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의 말 _쉰 살, ‘천명天命’을 알아야 할 때
프롤로그 _어느 날 문득 ‘우주’가 나를 찾아왔다
대체 우주란 어떤 동네일까?
나의 버킷 리스트, 백수의 꿈
융합형 천문학 책
왜 우주를 알아야 하나?
우주란 무엇인가?
우주는 아직 어린 게 틀림없다
1강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세상은 왜 텅 비어 있지 않은가?
어제가 없는 오늘
괴짜 콤비가 발견한 ‘팽창우주’
우주의 나이를 가르쳐준 허블의 법칙
우주의 시작은 아름다운 불꽃놀이였다
<재미난 쉼터 1> 천문학 영웅의 영광과 좌절 _미스터리에 싸인 허블의 무덤
신호는 빅뱅 우주를 의미했다!
<재미난 쉼터 2> 빛이란 무엇인가? _놀라운 빛의 정체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수소다!
2강 만물의 근원인 수소가 맨 처음 한 일
우주의 별이 많을까, 지구상 모래가 많을까?
별이 빛나는 이유를 알아낸 노총각 교수
별도 사람처럼 생로병사를 거친다
별의 운명은 질량이 결정한다
운 좋으면 초신성 폭발을 볼 수 있다
사람이 별먼지로 만들어졌다고?
<재미난 쉼터 3> 별자리는 대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_하늘은 88번지까지 있다
<재미난 쉼터 4> 별자리로 보는 별점, 정말 맞을까? _인류 3분의 1이 믿는다
3강 우주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나?
은하, 은하수, 우리은하_어떻게 다를까?
최초의 은하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우리은하의 탄생
은하수가 하늘을 가로지르는 이유
은하에도 종류가 있다
은하들의 층층 구조로 이루어진 우주
<재미난 쉼터 5> 우리은하와 안드로메다 은하가 충돌한다! _45억 년 후 밀코메다가 탄생한다
4강 우주는 얼마나 클까?
지구 30개를 늘어놓으면 달에 닿는다
60억 km만 나가도 지구는 한 점 티끌
가장 가까운 별까지 가려면 6만 년 걸린다
천문학자들의 줄자 ‘우주 거리 사다리’
중학교 중퇴자가 최초로 별까지 거리를 쟀다
천문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한 문장
우주 팽창을 가르쳐준 ‘적색이동’
우주의 가장 긴 줄자인 ‘초신성’
<재미난 쉼터 6> 심오한 질문 ‘밤하늘은 왜 어두운가?’ _ 올베르스의 역설, 소설가가 풀었다
5강 우주는 끝이 있을까?
우주는 끝이 있다? 없다?
안과 밖이 따로 없는 우주의 구조
공간은 휘어져 있다, 일반 상대성 이론으로 보는 우주
유한하나 끝이 없는 우주
<재미난 쉼터 7> 아인슈타인은 과연 ‘신’을 믿었을까? _ 27단어로 답하다
6강 우주에서 가장 기괴한 존재, 블랙홀
블랙홀이 태어난 곳은 인간의 머릿속이었다!
블랙홀 논쟁의 마침표
블랙홀 존재, 어떻게 알 수 있나?
블랙홀 동네의 일방통행 구간, 사건 지평선
블랙홀, 화이트홀, 웜홀
블랙홀이 완전히 검지는 않다
시간 앞에 영원한 것은 없다
블랙홀도 과체중을 싫어한다
마침내 블랙홀 사진을 찍었다!
<재미난 쉼터 8> 내가 만약 블랙홀 안으로 떨어진다면? _ 스파게티가 된다고?
7강 알수록 신기한 ‘태양계’ 동네
세상을 바꾼 갈릴레오의 망원경
그래도 지구는 돈다
태양은 아침에 뜨는 별이다
태양계의 기원을 밝힌 철학자
인류 탄생에 걸린 시간은 138억 년
행성 이름들은 어떻게 지어졌을까?
가장 많은 천문학자를 ‘배출’한 토성
망원경 발명 후에 발견된 행성들
태양계에서 태양이 차지하는 비중은 99.86%
신비로운 태양계의 실제 움직임
<재미난 쉼터 9> 고졸 별지기와 행성반에서 낙제한 명왕성 _죽어서 명왕성을 본 톰보
딱 천왕성 주기만큼 산 천왕성 발견자
8강 다정한 형제, 지구와 달 이야기
별먼지가 뭉쳐져서 된 지구
바다는 어디서 왔을까?
지구가 기우뚱하다고?
<재미난 쉼터 10> 그 많던 공룡들은 왜 다 죽었을까? _백악기 공룡들이 억세게 재수 없던 날
지구의 대기가 그렇게 대단하다니
자석의 힘이 지구를 지켜준다
지구를 쪼개면 뭐가 나올까?
<재미난 쉼터 11> “2060년에 세계는 멸망한다!” _아이작 뉴턴의 ‘지구 종말론’
지구의 하나뿐인 변덕쟁이 동생
음력과 양력, 어떻게 다른가?
덩치가 커도 너무 큰 달
달에도 바다가 있다고?
달은 지구의 보디가드
하늘에 있던 달이 없어졌다!
해를 품은 달
우리 몸이 달과 관계가 있다고?
달도 언젠가 지구를 떠난다
<재미난 쉼터 12> 달에서 본 ‘지구돋이(Earthrise)’ _역사상 가장 영향력 큰 사진
에필로그 _우주는 어떤 종말을 맞을까?
은하들이 안 보인다
우주 종말 3종 세트
가장 유망한 우주의 종말, 대동결
우리가 우주를 사색하는 이유
찰나의 불씨 한 점
<재미난 쉼터 13> 인류가 우주를 완벽히 아는 날이 올까? _우주는 프랙탈 구조
두루미가 왜 나는지, 아이들이 왜 태어나는지,
하늘에 왜 별이 있는지 모르는 삶은 거부해야 한다.
이러한 것들을 모르고 살아간다면
모든 게 무의미하여 바람 속의 먼지 같을 것이다.
• 안톤 체홉의 『세 자매』에서 •
“나이 쉰이면 천명을 알아야 한다五十而知天命”는 말은 공자孔子가 50세에 천명을 알았다는 데서 나온 『논어』의 한 구절이다. 그래서 ‘지천명知天命’은 50세를 가리키는 말로 굳어졌다. 천명이란 인생을 뜻하기도 하지만, 넓게는 삼라만상을 지배하는 우주의 섭리나 원리 또는 보편적인 가치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예전에야 쉰 살이면 세상에서 한 걸음 물러나 인생과 세상을 관조할 나이라 하겠지만, 1백세 인생을 말하는 오늘날에는 생의 딱 절반인 시점이다. 자녀가 있다면 대학에 갈 나이이고, 또 자신은 곧 닥칠 은퇴 후 노년을 설계해야 하는, 그야말로 다사다망한 ‘생의 한가운데’에서 마음만 급해지는 시기라 하겠다. 그러나 그럴수록 심호흡 한번 하는 마음의 여유가 더욱 필요할 때이기도 하다.
걸어온 길도 멀지만 걸어가야 할 길도 만만찮은 나이 쉰 살. 인생을 이등분하는 중점中點에 서서 지나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생을 어떻게 그려갈 것인지 차분한 성찰이 필요한 나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럴 때 몇 해 전 타계한 휠체어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의 말은 충분히 되새겨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땅만 내려다보지 말고 고개를 들어 하늘의 별을 보라. 호기심을 가져라. 우주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을 품자. 상상력을 가지자. 삶이 아무리 어려워도, 세상에는 해낼 수 있고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일이 언제나 있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대체로 우리는 시선을 수평 이하로 둔 채 살아간다. 현대인들은 밤하늘에 별이 있는지조차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시선을 땅에만 떨어뜨린 채, 우리가 사는 동네인 우주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산다면 균형 잡힌 가치관을 갖기는 어려우며, 온전한 삶을 꾸려내기도 힘들 것이다.
이처럼 현대인은 우주 불감증이란 돌림병을 앓고 있는데도 그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다. 오늘날 인간의 탐욕으로 급격히 파괴되는 지구 환경과 끝없이 이어지는 분쟁, 치솟는 자살률 같은 것도 인류가 ‘우주’를 잊어버린 채 살아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 선조들은 “하늘을 잊고 사는 그 자체가 재앙”이라고 말했다.
“‘나는 누구인가?’를 알고 싶다면 먼저 자신이 있는 곳 우주를 알아야 한다”고 말한 어느 과학자의 말마따나, ‘우주란 무엇인가? 우주와 나의 관계는 무엇인가?’를 확실히 깨우칠 때 우리는 보다 균형 잡힌 삶,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이 책을 쓴 뜻은 부족하게나마 우주의 탄생과 그 진화라는 ‘큰 그림’을 보여주기 위함인 만큼, 보다 깊은 천문학-천문학사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다음 독서 단계로 나아가는 데 디딤돌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어린이에서 청소년, 어른에 이르는 여러 연령층을 대상으로 입문서를 쓰다 보니 책의 구성상 전작과의 내용 중복을 다소 피하기 어려웠다는 점도 이해를 구하고 싶다.
아무쪼록 이 책이 ‘지천명의 쉰 살’, 우주를 알아야 할 고빗길에 접어든 여러분을 우주로 안내하는 좋은 길라잡이가 되기를 바란다.
2020년 늦가을
강화도 퇴모산에서 지은이 씀
ⓒ김현우
“천문학자는 낭만주의자다.
그들은 우주를 이해하지 못하면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고 믿는다.”
- 울리히 뵐크(독일 천문학자·작가)
중국의 작가이자 문명비평가인 린위탕林語堂은 삶에서 인간과 우주와의 관계를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으로, 불후의 명수필집 『생활의 발견』 곳곳에 그러한 성찰이 담긴 명언들을 남겼다. 다 음의 한 구절은 인간과 우주와의 관계에 대한 빛나는 성찰이 담긴 문장으로 음미해볼 만하다. “인간은 광대한 우주에 살고 있으며, 인간 못지않게 경탄할 만한 우주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이 넓고 큰 세계의 기원과 숙명을 무시하고서는 참된 의미의 만족스런 생활을 해나갈 수 없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우주’를 처음으로 어렴풋 느끼고 생각하게 된 것은 9세 무렵이었다.
대도시 변두리의 판자촌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초등 1년까지 다니다가 근교 시골로 이사를 갔다. 좁은 골목 안에서만 살다 보니 들판과 강도 있고 산도 있는 시골은 그야말로 별세계처럼 여겨졌다.
동네 아이들과 같이 어울려 봄이면 야산으로 다니며 진달래를 따먹고, 여름이면 팬티 한 장 걸치고 근처 강에서 멱 감으며 놀았다. 물은 맑았고, 강변 들깨밭에서 풍겨오는 들깨향은 기분 좋았다. 강에서 살다시피 하는 바람에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온몸이 햇볕에 까맣게 탔다. 달밤이면 술래잡기, 말타기 같은 놀이로 밤이 깊은 줄 모르고 정신없이 놀았다.
그 무렵 어느 여름밤, 시골집 마당에 멍석을 펴놓고 이웃 동무들과 놀고 있었는데 대입을 앞둔 큰형이 쏟아질 듯한 밤하늘 별들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 저 별들 보이지? 그런데 저 별들이 지금은 저기 없을지도 몰라.”
다들 뜨아한 얼굴로 큰형을 쳐다봤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얘기였던 것이다. 큰형이 다시 말했다. “왜냐하면 저 별까지의 거리가 너무나 멀어서 별빛이 여기까지 오는 데 시간이 엄청 걸리거든. 그러니까 우리가 보는 저 별은 지금의 모습이 아니라 아주 과거의 모습인 거야. 지금 저 별이 그대로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 그러곤 이렇게 덧붙였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빛만큼 빠른 로켓을 타고 저 별에 다녀온다면 지구는 몇 백 년이 흘러가버렸을 수도 있단다.”
참으로 낯선 얘기였다. 어린 나이에도 내가 살아온 세계와는 너무나 다른 이야기에 나는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그 얘기는 오래 여운을 남겨 별의 세계, 우주의 느낌을 내 속 깊이 심어놓았다.
큰형은 얼마 후 서울로 올라가 문학을 공부했고,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소설가가 되었다. 그리고 어린 시절 형으로부터 별 이야기를 들은 나는 이렇게 천문학 작가가 되었다.
이런 경험에 비추어보았을 때 어린이에게도 되도록 별과 우주를 많이 보고 읽게 하는 것이 정서적으로나 교육적으로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머리와 가슴에 별을 담고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은 분명 삶의 길이 다를 것이다.
요즘 언론에 오르내리는 기사를 보면, 인생 말년에 험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젊은 시절 조금만 더 별을 보고 우주를 사색하는 삶을 살았더라면 저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나의 경우는 ‘9세의 별’이 내 속에서 꺼지지 않고 계속 반짝였던 것 같다. 내가 갓 20세 넘어 서울에서 자취하면서 출판사를 전전하며 밥벌이하고 있을 때 문득 ‘내가 살고 있는 이 우주는 대체 어떤 동네일까?’ 하는 호기심에 하루는 청계천으로 나갔다.
ⓒNASA
그때만 해도 청계로 양켠으로 수백 개의 헌책방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 서점들을 종일 다리가 아프도록 뒤지고 다녔다. 요즘에야 좋은 천문학 책들이 수없이 나와 있지만, 당시는 지하철 1호선을 놓는다고 한창 종로 바닥을 파뒤집던 70년대라 그런 책은 종내 찾을 수 없었다. 다들 먹고 살기에 바빠 우주로 눈길을 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나중에 내가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천문학 책과 천문잡지 등을 꾸준히 내게 된 것도 모두 그런 갈증에서 비롯된 것 같다.
천직 비슷한 출판사를 접은 것도 따지고 보면 우주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날 야근을 하고 밤늦게 귀가하는데, 아파트 단지 입구에 들어서자 어느 고층집 베란다에 누런 조등 하나가 걸려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 순간 무언가가 내 머리 속을 딱 때렸다. ‘아, 정신없이 살다가 아파트 안방에서 죽으면 저렇게 베란다에 조등 하나 걸고 끝나겠구나.’
밥벌이에 파묻혀 바쁘게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아파트 안방에서 죽는다면, 그보다 억울한 일이 어디 있을까. 박정만* 시인은 ‘나는 사라진다/저 광활한 우주 속으로’(‘終詩’ 전문)라는 절명시를 남겼지만, 나는 우주로 사라지기 전에 내가 어쩌다 우연히 태어나 살게 된 이 우주란 동네를 좀더 알아보고 싶었다.
영국 작가 중 버나드 쇼라는 사람이 있는데, 노벨 문학상까지 탄 문호지만 독설가로도 유명하다. 한번은 예쁜 여배우가 쇼에게 자기랑 결혼하면 머리도 좋고 잘생긴 2세가 태어날 거라고 말했더니 그는 이렇게 되받아쳤다고 한다. “머리도 나쁘고 못생긴 2세가 나올 확률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또 한번은 쇼가 길에서 친구 작가를 만났다. 몸피가 뚱뚱한 친구였는데, 그에 비해 쇼는 비쩍 마른 몸집이었다. 뚱뚱이가 홀쭉이를 놀리는 말을 했다. “자네를 보니 영국의 식량부족 상황을 한눈에 알겠군.” 그러자 쇼가 이렇게 되받았다. “흠, 자네를 보니 그 이유가 어디 있는지 알 것 같군.”
이렇게 뜬금없이 버나드 쇼 얘기를 늘어놓는 건 순전히 그의 별난 묘비명 때문이다. 유명한 그의 묘비명은 이렇다. ‘어영부영하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
쇼는 94세까지 살았는데도 정작 하고 싶은 일은 못한 모양이다. 내가 아파트 베란다의 조등을 보고 떠올린 것도 이 쇼의 묘비명이었다. 나 역시 그렇게 되고 싶지는 않았다. 하고 싶은 것을 웬만큼 한 후 떠나고 싶었다. 나의 버킷 리스트는 ‘우주로 떠나기 전에 백수가 되어 맘껏 빈둥빈둥 게으름 피며, 읽고 싶은 책 읽고 별 보며 우주나 좀 사색하다 가자’는 것이었다.
어떻게 운때가 맞았는지 얼마 후 출판사를 인수하겠다는 임자가 나타나자 나는 미련 없이 출판사를 넘기고 이삿짐을 꾸려 강화도 퇴모산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내가 늘 그리던 백수 생활, 자연 속에서 낮에는 빈둥거리거나 텃밭일 좀 하는 척하다가 밤이면 별 보고 천문학·물리학·수학 책 읽는 생활을 이어갔다.
그런데 문과 출신이다 보니 수식들이 적잖이 나오는 책들은 읽어도 반타작도 제대로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어느 초겨울 읍내 책방에서 중·고등 수학 전 과정 참고서를 몽땅 묶어와서는 겨울 내내 입시생처럼 수학책과 씨름했다. 무한과 확률, 미적분까지 진도가 나가자 책 속의 수식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해력이 썩 나아졌다고는 할 수 없었다.
이런 실랑이를 벌이면서 한 10년 동안 관련 책들을 백여 권 정도 읽다 보니 자각 하나가 찾아왔다. 대체로 천문학 책들이 딱딱하고 재미가 없어 일반인들이 읽고 소화하기 어렵다는 느낌이었다. 천문학 책은 수면제가 필요할 때 읽으면 좋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다. 책을 펴들면 10분 내로 잠이 오니까.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엄숙한 유교문화에 젖은 나머지 ‘재미’라는 요소를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재미는 우리 삶의 본질적인 요소이며, 행복의 속고갱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책이든 영화든 재미가 없는 것은 실패한다. 학교 수업, 강의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가르치는 과목을 얼마나 재미있게 학생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가?’ 이 능력이 교사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다. 재미없는 책이나 재미없는 강의는 임팩트가 없으며, 따라서 사람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 감동을 못 주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재미없는 강의나 수업은 하지 말아야 한다.
교사는 모름지기 자기 수업이 재미있도록 머리를 쥐어짜고 열정을 쏟아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에 ‘수포자’가 많은 것은 아이들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수학을 재미없게 가르치는 수학 교사들의 무능 탓이라 생각한다. 일찍이 삼각형 하나로 달까지의 거리를 알아낸 히파르코스와 지동설을 간파한 아리스타르코스* 같은 고대 천문학자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욱 절실하다.
연애에서도 재미는 강력한 요소다. 흔히들 연애를 잘하는 사람은 ‘비디오’가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들을 하는데, 이는 큰 착각이다. 재미있는 사람이 연애도 잘한다. 폭넓은 독서를 바탕으로 한 풍부한 지식과 인문학적 교양으로 무장된 사람, 거기서 우러나오는 감수성과 유머 감각이 재미있고 연애에 유능한 사람을 만든다.
어느 해 늦가을, 나는 재미있는 천문학 책을 한번 써보자는 생각에 관련 책 1백여 권을 읽으면서 작성한 독서 노트를 옆에다 두고 집필에 들어갔다. 그해 겨울이 끝날 무렵 책 한 권 분량의 원고를 마무리해서 『천문학 콘서트』란 책을 세상에 선보였다. 책을 내놓고 보니 젊은 시절 내가 찾았던 그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뜻밖에 “인문학적 융합형 천문학 책”이라는 호평을 받았고, 한 독서 클럽에서 강연 의뢰를 받았다. 강연 후 저자 사인회 때 한 독자가 책 면지에 사인을 받으면서, 자신은 고등학교 지학 교사인데 천문학 책만 펴들면 10분 내로 잠이 왔지만 이 책은 너무 재미있어 밤새워 다 읽었다는 말을 해주었다.
어쨌든 책이 쇄를 거듭한 덕분에 인세도 솔찮게 들어와 그 돈으로 산속 집 베란다에다 개인 관측소를 올리고, ‘원두막 천문대’라는 간판을 걸었다. 요즘도 가끔 거기 올라가 10인치 돕소니언 반사망원경으로 우주여행을 즐긴다.
‘우주란 과연 무엇인가? 우리가 사는 동네라고 할 수 있는 이 우주는 언제 생겨났고, 어떻게 생긴 것인가?’ 젊은 시절, 이런 의문에 한두 번 사로잡혀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은하수가 흐르는 밤하늘을 보면 뭔가 경건하고 경이로운 느낌이 들면서 이런 의문들을 떠올리게 된다. 사람이란 늘 근원적인 질문을 하고 그 답을 찾으려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유명한 진화생물학자 토머스 헉슬리는 “인류가 지금까지 추구해온 수많은 문제들 가운데 가장 근본적이면서 흥미로운 것을 하나 고르라 한다면 ‘자연에서 인간의 위치와 인간과 우주의 관계’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부대끼다 보면 어느덧 우리 머리 위에 있는 우주라는 존재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그날그날을 살아가게 되는 것 또한 우리네 삶이다. 현대인은 대체로 우주 불감증이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 살아가지만, 그러한 증세를 자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우주가 화제에 오르면 “우주를 안다고 밥이 생기나, 돈이 생기나” 하고 고개를 돌리거나, 심하면 “참 한가한 모양이네”라며 비꼬는 사람도 있다.
정말 우주가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그런 것일까? 그것은 불행한 오해라 할 수 있다. 물론 우주를 안다고 당장 돈이 생기지는 않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 즉 우리의 근원을 알고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우주는 우리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중국의 작가이자 문명비평가인 린위탕林語堂은 삶에서 인간과 우주와의 관계를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으로, 불후의 명수필집 『생활의 발견』 곳곳에 그러한 성찰이 담긴 명언들을 남기고 있다. 다음의 한 구절은 인간과 우주와의 관계에 대해 빛나는 성찰이 담긴 문장으로 음미해볼 만하다.
“인간은 광대한 우주에 살고 있으며, 인간 못지않게 경탄할 만한 우주에 살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이 넓고 큰 세계의 기원과 숙명을 무시하고서는 참된 의미의 만족스런 생활을 해나갈 수 없다.”
만약 자녀가 당신에게 “우주가 뭐예요?”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깔끔하게 대답해줄 수 있다면 참 멋진 일이 아니겠는가. 그럴 때 가장 쉽게 해줄 수 있는 대답이 “이 세상 모든 것을 전부 다 우주라 할 수 있다”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하늘의 해, 달, 별, 우리은하를 포함해 모든 천체들이 다 우주인 거지”라고 덧붙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긴 이 답이 가장 알기 쉽고 보편적인 우주의 정의라 할 수 있다.
ⓒEdwardGrant, “Celestial Orbsinthe Latin Middle Ages”
그런데 옛날 동양의 현자들은 우주를 약간 다른 식으로 정의했다. 중국 전한 시대의 철학책인 『회남자淮南子』*를 보면 우주에 관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예부터 오늘에 이르는 것을 주宙라 하고, 사방과 위아래를 우宇라 한다.’ 이 풀이는 시공간을 아우른 내용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바로 우주란 말이 유래했다.
영어로는 우주를 유니버스universe라 하는데, ‘온누리’를 뜻하는 라틴어 우니베르숨universum에서 나왔다. 고대 그리스어 코스모스cosmos는 질서를 가진 조화로운 체계로서의 우주를 말한다. 피타고라스(BC 580?~500?)가 가장 먼저 쓴 말이라고 하는데, 그는 우주를 ‘아름답고 조화로운 전체’, 즉 코스모스로 봄으로써 우주를 인간의 사고 안으로 끌어들였다.
어떤 말을 쓰든 서양의 우주에는 공간만 있을 뿐 시간 개념은 없다. 그러나 20세기 들어서 아인슈타인이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 우주는 공간 3차원과 시간 1차원으로 이루어진 4차원의 시공간 연속체라고 간파했을 때, 동양의 현자들이 일찍이 말한 시공간을 아우른 ‘우주’의 개념과 딱 맞아떨어짐을 확인하게 되었다. 동양의 현자들은 그토록 현철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우주는 원래부터 존재하던 것일까? 아니면 어떤 시점에서 생겨난 것일까? 사실 오랜 옛날에는 ‘우주가 언제부터 존재했다, 생겨났다’ 식의 개념 자체가 별로 없었다. 사람들은 대체로 우주는 영원 이전부터 있었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 믿었다. 이에 반해, 모든 사물에 시작이 있듯이 이 우주도 언젠가 시작된 것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wikipedia
이처럼 우주의 탄생이나 기원, 그 진화와 종말에 관한 것을 연구하는 분야가 ‘우주론’이라는 것인데, 어떤 놀라운 고대인이 다음과 같은 기발한 우주론을 생각해냈다. 지금으로부터 2100년 전 사람으로 루크레티우스란 로마 철학자다.
“어린 시절부터 내 주위에서 기술의 진보가 이루어지는 것을 봐왔다. 범선의 돛이 개량되었고, 무기도 발달했으며, 악기도 더욱 정교한 것들이 만들어졌다. 만약 우주가 영원히 존재해오던 것이라면 이 모든 변화와 발전이 수천, 수만 번도 더 일어날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그 결과 나는 지금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완성된 세계에서 살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은 나의 짧은 생애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봐왔으니, 세계는 늘 존재해온 것이 아닌 게 분명하다. 우주는 아직 어린 단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참으로 기발한 추론 아닌가. 오늘날 우주론은 2100년 전에 한 루크레티우스의 추론이 3가지 점에서 옳았음을 확인해주고 있다. 첫째, 세계는 항상 존재해온 것이 아니다. 둘째, 세계는 계속 변하고 있다. 셋째, 이 변화는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변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런 위대한 지성에게 우리는 마땅히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다.
이제까지 한 얘기를 통해 우주에 관해 오래 전부터 다음과 같은 유서 깊은 3가지 질문이 존재해왔음을 알 수 있다.
- 우주는 어떻게 생겨났나?
-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 우주 속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참으로 큰 질문들이지만, 20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질문에 정확한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지구상에는 없었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서는 현대과학에 힘입어 이 질문들에 관한 정답들을 거의 알아냈다. 이전 시대 인류가 그렇게 알고 싶어 하던 우주 만물의 기원, 그리고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기원의 문제까지 정답을 찾아내기에 이르렀다. 이는 인류 지성의 크나큰 승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주에 관한 빅 퀘스천들의 정답을 모른 채 살다가 그냥 죽는다는 건 참으로 억울하지 않겠는가.
“신비한 것은
세상이 어떠한가가 아니라,
세상이 존재한다는 그 자체다.”
- 비트켄슈타인(영국 철학자)
“모든 시대는 신 앞에 평등하다”라는 말이 있지만, 그래도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은 어떤 면에서 전 시대에 비해 훨씬 행복한 사람들이란 생각이 든다. 일찍이 철학자들은 ‘왜 세상은 텅 비어 있지 않고 뭔가가 있는가’ 궁금해했지만 그들은 끝내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전 시대 사람들은 꿈도 꾸지 못했던 우주와 만물의 기원을 알아냈으며,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그 근원점도 찾아냈다. 근본을 안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모든 것이 그 지점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현대과학에 힘입어 우리는 우리의 출발점을 알아냈고, 우주를 보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이처럼 우주는 나 자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그야말로 근원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다.
약 300년 전인 17세기, 독일의 철학자이자 수학자·물리학자· 역사학자이기도 한 팔방미인형의 천재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1646~1716)는 “왜 세상은 텅 비어 있지 않고 뭔가가 가득 차 있는가?”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미적분의 발견 업적을 놓고 뉴턴과 다툰 것으로도 유명한 라이프니츠는 또 이렇게 덧붙였다.
“이 세상이 환상일 수도 있고 모든 존재는 꿈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이것들은 너무도 현실적이어서 우리가 환상에 현혹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말하자면 “삼라만상의 모든 것들, 곧 만물은 어디서 온 것일까” 하는 원초적인 물음이었지만, 이런 천재도 끝내 그 정답을 알아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만 물의 근원은 과연 무엇일까?
만물의 기원에 관해 깊이 사색했던 사람은 물론 라이프니츠만은 아니었다. 플라톤 같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도 ‘세상은 왜 존재하게 되었을까?’ 하는 문제에 대해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던 중 만물의 근원에 대한 답을 맨 처음으로 내놓은 사람이 마침내 나타났는데, 바로 탈레스라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였다. 혹 어린 시절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라면 밤하늘의 별을 보며 길을 걷다가 물웅덩이에 빠진 철학자 얘기를 읽은 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나가던 할머니가 그를 끌어내주면서 “어쩌다가 웅덩이에 빠졌수?” 물어보자, 하늘의 별을 보며 가다가 그만 빠졌다니까 “자기 발밑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무슨 하늘의 별을 알려고 하느냐”는 비웃음을 샀다는 그 사람이 바로 탈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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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아버지’라 불리는 탈레스는 인류 최초의 수학자이기도 한데, 피라미드의 높이를 막대기와 피라미드의 그림자를 이용해 측정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