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진료실에서 듣는 이야기는 힘들기만 할까?
내가 정신과 의사라고 하면 사람들은 “정말 힘드시겠어요”라는 말을 자주 한다. 내가 해야 하는 말인데, 오히려 듣는 경우가 더 많아서 민망할 지경이다. 하루 종일 우울한 얘기만 들을 텐데, 얼마나 지치겠냐며 걱정해주는 분들이 많다. 사실 내담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건 그다지 힘들지 않다. 가끔 이 일을 그만둘까 고민도 하지만, 의료 정책이나 행정적인 문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지 내담자 때문에 지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게다가 내담자들이 항상 힘든 얘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치료 초반에는 힘겨웠던 이야기, 아픈 이야기를 털어놓지만 시간이 지나면 달라진다. 증상이 사라지고 편안해지면서 건강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내용만 달라지는 게 아니다. 목소리, 표정, 삶을 대하는 태도와 인간관계의 기술까지 확연히 다른 사람이 된다. 내담자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저렇게 살아야겠구나’라고 감탄할 때가 많다.
치료자들은 회복의 과정을 함께한다. 아팠던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 되고, 중독자가 회복자가 되고, 도움이 필요했던 사람이 남을 돕는 사람으로 변하는 과정을 본다. 소진을 반복하며 패배주의에 빠지고, 낮은 자존감으로 악순환하던 사람이 똑같은 환경과 유전자를 지니고도 꾸준하게 도전하는 사람, 성공할 때까지 버티는 사람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본다.
의료 서비스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정신의학의 범위도 달라진 결과다. 공황 증상, 우울감, 무기력과 충동성 같은 증상을 끊어내는 것뿐만 아니라, 성격이 순화되고, 매력을 획득하고, 리더십을 익혀서 성공으로 가는 과정까지 함께한다. 마치 피부과 의사들이 습진이나 무좀 같은 병만 치료하는 게 아니라 뷰티와 항노화까지 다루는 것처럼 말이다.
성장은 전염된다
그렇게 20년 동안 참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눴다. 때로는 내담자가 너무 연약해서 측은지심이 들었지만, 그 사람들이 강해지고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생생히 목격했다. 그건 참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겨울 같았던 마음이 녹고, 성장하고, 결실을 맺는다.
나는 오랫동안 내담자의 성장 스토리를 들었다. 그들은 본인의 경험담을 들려주었고, 나는 그 이야기를 통해 성장했다. 그런 경험이 지금 아픈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중요한 힘이 되었다.
성장은 상호적으로 일어나며 선순환한다. 나도 내담자들에게 배우고, 감탄하고, 서로를 응원한다. 그들을 더 돕고 싶어서 책을 읽고, 강연을 듣고, 스승님들에게 배웠다. 내담자와 함께 중독에서 벗어나고, 무기력을 떨치고, 감사하는 능력을 키웠다.
나도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속 좁고 나약한 치료자였는데, 그때보다 능력 있고, 건강한 사람이 되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여러 매체에서 부름을 받고, 그러면서 성공한 사람들도 많이 만나게 되었고 그들의 노하우와 성공 비결까지 듣게 되었다.
의사가 쓰는 성공 이야기, 그 핵심은 회복력
그래서 이번에는 성공에 관한 책을 쓰기로 했다. 의사라고 해서 “이러면 안 된다”, “이건 나쁘다”라고만 말하던 시대는 지났다. 아픔을 위로하고 지식을 전파하는 과정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현대인에게 충분하지 않다. MZ세대 젊은이들이 배고픔에서 벗어났다고 만족하지 않는 것처럼, 이제는 성공한 인생을 살아야 건강하다고 느끼는 시대가 됐다. 기분은 행복해야 하고, 사람들과 교류하며 사랑해야 하고, 경제적으로도 남들에게 뒤지지 않으면서 자유로운 삶이 진짜 건강한 삶이 됐다.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것을 넘어 잘 사는 것을 꿈꾸고, 그 꿈에 다가서게 도와주는 것이 전문가가 할 일이다.
이제까지 실패만 반복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회복하고, 성공할 수 있었을까? 나는 그 과정에서 공통적인 특징 몇 가지를 발견했다. 회복하는 과정에서 나오고, 회복을 앞당기는 힘이기에 회복력이라 부르고 있다. 회복력은 세 가지 힘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작용한다.
첫째는 지구력이다. 이는 정신의 체력이기도 하고 끈기나 인내, 무언가를 시작하면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지구력이 부족하면 번아웃, 즉 소진 증후군에 시달리기에 항소진력, 안티 번아웃 포스라고도 이름 붙였다. 운동으로 치면 심폐 지구력과 비슷하다. 재미와 성과가 없어도 꾸준히 지속하며 그만두지 않고 버티는 힘. 정신적 체력을 얼마나 많이 만들고 낭비하지 않는가가 마음 지구력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둘째는 공감 능력이다. 이 능력은 가장 유명하면서도 가장 평가절하를 받고 있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공감 능력을 키우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공감 능력은 체격으로 치면 등이나 어깨, 가슴이나 하체 근육처럼 쓸모도 많고 매력이 발산되는 커다란 골격근이다. 이 능력이 부족하면 자신의 감정에도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에 작은 상처에도 크게 다친다. 그리고 남들에게 받는 시기나 질투, 분노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쉽게 흔들린다. 공감은 일종의 방패 역할을 한다. 공감 능력을 키우면 부정적인 감정을 쉽게 소거시키고, 긍정적인 감정은 에너지원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지구력이 현재의 소진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다면, 공감 능력은 상처가 덧나지 않고, 잘 아물 수 있도록 돕는 새살 연고 같은 역할을 한다. 과거를 치유하는 능력이다.
셋째는 적응력이다. 이 개념은 완벽주의나 완고함, 지조나 고집에 대비된다. 나에게 맞춰 상황을 바꾸려고 의지를 불태우는 게 아니라 상황에 맞춰 자신을 바꿔나가는 힘이다. 융통성이라고 불리고 도전 정신, 경험주의와도 상통하는 개념이다. 적응력이 있는 사람들은 과감하게 시도하고, 일이 잘 안 풀릴 때 좌절하지 않고 플랜 B를 가동시킨다. 앞서 말한 지구력과 공감 능력과 어우러지면 가볍지 않고, 선을 넘지 않으면서 활력과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몸의 근육으로 비유하면 심폐 지구력과 큰 골격근 사이에서 탄력을 만들어주는 코어 근육으로 작용한다. 복싱 선수들이 통통 튀면서 스텝을 밟듯이 우리의 인생을 경쾌하게 만드는 힘이다. 이 힘은 우리에게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준다.
왜 회복력이 중요할까?
현재 대한민국 사회는 코로나에서 벗어난 정신적 해방감과 고금리, 고물가, 전쟁 여파에 억눌린 경제적 침체기가 맞물려 있다. 국민의 평균 학력은 높아졌지만 그로 인한 취업 문제가 생겼고, 자존감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상식이 되었지만 SNS 발달로 인한 비교와 자괴감 문제는 어느 때보다 정신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여기에 남녀 간의 갈등, 세대 간의 갈등, 연애도 어려운 각자도생의 세파 속에서 다들 화가 났지만, 위로나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외로움까지 더해지고 있다.
이런 이중적인 상황에서는 희망적인 청사진에 거부감이 들고, 힐링과 위로를 전하는 감성은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성공에 대한 열망은 있지만 그만큼 도태될까 봐 공포를 느낀다. 지금이야말로 회복력이 중요한 상황이다. 상처는 치유하고, 불안과 공포를 버티면서, 자신의 잠재력을 완전 연소시켜야 하는 위기와 기회가 혼재되어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앞에 말한 세 가지 힘 지구력, 공감 능력, 적응력을 각각 관리하는 것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여러분에게 회복력을 향상시키고 유지하는 방법을 알려줄 것이다. 글이 다소 투박하고 무료하더라도 잘 읽어주길 바란다. 친절하고 따뜻한 글을 쓰고 싶지만, 아직 냉소와 차가운 습성이 남아서 독자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나 않을지 걱정이 된다. 하지만 글을 읽으면서 여러분이 회복력을 체험하고 강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모두가 건강하게 회복하고, 더불어 성공까지 나아가는 데 이 책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2024년 1월
마포에서 윤홍균
소진되어갈 때 나타나는 증상들
▢ 만성 피로에 시달리거나 커피, 술, 담배 등의 물질로 버틴다.
▢ 운동을 해야 한다는 건 아는데 운동할 기운이 없다.
▢ 식사를 거르거나 대충 때우는 횟수가 늘었다.
▢ 짜증이 나고 화가 나는데, 지나고 보면 사소한 일이었다.
▢ 모든 게 내 잘못 같고, 자책이 늘었다.
▢ 감정 기복이 심해져 주변에서 걱정을 한다.
▢ ‘내 인생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라는 생각을 한다.
▢ ‘내가 하는 일이 다 이렇지 뭐’라는 생각을 한다.
▢ 열심히 해도 예전처럼 성과가 나지 않는다.
▢ 자기 전에는 잠들기가 아깝고, 아침에는 더 자고 싶다.
▢ 과거에 안 좋았던 일이 자주 떠오른다.
01
왜 하필
번아웃부터
시작하는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실패를 이해해야 한다
다이어트에 실패하던 사람이 열심히 노력해서 5킬로그램을 빼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그동안 너무 지쳐서 다시 폭식을 하고 6킬로그램이 쪘다. 이를 과연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다. 1킬로그램이 쪘으니 실패다.
돈을 버는 것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절약하고 재테크를 해서 10억을 벌었다. 그런데 10억을 버는 동안 쌓인 극도의 스트레스를 풀어보겠다고 다음 날 20억을 써버렸다. 결과적으로 이 사람은 10억을 잃은 사람이 된다.
이 책은 ‘성공’에 관한 책이지만 먼저 ‘실패’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원하는 목표를 이루었어도 다음 단계에서 무너져버리면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실패에 대해 제대로 알고, 예방하고, 건강하게 수습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당신이 지금 실패했다고 너무 움츠러들 필요는 없다. 당신은 누구보다 실패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앞으로는 시행착오를 미루고, 작더라도 잔잔한 성공을 쌓아가는 경험을 통해 큰 성공에 도달할 수 있다.
실패의 또 다른 이름, 소진
실패가 발생하는 방식은 무수히 많지만, 모든 실패를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소진 증후군’이다. 소진 증후군이란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탈진 상태에 빠져 아무것도 못하겠다는 생각과 패배주의에 빠지는 현상을 말한다.
돌이켜 보면, 내가 이제까지 만났던 수만 명의 환자들이 공통적으로 호소하던 증상도 “지쳤습니다”였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신을 믿지 못하고 금방 단념하는 것에 지쳤고, 끔찍한 기억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은 악몽과 과민성, 재경험 되는 증상에 지쳤다. 공황 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은 두근거림과 숨참, 죽음에 대한 공포에 지쳐서 병원을 찾았다.
과도한 자책에 시달리는 사람들, 남 탓이나 자기합리화 같은 미숙한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성장 과정에서 적절한 롤 모델을 찾지 못했거나 애정결핍에 시달린 경우가 많았다. 흉흉한 뉴스 속에서 안전지대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기댈 곳이 없었다. 그러니 심리적 여유가 없고,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이로 인한 세로토닌 결핍에 시달리고 있었다.
중독 문제도 마찬가지다. 자주 지치니까 자꾸 뒤처지고, 그래서 불안하고, 불안을 잠재우느라 중독 물질에 의지하는 현대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밤에는 스트레스를 이유로 술에 의존하고, 낮에는 멍하다는 이유로 카페인에 기대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사실 심리 문제를 호소하는 현대인 대부분은 소진 증후군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는 사람들이다. 에너지가 충전되고 의욕이 생겨야 증상이 치료된다. 스스로 에너지를 관리할 줄 알아야 치료를 졸업하고 자신을 돌볼 수 있다.
번아웃만 막아도 실패하지 않는다
정신과 의사들은 번아웃과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진료실에서 자주 만나는 감정 기복, 자존감 저하,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 불면이나 식욕 부진 등의 신체 기능 저하, 모든 게 불가능해 보이고 하기 싫은 양가감정 등의 증상은 모두 소진 증후군의 대표 증상들이다. 열심히 살다 보니 자주 지치고, 힘을 내보려고 발버둥을 치다가 인간관계까지 영향을 받는다.
요즘처럼 문명이 급속도로 발달하는 사회에서는 적응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것 자체가 에너지 소모이기 때문에 정신 에너지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성공과 실패를 나누는 시발점이 된다. 뇌의 에너지를 흑자로 유지하면서 성공까지 가느냐, 그리고 그 성공을 지키면서 100세 시대를 살아가느냐가 진짜 문제다. 그렇기에 번아웃을 예방하고, 삶의 에너지를 지속하는 힘이 인생의 핵심 기술이 될 것이다.
하지만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열심히 하는 것만 강조하면 에너지가 바닥날 것이고, 힐링과 만족만 강조하면 포기하는 삶을 살라는 뜻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정신 에너지의 개념부터 알아야 한다. 의욕이 생긴다는 것이 뇌에서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를 알아야 에너지를 관리할 수 있다. 뇌에서 어떤 회로가 반짝거려야 가슴이 두근거리는지, 도전 정신이 생기고, 동기가 부여되는지 알아보자. 정답은 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보상 중추’에 숨어 있다.
02
보상 중추,
인생의
가속페달
도대체 어떤 기분이길래
중학교 1학년 애국 조회 시간, 쌀쌀맞기로 유명했던 3학년 누나가 단상 위에 올라가 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전교 1등을 했다는 호명을 받자 평소에는 상상할 수 없던 너털웃음을 짓는데, 좀 바보 같아 보일 정도로 입이 함박만 했다. 복권이라도 당첨된 사람처럼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이었다. 나는 운동장 맨 뒤에서 그 모습을 보며 난생처음으로 강렬한 부러움을 느꼈다. ‘1등을 하면 얼마나 기분이 좋길래 저런 표정이 나오나?’ 하는 호기심도 발동했다. 소심하고 늘 소극적이던 나에게 그날 처음으로 ‘나도 1등 해보고 싶다’라는 갈망이 생겼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중요한 사실 두 가지를 체험했다. 첫째는 욕심이 생기니 괴로움을 잊는다는 사실이었다. 욕구는 진통 효과가 강력했다. 그날 이후로 내 머릿속에는 1등이 된 내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단상에 올라가 박수를 받고, 짝사랑하는 여학생 앞에서 당당하게 어깨를 편 장면이 재생됐다. 그런 상상은 나를 각성하게 했다. 주말에 공부해도 억울하지 않았고, 좋아하는 드라마나 코미디 프로그램 앞에서 TV를 끄는 것도 가능해졌다. 성취에 대한 욕구는 사사로운 감정을 억압시켰다.
둘째로 무언가를 하겠다고 선언하는 행동이 상당히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날 가족들과 저녁을 먹으면서 “앞으로 1등을 해볼 겁니다”라고 말을 꺼냈다. 어머니는 “그래, 해봐라. 너라고 못할 거 없다”라고 하시며 조용히 웃었다. 그건 참 특별한 경험이었다. 행동을 하니 관심을 받았고, 기분이 좋으니 진짜 열심히 했다.
물론 그렇게 이야기가 끝나지는 않았다. 모든 사람이 내가 원하는 반응을 준 것도 아니고, 다시 예전 모습으로 되돌아가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변하자 세상도 변하는 경험은 나에게 상당히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보상 중추의 힘
돌이켜 보면, 그때 내가 겪은 일련의 과정은 뇌의 보상 중추가 작용한 결과였다. 인간의 뇌에는 측좌핵(복측피개 영역)이라는 부위가 있다. 뇌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이 부위가 활성화되면 기분이 좋아지기에 쾌락 중추, 쾌감 중추라고도 부른다.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3대 영역
1. 보상 중추 긍정적인 감정과 “한 번 더!” 신호를 만듦
2. 편도체 부정적인 감정과 “멈춰!” 신호를 만듦
3. 전전두엽 피질 감정적인 판단에 치우치지 않고 현명한 판단을 돕는 이성을 추구함
보상 중추가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가속페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했더니 기분이 좋아지면 인간은 그 행동을 더 하고 싶어진다. 감정적으로 행복해야 동기가 부여되고 해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이성(rationality)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성적으로 행동하는 것도 기분이 좋아지는 결과가 있어야 가능하다. 만족감은 갈망을 만들고, 뇌에서 “한 번 더!”라는 메시지가 생성된다.
1등 누나의 웃음을 보면서 활성화된 나의 보상 중추는 그 후로도 계속 자극을 받았다. 결심하면서 한 번, 선언하면서 한 번, 어른들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한 번 더 활성화됐다. 공부는 힘든 것, 하기 싫은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공부가 기회로 느껴졌다.
인간은 보상에 약하다. 이반 파블로프(Ivan Pavlov)의 실험에 나오는 개와 비슷하다. 종소리가 날 때 간식을 주다 보면, 나중에는 종소리만 들어도 개가 침을 흘린다. 생각하고 뭐고 할 것 없이 이미 몸이 반응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의 소설 《뇌》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보상 중추에 전극을 꽂고 성공할 때마다 자극을 줬더니 평범한 사람이 엄청난 동기 부여를 얻어 세계 체스 챔피언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부모가 행복해야 자식이 행복하다’는 말도 비슷한 맥락이다. 긍정적 피드백을 자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자녀의 보상 중추를 자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기분이 좋아야 도전 정신이 생긴다.
인생의 활력소가 될 것인가, 급발진이 될 것인가
보상 중추는 우리의 인생에 속도를 부여한다. 자동차로 치면 액셀러레이터 역할이다. 의욕을 불러일으키고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하지만 늘 성공의 길로 이끄는 것은 아니다.
이 보상 중추의 존재가 가장 두드러지는 장소가 카지노라고 생각한다. 도박 중독에 빠지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승리기(winning phase)라고 불리는 강렬한 자극을 경험하며 시작된다. 생각하지 못했던 행운의 순간을 경험하면 뇌의 보상 중추는 강한 자극을 받는다. 이런 경험을 한 이후의 뇌는 더 이상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할 정도가 된다. 도박 중독자들은 다들 “다시는 도박 안 해! 이번이 마지막이야!”를 외치지만, 뇌에서는 이미 “한 번 더!”라는 강력한 메시지가 생성된 상태다.
이처럼 보상 중추가 우리에게 해로운 것과 만나면 에너지는 엉뚱한 방향으로 흐른다.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것도 보상 중추지만, 파멸의 길로 이끄는 시작점에도 보상 중추가 있다. 돈, 성공, 명예, 인류애가 보상 중추와 닿아 있다면 다행이지만 흡연, 과소비, 탄수화물, 음주, 쾌락이 연결되면 인생은 급발진 사고를 일으킨다.
우리 모두에게는 인생의 가속 스위치가 있다. 하지만 무엇이 그 버튼을 누르냐에 따라 행복한 삶과 실패한 삶으로 나뉜다. 뜨거운 열정과 패기로 성공의 반열에 올랐던 사람들이 마약이나 불륜 등의 스캔들로 주저앉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이 뜨거운 액셀러레이터를 어떻게 다루느냐는 성공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의 딜레마다.
03
더 이상
열정이 생기지 않는
사람들
재밌는 것도 없고, 하고 싶지도 않고
우리의 뇌에 보상 중추가 있다고 해서 늘 의욕적이고,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만 생기는 건 아니다. 자동차에 연료를 넣고 시동을 걸면 앞으로만 나갈 것 같지만 고장이 나기도 하고 멈추기도 한다.
나를 찾아오는 많은 내담자가 보상 중추가 식어버린 증상을 이야기한다. “선생님, 요즘 아무 의욕이 없어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어른들도 있고 “공부를 왜 해야 해요? 저는 학교에 갈 필요가 없어요”라는 청소년들도 있다. “선생님, 우리 부부는 이제 완전히 끝났어요. 부부 치료나 상담도 필요 없어요. 해봤자 소용도 없고요”라며 관계에서 희망을 잃은 사람들도 보상 중추가 차갑게 식어버린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한 번 더!’라는 목표가 생기지 않는다. 이런 현상을 번아웃, 소진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특히 열정적이고 성실한 사람들이 소진 증후군을 겪는 경우가 많기에, 이들은 당황해하고 죄책감을 느끼며 우울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자기 탓도 해보고, 성격 탓이나 세상 탓도 해보지만, 원인을 찾는다고 해서 에너지가 생기는 것도 아니기에 소진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 않다.
그럴 땐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오늘 어떤 일이 발생했다면 그것은 분명히 과거가 원인이 되어 일어난 사건이다. 우리의 보상 중추가 식어버리기 전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을까? 일의 관점에서 봤을 때 우리의 인생은 크게 다섯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1 | 환상이 꽃피는 시기
인생의 봄날이며 아름다운 순간이다. 보통 10대 때 이렇다. 하고 싶은 것이 생기고, 욕심이 나기 시작하는데, 대개 환상이 함께한다. 에너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가수를 꿈꾸는 사람은 가수에 대한 환상, 의사를 꿈꾸는 사람은 의사에 대한 환상을 가진다. 그 일을 하면 행복할 것 같고, 내가 그걸 잘할 것 같고, 긍정적인 기대가 꿈을 만들어낸다.
2 | 초록의 나무처럼 성장하는 시기
폭풍 성장을 하는 시기다. 취업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취준생 시기, 운동선수에게는 훈련을 하는 시기다. 일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차고,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지칠 때도 있지만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보상 중추를 자극한다. 무언가를 준비하는 시기는 외롭지만 매력적이다. 대개 20대 초반이 이렇다. 외모도 많이 바뀌고, 어른 대접을 받는다.
이때의 문제는 결과물이 없다는 것이다. 성장세는 가파르지만 사회적 쓸모를 획득하지는 못한다. 노력은 했는데 결과가 없으니 점차 다급해진다. 이대로 미완성으로 끝나면 어쩌나 하는 공포와의 싸움이다. 불안이나 부담감이 보상 중추를 식혀버리지 않게 하는 것이 관건이다.
3 | 땔감의 시기
나무를 베고 목적에 맞게 가공하면 드디어 인간에게 이바지하기 시작한다. 싱그러움은 사라지지만 사회적 쓸모를 획득한다. 가구나 자재가 될 수도 있고 땔감이 되어 따뜻함과 안전감을 만들 수도 있다. 사회 초년생, 직장을 다니기 시작한 때는 땔감의 시기다. 사회화가 이루어지면서 인간 사회에 필요한 역할을 한다. 잘 마른 목재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일을 한다.
그렇다고 사회적 가치가 충분한 건 아니다. 이들의 기능에는 한계가 있다. 캠핑 갔을 때를 떠올려보자. 바비큐 초보자들은 장작에 불이 활활 타오를 때 고기를 굽는다. 센 불에 구워야 맛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겉만 타고 속은 그대로다. 사회 초년생 시절이 그렇다. 열정은 불타오르지만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 ‘길을 잘못 택했나?’, ‘동기들은 일도 척척 해내는데, 난 언제까지 잡일만 하고 있어야 해?’ 하는 자괴감과의 싸움이다.
4 | 숯처럼 최대의 효율을 내는 시기
나무에 붙었던 불이 사그라들어야 진가를 발휘한다. 숯이 되었을 때, 그제야 고기를 제대로 구울 수 있다. 사회인으로도 은은한 화력을 내는 숯과 같은 시기가 있다. 일중독의 시기다.
이때는 일이 보상 중추를 자극하고, 쾌감과 성취 사이에서 선순환이 일어난다. 조직을 이끄는 에이스가 되는 시기이며 생산성이 높다. 일을 얼마나 잘하느냐가 그 사람의 가치와 함께 간다. 일이 재밌고, 일을 할 때는 괴로움을 잊는다. 의욕도 올라간다.
하지만 이때도 문제는 있다. 경쟁이 치열한 현대사회에서 일이 잘된다는 것은 분명 무리를 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100퍼센트 이상 쏟아붓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말에 ‘애쓰다’라는 표현이 있는데, 애는 간을 뜻한다고 한다. 내 속을 다해 건강을 갈아 넣고 있거나 사랑을 포기하고 있거나 가족들에게 무심한 경우가 많다. 일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은 다른 무언가를 외면하고 있다는 뜻이다.
5 | 모든 게 타버리고 재만 남은 시기
결국 모든 것은 타버린다. 아무리 보상 중추가 도파민과 천연 모르핀을 만들어도, 뇌는 영구 기관이 아니다. 인간은 음식 없이는 에너지를 만들 수 없고, 일정 시간의 휴식 없이는 방전될 수밖에 없다.
이런 일이 사춘기 때 발생하면 청소년 우울증, 육아를 할 때 발생하면 육아 우울증, 중년에 발생하면 갱년기의 위기라고 한다. 아무것도 하기 싫고, 해봤자 안 될 것 같고, 힘을 내서 반짝 에너지를 당겨보지만 결국 지친다. 잔불만 남은 잿더미처럼 더 이상 불타오르지 않는다. 고기나 고구마를 구울 수도 없고, 자연 그대로의 매력도 상실했다. 이런 시기를 우리는 소진 증후군의 시기라고 한다. 여러 단계를 통해서 도달하는 복합적인 단계다.
소진을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
사람은 대부분 소진 증후군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의사가 얘기를 해줘도 받아들이지를 못한다. “다들 이 정도로 열심히 하지 않나요? 내가 뭘 했다고 지쳐요?”, “제가 가장인데 지치면 어떡해요. 다른 집 아빠들은 이러지 않는데 저는 왜 이리 나약하죠?”라는 반문은 아주 흔한 일이다.
소진은 갑자기 생성되는 게 아니다. 중독의 단계를 포함해 여러 과정을 거치는 복합적인 결과물이다. 그래서 본인이 인식하기 어렵다. 중독이라는 병의 가장 큰 특징이 ‘부정(denial)’이다. 술 취한 사람이 “나 안 취했어!”를 연발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뇌의 전전두엽 피질에서 이성적인 판단을 해줘야 하는데, 뇌가 지쳤으니 상태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그래서 본인은 지칠 자격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엄마 배속에서부터 머리둘레와 키를 비교당하는 게 우리의 인생인데, 스트레스가 없을 리가 있나. 태어날 때부터 시작된 경쟁과 평가는 모두를 소진의 위험군에 속하게 만든다.
특히 일에 대한 환상이 있고, 업적을 통해 자존감이 높아진 경험을 해본 사람들이 많이 지친다. 이들은 쉬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일중독은 다른 중독과는 달리 칭찬을 받으면서 진행된다. 알코올 중독자가 되기 위해 조기 유학을 떠나거나 도박 중독자가 되기 위해 학원에 다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어릴 때는 공부 중독, 커서는 일중독은 사회적으로도 추앙받는 분위기다. 소진 증후군은 현대인이 가지는 영광의 상처다.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은 영예로운 훈장이다.
그러니 의사로부터 일을 줄이고 휴식을 취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아, 그렇군요! 쉬겠습니다” 하는 내담자는 없다. 헤어지라는 연애 조언을 들은 사람처럼 허탈해한다. 쉬는 방법도 모르고, 이미 일상이 톱니바퀴처럼 빼곡하게 일로 채워져 있다. “제가 쉬면 누가 대신 일해주나요?”, “선생님이야 여유가 있으니까 그런 말씀을 하시죠. 저에게는 너무 이상적인 얘기라고요!” 같은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나도 “쉬세요”,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보세요”,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세상은 돌아갑니다” 같은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게 가능했다면 당신이 이 책을 열어보지도 않았을 테니까. 실현 불가능한 충고는 잔소리에 불과하다. 나까지 그러고 싶지는 않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소진을 이해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열심히 해보려고 덤볐는데 어쩌다가 정신 에너지가 바닥난 것인지 그 과정을 알아야 자신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왜 소진 증후군에 취약한지, 그게 우리 인생에 어떤 문제가 되고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해와 공감이 있어야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 우리는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04
한국인은
왜 소진 증후군에
취약할까
대프리카와 강베리아
6.25전쟁에 참전했던 미군 상이용사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처음 경북 지역에 배치받아 전투를 시작했는데 하필이면 그때가 여름이었다. 그래서 그는 한반도가 열대 지방이라고 생각했다. 습기와 열기가 너무 강해서 일사병에 걸리는 전우들이 속출했기에 그의 부대는 반소매 전투복을 많이 요청했다. 그러다 연합군의 승리가 거세지며 북진을 시작했다. 그때 하필 강원도 인근을 지나고 있었는데 산간 지역의 겨울은 얼마나 추운가. 시베리아의 강풍이 불어 장비와 식량도 다 얼어붙었다. 수많은 병력이 동사했다고 말하며 그는 눈물을 흘렸다.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면서 한 가지 궁금증이 해결됐다. 한국인들이 왜 이렇게 열심히 살고, 투쟁적으로 움직이는지 그 원인을 찾은 것이다. 인간은 자연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은 게으르거나 느긋하게 살기에는 겨울이 너무 춥다. 추수가 끝나면 바로 김장하고, 이불 챙기고, 땔감을 모아야 얼어 죽지 않는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근면 성실과 남 눈치, 시간 지키는 것에 강박적으로 집착했던 것은 연교차가 큰 기후와 그 와중에 농사를 짓고 살던 생활의 소산이다.
수만 년 동안 한반도에서 살아남은 조상들은 우리에게 ‘부지런’이라는 유전자를 물려주었다. 봄에 씨 뿌릴 때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고, 여름에는 병충해와 잡초를 제거하지 않으면 이웃 주민에게까지 피해를 주고, 가을에 추수 시기를 놓치면 한 해 농사가 모두 물거품이 된다. 성실과 협동 정신을 갖춘 선조들만 이런 기후에 살아남았다. 여름에는 대프리카, 겨울에는 강베리아가 혼재한 한반도에서 부지런은 곧 생존을 의미했다.
선조들은 왜 소진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근면한 유전자를 물려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소진되고 있을까? 왜 무기력에 빠지고 우울증에 걸릴까? 기성세대는 MZ세대를 보면서 “요즘 젊은것들은 고생을 안 해서 그래!”, “약해 빠져서 그래!”라고 하는데 과연 그 말이 맞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의 젊은 세대가 약하다는 말은 틀렸다. 유전 정보와 기질 특성이 수십 년 사이에 변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이비붐 세대로 대표되는 기성세대는 소진 증후군 따위는 모르고 쉼 없이 달려온 것이 사실이고, 젊은 세대가 빨리 지쳐가는 것도 사실이다. 왜 이런 차이점이 생겨난 걸까?
나는 그 답이 예방 문화의 유무에 있다고 본다. 농업 중심의 전통사회에서는 지쳐서 포기하는 것을 방지하는 고유한 문화가 함께 발달했다. 우리 선조들은 부지런히 일했지만, 노는 것도 잘 놀았다. 특히 생산적인 작업 활동과 놀이를 연결시켜서 스트레스를 관리한 점은 정말 놀라운 수준이다.
예를 들어, 겨울이 끝나가고 봄이 시작되기 전에 동네마다 짚풀과 잡초 더미를 태우는 작업을 했다. 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해충도 잡고, 거름으로 쓸 재도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이 작업을 동네 꼬마들에게 전담시켰다. 그러면 동네 아이들은 신나게 불장난을 했는데, 이름하여 쥐불놀이라는 전통 놀이다. 지금은 화재 위험성 때문에 금지되었지만, 노동을 놀이로 승화시키고, 그해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의미 부여까지 하면서 공동체가 화합하고 번영을 비는 예식으로 만든 것이다.
또 다른 예로, 노동요가 있다. 단체 작업을 할 때는 박자를 맞춰 노래를 불렀는데, 이는 노동의 고단함을 잊게 할 뿐만 아니라, 중장비를 사용하는 협동 작업에서 위험을 방지하는 역할까지 했다.
마지막으로, 음식을 나눠 먹는 잔치 문화가 있다. 이는 이웃 간의 갈등을 방지하고 충전의 기회를 주었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고, 서민들이 풍족한 삶을 누린 것은 아니지만, 음식으로 차별하지 않고 비빔밥처럼 어우러지는 문화가 있었다. 결혼식, 장례식, 제사, 명절 등의 행사가 있으면 고깃국을 나누어 먹으며 단백질을 보충하고, 귀신에게 준다는 명목으로 음식을 대문 옆에 놓아두어 빈민들이 가져갈 수 있게 인정을 베풀기도 했다.
새로운 문화가 생겨나는 시기
우리 민족은 긴 세월에 걸쳐 일하고, 쉬고, 놀고, 나누고, 낭비를 금기시하는 문화를 발전시켰다. 잘 살려면 일을 해야 하고 행복하게 살려면 쉬어야 하는 인생의 아이러니 속에서 균형을 맞춰온 것이다. 이런 문화는 산업화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이어졌다. 공장에서 생산물을 만들던 2차 산업의 시기, 즉 197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는 같은 문화가 통용되었다. 생산의 장소가 논과 밭에서 건축 현장, 제철소와 미싱 공장으로 옮겨갔을 뿐이다. 동료와 선후배들과 친교를 나누고, 직장에서 만난 어른들을 가족처럼 예우했다. 함께 나누고, 같이 노는 문화 덕에 덜 지치고 일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IMF 사태와 세계적인 경제 위기로 국가 전체가 휘청거리는 경험을 하면서 산업구조가 달라졌다. 국가 주력 산업은 반도체, 금융, IT, 관광, 로봇,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화되었고, 직장을 가족처럼 여기던 문화는 사라졌다. 취직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집 사는 게 모두의 목표였던 통일성도 깨졌다. 이제는 사람들이 모여 고기를 굽는다고 힐링이 되지 않는다. 전 직원이 모이는 회식 문화는 부담스러운 일이 되었고, 개인 취향 존중, 각자도생의 시대가 되었다.
모두가 일을 하고 있지만, 각자 따로 놀아야 하는 시대가 열렸다. 세대와 성격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휴식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노동인 세상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작은 규모의 모임을 만들고, 감성 카페나 팝업 스토어에 열광하는 것은 나름대로 휴식과 오락 문화를 만들려는 노력이다. 새 시대에 맞는 소진 예방책을 만들어가는 중인 것이다. 산업 현장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버는 방식은 발달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놀이와 휴식 문화 시스템은 아직 따라가지 못했다.
생산 활동과 문화 활동 사이의 괴리, 그 틈에서 소진은 피어난다. 21세기 한국 사회에 걸맞는 새로운 노동요와 새로운 쥐불놀이를 찾아내야 하는 시점이다. 일과 휴식 그리고 놀이를 접목시키지 못했을 때, 마음 지구력이 바닥난다. 이때 어떤 일이 생길까? 소진이 다가올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회피 증상을 보인다.
05
직장인의
소진과
회피
평범한 직장인의 평범한 소진
많은 직장인이 아메리카노 샷 추가를 마시며 업무를 하는 건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었다. 커피로 버티는 직장인이 한두 명인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란 걸 알지만 어쩔 수 없다. 퇴근해서도 소통 없이 지낸다. 가족이 있더라도 제각각 스마트폰을 보는 게 나름의 휴식이다. 이 또한 평범한 일이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와 실랑이하는 게 정신적으로 여간 버거운 게 아니다. “남들도 다 그렇겠지” 하며 조용히 식사를 한다.
부모님과 통화하고, 집안일을 마무리한 후 맥주를 마신다. 이것도 합리화가 된다. “이마저 없으면 무슨 낙으로 살아?” 릴렉스도 되고, 지친 자신에게 선물을 주는 느낌이다. “안 마시고 짜증 내는 것보다는 낫지” 스스로를 안심시키며 소파에 누워 넷플릭스를 켠다. 한참을 고르지만 막상 선택이 끝나면 눈이 감긴다.
새벽에 깨면 잠이 안 온다. 수면제를 먹자니 내일 몽롱할 것 같고, 박차고 일어날 기운도 없다. “도대체 언제쯤 이 쳇바퀴가 끝날까?” 돈을 모은 것도 아니고, 미래가 촉망되는 산업에 종사하는 것도 아니다. 아이 사교육을 포기할 수는 없고, 노후 대비는 막막하다. 미래의 문제는 그때 걱정하라는데, 그게 되면 도인이지 싶다.
잡념을 지우려고 스마트폰을 연다. SNS 속 친구들은 잘 살고 있다. 맛집도 가고, 호캉스도 가고 애들도 참 야무지게 잘 키운다. “나는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네. 우리 애는 어쩌나” 자식 걱정은 부모님 걱정으로 이어진다. 여기저기 아프다는 말씀이 늘었다. “목돈이라도 필요하면 어쩌나” 이 와중에 돈 걱정을 하는 자신이 싫고, 해결책이 없는 배우자도 싫다. 말만 번지르르한 직장 상사도 싫고, 대놓고 싫은 티를 내는 후배들도 싫다.
자는 둥 마는 둥 뒤척이다 하루가 시작된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여기서 벗어날까?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학교 다닐 때는 열심히 공부했고, 누구를 괴롭히거나 못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왜 항상 이 모양일까? 어차피 내 인생이니 내가 해결해야 하는데 점점 자신감을 잃어간다.
본능적인 회피, 본능적인 변형
정신 에너지가 떨어졌다고 완전히 탈진해 쓰러지는 건 아니다. 대부분은 일상생활을 유지하고, 남들의 부러움도 받으면서 살아간다. 그래서 마음 지구력이 바닥나고 있을 때 우리가 하게 되는 반응을 알고 있어야 한다. 문제의 중심이 소진이고 이것이 실패를 앞당긴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무엇을 체크해야 할지를 모르면 어느 날 갑자기 소진에 압도되고 갑작스러운 실패나 포기를 경험하게 된다.
마음이 지쳐갈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회피 반응부터 한다. 그런데 회피의 방어기제는 억압되고 변형된다. 앞서 말했듯 우리에게는 근면 성실의 유전자와 일중독의 경험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네가 뭘 했다고 힘들어?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이 들릴 것 같아 떠나고 싶은 마음의 내적 표현도 허용하지 못한다. 그래서 다음 세 가지 방식으로 변형된다.
첫째, “싫다”는 말이 늘어난다. 회사에 계속 다니기도 싫고, 그만두고 쉬는 것도 싫다. 음식 하나 주문하려고 해도 단점만 떠올라 정하지 못한다. 애정이 식은 연인과 이대로 지내는 건 싫지만, 헤어지는 것도 싫다. 이른바 ‘싫다, 싫다, 다 싫다 병’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결정 장애라고 표현한다. 엄밀히 말하면 결정 회피 증상이다. 본인이 결정하면 수행하기 위해 에너지를 쓰고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럴 기운이 없다. 차라리 ‘싫다’는 감정만 내세워서 부담감을 피해간다.
둘째, 질문이 늘어난다. “이게 과연 잘될까?”, “이 길이 맞는 길일까?” 하며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지거나 “나는 도대체 왜 이럴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하며 과거로 돌아가는 질문을 한다. “그 사람은 나를 싫어할까?”라고 남의 마음을 읽으려는 독심술을 시도하기도 하고, 끊임없는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를 질문하며 자신에게 퀴즈를 내기도 한다.
머릿속이 질문으로 가득 차는 것은 감정의 회피 증상이다. 에너지가 바닥나면 무기력, 두려움, 억울함 등의 감정이 채워져서 괴롭다. 이때 자신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면 ‘호기심’이라는 중립적인 감정이 만들어진다. 뇌에 궁금증을 유발해 감정 중추보다는 이성 중추가 활동할 수 있도록 마음가짐을 변화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