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종만
밀양에서 태어났고, 경북대학교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산학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1988년 국내 최대 제조기업이자 세계적인 IT기업 삼성전자에 입사해 23년간 삼성맨으로 일했다.
대기업 사원으로서는 드물게 시스템, 휴대폰 제조, 광케이블 등 전혀 다른 3개 사업 분야에서 일하며 폭넓은 업무를 경험했다. 삼성그룹 지역 전문가 1기에 선발되어 주재원 중에서도 엘리트만 간다는 일본 주재원으로 8년(도쿄 7년, 오사카 1년)을 보냈다.
삼성전자 근무 중 미국 볼링그린 주립대에서 구매학을 6개월간 공부하는 등 일하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이어갔다. 50세를 앞둔 2011년 본인의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었으나 나이스그룹 회장의 권유로 적자에 허덕이던 (주)지니틱스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매출 5억 원의 (주)지니틱스를 5년 만에 100배로 성장시키면서 상장에 성공했다. 현재 (주)지니틱스, 서울전자통신(주), (주)OKPOS 3개 사의 대표이사 및 총괄 사장을 맡고 있다.
대기업에서의 23년 경험을 중소기업에 성공적으로 풀어내며 지금도 현장에서 매일 혁신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성공을 위한
자신만의
해법을 갖고 있는가?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나도 지금까지 무수한 질문들 앞에 섰고, 하나씩 스스로 결정해야 했다. 나의 선택이 모두 정답이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세상에 정답이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꾸준히 나만의 해답을 제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그리고 성과도 있었다. 우리나라 최고의 대기업에서 20년 넘게 근무하며 그 기업이 글로벌 경쟁의 선두주자로 자리하는 데 얼마간 공헌했다고 자부하며, 내가 처음 조인한 중소기업에서는 임직원이 하나가 되어 노력한 결과 매출 5억 원대의 벤처기업을 100배 규모로 키워 상장하기도 했다.
올바른 선택을 해왔다고 해서 나 자신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나를 만들어준 건 경험들이다. 대기업에서 여러 사업부를 경험하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나는 교환기와 전송 장비를 만드는 시스템 관련 사업부에서 일을 시작해 휴대폰 사업부에서는 제조업을, 광섬유와 광케이블 관련 사업부에서는 화학물 공정이 대부분인 재료 산업을 경험했다.
해외에서 글로벌 감각을 익힐 기회도 있었다. 일본 지역전문가로 오사카大阪에서 1년을 보냈고, 전 세계 첨단 산업의 정보가 교차하는 도쿄東京에서 7년간 주재원 생활을 했다. 미국 오하이오Ohio주 볼링그린주립대학에서는 구매에 대하여 공부하며 이론과 실제의 차이와 공통점을 내 나름대로 정리하기도 했다.
2011년, 23년간 몸담았던 대기업을 떠나 팹리스1 반도체 중소기업인 (주)지니틱스에 새 둥지를 틀었다. (주)지니틱스가 안정을 찾아가면서 서울전자통신(주)의 대표이사와 금융지급결제POS 부문 솔루션 제공 사업체인 (주)OKPOS의 총괄사장도 겸하게 되었다. IT 산업과 제조업, 솔루션 사업의 개성은 천차만별이라 대기업에서 다양한 사업부를 넘나들던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임원으로 있으면서 대선배님들께 한국 반도체 산업의 현실을 배우고, 함께 미래를 고민하기도 했다.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세상과 기업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얕은 지식과 통찰, 그리고 시각이 생긴 것 같다. 나만의 관점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지만, 누구나 바라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닐 듯하다. 예를 들면, 나는 회사의 경쟁력이 매출 규모에 따라 달라진다고 확신한다. 벤처기업이 순수한 제품의 힘으로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는 한계는 300억 원 매출이라고 본다. 여기에 영업 능력과 관리 능력이 합해지면 기업은 700억 원 수준까지 성장 가능하다. 그러나 내수 시장으로는 그 이상을 넘어서기 힘들어 보인다. 그 이상에는 글로벌 마케팅 능력이 필요하다. 글로벌 마켓에 진출해서 데스밸리2를 뛰어넘을 수 있으면, 그 힘으로 그 이상의 또 다른 시장을 창출 가능하다고 본다.
이런 생각을 입증할 능력이 내게는 없다. 그저 경험으로 미루어 생각할 뿐이다. 진대제 전 장관3도 <열정으로 경영하라>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내게 그분 같은 깊이의 통찰력이 있지는 않겠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팹리스 반도체의 산업 현장을 두루 돌면서 체험한 결론은 의외로 유사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어떤 주장은 경제학 이론이나 통념에서 다소 어긋나기도 할 것이다. 내 경험과 생각을 정답이라고 자신하지 않는 이유다.
나를 지금까지 끌어온 나만의 해법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어떤 사람들에겐 내 경험이 도움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다. 대기업을 나와 벤처를 시작하는 도전자, 혁신을 꿈꾸지만 어떻게 바꿔야 할지 고민하는 중소기업 운영자,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많은 고민을 하고 있을 것이다. 막막하기도 할 것이다. 나 역시 그랬으니 말이다.
나는 ‘의자에는 항상 주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해 보이고 멋져 보이지만, 그 의자가 주는 책임감은 의외로 무겁다. 적게는 몇 명에서, 많게는 몇천 명의 식구들 미래가 걸려 있는 자리이며, 과연 이 자리에 앉아도 될 자격이 있는지 끊임없이 반문하며 자기 검열을 해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CEO의 의자는 외로움의 자리인 것이다.
이 글은 30년간 대기업, 세 군데의 중소기업, 10여 년의 해외 경험을 통해서 보고 느끼고 체득한 것을 틈틈이 메모해 놓았던 것을 정리한 것이다. 사람마다 상황이 다른 만큼 내 경험과 선택이 다른 이들에게도 통용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답을 주진 못하더라도 참고 거리는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하여 경영 전선에 나서는 누군가에게 아주 작은 도움이 되고 우리나라의 미래에 미미한 거름이라도 될 수 있다면 나에겐 더없이 큰 기쁨이 될 것이다.
1 반도체 제조 공정 중 설계와 개발을 전문화한 회사.
2 스타트업이 1,000억 원의 매출을 넘어서는 것.
3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제9대 정보통신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을 역임했다. 현재 KIST 석좌 교수, 제1대 한국블록체인협회장.
추천사
>손종만 대표는 어떻게든 책임을 완수하고 결과를 만들어내는 리더다. 상사가 가르치기 이전부터 스스로 무엇을 배워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항상 먼저 고민하고 행동하는 타입이었다. 그런 그가 3개사 대표가 되어 성공적으로 중소기업을 이끌고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현실은 늘 실전인데, 현장을 실제 경험하기란 쉽지 않다. 현장형 리더인 손종만 대표의 경험을 묶어낸 한 권의 책은 현장을 알고 싶은 많은 분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 믿는다. 김종호, 前 삼성전자 및 삼성중공업 사장, 現 삼성전자 스마트공장지원센터장
>평소 훌륭한 경영자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던 손종만 대표로부터 경영 에세이 출간을 준비 중이라는 전화를 받고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30여 년의 인연 속 손 대표는 누구보다 솔직 담백하면서도 신뢰 있는 사람이다. 그런 이의 30여 년 경험을 총망라한 책이 출간된다는 것은 우리나라 경제계에도 큰 선물이 아닐까 한다. 나 역시 삼성전자를 거쳐 중소기업 대표로 재직 중이지만, 손 대표의 경영 에세이는 기업 경영 전 분야에 걸쳐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경영 현장에서 곧바로 활용이 가능한 경영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중소기업 경영자는 물론, 창업을 꿈꾸는 대한민국 청년들에게도 훌륭한 스승이자 길잡이가 될 것이라 믿는다. 이승현, 한국외국기업협회 회장, ㈜인팩코리아 대표이사
>10여 년 전 대전에 있는, 스타트업 당시부터 적자에 허덕이던 회사를 100배 규모로 키워 상장시키기까지 손종만 대표의 발걸음을 지켜봤던 나는 손 대표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해왔을지 짐작할 수 있다. 나 역시 스타트업 5425부터 맥키스컴퍼니의 론칭까지 27년간 사업을 이어오면서 끊임없이 도전하고, 성공과 실패의 경험이 한 덩어리가 되어 굴러온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단순한 경영 에세이가 아니라 지혜를 담고 있다. 열악한 조건의 중소기업에서 어떻게 마음을 얻고, 용기를 북돋우고, 같이 호흡하고 뛰어야 하는지 본인이 몸소 실천하면서 얻은 답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분명 경영의 훌륭한 길라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조웅래, 맥키스컴퍼니 회장, 계족산 황톳길 조성
>㈜지니틱스는 혁신적인 제품 개발은 물론 M&A를 통한 사업 다각화, 중국 시장 진출 등을 통해 최근 10년간 연평균 매출성장률 41.2%라는 놀라운 기록을 달성하며, 팹리스 기업의 성장 모델이 되었다. 이 책에는 중소기업 CEO로서의 도전정신과 과감한 결단력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겸손과 따뜻한 리더십으로 조직을 이끄는 손종만 대표의 경영 철학이 녹아 있어 30여 년간 기업가 정신으로 수많은 역경을 이겨낸 손 대표의 현장 경험과 통찰력을 느낄 수 있다. CEO의 실제 체험기는 교과서 같은 이론을 모아 놓은 일반 경영서적에서 결코 찾아보기 어려운 ‘진짜 경영’의 기술이다. 이 책을 중소기업 경영인, 임직원뿐만 아니라 큰 꿈을 키우는 젊은이들의 필수 지침서로 권하고 싶다. 남기만,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
>손종만 대표는 철저하게 자신의 개인 경험에 근거해서 경영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 내용은 그의 개인 경험 이상의 지식과 지혜를 담아낸다. 그건 30년 이상의 사회생활을 하면서 그가 한순간도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깊이 고민하고 흔들림 없이 행동하면서 손종만 대표가 보내온 시간은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인재들에게, 조직의 핵심 리더로 성장할 도전자들에게, 미래의 대한민국을 이끌 차기 경영자들에게 최고의 참고서가 될 것이다. 허민회, CJ E&M 대표이사
>몇 년 전 모임에서 손종만 대표가 복무했던 백골부대의 대대가 작사·작곡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손 대표의 인생관이 궁금해 따로 만나 이야기를 들었고, 어떤 철학으로 기업을 경영하는지도 그때 알게 되었다. 손종만 대표는 대기업에서 체득한 경영과 혁신의 노하우를 중소기업에 창의적으로, 또 실전적으로 적용하는 모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6개월 동안 솔선수범 화장실 청소를 하며 조직을 이끄는 그의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대기업의 임원이 중소기업에서 2년을 버티지 못하는 이유, 직원의 숨은 아이디어를 끄집어내는 방법, 속자생존, 개척시장 대신 개선시장 등 실전에 기반한 생생한 이야기는 중소기업인들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CxO최고 경험 관리자의 실천지침서’가 될 것이라 기대한다. 조상욱, 前 언스트앤영 부대표, AT커니 부사장
차례
저자의 글 | 성공을 위한 자신만의 해법을 갖고 있는가?
PART. 1
당신은 무엇을 ‘꿈’꾸는가?
인생은 정한 방향대로 살아진다
최악은 아무것도 꿈꾸지 않는 것이다 | 내 안의 ‘부정적 가치관’을 말소하라
하지 말 것인가, 할 것인가
한번 결심한 일은 끝까지 간다 | 고집과 소신의 차이
헛된 시간은 없다. 헛되게 보내는 시간이 있을 뿐이다
사장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것이 배워야 할 일이다 | 평생 남의 일밖에 못하는 사람의 특징 | 성공을 포기하는 진짜 이유
우연히 찾아오는 기회는 없다
지금 이 시각도 누군가는 당신을 보고 있다 | 행운을 잡는 그물
할 수 없는 것은 없다. 단지 하지 않을 뿐
평범함과 특별함의 간극 | 습관을 또 다른 습관으로, 21일의 법칙
대기업 임원이 중소기업에서 2년을 못 버티는 이유
과거의 후광을 잊어야 답을 찾을 수 있다 | 중소기업은 살아 있는 유기체다
PART. 2
중소기업 경영의 핵심과 업무
혼돈의 시대를 헤쳐나갈 중소기업의 기본 생존 법칙
전 직원의 데이터 공유, 디지털경영을 일상화하라 | 이해 없는 선택과 집중은 망하는 지름길이다 | 속자생존 |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 | 재해는 모든 것을 끝낸다
문제없는 기업은 없다.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 다를 뿐이다
한국 기업 차장이 일본 소니 사장 방으로 쳐들어가다 | 정면 돌파가 답이다 | 변명 대신 종아리를 걷어라 | 평판과 빈발 효과
기술만으로는 배를 불릴 수 없다
기술이 이익 창출에 차지하는 비중은 15%에 불과하다 | 내게 쉬운 일은 남들에게도 쉽다 | 첨단 기술도 몰락할 수 있다 | 직원의 숨은 아이디어를 끄집어내는 방법 | 적과의 동침도 필요하다
‘구매’와 ‘품질관리’는 기업경쟁력과 직결된다
100-1=0이다 | 구매부서를 CEO 직속으로 두어야 하는 이유 | 개발부터 구매부서가 참여하는 ‘원가경영’ | 품질관리에서는 총수율이 아닌, 공정별 직행률을 따져야 | 성실성만으로 품질관리를 할 수 있을까? | 20%로 80%를 얻는다
시장은 설득의 대상이 아니다
가격을 결정하는 법 | 이익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기업의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악성재고 | ‘메이저소싱’과 ‘마이너소싱’ | 불합리한 점을 찾아내면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 ‘기획영업’과 ‘정보영업’이 기술과 이윤을 만든다
회사를 시스템화, 구조화, 자립화하라
‘전통’이란 주장 속에 담긴 함정 | 중소기업 ERP 시스템의 중요성 | 업무 습관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어라 | 혹시 오늘에만 머무는 기업은 아닐까?
크고, 대담하며, 도전적인 목표를 계획하라
비합리적인 상황에서 창조적인 발상이 등장한다 | 경영전략회의에서 해야 할 일 | 회의도 원가다 | ‘개척 시장’ 대신 ‘개선 시장’ | 촉이 중요할 때도 있다
날마다 새로운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경영
솔개는 살기 위해 스스로 부리를 깨트린다 | 작은 곳에서 기업 이미지가 결정된다 | 퇴사자 면담으로 회사를 점검한다 | 경험의 차이가 면역력의 차이를 만든다 | 현장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들을 수 있는 아이디어 | 하지 않는 것도 경영이다 | 까치는 바람이 가장 센 날 집을 짓는다 | 창의성, 디테일, 몰입과 열정이 살아 있는 기업은 망하지 않는다
PART. 3
세계를 품는 혜안
기술은 깊게, 시장은 넓게 보고 진입하라
한 우물만 파다 보면 물이 고갈될 수도 있다 | 글로벌 대기업과 거래하면 유리한 몇 가지
해답은 글로벌 시장에 있다
중국과 인도, 어디로 가야 하나 | 중국, 중국 사람, 중국 시장
해외에서 제조업을 할 때 고려해볼 문제들
꼼꼼한 사전 조사가 실패를 줄인다 | 해외 공장 개혁의 성공과 실패 | 국적이 달라도 함께 일하면 가족이다
주재원은 또 한 사람의 회사 대표이자 외교관
주재원의 역할을 분명히 정의하라 | 주재원은 위보다 아래를 봐야 한다 | 주재원 3개월의 법칙 | 주재생활에서 고민해볼 문제들 | 매너와 에티켓이 사업을 만든다
PART. 4
조직과 인사를 다루는 통찰의 힘
관찰 속에 답이 나온다
보고는 상사와의 가장 좋은 소통 수단이다 | 인재를 인재로 유지시키는 법
조직과 역할에 대한 역발상
직원이 사장의 월급을 준다 | 잘된 기획서 한 장이 상사를 부린다 | 사장실이 회사의 경영을 암시한다
모두가 똑같이 일해서는 안 된다
‘똑부’ vs. ‘멍부’ | 직책과 조직의 질서는 과연 따라야 하는가? | 경영을 관리한다? 경영을 지원한다! | 꾸중과 칭찬이 이끌어내는 상반된 변화 | 자기최면 하나쯤은 필요하다
공감하면 자발적으로 일한다
‘Drinkation’은 Communication이 아니다 | 직원의 마음을 바꾸는 정보 공개 | 핵심부서 3인이 조직 장악의 열쇠다 | 남녀 성비도 중요하다 | 이름을 통해서도 가치는 생겨난다 | 나쁜 일일수록 빨리 세상에 드러내라
교육 없는 교육을 하라
주도적 자기 학습은 기업 내에서도 통용된다 | 잘 만들어진 문서는 뛰어난 영업사원과 같다 | 문서는 한눈에 들어와야 한다 | 단순화할 때 답이 나온다
인사 문제는 온전히 리더의 책임이다
나만의 인사 징크스 | 팀워크를 저해하는 엘리트는 무의미하다 | 3%의 직원은 따로 있다 | 인사는 과감하고 빠르게 | 경력사원의 3·3·3 갈등
갈등은 시간을 다투어 해결하라
리더는 침묵도 경청할 수 있어야 한다 | 글로 적어보면 알맹이만 보인다 | 이유를 찾으면 퇴직률도 낮출 수 있다 | 조직문화는 리더가 아닌 직원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PART. 5
리더는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무한 책임, 무한 외로움의 자리
CEO의 자리는 한없이 외롭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 임직원과는 가까우면서 멀어야 한다 | 미움받을 용기도 필요하다
결과를 먼저 보여주는 사람이 리더다
멋진 ‘왕년’은 없다 | 변화에는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 누군가에게 ‘불씨’가 될 수 있는 사람
감성은 경영자의 중요한 덕목이다
감성 결여와 빈약한 소통 능력의 상관관계 | 책 속에 길이 있다
업의 본질을 파악하고 있는가?
업의 본질 파악과 일의 능률은 비례한다 | 리더란 설계도를 그리는 건축가와 같다 | ‘생각의 집’을 쌓아 올려라
고민이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는다
고민으로 잠 못 이루는 것은 게으르기 때문이다 |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 | 마음은 뜨겁게, 사고는 냉철하게
당당해야 리드할 수 있다
비리는 시스템으로 근절한다 | 남들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가? | 심판의 생각에 따라 내리는 판단은 불합리하다
리더의 자기관리가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가족은 가장을, 직원은 CEO를 보고 자란다 | 긍정이 에너지를 만든다 | 입 밖으로 나온 말이 스스로를 다스린다 | 가끔은 멈춰 서서 자신을 위로하라 | 인생에는 저마다의 응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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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하고 1988년에 서울로 올라왔다. 나는 사랑 말고는 아무것도 없던 시골 집안에서 6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그런 내게 서울은 휘황찬란하고 너무나 멋진 곳이었다. 그렇다고 서울의 화려함에 위축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도전의식이 솟아올랐다. 특히 부러운 것이 세 가지 있었는데, 이들이 내 목표가 되었다. 그 세 가지는 사장이 되는 것, 서울의 좋은 집에 사는 것, 그리고 해외 주재를 해보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소박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1988년 시점에서는 결코 작지 않은 꿈이었다. 이유는 이렇다.
첫째, 대기업에서 사장이 되겠다는 생각은 학교를 갓 졸업한 청년이 바랄 수 있는 꿈이긴 하지만, 이루기는 쉽지 않다. 둘째, 살고 싶은 집에도 구체적인 모습이 있었다. 서울에서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한강 이남, 즉 강남 3구에서 30대에는 30평, 40대에는 40평의 자가自家에서 살고 싶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부동산 열기가 뜨겁지 않았기 때문에 부동산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아니었고, 가족들에게 편안함과 편리함을 주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희망에 가까웠다. 월급쟁이로, 그것도 서울의 가장 비싼 동네에 집을 사는 것은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셋째, 1988년은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시기였다. 여권Passport과 비자Visa의 차이를 아는 국민도 많지 않았다. 아니, 여권과 비자라는 단어에 익숙한 사람이 드물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해외여행을 가려면 안기부국가안전기획부, 현재 국가정보원에 가서 4시간 동안 교육을 받아야 했을 정도다. 그럼에도 이 세 가지는 내가 꼭 이루고 말겠다는 목표가 되었다.
첫 번째 꿈을 이룬 상황은 부연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대기업에서는 이루지 못했어도 중소기업에서나마 사장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둘째 꿈인 자가 구입에 대한 열망도 무척 컸다. 휴대폰 보급률이 어느 정도를 넘어서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지하철 탑승객 중 많은 사람이 신문을 보았다. 특히 스포츠신문이 인기였는데, 남들이 지하철에서 야구 경기 결과를 뒤적일 때 나는 부동산 뉴스부터 펼쳤다. 간절한 마음으로 습관처럼 부동산 뉴스를 찾다 보니, 이것들이 모여서 중요한 정보로 바뀌어 갔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시세보다 훨씬 저렴하게 나온 집을 구입할 수 있었다. 물론 그때에도 집을 산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부담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었다. 당시 내 월급이 70만 원 정도였는데, 1억 원짜리 주택을 구입했으니 과감한 결단이라면 결단이었을 것이다.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부동산 가치는 내 임금보다 가파르게 상승했으니, 올바른 결단이기도 한 듯하다.
해외생활을 해보겠다는 마지막 꿈도 8년 정도의 주재생활로 이루어졌다. 여기에도 사연은 있다. 입사 초기 나는 통신시스템사업부 소속이었는데, 통신 설비는 국가 인프라 설비이기 때문에 유사시에는 그것을 만든 회사 또는 국가의 기술 지원에 의존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나라든 통신 설비는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국가의 기술 지원에 의존한다. 다시 말해 통신 설비는 수입을 꺼리는 종목으로 수출이 어렵기 때문에 타 사업부에 비해 주재원으로 나갈 가망성이 희박했다. 그래서 나는 삼성그룹의 ‘구매의 예술화4’ 차원에서 실시하는 주재파견우대시험인 구매 전문가 시험을 죽어라 준비해서 수석을 차지하는 등, 주재 파견의 자격 요건을 갖추려고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
청년 시절 세워 놓은 목표를 모두 달성한 후 나는 론다 번Rhonda Byrne의 <시크릿>이라는 책을 접하고 깜짝 놀랐다. 내가 생각한 내용과 일치하는 부분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
• 우주는 입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입자는 곧 에너지다. 에너지가 있으면 진동하며 주파수를 만들어낸다.
• 사람의 생각에도 주파수가 있는데, 어떤 것을 계속 상상하면 그 생각에 해당하는 파장의 주파수를 방사하게 된다.
• 간절히 원하면 그 생각의 주파수가 계속 방사된다. 같은 주파수의 에너지들은 함께 진동하며 내 쪽으로 끌려온다. 만유인력의 법칙처럼 꿈의 끌어당김 법칙이 성립하는 것이다.
• 긍정적인 생각은 긍정의 에너지를, 부정적인 생각은 부정의 에너지를 끌어온다. 간절하게 꿈꾸면 긍정의 에너지가 모여 언젠가 꿈이 이루어진다.
• 끌어당김 법칙에는 시차가 있다. 지금 내 앞에 놓인 현실은 과거에 내가 한 생각과 행동이 만들어낸 결과다. 다시 말해 오늘 생각이 바뀌었다고 해서 당장 현실이 바뀌지는 않는다. 현재의 생각과 행동을 차근차근 쌓다 보면 결국 미래도 바꿀 수 있다.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나는 이 주장에 논리적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 프린스턴대학교의 공학 교수인 로버트 얀Robert Jahn은 심리학자인 브랜다 듄Brenda Dunne과 20년간 마음의 에너지에 대한 실험을 진행했다. 그리고 그는 마음이 물리적 입자처럼 구성되어 있으며, 파동으로 작동할 때에는 이동할 수도 있다고 결론 내렸다. <시크릿>의 주장과 판박이처럼 느껴진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다. 다만 그만큼 간절히 꿈꾸는 사람이 많지 않을 뿐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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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일본의 기업인 이나모리 가즈오稲盛和夫 역시 론다 번과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교세라 그룹을 창업하고 세계적인 수준으로 키워냈지만,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스님이 되어버린 이색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쓴 책은 모두 경영이론의 베스트셀러로 떠올랐다. <왜 일하는가>, <아메바 경영 매뉴얼>, <생각의 힘>, <남겨야 산다> 등 수십 권에 달하는 저술 가운데 어느 하나 대단하지 않은 것은 없다.
이나모리 가즈오의 저서 <카르마 경영>은 카르마 즉 ‘업業’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보기에 따라 불교 서적일 수도 있다. 나는 ‘업’이란 글자에서 두 가지 느낌을 받는다. ‘사업’이나 ‘기업’, ‘직업’처럼 일이나 생산성과 관계된 느낌이 하나고, ‘업보’와 같이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느낌이 다른 하나다. 이 둘의 뉘앙스는 너무 달라서 도저히 뒤섞이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카르마 경영>에서 이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하나가 된다. 업보를 나타내는 카르마와 기업 활동의 핵심인 경영을 하나로 묶은 제목부터 절묘하다.
<카르마 경영>에 따르면, 세상 만물은 모두 에너지다. 에너지는 진동하면서 파장을 만들어낸다. 그러니까 사람을 포함해서 세상의 모든 것들은 고유한 주파수를 지니고 있다. 사람은 고유 주파수에 따른 숙명을 가지고 살아간다. 벗어날 수 없으니 숙명이다. 그런데 정말 간절히 꿈꾸고 노력하면 기적이 일어난다. 정말 간절히 바라면 마음의 주파수가 주변과 공진을 일으킨다. 공진으로 바다를 반으로 가르지는 못하겠지만, 기존의 숙명을 조금은 움직이는 것이 가능하다. 생각이 원인이 되어, 기적 같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주장이 <카르마 경영>의 핵심이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인생이나 일의 결과를 간단한 수식으로 표현했다.
인생이나 일의 결과=가치관×열의×능력
이들의 관계는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 연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무리 열의와 능력이 있더라도 마이너스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면 결과는 마이너스다.
이 책에 따르면 인생이란 정말 간절해야 한다는 전제가 붙기는 하지만, 마음에 그린 그림대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좋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좋은 인생을 살고, 나쁜 생각을 하는 사람은 나쁜 인생을 살아가게 된다. 인과응보의 법칙은 기업 운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가끔 산을 찾는 내게 어떤 친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어차피 내려올 걸 왜 뻘뻘 땀 흘리며 힘들게 올라가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만사가 모두 다르지 않다. 어차피 대·소변으로 나갈 걸 무엇 하러 먹고, 어차피 죽을 텐데 왜 살아가느냐고 되묻고 싶다. 즐겁게 먹으면 입이 즐거워지고, 좋은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가면 순간순간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잘 먹으면 건강이 좋아지고, 매사에 감사하면 인생의 가치가 달라진다.
카르마는 즉석복권이 아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긁어서 일확천금의 대가를 얻을 수는 없다. 오늘 착한 일을 한다고 내일 보답이 찾아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길게 보고 올바른 방법으로 노력한다면, 서서히 공진이 발생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꿈을 이루게 된다.
이 내용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 말로Andre Malraux의 명언과도 통한다. 앙드레 말로는 “꿈이 간절하면 언젠가는 그 꿈을 닮아간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이 문구를 세 군데 회사의 책상머리에 적어 두고 늘 마음에 새기고 있다.
이나모리 가즈오의 책은 세세한 경영기법 같은 것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어쩌면 회사마다 경영자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니까 구체적인 해법은 스스로 찾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경영의 신’은 그렇게 지엽적인 문제들보다 기업가의 사람됨을 강조한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경영이란 자신을 넘어 타인과 세상에까지 좋은 영향을 끼치겠다는 큰 욕심의 발현”이라고 설명한다.
이타심은 경쟁에서 힘이 된다. 직원이 생활고를 겪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더 나아가 소비자와 주주, 회사의 발전을 위해서 경영자는 반드시 시장에서 승리해야 한다. 경쟁을 이겨내고 매출을 확보해야 한다. 그래서 이나모리 가즈오는 이타심과 투쟁심을 함께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타심과 투쟁심, 숙명과 극복, 한계와 초월처럼 대립적인 문제들이 그를 통하면 해결된다. <카르마 경영>은 늘 나에게 겸손함과 도전의식을 동시에 고취하게 해준다.
4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강조하던 경영의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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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육군 3사단 백골부대 산하 통신정비부대에서 근무했다. 그때는 통신대대와 정비대대가 함께 있었다. 상병 즈음으로 기억하는데, 육사 출신의 부대장이 새로 취임했다. 패기가 넘쳤던 그분은 부대의 정체성을 잘 살려줄 대대가를 공모해서 군의 사기를 진작하려고 했다.
포상휴가가 탐이 났던 나는 대대가에 응모하기로 마음먹었다. 음악에 큰 소질은 없었지만, 노래를 좋아해서 서점에서 팔던 유행가 노래책을 사서 따라 부르기도 하고, 대학 신입생 시절 잠깐이나마 음악 밴드 동아리 활동을 한 적이 있어서 악보가 낯설지 않은 터였다. 대대가 공모가 시작되자 나는 백지 한 장에 오선지를 그려 군복 주머니에 넣었다. 고참의 눈을 피해, 짬이 날 때마다 오선지를 꺼냈다. 흥얼흥얼 허밍을 하면서 곡을 쓰고 가사를 붙였다. 정기휴가 직전에 탈고를 마쳤다. 노래를 제출하고 정기휴가를 다녀왔더니, 외부 심사 결과 내 노래가 대대가로 선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야단법석 속에 어리둥절해하며 다시 포상휴가를 다녀왔다.
부대장은 대대가 보급을 위해 구보나 총검술 등의 성적을 평가하는 대대의 전투지휘 검열에 대대가를 포함시켰다. 새로 지정한 대대가의 단체합창 항목을 심사하겠다는 것이었다. 복사기가 없던 시절이라 먹지에 대대가 악보를 등사해서 각 부대에 보급했다. 그때의 시큼한 잉크 냄새가 지금도 아련하다. 노래를 만든 나는 심사위원장이 되었고, 소령까지 노래를 지도해달라고 일개 상병을 찾아왔다.
시간이 흘러 27개월의 내무반 생활이 끝났다. 대학에 복학하고, 사회생활을 하고, 주재원으로 해외에 파견되기도 하면서 정신없이 살았다. 어느새 30여 년의 세월이 흘러 나는 중소기업의 경영자가 되었고, 한 여인의 남편이자 두 딸의 아빠가 되어 있었다.
가족과 산정호수에 다녀오던 도중 군대 생각이 나서 잠시 들르기로 했다. 내무반장에게 귤 한 상자와 초코파이 두 상자를 건네며, 대대가를 흥얼거렸다. 내무반장은 그 노래를 어떻게 아느냐고 물었고, 나는 그 노래를 직접 작사·작곡한 선배라고 자기소개를 했다. 딸들 앞에서 살짝 의기양양한 마음도 있었는데, 내무반장의 대답이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대대가의 작사·작곡자는 공식적으로는 미상이지만, 다들 잠깐 그 부대에 머물렀던 ‘잊혀진 계절’의 가수를 작사·작곡자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럴 리가 없다고 나서는 나를 딸들은 창피해하며 말렸다.
작가 미상이면 그런가 보다 하겠는데, 다른 사람의 이름이 나오니 자식 하나를 강원도에 방치해 놓은 기분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서 전역 앨범을 뒤져보니 등사지5 원본이 한 장 남아 있었다. 물어물어 부대장과 연락할 기회를 만들었다. 부대장은 어렴풋이 대대가의 원작자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가수가 아니라 밀양 사투리를 쓰는 병사가 만들었다는 내용이었다. 대화가 인연이 되어, 나는 부대에서 강연을 하게 되었다. 운동기구와 악보 원본, 그리고 대대가 악보를 사람의 키만 한 크기로 제작해서 표구한 액자 3개를 선물로 준비했다. 강연 제목은 ‘28년 만의 외출’이었다. 인생에서 20대의 의미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후 강연을 마무리했다.
이미 30여 년이 지난 일이었다. 나는 물론 군도 바쁜 일상을 보내는 곳이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이것도 하나의 역사라고 생각하니 잘못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었다.
대대가의 등사지 원본은 28년간 내 앨범에서 잠자고 있었다. 하지만 원본이 있어야 할 진짜 고향은 우리 집이 아니라 부대였다. 이제 28년의 외출을 끝내고 복귀한다. 그렇게 내 청춘의 한 장을 제자리에 돌려놓은 후 나도 철원을 떠나 오늘로 복귀했다. 그제야 일을 마무리했다는 생각에 기쁨이 전신을 흘러넘쳤다. 온통 눈밭이었던 철원에는 더 많은 눈이 하늘과 땅을 덮고 있었다.
“헛된 시간은 없다.
헛되게 보내는 시간이
있을 뿐이다. 어떤
일을 하건 최선을
다한다면 시간은
배신하지 않는다.
노력한 만큼 결과는
반드시 돌아온다.
그간의 삶이 내게 건넨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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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대대가의 원작자가 나라고 바로잡은 것은 아집 때문이 아니다. 처음 시작한 일은 끝을 맺어야 하고, 잘못된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는 평소 소신 때문이다. 내가 만든 곡이 아니었더라도 아마 그렇게 했을 것이다.
특히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소신과 주관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남들이 허드렛일처럼 취급해도 내가 즐거우면 최선을 다했고, 옳다고 생각하면 상사에게도 직언을 망설이지 않았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때도 고집을 꺾지 않았는데, 이 일 때문에 자칫 사회생활의 출발이 틀어질 뻔했다.
입사한 후 처음 발령받은 곳은 교환기 설치공사 부서였다. 내심 글로벌 업무를 희망하고 있었기에 나는 부서 배치에 무척 실망했다. 전혀 원하지 않는 일로 사회생활의 첫 단추를 끼울 수는 없다고 생각한 나는 곧장 사직서를 썼다. 신입사원이 일도 시작하기 전에 사직서부터 내밀었으니 인사부장은 황당했을 것이다. 그분은 후에 신라호텔 사장까지 역임한 인사관리의 베테랑이었다. 그는 내게 회사의 다양한 업무와 인사의 중요성에 대해서 설명했다.
“인사원칙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은 적재적소의 인원 배치인데, 너도나도 각자 원하는 부서로만 가려 하면 회사가 어떻게 운영되겠느냐”며 나를 타일렀다. 그리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다가 기회가 나면 원하는 곳으로 옮기라고, 다양한 부서를 경험하라고 충고했다. 그 이야기가 옳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시작부터 원하지 않는 부서에서 시간을 허비하기가 싫었다. 내 삶의 방향이 완전히 틀어져 버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가 마음을 돌리지 않자 인사부장은 “사표를 수리해야겠는데, 담당 임원이 안 계시다. 내일 결재할 테니 마지막으로 하루 더 고민해보라”고 했다. 부드럽게 당부하기도 했다. 부모님을 생각해보라는 것이었다.
“자네가 대기업에 취직했다고 부모님께서 무척 기뻐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멋대로 사표를 쓰면 부모님께서 얼마나 속상해하시겠나?”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저는 6남매의 막내이고, 부모님께선 이미 두 분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S전자는 배경이 없어도 열심히만 하면 사장까지도 될 수 있는 좋은 회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지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내일이 되어도 생각이 바뀌진 않을 것입니다.”
다음 날 비장한 마음으로 회사에 갔다. 마지막 출근일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제의 분위기와 달리 내가 원하던 구매부서로 발령이 나 있었다. 인사부장이 왜 마음을 바꾸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단지 사표를 불사하며 고집을 굽히지 않는 신입사원에게서 당돌함을 느껴 부서를 바꿔준 것일지 모르겠다. 어떤 이유에서든 때로는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아야 할 순간은 반드시 있다고 믿는다. 덕분에 나는 신나게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고, 어떤 잡무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5 등사판에 박아 낼 원고를 쓰는 얇은 기름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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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나고 자란 나의 본격적인 서울생활은 회사에 들어가면서부터다. 나는 그 회사에 23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바쳤고, 지금도 내게 많은 경험과 가르침을 준 그 회사에 애정을 품고 있다. 그러나 입사 초기의 내게 할당된 업무는 남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허드렛일에 가까웠다. 서울에서 대학을 나온 동기들과 달리 내가 인기 없는 일을 맡게 된 진짜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사투리를 쓰는 지방대학 출신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가끔 들기도 한다.
내게 처음 주어진 일은 저항이나 콘덴서Condenser, 인덕터Inductor 등의 부품을 구매하는 것이었다. ‘수동소자’로 더 잘 알려진 이들 부품은 회사의 총 구매예산으로 따지면 전체의 2%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그 종수는 전체 자재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비중은 낮은, 고생은 해도 빛을 보긴 힘든 업무다.
그래도 나는 좋았다. 신입사원 때부터 사장을 꿈꿨기 때문에 회사의 모든 업무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억지로 일하면 그 순간의 해결이 목표가 된다. 업무와 업무가 파편화하여 연관성을 가지지 못한다. 모든 일이 즐거웠던 나는 업무들의 상관관계를 고민하고, 그 답을 매뉴얼로 만들었다.
무슨 일이건 맡으면 정리해서 매뉴얼을 만드니까 골치 아픈 잡무들은 모두 내게로 모여들었다. 업무량이 늘어나면 피곤해서 잠깐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정작 일을 시작하면 다시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공장 설비 구매를 담당했을 때가 기억난다. 지금과 달리 예전에는 공장 장비는 구매부서의 한직에게 주어지는 일이었다. 장비와 관련된 사항을 모두 둘러본 나는 불합리한 비용 구조를 찾아냈다. 그 장비는 본체와 유지보수 자재로 구성되었는데, 본체가 저렴한 반면 유지보수 자재는 비싸게 책정되어 있었다. 프린터는 저렴하지만, 토너가 비싼 셈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를 납득할 수 없었던 나는 공장 설비를 모두 재계약했다. 수동소자류, 턴키 수입, 전봇대 수입, 화학물 구매 등 그 이후에도 남들이 피하는 구매 업무를 한참이나 더 담당했다.
휴대폰 사업이 3년간 정체된 시기가 있었다. 경영진이 교체되고, ERP 시스템6이 구축되는 대대적인 경영혁신이 벌어졌다. 당시 나는 경영혁신 TF팀에 합류해서 LCD 표준화 혁신 테마의 리더를 맡았다. 본업을 하면서 경영혁신까지 하기가 무척 힘들었지만, 이 또한 내가 경영자가 되려면 당연히 알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당시 S전자의 휴대폰에는 180여 종의 LCD가 탑재되어 있었다. 나는 그 종류를 3분의 1 정도인 60여 종으로 줄였다. BLU7 기구물도 30여 종에서 10여 종으로 표준화하는 혁신적인 성과를 남겼다. 그리고 LCD 표준화 TF가 끝나자마자 다시 GSCM8이라는 ERP 구축 TF에 합류하여 몇 개월을 더 고생했다.
처음 목표와 달리 나는 그 대기업에서 사장이 되지 못했다. 그러나 사장이 되려면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모두가 피하던 허드렛일, 힘들어서 진땀을 쏟아야 했던 그 모든 일이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시스템이 갖추어지지 않은 중소기업에서 솔선수범이란 앞장선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앞에 가서 서 있기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의 CEO는 방향 설정부터 걷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직접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대기업의 힘든 구매 업무를 하면서 기업 살림의 중심 잡는 법을 배웠다. 경영의 뼈대를 세운 순간이었다. 공장 설비 경험은 중소기업으로 이전한 후 해외 공장의 설비 세팅에 큰 도움을 줬다. ERP 시스템 또한 직접 구축해보지 못했다면 중소기업의 경영혁신에 앞장설 수 없었을 것이다. 신입사원 시절부터 사장의 눈으로 회사를 바라봤기 때문에 정말 필요한 것들을 몸으로 익혀올 수 있었다.
헛된 시간은 없다. 헛되게 보내는 시간이 있을 뿐이다. 어떤 일을 하건 최선을 다한다면 시간은 배신하지 않는다. 노력한 만큼 결과는 반드시 돌아온다. 그간의 삶이 내게 건넨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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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에 합류한 나는 대차대조표를 분석하던 중 개발부서에 쌓여 있는 이상한 재고를 발견했다. 개발부서에서 굴지의 대기업 H사의 의뢰를 받아 제품 설계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막바지에 개발 사양이 변경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그간 큰돈을 들여 개발 샘플을 만들어 놓았는데, 고객사에 결과물을 전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개발비를 청구하지 못한 것이었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개발 사양의 변경은 우리 측 책임이 아니었다. 일을 했는데 대금을 청구하지 못하는 것은, 이 일을 자기 일처럼 여기지 않는다는 뜻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회사가 아니라 자신의 개인 돈을 들여서 한 것이라도 손 놓고 어쩔 줄 몰라 했을까?
나는 곧장 그간의 자료들을 모아 H사의 사장실에 이메일을 썼다. “귀사의 개발 사양 변경으로 8,400만 원의 개발비를 회수하지 못하고 있으며,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이 정도 비용으로도 도산할 수 있으니 정중히 해결을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상대 회사에서는 난리가 나서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나섰고, 윗선까지 문제를 제기해서 곤란하게 만들었다는 고객사 실무자의 불평이 오갔다. 하지만 정말 내 일이라면 불평은 물론 온갖 난관을 겪더라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는 게 당연할 것이다. 그로부터 한 달 뒤 개발비가 입금되었다.
해외 공장에 물건을 팔고도 제때 돈을 받지 못한 장기미수채권이 150만 달러약 18억 원나 남아 있는 것도 발견했다. 3년간 고질적으로 2~3개월씩 줄 돈을 미루는 기업도 있었다. 영업부서는 거래에 불이익을 받을까 갑의 심기를 건드릴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개인 사업을 해도 저럴까 하는 생각이 들며 한숨만 나왔다. 임원들은 우려의 눈초리로 나를 보았지만, 악습의 고리를 나부터 끊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경영진을 찾아가 몇 차례 고충을 얘기하였으나 예상대로 갑질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평소 ‘사업을 해서 얻는 매출과 수익은 유익한 것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던 나는 거래를 끊을 각오로 매월 15일 마감에 현금거래 조건을 통보했다. 고객사에서 제때 현금이 들어오지 않을 때마다 공급을 중단했고, 아울러 손해나게 팔던 제품도 ‘제값 받기’로 하고, 10~15% 정도 인상해 가격을 현실화했다. 6개월간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고질적 대금 지연이 사라지고, 현금 지급으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좋은 게 좋다’라는 말이 있지만, 경영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말이다. 때로는 ‘강단’도 필요하다.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말레이시아 공장에 단종된 제품에 사용되던 반도체 불용재고가 1억 5,000만 원어치나 남아 있었다. 모두가 새것을 사서 쓰고 남의 물건처럼 방치해 놓은 상태였다. 주인의식을 가진 새 법인장으로 교체시키면서, 차기 모델에 이 반도체를 적용하여 모두 소진할 수 있었다.
사회생활 초년병 때부터 사장을 꿈꾸었던 나는 무슨 일을 맡아도 내 일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