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두기
• 이 책의 제목은 영어 표현 ‘DROP THE BEAT’에 해당하는 음차 표현으로, 외래어 표기법상 ‘DROP’은 ‘드롭’으로 표기하는 것이 정확하나, 해당 표현이 ‘드랍 더 비트’로 널리 사용되고 있어 이를 본 책의 제목으로 하였습니다.
• 앨범 제목은 〈 〉로, 곡의 제목은 ‘ ’로 표기하였습니다.
• 단행본 제목은 《 》, 텍스트 작품의 제목은 〈 〉, 영화 및 영상물 제목은 ‘ ’로 표기하였습니다.
• 수록 가사는 여러 음원사이트와 음원을 참고해 인용하였으며, 띄어쓰기는 어문규정을 따랐습니다.
• 수록 가사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 및 저작권사와 협의 후 인용되었습니다.
차례
프롤로그 - 힙합을 위한 작은 노력
삶이라는 캔버스 | 남피디
빈지노 - If I Die Tomorrow
아빠와 술 한잔하고 싶어 | 김근
이센스 - The Anecdote
한강에서 반짝이는 꿈의 윤슬 | 김근
더 콰이엇 - 한강 gang megamix
(Feat. 장석훈, 창모, 쿠기, 수퍼비, 빈지노, 제네 더 질라)
PAID IN SOUL | 남피디
던말릭 - Paid in seoul
다시 삶을 연기하기 위하여 | 김근
pH-1 - DRESSING ROOM(prod. 모쿄)
앨범 심층 리뷰
팝과 힙합의 교집합 | 남피디
pH-1 2집 〈BUT FOR NOW LEAVE ME ALONE〉
팬데믹이 만들어낸 아이러니 | 김근
우원재 - 우리
누구에게나 별이 있다 | 김근
비오 - Counting Stars(Feat. 빈지노)
거부할 수 없는 너의 표정을 나는 원해 | 남피디
씨잼 - 포커페이스
헤이 우리 어디 놀러 갈까? | 남피디
팔로알토 - Matiz
앨범 심층 리뷰
차갑지만 따뜻한 생존의 의미 | 남피디
팔로알토 6집 〈DIRT〉
욕망의 가상을 벗어나 삶의 주인공으로 | 김근
최엘비 - 주인공
오지 않은 시간을 향한 주문 | 김근
이센스 - Writer's Block
삶의 밑바닥에서 우린 춤추고 노래해 | 김근
정상수 - 달이 뜨면(광대)
불안이 만든 전위적 유희 | 김근
래원 – 원효대사
그 고난에 우리도 함께하나니 | 남피디
허클베리피 - Everest
앨범 심층 리뷰
조와 함께한 시간 | 김근
QM 3집 〈돈숨〉
한입 베어 문 햄버거의 맛 | 남피디
JJK - Double Cheese & Dr.Pepper
냉소와 숭고 | 남피디
XXX - Bougie
진정성을 넘어서 참된 희망으로 | 김근
차붐 - 안산 느와르(Feat. 링고제이)
또 다른 세상을 향한 분노의 질주 | 김근
다민이 - DOG OR CHICK 3
앨범 심층 리뷰
체험 래퍼의 현장(생존판) | 남피디
오도마 1집 〈밭〉
돌보지 못한 유년에 대한 애도 | 김근
아이언 - 하남 주공아파트
지금을 살고 노래하는 젊은 현자 | 남피디
화지 - 이르바나
불가능한 여행을 위해 | 남피디
이센스 - MTLA(Feat. 마스타 우)
프롤로그
힙합을 위한 작은 노력
유튜브 채널 ‘시켜서하는tv’를 시작하게 된 건 우연이었다. 이 책을 함께 집필한 남피디를 만나러 그의 사무실을 방문했는데 그가 무작정 카메라를 켜고 말을 시켰다. 해당 영상을 시작으로 나는 뜻하지 않게 유튜버가 되었다. 시인으로서 처음엔 시와 관련된 콘텐츠를 올리려고 계획했었다. 시청자들이 시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을 걷고 좀 더 친근하고 풍부하게 시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피디는 더 참신한 방향으로 콘텐츠를 구체화하고 있었나 보다.
어느 날 그는 정상수의 ‘달이 뜨면’과 이센스의 ‘Writer's Block’의 가사가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그리고 노래를 들려줬다. 힙합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시인의 관점에서 노래들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사전에 어떤 약속도 없었다. 나는 당황했지만, 채널 이름이 ‘시켜서하는tv’라서 그가 시키는 것을 거부할 수 없었다. 겨울이었는데도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가사를 읽고 또 읽은 기억이 선명하다. 그전까지 힙합 음악에 대해 전혀 관심도 없던 내가 시를 읽듯이 더듬더듬 가사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난감해하던 모양이 재미있었는지, 시인과 힙합이라는 다소 생소한 조합 때문이었는지 구독자가 늘고 영상의 조회수도 예상을 웃돌기 시작했다.
그렇게 힙합 리뷰가 시작되었다. 정말이지 처음엔 힙합의 ‘ㅎ’자도 몰랐던 터라 귀에 익지 않은 랩을 반복해서 듣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힙합 특유의 문화가 반영된 가사에 적응하기도 쉽지 않았다. 남피디의 선곡을 듣고 해석하며, 낯섦은 조금씩 내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매력과 쾌감으로 바뀌어 갔다. 1년 남짓 동안 100곡이 넘는 노래를 리뷰해 영상으로 업로드했다. 때론 심각해지기도 하고 때론 분노하기도 하고 때론 먹먹해지고 때론 울컥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힙합을 듣고 그런 반응을 보이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내가 여태 해왔던 시 읽기가 변형되고 확장되며 다른 문화와 접점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무척이나 신기하고 즐거운 일이었다.
1년 조금 넘게 들었다고 힙합을 잘 안다고 자처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힙합을 즐길 수는 있게 되었다는 것은 성과라면 성과이겠다. 무엇보다 이 노래들을 매개로 힙합을 듣는 젊은 세대와 소통하게 되었다는 점도 내겐 큰 결실이다. 그 덕에 뜻하지 않은 인연들도 생겼다. 채널 초반에 가사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우리 영상에 출연하기도 했던 제이영, 내 시 낭독회 공연에 함께하면서 인연이 되어 우리 채널에서 종종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던 제임스 안, 그리고 우리 채널에 방문해 새 앨범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았던 JJK. 모두 소중한 인연이다. 힙합 연구자인 미국인 청년 조(Joe) 또한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이야기는 책에도 실려 있다.
이 책은 그동안 우리의 여정을 정리하는 데 의미가 있다. 어쩔 수 없는 지면의 한계 때문에 리뷰했던 곡을 다 담을 수는 없었다. 독자들이 좀 더 친근하게 느끼는 곡을 우선하였으나, 어디까지나 우리만의 기준으로 선정했다.
사실 출판사에서 출간 제안이 왔을 때 이미 영상이 있으니 글을 쓰는 것은 수월할 줄 알았으나, 오판이었다. 글을 쓰는 일은 말하는 일과는 전혀 달랐다. 곡들에 좀 더 깊이 빠져들어야 했고 그 노래들 안에서 좀 더 허우적거려야 했다. 더 섬세하게 접근해야 했다. 컴퓨터 화면에서 깜박거리는 커서는 나를 막막하게 했다. 괴로웠다. 그러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글을 쓰면서 그 노래와 그 노래를 부른 래퍼에게 더욱 큰 애정이 생겼음을 어쩔 수 없이 고백한다.
힙합씬의 당사자들이 보면 그동안 우리가 해왔던 리뷰도 여기에 실린 글들도 어디까지나 외부자의 시선이자 의견일 것이다. 씬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들이나 아티스트들의 의견과는 다른 지점도 있을 것이고, 그들이 보기에 다소 섣부른 측면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씬을 둘러싼 주변에서도 다양한 의견들이 생산되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의견들이 모여 씬에 새로운 길과 방향이 모색된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다. 우리의 작은 노력이 그런 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더없이 뿌듯할 것이다.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시켜서하는tv’가 힙합 리뷰 영상을 처음 업로드했을 때부터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유튜버 흔한 센충이님, 자신들의 곡 리뷰에 대해 인스타그램을 통해 샤라웃해줬던 많은 뮤지션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특히 영상에 직접 댓글까지 달아준 pH-1님에게도 지면을 빌려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한다. ‘시켜서하는tv’가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던 건 무엇보다 구독자들 덕이 크다. 영상에 댓글을 달고 때론 토론을 벌이고 추천곡 제안도 하며 채널을 활기차게 만들어줬다. 그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내가 힙합을 통해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만나고, 또 그 세계에 공감했듯이, 독자들도 이 책이 다룬 힙합 곡들과 그 곡이 펼치는 세계에 공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무엇보다 음악을 들어보기를 바란다. 우리가 쓴 글과 글에 다뤄진 음악 사이에서 독자들이 새로운 사유를 끌어낼 수 있다면, 글쓴이로서 그보다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가닿아 그런 방식으로 더욱 풍성해졌으면 좋겠다.
2023년 봄
김근
( 삶이라는
캔버스 ) ;
남피디
빈지노 - If I Die Tomorrow
오늘 밤이 만약 내게 주어진
돛대와 같다면 what should I do with this?
Mmmm maybe
지나온 나날들을 시원하게 훑겠지
스물여섯 컷의 흑백 film
내 머릿속의 스케치
원하든 말든 메모리들이
비 오듯 쏟아지겠지
엄마의 피에 젖어 태어나고 내가 처음
배웠던 언어
부터 낯선 나라 위에 떨어져 별다른
노력 없이 배웠던 영어
나의 아버지에 대한 혐오와 나의 새아버지에 대한 나의 존경
갑자기 떠오른 표현 life's like 오렌지색의 터널
If I die tomorrow
If I die, die, die
고개를 45도 기울여
담배 연기와 함께 품은 기억력
추억을 소리처럼 키우면
눈을 감아도 보이는 theater
시간은 유연하게 휘어져
과거로 스프링처럼 이어져
아주 작고 작았던 미니어처
시절을 떠올리는 건 껌처럼 쉬워져
빨주노초 물감을 덜어 하얀색 종이 위를 총처럼 겨눴던
어린 화가의 경력은 뜬금없게도 힙합에 눈이 멀어
멈춰버렸지만 전혀 두렵지 않았어
cuz I didn't give a fuck
About 남의 시선 cause life is like 나 홀로 걸어가는 터널
If I die tomorrow
If I die, die, die
내게도 마지막 호흡이 주어지겠지
마라톤이 끝나면 끈이 끊어지듯이
당연시 여겼던 아침 아홉시의 해와
음악에 몰두하던 밤들로부터 fade out
Marlboro와 함께 탄 내 이십대의 생활
내 생에 마지막 여자와의 애정의 행각
책상 위에 놓인 1,800원짜리 펜과
내가 세상에 내놓은 내 노래가 가진 색깔
까지 모두 다 다시는 못 볼 것 같아
삶이란 게 좀 지겹긴 해도 좋은 건가 봐
엄마, don't worry bout me, ma
엄마 입장에서 아들의 죽음은 도둑 같겠지만
I'll be always in your heart, 영원히
I'll be always in your heart, 할머니
You don't have to miss me 난 이
노래 안에 있으니까
나의 목소리를 잊지 마
If I die tomorrow
If I die, die, die
;
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1993년 작으로, 핵전쟁의 혼돈에 휩싸인 2019년을 그리고 있다. 식민지 행성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지구에 잠입한 타이렐 사의 안드로이드를 추적하는 데커드(헤리슨 포드)와 자신이 안드로이드라는 사실을 모르는 레이첼(숀 영)이 마주하고 교감하며 벌어지게 되는 이야기다. 영화에서 레이첼은 자신을 안드로이드라고 의심하는 데커드에게 인간이라는 증거로 사진을 한 장 들이민다. 따사로운 햇볕이 비치는 시골 산장의 나무 계단에 어머니와 함께 있는 그녀의 어린 시절 사진. 하지만 이내 그녀가 “인간보다 인간적인”이라는 모토를 내세우는 타이렐사의 최신 안드로이드였고, 사진의 주인공은 타이렐 회장의 손녀였으며, 레이첼에게는 손녀의 기억이 이식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영화에서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유일한 차이는 안드로이드는 기억과 수명이 5년 동안만 지속된다는 점이다. 하지만 동료의 죽음에 고통을 느끼는 ‘감정을 가진’ 안드로이드를 퇴역시키는(retired) 블레이드 러너, 데커드 역시 안드로이드였다고 감독 리들리 스콧이 후에 밝혔던 걸 생각해보면, 이 영화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조건에 대해 곱씹게 만든다. 과연 어떤 인간적인 특질이 인간을 인간으로 정의하는 것일까? 안드로이드가 기억을 통해 자신을 인간성을 가진, 혹은 영혼을 가진 존재로 느끼고 있다면 우리는 그들을 인간이라고 인정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은 기억이 연쇄적이고 총체적이며 인과적이라고 여긴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기억은 연쇄적이지도 총체적이지도 인과적이지도 않다. 인간이 기억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 기억이 자신의 자아 정체성을 형성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억은 인간에 의해 편집되고 왜곡되어 자아를 존립시키는 중요한 요소로 기능한다. 하지만 그러면 우리가 데이터라고만 여기는 안드로이드의 기억도 가짜라고 함부로 말할 수만은 없게 된다. 기억은 자신이 ‘사실이라고 믿는 삶의 내용’이다. 편집되고 때론 왜곡된 기억일지라도 그것이 믿음의 대상이라면 소중해진다. 심지어 우리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그 기억들을 머릿속에서 영사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우리는 그중에 어떤 장면들을 간직하려 할까?
오늘 밤이 만약 내게 주어진
돛대와 같다면 what should I do with this?
Mmmm maybe
지나온 나날들을 시원하게 훑겠지
스물여섯 컷의 흑백 film
내 머릿속의 스케치
원하든 말든 메모리들이
비 오듯 쏟아지겠지
엄마의 피에 젖어 태어나고 내가 처음 배웠던 언어
부터 낯선 나라 위에 떨어져 별다른 노력 없이 배웠던 영어
나의 아버지에 대한 혐오와 나의 새아버지에 대한 나의 존경
갑자기 떠오른 표현 Life's like 오렌지색의 터널
인간이 자기 기억을 오래도록 남기기 위해 생각해낸 가장 인간적인 시도는 어쩌면 예술일지 모른다. 죽음을 앞둔 예술가라면 일생을 회고할 때 어떤 작품은 남기고, 어떤 작품은 불태우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소멸한 뒤에는 자신이 남겨놓은 작품으로만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빈지노의 ‘If I Die Tomorrow’는 바로 그런 기억들을 노래하고 있다. 그는 남들이 모두 잠든 새벽에 홀로 깨어 있다. 며칠째 첨삭해서 종이 위에 삐뚤빼뚤 쓰인 가사에 또 두 줄을 긋는다. 삭아버린 이어피스를 귀에 걸치고 마이크에 랩을 녹음하는 젊은 예술가는 온전히 창작에 몰두한다. 비트와 드럼이 깨워내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내게도 마지막 호흡이 주어지겠지
마라톤이 끝나면 끈이 끊어지듯이
당연시 여겼던 아침 아홉시의 해와
음악에 몰두하던 밤들로부터 fade out
내가 내일 죽는다는 가정만으로도 삶의 기억들은 흑백 필름처럼 되감기된다. 유독 다채롭고 생생하게 각인된 순간들이 펜 끝으로 모여든다. 그가 마지막까지 기억하고 싶은 장면들이다. 내 죽음이 가족과 연인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사랑하는 이들에게 나는 어떤 존재였을까? 이런 질문들은 내 삶을 이끈 동기와 가치를 다시금 되새겨보게 한다. 역설적으로 죽음에 대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열렬하게 삶을 불러일으키는 행위와 같다.
Marlboro와 함께 탄 내 이십대의 생활
내 생에 마지막 여자와의 애정의 행각
책상 위에 놓인 1,800원짜리 펜과
내가 세상에 내놓은 내 노래가 가진 색깔
까지 모두 다 다시는 못 볼 것 같아
삶이란 게 좀 지겹긴 해도 좋은 건가 봐
내일 당장 죽는다는 가정은 죽음을 향해 있기보다 삶의 또 다른 방향을 향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당장 죽는다고 하면 우리는 나도 모르게 일 분, 일 초가 간절하게 삶을 종합해 보게 된다. 이는 삶에 대한 강한 애착을 느끼게 만든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소중해지고, 가족들의 목소리가 그리워지고, 이전과는 다른 태도로 일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세상이 나를 과연 기억해줄지, 만약 그렇다면 어떤 모습으로 기억하게 될지 궁금해질 것이다. 세상은 무엇보다도 화자가 보여준 마지막 순간들로 화자를 영원히 기억하게 될 것이다. 화자의 얼굴, 몸짓, 스타일, 예술, 사상에 대한 기억 말이다.
엄마, don't worry bout me, ma
엄마 입장에서 아들의 죽음은 도둑 같겠지만
I'll be always in your heart, 영원히
I'll be always in your heart, 할머니
You don't have to miss me 난 이 노래 안에 있으니까
나의 목소리를 잊지 마
기억은 유한한 인간의 삶에 대한 온전한 증거가 된다. 음악이 그것이라면, 나의 이야기가 선율과 가사를 통해 멀리 전송된다. 내가 삶을 충실히 살았다면 그 충실한 기억을 누군가에게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연기자에게는 영화나 드라마, 화가에게는 그림, 작가에게는 책이 대중들에게 외면당할 때, 그들은 잊히고 예술가로서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러니 예술가들은 삶에서 끝없이 망각이라는 죽음을 만나며 그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며 삶을 헤쳐나가는 것이다.
이 노래의 화자처럼, 우리도 풀리지 않는 일상의 무수한 수수께끼들로 잠을 뒤척이다가도 해가 뜨고 날이 밝아오면 각자 삶의 무대로 나아간다. 우리는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 그들과 함께하는 경험으로 기억의 골을 삶에 새긴다. 누군가의 꿈이 투영된 간접적인 기록도 삶의 기억을 구성할 수 있다. 이 곡의 가사에 드러나는 자아에 대한 고민, 자기 삶 자체가 사람들에게 사랑받길 바라는 욕망, 그의 음악이 가진 젊음은 그렇게 우리 마음에 스며든다.
예술가가 예술로 ‘잊히지 않음’, 즉 ‘영원’을 추구하듯 예술의 향유자인 우리는 그 예술의 영원성을 향유하고 그것을 내 기억의 일부가 되게 함으로써 죽음을 극복한다. 예술에 감동하고 공감하며, 더 나아가 정서의 변화로 말미암아 오래도록 기억되는 예술은 인간을 꿈꾸며 살게 해왔다. 어쩌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시시때때로 겪는 객관적이고 파편화된 사건 하나하나가 아니라, 음악, 미술, 이야기로 짜여 아름다운 의미와 가치로 번역된 ‘예술적 기억’일지 모르겠다. ‘블레이드 러너’에 등장하는 안드로이드들도 그런 ‘예술적 기억’을 담은 삶이라는 캔버스 몇 개를, 어쩌면 영혼이라 불러도 될지 모를 데이터베이스에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닐까.
( 아빠와
술 한잔하고 싶어 ) ;
김근
이센스 - The Anecdote
1996년 아버지를 잃은 아이
사랑 독차지한 막내 곁 떠나시던 날
믿기지 않고 꿈 같은 꿈이기를 바랐고
그다음 날 엎드린 나 푹 꺼지던 땅
기억해 아파트 계단 앞 모여준 내 친구들
힘내란 말이 내 앞에 힘없이 떨어지고
고맙다고 하기도 이상한
나만 달라진 듯한 상황 받아들이기 복잡한
위로의 말 기도를 아마 그때 처음 했어
아빠가 다시 낚시터 데리고 가면 이제는 절대
지루한 티 안 낼게 3545 번호
주차장에 세워진 거 다시 보여줘
우리 가족 적어진 웃음 저녁 식탁에
모여 앉은 시간에 조용해지는 집 안
달그락거리는 설거지 소리
원래 그쯤엔 내가 아버지 구두를 닦아드렸지
1,000원을 주셨지 구두는 엉망인데도
현관 앞엔 신발이 다섯에서 네 켤레로
우리 민호 이제 집에 하나 있는 남자네?
네가 엄마 지켜야지 빨리 커라 강하게
난 아들 아빠의 아들
그날이 아니었다면 내 삶은
지금하고 달랐을까
성격도 지금 나 같을까
난 아들 자랑스럽게
내 길을 걸어왔네
내 길을 걸어가네 내 길을 걸어가네
국민학교 4학년
내 도시락에 반찬을 같은 반 친구들하고 비교하네
얼마나 못 돼 빠진 일인지도 전혀 모르고
다른 거 좀 싸 달라면서 엄마를 조르고
새 옷 못 사고 언니 옷 물려 입던 작은누나
장녀인 큰 누나는 늘 전교에서 3등 안을 지켰지
자기가 엄마를 도와야 되니까
셋 중 제일 먼저 돈 벌 수 있는 게 자기일 테니까
누나들의 사춘기는 남들보다 몇 배 힘들었을 거야
난 그걸 알긴 너무 어렸네
편모는 손들라던 선생님의 말에
실눈 뜨고 부끄러워 손도 못 든 난데
편모인 우리 엄마는 손가락이 아파
식당에 일하시면서 밀가루 반죽하느라
아빠도 없는 주제라고 쏴붙인 여자애 말에
아무 대답도 못 하고 가만있던 난데
난 아들 엄마의 아들
그날이 아니었다면 내 삶은
지금하고 달랐을까
성격도 지금 나 같을까
난 아들 자랑스럽게
내 길을 걸어왔네
내 길을 걸어가네 내 길을 걸어가네
안 버리고 그 자리 그대로 둔 아빠 책상엔 책이 가득해
돈이 없어 서울대를 못 갔대
퇴근 후에도 늦은 밤에 책상 앞에 계셔
난 어른이면 당연히 저러는 건가 했고
몇 가지 없는 기억
일요일이면 아버진 무릎 위에 날 올리시고 내 때를 밀어
그 시간이 지루했었는데
냄새와 소리까지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장면이네
혼자 가는 목욕탕 익숙해지고
열다섯 이후론 아버지 없다는 얘기도
먼저 꺼냈지
애들이 아빤 뭐하냐 묻기 전에
묻고 나서 당황하는 표정들이 싫었기에
어쩌면 아버지의 굽어가는 허리를
안 보고 살 테니 그거 하난 좋다 여기고
난 최고였던 아빠의 모습만 알고 있어
소원이 있다면 아빠와 술 한잔하고 싶어
지금 날 본다면
헤매던 이십대의 나를 보셨다면
이제는 결혼한 누나들의 가족사진을
본다면
아들과 딸들의 아들과 딸들을 본다면
난 아들 엄마와 아빠의 아들
그날이 아니었다면 내 삶은
지금하고 달랐을까
성격이 지금 나 같을까
난 아들 자랑스럽게
내 길을 걸어왔네
내 길을 걸어가네 내 길을 걸어가네
;
1996년 아버지를 잃은 아이
사랑 독차지한 막내 곁 떠나시던 날
믿기지 않고 꿈 같은 꿈이기를 바랬고
그다음 날 엎드린 나 푹 꺼지던 땅
기억해 아파트 계단 앞 모여준 내 친구들
힘내란 말이 내 앞에 힘없이 떨어지고
여기 민호라는 아이가 있다. 아빠를 잃은 게 실감 나지 않는다. 꿈만 같다. 차라리 꿈이었으면 하고 바란다. 아이는 아파트 계단 앞에 엎드려 슬픔을 삼키고 있다. 땅이 푹 꺼지는 것 같다. 친구들이 아파트 계단 앞까지 와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힘내란 말도 힘없이 아이 앞에 떨어지고 만다. 친구들은 모두 그대로인데 자신만 달라져버린 느낌. 친구들이 마냥 고맙기에는 아이의 마음은 너무 복잡하다.
‘The Anecdote’의 도입부다. anecdote라는 단어는 ‘출판되지 않은 것’을 의미하는 희랍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현대에는 일화, 개인적 진술 등의 의미로 쓰인다. 이 노래 또한 화자가 아빠를 잃은 이후 일어난 감정과 부재의 흔적들을 개인적 차원에서 예민하게 포착하고 있다. 직접적으로 감정을 토로하지 않고도 “푹 꺼지던 땅”이라는 표현은 아이의 슬픔이 스스로 감당하기에 얼마나 무거운 감정인지를 효과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우리가 이 노래에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방식의 표현들 때문이다.
위로의 말 기도를 아마 그때 처음 했어
아빠가 다시 낚시터 데리고 가면 이제는 절대
지루한 티 안 낼께 3545 번호
주차장에 세워진 거 다시 보여줘
아빠의 부재는 주차장에 부재한 차의 “3545 번호”로 비로소 구체화된다. 늘 볼 수 있었던 아빠의 차량 번호는 원래는 신경 쓰지 않던 당연한 일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차량 번호는 아빠의 부재를 크게 실감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아이는 그 빈자리에 기억을 더 끼워 넣는다. 아빠 차에 태워져 억지로 낚시에 끌려갔던 기억. 아이는 그때 아빠에게 지루한 티를 냈던 것을 후회하고 그러면서 아빠를 돌려달라는 불가능한 기도를 한다.
우리 가족 적어진 웃음 저녁 식탁에
모여 앉은 시간에 조용해지는 집 안
달그락거리는 설거지 소리
원래 그쯤엔 내가 아버지 구두를 닦아드렸지
1,000원을 주셨지 구두는 엉망인데도
현관 앞엔 신발이 다섯에서 네 켤레로
우리 민호 이제 집에 하나 있는 남자네?
네가 엄마 지켜야지 빨리 커라 강하게
이어지는 가사에서도 슬픔과 부재의 감각은 섬세하게 표현된다. “저녁 식탁에/모여 앉은 시간에 조용해지는 집 안/달그락거리는 설거지 소리”는 가족 모두가 침묵 속에서 가까스로 견뎌내고 있는 슬픔과 상실감을 잘 표현하고 있다. 모두 아빠의 죽음을 입 밖에 내뱉지 못하고 있지만, 그 침묵이 얼마나 격렬하게 슬픔을 말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이는 이 침묵 속에서 다시 기억 하나를 떠올린다. 아버지의 구두를 서툴게 닦아주었던 기억. 하지만 이제 아버지의 구두는 현관에 놓여 있지 않다. 어느새 “현관 앞엔 신발이 다섯에서 네 켤레로” 바뀌어 있다. 그렇게 아버지의 부재는 집 안 곳곳에 흔적을 남긴다.
아이는 아버지에게 구두를 닦아 건네주던 시간으로부터 선명하게 남아 있던 말 하나를 끄집어낸다. “우리 민호 이제 집에 하나 있는 남자네?/네가 엄마 지켜야지 빨리 커라 강하게”. 아버지의 말이다. 뿌듯한 마음으로만 듣던 “니가 엄마 지켜야지”라는 말은 이제 아이의 어깨에 무겁게 얹힌다. 아이 뒤에 든든히 서 있던 아버지라는 배경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The Anecdote’의 벌스 1은 이렇게 구체적인 기억이 부재의 흔적과 교차하며 감수성 예민한 아이의 시선으로 전개되고 있다.
새 옷 못 사고 언니 옷 물려 입던 작은누나
장녀인 큰 누나는 늘 전교에서 3등 안을 지켰지
자기가 엄마를 도와야 되니까
셋 중 제일 먼저 돈 벌 수 있는 게 자기일 테니까
누나들의 사춘기는 남들보다 몇 배 힘들었을 거야
난 그걸 알긴 너무 어렸네
편모는 손들라던 선생님의 말에
실눈 뜨고 부끄러워 손도 못 든 난데
편모인 우리 엄마는 손가락이 아파
식당에 일하시면서 밀가루 반죽하느라
아빠도 없는 주제라고 쏴붙인 여자애 말에
아무 대답도 못 하고 가만있던 난데
벌스 1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직후의 시간을 그리고 있다면, 벌스 2는 가난을 아버지 없이 힘겹게 이겨나가는 가족의 처지를 풀어내고 있다. 늘 언니 옷을 물려 입어야 했던 둘째 누나와 책임감 때문에 늘 전교 3등 안을 지켰던 큰누나는 힘겹게 사춘기를 통과해갔다. 식당에서 일하는 엄마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손가락이 아픈데도 밀가루 반죽을 멈출 수 없었다. 도시락 반찬 투정하던 아이는 철이 없었지만, 학교에서 “편모는 손들라던” 차별의 시선이 두려워 더욱 소심해져만 갔다. 이 모든 광경이 아이의 내면에 얼마나 깊은 상처로 자리 잡았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아버지의 굽어가는 허리를
안 보고 살 테니 그거 하난 좋다 여기고
난 최고였던 아빠의 모습만 알고 있어
소원이 있다면 아빠와 술 한잔하고 싶어
지금 날 본다면
헤매던 이십대의 나를 보셨다면
이제는 결혼한 누나들의 가족사진을 본다면
아들과 딸들의 아들과 딸들을 본다면
벌스 3은 성인이 된 화자의 시선으로 전개된다. 아빠의 책상에서 다시 아빠를 떠올리며 아빠가 목욕탕에서 때를 밀어주던 일요일의 냄새와 소리를 떠올린다. 친구들에게 아빠 없다던 소리를 먼저 꺼내던 청소년기를 지나 이제 그의 소원은 최고의 모습으로만 기억되는 아빠와 함께 술 한잔하는 것이다. 아빠가 “헤매던 이십대의 나를 보셨다면/이제는 결혼한 누나들의 가족사진을 본다면/아들과 딸들의 아들과 딸들을 본다면” 어땠을까 질문하며 벌스 3은 끝난다. “아들과 딸들의 아들과 딸들을”이라는 가사의 라임은 묘한 울림으로 잔상처럼 가슴에 오래 남는다. 화자가 지닌 상처와 삶의 지난함이 거기에 다 압축되어 있기라도 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