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선자은
〈소녀 귀신 탐정 시리즈〉, 《그날의 기억》, 《마녀의 탄생》, 《위험한 게임 마니또》 같은 학교 폭력 이야기를 썼습니다. 사실 유일한 특기인 상상력을 살려서 재미있는 책을 쓰는 것을 더 즐깁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하기 위해서 종종 이렇게 경고장을 날리는 중입니다.
글 이재문
어린이들이 훨씬 많은 ‘학교’라는 나라에서 ‘어른’이라는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어린이를 유심히 살피고, 이해하고, 가까워지기를 바랍니다. 이 나라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이야기로 쓰기를 좋아합니다. 《식스팩》으로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대상을, 《몬스터 차일드》로 사계절어린이문학상 대상을 받았습니다. 《언니는 외계인》을 썼으며, 《친구의 친구》, 《바깥은 준비됐어》에 단편소설로 참여했습니다.
글 전여울
재미있는 일을 좋아하고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 장난치는 걸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내가 별생각 없이 치는 장난이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동화 《우리가 다른 우주에서 만나면》, 《윤초옥 실종 사건》, 《사진 속 그 애》, 《레벨 업 5학년》(공저)을 썼습니다.
글 황지영
동화와 청소년 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동화 《뛰어!》, 《달팽이도 달린다》, 《루리의 우주》, 《감추고 싶은 폴더》, 《햇빛초 대나무 숲에 새 글이 올라왔습니다》, 《우리 집에 왜 왔니?》, 《도개울이 어때서!》, 《짝짝이 양말》, 《리얼 마래》, 《할머니 가출 작전》 등과 청소년소설 《블랙박스: 세상에서 너를 지우려면》을 썼습니다. 웅진주니어 문학상과 마해송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만화 구정인
만화가. 만화 《비밀을 말할 시간》과 《기분이 없는 기분》을 쓰고 그렸고, 《나와 평등한 말》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 에이욥프로젝트
a boy를 재조합한 팀 이름처럼 소년스러움을 담은 다양한 일러스트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일상 탈출 구역》, 《일상 감시 구역》, 《페인트》 등 다양한 청소년 소설의 표지 및 본문 일러스트를 담당했습니다.
해설 김아미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연구자로, 서울대학교 빅데이터 혁신융합대학 연구교수와 경기도교육연구원 부연구위원을 역임하였습니다. 서울대학교에서 불어교육학을 전공하고 언론정보학을 부전공했습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교육공학으로 석사 학위를,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 교육학연구대학원에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확장된 미디어 리터러시 개념 정립과 데이터 리터러시, 디지털 권리 및 디지털 윤리, 아동 주도 미디어 문화 연구 방법론 등을 주제로 연구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의 우리 아이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의 이해》, 《젠더와 미디어 경험》(공저) 등을 썼으며 《미디어 교육 선언》(공역)을 옮겼습니다.
현우 A 죽었대.
하나초등학교 6학년 단체 채팅방에 메시지가 올라왔다. 하나초 6학년 단체 채팅방에는 6학년 아이들 대부분이 들어와 있었다. 하나초는 작은 학교인 터라 6학년이 세 반뿐이었다. 유치원 때부터 보아서 웬만하면 서로 다 아는 아이들은 학교에는 철저히 비밀로 하고 작년부터 이 채팅방에 참여했다.
인경은 현우가 보낸 메시지가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아주 간단한 문장이었는데도 말이다. 60여 명이 있는 단체 채팅방에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A라고 불리는 안나라에 대한 이야기라는 걸 가장 먼저 눈치챈 것은 1반 아이들이었다.
우리 반 A?
무슨 소리야. 걔가 갑자기 왜 죽냐?
방학하고 학원에 안 나오긴 하던데…….
여행 간 거 아냐?
이현우, 거짓말하지 마. 걔랑 친하지도 않으면서 네가 어떻게 알아?
맞아. 그런 농담 무섭다.
현우는 물러서지 않았다.
현우 나도 어쩌다 알게 됐어. 사고는 아니래.
현우는 시시껄렁한 농담을 할 애가 아니었다. 평소 생각이 깊고 행동이 어른스러운데다가 공부도 잘하는 현우는 아이들 노는 데 잘 끼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신뢰하는 아이였다.
말도 안 돼.
갑자기?
요즘 못 보긴 했어.
사고는 아니라는 말에 인경은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건강하던 A가 갑자기 병으로 죽을 리도 없었다. 채팅방의 아이들은 모두가 짠 듯이 되묻지 않았다. 이제 아이들이 궁금한 것은 A가 어떻게 죽었느냐가 아니라, 왜 죽었느냐였다.
인경아, 넌 알고 있었어?
누군가 인경을 언급했다. 사실 인경은 A와 오랜 기간 단짝 친구였다.
인경이 A랑 사이 안 좋아진 거 몰라?
그래도 가장 먼저 소식 들었겠지. A랑 엄청 친했잖아.
정작 인경은 아무 말도 안 하는데, 아이들끼리 답을 주고받았다.
A 죽은 거, 혹시 인경이가 같이 안 놀아서 그런 거 아냐?
인경이 A에게 한 행동을 대놓고 말하는 애가 나타났다. 인경은 오프라인에서, 특히 학교에서는 A를 불편해하는 티를 내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다 알고 있던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A를 편들기 시작했다.
충격받아서 그랬나?
불쌍해.
얼마나 힘들었으면…….
죽은 A를 동정하는 글이 인경은 자신을 비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인경은 당장이라도 채팅방을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나가 버리면 정말 자기 때문에 A가 죽었다고 인정하는 꼴이 되는 거였다.
‘난 아무 잘못 없어.’
인경은 이를 악물었지만, 머릿속에는 자꾸 A의 모습이 떠올랐다. A를 마지막으로 본 여름 방학식 날, 원망과 슬픔으로 가득 찬 A의 눈빛. 그리고 단체 채팅방에서 A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
A 안녕…….
‘아닐 거야.’
인경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A가 그렇게 된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래야 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싸우고 멀어지기도 하는 게 친구 사이였다. 무리를 지어 놀다가도 한 명씩 따돌리는 건 흔한 일이었다. 게다가 학교나 밖에서 A를 마주칠 때는 따돌리는 티를 전혀 내지 않았다. 학교 폭력이니 따돌림이니 입에 오르내리는 일이 없도록 신경 썼다.
채팅방에서도 A한테 별다른 일을 한 건 아니었다. A 모르게 다른 친구들이랑 따로 단체 채팅방을 만든다거나, A가 메시지를 보내면 읽고도 못 본 척 대답하지 않는 등 싫은 티만 조금 냈을 뿐이었다. 그런 일로 사람이 죽을 리 없었다. 하지만 인경은 내심 마음이 여리던 A가 떠올라 견딜 수 없었다.
아무리 방학이라도 학교에서는 학생들한테 장례식도 안 알려 주나?
사고가 아니라며. A 부모님이 알리고 싶지 않다고 하지 않았을까?
조금 전까지 A가 불쌍하다던 아이들은 난데없이 다들 탐정이 되어서 추리를 하기 바빴다. 인경은 채팅방에 새로운 메시지가 올라올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A네 집 어디지?
왜? 가 보게?
아이들이 A의 집 주소를 자신에게 물어볼까 봐 인경은 눈을 질끈 감았다. 가 본 지 꽤 오래됐지만, 인경은 A가 무슨 아파트의 몇 동 몇 호에 살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만약 정말 아이들이 A의 집에 찾아간다면, A가 죽은 이유가 밝혀진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인경은 두려웠다.
다행히 A의 집에 가 보자는 이야기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다들 그저 생각나는 대로 한마디씩 던지며 채팅에 참여하고 있을 뿐이었다.
진짜 안됐어.
유서는 있을까?
‘유서’라는 단어에 인경은 눈앞이 번쩍했다.
‘진짜 유서가 있으면 어쩌지? 만약 거기에 내 이름이라도 있으면…….’
인경은 덜컥 겁이 났다. 채팅방에서 한 일만큼은 누구에게도 알려져서는 안 됐다. 하지만 완벽한 비밀은 세상에 없었다. 문득 인경은 ‘친친 방’ 아이들이 생각났다. 친친 방은 A와 놀던 아이들이 A만 빼고 따로 만든 채팅방이다. 물론 이곳에는 인경도 들어가 있다. 유서에 인경이 A에게 한 짓이 적혀 있지 않더라도, 내용을 파고들면 친친 방 아이들 중 누군가 입을 열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인경은 화가 났다. A에게, 자기 자신에게, 친친 방 아이들에게.
‘나만 그랬어? 걔들도 같이 했잖아.’
인경의 화는 곧 6학년 단체 채팅방에 있는 모두에게로 향했다.
인경 너희는 뭐, A한테 잘해 주기만 했어? A가 단체 채팅방 싫다고 나갔을 때, 너희가 자꾸 다시 초대했잖아.
인경이 충동적으로 쏘아 댄 말에 모두가 침묵했다. 인경이 던진 메시지를 읽은 아이들의 수가 늘어 가는 게 채팅 창에 표시되었다. 인경은 묘한 희열을 느꼈다.
인경 나가도 도로 잡혀 온다고 걔가 얼마나 힘들어했는데. 꼭 감옥에 갇힌 거 같다고. 너희가 A한테 한 것도 폭력인 거 알지?
그렇게 채팅방에 말을 쏟아 내고 나니, 인경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A와 단짝이었던 시절로.
작년에 세 반 아이들이 거의 다 모인 단체 채팅방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만 해도 인경과 A는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당시 A는 그 단체 채팅방에 들어가기를 꺼려 했다. 규칙을 어기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다. 인경네 학교에서는 아이들끼리 단체 채팅방을 만드는 걸 금지했다. 단체 채팅방에서 괴롭힘이 종종 일어나서 폭력 방지 차원에서 학교에서 규칙을 정한 것이다.
A는 친한 친구들끼리 모인 채팅방 한 곳을 제외한 다른 단체 채팅방에는 안 들어가려 했다. 친한 친구 다섯 명이 있는 채팅방도 인경이 겨우겨우 설득해서 들어간 거였다. 인경은 A가 답답하다고 생각했다. 단체 채팅방 좀 들어오면 어떠냐고, 다들 몰래 하지 않느냐고 인경이 아무리 말해도 A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A는 6학년 단체 채팅방에서 ‘나가기’ 버튼을 누르더니, 결국 강제로 다시 돌아와 아이들에게 싫은 소리까지 들었다.
왜 나가? 선생님한테 다 말하려고?
자기만 착한 척하고 있네.
A는 끊임없이 불러들여진 단체 채팅방에서 아이들이 뱉는 말에 괴로워하다가, 결국 ‘초대 거부 및 나가기’ 버튼을 눌러 영원히 나가 버렸다.
박인경, 찔리냐?
멍하니 A를 떠올리던 인경을 누군가 퍼뜩 깨웠다. 그러자 채팅방에 다시 인경을 비난하는 말들이 올라왔다.
진짜 박인경 때문인가 보네.
자기가 한 행동은 생각 안 하나 봐. 웃긴다.
살인자.
인경은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숨이 턱 막혔다. 여기에 더 있을 수가 없었다. 채팅방에서 ‘나가기’를 누르고 나서야 인경은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다시 인경을 초대했다. 인경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분명히 다들 인경이 왜 채팅방을 나갔는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다시 초대하는 건 잔인한 일이었다. 인경은 벗어날 수 없는 감옥에 갇힌 것 같았다. 그제야 인경은 A가 왜 단체 채팅방에 초대받는 게 괴롭다고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주은과 친구들이 처음 만든 단체 채팅방의 참여자는 다섯 명이다. 주은, 인경, 송아, 민지 그리고 A.
A는 채팅방에서 본명인 ‘나라’보다 A라고 불리기를 원했다.
주은 왜?
A 음, 현실의 나와 이곳의 나를 구분하기 위해서랄까.
주은 아…….
주은은 A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더 묻지 않았다. 사실 주은과 A는 같은 무리에 있기만 할 뿐, 별로 친하지 않았다.
주은은 5학년 말에 이 학교로 전학 왔다. 6학년에 올라와 같은 반이 된 인경과 앞뒤로 앉게 되었을 때, 주은은 드디어 마음에 드는 친구를 찾은 느낌이 들었다. 인경은 주은과 같은 아이돌 멤버를 좋아했고, 같은 소셜 미디어 동영상 채널을 구독하고 있었다. 주은은 인경과 친해지며, 자연히 인경이 속한 네 명의 무리에 끼게 되었다.
무리에서 함께 놀 때마다 인경 곁에는 늘 A가 있었다. A는 말수가 적은 아이였는데, 평소에 인경과 별다른 대화를 나누는 것 같지 않았다. 그저 유치원 때부터 함께한 오랜 시간이 자연스럽게 둘을 같이 두는 것처럼 보였다. 주은은 둘을 보며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A와 자신이 인경을 두고 경쟁한다면 출발선 자체가 다른 거였다.
주은은 A를 제칠 방법을 찾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인경과 자신 둘만의 채팅방을 만들었고, 기회를 봐서 다른 아이들을 차례로 초대했다. 둘이 이야기하다가 “참, 송아가 그거 잘 아는데 한번 물어볼까?” 하며 은근슬쩍 다른 아이를 초대하는 식이었다.
이렇게 A만 빠진 네 명의 채팅방이 만들어졌고, 채팅방 이름도 생겼다. ‘친친 방’. 친한 친구들의 대화방이라는 뜻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A까지 있는 다섯 명의 채팅방 대신 친친 방에만 줄기차게 대화가 올라왔다. A가 채팅방에서 먼저 말을 꺼내거나 대화에 적극 참여하는 일은 드물었기에, 친친 방은 다섯 명이 있는 채팅방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A가 없다는 것 말고는.
6학년 단체 채팅방에 A의 소식이 전해졌을 때 주은은 크게 놀랐다. 주은은 바로 친친 방에 들어가 아이들과 나눴던 대화를 다시 확인해 보았다.
송아 A도 체험 학습 가겠지?
인경 몰라.
세 달 전쯤 놀이공원으로 체험 학습을 가게 되었을 때 나눈 대화였다. 놀이공원의 놀이 기구는 대부분 두 사람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