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소개 오스 힐먼 ( Os Hillman )
우리는 축소지향적으로 살도록 세상의 유혹을 받는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보다 훨씬 더 작게 살도록, 혹은 아예 그분의 뜻에서 벗어나도록 강요당한다. 이 책에서 오스 힐먼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합당한 삶에서 그리스도인들을 탈선시키려는 사탄의 계획이 있다는 걸 알려준다.
밝히기 힘든 그의 과거를 고백하며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여러 장애물에 대해 언급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 위해 그것들을 어떻게 깨뜨리고 나아가야 할지 명쾌하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매번 같은 곳에서 넘어지면서도 원인을 찾지 못해 좌절하는 많은 이들이 문제의 근원을 깨달을 수 있도록 생생한 그의 경험과 저명한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통해 세밀하게 돕는다. 또한 영적 성장에 장애가 되는 것들을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거절의 두려움은 버리고 ‘상처 받을 용기’로 담대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스 힐먼은 일터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체험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도와주는 탁월한 일터 사역자이다. 현재 마켓플레이스 리더 재단(Marketplace Leaders Foundations)과 아슬란그룹 출판사(Aslan Group Publishing)의 대표이고, 《결정의 책》, 《하나님의 터치》(규장), 《하나님의 타이밍》, 《일터 사역》(생명의말씀사) 등 10여 권의 책을 썼다.
역자 배응준은 규장 전문번역위원으로 2012년 한국기독교출판협의회 ‘올해의 역자상’을 수상했다. 총신대학교 신학과와 신대원을 졸업했으며, 20여 년 동안 100여 권의 신앙서적을 번역했다. 대표적인 역서로는 필립 얀시의 《하나님, 은혜가 사라졌어요》와 카일 아이들먼의 《제자는 행동한다》, 테리 홀의 《성경 파노라마》 등이 있다.
추천의 글
나는 여러 해 전에 우리 인생의 목적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합당한 삶을 훼방하는 영적인 싸움이 매일 벌어진다는 걸 깨달았다. 사탄과 사악한 영들은 “성도 안에서 하나님의 기업”을 하나님께로부터 강탈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 하나님의 기업은 성도 안에 있다. 당신과 내 안에 있다.
바울은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알게 되기를 구합니다”(엡 1:18)라고 기도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과 내가 죄의 용서와 영원한 생명을 받을 때뿐만 아니라 이 땅에 두신 우리에게 이루라고 명하신 목적을 우리가 제대로 이루어드릴 때 그분의 기업을 온전히 받으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미워하는 사탄이 가장 바라는 건 무엇일까? 장차 이 땅에서 당신의 삶이 끝날 때 하나님을 조롱하면서 “하하! 이 성도한테서는 아무 기업도 받지 못하셨군요. 이 사람은 이 땅에서 90년을 살았지만 하나님께서 이루라고 명하신 목적을 전혀 이루지 못했습니다”라고 비웃는 건 아닐까.
반대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건 무엇일까? “잘했도다, 내 자녀야! 네 인생을 향한 목적을 이루었고, 내 자녀로서 합당한 삶을 살았구나. 끝까지 달음박질하여 내가 명한 소명을 이루었구나. 나는 네 삶을 통해 내 기업을 온전히 받았다”라고 말씀하시는 거라고 생각한다.
사탄은 하나님에게서 그분이 당신에게 받아 마땅하신 기업을 강탈하고, 당신에게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는 합당한 삶을 강탈하고 싶어 한다. 따라서 사탄과 어둠의 나라는 당신이 인생을 시작하는 시점부터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특히 사탄은 모든 것이 취약한 유년기에 우리를 속인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 사탄은 무가치함, 부적당함, 불안함, 버려짐 같은 어둠의 메시지를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집어넣으려고 우리가 가장 신뢰하는 부모와 환경을 빈번히 이용한다. 어린아이가 자신이 무가치하고, 부적당하고, 늘 혼자이며 그 누구도 자기의 필요를 채워주지 않을 거라고 느끼면, 아이의 정신과 정서에 엄청난 두려움과 불안과 동요가 일어난다. 그러면 아이의 육체는 자신의 정신과 정서에 가짜 안도감과 평온함을 선사하려고 무엇인가를 하기 시작한다.
성경은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히 4:10)라고 말한다. 나는 사탄이 어떤 사람의 유년기에 정서적인 상처를 마음에 집어넣어 두렵고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지속시키면, 그가 성인이 되어서도 내적으로 쉬지 못하고, 자신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거나 결핍을 채우려고 애쓴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럴 때 사탄은 그의 마음을 이용하여 인생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도록 매우 계획적으로 훼방한다. 그래서 당신이 내적으로 쉬지 못하면서 삶에 가치를 부여하거나 필요한 것들을 채우려고 바쁘게 일하는 한, 하나님께서 당신을 통해 일하실 수가 없게 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사탄에게 속는 ‘기만의 유형’과 ‘자기 파괴적인 성격 장애의 유형’에 대해 기술한다. 그런 현상은 정확히 정신적, 정서적 차원의 내적인 쉼이 부족해서 나타나는 것들이다. 우리가 이런 상태에 처하면 사탄과 어둠의 나라는 우리 안에 숨겨진 장애물을 알지 못하게 막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게 훼방하려고 계속 이러한 전투를 수행한다.
이 책은 당신의 삶의 어떤 영역에서 사탄이 어떻게 은밀하게 당신을 속여서 파괴적인 삶을 살게 하는지를 매우 명확하게 알게 해줄 것이다. 또한 저자가 밝히는 진실은 단순한 이론이나 가르침이 아니라 그가 살면서 깨닫고, 지금도 여전히 삶에 작용하고 있는 것임을 알게 해줄 것이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12장에서 사탄과 어둠의 나라를 이기는 것에 관해 “우리 형제들이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11절)라고 했다. 오늘날 성경에서 배운 원칙을 가르치면서 만족하는 교사들은 많지만 믿음의 길에서 체험한 개인적인 싸움과 승리와 실패를 기꺼이 털어놓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의 삶의 장애물을 극복해온 여정에 관해 매우 진솔하게 말한다.
이 책의 강점은 성경의 원칙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그가 믿음의 길에서 부딪친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싸움을 했는지 솔직하게 간증한다.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지만, 특히 자신의 역량과 그간에 성취한 일 뒤에 숨어서 진솔한 모습을 감추는 리더들에게 강력히 권하고 싶다.
하나님께서 이 책에 담긴 진리를 사용하시어 당신이 인생의 목적을 이루고, 그분의 자녀로서 합당한 삶을 사는 걸 막으려고 사탄이 설치해놓은 장애물들을 알게 하셔서 그것으로부터 당신을 자유롭게 해주시기를 기도드린다.
- 크레이그 힐, 국제가족재단(FFI) 대표
저자의 말
장애물을 넘어
자유한 삶을 위하여
가장 큰 선물
“25년에 걸친 연구 결과, 부부들이 직면하는 문제의 약 98퍼센트가 각자 11세 미만에 겪었던 유년기의 상처가 원인이라고 밝혀졌다.” -폴 헥스트롬(Paul Hegstrom, 가정폭력 치유 사역자)1)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근거 자료와 내 경험을 곰곰이 생각한 후에 그것이 옳다고 확신했다. 인간에 대한 사탄의 공격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시작된다. 아기가 어머니 배 속에 생겼을 때부터 사탄은 공격하려고 애쓴다. 심지어 낙태를 통해 생명을 앗아가려고도 한다. 예수님과 모세가 태어났을 때도 그랬다.
사탄의 강령이 무엇인지 아는가? 요한복음 10장 10절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파괴하는 거라고 말한다. 사탄이 당신을 태어날 때 죽이지 못했다면 어떻게든 유년기에 치명적인 상처를 주려고 애쓸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수치와 학대, 방치와 거부로 인해 혹은 부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해 심각한 결핍을 갖고 성장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좋은 소식이 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소식이다(요 8:32). 사탄이 우리 영혼에 어떤 상처를 주었든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해방시키시고 치유하실 수 있다.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사 61:1)
내가 40년 넘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오면서 깨달은 게 있다. 내 진짜 마음을 발견하고, 도둑질하고 죽이고 파괴하는 사탄의 술책에 넘어간 내 행동의 근본 원인을 밝히려면 반드시 벗겨내야 하는 게 있다. 바로 내 삶에 켜켜이 쌓인, 세대를 통해 전해진 견고한 진이다.
그것은 종종 유년기에 받은 상처를 통해 인생의 초기에 형성된다. 그러한 상처는 성인이 된 우리의 삶에 인간관계의 충돌, 온갖 중독, 상처 받은 마음을 보호하려는 고립된 생활 방식 등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그것들이 본격적으로 드러날 때에야 비로소 그 상처를 다룰 수 있다. 해결되지 않은 과거의 아픔은 관계의 갈등, 서툰 의사소통, 심지어 사랑할 줄 모르는 태도를 열매로 맺는다.
그런 상태로 영혼의 원수와 벌이는 합법적인 영적 전투에 가담하면 어떻게 될까? 우리의 삶을 도둑질하고, 죽이고, 파괴하는 게 유일한 목표인 원수와의 격렬한 싸움에서, 우리는 자폭(自爆)의 순간을 향해 더 가까이 다가가는 시한폭탄이 되고 만다. 그렇다고 어떤 한 행동만을 교정하는 건 상처에 반창고를 대는 것일 뿐이다. 그 상처의 원인을 발견해내야 비로소 진정한 치유를 받을 수 있다.
나는 자신의 내면을 기꺼이 들여다보기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 원수는 우리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와 심지어 하나님과의 관계까지도 망치는 파괴적인 삶의 방식을 깨지 못하도록 진리를 계속 은폐한다. 이와 관련하여 내가 개인적으로 겪은 아픔과 그간에 깨달음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 당신이 원수의 그런 술책을 간파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의 삶이 위태로워지며, 그분이 우리의 삶에 의도하신 목적을 절대 이룰 수 없다.
나는 파괴된 우리 삶의 방식을 개선하지 못하도록 진리를 끊임없이 은폐하려는 사탄의 술책을 알아내기 위해 이 여정을 시작하려고 한다. 그전에 한 가지 주의 사항을 말하겠다.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다. 이 땅에 살았던 인간 중에서 인생의 1안대로 살아간 이는 예수님뿐이시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 인생의 2안과 3안을 그분의 1안으로 바꾸어주신다. 예수님은 구속의 하나님이시다.
오랜 기간 사역을 하면서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그 일에 다른 사람들이 관련되어 있으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신다. 결국 선택은 사람들의 몫이기에 옳지 않은 선택이 있을 수 있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하나님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정의하게 하는 순간, 그들을 우리 삶의 신(神)과 우상으로 만들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가 직시해야 할 게 있다. 타인에게 마음을 다친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잘못보다는 우리의 잠재력을 주시하신다. 그분은 기드온에게 “큰 용사여”(삿 6:12)라고 말씀하셨다. 당시 그는 어떤 의미로도 큰 용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삶이나 현재의 상태가 아니라 장차 변화될 수 있는 그의 모습을 주목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참된 모습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바라보아야 한다.
과거에 상처 받은 걸 창피하게 여기면서 성취를 통해 인정받으려고 애쓰면 과거에 계속 갇히게 된다. 마음을 다친 사람은 그 아픔과 실망에 발이 묶여 상처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잃는다. 또 그런 노력 자체가 승산 없는 싸움이라고 결론짓기도 한다. 그런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그의 삶에 강력하게 일하시기 전까지 치유가 일어나기 어렵다.
물론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한 사람은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람도 자신의 행동의 뿌리를 발견하면 변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을 다친 사람 중에는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상대방에게 실수를 통해 변화될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단지 무언가를 성취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고,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쓴다. 그러나 성취는 더 많은 속박을 낳는다.
반면 무조건적인 사랑은 잘못을 저지른 상대방을 변화시킬 수 있는 진정한 자유와 성취로 이끈다. 스스로 피해자라 여기는 사람들 중에는 승리를 얻기 직전에 이런 사랑을 포기하여 결국 늘 바라던 걸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이들이 더러 있다.
미식축구에서 점수를 얻기 가장 어려운 공격 지점이 터치다운(touchdown, 공을 가지고 상대편의 골 라인을 넘는 일 또는 거기서 얻는 득점)을 1미터쯤 남겨놓은 지점이라고 한다. 동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기 마련인 것처럼.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무조건적 사랑’이다. 우리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내게 상처를 주었을 때에도 그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그가 변화를 향해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도록 해줄 수 있게 된다. 물론 무조건적 사랑일지라도 적절한 경계선이 설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자신에게 아픔을 줬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용서하지 않아서 계속 과거에 얽매여 있는 경우를 많이 봤다. 그들은 해결되지 않은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상대방과의 관계를 통제하고 조종하여 관계가 회복되는 걸 막는다. 또한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 안에서도 하나님께서 매우 강력하게 일하실 수 있다는 걸 믿지 않고 스스로 계속 피해자로 남는다.
용서와 책임의 균형
거라사 지방의 귀신들린 사람의 이야기는 구속(救贖)의 이야기다. 어떤 사람에게 귀신이 가득 들어가 있었다. 먼저 그 이야기를 읽어보자.
그들이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
예수께서 육지에 내리시매
그 도시 사람으로서 귀신 들린 자 하나가 예수를 만나니
그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
예수를 보고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려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 하니
이는 예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사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귀신이 가끔 그 사람을 붙잡으므로
그를 쇠사슬과 고랑에 매어 지켰으되
그 맨 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나갔더라)
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신즉
이르되 군대라 하니 이는 많은 귀신이 들렸음이라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마침 그곳에 많은 돼지 떼가 산에서 먹고 있는지라
귀신들이 그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허락하심을 간구하니
이에 허락하시니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그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호수에 들어가 몰사하거늘
치던 자들이 그 이루어진 일을 보고 도망하여
성내와 마을에 알리니
사람들이 그 이루어진 일을 보러 나와서 예수께 이르러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치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귀신 들렸던 자가 어떻게 구원받았는지를 본 자들이
그들에게 이르매 거라사인의 땅 근방 모든 백성이
크게 두려워하여 예수께 떠나가시기를 구하더라
예수께서 배에 올라 돌아가실새
귀신 나간 사람이 함께 있기를 구하였으나
예수께서 그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셨는지를 말하라 하시니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셨는지를
온 성내에 전파하니라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음이러라
(눅 8:26-40)
오늘날의 마약 중독자, 환각제 남용자, 동성애자,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들 혹은 가족을 등한시하는 일중독자가 이 이야기의 귀신들린 사람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거라사 지방의 그 사람에게는 귀신이 가득 들어가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가 회복될 수 있다는 걸 의심하지 않으셨다.
지금도 여전히 귀신에게 제어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해방되게 하려면 하나님께서 그를 회복시켜주실 수 있다는 걸 얼마나 굳게 믿어야 할까? 그리고 우리는 어떤 지점에서 포기하게 되는 걸까?
예수님은 인간인 우리에게 가망이 없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포기하기로 결심할 때, 우리는 그의 인생에 있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판사와 배심원 노릇을 하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면 우리도 그렇게 될 거라고 말씀하신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마 7:1,2)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온갖 신실하지 못한 것 앞에서 신실함을 보여주신다. 그것이 그분의 본성이다.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의 나를 향한 사랑과 헌신은 내 성취나 성공이 아니라 그분께 반응하는 내 마음에 따라 좌우된다. 우리가 죄인의 삶에서 수행해야 할 가장 중대한 과제이자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특권은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어주신 것같이 그분을 위해 우리의 삶을 내어드리는 것이다.
예수님은 간음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정죄하는 사람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라고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는 건 교만과 독선의 극치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무너진 성벽의 틈을 막고 서라고 우리에게 명하셨다(겔 22:30). 우리의 삶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거라사 지방의 귀신들린 사람에게도 아마 가족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회복되었을 때 돌아갈 아내나 가족이 남아 있었을까? 아내는 이미 떠나버리지 않았을까?
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타이밍을 기다리지 못한다. 우리의 삶에 고통을 안겨준 사람들 안에서 하나님께서 실로 놀라운 일을 행하실 때까지 기다리는 대신에 우리만 옳다는 독선적인 태도로 피해자가 되기를 선택한다. 우리의 교만은 “나는 충분히 기다렸어. 그 사람에게 충분히 기회를 주었어!”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중에야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회복시켜주실 수 있다는 걸 신뢰하지 못하고 그를 버리고 떠났기 때문이다. 그가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도 않을 만큼 절망적인 상태라고 잘못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과거의 삶이나 현재의 행동을 근거로 우리를 정의하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미래를 보시며,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가는지를 주시하신다. 물론 사람은 자기 행동에 적절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은혜와 책임의 균형, 용서와 책임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
특히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용서와 치유뿐만 아니라 기꺼이 우리와 관계를 맺으면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용서와 치유가 필요한 죄인이라는 깊은 깨달음도 필요하다.
그리고 내 마음을 아프게 한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용서해야 한다. 나를 용서하지 않고 사랑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과거의 상처를 수치스러워하며 성취를 통해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쓴다면 과거에 계속 속박될 것이다. 하지만 나와 상대방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용서한다면 예수님을 더 닮아갈 수 있는 자유를 얻을 것이다.
만약에 다윗이 이런 진리를 깨닫지 못했다면 불륜을 저지른 살인자로 평생 감옥에서 지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셨다(다윗의 약점 중 대부분이 어린 시절의 상처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다윗은 엄청난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것을 통해 배웠다.
잠언에 나오는 “어리석은 자”(1:22,32)는 분명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것에서 배우는 게 있었다. 그가 바로 다윗이다. 성경을 기록했던 어떤 사람도 자신의 삶에 관해 다윗만큼 많은 장(章)을 쓰지는 못했다. 그는 무려 70장이 넘게 썼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인간의 성취가 아닌 마음을 보신다.
이 책에 쓴 내용은 내 삶의 개인적 차원에서 큰 영향을 끼친 것들이다. 당신의 인생의 모든 장애를 극복하는 자유를 체험하고, 당신을 처참하게 좌절시켜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획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는 사탄의 계략을 간파할 수 있으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깨닫게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Chapter 01
거부에서 수용으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통해 마음의 장애를 극복하라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눅 19:10)
“하나님께서 세상만사를 통제하신다는 걸 믿습니까?”
청중들에게 강연할 때 이런 질문을 하면 절반 이상이 믿는다고 호응하면서 손을 번쩍 든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제하시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어디에나 계시고, 무엇이든지 원하시는 때에 행하실 수 있으며 궁극적인 의미에서 만사를 주관하신다. 또한 성경은 “여호와께서 그가 기뻐하시는 모든 일을 천지와 바다와 모든 깊은 데서 다 행하셨도다”(시 135:6)라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통해 일하기로 결정하셨다. 이는 이 땅의 일 가운데 많은 것들이 인간이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고 기도하면서 협력할 때만 이루어진다는 걸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이 땅에 제한된 권세만을 펼치신다. 왜 그럴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권세를 인간에게 위임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시고, 아담과 하와도 창조하셨다. 당시 세상에는 죄가 없었고, 그분과 인간의 관계는 완벽했으며,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들이 그분과의 관계를 통해 충족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땅에 대한 지배권을 아담과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