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설 연휴를 앞두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특보를 진행했다. 코로나19로 명명되기 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불릴 만큼 낯선 질환이었다. 당시 중국 후베이성의 우한을 중심으로 바이러스가 전파된 시점이었다. 특보의 내용은 우한 방문자와 방문 예정자를 위한 지침이 주를 이루었다. 사실 우리나라와는 먼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런데 설 연휴가 지나고 우리나라에서도 확진자가 나오더니, 급기야 그 숫자가 폭증하기 시작했다. 이에 모든 언론사들은 코로나19 특보 체제를 갖추었다. 내가 속한 KBS에서 ‘코로나19 통합 뉴스룸’이라는 타이틀로 24시간 대비 특보를 시작한 것은 3월 4일이었다. 하지만 여름이 다 끝나가도록 특보는 계속되고 있다. 나 역시 특보 담당으로 최일선에서 코로나19 소식을 전하고 있다.
코로나19는 우리 예상을 뛰어넘어 우리의 삶 자체를 바꾸는 중이다. 학생들이 바이러스 때문에 한 학기 동안 학교를 제대로 가지 못한 것은 역사상 최초의 일이다. 선생님과 친구들 만날 날을 기대하던 아이들은 새 학기의 첫 인사를 컴퓨터 화면을 통해 나누었다. 대학 기관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개강 연기와 온라인 개강을 거쳐 결국 대부분의 대학은 1학기 전체 비대면 수업 및 시험을 택했다. 우리의 직장 역시 큰 변화를 맞았다. 확진자가 나온 회사는 일시적으로 폐쇄됐고 재택근무를 시행하는 회사가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예측하기를,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는 완전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이 백신이 언제 개발되어 일반에 제공될지 확실치 않다는 데 있다. 이제 코로나19는 종식의 문제가 아닌 관리의 문제로 전환된 듯하다. 마치 완치가 안 되는 당뇨병처럼 말이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고, 확진자의 동선은 전 국민에게 실시간으로 공개된다. 공공기관과 기업에서는 재택근무를 지원, 확대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공연은 연기와 취소를 반복하다가 온라인 채널로 대중을 찾아왔다. 우리 생활의 변화는 현재진행형이다.
일상에서 사람들과 접촉하는 ‘만남의 방식’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하는 시기를 맞이했다. 종교 모임, 병원과 요양원, 콜센터, 클럽, 노래방, 운동 시설, 물류센터까지 누구든지 흔히 스쳐 지나갈 만한 장소에서 감염의 연결고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시기에 ‘내가 만약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는다면?’이라는 생각에 두려움이 앞선다.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신종’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이 여전히 당혹스럽기만 하다.
우리가 맞이한 이 ‘뉴노멀(New Nomal)’ 시대는 새로운 기준,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는 시대다. 그동안 정상이 아니라고 여겼던 일들이 이제는 그래야 마땅한, 정상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언택트’, 비대면이라는 키워드가 자리 잡고 있다. ‘만났다’라는 개념 자체가 현재 새롭게 정립되는 중이다. 앞으로는 직접 얼굴을 보는 접촉뿐 아니라 영상 등을 통한 비대면 접촉도 ‘만남’의 범주에 들어갈 것이다.
요즘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지인을 만났을 때, 대개 가벼운 눈인사나 목례로 인사를 나눈다. 수백 년 전 잉글랜드에서는 손에 무기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악수로 인사했다. 타인과의 직접 접촉을 통해 신뢰감을 쌓는 안전한 인사법이었다. 그러나 올해 초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에서는 킥오프 전 악수를 금지하는 방침을 내렸다.
언택트 시대, 이제 악수의 의미도 달라진다. 수백 년 전의 악수에 비해 지금의 악수는 더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며, 상대방을 향한 신뢰의 무게는 그만큼 크고 강력해질 것이다. 누군가를 만났을 때 두 사람이 약속이라도 한 듯 웃으며 악수를 나눈다면, 서로가 서로를 신뢰한다는 하나의 퍼포먼스가 되리라.
악수의 의미가 변화하듯 우리의 관계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낯선 다수에 노출되는 상황은 최대한 피하고, 검증된 사람과만 만나는 끼리끼리 문화가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선택과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소통의 단절을 선택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위험과 불확실성이 만연한 상황에서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소통은 계속되어야 한다. 문제는 방식의 변화다.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적응할지가 중요하다.
비대면이 일상화되고 사람을 선택적으로 만나는 언택트 시대에 어떤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해야 효과적일까? 이전에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상대를 탐색하고 친밀감과 신뢰를 쌓는 과정이 중요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공감하는 태도가 커뮤니케이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다. 그러나 이제는 한 번 만났을 때 효과적으로 라포(rapport, 상호 신뢰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제한된 상황에서 의사 전달력을 높이기 위한 방법 또한 이전과는 달라야 한다.
만남이 줄어들면서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은 역설적으로 막중해진 셈이다. 여기서 리더의 역할은 한층 더 중요하다. 기업의 CEO와 각 조직의 수장들은 이제 옛날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조직을 원활히 이끌 수 없다. 언택트 시대의 해체된 개개인들, 새롭게 부상한 Z세대의 문법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구성원들의 마음을 움직이지도, 그들을 하나의 방향으로 이끌기도 힘들 것이다.
이 책은 급변하는 언택트 시대에 리더들이 반드시 이해해야 할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이다. ‘컨택트’만큼이나 효과적이고 깊이 있는 언택트 커뮤니케이션의 노하우는 무엇인가? 빈도 대신 밀도가 중요해진 대면 만남은 이전과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이 책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SERI CEO에서 10년 넘게 커뮤니케이션 강연을 하면서, 또 수많은 기업 CEO와 임원들을 만나 일대일 코칭을 하면서 한 가지 느끼는 것이 있다. 새로운 시대의 언어에 대해 필요성을 인식하고 적응하고자 하는 리더들은 예상치 못했던 변화를 그저 비관적으로만 바라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이전에 시도하지 못했던 소통의 방식에 도전하고 또 다른 기회를 포착한다.
언택트 커뮤니케이션의 시대. 이전과는 다른 방식, 다른 각도일지라도 우리는 충분히 활기차고 깊이 있는 관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변화를 빠르게 받아들이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커뮤니케이션에 대비하는 리더들이 조직을, 그리고 세상을 최선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들 것이다.
| 글을 시작하며 | 사장은 이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을 익혀야 한다!
언택트 시대,기존의 소통 방식은 버려라 |
일상이 된 언택트, 한 번의 컨택트
언택트 시대는 센스의 시대|이제 옛날 지도는 버려라|만나기 힘들수록 ‘만남의 지혜’가 필요하다
코로나 시대에 강조되는 리더의 역량
치열하게 배우고 대비하라|일상 속 긍정의 힘이 위기를 이긴다
헝클어지고 재편성되는 관계들
일상을 파고드는 ‘끼리끼리 문화’|새로운 시대의 ‘연결된 혼자’들|‘나’에게로, ‘나 같은 사람’에게로
언택트 시대는 마스크 시대,마스크 너머의 사람을 읽어라 |
사람 따라 말을 바꾸어야 제대로 소통하는 사장
마스크 너머로 상대방을 파악하기|그 사장님은 왜 계약을 보류했을까?|사람의 4가지 커뮤니케이션 유형|상대에 따라 달라지는 소통의 방법
‘너’를 이해하려면 ‘너’의 기준이 필요하다
‘너’를 이해하기 위한 맥락적 사고의 과정|‘맥락’과 ‘묶음’에 유의하라|사람마다 기준 행동이 다르다
이제 한 번 만날 때제대로 만나야 한다 |
사장은 한 번의 만남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언택트 시대에 컨택트의 의미는 깊어진다|그럼에도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면|한 번의 만남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결과를 좌우하는 대화의 기본기
기분 좋은 연결고리를 만드는 스몰 토크|막힌 벽을 허물어뜨리는 질문의 기술|어디서나 통하는 대화의 3원칙|마스크 너머로 긍정의 신호를 보내는 법|언택트 시대의 에티켓, 거리 지키기
거절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커뮤니케이션
한 번에 잘해야 ‘좋은 거절’이다|기분이 상하지 않는 거절의 요령
칭찬과 지적의 기술
먹히는 지적은 이렇게 다르다|칭찬한다고 다 칭찬이 아니다
온라인으로 소통해야 하는 시대,테드TED처럼 하라 |
‘밈’세대를 어떻게 사로잡을 것인가
모든 사장은 테드형 스피커가 되어야 한다
청중을 사로잡는 18분의 마법|B급 감성으로 갈아입는 CEO들|간결하면서도 강력한 테드의 원칙|테드에서 배우는 사장의 커뮤니케이션|‘아하’ 하는 순간을 제공하라|유튜브의 감성으로 조직과 소통하라
사장의 스피치는 한 편의 공연이다
철저한 리허설이 두고두고 회자되는 스피치를 만든다|스티브 잡스는 왜 강연장에 발전기를 준비했나|리더가 알아야 할 스피치 리허설 노하우|감동적인 스피치를 위한 리허설 일정 짜기
모니터로 회의하는 시대,사장은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
모니터 너머의 어색함을 극복하라
하루아침에 혼란에 빠진 명강사들|온라인 언어와 강의실 언어는 이렇게 다르다|언택트 시대의 새로운 마주보기 방식|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은 왜 그리도 곤혹스러운가|꼼수가 난무하는 온라인 회의실 극복하기
사장이 사회자가 되면 회의를 사로잡을 수 없다
정확한 큐시트를 마련하라|흘러가는 영상에 집중하도록 하려면|화면 속 상반신만으로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하려면|첫머리를 선점하는 법|진행자 말고 퍼실리테이터가 돼라
온라인 회의실을 달구는 리더의 화법
좋은 질문 하나가 그날의 만남을 결정짓는다|PREP! 뇌가 반응하는 스피치 기술|컨택트만큼이나 효과적인 언택트 ‘전달’의 기술
호불호의 잣대에서 승리하는 법
언택트 시대에 두드러지는 키워드 ‘매력’|당신은 어떤 사람에게 미소를 짓는가?
재택근무의 시대,효율적으로 소통하는 법 |
생각보다 효율적인 홈오피스 시대
비대면 시대의 새로운 문법을 익히라|집에서도 사무실 같은 근무 분위기를 만들려면
재택근무는 아나운서처럼
따로따로 일하면서도 최고의 효율을 내는 노하우|업무 다이어트, 중요한 것만 남겨라
잘하라는 말 없이 일 잘하게 만들려면
명확히 전달하고, 명확히 해석하기|회의 전에 준비해야 할 4P
긍정의 회신을 부르는 이메일 커뮤니케이션
정확한 텍스트가 적절한 텍스트는 아니다|이메일 소통에서 유의해야 할 점|받을 때 기분 좋은 이메일 쓰기
재택근무의 부작용을 피하려면
불편한 속마음이 드러나다|몸과 마음의 피난처가 필요한 때
언택트 시대에사장에게 필요한 건 바로 ‘눈치’다 |
눈치 없이 언택트 시대를 어찌 버티랴
건강한 눈치가 필요하다|우리는 눈치의 민족|불안한 사회에서 발휘되는 눈치의 위력|눈치의 역사|맥락을 파악할 때 필요한 눈치 DNA|눈치는 행동으로 완성된다
눈치를 챙길 때는 특보를 전하는 앵커처럼
2014년 그날, “지금 어디 계십니까?”|‘대통령의 양복’이 일깨워준 눈치|흩어진 정보의 조각들을 모아라
눈치 있는 사장이 되는 법
선택적 지각의 함정에 유의하라|‘모니터’는 나의 힘|나만의 리트머스 시험지를 준비하라|훈련 없이는 눈치를 키울 수 없다|‘눈치 매트릭스’로 상황 읽기
| 글을 맺으며 | 블랙 스완을 바라보는 사장의 자세
KBS 방송국에는 명물 구름다리가 하나 있다. 보도국이 있는 신관과 아나운서실이 있는 본관을 연결하는 다리인데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을 통해 이동한다. 예전에는 오가다 마주치는 동료들과 잠시 멈춰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담소의 공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덮친 이후엔 마스크를 쓴 채 빠른 걸음으로 저마다 갈길 가기에 바쁘다. 여유롭던 공간이 이제는 잰 발자국 소리만 드나드는 삭막한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사실 다들 마스크를 쓰니까 누가 누구인지 알아보기도 쉽지 않다.
어느 날 뉴스를 마치고 아나운서실로 가기 위에 구름다리를 건너는데 저기 멀리서 누가 손을 들며 반갑게 나를 부르는 모습이 보인다. 자세히 보니 후배였다.
“선배님. 요즘 특보 때문에 고생 많으시죠? 어떻게 지내세요?”
기분 좋게 인사를 나눈 후 갑자기 궁금해졌다.
“근데 어떻게 날 알아봤어? 마스크 쓰고 멀리 있었는데?”
그 후배는 이렇게 말했다.
“아이 왜 몰라요. 옷 스타일이랑 걸음걸이 보니 딱 알겠던데요.”
이 후배 참 센스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언택트 커뮤니케이션 시대는 센스의 시대다. 마스크로 얼굴 절반을 가려도 눈치 있게 알아보고, 대화를 해야 할 때와 그렇지 않은 때를 구분하는 감각이 필요하다. 예전처럼 숱한 만남 속에서 다양한 관계를 만들고 상대를 차근차근 알아가기는 어려운 시대가 왔다. 이제 잘 모르는 사람이나 중요하지 않은 사람과의 만남은 줄이고 꼭 필요한 만남, 의미 있는 사람과의 만남만 이어가게 될 것이다.
수십 명이 한자리에 어울리는 동기, 동창 모임이나 회식은 당분간 어려울 듯하다. 대신 소규모의 지인 모임으로 만족해야 한다. 그마저도 긴 시간, 잦은 만남은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만나야 한다. 비대면 솔루션 기술이 아무리 좋아졌다 하더라도 얼굴을 마주하는 만남을 대체할 수 없다. 그 짧은 만남 동안, 센스를 발휘해 상대방을 파악하고 상황에 적절히 대처하며, 기분 좋은 여운을 남기는 것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요즘 사람들은 차에 타는 순간 습관적으로 내비게이션을 켠다. 내가 운전대를 잡고 있는 순간에도 내비게이션은 실시간 교통 상황을 반영해 최적의 길을 찾아주고, 목적지까지 걸리는 예상 시간을 계산해 알려준다. 물론 ‘길 눈치’가 밝은 사람들은 때로 직관이 내비게이션을 앞서기도 하지만, 이것이 상당히 유용한 도구임은 분명하다.
요즘 20대는 상상도 못하겠지만 내가 대학 시절 운전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내비게이션이라는 게 없었다. 대신 두꺼운 백과사전처럼 생긴 도로지도를 차마다 한 권씩 가지고 있었다. 길을 나서기 전 그 도로지도 책을 찬찬히 훑어본 후 경로를 직접 찾곤 했다. 간혹 지방으로 내려가거나 낯선 길에 들어섰을 때 지도에 길이 표시되어 있지 않아 낭패를 겪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우리가 겪는 ‘뉴 노멀(시대 변화에 따라 새롭게 떠오르는 기준, 또는 표준을 뜻하는 말)’의 시대는 그렇게 없는 길을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떠나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어떤 문제가 생기면 과거에 집중했다. 과거의 사례를 통해 통찰을 얻고자 했다. 하지만 역사든 인문학이든, 과거의 패러다임으로는 미래를 예측하는 데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지금의 이 사태는 우리의 예측을 뛰어넘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미래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코로나19는 미래에서 온 신호일지 모르겠다. 그동안 사스와 에볼라, 메르스 등 여러 가지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계속 신호를 보냈지만 우리는 무시했다. 급기야 코로나19라는 초강력 메시지는 우리 삶을 통째로 바꾸어놓았고, 뉴 노멀 시대를 초래했다. 이제 도로지도 책을 버리고 내비게이션을 켜야 할 때다. 즉, 실시간 정보와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이 필요해진 것이다.
관계라는 것은 상당히 복잡한 변수에 의해 움직인다. 어떤 만남이든 내가 미리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물며 언택트 시대는 어떨까. 영상 속, 혹은 수화기 너머 상대의 의도와 마음을 읽어야 한다. 사람을 직접 만날 때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와 얼굴을 마주할 때의 부담, 마스크 너머 숨은 얼굴이 주는 위화감을 이겨야 한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정보를 파악하고 감정을 충분히 교류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센스이며 눈치다.
느긋하게 만남을 즐기는 시대는 어쩌면 쉽게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온라인상의 만남이든 대면 만남이든, 거의 모든 상황에서 재빠르게 분위기를 감지하고 반응하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 단언컨대 앞으로는 센스의 시대, 눈치의 시대가 될 것이다.
언택트 시대에 업무상 만남의 주된 형태는, 화상 미팅과 회의를 통해 의견을 교류하고 기획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즉, 비대면의 일상화다. 역설적으로 이 때문에 대면 만남은 한층 더 중요해질 것이다. 영상 미팅으로 채워지지 않는 라포(의사소통에서 사람 사이에 형성되는 친밀감 또는 신뢰관계를 뜻하는 심리학 용어)를 형성하기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대면 만남은 필요하다.
일단 만난 후에는 제한된 시간 안에 빠르게 라포를 형성하고 상대방의 니즈를 파악해야 한다. 오랜 시간에 걸쳐 만남의 횟수를 늘려가며 서서히 공감을 얻고 신뢰를 쌓아나가는 방식은 이제 거의 불가능하다. 첫 번째 만남에는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두 번째, 세 번째 만남에서 점차 깊은 배경과 정보를 공유하다가 마지막에 목적을 성취하는 시대는 이제 옛날이 되었다. 그때 중요했던 키워드가 ‘공감’이었다면, 이제는 ‘명확함’과 ‘호감’이 커뮤니케이션에서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니게 되리라 예상한다.
언택트 시대의 커뮤니케이션은 더 효과적이고 명료해야 한다. 감정에 호소해 마음을 움직이는 방식보다는 상대의 니즈를 순발력 있게 파악할 줄 아는 사람이 유리하다. 이제 우리는 마스크를 쓰고 시간의 제약 아래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끌어내야 한다. 그렇기에 명확성은 최우선 가치가 될 수밖에 없다. 전달하는 방식도, 전하는 내용도 군더더기 없이 또렷해야 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키워드는 ‘호감’이다. 비대면의 장벽을 극복하고 만남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나에게 충분한 호감을 느껴야 한다. 짧은 만남이지만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분명히 갈린다. 그래서 호감과 매력은 언택트 시대에 또 다른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예전에는 특별한 준비 없이 약속을 잡고 일단 사람을 만났다면 이제는 철저한 준비가 우선되어야 한다. 그런 노력이 이 만남에 얼마나 성의를 보이는지, 진정성이 있는지를 말해주는 잣대가 될 것이다.
앞서 강조했듯이 비대면의 일상화는 결국 대면 만남에 특별함을 더할 것이다. 조금 어려운 말로 표현하자면, 대면과 비대면의 하이브리드(완전히 다른 두 가지 요소가 혼합되어 고가치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는 의미) 일상이라 할 수 있으리라. 인류의 역사는 도전과 그에 대한 항전으로 이루어져 왔다. 이제는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가야 한다. 미리 생각하고 준비하는 사람만이 불안함과 위험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으며 주도적으로 삶을 이끌 수 있다.
인간은 인간과의 만남을 통해 존재를 확인받는다. 만남을 통해 감정이 움직이고, 생각이 달라지며, 하루하루를 또 다른 풍경으로 물들인다. 우리는 그렇게 진화의 과정을 거친다. 그래서 마음껏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은, 그만큼 만남의 지혜가 필요한 시기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는 ‘국내 스피치 커뮤니케이션 박사 1호’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올해로 11년째 각계 리더들이 모인 SERI CEO에서 온라인 강의와 조찬 강연, 스피치 코칭, 대중 강연 등을 진행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기업 CEO와 임원들을 일대일로 만나 코칭을 하기도 한다. 워낙 다양한 분야의 구루를 만나다 보니 코칭은 내가 하지만 얻는 것도 상당하다.
그들에게서 배운 ‘리더의 역량’ 중 하나는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이다. 이들은 무엇보다 배우려는 열망이 강하다.
내가 만난 CEO와 임원들은 아침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경우가 없었다. 출근을 일찍 할 뿐만 아니라 이른 아침 시간을 이용해 다양한 수업을 듣는다. 코칭도 아침 7시에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서 내가 컨디션 관리를 해야 한다. 그들은 또한 부지런한 정보 수집가다. 폭넓게 정보를 수집하고 그중에서 의미 있는 분야는 깊게 파고든다. 코칭 시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탄탄한 이론과 지식에 놀라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습관이 미래를 예측하는 직관력에 큰 도움이 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코로나 발생 직전이었던 2019년 11월, 00전자 임원을 코칭했을 때 일이다. 그 임원은 중국 공장 이전에 관한 문제를 CEO에게 보고해야 했다. 향후 다른 공장도 더 적극적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관련 내용을 보니 해박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설득 포인트가 놀라웠다. 대외비라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중국 내부의 불확실성에 대해 명확한 근거를 확보하고 있었다. 코로나 시국인 지금 생각해보면, 미래를 내다보았던 그 임원의 선견지명이 놀라울 따름이다.
비슷한 사례는 많다. 한때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TV 같은 가전이 대세이던 시절, 모바일 디스플레이가 더 중요하다고 그룹 수뇌부를 설득한 당시 전무는 지금 부회장이 되었다. 그 당시 전무가 내 앞에서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하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박사님, 이제 대세는 모바일입니다. 모바일 디스플레이 선점이 결국 기업의 생태 지형을 바꿀 겁니다.”
리더는 결정하는 자리다. 그리고 그 결정은 비용과 직결된다. 그렇기에 폭넓은 정보력과 판단 능력은 리더에게 필수다. 내가 만난 리더들은 모두 ‘미래를 예측해 한 발이라도 먼저 나가는 사람’이었다.
내가 파악한 리더의 또 한 가지 자질은, 위기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관점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 기업의 CPO이자 부사장이었던 분을 코칭했을 때다. 방송국에서 뉴스 진행을 위해 검색을 하는데 해당 기업의 전 분기 실적이 급격히 하락했다는 소식이 눈에 띄었다. 심각한 수준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회사 공장에서 안전사고까지 발생한 탓에 회사 분위기가 무척 심란할 것 같았다. 마침 다음날 아침에 코칭이 잡혀 있었는데 분명 연기될 거라 예상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비서실에서 아무 연락이 없는 게 아닌가? 문자로 문의를 해보니 코칭은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답장이 왔다.
다음날 아침 7시, 사무실에 들어서며 CPO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심려가 크시죠? 오늘은 코칭이 어려울 줄 알았는데요.”
그러자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이어간다.
“박사님, 다 잘될 겁니다. 이런 위기에는 일상을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안전사고는 예측 못했지만 실적 악화는 예측이 됐던 문제고 대책이 다 있습니다. 제가 오늘 스피치 코칭을 받아야 다른 사람들을 또 설득할 수 있죠.”
이 상황이면 일정을 미루고 안절부절 못할 법도 한데, 평정심을 붙들고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모습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우리 또한 일상이 뒤흔들릴 만큼 급격한 변화를 목격하고 있다. 익숙지 못한 메가 트랜드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뒤쳐질 수밖에 없다. 이때 두려움과 비관에 잠식되어서는 발 빠르게 상황을 파악할 수 없다.
과거에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누리던 것들을 회상하며 그리워하는 것은 잠깐이면 족하다. 그보다는 코로나19가 가져올 새로운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이 불확실한 오늘에 대처하는 리더의 지혜일 것이다.
코로나19는 인간에게 많은 숙제와 질문을 던진다. 지금껏 익숙지 않았던 상황들이 일상으로 찾아왔고, 이제 우리는 많은 것을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마스크를 쓴 채 런닝머신 뛰는 광경을 상상이나 해봤는가? 우리의 관계 역시 많은 변화를 앞두고 있으며 이미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미래학자와 전문가들의 견해를 종합해보면 앞으로 세 가지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변화는 탈 세계주의와 지역주의 강화다.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가 단 두 달 만에 전 세계에 퍼진 것은 역설적으로 세계화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교류하는 초연결 사회는 전염병이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나가기에 알맞은 구조를 갖추고 있다.
코로나19는 이런 세계주의 양상에 급격히 제동을 걸었다. 하늘길이 막히고 해외에서 입국하는 사람들은 철저한 검역의 대상이 된다. 대신에 지역주의가 강화되고 있다. 그런 영향으로 사람 사이의 관계가 ‘끼리끼리 문화’로 재편될 것이라 예상된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사람을 밖에서 만나는 일은 큰 부담이 되고 있다. 확진자와 같은 식당을 방문해 옆자리에서 식사를 한 것만으로 감염된 사례도 있다. 심지어 이 감염자를 매개로 2차, 3차 확진자가 발생했다. 내가 바로 그 매개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 매일같이 들려오는 코로나 관련 뉴스와 소식은 우리를 자꾸만 움츠러들게 만든다.
한동안 온라인에서 ‘고강도 사회적 거리 두기’를 자발적으로 실천하는 이들의 모습이 화제가 되었다. SNS의 해시태그 ‘랜선(#랜선)’은 집들이, 여행, 라이프, 모임 등의 단어와 결합하여 다양한 파생어를 낳았다. 지인과의 술자리를 영상통화로 시도하거나, 집에서도 클럽에 놀러온 것처럼 혼자 춤추고 노는 사람들의 모습은 우울한 일상에 예상치 못한 웃음을 선사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이제는 거리 두기의 형태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미뤄왔던 약속을 조심스럽게 소화하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중요한 것은 ‘이 만남이 정말 필요한 것인가’를 구분한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