가 죽는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자신이 어렸을 때 했던 분필 장난을 알려준다. 아이들은 친구 집 앞에 막대인간을 그려 비밀 메시지를 주고받는 이 장난에 순식간에 빠져든다. 그런데 이렇게 초크맨이 등장할 때마다 섬뜩한 사건들이 벌어지고, 급기야 초크맨의 인도에 따라 숲 속으로 간 소년들은 보아서는 안 될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온 마을은 충격에 휩싸이고,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어느 날, 어른이 된 소년에게 초크맨의 표식이 담긴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C. J. 튜더의 데뷔작으로, 스티븐 킹, 리 차일드 등 장르문학의 대가들은 물론 <가디언>, <타임스> 등 각종 언론의 찬사를 받았다. 영미권 독자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으며 2018년 상반기 아마존 올해의 책, 굿리즈 가장 많이 읽힌 신간에 올랐다. 강렬한 첫 문장, 생생한 묘사, 음산한 사운드트랙이 들려오는 듯한 오싹한 분위기가 여름 밤을 서늘하게 식힌다.

  •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
    오구니 시로 (지은이), 김윤희 (옮긴이)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8월 "뒤죽박죽 그곳에서, 어쩐지 너그러워집니다"

    초여름의 도쿄, 좌석 수 열두 개의 작은 레스토랑이 문을 열었다. 메뉴는 피자, 햄버그스테이크, 만두 단 세 가지. 햄버그스테이크를 주문한 손님에게는 만두가 서빙되고, 주문한 음료가 옆 사람의 것과 뒤바뀐다. 그런데도 아무도 화내거나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손님과 종업원 모두 하하호호 웃음꽃이 핀다. 그곳은 바로 '주문을 틀리는 요리점'이다.

    '식당답게 음식의 질을 고집하고, 실수가 목적이 아니므로 일부러 실수를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 두 가지 원칙 아래 전문 셰프와 치매 환자 종업원이 한 팀을 이뤄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프로젝트가 일본에서 시작되었다. 치매를 앓고 있는 종업원들이 실수해도, 손님들은 "틀렸지만, 조금 늦었지만, 뭐 어때" 하면서 실수를 가벼이 받아들이고 함께 즐기면서 '관용'과 '배려'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전파했다. 중요한 또 한 가지는 주변에서 수용하고 이해하는 노력만 있다면 치매 환자들도 얼마든지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프로젝트임을 증명해 보였다. 프로젝트 기획자이자 책의 저자 오구니 시로는 '주문을 틀리는 음식점'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전 과정과 그곳에서 일어난 가슴 따뜻한 일에 관한 이야기를 가감 없이 생동감 넘치게 들려준다.

  • 재판으로 본 세계사
    박형남 (지은이) | 휴머니스트 | 2018년 8월 "현직 판사가 돌아보는 역사적 판결"

    재판에 참여한 당사자 입장에서는 유죄와 무죄가 가장 중요한 결과겠지만, 같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의 입장에서는 해당 판결이 다루는 쟁점이 무엇이고, 이를 이해하고 적용하는 사회와 법의 태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가 중요한 지점이겠다. 지나간 판결을 돌아보며 오늘을 비춰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저자는 현직 판사로, 오늘도 어떤 판결을 내리며 사회와 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소크라테스 재판, 드레퓌스 재판, 아이히만 재판 등과 당장 역사의 무게를 비교할 수는 없겠으나, 판결에서 쟁점이 되는 윤리는 크게 다르지 않고, 앞선 판결에서 드러난 역사적 질문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시 말해 오늘 판결은 어제 판결의 연속이니, 판결하는 입장에서 역사의 판결을 돌아보는 의미가 남다르다 하겠다.

    이 책은 법 논리로 역사 속 판결을 분석하고 설명하는 동시에, 해당 판결의 시대적 의미와 과제를 역사의 맥락 속에서 살피려 애쓴다. 자살의 업무상 재해 소송에서 주변 사람들과의 인터뷰까지 진행하며 자살 원인을 규명하는 '심리적 부검'을 사법사상 처음으로 실시하고, 지금도 공정거래와 노동 행정사건을 다루고 있는 저자이기에, 좋은 재판과 나쁜 재판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이고, 판결이 어떻게 세상을 나아지게 하는지 묻고 싶다. 자신이 참여한 판결은 아니지만, 이 책이 성실하고 진지한 답변이라고 생각한다.

8.142018
  • 폭염 사회
    에릭 클라이넨버그 (지은이), 홍경탁 (옮긴이) | 글항아리 | 2018년 8월 "폭염, 자연재해가 아닌 사회비극"

    2018년은 (2019년이 오기 전까지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폭염으로 기록될 것이다. 한낮 기온은 역대 최고치를 넘나들었고, 열대야는 한 달 넘게 지속되며 밤잠을 설치게 했고, 집중적인 냉방 기기 사용으로 전력이 끊어지는 사례가 속출했다. 이번 여름을 겪은 이들 다수는 이제 전과는 다른 기후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할 것이며, 전과는 다른 대응과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문제는 모두가 처음 겪는 일이라 무엇을 어디서부터 고쳐야 할지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미국 시카고는 지난 1995년 여름, 올해 한국과 비슷하게 유례 없는 폭염을 겪었다. 일주일 동안 지속된 더위에 700명이 넘는 사람이 생명을 잃었고, 전례 없는 상황에 사회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다행히 분석과 반성이 곧바로 시작되었다. 더위라는 자연 요소 외에 연령, 성별, 인종, 경제적 차이, 지역별 차이 등 다양한 사회 요소와 폭염 피해 사이의 관계가 드러났는데, 빈부의 격차뿐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 양태나 운영 방식 등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는 게 밝혀졌다.

    더불어 이 책은 폭염뿐 아니라 사회가 언제든지 마주할 수 있는 각종 재난과 위험에서도 비슷한 과정과 결과를 찾아낸다. 위기가 어디에서 어떻게 비롯하든, 예상을 뛰어넘는 상황에 대응하여 이를 극복할 방법을 찾아내는 데에 필수적인 공통 분모가 무엇인지 밝혀낸다는 점에서, 제목 그대로 폭염과 사회를, 그리고 폭염과 정치를, 더불어 폭염과 내일을 연결하는 새로운 상상을 전하는 책이다.

  • 미스 플라이트
    박민정 (지은이) | 민음사 | 2018년 7월 "2018 젊은작가상, 박민정 첫 장편소설 "

    어릴적 본 미국 드라마의 한 장면을 유나는 생각했다. 주인공인 승무원이 플라이트 백을 놓고 나왔다가 하루 종일 '미스 플라이트'라는 놀림을 받는 장면. 미스가 '놓쳐 버리다'인지, '미혼 여자의 성 앞에 붙이는 호칭 또는 지칭'인지를 유나는 궁금해했다. 사범대를 졸업하고 승무원이 된 유나는 노조 문제로 갈등을 빚다 자살하고 만다. 딸을 '놓쳐버린' 아버지 '정근' 앞에 유나의 진실로 향하는 문이 놓여 있다.

    정근은 도무지 좋아하기가 어려운 사람이다. 전라도 사람이지만 한 번도 그 사실을 드러낸 적이 없고, 외려 그들에 대한 대한 혐오를 자랑스럽게 드러냈던 사람. 전직 공군 대령인 그는 방산 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불명예스럽게 제대했다. 가해의 삶을 살던 그가 5년차 승무원이었던 딸 유나의 피해의 기록을 마주한다. 평생 자신을 지탱해온 삶의 방식을 버리고 아버지에게 '똑바로 살라'고 말하던 딸 유나의 삶 깊숙한 곳으로 가닿을 수 있을까. 두 여성의 선택의 순간에 관한 작품 <세실, 주희>로 2018년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박민정의 첫 장편소설. 항공사, 승무원, 갑질, 인권 침해, 공군, 방산 비리, 내부 고발 등의 뜨거운 문제를 신중하게 엮은 소설을 독자 앞에 내민다.

  •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
    이진순 (지은이) | 문학동네 | 2018년 8월 "그렇게 훌륭한 인물은 세상에 없어요"

    인터뷰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사람에게 그 이야기를 전하는 일이다. 대체로 누구를 만났는지가 이목을 끌지만,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을 차례로 만나며 인터뷰를 이어간다면, 인터뷰를 이끌어 가는 이가 누구인지, 정확히 말하면 그가 어떤 시선으로 만날 사람을 정하고, 어떤 태도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 사람의 어떤 부분에 주목하여 이야기를 전하는지 살펴보게 된다. 연속하여 진행된 인터뷰, 책으로 묶인 인터뷰를 따로 읽는 까닭이겠다.

    이진순은 '이진순의 열림'이라는 이름으로 지난 6년 동안 122명의 사람을 만났고, 일간지 두 면을 꽉 채우는 장문의 인터뷰를 꾸준히 전했다. 이 책은 그 가운데 열두 명의 이야기만 담았지만, "좌절의 상흔과 일상의 너절함 속에서도 세상에 대한 낙관과 사람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던 모두 그리고 인터뷰어의 모습이 한데 겹쳐, 완벽하지 않지만 '반짝' 하며 빛나는 각자의 한방, 즉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순간"을 풍성하게 그려낸다.

    그는 세상을 밝히는 건 "크리스마스트리의 점멸등처럼 잠깐씩 켜지고 꺼지기를 반복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짧고 단속적인 반짝임"이라는 믿음을 전한다. 다른 이의 삶에 나를 비교하거나, 다른 이의 삶을 희망하는 데에서 한 걸음 물러나, 각자의 반짝임이 무엇을 뜻하고 어디로 향하는지 돌아보며, 각자의 삶이 서로의 삶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찾을 기회를 함께 전하는 이야기다.

  •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
    P. D. 제임스 (지은이), 이주혜 (옮긴이) | 아작 | 2018년 8월 "미국 추리작가협회 최고 작품상 수상작"

    애거서 크리스티와 나란히 영국의 주요 추리작가로 손꼽히는 P. D. 제임스의 대표작. 코델리아 그레이는 런던에서 한 사설탐정과 동업 중이었다. 그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코델리아가 탐정사무소 대표직을 맡게 되었을 때, 주변 사람들 모두가 사설탐정은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직업이니 새 직업을 구하라고 한 마디씩 한다. 그러나 그녀는 강한 신념으로 사무소를 운영하고, 드디어 첫 번째 의뢰가 들어온다. 케임브리지대를 다니던 아들의 갑작스런 자살 원인을 밝혀 달라는 것. 코델리아는 탐정이 여자에게 잘 어울리는 직업임을 보여주겠다고 마음먹고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다.

    과거 추리소설 속 여성은 남성 주인공을 보조하는 인물로 묘사되어 왔다. 그렇기에 1972년에 출간된 이 책의 주인공 코델리아는 편견을 딛고 실력으로 당당히 범죄에 맞서는 여성 탐정의 모델을 정립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작품 내적으로도 트릭의 독창성, 논리적인 수사 과정과 치밀한 두뇌 싸움 등 정통 추리소설로서의 완성도가 높아 '미국 추리작가협회 최고 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유려한 문체로 이어지는 섬세한 분위기 묘사 또한 아름다워 ‘천상의 필력(런던 타임스)’라는 찬사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정말이지 우아한 추리소설이다.

8.172018
  •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
    이옥남 (지은이) | 양철북 | 2018년 8월 "아흔일곱 할머니의 다정한 사계절"

    1922년 강원도 양양군 서면 갈천리에서 누군가의 딸로 태어나 열일곱 살에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어 그렇게 한평생을 살아온 사람. 복숭아꽃 피면 호박씨 심고, 꿩이 새끼 칠 때 콩 심고, 뻐꾸기 울기 전에 깨씨 뿌리고, 깨꽃 떨어질 때 버섯 따며 사계절 자연 속에서 일과 함께 사는 사람. 아흔일곱 살 이옥남 할머니는 남편 없이 홀로 지내다 보니 적적해서, 또 글씨 좀 나아질까 싶어 도라지 판 돈으로 공책을 사서 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꼬박 30년 동안 글을 썼고, 그렇게 써온 일기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아흔일곱 번의 봄여름가을겨울>에는 할머니가 만난 자연과 일, 삶에 관한 진솔한 기록이 차곡차곡 담겨 있다. 무성하게 자라난 잡초를 뽑으면서도 죄를 짓는 것 같다 하고, 빨간 강낭콩은 빨개서 이쁘고 그냥 강낭콩은 깨끗해서 이쁘다 하고, 자식들한테 용돈을 받으면 고마우면서도 마음 아프다 한다. 작은 생명도 귀하게 여기고, 자식과 손주에게는 넘치도록 사랑을 쏟으며, 이웃에게는 정성으로 대하는 이옥남 할머니. 그 모습 속에서 우리 엄마, 우리 할머니가 보여 정겨우면서도 눈시울이 시큰해진다. 할머니의 맑고 다정한 글을 대하며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고미숙 (지은이) | 프런티어 | 2018년 8월 "백수는 필연이자 궁극의 삶이다"

    청년에게 백수의 삶을 권하는 책이라니,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저자 고미숙은 말한다. 우리 모두 결국엔 백수라고. 그 옛날의 연암도 그랬고, 지금의 저자도 그렇고, 앞으로의 당신도 예외는 아니라고. 그렇다. 지금 백수가 아닌 이들도 어차피 영원한 직장인으로 남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잠시 중년 백수가 될 나의 삶을 그려 본다. 그렇게 마음먹으니 텍스트가 달리 읽히기 시작한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백수라는 말에는 온갖 부정적인 이미지만 존재하는 것이 사실인데, 청년들에게 그런 삶을 권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고미숙은 백수를 재정의한다. 그 핵심 키워드는 '자기 주도적인 삶'과 '프리랜서'다. 말이 백수지, 사실 그 어떤 이들보다 자기 삶을 제대로 사는 사람인 것이다.

    고미숙의 백수는 적(籍)을 두지 않는 사람이다. 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직장에 묶일 필요도, 내 집 마련이라는 이름으로 빚을 질 필요도 없다. 백수에겐 남의 일보다는 내 일이, 누워 잠잘 곳보다는 걷고 느낄 곳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백수는 시간에 쫓기지 않으니 어디든 여행할 수 있고 무엇이든 공부할 수 있다. 이러한 저자의 백수 예찬이 불편할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의미가 어떻든 4차 산업혁명이 백수의 삶을 앞당기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바꿔 말하면, 4차 산업혁명 덕분에 우리는 머지 않아 '각자의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백수가 된 당신은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이제 기회는 서둘러 백수를 준비하는 자에게 먼저 다가올 것이다. 저자의 외침대로 '백수는 인류의 미래'니까 말이다.

  • 네버무어 1
    제시카 타운센드 (지은이), 박혜원 (옮긴이) | 디오네 | 2018년 8월 "해리포터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만난다면?"

    불행의 날에 태어나 11살이 되면 죽을 운명을 안고 살아가는 소녀 '모리건'. 사람들은 소녀를 저주받은 아이라 부르며 기피하고, 명망있는 총리인 아버지조차 가문의 수치로 여긴다. 드디어 다가온 11번째 생일, 가족들이 서둘러 애도를 표하려고 하던 그 때, 갑자기 수수께끼의 남자가 나타나 묻는다. "살고 싶지 않니?" 고개를 끄덕인 모리건과 남자가 향한 곳은 비밀스러운 도시 '네버무어'. 수백 명의 아이들이 참가하는 위험한 평가전에서 단 아홉 명만이 선택받아 네버무어에서 살아갈 수 있다. 모리건은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까?

    "해리 포터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만나는 것 같은 느낌(커커스 리뷰)"의 판타지 소설이다. 데뷔작임에도 바로 영화화가 확정되어 화제가 되었다. 저주받은 운명과 남다른 재능, 정체불명의 신비로운 집단 등 판타지 소설의 기본적인 요소들에 충실하면서도, 독특한 캐릭터들과 따뜻한 인간애가 돋보인다. 타임, 시카고 트리뷴 등 영미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고, ‘2018 호주 출판 산업상’ 최우수 도서 부문을 수상해 주목을 받았다.

  • N. E. W.
    김사과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8월 "새로운 시대를 위한 새로운 악몽"

    정지용은 덜떨어졌다는 평을 받으며 자란 오손그룹의 후계자이다. 미모와 학벌과 집안 모두를 갖춘 최영주는 정지용의 아버지 정대철 회장과 자신의 어머니 홍 교수가 계획한 대로 정지용과 순조롭게 결혼을 했다. 끝없는 소비와 권태가 이어지는 결혼생활. 최첨단 감시 시스템을 갖춘 외곽의 신혼집 '메종드레브' 로비에서 정지용은 인터넷 BJ 이하나를 발견한다. 잘 먹고 잘 자는 '신이 난 개' 같은 여자. 200평 펜트하우스와 5평 원룸 사이를 오가며 정지용은 최영주와 이하나를 동시에 만난다. 우리에게 익숙한 드라마 줄거리가 아니다. <미나>, <천국에서> 등의 소설로 세계와의 불화를 격렬하게 묘사해온 김사과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세계. 이 세계보다 더 나쁜 세계가 존재할 것이기에 (<더 나쁜 쪽으로>) 아직은 최악이 아니라고 말했던 그가 그리는 소비지향주의자들의 완벽한 세상. 메종드레브에서 하와이로, 다시 LA로 떠나는 이 인스타그램적인 삶은 왜 악몽처럼 느껴지는가.

    자신의 카리스마로 기업을 운영해 온 정대철 회장은 '엔, 이, 더블유, 뉴N. E. W.가 현대 세상을 결정했다.'라고 어느 날 선언한다. 그가 호명한 세 개의 개념은 신경학neurology, 전기electricity, 제2차 세계대전World War 2. 아들 정지용의 말대로 그의 명제는 황당하고 유치하다. 하지만 그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게 공허임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좇고, 좋아요를 누르고, 멋지고 대단한 나를 향해 돌진한다. “그저 꾸준히, 가능한 한 길게 기분이 좋은 상태가 이어지는 것., 그것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겠다. 아주 좋은 일도, 아주 나쁜 일도, 혹은 아주 괴상한 일도 벌일 수 있다.”고 말하는 악몽중독자들의 우아한 산책. 서늘한 꿈은 계속 이어진다.

8.212018
  • 자기 역사를 쓴다는 것
    다치바나 다카시 (지은이), 이언숙 (옮긴이) | 바다출판사 | 2018년 8월 "다치바나 다카시의 자서전 쓰기 교실"

    읽고 기록하고 정리하고 쓰는 일이라면 일본에서 첫손가락에 꼽힐 ‘지의 거장’ 다치바나 다카시가 강단에 섰다. 수강생은 50세 이상으로 ‘세컨드 스테이지 대학’이라는 학교 이름처럼 인생 후반전을 마주한 이들이고, 강의 제목은 ‘자기 역사를 쓰는 방법’으로 ‘인생 재출발 지점’에 서서 지난 과거를 돌아보고 다가올 미래의 가능성을 전망해보는 기회를 전하는 목적이다. 이 책은 강의 기록이자 강의에 참석한 이들이 쓴 자기 역사의 기록으로, 자기 역사를 써야 할 이유와 누구나 쓸 수 있다는 희망을 함께 전한다.

    자기 역사를 쓰는 데 있어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은 '자기 자신이라는 인간'과 '자기 자신이 살아온 시대'를 함께 살피는 일이고, 실제로 후자를 기반으로 전자를 돌아볼 때 훨씬 구체적인 장면들이 쉽게 떠오르기도 한다. 이어지는 과정은 이 수업의 백미라 할 '자기 역사 연표' 작성이다. 시대적으로 중요한 사건에 더불어 주변 인물과 나에게 벌어진 일을 담을 수도 있고, 시기별 인생 충실도를 그래프로 그려볼 수도 있고, 능력 재산과 인맥 재산 등 활동과 성과를 바탕으로 정리할 수도 있는데, 이 책에는 수강생들이 직접 작성한 자기 역사 연표가 (긴 연표 모양) 그대로 담겨 있어 큰 재미와 도움을 전한다.

    개인의 역사가 세계의 역사로 이어진다는 커다란 의미를 앞세우지 않더라도, 자기 역사를 써 내려가다보면 "싫어했던 것, 괴로웠던 것이 조금씩 정화되면서 모든 일이 그리운 추억으로 자리해 갔다"는 수강생의 감회에서 이 과정의 의미가 무엇인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렇게 나를 이해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는 일 그리고 그렇게 쓴 자기 역사가 앞으로도 끊임없이 바뀌며 고쳐 쓰이거나 보충될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면, 완성되지 않더라도 이미 충만한 삶이라는 여유에 이르지 않을까 싶다. 50세까지는 제법 긴 시간이 남았지만, 지금 '자기 역사' 쓰기를 시작하는 까닭이다.

  • 시스터 아웃사이더
    오드리 로드 (지은이), 주해연, 박미선 (옮긴이) | 후마니타스 | 2018년 8월 "깨져야 할 침묵은 너무나 많습니다"

    오드리 로드는 미국의 흑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로, 1950년대 후반부터 30여 년 동안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 혐오에 맞서 싸운 활동가이자 이론가다. 갖가지 기준으로 서로를 나누고 가르며 문제를 문제로만 남겨두려 하는 태도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그러한 각자의 자격이 “제약이 아니라 열림”과 가능성이 될 수 있음을 끊임없이 외쳤다. 7, 80년대 페미니즘의 흐름에서 새로운 지평이 열리는 데 공헌했으며, “당신의 침묵은 당신을 지켜주지 않는다”, “주인의 도구로는 결코 주인의 집을 무너뜨릴 수 없다” 등의 문장과 글로, 페미니스트들이 생존하고 성장하는 데 영감을 전했다. 이 책은 그의 글과 연설을 모은 선집으로, 한층 더 큰 목소리를 내는 용기와 방법을 전한다.

    후마니타스 출판사는 이 책을 시작으로 딕테(dictee) 시리즈를 펴낸다. “언어가 아닌 울먹임, 미처 말이 되지 못한 웅얼거림, 곪아터져 나오는 울부짖음으로 말해 온 이들의 목소리에 주목하며, 여기저기 조각과 부스러기로 흩어져 있는 이야기들을 찾아 듣고, 모으고, 기록하려는 시도”다. 수동적 받아쓰기의 고통을 증언하는 동시에, 능동적 받아쓰기를 통해 침묵을 비우려는 도전이다. 진지하면서도 활력 넘치는 도전의 출발점에, 누군가로서 말하고, 공개적으로 말하고, 누구의 편에 서서 말하고, 누군가에게 말하며, 말하기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 오드리 로드만큼 어울리는 사람이 있을까. 그가 전한 말하기의 중요함을 한 번 더 곱씹는다.

    "피곤에 지쳐 녹초가 된 상황에서도 할 일을 하고 말하는 법을 배웠던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두려움이 엄습해 오더라도 각자가 할 일을 하고 할 말을 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필요한 언어과 그것의 의미를 중시하기보다 두려움을 더 중시하도록 사회화되어 왔지만,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진 사치스러운 최종적 순간만을 기다리며 침묵한다면, 그 침묵의 무게는 우리를 질식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략) 우리의 손발을 묶고 있는 것은 차이가 아니라 침묵입니다. 그리고 깨져야 할 침묵은 너무나 많습니다."

  • 312호에서는 303호 여자가 보인다
    피터 스완슨 (지은이), 노진선 (옮긴이) | 푸른숲 | 2018년 8월 "<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신작 스릴러"

    공황 장애에 시달리는 케이트.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친척이 집을 바꿔 살아보자고 갑작스레 제안해오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흔쾌히 승낙한다. 그러나 보스턴의 고풍스런 아파트에 도착한 지 오래지 않아, 옆집 303호에 살던 여자가 죽은 채 발견된다. 자꾸만 드는 망상을 불안 장애 탓이라 생각해보지만, 집 서랍에서 303호의 열쇠를 발견한 순간 악몽이 시작된다. 수상한 남자 세 명이 303호 주변을 맴돌고, 케이트는 단서를 찾기 위해 집을 뒤지기 시작한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의 피터 스완슨이 '아파트먼트 스릴러'로 돌아왔다. 건너편 집 창문이 마주 보이는 ㄷ자 건물 구조가 자아내는 서스펜스와 등장인물들의 관점 교차 속에서 오는 긴장감이 돋보인다. 집에 혼자 있을 때도 누군가 나를 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을 소재로 인간의 마음 깊은 곳 심연을 들여다본다. "목덜미의 털이 쭈뼛 서는(라이브러리 저널)" 심리 스릴러.

  • 슈퍼 독 개꾸쟁 1 : 덩림픽 구하기 대작전
    정용환 (지은이) | 고릴라박스(비룡소) | 2018년 8월 "제1회 '이 동화가 재밌다' 대상 수상작"

    사람이 아닌 개가 주인으로 살아가는 특별한 세상. 개들도 매일 아침 학교에 가고 직장으로 출근하며 국제 스포츠 대회를 열기도 한다. 진도 개씨 370대손 행운의 강아지 개꾸쟁과 절친 개풍순, 그리고 개복실. 여느 영웅과는 거리가 먼 괴짜 삼총사의 활약을 주목하시라. 바로 지금, 먼 옛날 개들을 노예처럼 부렸던 '핑거스'가 다시 개들을 지배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예측을 불허하는 새로운 상상력, 어처구니없고 황당무계한 개그에 서서히 빠져들게 만드는 코믹한 스토리다. 만화와 동화의 경계를 허무는 현란한 연출과 익살스러운 그림, 센스 있는 패러디까지, 제1회 '이 동화가 재밌다' 공모전의 대상을 거머쥔 작품 답게 막강한 재미를 자랑한다.

    바야흐로 덩림픽 시즌, 전 세계 수천 마리 개들이 모여 경기를 벌이는 국제 스포츠 대회의 막이 오르고 개꾸쟁 학교 전교생들도 카드 섹션으로 덩림픽에 참가하게 된다. 평화의 축제인 덩림픽의 상징은 바로 거대한 똥 더미! 축제의 분위기가 점점 고조되는 가운데, 카드 섹션 코치 비숑 선생님에게 감지된 수상한 기운과 핑거스의 방해 작전 '덩림픽 폭망 프로젝트X'에 맞서야 하는 개꾸쟁 삼총사. 이들은 과연 무사히 개들의 세상을 구해낼 수 있을까?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한없이 통쾌한 결말은 다음 편에서 이어질 개꾸쟁과 핑거스의 대결을 더욱 기대하게 만든다.

8.242018
  • 다시 자본을 읽자
    고병권 (지은이) | 천년의상상 | 2018년 8월 "희대의 살인범으로서 자본주의"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은 늘 새롭게 읽혀야 한다지만, 마르크스의 <자본>만큼 당대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시금 새롭게 읽어야 할 작품이 있을까 싶다. 왜냐하면 마르크스가 <자본>을 쓸 때, 그 두 가지를 바탕에 두고 이야기를 풀어갔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당시 자본주의를 비판하며 비판의 대상에 이름을 붙였고, 당시의 정치경제학자들을 비판하며 정치경제학의 역사적 한계를 드러냈고, 이를 통해 노동자들에게 끼치는 해악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때와 다른 오늘날 마르크스의 <자본>을 굳이 끄집어 내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철학자 고병권은 그 이유를 설명하고 방법을 제시하며,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서 <자본>을 읽어간다. 혼자 읽는 게 아니라, 함께 읽자고 제안한다. '북클럽 자본' 기획은 앞으로 2년 동안 두 달에 한 권씩 총 열두 권의 책 그리고 이어지는 열두 번의 강의로 이어질 예정이다. "우리 시대에 대한 비판을 가장 멀리 끌고 갔기에 우리 시대에 가장 가까이 다가설 수 있었"던 마르크스의 '비판'을 따라가다 보면, "희대의 살인범으로서 자본주의"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체포의 현장에 보다 많은 이들이 함께하길 기대한다.

  • 금융의 모험
    미히르 데사이 (지은이), 김홍식 (옮긴이) | 부키 | 2018년 8월 "교양인을 위한 금융학 강의"

    경영대학원과 법학대학원을 오가며 강의 중인 저자 미히르 데사이 교수는 어느날 심각한 반대 여론에 직면한다. 금융 강의를 인문 교양 학부에 개설하려고 하자 실용적인 학문이라 교양 교육에 적합하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저자가 세계 교육의 중심 하버드에서 느낀 이러한 균열은 오늘날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모양새다. 금융을 저속하고 윤리적 가치가 없는 일로 치부하는 것 말이다. 이는 금융에 대한 경멸로까지 이어져, 시장은 종종 노름판 취급을 받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는 금융 학도나 업계 종사자들에게도 심히 이롭지 못하다고 저자는 걱정한다. 물론, 멀리 태평양 건너에선 비우량 담보대출에 파생상품까지 남발하며 세계금융위기를 초래하기도 했고, 가까운 곳에서는 금리를 속여 비정상적인 수익을 내기도 했으니 그 책임은 상당 부분 금융의 몫이긴 하다.

    그렇다고 금융의 본래 목적이나 가치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 하면 금융의 미덕을 알릴 수 있을까? 하버드의 선배 교수 에드워드 윌슨이 <통섭>에서 '오해는 그 (통섭 가능한) 영역에 대한 무지에서 생기는 것이지, 사고방식의 근본적인 차이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고 한 것에 힌트를 얻은 저자는 금융을 인문학적 이야기로 풀어내 보자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 책에 <오만과 편견>, <베니스의 상인> 같은 고전, '심슨 가족', '워킹 걸' 같은 대중문화, 성경과 역사의 유명한 에피소드 등을 재료로 금융이 우리 삶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쉽게 설명해냈다. 덕분에 우리의 오해는 어느 정도 풀릴 수 있을 터다. 하지만 금융 스스로의 개선도 뒤따라야 할 것이니 금융의 인간성이 회복되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금융을 위한 모두의 노력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 더 걸 비포
    JP 덜레이니 (지은이), 이경아 (옮긴이) | 문학동네 | 2018년 8월 "압도적 긴장감을 선사하는 심리 스릴러"

    유명 건축가가 지은 세련된 저택. 인테리어도 멋지고 집세도 낮지만 입주 조건이 까다롭다. 심리테스트가 포함된 자기소개서를 보내고 면접도 봐야 한다. 입주한 후에도 가구 위치를 절대 옮겨서는 안되는 등 금지사항이 가득한 기묘한 곳이다. 그렇게 지난한 과정을 통과하고 세입자가 된 제인. 자신의 얼굴을 꼭 닮은 에마라는 여자가 과거 이 집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녀의 일상이 뒤틀리기 시작한다.

    '강박'의 늪에 빠진 사람들을 깊이 파고드는 강렬한 심리 스릴러소설이다. 현재와 과거, 제인과 에마의 시점이 번갈아 서술되며 긴장감이 차곡차곡 쌓인다. 책이 정식 출간되기도 전에 론 하워드 감독이 영화화를 결정하고, 리 차일드가 "완벽한 심리스릴러"라고 평해 화제가 되었다. 2017년 출간 이후 영미권에서 큰 호응을 얻어 아마존과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 주무르고 늘리고
    요시타케 신스케 (지은이), 유문조 (옮긴이) | 스콜라(위즈덤하우스) | 2018년 8월 "요시타케 신스케, 사랑스럽고 기발한 그림책"

    <벗지 말걸 그랬어>로 2017년 볼로냐 라가치상을 수상한 요시타케 신스케의 새 그림책. 아침이 오면 아이는, 일어나서 하얀 요리사 모자를 쓰고 하얀 반죽을 주무르기 시작한다. "그럼 오늘도 시작해 볼까!" 조물조물 쭉쭉, 다시 조물조물 쭉쭉! 그런데 아이가 만들려는 것은 과연 빵일까?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반죽을 주무르고 장난치고 논다. 반죽을 이불 삼아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가 다시 일어나서 조물조물 쭉쭉. 아마도 저녁까지, 반죽은 미술작품도 되고 트램펄린도 되고 이불도 되었다가 간지럼 타는 친구도 된다. 아이의 놀이는 목적도 없고 의미도 없어 보이지만 놀이 자체로 한없이 즐겁다. 언제 어디서나 무엇을 가지고도 놀 수 있고 놀고 싶은 아이들의 일상을, 기발한 상상력으로 버무려 너무나 사랑스럽게 보여주는 그림책.

8.282018
  • 진실의 10미터 앞
    요네자와 호노부 (지은이), 김선영 (옮긴이) | 엘릭시르 | 2018년 8월 "다치아라이 기자의 미스터리 사건 수첩"

    <왕과 서커스>의 프리랜서 기자 다치아라이가 돌아왔다. 신문사 근무 시절 벌어진 실종 사건을 그린 표제작 '진실의 10미터 앞'을 비롯해 전동차 투신 사건를 다룬 '정의로운 사나이', 고등학생 연인의 동반 자살 사건을 그린 '고이가사네 정사' 등 여섯 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각 단편은 미스터리로서 뛰어난 완성도를 보여주는 한편, 사건 해결 후에도 실제 사실과 정제된 진실 사이의 간극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하는 다치아라이의 모습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요네자와 호노부는 이 책으로 <야경>, <왕과 서커스>에 이어 3년 연속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 1위에 올랐다고 한다. 이번 작품이 속한 시리즈 타이틀인 '베루프'는 막스 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에 등장하는 '천직'을 의미한다. 작가는 프리랜서 기자로서 자신의 천직과 사명감에 대해 계속해서 자문해나갈 다치아라이를 위해 시리즈명을 '베루프'라고 지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앞으로 계속될 다치아라이의 여정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 결정, 흔들리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
    애니 듀크 (지은이), 구세희 (옮긴이) | 에이트포인트(EightPoint) | 2018년 8월 "인생을 바꿀 새로운 결정의 기준"

    야구 감독의 투수교체 결정은 언제나 경기 결과로 평가받는다. 선수의 컨디션, 상대 선수와의 전적, 경기의 분위기 등을 고려한 감독의 선택은 경기에 지는 순간 잘못된 것으로 판명된다. 중요한 경기였다면 최악의 결정이라고 매도되기까지 한다. 이렇듯 우리는 결과로 의사결정의 잘잘못을 따지는 경향이 있다. 왜 그럴까? 숨겨진 정보와 운의 영향력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포커에 주목하여 이 문제를 보다 깊게 파고든다. 포커는 불완전한 정보의 게임이며, 실력만큼 운도 크게 작용한다. 따라서 일련의 결과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의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 없다. 야구, 아니 인생도 마찬가지다. 결정의 위험부담과 불확실성을 편하게 받아들일 때 즉, 결과가 운에 좌우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그 결과의 압박에서 벗어나 더 다은 삶을 살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의사결정은 미래에 대한 베팅이다. 베팅이라고 하니 내기와 도박이 먼저 떠오르지만, 실제 정의는 훨씬 광범위하다. 베팅은 확률을 생각하고,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의 믿음을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일이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불확실한 상황과 선택의 순간에 놓이며, 그 결정에 따라 삶의 양상이 크게 달라지기도 하니, 인생이 곧 베팅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저자는 포커 선수들과 게임이론의 지혜를 바탕으로, 모든 결정의 순간에 베팅하듯 생각해 볼 것을 권한다. 그렇다고 자기위주편향이나 의도적 합리화 같은 결정의 방해물들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의 믿음을 가다듬고 확률적 사고를 통해 정확성을 추구하는 것은 노력할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습관을 들이면 우리는 결과에 상관 없이 언제나 좋은 결정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 가장 완전하게 만든 MOOMIN
    필립 아다, 프랭크 코트렐 보이스 (지은이), 토베 얀손 (원작), 김옥수 (옮긴이) | 사파리 | 2018년 8월 "무민의 모든 것!"

    세상에서 제일 코가 크고 철학적인 '동화 속 주인공'은? 귀여운 생김새와 친절한 마음, 축제와 모험을 즐기는 낙천적인 성격, 전세계적으로 수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무민 가족의 모든 비밀을 파헤친다. 영국 작가 필립 아다와 카네기 상을 수상한 시나리오 작가 프랭크 코트렐 보이스의 방대한 자료 수집을 통해 완성된 이 책은, 캐릭터 분석의 진수를 보여주며 무민을 이해하기 위한 완벽한 안내자가 되어 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운 무민 세계로 들어가는 방법은 두 가지. 하나, 무민 골짜기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생명체와 그곳에서 벌어지는 마법 같은 일들에 대해 공부한다. 둘, 핀란드를 대표하는 대중문화 예술가의 길을 걸었던 토베 얀손의 매혹적인 발자취를 따라가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고스란히 작품 속에 녹여 낸 화가로 잘 알려진 토베 얀손은, 정치적 견해를 뚜렷하게 드러내며 시대와 호흡한 독립심 강하고 대담한 예술가이기도 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 태어난 그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며 재능을 키워 나갔는지, 누구와 교류하고 어떻게 영감을 얻어 자신만의 그림 스타일을 완성했는지 한 편의 영화처럼 풀어냈다. 사랑스럽고 개성 넘치는 <무민 가족>의 역사를 아름다운 일러스트와 진귀한 도판, 매력적인 사진과 함께 만나볼 수 있는, 무민의 모든 것을 집대성한 박물관이라 할 만하다.

    <무민 가족> 이야기에는 사랑과 우정, 자유로움으로 충만했던 토베 얀손의 삶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한 위대한 예술가를 만든 상상력의 원천과, 예술이 우리 삶에 필요한 이유에 대해 들려주는 이 책은 평범하고 소박한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는 이들에게 충분한 격려와 위안이 되어 줄 것이다. 무민을 좋아하는 팬들에게도 무민과 이제 막 친구가 되려는 사람들에게도 이보다 더 완전한 선물은 없을 것이다.

  • 도덕의 기원
    마이클 토마셀로 (지은이), 유강은 (옮긴이) | 이데아 | 2018년 8월 "도덕이 없다면, 인간은 인간일까?"

    인간만이 도덕을 갖추었다고 말하기에는 오늘날 인간의 삶이 그다지 아름답지 못한 듯하다. 생물학이 밝혀낸 지식으로 보아도 인간만이 도덕을 갖추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서로 돕고 보듬는 모습은 인간 아닌 동물에게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협력을 도덕으로 볼지 말지 역시 남아 있는 문제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도덕만이 변화에 발맞춰 혹은 변화를 만들며 진화해왔다는 데 있다.

    세계적인 영장류학자 마이클 토마셀로는 인간과 가까운 영장류와의 비교를 통해 인간의 도덕이 가진 고유한 특성을 설명하고, 이 고유한 인간의 협력이 어떻게 도덕을 낳고 진화해왔는지 분석한다. 순수한 협력에서 시작된 '공감의 도덕'이, 이에 참여하는 여러 개체의 요구를 반영하여 균형점을 찾는 '공정의 도덕'으로, 나아가 서로 다른 이들과 섞이며 다층적인 집단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 객관성과 공정성을 갖춘 '정의의 도덕'이 등장하기까지, 도덕이 걸어온 길 위에서 인류의 방향을 되짚으며, 인류에게 도덕이 무엇인지, 도덕과 인류가 서로를 어느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할지 성찰하게 만든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성공적으로 이어온 도덕의 진화가 어디로 이어질지, 기대 반 걱정 반이다.

8.312018
  •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
    유발 하라리 (지은이), 전병근 (옮긴이) | 김영사 | 2018년 9월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인류 3부작 완결"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를 잇는 유발 하라리의 인류 3부작 완결편이다. <사피엔스>에서 “인류의 과거를 개관하면서 하찮은 유인원이 어떻게 지구 행성의 지배자가 되었는지” 돌아보았고, <호모 데우스>에서는 “생명의 장기적인 미래를 탐사하면서, 어떻게 인간이 결국에는 신이 될 수 있을지”를 내다보았다면, 이번에는 “지금, 여기의 문제에 주목”하며 ‘현생 인류’가 곧 맞닥뜨려 돌파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나름의 해답을 제시하는 시도다.

    무려 21가지에 이르는 과제와 제언은 크게 다섯 가지 흐름으로 이루어진다. 우선 오늘날 가장 강력하게 삶과 사회를 뒤바꾸는 기술의 도전 그리고 이런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정치의 도전을 다루고, 그 속에서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발견한다. 문제는 다음부터다. 문제와 해법을 발견하고 찾아낸다 해도, 이것이 진실, 즉 함께 가야 할 길인지 확인하고 공유하는 과정이 가능하겠느냐는 물음이다.

    결국 이야기는 '나'로 돌아온다. "우리는 누구인가? 인생에서 무엇을 해야 하나?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는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누구도 풀지 못한 숙제가 다시금 우리 앞에 놓였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호모 사피엔스로서 이 문제를 고민할 수 있는 마지막 인류일지도 모르겠다. 신이 되고 나면 재미도 의미도 없을 문제일 테니 말이다. 모쪼록 이 순간을 즐기며 21가지 의제를 70억 개의 의제로, 21가지 해법을 70억 개의 해법으로 만들어가길 바랄 따름이다.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산사 순례
    유홍준 (지은이) | 창비 | 2018년 8월 "산과 절을 뗄 수 없듯, '답사기'와 산사도 한 몸"

    한국에서는 산과 절을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산에 가면 응당 절을 만나게 된다. 그래서 ‘산사’가 하나의 단어이자 의미로 여겨진다. 익숙해 당연히 여긴 풍경이지만, 같은 불교 문화권이라 해도 일본, 중국과는 다른 고유한 모습이라, 올해 산사 일곱 곳을 묶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했다 하니, 그 산이 그 산, 그 절이 그 절이라 여기며 쉽게 지나치곤 했던 숱한 산사들이 하나씩 머릿속에 다시 떠오른다.

    생각해보니 중학생 때 ‘답사기’를 읽고 찾아간 영주 부석사를 시작으로 순천 선암사, 고창 선운사, 부안 내소사까지, 그간 만난 산사들은 대개 유홍준의 ‘답사기’와 함께했던 기억이다. 마침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 맞춰 그간 다룬 남북의 산사 20여 곳을 다시 모아 새로운 '답사기'로 펴내니, 본격적인 산사 순례에 나설 반가운 계기가 되어줄 듯하다. "어쩌면 산사가 있기에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가능했는지도 모른다."는 겸양에 더해, '답사기'가 있었기에 산사를 만났다는 나만의 추억을 덧붙여 본다.

  • 매스커레이드 나이트
    히가시노 게이고 (지은이), 양윤옥 (옮긴이) | 현대문학 | 2018년 8월 "히가시노 게이고, 가면무도회 추격전"

    미궁의 살인 사건을 수사하던 경시청에 밀고장 한 통이 도착한다. 살인범이 사흘 후 도쿄 특급 호텔의 새해 카운트다운 파티장에 나타난다는 것. ‘매스커레이드 나이트’로 불리는 이 행사에 수백 명의 참가자가 가면과 코스튬 차림으로 모인다는 소식을 접수한 경찰은 잠입 수사를 결정하고, 몇년 전 같은 호텔에서 발생한 사건을 담당했던 닛타 팀이 재소환된다. 호텔 투숙객의 안위를 지키려는 호텔리어와 가면을 벗기려는 형사의 대결 구도 속에, 다양한 투숙객들이 벌이는 소동이 맞물리면서 수수께끼로 가득한 가면무도회의 막이 오른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호텔 추리 수사극으로 돌아왔다. 작가 데뷔 25주년 기념작 <매스커레이드 호텔>(2011년), 문예지 '다 빈치' 선정 올해의 책 1위로 선정된 <매스커레이드 이브>(2014년)에 이은 '매스커레이드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다. 인간 본성이 무엇인지 깊게 파고드는 작가 특유의 주제의식이 돋보이며, 군더더기 없는 단문이 주는 흡인력이 빛을 발한다. 2019년 <매스커레이드 호텔>이 기무라 타쿠야와 나가사와 마사미 주연 영화로 개봉할 예정으로 현지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 우아한 밤과 고양이들
    손보미 (지은이)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8월 "“고양이 좋아하세요?” 손보미 소설집"

    "그는 이런 삶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일까 봐 두려웠다" (<대관람차> 中) 딱히 흠잡을 데 없이 흘러가는 삶을 지닌 사람들에게 별안간 질문 하나가 던져진다. "고양이 좋아하세요?" (<무단 침입한 고양이들> 中) 올이 두어 개 풀린 외투를 입은 것 같은 삶, 어딘가 잘못됐지만 그럭저럭 흘러간다. 그 삶의 균열을 포착해 질문을 던지는 작가 손보미가 두번째 소설집을 통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누구인지, 이를테면 '고양이를 좋아하는 그런 종류의 인간'이 맞는지.

    <그들에게 린디합을>, <디어 랄프 로렌> 손보미 소설집. 젊은작가상 수상작 <임시교사>, 한국일보문학상 <산책> 등의 작품이 실렸다. 헤어진 여자친구의 집을 무단침입하는 고양이들, 밤마다 외출을 나가는 아버지, 별안간 눈물이 멈추지 않는 소설가. '모든 고양이는 언제나 무단 침입하는 존재들' 인것처럼, 일상의 균열도 그렇게 별안간 찾아온다. 그 여백을 어떻게 마주할 수 있을까. 국적을 가늠할 수 없는 문장들, 손보미다운 재치는 여전하다. 평행우주를 넘나드는 독특한 서사, 린디합처럼 산뜻한 문장으로 묘사하는 삶의 풍경들, 그 자신의 삶의 풍경 속으로 독자를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