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Things Mentally Strong People Don’t Do:
Take Back Your Power, Embrace Change, Face Your Fears,
and Train Your Brain for Happiness and Success
by Amy Morin
First published by William Morrow, an imprint of HarperCollins Publishers
Copyright © 2014 by Amy Morin
All rights reserved.
Korean Translation Copyright © 2015 by The Business Books and Co., Ltd.
This translation is published by arrangement w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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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유혜인
경희대학교 사회과학부를 졸업했다. 글밥 아카데미 수료 후 바른번역에서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며, 언제나 마음이 담긴 번역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교황 연대기》 (공역), 《유령 호텔》, 《빅토리아 시대의 불행한 결혼 이야기》 등이 있다.
나는 상처받지 않기로 했다
나는 상처받지 않기로 했다
1판 1쇄 인쇄 2015년 3월 24일
1판 1쇄 발행 2015년 3월 31일
지은이│에이미 모린
옮긴이│유혜인
발행인│홍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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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위해
노력하는 모든 이들에게
스물세 살 되던 해, 나는 하루아침에 엄마를 잃었다. 뇌동맥류였다. 엄마는 어디 아픈 곳 하나 없이 열심히 일하며 활기차게 살고 있었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삶을 사랑한 분이었다. 나는 돌아가시기 바로 전날 밤 엄마를 만났다. 농구장에서 함께 고등학교 농구 대회를 구경하는 동안 엄마는 언제나처럼 즐겁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러나 24시간 후 엄마는 이 세상에 없었다. 엄마를 잃은 충격은 너무도 컸다. 더 이상 엄마에게 조언을 얻지도, 엄마가 웃는 소리를 듣지도, 엄마의 사랑을 받지도 못한다고 생각하니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눈앞이 깜깜했다.
당시 지역 정신건강센터에서 심리치료사로 일하고 있던 나는 몇 주간 휴가를 내서 조용히 슬픔을 감당하기로 했다. 내 감정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겠는가? 나는 엄마 없는 삶에 익숙해져야 했다. 쉽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다시 일어서려고 했다. 심리치료사 공부를 할 때, 시간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며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상처의 치유 속도가 달라진다고 배웠다. 고통을 덜어내려면 슬픔을 피할 수 없었기에 나는 한껏 슬퍼하며 분노했고, 엄마가 돌아가시며 내가 진정 무엇을 잃었는지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그리움이 전부는 아니었다. 엄마가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은퇴를 하거나 할머니가 되는 것처럼 엄마가 손꼽아 기다렸던 순간들을 함께 맞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찢어졌다. 나는 가족과 친구들의 도움 속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엄마를 떠올려도 슬퍼하지 않고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몇 년이 지나 엄마의 3주기가 다가오자 나는 남편 링컨과 가장 좋은 추모 방법이 무엇일지 의논했다. 마침 친구들이 토요일 저녁에 같이 보자던 농구 경기가 엄마를 마지막으로 본 농구장에서 열리고 있었다. 링컨과 나는 3년 전 엄마를 마지막으로 봤던 곳에 다시 가면 어떻겠냐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엄마를 추모하기에 그만한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엄마와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나게 웃으며 수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엄마는 동생이 남자 친구와 결혼할 것이라는 예측도 했다. 그리고 훗날 그 예측은 사실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농구장을 다시 찾았고 친구들과 즐겁게 놀았다. 엄마도 그러기를 원했을 것이다. 다시 그곳에 가도 아무렇지 않은 나 자신이 대견했다. 그러나 엄마의 죽음을 극복했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 순간, 내 인생은 다시 한 번 거꾸로 뒤집어졌다.
링컨이 농구 경기를 보고 집에 와서는 등이 아프다며 투덜댔다. 몇 년 전 교통사고로 척추뼈가 부러진 적이 있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불과 몇 분 후, 링컨은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신고를 받고 급히 도착한 구급대원이 링컨을 병원으로 옮겼다. 링컨의 가족도 연락을 받고 응급실에 모였다. 대체 무슨 문제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우리는 잠시 응급실 내 대기실에서 기다리다 진찰실로 불려갔다. 나는 의사가 입을 떼기도 전에 어떤 말이 나올지 짐작할 수 있었다. 링컨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엄마의 3주기를 맞은 그 주말에 나는 남편을 잃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링컨은 이제 겨우 스물여섯 살이었고 단 한 번도 심장에 문제가 있었던 적이 없다. 조금 전까지 여기 있던 사람이 어떻게 다음 순간 사라질 수 있단 말인가? 아직 엄마 없는 삶도 익숙하지 않은 내가 남편 없이 살아가는 법까지 배워야 했다. 어떻게 해도 이 상황을 극복하지 못할 것 같았다.
배우자를 잃은 사람은 비현실적인 경험을 한다. 나는 판단력이 완전히 흐려진 상태로 너무도 많은 결정을 내려야 했다.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장례식을 준비하고 부고를 어떻게 낼지 정해야 했다.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 받아들일 여유는 없었다. 제정신을 차리기도 힘들었다.
다행히 많은 사람이 힘을 보태주었다. 슬픔을 극복하는 과정은 온전히 당사자의 몫이지만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은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조금씩 괜찮아지는가 싶다가도 어김없이 괴로움에 휩싸이는 날도 있었다. 슬픔을 잊을 만하다고 생각하며 한 걸음 나가면 감당하지 못할 더 큰 슬픔이 나를 기다렸다. 이렇듯 슬픔은 사람의 몸과 마음, 영혼을 피폐하게 만든다.
슬퍼할 일이 너무 많았다. 링컨의 가족이 링컨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았기에 그의 가족을 생각하면 슬펐다. 링컨이 영영 경험하지 못할 모든 일이, 우리가 앞으로 함께하지 못할 모든 일이 슬펐다. 그리움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복직을 최대한 미루었다. 일을 나가지 않은 몇 달은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해서인지 별다른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영원히 쉴 수는 없었다. 이제 혼자 생계를 꾸려야 하기에 나는 다시 일을 해야 했다.
휴직하고 몇 달이 지났을 때, 센터에서 언제쯤 돌아올 계획이냐는 연락이 왔다. 센터 측에서는 내가 급한 집안일 때문에 당분간 자리를 비운다고 고객들에게 알렸지만 어떻게 될지 몰라서 정확한 복직 시기는 얼버무린 상태였다. 그러나 이제는 내 대답이 필요했다. 나는 아직 슬픔을 다 비우지 못했고 ‘회복’은 어림도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는 직장으로 돌아갈 때였다.
나는 엄마를 잃었을 때처럼 슬픔과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다. 외면하거나 억지로 밀어낼 수는 없었다. 아프더라도 그 감정을 견디고 내 힘으로 슬픔을 치유해야 했다. 비관적인 감정에 파묻힌 채로 살 수는 없었다. 자기 연민에 빠지거나 과거의 기억에 얽매인 채 사는 편이 차라리 쉬웠겠지만 그래 봤자 나만 손해였다. 아무리 힘들어도 정신을 차리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야 했다.
나는 링컨과 함께 세운 목표가 여전히 내 목표일 수 있을지 생각해봤다. 우리는 몇 년 전에 아이를 위탁해 돌본 적이 있고 언젠가는 입양도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혼자된 몸으로 아이를 입양한다고 생각하니 망설여졌다. 이후로도 몇 년은 급한 사정이 있을 때 위탁모로서 아이를 잠깐씩 맡았지만 링컨 없이도 아이를 입양하고 싶은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제 나만을 위한 목표가 필요했다. 나는 용기를 내어 새로운 도전을 했다. 오토바이 면허를 따고 오토바이를 샀다. 글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취미였던 글쓰기가 어느덧 부업으로 변했다. 링컨의 친구 중 누구와 계속 연락할지, 링컨 없이 그의 가족과는 어떻게 지낼지 결정한 뒤 인간관계도 정리해야 했다. 다행히 링컨의 친구들은 대부분 나와 우정을 이어나갔고 시댁도 여전히 나를 한가족처럼 대해주었다.
그로부터 4년 후, 나는 운 좋게도 사랑을 다시 찾았다. 아니, 사랑이 나를 찾아왔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때 나는 싱글로서의 삶에 나름대로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나 스티브와 사귀면서 모든 것이 바뀌었다. 몇 년 동안 알고 지내던 우리는 차츰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했다. 그러다 함께 미래를 꿈꾸기 시작했다. 다시 결혼하리라고는 생각도 안 했었지만 스티브와 함께라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링컨과의 결혼식을 어설프게 따라 하는 예식이나 피로연은 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 결혼식을 올린다면 내 쪽 하객이야 무척 기뻐하겠지만 링컨을 기억하는 이들은 가슴 아플 것 같았다. 우울한 결혼식을 원하지 않았던 나는 평범한 결혼식은 하지 말자고 스티브와 의견을 모았다. 우리는 두 사람의 사랑과 행복만을 생각하며 라스베이거스에서 약식 결혼을 했다. 조촐했지만 더없이 행복했다.
결혼하고 1년쯤 지났을 때, 링컨과 함께 살던 집을 팔고 그곳에서 몇 시간 떨어진 곳으로 이사했다. 동생과 조카들 가까이에서 살며 새 삶을 시작할 기회였다. 나는 병원에 취직해 바쁘게 일했고 스티브와 행복한 미래를 꾸려나갈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인생이 아름답다고 느낀 그 순간, 스티브의 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으며 행복은 다시 저만치 달아났다.
처음에 의사는 치료만 잘하면 몇 년은 암이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자 몇 년은 고사하고 다음 해도 넘기지 못할 만큼 병이 깊어졌다. 몇 가지 항암 치료를 했지만 전부 허사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조금도 차도가 없자 의사들은 당혹스러워했다. 7개월 후에는 시도할 치료법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소식을 듣자 누군가 내 머리를 망치로 내리치는 느낌이 들었다. 평소 아버님은 굉장히 기력이 넘치는 분이었다. 아이들을 보면 귀에서 동전을 꺼내는 마술을 할 정도로 장난기가 많았고, 입담이 뛰어나서 이야기를 정말 재미있게 해주곤 하셨다. 아버님은 미네소타 주에, 우리는 메인 주에 멀리 떨어져 살았지만 자주 왕래했다. 은퇴 생활 중인 아버님은 한 번 방문하면 몇 주씩 우리 집에 머물렀고 그럴 때면 나는 가장 좋아하는 손님이 왔다며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누구보다 내 글을 좋아했던 아버님은 주제가 자녀 교육이든 심리학이든 내가 쓰는 글이라면 팬의 입장으로 빠짐없이 읽고, 틈틈이 전화로 조언하며 글감도 전해주셨다.
연세가 일흔둘이었지만 아프기에는 너무 젊게 살던 분이었다. 돌아가시기 바로 전 여름에도 오토바이로 전국일주를 하고 슈피리어 호(북아메리카 5대호 중 하나로 세계에서 가장 큰 담수호 ― 옮긴이)에서 요트를 타셨다. 컨버터블 자가용의 지붕을 열고 시골길에서 드라이브도 하셨다. 그러나 지금은 중병으로 누워 있고 의사들은 병세가 더 심해질 일만 남았다고 확신했다.
이번은 내가 과거에 죽음을 마주했던 방식과 달랐다. 엄마나 링컨 때는 갑작스러워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버님의 경우는 앞으로 겪을 일을 미리 알 수 있었기에 두려움이 엄습했다.
나는 ‘또 시작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또 누군가를 잃고 감당 못할 슬픔을 겪고 싶지 않았다. 불공평했다. 왜 나만 이토록 사랑하는 사람을 많이 잃어야 한단 말인가? 나는 책상에 앉아서 내 현실이 얼마나 부당하며 앞으로 얼마나 더 힘들어질지 생각했다. 정말로 이 상황을 바꾸고 싶었다.
다시 예전처럼 슬픔에 빠져 허우적대기는 싫었다. 처음 겪는 일도 아니니 전에 그랬듯 다시 괜찮아질 것이다. 어리석게 내가 처한 상황이 다른 사람보다 불행하다고 믿거나 슬픔을 견디지 못할 것이라 생각해봤자 아무 소용없었다. 현실만 직시하지 못할 뿐이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멘탈이 강한 사람은 하지 않는 열세 가지’라는 목록을 만들었다. 내가 고통으로 몸부림치면서도 그 틈에 나오지 못하게 억누르고 억눌렀던 습관들이었다. 여기에 한 번 사로잡히면 회복하기가 정말 힘들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평소 나는 상담 고객들에게도 그런 습관을 주의하라고 조언했다.
나 자신이 올바른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려면 내 손으로 직접 적어야 했다. 강한 멘탈을 스스로 선택하고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런 식으로 잊지 말고 새겨두어야 했다. 그리고 나는 강해져야 했다. 그 목록을 쓰고 몇 주 후 아버님이 끝내 눈을 감으셨기 때문이다.
심리치료사는 더 나은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조언해 고객에게 힘을 실어주는 직업이다. 하지만 나는 심리치료사의 직함을 잠시 내려놓고 멘탈을 강하게 키우는 습관을 쭉 적어보았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에 초점을 맞추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물론 좋은 습관도 중요하다. 그러나 사람은 나쁜 습관 때문에 잠재력을 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좋은 습관을 다 가져도 나쁜 습관을 버리지 못하면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최악의 습관은 그 사람의 거울이라고 하지 않던가?
나쁜 습관은 하루 종일 땅에 끌고 다니는 무거운 족쇄나 다름없다.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으니 피곤하고 짜증만 난다.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재능 있는 사람도 그런 생각과 행동, 감정에 얽매이면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한다.
매일 체육관에 가겠다고 결심한 남자가 있다. 그는 두 시간 가까이 운동을 하고 변화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어떤 운동을 했는지 기록한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지만 변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체중이 줄어들지 않고 근육도 붙지 않자 남자는 좌절한다.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을 했는데 왜 몸이 날씬해지거나 가뿐해지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가족과 친구들에게 한탄한다. 그러나 남자가 계산에서 빠뜨린 사실이 하나 있다. 날마다 운동을 하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간식을 즐긴다는 것이다. 그는 운동을 마친 후 배가 고파지면 ‘열심히 운동했잖아. 이 정도면 상을 받을 만하지!’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도넛을 열 개씩 먹는다.
다들 그가 어리석다고 손가락질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그런 실수를 한다.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실수에는 관심이 없다.
내가 말하는 열세 가지 습관은 슬픔을 극복하는 과정 외에도 도움이 된다. 이 습관에서 벗어나면 멘탈을 강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강한 멘탈은 우리가 살면서 겪는 크고 작은 문제에 대처할 때 꼭 필요하다. 멘탈이 강하다고 느껴야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사람의 멘탈은 무조건 강하지도, 무조건 약하지도 않다. 모든 사람은 어느 정도 멘탈의 힘을 갖고 있고 얼마든지 그 이상 계발할 수 있다. 강한 멘탈을 만들려면 어떤 상황에서든 감정을 조절하고 생각을 다스리며 긍정적으로 행동하는 능력부터 길러야 한다.
상대적으로 체력을 더 쉽게 키우는 사람이 있듯이 어떤 사람은 강한 멘탈을 타고난다. 멘탈을 쉽게 키울 수 있는지 판단할 때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요인이 있다.
• 유전 - 정서 장애와 같은 정신 건강 문제에 더 취약한 유전자가 있다.
• 성격 - 더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행동하는 성격이 있다.
• 경험 - 살면서 어떤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자신과 타인,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진다.
물론 이 요인 중 일부는 바꿀 수 없다. 불행한 유년 시절은 지우지 못한다. 유전적으로 타고난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도 바꾸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멘탈을 키우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자기계발 훈련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면 누구나 멘탈을 강화할 수 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심하게 긴장을 하는 남자가 있다. 그는 긴장하고 싶지 않아서 웬만하면 직장 동료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먼저 말을 하지 않으니 동료들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남자는 휴게실에 들어가거나 복도에서 사람들과 마주칠 때 아무도 말을 걸지 않자 ‘나는 사회성이 없나 봐.’라고 생각한다. 자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니 다른 사람에게 말을 붙이기는 더욱 두려워진다. 불안감이 커지자 동료를 피하고 싶은 마음도 커진다. 결국 남자는 영원히 돌아가는 쳇바퀴에 스스로 갇혀버린다.
멘탈을 이해하기 전에 사람의 생각과 행동, 감정이 전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두어야 한다. 이 세 가지는 대개 함께 작용해서 위의 이야기와 같은 악순환을 만든다. 따라서 멘탈을 강화하려면 세 갈래로 나누어 접근할 필요가 있다.
• 생각 - 비이성적인 생각을 객관적인 생각으로 바꾼다.
• 행동 -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행동한다.
• 감정 - 감정에 통제당하지 않도록 내가 감정을 통제한다.
우리는 ‘낙천적으로 행동하라.’는 말을 시도 때도 없이 듣는다. 그러나 낙관론만으로는 잠재력을 최대로 발휘할 수 없다.
나는 뱀을 몹시 무서워한다. 하지만 내 뱀 공포증은 이성적인 생각과 거리가 멀다. 내가 사는 메인 주에는 야생 독뱀이 한 마리도 없기 때문이다. 어쩌다 뱀을 보면 가슴이 쿵 내려앉으면서 전속력으로 도망치고 싶어진다. 하지만 보통은 달아나기 전에 극심한 공포를 가라앉히고 감정의 균형을 잡을 수 있다. 나는 뱀을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며 마음을 달랜다. 일단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걸어서 그 옆을 지나갈 수 있다. 물론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한 말이다. 지금도 나는 뱀을 만진다거나 키우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최소한 비이성적인 공포로 하루를 망치지 않고 가던 길을 갈 수는 있다.
사람은 이성적인 생각으로 감정의 균형을 잡을 때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결정을 내린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을 때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잠시 생각해보자. 논리가 아니라 감정에 치우쳐서 후회할 말과 행동을 할 것이다. 물론 이성적인 생각만으로 최선의 결정이 나오지는 않는다. 우리는 로봇이 아니라 인간이다. 가슴과 머리가 함께 몸을 움직여야 한다.
내 상담 고객 중에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 행동을 통제하는 게 가능하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그들은 “내 감정을 나도 어떻게 못하겠어요.”, “머릿속이 비관적인 생각으로 가득해서 떨쳐낼 수 없어요.”, “목표를 이루고 싶다는 의욕이 도무지 생기지 않아요.”라고 한다. 그러나 멘탈이 강해지면 전부 가능한 일이다.
멘탈에 대한 오해와 진실
멘탈에 관해 잘못 알려진 정보와 오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금부터 멘탈을 둘러싼 진실을 알아보자.
• 거칠게 행동한다고 해서 멘탈이 강해지지는 않는다 - 멘탈을 강하게 키운다고 로봇처럼 행동하거나 겉모습을 강하게 꾸밀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 감정을 무시한다고 해서 멘탈이 강해지지는 않는다 - 멘탈을 강화하겠다고 감정을 억누를 필요는 없다. 그 대신 자신의 감정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감정이 어떻게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주는지 해석하고 이해해야 한다.
• 몸을 기계처럼 다룬다고 해서 멘탈이 강해지지는 않는다 - 고통을 견디는 능력을 증명하려고 몸을 한계치까지 몰아붙여도 멘탈은 강해지지 않는다. 강한 멘탈을 원한다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언제 그 생각과 감정에 반대할지, 언제 귀를 기울일지 판단해야 한다.
• 도움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멘탈이 강해지지는 않는다 - 강한 멘탈을 원한다면 나 혼자서 해답을 찾지 못할 때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하고 나보다 강한 존재에게서 힘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 긍정적인 생각만 한다고 해서 멘탈이 강해지지는 않는다 - 지나치게 긍정적인 생각은 지나치게 부정적인 생각만큼 해롭다.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생각해야 멘탈이 강해진다.
• 행복하려 노력한다고 해서 멘탈이 강해지지는 않는다 - 멘탈이 강해지면 삶은 더 만족스러워진다. 그러나 매일 일어나서 행복을 억지로 느끼려 한다고 멘탈이 강해지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 멘탈은 최신 심리학 트렌드가 아니다 - 건강 분야에 온갖 다이어트 요법과 운동이 유행하듯 심리학 분야에도 최상의 자아를 찾는 방법이 밀물처럼 나왔다가 썰물처럼 사라지지만 멘탈은 한순간의 유행이 아니다. 심리학계는 이미 1960년대부터 생각과 감정, 행동을 바꾸는 법을 연구하고 있다.
• 멘탈과 정신 건강은 별개다 - 의료계에서는 정신 건강과 정신 질환을 대비해 이야기하지만 멘탈은 차원이 다르다. 당뇨병 같은 질병을 갖고도 체력이 강인한 사람이 있는 것처럼,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같은 정신 건강 문제가 있어도 멘탈이 강한 사람이 있다. 정신 질환이 있다고 그 사람의 습관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그럼에도 건강한 습관을 키울 수 있다. 더 많이 도전하고 집중하고 노력해야겠지만 불가능은 없다.
인생이 잘 풀릴 때는 멘탈이 강하다고 느끼기 쉽다. 그러나 살다 보면 어려움에 처하는 때도 있다. 일자리를 잃기도 하고 자연재해로 피해를 입기도 한다. 가족이 병에 걸리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일도 언젠가는 겪어야 한다. 하지만 멘탈이 강하다면 이러한 시련이나 위기의 순간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다. 다음은 멘탈이 강해졌을 때 얻는 이점들이다.
•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멘탈은 위기 상황뿐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도움이 된다. 문제를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고 전반적인 스트레스 수치도 줄어든다.
• 삶의 만족도가 높아진다. 멘탈이 강해지면 자신감도 커진다.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행동하니 마음이 평온해지고 자기 인생에서 무엇이 진정 중요한지 깨닫는다.
• 더 큰 성과를 낸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든 직장에서 일을 잘하고 싶든 운동선수로서 좋은 결과를 내고 싶든 간에 멘탈이 강해지면 잠재력을 최대치로 발휘할 수 있다.
어떤 운동 종목에 관한 책을 많이 읽는다고 뛰어난 운동선수가 될 수 없으며, 다른 음악가의 공연을 자주 본다고 실력이 늘어 일류 음악가가 되지는 않는다. 연습도 필요하다.
이제부터 펼쳐질 13장의 내용은 내가 이렇게 행동하는지, 행동하지 않는지 확인하는 체크리스트가 아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한번씩은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하는 습관들을 설명한 것이다. 인생의 한계나 난관에 직면했을 때 더 능숙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소개해 독자 여러분이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고자 한다. 어제보다 성장하고, 발전하고, 노력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길을 이제부터 안내하려 한다.
자기 연민이란 그 어떤 약보다 사람을 망가뜨리는 마약이다.
쉽게 중독되고 찰나의 쾌락을 주며
그 덫에 걸린 사람은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한다.
_존 가드너John Gardner
잭이 사고를 당하고 나서 몇 주가 지나도록 잭의 엄마는 ‘끔찍한 사고’ 이야기를 입에 달고 살았다. 엄마는 잭이 어떻게 스쿨버스에 치여 두 다리가 부러졌는지 매일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 그 자리에서 아들을 보호해주지 못했다며 자책했고 몇 주나 휠체어 신세가 된 아들을 보면서 견딜 수 없이 괴로워했다.
의사는 잭이 완전히 회복될 것이라고 했지만 엄마는 잭에게 다리가 평생 낫지 않을 수 있다고 누누이 일렀다. 엄마는 혹시 잘못될 경우 잭이 다시는 친구들처럼 축구를 하거나 뛰어다니지 못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기를 바랐다.
다시 학교에 가도 좋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나서도 잭의 부모는 잭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대신 엄마가 직장을 그만두고 남은 학기 동안 홈스쿨링으로 잭을 가르치기로 했다. 그들은 잭이 날마다 스쿨버스를 보고 그 소리를 들으면 쓸데없이 나쁜 기억만 많이 떠오르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 뛰어노는 친구들을 잭이 휠체어에 앉아 멀뚱멀뚱 바라보는 일도 막고 싶었다. 부부는 잭이 집에 있으면서 몸도 마음도 더 빨리 회복하기를 기대했다.
잭은 보통 오전에 홈스쿨링 공부를 끝내고 오후에는 텔레비전을 보거나 비디오게임을 하며 시간을 때웠다. 몇 주가 지나자 부모는 잭의 감정 상태가 달라졌음을 눈치 챘다. 잭은 원래 활달하고 긍정적인 아이였지만 지금은 툭하면 짜증을 부리고 우울해했다. 부모는 잭이 사고를 겪으며 상상 이상으로 마음을 많이 다쳤기 때문이라고 걱정했다. 그들은 잭의 마음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심리치료를 받기로 했다.
잭의 부모는 아동 정신외상을 전문으로 하는 유명 심리치료사에게 잭을 데려갔다. 심리치료사는 잭을 담당한 소아과 의사에게 소개를 받았던 터라 잭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만나기 전부터 조금은 알고 있었다.
엄마가 미는 휠체어를 타고 심리치료사의 상담실에 들어섰을 때 잭은 입을 꾹 다물고 바닥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엄마는 심리치료사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얼마 전 끔찍한 사고를 당한 후로 온 가족이 정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어요. 사는 것도 말이 아니고 잭도 마음을 다쳐서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니네요. 예전의 우리 애와 완전히 딴판이에요.”
엄마의 예상과 달리 심리치료사는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오히려 한껏 쾌활한 목소리로 잭에게 말했다.
“이야, 너를 만난다고 해서 얼마나 기대했는지 몰라, 잭! 스쿨버스를 무찌른 아이는 처음 보거든! 대체 어떻게 스쿨버스와 싸워서 이겼는지 선생님한테 들려줄래?”
그 순간, 잭은 사고 이후 처음으로 웃음을 보였다.
잭은 이후 몇 주 동안 심리치료사와 함께 자기 경험을 담은 책을 썼다. 책에 《스쿨버스를 이기는 법》이라는 그럴듯한 제목도 붙였다. 잭은 스쿨버스와 싸워서 뼈만 몇 대 부러지고 무사히 탈출한 이야기를 멋지게 만들어냈다.
잭은 사고 당시 목도리를 얼른 붙잡고 번개같이 그 위를 넘어 몸의 대부분이 버스에 치이지 않게 방어했다면서 이야기에 살을 붙였다. 여기저기 과장이 섞여 있었지만 잭이 강한 아이였기 때문에 살아남았다는 이야기의 핵심은 그대로였다. 잭은 자화상으로 책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잭이 그린 그림 속에서 그는 슈퍼히어로 망토를 두르고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심리치료사는 잭의 부모도 함께 상담하며 잭이 큰 사고에서 살아남은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더 이상 잭을 가엾게 여기지 말라고 조언했다. 잭을 몸과 마음이 강하고 엄청난 역경을 극복할 능력이 있는 아이로 보라고 했다. 설령 다리가 완전히 낫지 않더라도 잭이 사고 때문에 못하게 된 일들이 아니라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룰 수 있는 일들에 부모가 관심을 쏟아주기를 바랐다.
심리치료사와 잭의 부모는 학교 교직원들과 힘을 모아 잭을 다시 학교로 보낼 준비를 했다. 잭이 아직 휠체어를 타야 하니 특별히 편의를 부탁하는 한편, 다른 아이들과 선생님이 잭을 불쌍한 눈으로 보지 말아달라고도 당부했다. 그리고 스쿨버스를 물리친 잭의 무용담을 친구들이 전해듣고 잭을 동정할 이유가 없다고 깨달을 수 있도록 잭이 쓴 책을 학급 친구들과 나눠보게 했다.
살아가는 동안 슬프고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슬픔이 지극히 건전하고 정상적인 감정이라 해도 눈앞에 닥친 슬픔과 불행에 매달리다 보면 제 발로 파멸의 길에 들어서고 만다. 다음 중 그렇다고 응답하는 항목이 하나라도 있는지 살펴보자.
□ 내 문제가 다른 사람의 문제보다 더 심각하다.
□ 운이 나쁘지 않았다면 나는 아무 문제도 겪지 않았을 것이다.
□ 다른 사람보다 내 문제가 훨씬 빠르게 불어난다.
□ 내가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진심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 간혹 여가 활동이나 약속을 취소하고 집에 틀어박혀 내 문제에 대해 혼자 고민한다.
□ 다른 사람에게 하루 중 잘 풀린 일보다는 잘못된 일을 더 많이 이야기한다.
□ 내 상황이 불공평하다고 푸념하는 때가 많다.
□ 아무리 애써도 감사할 만한 일이 좀처럼 생각나지 않는다.
□ 다른 사람은 타고난 복이 많아서 인생을 더 쉽게 사는 것 같다.
□ 세상이 내게 일부러 시련을 안겨주는 게 아닌지 궁금할 때가 있다.
위의 예시에서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가? 자기 연민에 빠지면 그 감정에 사로잡혀 결국 생각과 행동까지 변한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통제권을 잡을 수 있다. 나를 둘러싼 상황을 바꾸지 못할지라도 자신의 태도는 바꿀 수 있다.
자기 연민이 그토록 사람을 망가뜨린다면 자기 연민에 빠지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왜 연민의 늪에 쉽게 빠지고 그럴 때 안도감마저 들까? 잭의 부모님에게 연민은 앞으로 닥칠지 모를 위험에서 아들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패막이였다. 그들은 잭이 장래에 직면할 문제를 전부 차단하기 위해 아이가 하지 말아야 할 일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잭의 부모는 여느 때보다 아들의 안전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잠시라도 잭을 눈 밖에 두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잭이 다시 스쿨버스를 봤을 때 감정적으로 반응할까 봐 염려했다. 부부가 잭에게 쏟아붓고 있는 연민이 잭의 자기 연민으로 발전하는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자기 연민은 너무도 쉽게 사람을 집어삼킨다.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동안은 내가 진정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똑바로 보지 못하고 자기 행동에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한다. 이런 사람은 자기 연민으로 시간만 축낸다. 행동에 나서거나 앞으로 나아가는 대신 현재 상황이 얼마나 끔찍한지 과장하면서 그 상황을 벗어날 방법이 없다고 자기 합리화를 한다.
자기 연민으로 타인의 관심을 끌려는 사람도 많다. ‘나는 불쌍한 사람이야.’라고 떠들어대면 적어도 처음에는 다른 사람에게 다정하고 친절한 말을 들을 수 있다. 거절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상대가 나를 도와줬으면 하는 마음에 자기 연민을 은근히 내세우며 내가 얼마나 불행한지 이야기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들은 너도나도 불행을 부풀려 말하는 ‘불행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어느덧 대화는 경쟁의 장으로 변해 가장 끔찍했던 경험을 털어놓는 사람이 승리한다. 어떤 이는 자기 연민을 면죄부로도 삼는다. 상사에게 내 인생이 불행하다고 말한다면 나에 대한 기대감을 낮춰달라고 돌려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자기 연민으로 저항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제자리에 버티고 서서 이 세상을 향해 나는 더 많은 것을 누려야 한다고 외치면 상황이 달라지리라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하늘에서 홀연히 내려와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삶을 안겨줄 신은 없거니와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도 없다.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은 스스로를 망가뜨린다. 자기 연민은 문제를 키워서 더 심각한 결말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잭의 부모는 잭이 사고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감사하지 않고 아들이 사고로 하지 못하게 된 일들만 걱정했다. 결국 잭은 부모 탓에 사고로 훨씬 많은 것을 잃고 말았다.
잭의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부부는 잭을 안전하게 지켜주고 싶어서 그렇게 행동했다. 하지만 그들이 잭을 가엾게 여기면 여길수록 잭의 감정은 부정적으로 변했다.
자기 연민에 사로잡히면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삶을 만끽하지 못한다.
• 시간을 낭비한다. 자기 연민은 정신적 에너지만 많이 소모할 뿐 상황은 전혀 바꾸지 못한다. 사람은 문제를 해결하기 힘든 상황에서도 삶의 장애물에 긍정적으로 맞설 힘을 지니고 있다. 나를 불쌍하게 여긴다고 문제가 더 빨리 해결되지는 않는다.
• 부정적인 감정이 커진다. 자기 연민에 지배당하면 그 밖의 부정적인 감정까지 폭풍처럼 휘몰아칠 것이다. 분노나 원망, 고독과 함께 비관적인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많아진다.
• 불길한 생각이 현실이 된다. 자기 연민에 빠지면 인생이 비참해진다. 자기 연민을 느끼는 사람이 자기 능력을 최대로 발휘할 리가 없다. 결과적으로 더 많은 문제와 실패를 야기해 자기 연민도 더 커질 것이다.
• 다른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다. 자기 연민을 느끼면 슬픔이나 비애, 분노를 비롯한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다. 현재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 상황이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에만 매달리기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 삶의 행복을 놓친다. 하루에 다섯 가지 행복한 일과 한 가지 불행한 일이 일어났을 경우, 자기 연민에 빠진 사람은 불행한 일 하나에만 신경을 곤두세울 것이다. 이렇듯 자기 연민은 삶의 긍정적인 면을 못 보고 지나치게 한다.
• 인간관계를 망친다. 스스로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성격은 남에게 호감을 주기 어렵다. 사람들은 자기 인생이 얼마나 비참한지 불평하는 상대에게 금방 질려버린다. “그 사람은 늘 불행하다고 자학하는 면이 정말 마음에 든단 말이지.”라고 말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멘탈을 강하게 키우는 세 가지 요소를 기억하는가? 자기 연민을 없애려면 비관적인 행동과 비관적인 생각을 버려야 한다. 잭을 예로 들어본다면 매일 집에만 틀어박혀 비디오게임을 하거나 텔레비전만 보는 것을 그만둬야 했다. 잭은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야 했고, 학교를 다니는 것처럼 다친 다리로도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해야 했다. 상담 후 잭의 부모는 생각을 바꾸어 잭을 희생양보다는 생존자로 보기 시작했다. 일단 아들과 사고에 대한 관점을 바꾸자 자기 연민 대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링컨이 가고 나서 넉 달쯤 뒤, 그의 스물일곱 번째 생일이 다가왔다. 나는 몇 주 전부터 그날을 생각만 해도 두려웠다. 시댁 가족과 무엇을 하며 보내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온 가족이 티슈 상자 하나를 가운데 놓고 빙 둘러앉아 링컨이 영영 스물일곱 번째 생일을 맞지 못한 현실이 얼마나 부당한지 이야기하는 상상만 할 뿐이었다.
마침내 용기를 내어 어머님께 그날 어떻게 해야 할지 묻자 어머님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스카이다이빙은 어떠니?”라고 하셨다. 게다가 어머님은 진심이었다. 생각해보니 내 상상처럼 슬픔에 빠져 허우적대느니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스카이다이빙이 훨씬 좋은 생각 같았다. 모험을 좋아했던 링컨을 추억하기에 더없이 좋은 방법이었다. 링컨은 항상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장소에 가고 새로운 경험을 하기를 좋아했다. 충동적으로 주말여행을 가자고 했어도 무엇 하나 이상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링컨은 밤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자마자 출근해야 할지라도 직장에서 온종일 피곤한 것쯤이야 우리가 만든 추억에 비하면 대수롭지 않다고 말했을 것이다. 링컨이 살아 있었다면 무척이나 좋아했을 스카이다이빙은 그의 삶을 추모하는 방법으로 제격이었다.
비행기에서 뛰어내리는 순간에는 낙하산이 없다면 모를까 자기 연민을 느낄 겨를이 없다. 우리는 스카이다이빙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그 후로도 링컨의 생일이 돌아오면 연례행사처럼 모여 삶과 모험을 사랑했던 링컨을 추억했다. 상어가 있는 바다에서 수영도 하고 그랜드캐니언에서 노새를 타며 다양한 모험에 도전했다. 곡예용 그네 타는 법을 배운 날도 있었다.
해마다 온 가족이 링컨의 생일을 기념하는 모험에 참여한다. 몇 년간은 카메라를 들고 옆에서 지켜보기만 했던 할머님도 2년 전에는 88세 나이로 누구보다 앞장서서 나무의 높이를 껑충 뛰어넘는 케이블카에 올랐다. 이 전통은 내가 재혼한 후에도 이어졌고 이제는 남편 스티브도 우리와 함께한다. 링컨의 생일은 매년 우리가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되었다.
하루를 즐겁게 보냈다고 해서 우리는 고통을 외면하거나 슬픔을 감추지 않는다. 슬픔에 빠져 행동하지 않고 의식적으로라도 삶이 얼마나 은혜로운지 축복하는 방법을 선택했을 뿐이다. 잃은 것에 자기 연민을 느끼는 대신 내게 주어진 몫에 감사하기로 했다.
자기 연민이 삶에 스며들기 시작한다면 의식적으로 그 감정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라. 자기 연민을 떨쳐내려고 비행기에서 뛰어내릴 필요는 없다. 때로는 행동을 조금만 바꿔도 큰 변화가 나타난다. 그 예를 몇 가지 살펴보자.
• 뜻깊은 일에 자원봉사를 한다. 고민거리를 잊을 수 있고 다른 사람을 도우면 기분도 좋아진다. 무료 급식소에서 굶주린 사람에게 음식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