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우 군, 드디어 만났네요. 당신의 아내 소라, 지금 돌아왔어요!”
눈앞에 있는, 밀짚모자를 들고 하얀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기쁜 듯 미소 짓고 있었다.
“…………!?”
갑자기 그런 말을 듣고,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나는 멍하니 내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나 쿠라타 유우키는, 무인도에 표류하고 말았다.
어찌어찌 사지가 멀쩡한 채로 구조되어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고향으로 돌아와 보니, 집 앞에 두 사람의 여성이 서 있었다.
한 사람은 내 어머니―― 쿠라타 시즈루이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세미 롱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커다란 가슴을 강조하는 듯한 새하얀 원피스는 뭉게구름 같아 보였다.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동안(童顔)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또 한 사람은 나와 같은 또래로 보이는 소녀였다.
그녀는 내 아내라고 말했지만,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저기, 츠마*1……? 그건 휴우가 시키우치(日向式内) 4좌 중의 하나로 미야자키 현에 있는 유서 깊은…….”
“그건 ‘츠마 신사’야!”
“그런 걸 잘도 알고 있네. 하지만, 아내라니…… 그야 2차원에는 여러 명 있긴 하지만…….”
그녀는 어떻게 보아도 3차원의 주민이다.
게다가 정말로 그녀를 본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소녀는 마치 운명의 장난으로 헤어졌던 연인과 재회한 것 같은 눈을 하고 달려왔다.
“유우 군…… 계속, 계속 보고 싶었어. 유우 군과 헤어지고 나서부터 하루가 천년 같았어. 하지만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었잖아…… 정말로 언제나, 언제나 만나고 싶었단 말이야~~~~ 그런데, 꺄앗, 왜 피하는 거야!?”
“…………아니, 어쩌다보니. 그보다, 왜 아무것도 없는데서 넘어지니!?”
갑자기 안기려고 해서 피했더니 소녀는 걸릴 것도 없는 곳에서 멋대로 넘어져버렸다.
땅바닥에 얼굴을 부딪치고, 무규~하는 신음소리를 냈다.
“그치만…… 소라, 맨날 달리기만 하면 균형을 잃고 마는걸.”
소녀는 일어서면서 부끄러운 듯이 몸을 배배 꼬았는데, 그 커다란 가슴이 퐁! 하고 흔들렸다. 균형이 잘 안 맞는 건 분명히 그 커다란 가슴 때문일 것이다.
아니, 크다고 하는 형용사로는 부족하다. 너무나도 부족했다.
사요도 같은 또래에 비해 크다고 생각했지만, 그것보다도 압도적으로 크다. 멜론과 수박만큼 차이가 났다.
조금 몸을 움직였을 뿐인데도, 부르르 하고 맛있어 보이게 흔들리는 두 개의 과실.
그것도 그저 흔들리는 것뿐만이 아니라, 가슴과 가슴이 부딪혀서 종횡으로 복잡하게 흔들리는 그 하나하나의 움직임이 남자의 마음을 한 없이 자극했다.
끝부분이 아주 약간 위로 향해, 마치 지금 당장 먹어줘, 하고 호소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이 가지에 달린 과실이 내 것이라고!? 아니, 하지만, 이런 가슴을 가진 사람은 내 기억에는…….)
턱을 손으로 괴고 생각하면서, 다시 한 번 ‘소라’라고 이름을 댄 소녀를 관찰한다.
연령은 같은 나이 또래 정도로,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쓰고 있었다.
약간 처진 눈이었지만, 커다란 보석처럼 빛나는 눈동자. 짓고 있는 표정은 부드러웠고 원피스에서 빠져나온 손발은, 투명할 정도로 하얗다. 턱까지 내려오는 귀밑머리와 리본이 바람에 흔들린다.
하지만 그녀의 용모 중에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두말 할 것 없이 커다란 가슴일 것이다.
마치 그녀는 가슴의 사교계에 가슴 레볼루션을 일으킬 것 같은 더 킹 오브 가슴인 것이다.
“…………앗!?”
잘 모르는 소녀 ‘소라’의 가슴을 응시하고 있으려니 주변에 살기가 가득 차올랐다.
황급히 주위에 있는 약혼자와 메이드, 새로 생긴 여동생 같은 소녀에게 그녀와의 관계를 부정했다.
“다들, 진정하고 들어줘! 나는 이 아이와 만난 건 오늘이 처음이야. 그러니까, 그녀가 아내라고 하는 말은 전부 거짓말이거나 농담이야! 물론 다들 믿어 줄 거지?”
““““…………….””””
틀렸다.
살기가 전혀 수그러들지 않는다.
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아군을 늘리기 위해서 우선 가장 먼저 제일 가까이 있는 약혼자 중 한 사람, 이누카미 일족의 이누이 사요에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여름용 얇은 옷감으로 만든 기모노를 입고 있었다.
무늬는 옅은 크림색 바탕에, 핑크와 빨강 코스모스가 그려져 있었다.
허리까지 뻗은 흑발. 발그레한 복숭아 빛 뺨에 발그레한 입술.
누구라도 반해버릴 것 같이 청초한 미소녀다.
게다가 성격도 굉장히 좋다.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겸허하고 한 걸음 물러서 상대를 치켜세워주는, 연상인 나보다도 어른스러운 여자아이다. 게다가 취사 세탁이 특기인데, 특히 일식요리는 프로급 솜씨다.
이런 멸종위기 종(種)인 현모양처 소녀라면 분명 내 편을 들어 줄 것이다.
“사요야! 사요는 내 말을 믿어 줄 거지?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무죄라고!”
“물론이에요, 왜냐하면 저는 유우 오라버니께 옥오의 사랑*2을 바치고 있는 약혼자니까요.”
“역시 사요! 역시 나를 잘 이해해주고 있는 건 사요밖에 없어!”
“그래서, 이번에는 어디서 걸려드신 건가요?”
“………………………………………………………에!?”
“괜찮아요, 알고 있어요. 왜냐하면 저는 유우 오라버니의 약혼자. 유우 오라버니가 연상 누님이 취향인데다가, 바람기가 좀 있는 것도 자~~~~~~알 이해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신다면, 하룻밤 동안 ‘사요야 사랑해’라고 노트에 깜지를 쓰는 정도로 용서해 드릴게요.”
그녀는 누구든지 반해버릴 것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 눈만은 절대영도로 얼어붙어 있었다.
“히이, 히이이이이이!”
한심하게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발이 엉켜, 꼴사납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등 뒤에 이나바 일족, 우사츠키 아리스의 다리가 있었다.
“왜 그리 당황하는 거니, 유우키.”
“아, 아리스!?”
그녀는 요괴와 인간의 혼혈로, 어떤 사건을 일으켜 현재는 그 죄를 씻기 위해 내 개인 메이드로 일하고 있다.
지금은 메이드 복은 아니고, 사복을 입고 있다.
하늘하늘한 미니스커트에 탱크톱을 한 장 걸치고 있는 모습으로, 완만하게 웨이브가 진 긴 머리카락, 쭉 뻗은 새하얀 다리. 날씬한 팔로 팔짱을 끼고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다리에 매달려, 뺨을 비벼댔다.
“아, 아리스! 같은 취미를 가진 아리스라면 믿어 줄 거지? 아내 같은 건 모른다고! 왜냐하면 나는 아직 열일곱 살이라 결혼 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란 말이야!”
“물론이지, 유우키. 왜냐하면 나는 유우키를 좋아하는 걸.”
“오오! 역시 아리스! 전부터 늘 아리스만은 나를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 내 편이라고――.”
“그거랑 마찬가지로 메이나 사요, 쿠온도 좋아. 그러니까 그 아이들이 유우키와 함께 있는 것도 좋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람피우는 걸 용서해 줄 수 있는 건 아니야.”
“아, 아리스 씨?”
“예상 이상으로 재미가 없네, 호의를 품고 있는 남자가 바람을 피우는 현장을 목격하는 건. 그러네. 예를 들자면…… 좋아하는 히로인이 실은 남자랑 교제를 한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알게 된 기분이네. 만화를 좋아하는 유우키라면 이 감정을 알 수 있겠지?”
“꺄아, 꺄아아아앗!!!”
비명을 지르며, 땅에 손을 짚고 기어 아리스에게서 도망쳤다.
도망친 곳에 서 있던 키츠네비 쿠온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무인도에서 입고 있던 하얀 원피스 차림이었다.
갓 구워낸 과자 같이 아름다운 갈색 머리카락을 좌우 양쪽으로 묶고 있다. 피부는 흰 복숭아처럼 새하얗고 반짝반짝 해서, 마치 인형같이 귀여웠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뺨을 비볐다.
“쿠우땅! 쿠우땅! 쿠우땅, 땅! 무인도에서 함께 고락을 나누고 폭풍 속에서 조난을 당해 차가운 빗속에서 밤을 지새우며 살아남았잖아! 그런 전우라고 불러도 좋을 쿠우땅말곤 내편은 없는 거지!”
“……만지지 마요, 기분 나빠.”
“우훅!”
그녀는 경멸하는 듯이 눈을 내리 깔며 손을 뿌리쳤다.
그 서슬에 뺨을 얻어맞고 한심하게 땅에 나자빠졌다.
얻어맞은 뺨을 문지르며 고개를 들자, 또 한 사람의 약혼자이며 소꿉친구인 네코마타 일족의 네코야나기 메이가 서 있었다.
메이는 벌꿀 빛 머리카락을 트윈테일로 묶고 목에는 방울이 달린 초커를 차고 있었다.
눈매는 날카롭지만, 장인이 마음을 담아 만든 일급 예술작품 같이 아름다운 소녀다.
새하얀 맨다리를 아낌없이 드러낸 데님 반바지에, T셔츠 위로 조끼를 걸친 러프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부러질 것 같이 가느다란 허리에 매달려, 뺨을 비비며 하소연했다.
“메이! 오랫동안 사귄 소꿉친구 메이라면, 내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지!?”
“에에, 물론. 알지. 오랫동안 사귄 소꿉친구인 걸, 유우키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건 잘 알 수 있어.”
“그치!? 자 봤지! 그런데도 사요랑 아리스, 쿠온은 전혀 안 믿어주는데다가 위협까지 하고, 괴롭힌다니깐~~~~~. 아아, 역시 나를 이해해주는 건 메이밖에 없어!”
“응, 괜찮아. 나는 전부 이해하니까. 어차피 옛날에 유우키가 적당히 약속을 하고는 잊어버리고 있는 거지?”
“메, 메이 씨……?”
“에에, 믿고 있어. 왜냐하면 오랫동안 알고 지낸 소꿉친구니까. 유우키의 행동 패턴 따위 확실히 파악하고 있어. 그래서, 저 아내라고 말하는 사람과 언제! 어디서! 어떻게! 약속한 거야?”
“믿어준다는 건 그런 의미였냐아아아아아아아아!!”
“자, 전부 실토해! 이 폐인아!”
“히, 히이이이익! 사, 살려줘요 아카네 아줌마!”
나는 원 밖에 있던 메이의 보호자 뵤우도 아카네 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짧게 자른 갈색머리카락에, 운동도 하지 않는데도 로켓처럼 솟아오른 가슴은 모양도 어그러지지 않고, 허리는 군살 따위 1밀리그램도 없고, 다리는 일본인 체형이 아닌 것처럼 길다.
스키니진에, T셔츠. 그렇게 러프한 차림새인데도 그 큰 키와 스타일이 좋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누가 아줌마야! 그런 말 하는 녀석을 도와줄 의리는 없어.”
그대로 버려졌다.
그런 내 다리를 메이가 붙잡아 고간에 자신의 발뒤꿈치를 넣어 처절한 응징을 가했다.
오토바이다.
“아바바바바바바바바바! 아가가가가가가가가가!”
도망치려고 몸을 비틀었지만 사요와 아리스가 팔을 붙잡고 있어 움직일 수 없었다.
더욱이 진동이 강해졌다.
“안대에, 안대에, 안데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새로운 문이 열려버려어! 카! 캄파뉴기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앗아아아앗!!!!”
쿠온은 견디지 못하는 나를 차가운 칼날 같은 눈으로 내려다보았다.
“어라라, 다들 더운데도 기운이 넘치는 구나.”
장소를 착각한 것처럼 느긋한 목소리.
어머니의 한 마디에 이성을 되찾은 그녀들은 나에게서 떨어져 머리카락이나 복장 등 몸가짐을 새로이 했다.
“고, 고마워요 엄마. 그런데, 그 옆에 있는 아이는 누구? 진짜로 본적 없는데.”
“만난 적 있어. 있잖니, 어릴 적에 엄마 친구랑 같이 일주일 정도 놀러간 적이 있잖니?”
“음 어렴풋이 기억은 하고 있어. 그 엄마 친구가 데려온 남자아이랑 같이 놀았었지.”
“남자? 무슨 소릴 하는 거니, 여자아이야. 그 아이가 소라라고. 치카게 소라. 정말로 기억 못하는 거니?”
“뭐어!? 아니! 그치만 머리카락도 짧았고, 바다에서 놀 때도 나랑 남자 수영복 한 장만 입었던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머리는 여행 전에 실수로 너무 짧게 잘랐어. 남자용 수영복은 소라가 유우랑 똑같은 게 아니면 싫다고 해서 여벌로 가져간 걸 빌려 준거야. 정말로 기억 안 나는가 보네. 그럼 소라랑 결혼한 것도 기억 안 나니?”
“겨, 결혼!? 나, 저 아이랑 결혼했어!?”
“그래. 결혼이라고 해도 놀이긴 하지만. 돌아가기 전날 밤에 소라가 유우랑 결혼하고 싶다고 해서, 우리가 결혼식을 열어줬어. 아 그립네~. 엄마랑 친구랑 방을 꾸미고 신부님 흉내를 냈지. 그리고 둘 다 제대로 맹세의 키스도 시켰고.”
“에헤헤헤, 참고로 그 때의 키스가 소라의 퍼스트 키스였어요♪”
라고, 소라라는 이름의 소녀는 부끄러운 듯 뺨에 양손을 얹고 몸을 배배 꼬았다.
메이를 비롯한 다른 여자아이들의 시선이 더욱 날카로워져 내 몸을 꿰뚫었다.
마치 마술사가 들어간 상자에 칼을 꽂아 넣는 마술을, 속임수 없이 강제적으로 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기억이 안 나도 어쩔 수 없네. 결혼식이 끝난 다음에, 너 열이 엄청 올라서 쓰러졌으니까. 그대로 병원에 입원해버렸거든. 하여튼, 여름 감기에 걸린 줄도 모르고 놀았으니.”
엄마는 뺨에 손을 대고 한숨을 쉬었다.
위험하다. 이야기를 듣고 있어도 어렴풋이 남자아이랑 놀았던 것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소라라고 불린 소녀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유우 군, 소라를 잊어버렸어?”
“그, 뭐라고 할지, 어릴 적 이야기이기도 하고, 단편적으로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할까.”
“그럼 둘이서 같이 뒷산에 비밀기지를 만든 건? 버려진 산장에 과자나 만화책을 들고 갔던 것도 잊어버렸어?”
……그 말을 듣고 보니, 문득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어릴 적 기억이다. 조금씩 밖에 기억이 나지 않았고, 그것도 이렇게 예쁘고 가슴이 큰 여자아이가 아니라 남자아이들끼리 지냈던 기억이었지만.
“……아아, 그건 어찌어찌 기억이 나. 둘이서 만화책만이 아니라 트럼프나 죽마 같은 장난감도 가지고 갔지.”
“그래, 맞아! 여기 오기 전에 들러봤더니 아직 그 산장 남아있어서 만화 같은 것도 그대로 있었어.”
“우오! 진짜로!?”
“나중에는 이웃에 사는 분한테 수박을 얻어서 둑에서 누가 씨를 멀리 뱉는지 시합도 했지.”
“했어, 했어. 그거 말고도 이웃집에서 키우던 옥수수를 둘이서 따다가 삶아 먹기도 했지.”
“응! 그 때 옥수수 참 맛있었지!”
결혼식 운운은 잊어버렸지만, 다른 잡다한 일은 의외로 기억이 났다.
나는 옛날 일을 그리워하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치카게 소라를 같은 또래의 남자아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스쳐지나갈 때 누구나 한번쯤 돌아볼 정도의 미인으로 성장해 있어 놀라웠다.
특히 그 평평했던 가슴이, 저 정도로 크고 맛있어 보이게 잘 익었을 줄이야…….
“한창 이야기를 하는 중에 미안한데 더우니까 밖에서 이야기하지 말고 집으로 들어가지 않겠니?”
엄마의 제안에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어떠한 사실이 떠올라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그러고 보니 엄마한테 메이랑 사요, 아리스랑 동거하고 있다는 걸 아직 이야기 안 했어!)
여러모로 너무 정신이 없어서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다들 그 사실을 깨닫고 얼굴이 새파래졌다.
지금, 집안에는 동거의 증거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아니, 그, 집은 좀 안 좋다고 할지…… 그래! 어질러져있어서! 치울 테니까 기다려!”
“어머 그러니? 하지만 아까 집에 들어갔을 때는 그 정도까지 어질러져있지는 않았는데.”
“……엣, 벌써 들어가봤어?”
“그럼. 우리 집이잖니, 짐도 가져다 놔야하니까, 당연히 들어갔지.”
듣고 보니 엄마는 손에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고, 짐 같은 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집안에 들어갔는데도 동거 중이라는 걸 깨닫지 못한 건가? 그러면 아직 얼버무릴 수 있을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려니 엄마는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웃으며 물었다.
“그럼 빨리 집으로 들어가자. 그리고 어디의 누가 유우랑 같이 살고 있는지도 물어보도록 할까.”
“!?”
“안 들켰을 거라고 생각했니? 여성용 속옷도 있지, 칫솔도 여러 개 있지, 밥그릇이랑 젓가락도 잔뜩 있는데 눈치 못 챌 리가 없잖니.”
“아니, 그건, 뭐라고 할지…….”
“엄마가 소라에 대해 설명해줬으니까, 이번에는 유우가 설명해 줄 수 있겠니?”
엄마의 눈에 광채가 빛났다.
아무래도 얼버무릴 수 없을 것 같다…….
유우키네 집 거실로 모두가 이동했다.
베란다 쪽 자리에 엄마와 소라가 앉고 테이블 너머 정면에 우리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렇구나, 그런 거구나.”
메이와 사요가 요괴라는 이야기를 감추고 실수로 두 사람과 양다리 약혼을 하고 말았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그러는 김에 아리스와 쿠온도 소개했다.
아리스는 메이드로 우리 집에 하숙하고 있고, 쿠온은 메이의 먼 친척으로 오늘부터 여기에 맡겨졌다고 설명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엄마는 한숨을 쉬고 나서 마시고 있던 차를 내려놓았다.
“하여튼. 아무리 소꿉친구라고 해도 부모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같이 살다니……. 아카네도 왜 연락을 안 해 준거야?”
“그건 그, 나도 잊어버리고 있었다고 할지…….”
아카네 씨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고, 그녀로서는 보기 드물게 난처해하고 있었다.
그녀와 엄마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
그 탓에 아카네 씨는 엄마에게 기를 펴지 못한다.
“알았어. 그럼 유우, 소라랑 정식으로 결혼하렴.”
“응!? 아니, 지금 이 이야기 들었어? 나는 메이랑 사요라는 약혼자가, 벌써 있단 말이야.”
“소꿉친구라고는 하지만, 부모의 허락 없이 동거를 할 정도의 아이에게 유우를 맡길 수는 없어. 그리고 그런 아이끼리 결혼하다니, 서로 불행해질 뿐이야. 그러니까 소라랑 결혼하렴. 그녀는 좀 덜렁거리는 기색은 있지만, 마음은 올곧은 아이니까, 그러니 유우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어.”
“멋대로 말하지 마!”
“멋대로가 아니야. 옛날부터 생각하고 있던 거야. 한심한 유우한테는 딱 부러진 아내가 필요하다고. 그랬더니 소라가 일부러 해외에 있는 나한테 인사를 하러 온 거야. 성장한 그녀를 보고 한 눈에 엄마는 확신했어. 그녀라면 유우를 맡길 수 있을 거라고.”
“그런 거 횡포잖아!”
나는 더욱 반론의 목소리를 높였다.
엄마는 한 번 정한 일은 결코 번복하지 않는다. 여기서 반론하지 않으면 어물어물 결혼이야기를 진행시키고 말 것이다!
“엄마는 나를 내버려두고는 자주성을 키우겠다고 이야기했잖아!? 나도 벌써 훌륭한 어른이야. 사람을 보는 눈도 있고, 어쩌다보니 그러긴 했지만 두 사람은 내 훌륭한 약혼자란 말이야!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기도 하고, 누구에게도 지지 않아! 그러니까 엄마 이야기를 들을 생각은 없어!”
확실히 거절하고, 따를 의시가 없다는 것을 정면으로 전달했다.
하지만 엄마는 전혀 흔들리지 않고, 생각하듯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흐음,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는 말이지. 그러면 좋은 방법이 있는데?”
“에, 좋은 방법!?”
나도 모르게 되묻자, 엄마는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 유우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다음 주 토요일까지 누가 소라랑 승부를 해서 이긴다면 이 결혼 이야기는 없는 걸로 해줄게. 물론 한 사람 당 승부는 한 번씩, 승부 내용은 그 때 정하는 걸로.”
“승부라니! 무슨 짓을 시키려고! 애초에 왜 토요일까지야?”
“돌아가는 비행기가 일요일이니까, 토요일에 유우랑 소라의 결혼식을 하려고. 벌써 아는 사람 교회를 빌려놨어. 승부 내용은 승부할 때가 되면 적당히 정하면 돼. 어떤 내용의 승부라도, 엄마가 데려온 소라가 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내 부모이긴 하지만 완전 엉터리다!
다시 말해 다음 주 토요일까지 누군가 치카게 소라와 승부(승부 내용은 그 때 결정)를 해서 이기지 못하면 나는 그녀와 결혼하게 되는 것인가.
엄마의 눈과 말투는 진지해서, 거짓말이나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했다.
“나는 아직 납득할 수 없어! 애초에 아무리 엄마라고 해도 이번 일은 너무 제멋대로야! 그, 그리고 양다리 약혼을 한 것뿐만 아니라 다른 이유도 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소라와는 결혼할 수 없어!”
조금 강한 말투로 말했지만, 엄마도 소라도 태연히 받아넘겼다.
그뿐만 아니라 소라는 빙긋 웃었다.
“‘요괴의 정체를 알게 되면, 친척이 되거나 죽인다’는 거지?”
“!?”
엄마를 제외한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깜짝 놀랐다.
소라는 그런 분위기를 신경 쓰지 않고 거기에 말을 이었다.
“실은 말이지, 소라는 치카게 일족이라는 음양사 일족이야.”
“치카게 일족?”
나는 자신도 모르게 되묻고 말았다.
“응! 그러니까 유우 군이 소라와 결혼하면 관계자가 되니까 살해당하지 않아도 돼.”
“어라, 소라는 음양사였어? 그럼 이번에 아줌마 점이라도 봐주지 않을래?”
약 한 명, 엄마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한 사람만이 다른 의미로 놀라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우사츠키 아리스는 테이블에서 몸을 일으키고 소리쳤다.
“치카게 일족! 그럼 당신 그 ‘치카게 소라’인 거야!?”
“‘그’라니? 아리스는 소라를 알고 있어?”
“다들 백귀야행에서 거리를 두고 있으니까 모를 것 같지만, 치카게 소라는 이쪽에서는 엄청난 유명인이야. 어쨌든, 현재 최강의 음양사란 말이야.”
“최강의 음양사!?”
우리들은 입을 모아 깜짝 놀랐다.
“그래. 최강. 현재 일본에 있는 음양사나 영능력자들 중에 가장 강한 게 그녀야. 게다가 치카게 일족은 사생루(四生樓)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일족. 설마 본인이었을 줄은…….”
“뭐야, 그 연예인이라도 만난 것 같은 반응은. 애초에 그 ‘사생루’라는 건 뭐야?”
“백귀야행이 요괴 조직이라는 건 유우키도 알고 있지?”
“아아.”
“그 백귀야행과 동맹을 맺고 있는 인간 측의 조직이 있어. 그 이름이 ‘사생루’야.”
“헤에~ 너희 요괴들은 인간 쪽 조직하고도 동맹을 맺고 있었구나. 난 또 적대하고 있는 줄 알았네.”
그 말에 메이는 질린 표정을, 사요는 쓴웃음을 지었다.
“21세기가 되었는데도 인간과 요괴가 싸우고 있을 리가 없잖아.”
“물론 인간 쪽에도 요괴 쪽에도 단호하게 적을 멸망시켜야 한다는 파벌이나 소규모 조직은 있으니까 전부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말이야.”
내가 두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으려니, 아리스가 더욱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궁내청 산하에 네 개의 큰 가문이 있어서, 그 가문들이 기본적으로 사생루의 조직을 운영하고 있어. 치카게 일족은 그 네 개의 큰 가문 중 하나야.”
“다시 말해 소라는 인간 쪽 최강인데다가 조직의 정점을 점하고 있는 가문의 인간이라는 건가. 네 개의 큰 가문 중 하나라, 어쩐지 멋있네. 백귀야행에도 그런 게 있어?”
“음 그러니까, 사생루 같은 대표적인 일족은 없느냐고 물어보시는 건가요?”
사요가 질문을 정리했다.
인간 측, 요괴 측 어느 쪽 조직에도 정통한 아리스가 의기양양하게 설명했다.
오니나 텐구 같은 건 알겠지만, 야타나 죠로구모 일족이라니 엄청나구나.
하지만, 최강의 실력과 최고의 권력을 가진 젊은 술사, 게다가 가슴도 크고, 미인.
“확실히 그만큼 감투를 쓰고 있으면 유명해지긴 하겠네. 하지만, 음양사가 교회에서 결혼식을 해도 되는 거야?”
“그치만, 역시 교회에서 올리는 결혼식은 여자아이의 꿈인걸.”
소라는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 같은 눈으로 주장했다.
……이제 와서 그렇지만, 일반인 어머니가 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나?
슬쩍 쳐다보자, 어머니는 젊은이들끼리의 대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건지,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남의 일처럼 방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 측의 최강이라면 ‘그거’ 아니야?”
“나도 메이도 함께 계속 ‘그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메이랑 사요가 생각하고 있는 인간 쪽 최강인 ‘그’ 일족은 한참 옛날에 멸망해버려서 지금은 한 사람도 없어. 그러니까, 소라가 현재 최강인 거야.” 하고 아리스가 말했다.
(그건 뭔데?)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 이야기는 이미 끝나버려 메이네 관심은 이미 소라에게로 옮겨갔기 때문에 물어볼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그녀들은 지금의 이야기를 듣고 치카게 소라에게 날카로운 시선을 보냈다.
그렇게 적의가 담긴 시선을 받았지만, 소라는 허공만 쳐다보고 있는 듯 센베에 손을 뻗어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음양사 최강, 인가요…….”
“엣? 뭐야? 앗, 이 센베도 맛있네. 유우 군도 먹을래?”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