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뉴스 전문 포털 <제이피뉴스> 문화부 기자로 일본 최신 트렌드를 비롯해 패션, 쇼핑, 맛집, TV 등의 기사를 담당했다. 감각적이고 분석적인 기사로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현지에서도 큰 호응을 얻었다.
저자의 인생이 바뀐 것은 일본어를 잘하는 중국인 남편을 만나고부터이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성공한 저자는 레나라는 이름의 예쁜 딸을 낳고 일본에서 기르기 시작했다. 이 책은 한국 엄마가 일본에서 딸을 기르며 몸소 겪고 느낀 ‘일본 엄마의 힘’을 기자 특유의 관찰력과 저널리즘으로 풀어낸 자녀교육 에세이이다.
중국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나 다문화 가정에서 크고 있는 레나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풀어낸 일본 엄마들의 자녀교육 이야기는 네이버 포스트에 출간 전 연재되며 많은 한국 엄마들의 사랑과 공감을 얻어냈다.
저자는 일본에서 10년째 살고 있다. 현재 한국어 강사로 활동하며 한국을 알리는 데 일조하고 있다. 객관적 정보를 전달하는 ‘기자’보다는 독자들과 소통하는 ‘작가’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와 앞으로도 계속 독자들과 만나고 싶은 것이 꿈이다.
지은 책으로는 《모리걸과 초식남의 세상, 도쿄》 등이 있으며 네이버 블로그에서 <한중일 라이프>를 운영하고 있다.
나는 일본에서 중국인과 만나 결혼했다.
일본에 온 지 얼마 안 돼 일본어를 거의 못하던 내게 한국인 친구가 그를 소개해주었다. 한국에 관심 많은 중국 남자아이가 있는데, 말하는 것이 정말 귀여우니까 다 같이 놀자고 했다.
정말 듣던 대로 그는 한국에 관심이 많았고, 어설프지만 한국어를 알아듣고 “내가 니 시다바리가?”라며 부산 사투리로 받아칠 줄도 알았다. 나는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전자사전을 찾았다. 전자사전 화면을 통해 대화를 주고받으며, 일본에 온 지 오래돼 일본어에 능통했던 그에게 배우기도 하며 점점 친해졌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다. 전철이 끊겼고, 도로가 주차장이 되었다. 슈퍼마켓과 편의점의 음식물이 다 떨어졌다. 많은 친구들이 한국으로 돌아갔고, 그와 나도 걱정하는 부모님 때문에 잠시 돌아갔다 왔다. 일상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기분, 우리는 그런 시간들을 함께 보내며 얼마 남아 있을지 모를 미래를 함께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전까지 나도 내가 국제결혼을 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막상 결심을 하니 뭐 그렇게 대단한 일도 아니었다. 사랑엔 국경도 없다더니 눈에 콩깍지가 씌자 이문화에 대한 걱정보다 기대감이 더 컸다. 물론 보수적인 부모님을 설득하는 것이나 한국어를 일본어로, 다시 일본어를 중국어로 바꿔가며 대화를 나누던 상견례, 비행기를 타고 오가며 진행된 두 번의 피로연과 결혼식 등 과정은 결코 순조롭지 않았지만 결혼에 골인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언어나 문화의 장벽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금도 시부모님은 물론 남편에게도 100퍼센트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없지만 그 대신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을 읽을 수 있게 됐다. 결혼 4년차인 지금은 시부모님과 말이 안 통해서 오히려 좋지 않으냐는 진담 반 농담까지 말할 여유가 생겼다.
중국인 남편과 한국인 아내의 소박한 도쿄 생활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우리에게도 아기라는 천사가 찾아온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일본 관련 기사를 써오며 일본 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고 자부하던 터였다. 하지만 임신을 계기로 내가 이제까지 안다고 생각했던 일본은 극히 일부였음을 깨달았다.
엄마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본은 또 다른 세상이었다. 이제까지 눈에 들어오지 않던 엄격한 일본 엄마들, 밖에서는 활발하고 실내에서는 얌전해지는 일본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일본 교육 제도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아이 관련 용어를 처음으로 배웠고, 일본 아이들을 보며 훈육을 고민했다.
아울러 이제까지 차갑다고 생각했던 일본인들이 아이가 있다는 이유로 나에게 먼저 다가왔다. 어딜 가나 양보를 해주고 덕담을 해주고 말을 걸어 왔다. 이제까지 늘 이방인이었던 내가 마침내 일본 사회에 한 발 들어선 느낌이었다.
일본의 기초 교육을 배우며 성장하는 아이와 함께 나도 자라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일본인들의 육아는 참으로 답답하고 인내를 요하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건강하고 씩씩하게 스스로의 힘을 키우는 일본 교육에 감탄 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내가 직접 일본에서 아이를 키우며 발견한 일본의 육아와 교육, 문화와 가정교육 등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직접 경험하지 못한 부분이 많이 있지만, 3년여 간의 일본 기자 생활과 4년 이상 계속해온 한국어 강사 일을 통해 많은 일본인을 만나고 인터뷰하며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글을 쓸 수 있었다.
보통 한국 사람들이 일본 교육에 갖는 긍정적 이미지는 아이들이 예의 바르고, 질서를 잘 지키고, 장인 정신으로 한 우물을 파고, 노벨상 수상자를 많이 배출했다는 점 등일 것이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반면에 왕따, 히키코모리, 등교 거부, 아동 학대, 청소년 범죄 등 어두운 면도 많이 있다. 그래서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일본의 육아와 교육을 바라보기 위해 노력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일본은 여전히 선진국이고, 매력적인 동아시아 관광 대국이다. 동시에 아시아 최고의 노벨상 수상자 배출국이며, 세계에서 손꼽히는 과학 강국이다. 무조건 본받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본 교육에서 얻을 교훈이 있고, 힌트가 있다면 선입견 없이 받아들이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내 이웃 블로거인 한국에 사는 일본 엄마의 한마디가 작은 힌트를 주었다. “저를 포함해 제 주변의 일본 엄마들은 적어도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아이 키우기는 한국이 좋다고 말해요. 일본에서는 일하지 않으면 어린이집에도 보낼 수 없으니까요.”
나는 충격을 받았다. 많은 한국 엄마들은 한국이 아이 키우기 힘든 나라라고 말한다. 왜 우리는 스스로 한국이 육아에 부적합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걸까?
우리가 경쟁적으로 그런 나라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책에서도 나오지만, 한국 엄마들은 일본 엄마들과 비교해 전혀 뒤처지지 않고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자녀를 아끼고 보살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한국 엄마들이 자녀 교육에 자신 없어 하고, 자신은 좋은 엄마가 아니며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는 한국 엄마들이 이 책을 보고 한숨 돌리며 스스로를 돌볼 여유를 찾길 바란다. 우리 모두가 좋은 엄마이자 현명한 아내, 멋진 여성으로서 자신만의 삶을 개척할 수 있기를 바라며….
2015년 12월
일본 도쿄에서, 안민정
일본은 대개 조용하다. 번화가가 아닌 주택가에 들어서면 사람 사는 동네가 맞나 싶게 조용할 때가 많다. 앞차가 빨리 출발하지 않아도 클랙슨을 울리는 사람이 없고, 길거리에 포장마차가 없어 밤늦게 시끌벅적할 일도 없다. 일본 주택가에서 신경 쓰이는 소음이라면 오토바이의 엔진 소리나 재활용품 수거차의 안내 방송 정도다.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조용함에 놀란다. 가장 대중적인 교통수단인 전철을 타면 알 수 있는데, 누구도 큰 소리로 떠들지 않는다. 일본 전철 안에서는 휴대폰 통화 금지가 기본적인 매너다. 같이 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도 다른 승객한테 방해가 되지 않는 수준이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신문은 8분의 1 크기로 접어서 읽어야 하고, 2015년 법이 완화되긴 했으나 노약자석 근처에서는 전자파를 우려해 휴대폰을 꺼내지도 못하게 한다. 그 때문에 가끔 깔깔거리며 웃고 떠드는 여고생 무리가 타거나 시끌벅적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전철을 타면 살짝 눈살을 찌푸리는 어른들이 있을 정도다.
철도가 발달한 일본에서 전철은 시민들의 발이나 다름 없다. 2013년 JR동일본 조사를 살펴보면 도쿄 신주쿠역의 1일 이용객은 75만 명 이상이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역으로 기네스북에 올랐을 정도다. 많은 시민들이 이용하는 만큼 눈에 보이지 않는 매너나 규칙이 존재한다. 도쿄에서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때는 왼쪽이 서서 가는 사람, 오른쪽은 걸어서 빨리 올라갈 사람 줄이다. 전철이 도착하기 전에 사람들은 문 양쪽으로 1줄 혹은 2줄로 선다. 내리는 사람이 먼저 내리고 탈 사람은 그 후에 타야 한다.
전철에서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을 때도 음량이 커서 음악이 흘러나오면 주의를 받는다. 휴대폰을 진동으로 해두는 것을 깜빡 잊고 전화 소리가 울리면 휴대폰 주인은 흠칫 놀라며 당황해서 전원을 끈다. 서울의 전철에서처럼 음악을 틀고 칸마다 이동하며 물건 파는 장사꾼이나 금전적 도움을 요구하며 돌아다니는 사람도 없다. 샐러리맨들은 급한 전화가 걸려온 경우에도 “제가 지금 전철 안입니다. 내려서 연락드리겠습니다”라고 속삭이듯 말하고 재빨리 전화를 끊는다. 사회 전체적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조용히 해야 한다는 의식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아주 어린 아이들도 전철을 이용하는데 왜 이렇게 조용할 수 있을까. 참으로 이상하다. 아기들은 원래 한 곳에서 오랫동안 있는 것을 참지 못하고 마음에 안 들면 언제든 울음을 터트리는 존재 아닌가. 그런데 일본의 전철 및 공공장소에서 아이들은 크게 소란을 피우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어린 아이들이 전철을 이용하는지 의식하지 못할 정도다.
실제로 나는 엄마가 되기 전까지 일본의 어린 아이들이 전철을 이용한다고 느낀 적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직장인인 내가 전철을 타는 것은 출퇴근 시간뿐인데, 그렇게 붐비는 시간에는 어린 아이들이 탈 확률이 적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리 아이와 엄마에게 친절하다 해도 만원 전철에 유모차를 끌고 타는 것은 모두를 불편하게 하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임산부의 전철 이용 및 엄마들의 유모차 이용에 대해서는 일본 내에서도 오랫동안 열띤 토론을 벌여왔다. 이들을 우선 보호해줘야 할 것인지, 일반 승객의 편의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과거에는 전철 안에서 유모차를 펼치고 있으면 왠지 눈치가 보여 접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고, 가끔 유모차를 둘러싸고 싸움을 벌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2014년 3월 일본 국토교통상은 “여러 가지 위험성을 고려해 전철 안에서 유모차를 펼쳐놓고 타도 된다”라는 지침을 발표했다. 이후 아이를 유모차에 태운 채 전철을 타는 부모가 많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유모차에는 짐을 싣고 아이는 서서 가게 하는 엄마도 적지 않다. 아무리 그래도 출퇴근시간에 유모차를 펼친 채 전철을 타는 엄마들은 드물지만 말이다.
일본 전철 안에서 아이 소리가 안 들리는 이유는 아이가 울면 일단 내려서 아이를 진정시킨 후 다시 타는 엄마들이 많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가 전철을 탔을 때 아기띠를 한 엄마가 전철 문 근처에 서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조용하던 아기가 잠에서 깼는지 울기 시작했다.
아이가 점점 더 목청을 높이자 전철 안의 사람들은 힐끔힐끔 한 번씩 눈길을 주었고, 조용하던 차량에 아기 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기 엄마는 약간 당황한 듯하더니 이내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다. 그 엄마의 도착 역이 거기였는지는 모르지만 황급히 내리는 그의 모습에 나는 조금 놀랐다. 급한 전화가 왔을 때도 전철에서 빨리 내려 통화를 하는 일본 사람들은 아기가 울 때도 재빨리 내려 다른 사람을 방해하지 않는구나 하고 감탄했다. 아기와 엄마가 내리자 전철 안은 다시 조용해졌고, 승객들은 당연하다는 듯 자기 일에 열중했다.
전철 안뿐만 아니다. 일본은 동네 마트에서나 병원, 쇼핑몰에서도 소란을 피우는 아이가 많지 않은 편이다. 아이가 소란을 피우면 즉각적으로 저지하거나 밖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나는 많은 일본인에게 언제부터 조용히 해야 한다는 걸 배웠는지 물어봤다. 그런데 모두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주의를 받았다고 대답했다. 말귀가 통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일본 엄마들은 “타인에게 폐가 되니까 조용히 해라”는 말을 달고 산다.
아이들은 밖에서 엄격하게 주의를 받지만, 집에 돌아와서도 인근 주민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도록 소음에 주의해야 한다. 뛰거나 소리를 질러서 층간 소음이 나지 않도록 조심하고, 부모들은 아기 울음소리에도 주의를 한다.
우리 아이가 아직 갓난아기였을 때, 나는 울더라도 제대로 된 수면법을 가르치겠다며 야심차게 아기를 데리고 침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이를 침대에 내려놓고 3분 울면 안아주고 5분 울면 안아주는 실험을 했더니, 남편이 놀라서 “아기한테 뭐 하는 짓이냐. 이웃집에 폐가 된다”며 아이를 안아 재웠다.
남편은 10대 때부터 일본에서 살아 일본 문화를 나보다 훨씬 잘 이해하는 편이다. 어떤 때는 중국 사람이 맞나 싶게 일본적인 꽉 막힌 사고를 할 때도 있다. 결국 남편 말대로 이웃집을 생각해서 울리는 수면법은 시도도 못하고 끝나버렸다. 그렇지만 실제로 아기 울음소리 때문에 이웃 간에 문제가 생기거나 이사를 가라는 통지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상식 있는 사람들은 아기가 밤낮없이 울어대도 참고 좀 더 성장하길 기다리지만, 어떤 사람은 민감하게 반응해 신고를 하기도 한다.
일본은 목조 주택이 꽤 많아서 방음이 전혀 되지 않는 곳도 있다. 그래서 아기를 낳으면 좀 더 방음이 잘 되는 콘크리트 맨션으로 이사를 가기도 한다. 만약 맨션에서 층간 소음 등 이웃 간에 문제가 생기면 당사자들은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관리 회사를 통해 서면으로 항의문을 발송한다.
내 지인은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관리 회사에서 날아온 경고문을 받았다. 경고문은 “당신 집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자유이지만 연기가 옆집으로 날아와 고통을 주고 있으니 주의하는 것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지인은 “관리 회사에 투서를 보낼 정도면 차라리 초인종을 누르고 한 번 이야기해줬으면 좋았을 텐데”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층간 소음 문제일지라도 당사자들끼리 얼굴 붉히며 감정싸움을 하기보다는 회사를 통해 압박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 육아 전문 사이트 ‘마미’에서는 ‘아기 울음소리 대처법’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그 기사에 따르면 아기 울음소리가 이웃집에 피해가 되지 않도록, 우선 이웃집을 찾아가 “곧 아이를 출산하는데 시끄러울 것 같아서 미리 인사드리러 왔다”며 양해를 얻으라고 한다. 그리고 아기가 태어난 후에도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평소에 시끄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정도의 인사를 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또 이웃집과 인접한 벽 쪽에는 책장을 놓고, 아이가 울면 창문은 물론 환기구까지 잘 닫으라고 조언한다.
일본 아이들도 많이 운다. 소리 내서 엉엉 울고 바닥에서 뒹구는 아이도 간혹 있다. 그렇지만 그런 아이가 있으면 주변 어른들이 함께 아이를 달래거나 해서 상황을 빨리 종료시킨다. 특히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정이 많아서 그냥 넘어가지 않고 말 한마디라도 꼭 챙겨주는 것 같다. 일본의 조용함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노력해 지켜가는 규율에서 비롯된 것이다.
맞벌이 부부가 늘고 있는 일본에서는 어린이집 대기 아동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여성의 경력 단절이나 아이를 혼자 두고 나가는 엄마도 있어서 아동 학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일본에서 내가 보육원에 당첨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유치원 시작 전인 만 0세부터 만 2세까지는 가장 경쟁률이 치열하고, 만 0세에 들어가지 않으면 결원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나는 적어도 아이 첫돌까지는 집에서 키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적당한 시기에 보육원에 들어갈 확률은 희박했다. 그래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보육원 ‘대기’를 걸어두어야 했고, 학기가 시작하는 4월에 백일 된 아기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인기 많은 인가 보육소는 맞벌이 부부, 다자녀 가정, 한부모 가정 등이 들어가기 유리하지만 우리는 조부모가 해외에 있고 육아를 도와줄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게 유리하게 작용했던 것 같다. 보결 1순위로 운 좋게 들어간 구립 보육원. 그러나 외국인 엄마가 아이를 보육원에 보내는 것은 끝없는 미션의 연속이었다.
보육원에 들어가기 전 간단한 면접이 있었다. 혹시 면접에서 잘못될까 봐 잔뜩 긴장해서 출산 후 불은 몸을 정장 안에 쑤셔 넣고 아기와 함께 보육원을 찾아갔다. 보육원은 만 0세부터 5세까지 100명 넘는 아이들이 다니는 시설이었다. 만 0세만 해도 15명 정도 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면접장은 아기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면접 내용은 아이의 생활 패턴과 주의점 등에 대한 것이었는데 100여 개가량의 질문에 응답을 해야 했다.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는가 분유를 먹이는가, 젖병을 쓴다면 어떤 젖병을 쓰고 있나, 이유식은 시작했다면 어떤 알레르기가 있나, 밤잠은 잘 자나, 자주 가는 병원은 어디인가 등 아기에 대한 자세한 조사를 시작했고 외국인인 우리 아이의 이름을 어떻게 불러줘야 하는지 물었다. 아이는 영문으로 등록을 해서 공식적으로 영문 이름을 써야 했는데, 나는 일본식 한자어로 불러도 괜찮다고 대답했다.
면접이 끝나자 이번엔 보육원 준비물 설명을 들으러 갔다. 보육원 준비물은 프린트로 나눠줬는데 목록부터 사이즈, 필요한 시기까지 꼼꼼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아이 이불보, 이불 가방, 신발주머니와 연락장 커버 등은 크기와 재봉 방식이 정해져 있어 직접 만들어야 했다. 기성품을 사도 되냐고 물어보니 크기가 정확히 일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불보에 달린 똑딱이 단추 갯수는 물론 모든 아이 물건에는 천을 덧대어 이름 쓰는 칸을 만들어야 했다. 아이가 가지고 다니는 모든 물건에도 이름을 써야 했다. 손수건 한 장, 종이 기저귀 한 장까지 이름 쓰는 곳이 정해져 있었다.
준비물이 너무 많고 어려워서 인생 최대의 숙제를 떠안은 기분이었다. ‘아니, 공립 보육원은 일하는 엄마를 위한 시설이라더니 신경 쓰이는 일들을 왜 이렇게 시키는 거야.’ 처음에는 기가 막혀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하소연을 했다. 천을 끊어다가 손바느질로 이불을 만드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고, 갑자기 재봉틀을 사자니 자신도 없었다. ‘대체 일본 엄마들은 이걸 다 어떻게 만드는 거지?’ 고민하다가 결국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찾다 보니 나온 희망의 검색어. ‘보육원 이불 세트’, ‘보육원 이불 수예’ 등등. ‘직접 만들지 않고 사는 엄마들도 있구나’ 싶어 안심이 됐다.
나는 괜찮아 보이는 수예점을 찾아 이불과 가방을 주문하고 나머지 어려운 준비물들도 물어 물어 준비해 겨우 기한을 맞출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보육원 준비물 만들기는 정말 어려운 과제였다. 연락장 노트까지 천으로 덧대 커버를 씌우는 게 이해가 안 됐지만, 몇 년이 지나서 보니 이것 또한 그들만의 노하우가 담긴 지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육원은 만 0세부터 5세까지 최대 6년 동안 다니는 시설이다. 6년 동안 사용할 물건이라고 생각하면 가볍고 튼튼하고 다른 아이들 것과 구별하기 쉽게 만들어야 하는 건 당연하다. 매주 빨래를 해도 닳지 않고 선생님들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실용적이고 규격화되어야 한다. 아기일 때는 아직 모르지만, 친구들을 의식하기 시작하면 장신구 하나에도 싸움이 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준비물에는 튀는 장신구를 달아서도 안 된다.
집단 생활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유실물 방지를 위해 속옷 한 장, 양말 한 짝에까지 이름을 쓰는 것도 당연했다. 내 아이가 기저귀를 몇 장 썼는지 명확히 세고,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더러운 기저귀까지도 다 회수해서 가져와야 했다.
그런데 이런 수고로움은 보육원뿐만 아니라 유치원에 가서도, 초등학교에 가서도 계속된다. 모든 준비물은 규격화되어 있고, 이름 쓰는 곳까지 정해져 있다. 준비물은 3년, 6년 쓸 마음으로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 크레파스 색깔 하나하나마다 이름을 붙이고, 사인펜 뚜껑과 펜에 각각 이름을 붙이는 등 매뉴얼대로 준비물을 마련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여성이 임신을 하면 축하 선물로 재봉틀을 선물한다. 아이가 어느 기관에 속하자마자 시작되는 규격화한 준비물을 만들기 위해서다. 아무리 재봉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아이한테는 엄마가 직접 만들어주는 것이 제일 좋다’라는 사회 분위기가 강하기 때문에 재봉틀을 잡을 수밖에 없다.
유치원에 가면 ‘이거 우리 엄마가 만들어줬다’가 아이의 자랑거리이기 때문에 아이를 위해서라도 재봉틀은 필수다. 요즘 같이 바쁘고 인터넷 클릭 한 번으로 주문 배송이 가능한 시대에도 많은 일본 엄마들은 천을 사고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한다. 자수로 아이 이름을 새기기도 하고, 아이가 기뻐할 것을 상상하며 캐릭터를 장식하기도 한다. 이 소소한 일들이 전부 엄마의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겨울에 일본에 다녀온 사람들은 도쿄의 묘한 풍경에 대해 입을 모아 신기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한겨울에도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이다. 서울만큼이야 춥지 않지만, 그래도 영하로 떨어지는 기온인데 얇은 반바지에 맨다리로 거리를 누비고 뛰어노는 초등학생들을 보면 한국 어른들은 “아이고, 다리 시리겠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기 때문이다.
초등학생뿐만이 아니다. 유치원생도 한겨울에 양말 한 켤레를 신을 뿐이고, 여자 중고등학생 또한 한껏 접어 입은 짧은 교복 스커트에 맨다리로 거리를 활보한다. 어릴 때는 부모님이 내복을 입히고, 중고등학생 때는 파카에 아래는 체육복을 한 겹 더 껴입은 채 등교하던 내 학창시절과는 거리가 먼 모습에 일본 생활 10년 차인 나 역시 위화감을 느끼곤 한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우리 아이가 일본 보육원에 처음 들어갔을 때다. 꽃샘추위가 매서운 4월 초였다. 아직 난방이 필요하고 두꺼운 겨울옷을 입고 다니던 때였는데, 보육원에서 아이에게 긴팔 내복, 솜옷, 뜨개옷 등을 입히지 말라고 했다. 게다가 보육원 안에서는 양말을 금지한다며 신고 있던 것도 벗겨버렸다. 우리 아이는 그때 겨우 백일을 넘긴 터였다. 한국에서는 따뜻한 보일러 방에서 누비 내복에 양말을 신고 지냈는데, 일본에 오자마자 저런 꼴이 되다니. 앙상한 맨발을 보고 돌아오던 길, 아기에게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났다.
일본 보육원에서는 전체적으로 좋은 생활 습관과 교육을 실시한다고 생각하지만, 겨울 옷차림과 양말만큼은 처음부터 받아들이기 어려워 타협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일본 보육원은 1년 내내 아이를 맨발로 지내게 했다. 아직 기지도 못하는 아기 때부터 걷고 뛰고 소풍을 가는 나이까지 아이는 몇 번의 겨울을 차가운 맨발로 지냈다. 몰래 양말을 신겨 데려가도 바로 벗기기 일쑤였다. 어느 해부턴가는 한겨울에 실내용 덧신을 준비해달라고 해서 신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그냥 맨발로 지냈다. 그러는 사이 아이도 맨발에 완벽히 적응한 것 같았다. 집에서 양말을 신기면 답답한지 바로 벗어버리기 일쑤고, 차 안에서도 신발이며 양말을 자꾸 벗으려 했다.
도쿄의 놀이방에 가도 마찬가지다. 크건 작건 아이가 놀이방에 들어가려면 양말을 벗어야 한다. 보육원에서와 마찬가지로 놀이방에서 양말을 신으면 미끄러져 다치기 쉽다는 게 이유다. 실제로 실내에서 양말을 신기면 기어오르고 내려오고 뛰어노는 아이들에게 때로 위험 요소가 되기도 한다. 흘러내리거나 벗겨져 미끄러질 수 있고, 다른 아이까지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 양말에는 미끄럼 방지 고무를 덧댄 것도 많다. 미끄럼 방지 고무가 있으니 괜찮지 않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다른 아이들도 양말을 신지 않고 있으니 그렇게 하세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일본에서 아이들에게 맨발을 추천하는 이유는 또 있다. 아이들은 손과 발을 통해서 체온을 조절하기 때문에 되도록 꽁꽁 감싸지 않는 편이 좋다고 한다. 그리고 발바닥을 자극하면 뇌 발달에 좋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 맨발 교육으로 유명한 일본 야마나시 현의 한 유치원생들의 평균 지능은 한 살 위 아이들의 수치와 같았다고 한다. 발바닥을 자극하면 자율신경이 발달하고 대뇌의 활동을 높여 지능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또한 평발을 예방할 수 있고, 운동신경 발달에도 도움을 준다고 해 많은 유치원과 보육원에서 맨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한겨울에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계절을 직접 피부로 느끼면서 단련시킬 필요가 있고, 어릴 때는 기본적으로 활동량이 많고 대사가 좋아서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추위를 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한겨울에도 활동하기 편리한 반바지를 입히고, 상의 역시 두껍고 보온성 좋은 소재는 피한다. 얼음이 어는 한겨울에도 아이들의 실내복은 반팔 속옷 한 장과 티셔츠 한 장이다. 긴팔 내복과 두꺼운 옷을 입고 있으면 조금만 움직여도 땀을 흘리는데, 두꺼운 소재는 땀을 흡수하지 않아 오히려 감기에 걸리기 쉽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아이의 보육원에서도 한겨울에 면 소재의 반팔 혹은 민소매 속옷 한 장에 면 소재 티셔츠 한 장을 입힌다.
한국보다는 덜 추워서 이런 옷차림이 가능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일본의 겨울은 뼈속이 시릴 정도다. 음습한 기운이 집 안을 떠돌고, 난방은 대부분 히터에서 나오는 따뜻한 바람뿐이어서 훈훈한 느낌이 전혀 없다. 히터에서 나오는 바람은 피부를 건조하게 하기만 할 뿐 코끝과 손발은 얼음장처럼 차갑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일본 사람들은 집 안에서 두꺼운 양말을 신고 유니클로 히트테크와 파카를 입고 고타쓰라 부르는 따뜻한 식탁에 앉아 지낸다.
그런데 아이들은 맨발도 모자라 반바지에 반팔 속옷이라니…. 머릿속으로는 이해를 하지만 여전히 신기하게만 느껴지는 일본의 겨울 풍경이다.
가끔 아이를 보육원에 보내지 않고 내가 키웠으면 어떻게 자랐을까 상상해볼 때가 있다. 아기 때부터 보육원에 다니지 않았더라면 우리 아이는 감기를 달고 살거나 전염병에 걸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한국어를 지금보다 훨씬 잘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