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조항록
대학생 때 시인이 되었습니다.
가만히 바라보고 곰곰이 생각하며,
지금까지 다섯 권의 시집을 펴냈습니다.
그리고 어린이가 좀 더 슬기롭게
자라나기 바라는 마음을
『신문이 보이고 뉴스가 들리는
재미있는 선거와 정치 이야기』 등
몇 권의 책에 담았습니다.
이 책 『누구 생각이 옳을까?』도 어린이의
성장에 좋은 길잡이가 되리라 믿습니다.
『갈등은 왜 생길까?』와 함께 읽으면
세상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어떤 사회 문제에 관한 사람들의 생각은 저마다 다릅니다. 내가 보기에는 올바른 일을 다른 사람은 잘못됐다고 말할 때가 있지요. 누구는 정의롭다고 여기는 일에 또 다른 누군가는 손가락질하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이 심각해지면 자칫 서로를 미워해 사회가 혼란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럼 사회 문제에 관한 사람들의 생각이 하나로 통일돼야 좋을까요? 예를 들어, 안락사에 대해 우리 사회의 모든 사람이 하나같이 찬성이나 반대를 해야 할까요?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사회 갈등이 줄어들 것은 틀림없습니다. 모두 생각이 같으니 충돌할 까닭이 없지요. 얼핏 그런 사회는 세상에 둘도 없이 평화로워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이 모두 같은 사회는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어떤 문제에 대한 판단이 하나로 단순해질 경우 예상 밖의 부작용에 대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부작용을 걱정하기 전에, 그 문제를 너무 만만히 봐서 처음부터 낭패를 볼지 모릅니다.
안락사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찬성이든 반대든, 쉽게 어느 한쪽으로 의견을 일치시키면 어떻게 될까요?
우선 안락사에 관한 토론이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토론이 없으면 생각을 깊이 할 이유가 없지요. 무슨 일이든 생각을 깊이 하지 않고 시작하면 뜻밖의 어려움에 맞닥뜨리기 십상입니다. 그 일을 해낼 만한 준비가 부족하고, 돌발 상황에 대응할 수 없으니까요.
아울러 어느 한쪽으로만 사회 문제를 바라보면 민주주의가 무너지게 됩니다. 누구나 자유롭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이지요. 때로는 시끄럽고 다툼도 벌어지겠지만, 다양한 의견이 오고 갈 수 있어야 사회가 건강해집니다. 사람들이 아무 갈등 없이 똑같은 판단을 하는 사회는 머지않아 활력을 잃고 무너져 내리게 되지요.
그런데 다행히 우리 사회는 서로 다른 생각과 판단을 존중합니다. 어떤 사회 문제에 대해서든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밝히며 상대를 설득할 수 있지요. 그 과정을 통해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면서 가장 바람직한 해결책을 찾아 나갑니다.
이 책 『누구 생각이 옳을까?』는 바로 그와 같은 우리 사회의 장점을 계속 발전시키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여러분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지금 우리 사회에 어떤 문제가 있고, 그것에 대한 사람들의 의견이 어떻게 다른지 알게 될 것입니다. 자, 그럼 이제부터 14가지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어 볼까요? 각각의 이야기마다 여러분은 찬성과 반대, 어느 쪽의 손을 들어 줄지 궁금하네요.
인간이 인간을 벌하는 방법 … 사형 제도에 대해
‘사생활’과 ‘공공의 이익’ , 뭐가 중요해? … 개인 정보 보호에 대해
인간만 소중한가? … 동물 실험에 대해
공정한 사회의 의미 … 사회적 배려에 대해
죽음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 … 안락사에 대해
‘다양성’은 ‘혼란’의 다른 이름일까? … 다문화에 대해
창작에 관한 권리를 바라보는 시선 … 저작권 보호에 대해
빠르고 편리한 것을 좇는 현대인 … 패스트푸드에 대해
국가를 위해 아이를 낳으라고? … 출산 장려에 대해
외모도 경쟁력이라고 말하는 시대 … 외모 지상주의에 대해
우리나라가 최고인가? … 애국심에 대해
정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일까? … 통일에 대해
‘자유’와 ‘방종’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 언론 자유에 대해
박수받을 자격, 격려받을 자격 … 일등주의에 대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날마다 온갖 일들이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은 가슴 뭉클해지는 선행을 베풀고, 또 어떤 사람은 끔찍하기 짝이 없는 죄를 짓지요. 사람들의 선량한 마음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서로를 따뜻하게 보살피며 모두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지요. 그와 달리 사람들의 나쁜 말과 행동은 세상을 어둡게 만듭니다. 그중 일부는 범죄를 저질러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공동체의 질서를 파괴하기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착하게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적어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아가기만 해도 괜찮지 않을까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제법 많은 사람이 자기의 이익과 편의를 좇아 타인을 괴롭히지요. 나아가 법의 처벌을 받아야 할 나쁜 짓을 일삼기도 합니다. 그 정도가 심할 경우 몇 년씩, 또는 수십 년씩 교도소에 수감되어 징역을 살게 되지요. 특히 고의로 사람의 목숨을 빼앗거나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면 사형을 선고받기도 합니다. 그와 같은 사형 제도는 역사가 무척 긴데, 최근 들어 찬성과 반대 의견이 자주 충돌합니다.
여러분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 있나요?
이것을 해석하면 ‘피해를 본 만큼 똑같이 앙갚음한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런 사고방식을 담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로 함무라비 법전을 이야기할 수 있지요. 이 법전은 기원전 1750년 무렵 고대 왕국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왕이 만든 인류 최초의 성문법1으로 유명합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높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면 그의 눈을 멀게 하라.’ , ‘신분이 같은 사람이 이를 부러뜨리면 그의 이를 부러뜨려라.’등이 있습니다. 비록 신분제 탓에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적용된 법은 아니지만,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똑같은 수준으로 형벌을 가한다는 원칙을 세웠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고조선 시대의 법전에서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정신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한다.’라는 내용을 법전 맨 앞에 밝혀 두었지요. 그처럼 인류는 역사적으로 범죄에 대해 강력한 처벌을 실행해 왔습니다. 살인 같은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면 사형을 집행해 이 세상에서 완전히 격리했지요. 대다수 사람이 국가의 사형 제도를 당연하게 받아들였으며, 오늘날에도 그와 같은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역시 법률에 따른 형벌 중 하나로 사형 제도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적지 않은 사람들이 법원의 판결을 받고 죽음으로써 죗값을 치렀지요. 우리 사회 일부에서 꾸준히 사형 제도의 폐지를 요구했지만, 지금까지는 공식적인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최근 들어 아동을 상대로 한 범죄나 잔혹한 살인 사건이 이어지면서 사형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지요.
사형 제도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분명합니다. 그들은 타인에게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은 흉악범은 그에 맞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니까 고의로 살인을 저지르면, 그 범죄자의 목숨도 빼앗아야 마땅하다는 것이지요. 앞서 설명한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원칙을 지켜야 정의로운 사회가 된다는 논리입니다. 그들의 생각은 충분히 일리가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범죄자의 인권 보호도 우리가 지켜야 할 중요한 가치로 보지만, 그에 앞서 피해자의 생명권2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형 제도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흉악 범죄의 발생률을 낮춘다고 말합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지난 1998년부터 사형 집행이 단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법으로는 여전히 사형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데 말이지요. 사형 제도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요즘 우리 사회에 흉악 범죄가 끊이지 않는 원인이 거기에 있다고 강조합니다. 사형을 집행하지 않으니까 범죄자들이 살인마저 망설이지 않게 됐다는 것이지요. 물론 흉악 범죄가 증가하는 것이 사형 집행과 얼마나 연관성이 있는지는 좀 더 연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데는 여러 가지 문제가 얽혀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럼에도 사형은 우리 사회에서 최악의 범죄자들을 제거하는 가장 강력한 형벌입니다. 뉴스를 통해 흉악한 사건을 접한 사람들의 분노와 불안을 단숨에 씻어 주지요. 사형 제도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그와 같은 이유로 사형 집행이 계속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피해자들과 그 가족의 슬픔을 생각하면 선뜻 외면하기 어려운 주장입니다.
사형은 또 다른
이름의 살인일 뿐
우리 사회에는 사형 제도에 찬성하는 사람들 못지않게 반대하는 사람들도 엄연히 존재합니다. 어느 면에서는 사형 제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지요. 실제로 그들은 1996년과 2010년 사형 제도에 대해 헌법 소원3을 냈습니다. 법률로써 사형을 인정하는 것이 모든 인간의 생명권을 존중하는 헌법 정신에 어긋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4에서는 두 차례 모두 합헌, 즉 헌법의 취지에 맞는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다만 1996년에 비해 2010년에는 헌법재판소에서도 사형 제도에 반대하는 의견이 좀 더 늘어났지요. 그 후 2019년에는 천주교 단체에서 세 번째 헌법 소원을 내, 그 결과에 사람들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형 제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 것일까요?
우선 그들은 사형 제도가 흉악 범죄 발생률을 낮추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 근거 중 하나로, 각 주 정부의 결정에 따라 사형 제도를 유지하거나 폐지한 미국을 예로 들지요. 현재 미국은 사형 제도가 있는 주와 없는 주의 수가 비슷합니다. 그런데 흉악 범죄 발생률에는 별로 차이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지요. 그들은 미국에서 사형 제도를 폐지하는 주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사실도 긍정적으로 바라봅니다. 미국을 비롯해 유럽 국가들이 잇따라 사형 제도를 폐지한 분위기가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또한 사형 제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억울한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다시 말해, 잘못된 수사와 재판으로 죄 없는 사람이 범죄자의 누명을 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요. 더구나 사형은 한번 집행하면 절대 되돌릴 수 없는 형벌입니다. 뒤늦게 사형수로 목숨을 잃은 사람의 무죄가 밝혀지면 그 충격은 무엇과도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범죄자를 강력히 처벌하는 것에 앞서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리고 사형 판결을 내리고, 그것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스트레스 역시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설령 흉악범을 사형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갈등에 휩싸일 수밖에 없습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타인의 죽음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불편하기 마련이지요. 하물며 자신이 직접 사형을 집행하게 된다면 두려움과 공포가 좀처럼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은 평생 죄의식에 사로잡혀 살아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사형 제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인간을 죽여도 되나?’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품습니다.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신 앞에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누구든 옳고 그름에 대해, 더구나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을 신처럼 판단할 수는 없지요. 이 세상에 타인을 일방적으로 비난할 만큼 완전한 인격을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울러 신분제가 사라지고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현대 사회는 모든 인간의 인권을 보호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억압하지 말아야 하며, 어떤 이유로든 생명권을 위협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사형 제도는 인간이 인간의 목숨을 빼앗는 행위를 법으로 인정합니다. 크나큰 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한 인간의 생명을 앗아 갈 권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있는 것일까요? 살인의 죄를 또 다른 살인으로 벌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요? 바로 그런 점에서 이제 많은 사람이 사형 제도의 폐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굳이 사형이라는 끔찍한 형벌이 아니더라도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할 방법이 있다고 말합니다.
사형 제도에 대해
깊어지는 고민
앞서 살펴봤듯, 사형 제도에 대한 찬성과 반대 의견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무조건 어느 한쪽의 생각이 잘못됐다고 비판하기 어렵지요. 여전히 많은 사람이 사형 제도가 필요악이라고 말합니다. 필요악이란, 없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현실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악을 일컫습니다. 그러니까 사형 제도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사회의 질서 유지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그와 달리 사형도 결국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일 뿐이라는 주장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두 가지 의견이 더욱 팽팽히 대립하고 있지요.
몇 년 전 국가인권위원회5에서는 사형 제도에 관한 여론 조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 사형 제도를 유지하자는 쪽이 59.8퍼센트, 폐지하자는 쪽이 20.3퍼센트로 나타났지요. 나머지는 자기 생각을 정확히 밝히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어느 쪽을 지지하든 각각 장단점이 있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사형 제도에 찬성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신중히 집행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사형 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지금 당장보다는 좀 더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많았고요.
그렇다면 다른 나라의 경우는 어떨까요?
한마디로 정리하면, 세계적으로 사형 제도를 폐지하는 국가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국제 인권 단체인 앰네스티의 조사에 따르면 사형 제도가 없는 나라는 110개국 이상 됩니다. 우리나라처럼 사형 제도가 있지만 10년 넘게 집행하지 않아 사실상 폐지된 것으로 분류되는 나라도 28개국에 이른다고 하지요. 실질적으로 사형 제도를 유지하는 국가는 55개국 정도라고 합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경제 강국입니다. 그런데 단지 부자라고 해서 다른 나라의 존중을 받는 선진국인 것은 아니지요.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고 문화적으로 풍요로우며, 모든 사람의 인권이 보장돼야 참다운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사형 제도에 대해 좀 더 깊이 고민해 봐야 합니다. 아직 국민의 60퍼센트 정도가 사형 제도에 찬성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요 선진국 가운데 여전히 사형 제도를 유지하는 곳은 미국의 20여 개 주와 일본뿐이지요. 우리나라도 언제까지나 사형 제도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흉악한 범죄자를 심판할 효과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사형 제도에 찬성하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 테니까요.
사형 제도를 폐지한 국가와 유지하는 국가의 수
사형 제도를 완전히 폐지한 국가
네덜란드, 독일, 스웨덴, 스페인, 영국, 이탈리아, 캐나다, 프랑스, 필리핀 등 108개국
전쟁 범죄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 일반 범죄의 사형을 폐지한 국가
브라질, 이스라엘, 칠레, 페루 등 8개국
사형 제도가 있지만 10년 이상 집행이 이루어지지 않아 실질적으로 폐지된 국가
대한민국, 모로코, 몰디브, 미얀마, 케냐, 쿠바 등 28개국
사형 제도를 유지하고 집행하는 국가
미국, 베트남, 북한, 이집트, 인도, 일본, 중국 등 55개국
그럼 사형 제도를 대신해 흉악 범죄를 예방하고 처벌할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사형 제도는 무엇보다 범죄자를 우리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반드시 범죄자의 목숨을 빼앗아야 그와 같은 효과를 얻는 것은 아니지요. 흔히 사형 다음가는 무거운 징벌로 ‘종신형’을 이야기합니다. 범죄자의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교도소에 가두는 무기 징역형을 일컫습니다. 종신형은 다시 ‘상대적 종신형’과 ‘절대적 종신형’으로 구분하지요. 무기 징역형 판결을 받은 죄수가 교도소에서 모범적으로 생활하면 중간에 석방될 수 있는 것을 상대적 종신형이라고 합니다. 그와 달리 절대로 중간에 석방되지 못하는 무기 징역형이 절대적 종신형입니다.
사형 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대안으로 절대적 종신형을 제안합니다. 그것이 사형 못지않은 흉악 범죄 예방 효과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절대적 종신형만으로도 흉악 범죄를 저지를지 모를 사람들이 충분히 경각심을 가질 것으로 판단합니다.
그런데 사형 제도를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다가도 흉악 범죄가 자꾸 발생하면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집니다. 얼마 전 한 설문 조사에서는 사형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80퍼센트나 되기도 했지요. 그런 결과는 그 무렵에 일어난 많은 강력 사건들이 영향을 끼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사형 제도가 법률적으로 폐지되려면, 먼저 흉악 범죄를 줄여 나가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 방법으로는 지속적인 교육과 엄격한 법 집행을 통한 예방을 이야기할 수 있지요. 또한 우리 사회의 여러 가지 불평등과 물질만능주의 문화도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흉악 범죄가 반복돼, 사형 제도가 꼭 필요하다는 여론6이 오히려 더 늘어날지 모릅니다.
사형 제도를 유지해 흉악한 범죄자를 엄벌해야 한다는 주장. 사형 제도는 일종의 화풀이일 뿐, 하루빨리 폐지해 모든 인간의 생명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주장. 여러분은 둘 중 어느 쪽 의견에 더 공감하나요?
5 국가인권위원회 : 개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강화해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를 확립하도록 하는 대한민국 국가 기관. 2001년에 만들어졌다.
6 여론 : 사회 구성원 중 많은 사람이 공통으로 갖는 의견.
“판사님, 왜 사형 판결을 안 내리세요?”
우리는 뉴스를 통해 종종 끔찍한 범죄 사건을 접하게 됩니다. 그중 최악은 뭐니 뭐니 해도 살인 사건이라고 말할 만하지요. 그런데 꼭 살인을 저지르지 않더라도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범죄가 일어납니다. 특히 범죄의 대상이 어린이 같은 사회적 약자라면 더 많은 사람이 분노하게 마련이지요. 요즘은 사람들의 그런 감정이 인터넷 댓글 등에 적극적으로 표현됩니다.
“우리나라는 범죄자에게 너무 관대해. 저런 놈은 당장 사형시켜야 한다고!”
“맞아, 맞아. 다른 사람한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으면 죽어 마땅하지. 종신형도 안 돼!”
어떤 사람들은 좀 더 논리적으로 사형을 요구합니다.
“인간 같지 않은 범죄자를 왜 교도소에서 평생 공짜로 먹여 주고 재워 줘? 그거 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해 주는 거잖아!”
“어디 그뿐인가? 피해자의 가족은 얼마나 슬프고 화가 치밀겠어. 피해자의 생명권을 존중한다는 뜻에서도 반드시 사형 판결을 내려야 한다고!”
그러나 법원의 판결은 여론과 다르게 내려지는 경우가 흔합니다. 당연히 사형을 선고받을 것이라고 예상한 범죄자가 무기 징역형에 그치는 식이지요. 심지어 징역 10년 안팎의 형량에 불과한 사례도 적지 않습니다.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죄형 법정주의’ 때문입니다. 이것이 범죄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일부터, 어떤 형벌을 내릴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까지 모두 법률에 따라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즉 범죄자에게 내리는 판사의 형벌은 여론이 아니라 법률을 근거로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물론 판사도 법관 이전에 감정을 가진 사람입니다. 정말 흉악한 범죄자를 마주하면 무조건 사형을 선고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요. 하지만 감정만을 앞세우면 법관의 역할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합니다. 모든 범죄에 대해 법률이 정한 바에 따라 판결을 내려야 합리적인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만약 여론이나 법관의 기분대로 범죄자의 형량이 정해진다면, 그 사회는 머지않아 큰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뭐, 징역 300년 형을 선고한다고?”
범죄자를 심판하는 형벌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벌금을 내는 것부터 구류, 금고, 징역, 사형 등이 있지요. 이 가운데 구류와 금고, 징역은 모두 범죄자의 자유를 구속하는 형벌입니다. 구류를 선고받은 범죄자는 보통 하루에서 한 달이 넘지 않는 기간 동안 경찰서 유치장이나 교도소에서 지내게 되지요. 금고와 징역은 적어도 한 달 이상 교도소에 갇혀 생활해야 하는 형벌입니다.
우리는 흔히 징역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감금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습니다. 범죄자들은 사회생활 하듯 교도소에서 지정한 일을 하며 약간의 돈을 받지요. 그와 비교해 금고는 그런 노동을 전혀 하지 않는 형벌입니다. 주로 죄질이 너무 나빠 여러 사람과 어울려 일하게 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을 때 금고형을 받게 됩니다.
징역은 다시 무기 징역과 유기 징역으로 구분합니다. 말 그대로 무기 징역은 평생 교도소에 갇혀 지내는 것이고, 유기 징역은 정해진 기한이 있는 것이지요.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유기 징역을 30년 이하로 선고합니다. 범죄 정도가 심각하거나 반복돼 강력한 처벌을 내릴 필요가 있으면 징역 50년까지 가능합니다.
그런데 미국을 비롯한 몇몇 국가에서는 수백 년, 심지어 수천 년씩 징역을 선고하기도 합니다. 사람의 수명이 길어 봤자 100년 안팎인데 왜 그런 판결을 내리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미국은 한 사람이 여러 가지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그 죗값을 모두 더해 형량을 정하지요. 그러니까 드물지 않게 징역 수백 년을 선고하는 것입니다. 그와 달리 우리나라는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죄를 지어도 그중 가장 무거운 죄를 기준으로 형량을 선고합니다. 다만 한 가지 죄를 저질렀을 때보다 형량이 추가될 수는 있지요. 만약 미국처럼 징역 수백 년을 살아야 할 죄라면 무기 징역에 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의 비밀을
들키고 싶지 않아
2020년, 전 세계는 코로나19 사태로 한바탕 난리를 겪었습니다.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니었지요. 정부에서는 바이러스의 전파를 막기 위해 온갖 정책을 쏟아 냈습니다. 그중에는 우리나라의 뛰어난 정보통신기술1을 이용한 아이디어가 많았지요.
정부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오면 그 사람이 다녀간 장소를 일일이 공개했습니다. 회사와 학교, 가게 이름을 비롯해 확진자가 방문한 날짜와 시간까지 구체적으로 밝혔지요. 다른 사람들이 그 장소를 찾아가 확진자의 몸에서 나온 바이러스에 감염될까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확진자와 비슷한 시각 그곳에 머물렀던 사람들에게는 코로나19 검사를 유도하려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사람들은 좀 더 조심하며 바이러스 감염의 위험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됐지요.
또한 정부는 병원이나 결혼식장처럼 많은 사람이 모이는 시설을 찾는 방문객의 명단을 작성하도록 했습니다. 혹시 그곳에서 확진자가 발생하면 접촉자들에게 빨리 연락해 코로나19 검사를 받게 하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와 같은 정책 역시 바이러스 전파를 막는 일에 큰 효과를 나타냈지요. 나중에는 개인 정보가 담긴 QR 코드2를 이용해 편리성을 높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 한쪽에서는 그런 정책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개인 정보를 지나치게 많이 들여다보고, 너무 쉽게 노출한다는 지적이었지요. 코로나19의 확산을 방지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개인 정보 보호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의미였습니다. 요즘같이 정보통신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