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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리조트 호텔 가운데
콜로라도에 위치한 것도 여러 군데 있지만,
그 가운데 특정한 곳을 염두에 두고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
오버룩 호텔과 거기 관련된 인물들은
전적으로 저자의 상상력의 산물이다.
또한……거대한 흑단 시계가 서 있는 것도 바로 이곳이었다. 시계추는 둔탁하고 묵직한, 단조로운 소리를 내며 왔다 갔다 흔들렸다. 그리고……정각을 칠 때가 되면, 시계의 놋쇠 허파에서 맑고 높고 깊고 대단히 음악적인 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소리는 너무나 독특하고 강해서 한 시간이 지날 때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자들은 손을 멈추고……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왈츠를 추던 사람들도 부득이하게 춤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흥에 겨운 사람들 사이에 짧은 불만이 나왔다. 그런데 시계의 종이 아직 울리고 있던 중, 가장 들떠 있던 젊은이들은 안색이 하얗게 질리고, 나이 지긋하고 침착한 이들은 혼란스러운 환상을 본 것처럼 이마에 손을 짚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종소리의 울림이 완전히 멎고 나자 곧 사람들 사이에서 가벼운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마치 긴장했던 스스로를 비웃는 것처럼……다음번 시계가 울릴 때에는 그런 기분이 들지 않을 거라고 서로에게 귓속말로 다짐했다. 그리고 60분이 지나자……또 시계가 울리기 시작했고, 전과 똑같은 소란과 동요와 회상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흥겹고 성대한 파티였다…….
— 애드거 앨런 포, 「붉은 사신의 가장무도회」
이성이 잠들면 괴물들이 태어난다.
— 고야
해가 뜨면 빛이 나는 법.
— 속담
잭 토런스는 생각했다. ‘잘난 체하는 땅딸보 자식.’
울먼은 160센티미터가 조금 넘는 키에 작달막하고 살집 좋은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재빠른 몸놀림으로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머리의 가르마는 빈틈없이 갈라져 있었고 검은 양복은 점잖으면서도 편안해 보였다. 돈을 지불하는 고객은, 그 양복을 입은 사람이라면 무슨 일이든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고용된 일꾼들에게 그 양복은 더욱 강한 인상을 주었다. 거기, 너, 똑바로 하는 게 좋을걸이라는. 양복 깃에는 빨간 카네이션이 꽂혀 있었는데, 밖에서 사람들이 스튜어트 울먼을 장의사로 착각하지 않도록 꽂아 놓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울먼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 잭은 책상 저쪽에 앉은 사람이라면 누구든 마음에 들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그는 울먼의 질문 가운데 하나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이런. 울먼은 그렇게 잠시 정신을 딴 데 판 것도 일일이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끄집어낼 인간이었다.
“네?”
“부인께서 당신이 여기서 하게 될 일을 전적으로 이해하는지 물었습니다. 물론, 아드님 문제도 있고요.” 그는 앞에 놓인 지원서를 훑어보았다. “대니얼이로군요. 부인께서 걱정하지 않습니까?”
“웬디는 특별한 여잡니다.”
“그럼 아드님도 특별합니까?”
잭은 입을 커다랗게 찢으며 홍보용 미소를 지었다. “저희들이야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요. 다섯 살짜리치고는 혼자서 뭐든 잘하거든요.”
울먼에게서는 미소가 되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잭의 지원서를 다시 파일 속에 끼워 넣었다. 파일은 서랍 속으로 들어갔다. 이제 책상 위에는 메모 용지, 전화기 한 대, 스탠드 하나, 그리고 미결·기결 서류 바구니 외에는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았다. 미결·기결 칸 역시 비어 있었다.
울먼은 일어서더니 구석에 놓여 있는 서류함으로 갔다. “이쪽으로 오시죠, 토런스 씨. 호텔 층별 도면을 봅시다.”
그는 커다란 종이를 다섯 장 꺼내 오더니 반들반들한 호두나무 책상 위에 놓았다. 잭이 옆에 서자, 울먼의 향수 냄새가 강하게 느껴졌다. “내 남자들은 모두 잉글리시 레더 향수가 아니면 아무것도 몸에 걸치지 않아요.”라는 광고 문구가 문득 떠올랐고, 그는 웃음을 터뜨리지 않으려고 혀를 깨물어야 했다. 벽 너머에서는 오버룩 호텔의 주방에서 점심 식기를 치우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울먼이 신나는 목소리로 말했다. “맨 위층은 창고입니다. 거기에는 지금 낡은 기물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오버룩 호텔은 2차 대전 이후로 몇 차례 경영주가 바뀌었고, 지배인이 바뀔 때마다 원치 않는 물건들을 이 창고에 갖다 넣었습니다. 그곳에 쥐덫과 쥐약을 놓았으면 합니다. 3층 객실 담당 직원들 가운데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로서는 그 말을 전혀 믿지 않지만, 만에 하나라도 오버룩 호텔에 쥐가 한 마리라도 있을 가능성은 배제해야 합니다.”
잭은 세상 어느 호텔에나 쥐 한두 마리는 있게 마련이라 생각했지만 입을 다물고 있었다.
“물론 어떠한 경우에도 아드님을 창고에 들여보내서는 안 됩니다.”
“그럼요.” 잭은 다시금 홍보용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모욕적인 상황. 이 잘난 체하는 땅딸보 자식은 정말로 자신이 아들을 쓰레기 가구와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한 데다 쥐덫까지 놓은 창고에 얼씬이라도 하게 내버려 둘 거라 생각하는 걸까?
울먼은 창고 층 도면을 걷어내어 맨 밑에 깔았다.
“오버룩에는 객실이 총110개 있습니다.” 그는 전문가 같은 투로 말했다. “그중 스위트룸 서른 곳이 이곳 3층에 있습니다. 건물 서쪽에 열 개(프레지덴셜 스위트룸 포함), 중앙에 열 개, 동쪽에 열 개이죠. 전부 전망이 훌륭합니다.”
‘영업용 대사는 좀 뺄 수 없나?’
하지만 잭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 일자리가 필요했다.
울먼은 3층 도면을 맨 밑에 넣고 2층 도면을 살펴보았다.
“객실 마흔 개가 있습니다. 더블 룸 서른 곳, 싱글 룸 열 곳. 그리고 1층에 각각 스무 곳씩 있지요. 거기에 각 층마다 세 곳의 시트용 벽장이 있고, 2층 동쪽 맨 끝과 1층 서쪽 맨 끝에 저장실이 하나씩 있습니다. 질문 있습니까?”
잭은 고개를 저었다. 울먼은 2층과 1층 도면을 치웠다.
“그럼. 로비 층입니다. 여기 중앙이 접수대입니다. 그 뒤는 사무실이죠. 로비의 폭은 데스크 양쪽으로 2미터 50센티씩 됩니다. 여기 건물 서쪽에는 오버룩 식당과 콜로라도 라운지가 있습니다. 연회실은 동쪽에 있습니다. 질문 있습니까?”
“궁금한 건 지하실뿐입니다.” 잭이 말했다. “동절기 관리인에게는 그곳이 가장 중요한 층이지요. 현장이라고나 할까요.”
“왓슨이 전부 안내해 줄 겁니다. 지하층 도면은 보일러실 벽에 붙어 있습니다.” 그는 얼굴을 팍 찡그렸다. 지배인인 자신은 보일러나 배관 작업 같은, 오버룩의 이면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듯이. “그곳에도 덫을 좀 놓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군요. 잠시만…….”
그는 재킷 안쪽 호주머니에서 꺼낸 메모장(거기에는 각 장마다 굵고 검은 글씨체로 “스튜어트 울먼의 데스크에서 보냄”이라고 찍혀있었다)에 뭐라고 끄적이더니 기결 서류 바구니에 얹었다. 메모지는 처량하게 놓여 있었다. 메모장은 마술이 끝날 때처럼 다시 울먼의 호주머니 속으로 사라졌다. 자, 보이지, 꼬마 잭. 그런데 이제 보이지 않지. 솜씨 좋은 사람이었다.
그들은 본래의 위치로 되돌아갔다. 울먼은 책상에 앉고 잭은 그 정면에 마주보고 앉는, 면접관과 응시자, 채용을 바라는 사람과 결정을 망설이는 경영자의 위치로. 울먼은 매끈하고 조그마한 두 손을 책상 위 메모 용지에 얹고서, 양복에 점잖은 회색 타이를 맨 체구가 자그마하고 머리숱이 적은 잭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양복 깃에 꽂힌 꽃과 나란히 반대편 깃에는 명찰이 꽂혀 있었다. 거기에는 작은 금박 글씨로 “직원”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솔직하게 털어놓겠습니다, 토런스 씨. 앨버트 쇼클리는 오버룩 호텔에 큰 지분을 갖고 있는 거물입니다. 또한 오버룩 호텔은 올 시즌에 사상 최초로 이윤을 내었죠. 쇼클리 씨는 이사회 일원이기도 하지만, 호텔 경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고 본인이 그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관리인 문제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뜻을 밝혔습니다. 당신을 채용하기 바라고 있다고 했습니다. 나도 그 뜻에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내 뜻대로 할 수 있다면 당신을 채용하지 않았을 겁니다.”
잭은 무릎 위에서 쥐고 있던 두 손에 힘을 주었다. 손바닥에서 땀이 났다. ‘잘난 체하는 땅딸보 자식, 잘난 체하는 땅딸보 자식, 잘난 체하는…….’
“당신도 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토런스 씨. 그건 상관없습니다. 감정적인 이유에서 적임자가 아니라고 여기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5월 15일에서 9월 30일까지 시즌 중에 오버룩 호텔은 110명의 정규 직원을 채용합니다. 객실 하나당 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중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줄 알고 있고, 또 나를 악질이라 여기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내 성격에 대해서는 그들의 판단이 옳을 겁니다. 이 호텔을 제대로 운영하려면 어느 정도 악질이 되어야 하니까요.”
그는 잭이 뭐라 말할지 쳐다보았고, 잭은 다시 홍보용 미소를 지었다. 무례할 정도로 이를 드러내는 커다란 미소를.
울먼은 계속 말했다. “오버룩 호텔은 1907년부터 1909년 사이에 지어졌습니다. 가장 가까운 도시는 여기서 동쪽으로 65킬로미터 떨어진 사이드와인더로, 그곳과 연결된 도로는 10월 말이나 11월경에서 4월 무렵까지 폐쇄됩니다. 로버트 타운리 왓슨이라는 분이 지었고, 그분 손자가 현재 유지 보수를 맡고 있습니다. 밴더빌트 일가 분들, 록펠러 일가 분들, 애스터 일가 분들, 듀퐁 일가 분들이 이곳에 묵었습니다.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에는 윌슨, 하딩, 루스벨트, 닉슨 네 분의 대통령이 묵었습니다.”
“하딩과 닉슨은 별로 자랑스러운 이름은 아니군요.” 잭이 중얼거렸다.
울먼은 이마를 찌푸렸지만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왓슨 씨는 운영에 부담을 느껴 1915년에 호텔을 매각했습니다. 이어서 1922년, 1929년, 1936년에 계속 매각되었죠. 호텔은 이차 대전 종전까지 비어 있다가 갑부 발명가이자 파일럿, 영화 제작자 및 사업가인 호리스 드원트가 사들여 완전히 새로 고쳤습니다.”
“저도 그 이름은 들어서 압니다.” 잭이 말했다.
“그렇습니다. 그가 손대는 것은 전부 금으로 바뀌었죠……. 오버룩 호텔만 예외였습니다. 전후 첫 고객이 발을 들여놓기 전, 그는 백만 달러 이상을 투입하여 낡아 빠진 폐허를 눈부신 명소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당신이 도착했을 때 감탄했던 로크 코트를 지은 것도 그입니다.”
“로크요?”
“크로케의 영국 조상쯤 되는 게임입니다, 토런스 씨. 크로케는 로크의 사생아라고 할 수 있죠. 전하는 이야기로, 드원트는 개인 비서에게 그 게임을 배우고 완전히 푹 빠졌다고 합니다. 우리 호텔의 로크 코트는 아메리카 최고일 겁니다.”
“그럴 것 같습니다.” 잭은 엄숙하게 말했다. 로크 코트, 정면에는 작은 동물들로 가득한 정원, 그러고는 뭔가? 장비 창고 뒤에는 실물 크기의 엉클 위길리 게임판1)이라도 만들었나? 그는 스튜어트 울먼이라는 사람이 아주 지겨워졌지만, 울먼은 아직 할 말을 다 마치지 않은 모양이었다. 울먼은 하고자 마음먹은 이야기는 전부 할 사람이었다.
“300만을 잃자, 드원트는 호텔을 캘리포니아의 투자자 그룹에 매각했습니다. 그들 역시 똑같이 실패를 맛보았습니다. 호텔 경영을 몰랐던 거죠.
1970년에 쇼클리 씨와 동업자들은 호텔을 사들였고 그 관리를 내게 맡겼습니다. 우리 역시 몇 해 동안 적자를 보았지만, 다행히도 나에 대한 현재 소유주들의 신뢰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작년에 우리는 적자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리고 올해 오버룩의 수지는 근 70년 만에 처음으로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이 성가신 남자의 자부심에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는 생각이 들자, 애초부터 느꼈던 혐오감이 또다시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잭이 말했다. “오버룩의 다사다난한 역사와 제가 적임자가 아니라는 느낌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것 같은데요, 울먼 씨.”
“오버룩이 그렇게 큰 적자를 낸 한 가지 이유는 매년 겨울마다 일어나는 손실에 있습니다. 그 때문에 생각보다 이윤 폭이 훨씬 더 크게 감소합니다. 겨울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잔인합니다. 그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 매일 돌아가며 호텔의 각 부분에 보일러를 가동하여 열을 공급하는 동절기 전임 관리인을 배치해 왔습니다. 파손이 일어나면 곧장 수리를 하여 초기에 문제를 근절하는 것이죠. 어떠한 우발적인 사고도 미연에 방지하도록 계속해서 주의를 기울이는 겁니다. 그 첫해 겨울, 나는 독신자 대신 일가족을 고용했습니다. 그런데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끔찍한 비극이.”
울먼은 잭을 냉정한 눈초리로 감정하듯 바라보았다.
“내 실수였습니다. 전적으로 인정합니다. 그 사람은 알코올 중독자였어요.”
잭은 이를 드러내는 홍보용과는 전혀 다른 미소가 입가에 서서히 번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 때문인가요? 앨버트가 말하지 않았다니 놀랍군요. 술은 끊었습니다.”
“네, 쇼클리 씨는 당신이 술을 끊었다고 하더군요. 당신의 전직……, 마지막으로 했던 믿을 만한 일이라고나 할까요? 그것에 대해서도 알려 주었습니다. 버몬트의 사립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지요. 이성을 잃었다고 하던데, 그 이상 구체적으로 거론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레이디의 경우와도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되어서 당신의……, 음, 전력을 거론한 겁니다. 1970년에서 71년 겨울, 호텔의 보수 공사를 마치고 첫 시즌을 시작하기 전, 나는 이……, 델버트 그레이디라는 불운한 사람을 채용했습니다. 그는 당신과 부인, 그리고 아들이 살게 될 숙소로 들어왔습니다. 부인과 딸이 둘 있었지요. 겨울철이 혹독하며 그레이디 가족이 오륙 개월 동안 외부 세상과 차단될 거라는 조건을, 나는 미리 알렸습니다.”
“하지만 정말 그런 건 아니지요? 여기에는 전화도 있고 민간 무선 통신 장비도 있을 텐데요. 게다가 헬리콥터로 올 수 있는 거리에 로키산맥 국립 공원이 있고, 거긴 헬기도 한두 대쯤은 있을 것 아닙니까.”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울먼이 말했다. “호텔에는 쌍방향 무선 통신 장비가 있고, 왓슨 씨가 도움이 필요할 때 사용할 주파수 목록을 알려 드릴 겁니다. 이곳과 사이드와인더 간의 전화선은 아직도 매립을 하지 않아 거의 매년 겨울마다 어느 시점에서 전화가 끊겨 삼 주 내지 한 달 반까지 불통이 됩니다. 장비 창고에 가면 설상차도 있습니다.”
“그럼 외부와 단절되는 게 아니군요.”
울먼 씨는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아드님이나 부인이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두개골에 금이 갔다고 합시다, 토런스 씨. 그래야 이곳이 외부와 단절되었다고 하겠습니까?”
잭은 이제야 납득했다. 설상차를 최고 속도로 몰면 사이드와인더까지 한 시간 반 만에 도착할 것이다……, 아마도. 국립 공원의 구조대에서 보낸 헬기는 세 시간 만에 도착할 것이다……, 그것도 최상의 조건일 때. 눈보라가 불면 헬기는 뜨지도 못할 것이고 설상차를 최고 속도로 몰지도 못할 것이다. 행여 중상을 입은 사람을 영하 30도, 아니 체감 온도로 따지면 영하 40도의 한데로 데려나갈 용기가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울먼이 말했다. “그레이디의 경우, 쇼클리 씨가 당신에 대해서 심사숙고한 만큼 나도 여러 모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혼자 지내는 것은 그것만으로 해로울 수 있지요.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이 낫겠다고. 문제가 생긴다 해도 두개골 골절이나 전기 기계 부상, 무슨 발작 같은 것보다는 덜 긴급한 문제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어요. 심한 독감, 폐렴, 팔의 골절이나 맹장염. 이런 것들은 충분히 대처할 시간이 있으니.
아마도 그 사건은, 그레이디가 몰래 잔뜩 들여놓은 싸구려 위스키를 과음한 결과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옛날 사람들이 오두막 열병이라고 부르는 특이한 상황도 겹쳤고요. 들어 본 적 있습니까?”
울먼은 잭이 모른다고 하자마자 설명할 참으로, 생색 내듯 미소를 슬쩍 지어 보였고, 잭은 고소한 심정으로 재빠르고 명료하게 대답했다.
“그건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함께 갇혀 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폐소공포증 반응을 일컫는 속어이죠. 폐소공포증은 함께 갇힌 사람들에 대한 증오감으로 발현됩니다. 극단적인 경우, 환각에 빠지거나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죠. 최악의 경우는 살인이고, 식사를 태우거나 설거지 당번이 누구냐를 놓고 시비를 거는 등의 사소한 싸움이 벌어집니다.”
울먼은 약간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잭은 속이 후련했다. 그는 좀 더 밀어붙일 작정이었지만, 속으로 침착하겠다고 웬디에게 다짐했다.
“거기서 실수를 하셨군요. 그가 가족을 다치게 했습니까?”
“살해했습니다, 토런스 씨. 그러고는 자살했죠. 손도끼로 어린 딸들을 해치고 엽총으로 아내를 쏜 다음 자기도 죽었습니다. 다리가 부러져 있었습니다. 분명 많이 취해서 계단에서 넘어졌을 겁니다.”
울먼은 손을 펼치더니 독선적인 표정으로 잭을 쳐다보았다.
“그 사람, 고등학교는 나왔습니까?”
“실은 고졸자가 아니었습니다.” 울먼은 약간 딱딱하게 대답했다. “나는, 뭐라고 할까요.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면 고생이나 외로움을 더 잘 이겨 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실수였군요.” 잭이 말했다. “어리석은 사람이 카드 게임을 하다가 사람을 쏘거나 충동적인 강도 짓을 할 가능성이 높은 것과 똑같이, 오두막 열병에 걸릴 가능성도 더 큽니다. 지루해지거든요. 눈이 오면 텔레비전을 보거나 혼자서 카드나 치다가 에이스를 전부 차지하지 못하면 속임수를 쓰는 것 말고는 달리 할일이 없어지지요. 마누라한테 짜증 내고 애들에게 잔소리하다가 술 마시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어요. 들을 것이 없으니 잠자기도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잠들 때까지 마시고 숙취에 절어 일어납니다. 화를 잘 내게 되지요. 그리고 전화가 끊기고 텔레비전 선이 나가면 잡념을 떠올리며 혼자 카드를 치다 속임수를 쓰고, 점점 더 짜증을 내는 것 말곤 할일이 아무것도 없어집니다. 그러다 결국……, 빵, 빵, 빵.”
“그럼, 당신처럼 학력이 높은 사람은?”
“아내와 저는 독서를 좋아합니다. 앨버트 쇼클리가 말했을지 모르지만 저는 희곡을 한 편 쓰고 있습니다. 대니는 퍼즐, 색칠 공부, 무선 통신기를 갖고 놀면 됩니다. 아이에게 글 읽는 법을 가르치고 눈신을 신고 걷는 법도 가르칠 겁니다. 웬디도 배우려고 할 겁니다. 장담합니다. 우리 가족은 텔레비전이 고장나더라도 각자 자기 할일을 하면서 서로 신경을 건드리지 않을 겁니다.” 그는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제가 술을 끊었다는 앨버트의 말은 사실입니다. 술을 마시던 적이 있었고 심각한 지경까지 간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14개월 동안 맥주 한 잔 이상 마셔 본 적이 없습니다. 술 종류는 가져올 생각도 없고 눈이 오면 술을 가져올 기회도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점은 맞습니다.” 울먼이 말했다. “하지만 가족 세 분이 이곳에 계시는 동안, 문제가 일어날 가능성은 배로 늘어납니다. 쇼클리 씨에게 이 점을 말씀드렸고, 그분께서는 책임을 지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당신에게도 알렸고 당신 역시 기꺼이 책임을 감당하겠다고 하니…….”
“네.”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달리 선택의 여유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지금도 나는 독신자 휴학생을 채용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왓슨 씨를 소개해 드리죠. 왓슨 씨가 지하실과 구내를 안내해 줄 겁니다. 달리 질문 사항은?”
“아뇨. 없습니다.”
울먼이 일어섰다. “감정은 상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토런스 씨. 말씀드린 내용에 사적인 감정은 전혀 없습니다. 오로지 오버룩을 위해 최선을 바랄 뿐입니다. 훌륭한 호텔이니까요. 이대로 유지하고 싶습니다.”
“네, 나쁜 감정 같은 것은 전혀 없습니다.” 잭은 예의 홍보용 미소를 다시 지어 보였지만 울먼이 악수를 청하지 않아서 마음이 놓였다. 나쁜 감정은 존재했다. 온갖 나쁜 감정이.
여자는 부엌 창문을 통해 도로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트럭도 웨건도, 잭이 집에 가져와 지난 주 내내 그렇게 좋아하던 글라이더도 갖고 놀지 않았다. 다섯 살짜리 꼬마는 그저 가만히 앉아 팔꿈치를 허벅지에 세우고 턱을 손에 괴고는 낡은 폴크스바겐 자동차를 몰고 올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다.
웬디는 속이 상했다. 울고 싶을 정도로 속이 상했다.
그녀는 개수대 옆에 행주를 걸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실내용 원피스의 맨 위 단추 두 개를 채웠다. 잭의 그 자존심! 아냐, 앨버트. 선불 같은 것은 필요 없어. 당분간은 끄떡없다고. 복도의 벽은 여기저기 금이 가고 크레용, 유성 매직, 스프레이 페인트 자국이 보였다. 층계는 가파르고 여기저기 부서져 있었다. 건물 전체에서 퀴퀴한 냄새가 났다. 스타빙튼의 작고 아담한 벽돌집에 살다가 이런 데로 오다니, 대니는 무슨 생각을 할까? 3층에 사는 사람들은 결혼한 부부가 아니었다. 그건 신경 쓰이지 않았지만 끊임없이 요란하게 싸워 대는 소리는 정말 거슬렸다. 웬디는 겁이 났다. 위층에 사는 톰이라는 남자가 술집이 문 닫을 때 집으로 돌아오면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곤 했다. 거기에 비하면 주중의 싸움은 전초전일 뿐이었다. 금요일 밤의 싸움. 잭은 그렇게 불렀지만 웃을 일이 아니었다. 일레인이라는 여자는 결국 울면서 “이러지 마, 톰. 제발. 제발 이러지 마.”라고 되풀이해서 중얼거리곤 했다. 그러면 톰은 소리를 지르곤 했다. 싸우는 소리에 대니가,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르는 대니가 깬 적도 있었다. 이튿날 아침 잭이 외출하는 톰을 잡아 길에서 한참 이야기를 했다. 톰은 화를 내기 시작했고, 잭이 뭐라고 했지만 너무 작게 말해서 웬디에겐 들리지 않았다. 그러자 톰은 고개를 젓더니 부루퉁해서 걸어가 버렸다. 그것이 일주일 전이었고 사나흘 정도는 나아졌지만 주말 이후 다시 정상, 아니 비정상으로 돌아갔다. 아이에게 해로운 환경이었다.
다시 슬픔이 복받쳤지만 웬디는 바깥이라 눈물을 삼켰다. 치맛자락을 걷고 아들 곁에 앉아서 말을 걸었다. “뭐하니, 똘똘아?”
아들은 웃어 보였지만 형식적인 것이었다. “안녕, 엄마.”
글라이더는 운동화를 신은 아이의 발 사이에 놓여 있었고 날개 하나가 부서지기 시작한 것이 보였다.
“그거 고칠 수 있을지 봐줄까?”
대니는 다시 거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아니. 아빠가 고쳐 줄 거예요.”
“아빠는 저녁때가 돼야 오실 거야, 똘똘아. 저 산까지는 길이 멀거든.”
“부서질 것 같아요?”
“아니, 그렇진 않아.” 하지만 웬디는 걱정거리가 방금 또 하나 늘었다. 고마워요, 아빠. 그거 꼭 갖고 싶었어요.
“아빠는 부서질지도 모른댔어요.” 대니는 기정 사실처럼 따분하다는 듯이 말했다. “연료 펌프가 맛이 뻑 갔대요.”
“그런 말 하지 마, 대니.”
“연료 펌프요?” 대니가 순진하게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웬디는 한숨을 쉬었다. “아니, ‘맛이 뻑 갔대요.’ 말이야. 그런 말 쓰면 안 돼.”
“왜요?”
“상스러운 말이야.”
“상스러운 게 뭔데요, 엄마?”
“식탁에서 코를 후비는 거나 욕실 문을 열어 놓고 쉬를 하는 거 같은 거란다. 또 ‘맛이 뻑 갔대요.’ 같은 말도. 그런 건 상스러운 말이야. 착한 사람은 그런 말 안 하는 거야.”
“아빠는 그렇게 말하는데. 모터를 보더니 ‘젠장 이 연료 펌프는 맛이 뻑 갔네.’라고 했어요. 아빠는 착한 사람 아냐?”
‘어쩌다 이런 일에 말려들었니, 위니프리드? 응?’
“아빠는 착한 사람이지. 하지만 어른이잖니. 그리고 아빠는 이해해 주지 않을 사람들 앞에서는 그런 말을 안 하려고 신경을 많이 쓰신단다.”
“앨버트 아저씨 같은 사람 말이야?”
“응. 그렇지.”
“나도 어른이 되면 그런 말 써도 돼요?”
“내가 허락을 하든 안 하든, 아마도 쓰게 되겠지.”
“몇 살 먹으면?”
“스무 살 정도면 어떠니, 똘똘아?”
“아주 오래 기다려야 되네요.”
“그렇지. 하지만 해 볼 거지?”
“좋아요.”
대니는 다시 고개를 돌려 거리를 쳐다보았다. 아이가 일어서려는 듯 몸을 조금 폈다. 하지만 다가온 비틀은 훨씬 더 새 차에다, 훨씬 더 밝은 빨강이었다. 아이는 다시 주저앉았다. 웬디는 콜로라도로 이렇게 이사 온 것이 대니에게 얼마나 힘든 일일까 싶었다. 아이는 아무 말 없었지만, 그렇게 오랜 시간을 혼자 지내는 것을 보고 있자니 심란하기 짝이 없었다. 버몬트에서는 잭의 동료 교사 셋이 대니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다. 그리고 유치원도 있었다. 하지만 이 근처에는 대니와 놀아 줄 아이가 아무도 없었다. 아파트에는 거의 콜로라도 대학교 학생들만 살고 있었고, 이곳 아라파호 거리에 사는 몇 안 되는 부부 가운데 아이가 있는 집은 극소수였다. 중고생 여남은 명과 갓난아기 셋을 본 적 있지만, 그게 전부였다.
“엄마, 아빠는 왜 선생님을 못 하게 되었어요?”
생각에 잠겨 있던 웬디는 깜짝 놀라 대답을 찾아 허둥거렸다. 그녀와 잭은 대니가 그런 질문을 하면 어찌할지 의논한 적 있었다. 대답을 회피하는 것에서부터 속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 주는 것까지 다양한 방법을. 하지만 대니는 한번도 묻지 않았다. 적어도 웬디가 축 처져서 아무런 마음의 준비도 하지 않고 있는 지금까지는. 하지만 대니는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엄마의 표정에서 당황한 기색을 읽고 나름대로 판단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웬디는 어른들의 의도와 행동은 아이에게 어두운 숲 속의 맹수처럼 심각하고 두렵게 느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그 까닭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 채 꼭두각시 인형처럼 내던져지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자 웬디는 다시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고, 그것을 참느라 허리를 숙여 망가진 글라이더를 주워 뒤집어 보았다.
“아빠는 토론 팀을 맡고 계셨단다. 그거 기억나니?”
“응.” 아이가 말했다. “즐거운 토론회, 맞죠?”
“맞아.” 웬디는 글라이더를 이리저리 뒤집으며 상표(스피도글라이드)와 날개 위에 찍힌 푸른 별 판박이를 쳐다보는 동안, 아들에게 사실 그대로를 알려 주게 되었다.
“조지 햇필드라는 학생이 있었는데, 아빠는 그 아이를 팀에서 내보내야 했어. 그 아이가 다른 학생들만큼 잘하지 못했던 거지. 그런데 조지는 자기가 잘 못 해서가 아니라 아빠가 자길 싫어해서 내보내는 거라고 말했단다. 그리고 조지는 나쁜 짓을 했어. 너도 알 거야.”
“우리 차 타이어에 구멍 낸 거요?”
“그래. 그 학생이야. 학교가 끝난 다음이었고, 아빠는 그 애가 구멍을 내고 있는 걸 보셨어.” 그리고 웬디는 다시 망설였다. 하지만 이제 피할 수 없다. 사실을 알려 주든지, 아니면 거짓말을 하는 수밖에.
“아빠는……, 가끔 나중에 후회할 일을 하셔. 가끔 올바르게 생각을 안 하실 때가 있어. 자주 그러시는 건 아닌데, 가끔 그러셔.”
“내가 아빠 공책에 맥주 쏟았을 때처럼 조지 햇필드를 때렸어요?”
‘가끔…….’
(팔에 깁스를 한 대니)
‘나중에 후회할 일을 하셔.’
웬디는 눈을 열심히 깜빡거리며 눈물을 삼켰다.
“비슷한 거란다. 아빠는 조지가 타이어를 자르지 못하게 하려고 때려 주었는데, 조지가 머리를 부딪쳤어. 그리고 학교의 높은 사람들이 조지는 앞으로 학교에 다닐 수 없고 아빠는 앞으로 선생님을 못한다고 했단다.” 웬디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고 쏟아져 나올 질문을 두려운 마음으로 기다렸다.
“아.” 대니는 이렇게 말하더니 다시 거리를 쳐다보았다. 그 문제는 해결된 것 같았다. 그녀에게도 그렇게 쉽게 해결될 수 있다면…….
웬디는 일어섰다. “얘야, 차 한잔 마시러 위층에 올라간다. 쿠키랑 우유 마실래?”
“아빠를 기다릴 거예요.”
“다섯시 전에는 안 오실 것 같은데.”
“어쩌면 일찍 오실지도 몰라요.”
“그래.” 웬디도 맞장구를 쳤다.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
그녀가 반쯤 올라갔을 때 아이가 불렀다. “엄마?”
“응, 대니?”
“겨울에 호텔에 가서 살고 싶어요?”
자, 그 질문에 대해서는 오천 가지 대답 중에 무엇을 댈까? 어제 느꼈던 대로 대답할까, 아니면 간밤, 아니면 오늘 아침에 느꼈던 대로 대답할까? 그때마다 대답은 전부 달랐다. 장밋빛에서 캄캄한 흑색에 걸치는 각양각색의 대답이 있었다.
웬디는 이렇게 말했다. “아빠가 가고 싶어하시면 엄마도 가고 싶어.”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추었다. “대니는 어떠니?”
“나도 그런 것 같아요.” 아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여긴 같이 놀 애도 없고.”
“친구들 보고 싶구나?”
“스콧이랑 앤디가 보고 싶기도 해요. 그것뿐이에요.”
웬디는 아들에게 되돌아가 입을 맞추고, 이제 막 아기 티를 벗은 밝은 색깔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다. 대니는 너무나도 어른스러운 아이라서, 웬디는 어쩌다 대니가 자신과 잭 같은 부모를 만났을까 싶었다. 한때 지녔던 희망은 사라지고 낯선 도시의 이 허름한 아파트로 오다니. 대니가 팔에 깁스를 한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하늘나라에서 엄마 아빠를 정해 주는 일을 맡은 누군가가 실수를 하면, 다시는 바로잡을 수도 없고 죄 없는 아이가 그것을 감당해야 하는 게 아닐까. 웬디는 이따금 그런 두려움을 느꼈다.
“찻길에 들어가면 안 돼, 똘똘아.” 웬디가 이렇게 말하고 아이를 꼭 안아 주었다.
“알아요, 엄마.”
웬디는 위층으로 올라가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찻주전자를 올려놓고, 누워 있는 동안 대니가 올라올 경우를 생각해서 오레오 쿠키 두 조각을 접시에 놓았다. 그녀는 큼지막한 도자기 잔을 앞에 놓고 앉아, 청바지와 헐렁한 스타빙튼 고등학교의 녹색 티셔츠를 입고 이제 글라이더를 옆에 놓아둔 채 보도에 앉아 있는 아이를 창문으로 내다보았다. 그러자 하루 종일 찔끔거렸던 눈물이 터져 나왔고 그녀는 향긋한 찻잔에 코를 박고 울었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상실감, 그리고 앞날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이성을 잃었다지요.’ 울먼은 그렇게 말했다.
“자, 여기가 가열로요.” 왓슨이 곰팡내 나는 어두운 방에 불을 켜면서 말했다. 보송보송한 팝콘 머리에, 흰 셔츠와 짙은 녹색 면바지를 입은 살집 좋은 남자였다. 그는 가열로 중앙의 조그만 사각형 창살문을 열어젖혔고 잭과 함께 그 안을 들여다보았다. “여기 이게 표시등이오.” 청백색 불꽃이 규칙적으로 쇳소리를 내면서 파괴력을 위로 전달시켰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파괴이지 전달이 아니라고 잭은 생각했다. 거기 손을 집어 넣으면 딱 3초만에 바비큐가 될 것이다.
‘이성을 잃었다지요.’
(대니, 괜찮니?)
가열로는 방 전체를 차지하고 있었다. 잭이 여태까지 본 것들 중에 가장 크고 오래된 것이었다.
“표시등에는 안전 장치가 돼 있소.” 왓슨이 말해 주었다. “저기 작은 감지기가 열을 측정하는 거요. 온도가 정해 놓은 지점 이하로 내려가면 당신 숙소에 버저가 울릴 거요. 저 벽 바깥쪽에는 보일러가 있어요. 그쪽으로 가 봅시다.” 그는 창살문을 탁 닫고서 잭을 데리고 강철 덩어리 가열로 뒤로 나와 다른 문으로 향했다. 강철에서는 피부가 얼얼해질 정도의 열이 퍼져 나왔고 어째서인지 잭은 졸고 있는 커다란 고양이 한 마리가 떠올랐다. 왓슨은 열쇠 꾸러미를 쩔그렁거리며 휘파람을 불었다.
‘이성을…….’
(서재로 들어가 대니가 체육복 바지만 입은 채 씩 웃고 서 있는 모습을 보자, 붉은 구름 덩어리 같은 분노가 서서히 피어올라 잭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아주 느리게 느껴졌지만 전부 1분도 채 안 되어 벌어진 일이었다. 이따금 꿈속에서 모든 것이 느리게 느껴질 때와 같았다. 악몽 속에서. 밖에 나간 사이에 서재에 있는 문과 서랍을 전부 다 열어 뒤져 놓은 것 같았다. 벽장, 받침대, 미닫이 책장. 책상 서랍이란 서랍은 다 끝까지 열어젖혀져 있었다. 7년 전 그가 쓴 단편 소설에서 3막짜리 희곡으로 각색 작업 중이었던 원고가 바닥에 모조리 흩어져 있었다. 맥주를 마시며 2막을 수정하고 있었을 때, 웬디가 전화 왔다고 했고 대니는 원고에다 맥주를 다 부어 버린 것이다. 아마도 거품을 보려고 그랬을 것이다. 거품을 보려고, 거품을 보려고, 그 말이 마치 조율 안 된 피아노가 내는 지긋지긋한 소리처럼 그의 마음속에 계속에서 울려 퍼지더니 분노를 폭발시켰다. 그는 세 살배기 아들에게 가만히 다가갔다. 서재에서 방금 한 일에 신이 나서 기분 좋게 씩 웃으며 아빠를 올려다보는 아들에게. 대니는 무슨 말을 하기 시작했고, 그때 그는 대니의 손을 잡아 꺾어, 쥐고 있던 타자기 지우개와 샤프를 떨어뜨리게 했다. 대니는 조그맣게 소리쳤다……, 아야……. 아야……. 솔직히 말하면……, 그것은 비명이었다. 분노의 뿌연 안개 속을 더듬고 기억해 내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뚝 하는 스파이크 존스의 화음 소리가 들렸다. 어디선가 웬디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머릿속의 안개 때문에 그녀의 목소리는 희미하게 들렸다. 이것은 두 사람만 알고 있었다. 그는 대니를 때려 주려고 붙잡았고, 커다란 어른 손가락이 가녀린 아이의 팔을 쥐었고, 주먹을 꽉 쥐었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는 크지 않았다. 크지 않았지만, 정말 컸다. 엄청난 소리였지만, 크지 않았다. 그저 화살처럼 붉은 안개를 갈라 놓을 정도의 소리였다. 하지만 그 사이로 햇빛이 비치는 대신 수치와 회한, 공포, 영혼의 고통스러운 동요가 먹구름처럼 밀려 들어왔다. 그 소리를 중심으로 과거와 그 후 미래가 분명히 나뉘었다. 연필심이 부러지거나 작은 불쏘시개를 무릎에 대고 꺾을 때 나는 그런 소리가. 그의 나머지 인생을 전부 포함한 미래가 시작되는 순간은 정적뿐이었다. 대니의 얼굴에서 혈색이 빠져나가며 하얗게 질리는 모습을, 언제나 커다랗던 두 눈이 훨씬 더 커지며 흐릿해지는 모습을 보며 잭은 아이가 정신을 잃고 종이와 맥주가 쏟아져 있는 바닥으로 쓰러지리라는 사실을 알았다. 다 죽어 가는 취한 목소리가 전부 되돌리고자, 그다지 크지 않은 뼈 부러지는 소리를 되돌리고 과거로 돌아갈 방법을 찾고자 했다. 어딘가에 그 분기점이 존재하지 않는가? 대니, 괜찮니? 대니가 비명을 지르자, 웬디가 달려와 대니의 팔목 아래가 비틀어진 모양을 보고는 놀라 숨을 멈추었다. 여느 평범한 가정이 속한 세계에서는, 팔이 그렇게 비틀어지는 법이 없다. 웬디는 아이를 빼앗아 품에 안으면서 횡설수설했다. ‘오 하느님 대니 오 하느님 오 하느님 제발 이 팔을 어떡해.’ 잭은 얼이 빠져 멍하니 선 채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는지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는 거기 서 있다가 아내와 눈이 마주쳤고, 웬디가 자신을 미워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미움이 실제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나중에야 웬디가 그날 밤 집을 나가 모텔에서 자고, 다음 날 아침 변호사를 찾거나 경찰에 신고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아내가 자신을 미워하고 그 때문에 홀로 휘청거린다는 느낌만을 받았다. 그는 지독한 기분이 되었다. 죽음이 눈앞에 닥치면 이런 느낌일 것이다. 그러자 웬디는 달려가 소리를 질러 대는 아이를 팔에 안은 채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잭은 그녀를 쫓아가지 않았다. 그저 난장판이 된 서재에 서서 맥주 냄새를 맡으며 생각에 잠겨 있었을 뿐…….)
‘이성을 잃었다지요.’
잭은 손으로 입을 북북 문지르고 왓슨을 따라 보일러실로 들어갔다. 안은 습했지만, 이마와 배, 다리에 끈적한 땀이 솟아나는 것은 습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기억 탓이었다. 2년 전의 그날 밤이 두 시간 전처럼 전부 떠올랐다. 세월의 흐름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때를 생각하면 수치와 혐오,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존재라는 자각이 전부 되살아났고, 그러면 늘 술 생각이 났고, 술에 대한 갈망은 더욱 어두운 절망을 불러왔다. 단 한 시간, 일주일도 하루도 아니고, 단 한 시간만이라도 술 마시고 싶은 생각에 이렇게 놀라지 않을 때가 과연 와 줄까?
“보일러요.” 왓슨이 알려 주었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빨간색과 파란색의 커다란 손수건을 꺼내어 팽 하고 코를 풀고는 잠깐 들여다보더니 다시 쑤셔 넣었다.
보일러는 긴 원통형 금속 탱크로, 여기저기 덧댄 구리 덮개가 씌워져 네 개의 시멘트 블록 위에 서 있었다. 그것은 복잡하게 얽혀 갈지자 모양으로 지하실 천장으로 올라가 거미줄 형상을 하고 있는 파이프와 수송관 아래 웅크리고 있었다. 잭의 오른쪽에는 옆방의 가열로에서 커다란 가열 파이프 두 개가 벽을 뚫고 나와 있었다.
“압력계는 여기 있소.” 왓슨이 톡톡 두드렸다. “제곱 인치당 파운드, 즉 ‘psi’요. 그건 알고 있을 거요. 이건 지금 200으로 맞추어 놓았고, 그럼 밤이 되면 객실은 좀 춥소. 알게 뭐요, 불평하는 손님은 거의 없으니. 어쨌든 9월이면 여기 못 와서 안달들을 하니. 게다가 얘는 아주 늙었소. 자원 봉사자 작업복보다도 덧댄 자리가 더 많아요.” 손수건이 또 나왔다. 팽. 흘끗 보고 다시 들어갔다.
“지랄 맞은 감기에 걸렸소.” 왓슨은 자기 이야기를 꺼냈다. “9월만 되면 걸려요. 이 아래서 저 늙은 것을 주무르다 밖에 나가서 잔디를 깎고 저기 로크 코트에서 낙엽을 긁고. 한데 나가면 감기 든다고 우리 늙은 엄마가 늘 말씀하셨지. 좋은 데 가셨을 거요. 6년 전에 돌아가셨소. 암에 걸리셨어. 암에 한번 걸렸다 하면 유언장 쓰는 수밖에 없지.
압력은 50, 아니면 60 이하로 유지해야 할 거요. 울먼 씨, 그 사람이 하루는 건물 서쪽, 다음 날은 중앙, 그 다음 날은 동쪽 이렇게 돌아가며 난방기를 켜라고 했소. 미친 거 아니오? 나는 그 작달막한 자식이 아주 맘에 안 들어. 하루 종일 쫑알쫑알쫑알, 발꿈치를 물고 달려가서 깔개에다 온통 오줌을 싸 놓는 개새끼 같은 자요. 찍 소리도 못 하는 겁쟁이 주제에. 총이 없을 때 그런 꼴을 봐야 한다니 애석한 일이지.
여기 보시오. 이 고리를 잡아당기면 이게 열리거든. 당신이 볼 수 있게 모두 표시를 해 놨소. 파란색 표시는 전부 동쪽에 있는 객실로 가는 거요. 붉은색은 중앙. 노란색은 서쪽이오. 서쪽에 난방기를 켤 때는 거기가 호텔에서 제일 추운 곳이란 걸 잊지 마시오. 거기 문제가 생기면 객실은 얼음장이 될 거요. 서쪽에 난방기를 돌리는 날에는 압력을 80까지 높여도 될 거요. 어쨌든 나라면 그렇게 할 거요.”
“위층 객실의 자동 온도 조절기는…….” 잭이 말을 꺼냈다.
왓슨이 고개를 홰홰 젓자 보송보송한 머리카락이 튀어 올랐다. “그건 연결이 안 돼 있소. 그저 전시용으로 달아 놓은 거요. 캘리포니아에서 온 사람들 중에는 그 짓거릴 하는 침실도 야자나무를 키울 정도로 덥지 않으면 안 되는 자들이 있소. 난방기는 전부 여기서 조절하는 거요. 하지만 압력은 잘 살펴봐야 돼요. 살살 움직이는 게 보이나?”
왓슨이 혼자 떠드는 동안 100에서 120psi로 올라간 주 계기반을 두드렸다. 잭은 갑자기 등 뒤가 오싹해졌다. 방금 무덤에 한 발자국 들어갔던 것이다. 왓슨이 압력 조절 핸들을 한 번 돌려 보일러를 열었다. 엄청난 쇳소리가 나더니 바늘은 91로 떨어졌다. 왓슨은 밸브를 돌려 닫았고 쇳소리는 차츰 사라졌다. 왓슨이 말했다.
“얘가 움직이거든. 저 땅딸보 울먼에게 말하면 회계 장부를 꺼내 들고 1982년까지는 새것을 살 여유가 없다고 세 시간 동안 설교를 할 거요. 내 장담하는데, 이 호텔 전체가 하늘 높이 날아갈 날이 언젠가 올 거요. 그저 그때 저 뚱땡이가 여기 있어서 로켓을 타고 같이 날아가 버리길 바랄 뿐이오. 나도 어머니처럼 마음씨가 좋았으면 얼마나 좋겠소. 어머니는 모든 사람들한테서 장점을 보실 수 있었거든. 그런데 나는 속이 좁아 터졌으니. 어쩌겠소, 타고난 대로 살아야지.
하루에 두 번 여기 내려오는 걸 잊지 마시오. 한 번은 밤에 자기 전에 들여다보시오. 압력을 확인해야 돼요. 잊는 날에는, 압력이 계속 올라가서 당신이랑 가족이 깨어나 보면 저놈의 달나라에 가 있을지도 몰라요. 압력을 조금만 빼 주면 아무 일 없을 거요.”
“맨 위는 뭡니까?”
“아, 250이라고 되어 있지만 그보다 훨씬 전에 터질 거요. 계기반 숫자가 180이 되면 여기 가까이 오면 안 돼요.”
“자동 차단 장치는 없습니까?”
“없소. 이건 그런 게 의무화되기 전에 만들어진 거요. 요즘은 연방 정부가 사사건건 간섭 아니오? FBI가 편지를 열어 보고 CIA가 전화를 도청하고……. 저 닉슨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시오. 참 안된 일이지.
하지만 여기 때맞추어 내려와 압력만 확인하면 아무 일 없을 거요. 그리고 그자가 원하는 대로 수송관의 스위치를 바꾸는 일도 잊지 마시오. 겨울이 유난히 따뜻하지 않는 한 객실 온도는 7도 이상 올라가지 않을 거요. 그리고 당신 숙소는 원하는 만큼 따뜻하게 하시오.”
“수도 배관은 어떻게 하지요?”
“맞소. 그 말을 하려던 참이오. 이 입구를 지나 저리로 갑시다.”
두 사람은 몇 킬로미터나 뻗어 있는 듯한 긴 직사각형 방으로 들어갔다. 왓슨이 줄을 잡아당기자 75와트짜리 알전구가 두 사람이 서 있는 자리에 희미한 불빛을 흔들흔들 비추었다. 바로 앞은 엘리베이터 통로의 바닥으로, 윤활유를 잔뜩 칠한 케이블이 직경 60미터짜리 도르래와 윤활유가 굳어 있는 거대한 모터 쪽으로 뻗어 있었다. 사방에 신문지 묶은 것과 상자가 쌓여 있었다. 다른 상자에는 기록이나 구매서 또는 영수증이라고 적혀 있었다. 절약! 퀴퀴한 냄새가 났다. 상자 중에는 옆구리가 터져 20년은 된 듯한 누런 종이를 바닥에 쏟아 놓고 있는 것도 있었다. 잭은 놀란 표정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오버룩의 역사가 이 썩어 가는 상자에 묻혀 여기 있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저 엘리베이터는 계속 돌려 줘야 하오.” 왓슨이 엄지손가락을 까딱하면서 말했다. “울먼이 엘리베이터 조사관에게 저녁을 내고 수리를 건너뛴 것을 알고 있지.”
“여기가 중앙 배관이 모여 있는 곳이오.” 두 사람 앞에는 큰 파이프가 다섯 개 놓여 있었는데, 그것은 전부 강철 밴드로 감아 죄어져 있었고 어둠 속으로 뻗어 올라간 다음 시야에서 사라졌다.
왓슨은 다용도 승강기 통로 옆의 선반을 가리켰다. 그 위에는 기름에 전 걸레 여러 개와 바인더가 하나 놓여 있었다. “여기에 배관 설계도가 전부 있소. 누수는 상관없을 거요. 그런 일은 없었으니. 하지만 파이프에 결빙이 일어나긴 해요. 그걸 막을 방법은 밤에 수도꼭지를 조금 열어 두는 수밖에 없거든. 그런데 이놈의 궁전에는 수도꼭지가 400개도 넘게 있어요. 저 위층의 뚱땡이가 수도 요금 고지서를 보면 덴버까지 들리도록 고함을 칠 거요. 그렇지 않소?”
“대단히 통찰력 있는 판단이라고 하겠습니다.”
왓슨은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
“어라, 당신 진짜 대학 출신이구먼. 꼭 책 읽듯이 말을 하네. 존경해요. 저 계집애들 같은 남자가 아니면 말이오. 그런 놈들이 많다잖소. 몇 년 전에 데모를 일으킨 자들이 누군지 아시오? 바로 동성애자들이오. 멋대로 할 수가 없으니까 힘을 빼야 되거든. 커밍 아웃을 한다고 하지. 빌어먹을, 대체 세상이 어찌되려는지.
자, 이게 얼어붙으면 바로 여기 승강기 통로 바로 위에서 얼 가능성이 제일 커요. 보다시피 여긴 불이 없거든. 그렇게 되면 이걸 쓰시오.”
그는 부서진 적황색 상자 속에 손을 넣더니 조그만 가스 토치3)를 꺼냈다.
“얼음이 언 게 보이면 밴드를 풀고 직접 불을 대 주면 되는 거요. 알겠소?”
“네. 하지만 설비실 밖에서 파이프가 얼면 어쩝니까?”
“당신이 할일을 잘 챙기고 따뜻하게 유지하면 그런 일은 없을 거요. 어쨌든 다른 파이프는 건드릴 수가 없소. 그러니 신경 쓰지 마시오. 아무 일 없을 테니. 여긴 아주 지저분한 곳이오. 온통 거미줄에다. 으스스해, 정말.”
“울먼 말로는 처음으로 동절기 관리인을 맡은 사람이 가족을 죽이고 자살했다던데.”
“어, 그 그레이디란 사람. 그런 짓을 할 사람이었지, 딱 보니 알겠더만. 달걀을 빨아먹는 개처럼 항상 입을 찢으면서 웃었거든. 막 시작할 때라 저 뚱땡이 울먼은 급료만 싸면 보스턴 살인마4)라도 채용했을 거요. 국립 공원 경비원 하나가 그들을 발견했지. 전화가 끊어졌더랬소. 온 가족이 3층 서쪽에 꽁꽁 얼어 있었다지. 애들이 너무 불쌍해. 여덟 살하고 여섯 살, 깜찍한 애들이었는데. 거 아주 난장판이었소. 저 울먼은 겨울철에 플로리다에 싸구려 리조트를 관리하러 내려가 있는데, 덴버까지 비행기로 와서는 사이드와인더에서 여기까지는 썰매에 돈을 주고 타고 왔다지. 길이 막혀서. 썰매라니, 어처구니가 없지 않소? 하늘이 두 쪽 나도 신문에 나는 건 막으려고 했지. 그건 아주 잘했소. 그건 사실이야. 《덴버 포스트》에 쪼가리 기사가 하나 났고, 저기 이스티스 파크에서 나오는 허름한 신문에도 나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소. 어느 기자 하나가 그 일을 전부 다시 파헤쳐서 그레이디를 조사하다가 스캔들을 밝혀냈다고 하기를 기다렸는데.”
“무슨 스캔들이오?”
왓슨은 어깨를 으쓱했다. “큰 호텔에는 스캔들이 있게 마련이지. 큰 호텔마다 유령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요. 왜냐? 뭐, 사람들이 오락가락하니까. 객실에서 제 머리에다 총을 쏘는 사람도 있고 심장마비나 뇌졸중에 걸리는 사람도 있지. 호텔에는 미신이 많아요. 13층도 없고, 13호 실도 없고, 들어오는 문 뒤에 거울도 없고, 그런 거지. 그 뭐냐, 바로 지난 7월에도 여자 하나가 죽었소. 울먼이 뒤처리를 했지. 하고말고. 그래서 한 시즌에 22,000달러를 받는 거 아니겠우. 내가 아무리 싫어해도 그자는 그만큼 벌거든. 사람들이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