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하버드 공개강의연구회
하버드 공개강의를 연구 및 전파하는 전문협력기구다. 주로 하버드 공개강의의 핵심 내용을 선별ㆍ정리하고 다양한 형식으로 널리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하버드 공개강의는 이미 잘 알려진 정설이나 보편적 일반론 혹은 보기가 될 만한 내용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반대로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깊은 사고와 논쟁을 거치며 천천히 받아들이게 하는 방식으로 강의가 진행된다. 그 안에 담긴 학술, 사상, 예술의 내용은 모든 사람이 주목하고 깊이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다. 현재 하버드 공개강의연구회에는 경제부 기자, 교육 종사자, 마케팅 전문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하고 있다. 모두 삶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바탕으로 하버드 공개강의를 연구하고 있다.
하버드 공개강의연구회는 2012년부터 중국철도출판사와 손잡고 하버드 공개강의 시리즈 도서 15종을 펴냈으며, 이후 몇 차례 수정을 거치면서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옮긴이 송은진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중국 정치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상하이 복단대학과 베이징 대외경제무역대학에서 수학했다. 책임질 수 있는 번역을 위해 모든 작품에 최선을 다한다. 현재 중국어 통역가, 강사로 일하는 동시에 번역 에이전시 엔터스코리아에서 출판기획 및 중국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는 『CEO의 코스요리』 ,『퇴근길 심리학 공부』 ,『하버드 협상 강의』 ,『하버드 마케팅 강의』 ,『위기를 경영하라』 ,『하버드 인생특강』 ,『논어로 리드하라』 등이 있다.
《哈佛心理课》
作者:哈佛公开课研究会
copyright ⓒ2016 by China Railway Publishing House Co.,L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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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n Translation Copyright ⓒ2020 by Little Cosmos
Korean edition is published by arrangement with China Railway Publishing House Co.,Ltd. through EntersKorea Co.,Ltd.
이 책의 한국어판 저작권은 (주)엔터스코리아를 통한 중국의 Railway Publishing House Co.,Ltd. 와의 계약으로 도서출판 작은 우주가 소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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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하버드 대학Harvard University은 100년이 넘는 역사가 있는 세계 최고의 명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하버드라는 타이틀은 곧 성공을 의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 거의 모든 영역의 최정상에 하버드 출신이 포진했기 때문이다. 또 하버드는 세계 최초로 심리학과를 개설한 대학으로 수많은 훌륭한 심리학자를 배출해 심리학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처음에는 ‘심리학’을 난해하고 신비한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아주 간단한 이론인데도 ‘심리학적으로’나 ‘심리학 법칙에 따르면’이라는 말이 더해지면 왠지 어렵다고 느꼈다. 사실 심리학은 아주 쉽게 접할 수 있는 과학으로 일상의 다양한 현상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하버드의 한 심리학 교수는 심리학의 궁극적인 목표를 이렇게 설명했다. “심리학은 연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학문이 아니다. 심리학의 목표는 인류를 더 행복하게 하는 데 있다.”
지금은 심리학 지식이 꽤 광범위하게 보급되었다. 덕분에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어떻게 하면 심리학 지식을 이용해서 심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에 관심을 보인다.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현대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단순히 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남들보다 한 발 더 앞서려면 반드시 심리학 지식을 쌓아 효율적으로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 현대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건강한 심리상태다.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은 모두 많거나 적은 심리적 문제를 안고 산다. 특히 경쟁이 과열되면서 심리적 압박은 점점 강도가 세지고 있다. 이런 문제들은 무시나 회피로는 절대 해결할 수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심리학 지식을 이용해서 자신의 내면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좋은 심리상태를 유지하면서 스스로 찾은 수준 높은 행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행복해지는 법, 성공하는 법, 감정을 제어하는 법, 좋은 인간관계를 쌓는 법을 알려준다. 또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직장에서 활약하는 법, 우위를 점해서 승승장구하는 법, 존중받는 법, 카리스마 넘치는 사람이 되는 법 등을 깨닫게 될 것이다.
심리학은 복잡해 보이지만 간단하고, 어려워 보이지만 재미있는 학문이다. 심리학을 배워 보겠다고 딱딱하고 난해한 심리학 전문 서적을 들고 죽어라 외울 필요는 없다. 가볍고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이론과 실제가 하나로 잘 결합한 심리학 서적만으로도 자신과 타인의 내면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신체뿐 아니라 심리까지 건강하게 유지하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다. 이 책은 하버드 심리학 공개강의의 핵심내용을 선정, 정리했으며 주제마다 재미있고 생각할 부분이 있는 이야기를 더했다.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실용적인 이론을 설명함으로써 독자들을 심리학 세계로 안내하고자 했다.
이 책의 핵심은 배운 것을 실제에 활용하는 데 있다. 독자들이 이 책에 소개된 다양한 사례를 통해 심리학 이론과 방법을 이해하고 내면의 고민과 고뇌를 말끔히 해소하기 바란다.
탈 벤 샤하르 교수가 하버드에서 강의한 행복학은 학생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이유는 바로 이 강의에서 행복해지는 방법을 나 자신 스스로에게서 배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 장에서는 샤하르 교수가 강의에서 소개한 행복을 얻는 작은 비결들을 소개한다. 독자들은 행복의 문을 여는 황금열쇠를 찾을 것이다.
행복 민감도를 사수하라!
행복이란 무엇인가? 행복은 내면의 감각이다.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행복을 감지하는 ‘행복 민감도’를 높게 유지해야 한다. 탈 벤 샤하르Tal Ben-Shahar 교수가 하버드에서 교양 선택과목으로 강의한 ‘행복학’이 학생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던 까닭은 그가 행복의 본질뿐 아니라 어떻게 행복을 느껴야 하는지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행복은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을 따른다. 즉 행복의 크기는 끝도 없이 커지지 않으며 오히려 점점 줄어든다. 이는 곧 우리 내면에서 행복에 대한 민감도가 약해진다는 이야기다. 사실 행복은 계속 더 많이 얻는 것이 아니라 만족할 줄 아는 것에서 온다. 다음은 행복의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에 관한 이야기다.
길거리를 헤매며 여러 날 굶주린 거지가 현자賢者를 만났다. 거지는 현자가 건넨 빵 한 덩이를 허겁지겁 먹으며 “정말 감사합니다. 이 빵은 정말이지 세상에서 가장 맛있네요!”라고 말했다. 거지가 빵 하나를 순식간에 먹어 치우자 현자는 두 번째 빵을 주었다. 거지는 이번에도 행복에 겨운 표정으로 신나게 다 먹었다. 그러자 현자는 다시 세 번째 빵을 건넸다. 거지는 이번에도 다 먹었지만, 배가 많이 불렀다. 급기야 현자가 네 번째 빵을 건넸을 때, 거지의 얼굴에는 고통스러운 표정이 드러났다. 첫 번째 빵을 먹을 때 느꼈던 희열과 쾌락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사람은 기본적인 욕망을 만족하면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얻는 것이 많고 만족도가 커질수록 행복의 크기는 점차 감소한다. 심지어 전혀 행복하지 않은 지경까지 갈 수도 있다. 빵을 먹을수록 희열과 쾌락을 잃어버린 거지처럼 말이다. 그러니 무조건 많이 가졌다고 행복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간단히 말해서 행복은 일종의 ‘깨닫는 능력’이다.
행복은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을 따른다. 이는 정말로 행복한 일이 줄어들어서가 아니라 사람의 내면에서 어떠한 변화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심리상태가 부정적이고 불안정하면 아주 약간만 부족해도 쉽게 흥분한다. 반대로 주변 환경이 이전보다 나아지면 그에 따라 욕망도 함께 커진다.
도무지 행복을 느끼기 어렵다면 주변을 돌아보자. 어쩌면 행복은 당신의 주변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단지 그것을 알아차릴 내면의 행복 민감도가 떨어졌을 뿐이다.
어느 날 왕은 군사를 이끌고 전쟁에 나섰으나 크게 패하고 말았다. 그는 추적하는 적을 피해 남은 병사들과 함께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숲에서 몸을 웅크리고 숨어 있던 이틀 동안, 그들은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다. 그러던 중 나무를 하러 온 노인이 왕을 보고서 불쌍히 여겨 옥수수와 배추로 만든 떡을 조금 가져다주었다. 잔뜩 굶주렸던 왕은 떡을 순식간에 전부 먹어 치웠다. 천국 같은 맛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는 노인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면서 이 맛있는 떡이 대체 무엇이냐고 물었다. 노인은 이것이 ‘굶주림’이라는 떡이라고 말했다.
후에 궁으로 무사히 돌아온 왕은 요리사에게 ‘굶주림’을 설명해주고 어서 만들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아무리 여러 번 고쳐가며 만들어도 도통 숲에서 먹었던 그 맛이 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왕은 사람을 보내 ‘굶주림’을 주었던 그 노인을 찾아오게 했다. 노인이 ‘굶주림’을 한 바구니 가득 만들어 바치자 왕은 크게 반기며 먹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숲에서 먹었던 그 맛이 아니었다.
사실 궁정 요리사가 만든 떡도 노인이 만든 ‘굶주림’과 같은 떡이었다. 하지만 왕이 궁에 돌아온 후 매일 산해진미를 먹어서 ‘굶주림’의 그 황홀한 맛이 사라졌을 뿐이었다.
행복은 사람이 느끼는 일종의 감각에 지나지 않는다. 알다시피 감각은 상당히 미묘하고 변화무쌍하다. 똑같은 대상이라도 시간, 장소, 환경에 따라 그 느낌이 달라진다.
하버드 행복학에 따르면 행복은 추구에서 생겨나며 희망과 필요를 따라온다. 하지만 왔더라도 계속 있지 않으며 객관조건이 변화하면 길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처럼 금세 사라진다. 행복은 어떤 때, 어떤 장소에 머무르지 않는다.
행복하기 바란다면 자기 삶 속에서 적극적으로 찾고, 깨닫고, 느껴야 한다. 삶은 신이 우리에게 내린 축복이다. 연인이 로맨틱하지 않아 서운하다면 외로워하는 솔로들을 생각하라. 아이의 지능이 평범한 수준이라 아쉽다면 아이를 원해도 낳지 못하는 부모를 생각하라. 당신은 이미 충분히 행복하지 않은가?
행복이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에 따라 어느 순간 홀연히 사라지지 않게 하려면 끊임없이 자신을 일깨워야 한다. 삶의 곳곳에 행복이 있으니 그것을 느끼고, 깨닫고, 발견해야 한다고.
행복은 가끔 발생하는 행운이라기보다 매일 내면에서 얻는 작은 성과라고 말해야 맞다.
- 프랭클린 루스벨트 -
행복은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가장 많이 느끼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감정이 다. 그러니 더 많이 가지려고 힘들게 애쓰기보다 내면의 행복 민감도를 높이는 데 더 집중해야 한다.
아주 평범한 즐거움이 행복을 만든다.
프랑스 작가 로맹 롤랑Romain Rolland은 행복이 ‘영혼의 향기’라고 말했다. 그렇다. 행복은 영혼이 뿜어내는 향기이고, 내면이 즐거울 때만 그 아름다운 행복의 향기에 젖을 수 있다. 행복은 수천, 수만 년 전부터 인류가 추구해온 삶의 상태다. 사실상 인생이란 끊임없이 평안을 찾고, 느끼고, 깨닫고, 비우고, 만족하면서 행복을 다져나가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행복은 특정한 시간, 특정한 장소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순간의 즐거움과 평안, 다시 말해 어떤 일이 일어난 바로 그때 느끼는 만족이다. 인생의 행복은 이러한 순간의 작은 행복들이 하나하나 엮여 만들어진다. 행복은 손에 쥔 물질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며 감각이다.
행복에는 크기가 없다. 행복은 일종의 ‘이지적인 즐거움’이며,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이 곧 행복이다. 또 행복은 내면의 즐거움이 자연스레 드러나는 것으로 그 안에는 어떠한 불만이나 악의도 숨겨져 있지 않다.
미시간 대학University of Michigan이 2004년 전 세계 82개국을 대상으로 한 ‘세계 가치관 조사’에 따르면 행복지수 1위를 차지한 나라는 멕시코였다. 세계 최강국이라는 미국은 15위, 일본은 더 낮은 42위에 불과했다.
조사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행복지수는 경제력과 정비례하지 않는다. 행복은 감정, 구체적으로 만족, 무욕無欲, 안정, 즐거움의 감정이지 무슨 대단히 심오하고 신비스러운 것이 아니다. 우열이나 귀천의 구분도 없다. 부의 크기 역시 행복의 일부분일 뿐이다.
심리학의 관점에서 주관적인 행복은 곧 긍정적인 태도를 가리킨다. 펜실베이니아 대학University of Pennsylvania의 교수로 긍정 심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은 ‘H=S+C+V’이라는 공식을 내놓았다. 그에 따르면 행복의 총량Happiness은 선천적 특성Set range, 후천적 환경Circumstances of your life,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자율성Voluntary control의 총합이다. 이 중에서 우리가 키울 수 있는 부분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자율성V’뿐이다. 즉 행복의 총량을 키우려면 스스로 즐거움, 만족, 자신감, 감동 같은 ‘희열의 감정’을 느끼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이야기다. 더불어 실현 가능한 삶의 목표를 세울 줄 알아야 한다.
지금 행복하지 않다고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은 대부분 현실과 맞지 않는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즐겁지 않고, 즐겁지 않으니 행복할 리 없다. 이런 사람은 자기 내면을 좀 더 단순하게 만들어서 행복이 가까이 다가오게 할 필요가 있다. 주변에서 작은 즐거움과 만족을 느낄 만한 일들을 더 많이 찾아 주관적인 행복을 느끼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평범한 생활 속에서도 행복과 조우할 수 있다.
텍사스 대학University of Texas 심리학 교수 스나이더Charles R. Snyder의 연구에 따르면 늘 기분이 좋고 삶에 대한 희망이 가득한 사람은 자기 격려 능력이 뛰어나다. 언제나 현실에 맞게 실현 가능성이 큰 목표를 추구하는 그들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서 목표를 완수할 줄 안다.
당신 곁에 이미 행복이 있는데 혹시 엉뚱한 곳을 헤매고 있지는 않은가? 내면이 복잡하지 않아야 자기 주변에 숨어 있는 행복을 알아볼 수 있다. 따사로운 햇볕, 싱그러운 푸른 나뭇잎, 아름답게 핀 꽃 한 송이……, 어쩌면 가장 알아차리기 어려운 일이 가장 행복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행복은 크기도 우열도 귀천도 없으며 그저 자기 내면의 즐거움일 뿐이다.
마음이 즐거우면 행복이 당신에게서 멀지 않다. 귀하고 화려한 물질 조건은 필요하지 않으며 평범한 즐거움 속에서 행복을 느끼기만 하면 된다.
행복은 삶의 유일한 기준이자 모든 목표의 최종 목표다.
행복은 즐거움과 의미가 만나는 곳에 있다.
- 하버드 행복학 교수 탈 벤 샤하르 -
행복은 물에 비친 달처럼 가질 수 없는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분명히 가까이에 있으나 당신이 무시한 감정이다. 행복하려면 복잡한 내면을 비워 단순하게 만들고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일상의 작은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욕망, 당신과 행복 사이에 놓인 벽
당신이 행복으로 가는 길은 왜 그토록 순탄하지 않은가? 지나쳐버린 행복에 흐느껴 울면서도 행복으로 향한 길 위에 놓인 장애물들을 치우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단순하게 말하자면 한 사람의 인생은 그가 선택하거나 포기한 결과다. 살면서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할 것이라면 당당하게 나서야겠지만, 손대지 말아야 할 것은 의연하게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얻는 것은 쉽게 받아들여도, 포기하려면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다. 인생의 배를 타고 행복이라는 목표 지점까지 무사히 항해하려면 앞을 가로막은 벽, 즉 욕망을 줄여야 한다.
심리학자들은 다양한 연구를 통해 욕망이 인간의 본성임을 증명했다. 욕심이 없다는 칭찬은 그 사람에게 아무런 욕망이나 사심이 없다는 뜻이 아니다. 도덕과 이성의 힘으로 타인을 생각해서 자신의 이익을 일정 부분 포기했으니 훌륭하다는 의미다.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고 단지 그것을 드러내는 정도가 각기 다를 뿐이다.
사람은 욕망을 가지고 태어나 평생 그 타고난 욕망과 뒤엉켜 살며 고뇌한다. 욕망 자체는 크게 비난할 대상이 아니지만, 그 정도가 과하거나 도덕적 경계를 넘어선다면 분명히 비난의 대상이 된다. 욕망이 커지는 걸 무조건 경계할 필요는 없다. 추구하고픈 것이 너무 많은 이 세상에서 욕망은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욕망이 없으면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필요가 없으면 인류는 발전을 멈출 것이다. 관건은 욕망을 대하는 태도다. 욕망을 자유롭게 분출할 때와 절제할 때를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욕망은 끝도 없이 커지고 삶은 그 안에 파묻혀 방향을 잃을 것이다.
처음에 조물주는 지네를 창조하면서 발을 만들어주지 않았다. 지네는 발이 없어도 빠르게 기어 다닐 수 있었기 때문에 전혀 불만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네는 사슴과 노루가 엄청 빠른 속도로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기분이 크게 상했다. 쟤네들은 발이 있으니까 나보다 훨씬 빨리 뛰잖아, 나도 발만 있으면 더 빨리 달릴 수 있는데! 이때부터 지네는 사슴과 노루처럼 되고 싶어서 간절히 기도했다. 신이시여! 제게도 다른 동물들처럼 발을 만들어주세요!
지네의 간곡한 기도를 들은 조물주는 그에게 아주 많은 발을 내려주고 원하는 만큼 가져가라고 말했다. 눈앞에 놓인 수많은 발을 보고 흥분한 지네는 냉큼 발을 집어 들고 하나, 하나 몸에 붙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지네는 머리부터 꼬리까지 빈틈 하나 없이 발들이 생겼다.
지네는 자기 몸 전체에 붙은 발들을 보고 희희낙락했다. 이제 나도 엄청 빠르게 달릴 수 있어! 그런데 신이 나서 한 번 뛰어보려는 순간, 발들이 도무지 말을 듣지 않았다. 앞으로 가려는 생각과 달리 발들은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지네는 한참이나 온 정신을 집중한 끝에 간신히 중구난방으로 움직이던 발들을 한 방향으로 돌려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뛰기는커녕 예전보다 훨씬 느리게 걷는 데 만족해야 했다.
지네는 끝도 없이 탐욕을 부려 어떻게든 가능한 한 많은 발을 몸에 붙이는 바람에 이전보다 더 불편하게 살게 되었다. 사회와 과학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물질이 나날이 풍부해지고,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졌다. 그 안에서 명예, 이익, 부, 각종 물질에 사로잡힌 사람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사람들은 늘 뭔가를 얻고자 하며 모든 것을 차지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도무지 내려놓지도 포기하지도 못한다. 그 바람에 늘 걱정, 초조, 불안과 갈등에 시달리며 사는 게 피곤한 지경에 이르렀다.
태국 방콕을 여행하던 한 일본인이 기념품을 파는 작은 노점에서 물건을 구경했다. 노점을 지키는 젊은 여자는 밝고 상냥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일본인이 마음에 드는 작은 기념품 세 개를 골라 가격을 묻자 그녀는 개당 200바트라고 말했다. 일본인은 개당 150바트로 깎아서 살 요량으로 한참이나 흥정을 시도했지만, 여자는 끝까지 깎아주지 않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200바트짜리 물건을 팔면 사장님이 내게 20바트를 줘요. 150바트에 팔면 나는 한 푼도 손에 쥐지 못한다고요.”
잠시 고민하던 일본인이 아이디어를 내놨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개당 120바트에 팔면, 따로 당신에게 30바트씩 줄게요. 그러면 사장한테 받는 돈보다 더 많이 받을 수 있잖아요. 나도 원하는 가격에 물건을 사고요. 우리 둘 다 좋은 방법 아니에요? 오케이?”
일본인은 드디어 흥정이 성공하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본인이 “걱정할 필요 없어요. 사장은 절대 모를 거예요.”라고 말하자, 그녀는 더 결연한 눈빛으로 고개를 저으며 조용히 대꾸했다. “부처님이 알잖아요.” 일본인은 여자의 순수한 눈을 바라보며 잠시 말을 잃었다.
아무도 모르게 이익을 얻을 수 있을 때, 당신은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가? 그 욕망의 시험을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많은 사람이 스스로 자신을 욕망의 전차에 묶어 놓고 달리게 한다. 그들은 숨이 턱까지 차올라도 잠시 멈춰서 쉴 생각을 하지 못한다. 끝도 없이 커지는 일, 책임, 인간관계, 물질에 대한 욕망이 현대인의 시공간을 모두 점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은 그 욕망의 대가를 치르느라 쉴 새 없이 달리고 또 달린다. 먹고 쉬고 잠자는 시간까지 모두 쏟아붓는다. 더 많은 돈을 벌려고, 더 좋은 직장을 구하려고, 더 좋은 집에 살려고, 더 좋은 차를 몰려고 갖은 애를 쓴다. 하지만 욕망을 채우고 나면 이상하게도 멍한 기분이 든다. 가진 에너지를 모두 짜내어서 쏟아부은 덕에 표면적으로는 물질적인 조건을 모두 만족했지만, 그로부터 얻는 즐거움은 생각만큼 크지 않다. 왜 그럴까?
물질을 향한 과도한 욕망은 행복과 나 사이에 높이 선 벽과 같다. 이 벽은 행복의 문이 보이지 않게 가려서 우리가 행복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만든다. 행복하려면 반드시 이 벽을 허물어야 한다. 모든 물질과 육체는 내면의 조종을 받아야지, 나를 이끄는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 더 수준 높은 행복을 추구한다면 물질적, 외적 조건을 모두 내려놓음으로써 욕망의 벽을 무너뜨리고 내면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삶 자체의 순수함을 추구하면서 만족하며 자유롭게 행복으로 나아가야 한다.
사심 없이 사랑할 때,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
- 하버드 금언 -
행복은 좋은 차나 좋은 집처럼 화려한 물질에 있지 않다. 행복은 명리에 담박하고, 한없이 선하며, 포용하는 가슴이다. 까다롭거나 각박하지 않으며, 원망도 걱정도 없이 사는 삶이다. 부유하나 도리에 어긋나지 않고, 가난하나 탐하지 않으며, 끝도 없이 욕망을 키우지 않는 태도다. 이것이 바로 행복의 지혜다.
원망을 멈추면 행복해질 수 있다.
빌 게이츠는 행복한 사람이 되려면 인생이 불공평하다고 원망하지 말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불공평한 인생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사람만이 행복해질 수 있고, 행복의 진면목을 본다. 이런 사람과 행복 사이에는 어떠한 괴리도 없다.
살다 보면 마음을 어지럽히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아침 출근길에 지독한 교통체증으로 길 위에 꼼짝없이 묶여 있거나 이유도 없이 상사에게 혼이 난다든지, 모처럼 외출하려는데 날이 궂을 수도 있다. 또 좀처럼 낫지 않는 병 때문에 고통스럽거나 생활 스트레스가 겹겹이 쌓여 심신이 짓눌리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이런 때에 사람들은 원망으로 내면의 불만을 분출하곤 한다. 이런 일이 잦으면 원망이 습관으로 자리 잡고, 현실에서 부딪히는 모순과 갈등에 대항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하지만 원망으로는 절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오히려 부정적 감정을 더 격화해 행복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한 젊은 농부가 수확한 농산물을 부근의 여러 마을에 가져가서 팔았다. 하루는 강 건너에 있는 마을에 가려는데 그날따라 햇볕이 불같이 타올라 여간 더운 것이 아니었다. 뙤약볕에 혼자 농산물을 전부 배에 싣고 노를 저어 가려니 땀이 쉴 새 없이 등을 타고 흘렀다. 농부는 힘들어도 얼른 강 건너로 가서 쉬는 게 낫다 싶어 부지런히 노를 저었다. 그때 저 앞에 강물을 따라 흘러 내려오는 작은 배 하나가 보였다. 그대로 쭉 오면 농부의 배에 정면으로 충돌할 게 뻔한데도 방향을 틀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아니, 마치 일부러 세게 부딪혀서 농부의 작은 배를 뒤집어 놓으려는 것 같았다.
화가 난 농부는 큰소리로 외쳤다. “미쳤어? 왜 이쪽으로 오는 거야?” 하지만 대답하는 사람은 없고 배는 계속 내려오자 농부는 다시 소리를 질렀다. “내 배에 부딪히기만 해봐! 당장 저리 안 가? 지금 제정신이야?” 이번에도 역시 반응이 없었다. 그제야 농부는 방향을 조금 틀어 충돌을 피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혼자 안간힘을 쓰는 동안 강물을 따라 빠르게 내려온 그 배는 농부의 배에 세게 부딪혔다. “당신 뭐야? 일부러 이쪽으로 왔지? 이 넓은 강에서 기어코 내 배에 부딪힌 이유가 뭐야? 뭐냐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화가 치솟아 벌게진 눈으로 맞은편 배를 노려본 순간, 농부는 멍해졌다. 그 배는 아무도 없이 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농부가 내뱉은 욕설 섞인 거친 말을 들은 건 밧줄이 끊어져 강 위를 표류하던 빈 배였다.
아마 농부가 처음 그 배를 발견했을 때, 이성적으로 자기 배의 방향을 바꾸었다면 충돌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농부는 화내고 원망하느라 스스로 최악의 결과를 만들었다.
지금 당신이 쏟아내는 원망과 불만을 듣는 청중은 어쩌면 ‘빈 배’일지도 모른다. 그 텅 비어 있는 배는 당신이 아무리 화를 내고 질책해도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 오히려 더 빠르게 다가와 당신의 심신에 해를 입힌다.
미국의 목사이자 작가인 윌 보웬Will Bowen은 “원망은 동정과 주목을 얻기 위해서, 그리고 하기 싫은 일을 피하려고 하는 행동에 불과하다”라고 말했다. 분노도 원망도 할 필요 없다. 그래봤자 당신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들인 야심만만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열심히 일해 성공하려고 했지만, 뜻하지 않게 모함을 받아 구속되고 말았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꼬박 9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출소 후에도 실의에 빠져 매일 신을 향해 원망과 저주를 퍼부었다. 하늘이 나를 버렸어, 그 바람에 청춘을 전부 감옥에서 보냈지, 내게 이런 고난을 주다니 신은 정말 불공평해! 이제 내게는 희망도 미래도 없어……. 청년은 그렇게 신을 원망하면서 평생을 힘들게 보냈다.
노인이 된 그는 병들어 일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임종 직전, 목사가 찾아와 그에게 말했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간의 죄악을 모두 참회하고 가야 합니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이 얼마나 불행한지, 신이 얼마나 자신을 홀대했는지만 구구절절 읍소했다.
이야기를 전부 들은 목사는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말씀대로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맞습니다. 세상이 당신을 가둔 시간은 9년이지만, 당신은 자신을 평생 가두었으니까요. 당신은 다시 자유를 얻고도 원한과 복수심으로 자신을 꽁꽁 묶어 스스로 자유를 저버렸죠. 그러니 정말 불행한 사람입니다.
원망으로는 내면의 분노, 상처, 고뇌를 다스릴 수 없다. 만약 그 청년이 출소한 날부터 마음을 잘 다스려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더 잘 살아나가는 데 썼다면, 삶의 즐거움을 찾으려고 노력했다면 그의 삶은 아름답고 행복했을 것이다.
행복은 저절로 당신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행복을 찾아 쟁취하기 위해 열심히 움직여야 한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원망을 멈추는 것이다. 외부 환경을 원망하지 말고, 자신을 탓하지 말자. 반성하는 법을 배우고 다른 각도로 문제를 바라보면 타인이나 자신을 향한 원망이 줄어들 것이다. 그래야 행복해질 수 있다.
인생은 원래 불공평하니 그냥 받아들여라!
원망은 금물이다.
- 빌 게이츠 -
원망을 멈추려면 먼저 그 원인을 깊이 생각하고, 이어서 각도를 바꾸어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불안과 초조함을 줄이는 것이다. 원망을 멈추면 자연히 행복해질 수 있다.
타인에 봉사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하다.
봉사는 베풂인 동시에 거둠이다. 봉사를 통해 타인을 즐겁게 하면 그로부터 감사와 찬사를 얻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사와 찬사는 우리의 가치를 향상하고 강한 동력으로 작용해 더 많은 사람에게 봉사하고 행복을 얻게 한다. 바로 이러한 선순환을 통해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해질 수 있다.
베풀고자 하는 마음을 실제 가치로 구현한 것이 곧 봉사다. 봉사하는 사람은 타인이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도움으로써 즐거움을 얻는다. 설령 아무런 보상이 없어도 불만이나 후회 없이 열심히 돕는다. 남을 돕는 행위 자체와 사회에 대한 책임을 다했다는 점에서 이미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2006년 10월, IOC가 주관하고 베이징 올림픽 조직위원회BOCOG가 주최하는 ‘제5차 세계 스포츠교육문화 포럼’이 베이징에서 열렸다. 당시 칭화대학淸華大學 학생 49명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했다. 그들은 공항 송영送迎, 시설관리, 수행지원, 회의 및 호텔 등록지원 등의 분야에서 일했으며, 총 누적 봉사시간은 2,500시간이 넘었다.
포럼이 끝난 후, 모든 봉사자는 입을 모아 ‘힘들었지만 즐거웠다’라고 말했다.
이중 ‘힘들었다’는 부분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모든 봉사자는 상당히 어려운 환경에서 일했다. 회의 및 호텔 등록지원팀에서 일한 한 자원봉사자는 수백 명에 이르는 참석자의 명찰을 만드느라 종이에 벤 상처가 양손에 한가득 생겼다. 공항 송영팀은 세계 각지에서 오는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밤낮없이 움직였다. 자정에 잠이 들어 새벽 4~5시에 공항으로 달려가는 일이 다반사였고, 비행기가 연착이라도 하면 공항 입국장에서 꼬박 하루를 기다려야 했다.
그럼에도 봉사자들은 모두 매우 커다란 즐거움을 느꼈다. 그들은 자신의 도움이 타인을 더 편하게 할 수 있음을 알고 기뻐했다. 짧은 감사와 칭찬 한마디에서 얻은 자부심은 무엇보다 귀한 보상이었다. 포럼 기간 내내 봉사자들은 매우 열정적으로 일했으며, 끝까지 즐거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봉사했다. 이때 알게 된 참가자와 이후에 꾸준히 교류한 사람도 적지 않다. 봉사자들은 모두 커다란 명예와 정신적인 만족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타인을 위해 봉사할 때,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을 얻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얼굴이 빛으로 반짝인다. 이것이 바로 행복이다. 토머스 에디슨Thomas Edison은 “나의 인생철학은 바로 연구다. 나는 대자연의 신비를 밝힘으로써 인류에 봉사하고자 한다. 짧은 인생에서 봉사보다 더 좋은 일이 무엇인지 나는 알 수 없다”라고 말했다. 봉사하는 사람의 마음은 즐거움이 샘솟고, 자부심으로 충만하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
노자老子는 《도덕경道德經》 제81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성인은 쌓아두지 않고 남을 위해 베풀면서도 오히려 여유가 있고, 남에게 주지만 오히려 자기 것이 더 많아진다. 하늘의 도는 이롭게 할 뿐 해롭지 아니하고, 성인의 도는 남을 위할 뿐 다투지 않는다.” 삶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있고 도덕 수준이 높은 사람은 재물을 축적할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들은 늘 타인에게 베풀고 봉사함으로써 명예와 찬사를 얻어 자신의 정신세계를 더욱 풍요롭게 한다.
노자의 말처럼 사람은 다른 사람을 돕고 베풂으로써 삶의 진정한 가치와 즐거움을 얻는다. 베푸는 것이 얻는 것보다 더 커다란 행복을 가져올 수 있다.
봉사야말로 쾌락을 향한 길이다.
- 하버드 금언 -
베푸는 데 인색하지 말고, 더 많이 봉사하라. 보상을 바라지 않고 타인을 돕다 보면 당신은 행복 속에서 빛날 것이다.
지족은 행복의 열쇠다.
어떻게 해야 행복이라는 열차에 탑승할 수 있을까? 미국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Paul Samuelson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행복=소유/욕망’이라는 공식을 내놓았다. 그는 소유와 욕망을 행복을 결정하는 요소로 보았는데, 여기에서 소유는 주관적인 만족, 욕망은 도달하고픈 목표를 각각 가리킨다. 새뮤얼슨의 공식에서 소유가 불변하는 상황이라면 분모인 욕망이 적을수록 행복지수가 높아진다. 다시 말해, 욕망을 줄이면 더 행복해질 수 있다.
어느 날 플라톤Plato이 스승 소크라테스Socrates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을 넓은 보리밭으로 데려갔다.
“이 보리밭을 가로지르면서 네가 보기에 가장 실한 보리를 하나 뽑아오거라. 단 한 번만 뽑을 수 있고 이미 지나간 길을 되돌아올 수는 없으니 신중해야 한다.”
플라톤은 스승의 말대로 보리밭을 가로질러 끝까지 갔지만, 빈손으로 돌아왔다.
“어째서 보리를 뽑아오지 않았느냐?”
“단 한 번만 뽑을 수 있고 되돌아갈 수도 없으니 실한 보리를 보아도 더 좋은 것이 있을까 봐 뽑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가도 이전에 봐두었던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었습니다. 가장 실한 보리는 이미 지나쳤기 때문에 뽑아오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이다.”
얼마 후, 플라톤은 다시 소크라테스를 찾아가 결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번에는 소크라테스가 그를 숲으로 데려가서 가장 크고 잎이 무성한 나무 한 그루를 베어 오라고 했다. 규칙은 보리밭에 갔을 때와 같았으나, 플라톤은 저번과 달리 빈손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그리 크지도 않고 잎이 무성하지도 않은 나무, 그러니까 너무 좋지도 너무 나쁘지도 않은 나무를 베어 왔다.
“왜 이 나무를 골랐느냐?”
“숲은 중간쯤 갔을 때, 이 나무가 그리 나쁘지 않아 보여 베었습니다. 더 좋은 나무를 찾다가 계속 앞으로 가다가는 보리밭에서처럼 빈손으로 돌아올까 걱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결혼이다!”
이 이야기에서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이 ‘지족知足’을 아는지 시험했다. ‘지족’이란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아는 태도를 가리킨다. 지족을 모르는 사람은 끝까지 얻는 것이 없고, 지족을 아는 자만이 진정으로 얻는 것이 있다.
예를 들어 평생의 반려자를 찾을 때, 대부분 사람은 지족을 모른다. 이 산에서 보면 저 산이 더 높아 보이는 심리 탓에 나중에 더 나은 사람이 나타날 거라고 믿는다. 그러다 나쁘지 않은 사람을 찾았을 때, 사실 이전에 더 나은 사람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소동파蘇東坡는 “여산廬山의 진면목을 알지 못하는 것은 내가 이 산에 있기 때문이라”라고 했다.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다음 역에 있을 거라면서 지나치고 또 지나치다 보면 결국 끝까지 가도 원하는 풍경을 보지 못하게 된다. 오직 지족하는 사람만이 자신에게 맞는 반려자를 선택해 진심으로 사랑하고 평생의 행복을 얻는다.
옛날 한 가난한 농부가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 산신령은 곤궁하게 살면서도 항상 즐겁게 나무하러 오는 농부를 보고서 곁에 있던 제자에게 말했다. “상처 입은 은조銀鳥로 둔갑해 저 농부의 발아래 떨어지거라. 그가 너보다 더 좋은 것을 알고도 너를 계속 돌본다면 황금을 내릴 것이다. 아니라면 그냥 돌아오면 된다.”
잠시 후, 농부는 온몸이 은빛으로 반짝이는 다친 은조를 발견하고서 소중히 집으로 데려와 세심하게 상처를 치료했다.
은조는 상처가 아무는 동안 매일 농부에게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들려주었다. 농부는 그때마다 무척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하루는 친구가 농부의 집에 놀러 왔다. 농부는 반짝이는 은조를 자랑스레 보여주었지만, 친구는 별거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아니 이렇게 아름다운 새를 보고도 놀랍지 않은가?”
“이 정도는 대단하지도 않다네. 나는 저번에 금조金鳥를 보았는데 정말 대단했지! 온몸이 황금빛으로 번쩍여서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할 정도였어. 게다가 노랫소리는 얼마나 멋진지, 자네의 은조는 비교할 수도 없어!”
친구가 잘난 체하며 늘어놓는 말을 들은 농부는 금세 풀이 죽었다. 은조보다 더 아름다운 금조가 있었구나……. 이날 이후, 농부는 금조를 보고 싶다는 생각에 골몰하느라 은조의 노랫소리를 듣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왜 자신은 금조를 만나지 못했는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농부는 문밖에 서서 황금빛으로 물든 석양을 바라보며 금조를 상상했다. 금조는 대체 얼마나 아름다운 새일까? 그동안 은조의 상처는 깨끗이 나았다. 원래는 상처가 나으면 돌아가려 했지만, 은조는 농부가 자신을 돌봐주었으니 곁에 남아서 함께 살겠다고 했다. 하지만 농부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 노랫소리가 아름답지만, 금조가 내는 소리에 비할 수는 없어. 또 너의 깃털이 아름답게 빛나지만, 금조의 화려함에는 못 미치지. 그러니 너는 그냥 떠나는 편이 좋겠다.” 실망한 은조는 마지막으로 농부에게 노래를 들려주고 날아올라 곁을 세 번 정도 빙빙 돌더니 황금색으로 빛나는 석양을 향해 날아갔다.
저 멀리 은조가 떠나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농부는 어느 순간 흠칫 놀라며 숨을 멈췄다. 황금빛 석양 아래에서 은조가 금빛으로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꿈에서도 그리던 금조는 그렇게 농부의 눈앞에 나타났다. 하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금조는 점점 더 멀리 날아갔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행복해지고 싶으면 지족을 알고, 삶에서 지족의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농부처럼 은조가 선사하는 즐거움과 행복에 만족하지 못하고, 본적도 없는 금조를 오매불망 기다려봤자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지족은 욕망에 대한 이성적인 시각이다.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는 이렇게 말했다. “내면이 끊임없이 행복을 느끼게 하라. 슬픔과 걱정이 있을 때도 그렇게 해야 한다. 자신의 현 상황에 만족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원래는 더 엉망이었을 거야!’라고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현 상황에 만족하는 마음가짐은 해탈, 즉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방법이기도 하다. 지족은 평범한 삶에서 행복을 쟁취하는 열쇠다.
행복해지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너무 많은 행복을 기대하는 것이다.
- 베르나르 퐁트넬 -
삶이 즐겁고 행복해지려면 지족을 알아야 한다. 성취하면 낙관적인 마음가짐을 유지하고, 고난과 좌절을 만나면 담담하자. 오직 지족을 아는 사람만이 무거운 마음과 압박에서 벗어나 선하고 즐거운 행복을 만끽할 수 있다.
‘행복해지는 행동’을 당장 실천하라!
하버드에서 행복학을 강의한 탈 벤 샤하르 교수는 행복이 인생을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이자 모든 목표의 최종 목표라고 단언한다. 또 그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긍정 심리학을 연구하고 하버드에 남아 강의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처음 긍정 심리학에 관심이 생긴 건 여러 경험을 통해 내재조건이 외재조건보다 개인의 행복에 훨씬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의식하면서부터죠. 실제로 긍정 심리학을 연구하면서 나는 많은 것을 깨닫고 얻었습니다. 내가 배운 내용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어서 가르치는 사람이 되기로 했습니다.” 샤하르는 내재조건이 가져오는 행복이 더 크다고 생각했기에 심리학에 더 집중했다. 더불어 많은 사람에게 행복의 비결을 전파하고 그들을 더 행복하게 만듦으로써 더 커다란 행복을 느꼈다.
하버드는 행복에 관한 연구를 통해 한 사람의 행복은 주로 세 가지 요소로 결정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바로 행복해지는 행동, 행복과 관련 있는 환경요소, 그리고 유전적 요소다. 이 중에서 가장 쉽게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은 ‘행복해지는 행동’이다. 우리는 좀 더 적극적이고 과감하게 움직여 행복해지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
1973년, 영국 리버풀에서 온 청년 콜레트가 하버드에 입학했다. 그에게는 늘 함께 수업을 듣는 열여덟 살 된 미국인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는 2학년이 되자 콜레트에게 학교를 중퇴하고 함께 회계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콜레트는 오랜 꿈이었던 하버드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그런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려면 아직 더 많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서 거절했다. 무엇보다 창업이라는 위험한 도박에 인생을 걸고 싶지 않았다. 결국, 그 미국인 친구는 혼자 자퇴해서 창업했다.
10년 후, 콜레트가 하버드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을 때, 그 친구는 미국 억만장자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다시 몇 년 후, 콜레트가 박사학위를 받았을 때, 그 친구는 미국에서 두 번째 부자가 되어 있었다.
콜레트가 이제 충분히 배웠으니 재무 소프트웨어를 개발해도 되겠다고 생각했을 때, 그 친구는 이전보다 훨씬 빠른 재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콜레트의 친구는 바로 MS를 창업한 빌 게이츠였다.
콜레트는 기회 앞에서 망설이면서 과감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반면에 빌 게이츠는 목표를 세우고 즉각 행동해서 꿈을 실현하고 원하는 행복을 얻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늘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때 꿈을 향해 도전했더라면 지금 이렇게 힘들지 않을 텐데, 그때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했다면 지금 이렇게 외롭지는 않을 거야, 그때 용감하게 아이디어를 제안했다면 유명해졌을지도 몰라…….
사실 인생에는 ‘만약’이 없다. 그런 말은 일이 일어난 후에 생겨나는 후회이자 이미 지나간 행복을 가리킬 뿐이다. 당신이 아쉬워한다고 시간이 거꾸로 흐를 리 없고, 행복이 기다려줄 리도 없다. 그러므로 행복을 손에 넣으려면 그 기회가 보이는 순간 과감하게 행동해야 한다. 행동이야말로 행복에 더 가까워질 수 있는 필요조건이기 때문이다.
행복은 불교에서 3,000년에 한 번 꽃이 핀다는 ‘우담바라’와 같다. 꽃이 피어나는 그 찰나의 아름다움은 즉각 포착되어야지 조금이라도 소홀했다가는 놓치고 만다. 행복 앞에서 희망, 바람, 가능성을 논하는 건 시간 낭비고 일종의 망상에 가깝다. 그런 불확실한 말들에 매달려 행복을 좇아봤자 시간만 질질 끌며 모습을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행복은 당신이 상상하는 만큼 그렇게 완전무결한 일이 아니며 오히려 아주 단순한 일에 더 가깝다. 만사가 완벽하게 준비된 때를 기다려 행동하면 늦다. 그 자체로 벌써 행복에서 수만 리나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가만히 앉은 채로 가장 좋은 때가 오기를 기다린다면, 평생 기다리기만 하다가 인생을 낭비하게 될 것이다. 물론 행복은 구경조차 못 한다. 그렇게 허무한 삶을 살고 싶지 않다면 다음을 기억하자.
지금 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