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무스름한 빛깔의 옷차림에 끝이 뾰족한 회색 고깔모자를 쓰고 턱수염을 기른 사내들이 무리를 지어, 머리에 두건을 쓰기도 하고 쓰지 않기도 한 아낙네들과 뒤섞여 어느 목조 건물 앞에 모여 있었다. 참나무로 튼튼하게 짠 문에는 장식용 무쇠 못이 군데군데 박혀 있었다.
새 식민지를 건설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인간의 덕성과 행복에 찬 어떤 유토피아를 꿈꾸었는지 몰라도 으레 처녀지의 일부를 묘지로, 또 다른 일부를 감옥터로 떼어 두는 것이 실제적으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관례에 따라 보스턴의 선조도 아이작 존슨1)의 땅에 있는 그의 무덤 둘레에 최초의 공동묘지를 마련한 것과 거의 때를 맞추어 콘힐2) 근처 어딘가에 최초의 감옥을 세웠다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존슨의 무덤은 뒷날 킹스채플3)의 옛 묘지에 옹기종기 들어선 모든 무덤의 중심이 되었다. 확실히 이 마을이 건설된 지도 어느덧 15년에서 20년이 지난 지금4), 그 목조 감옥은 벌써 온갖 풍상과 세월의 흔적으로 얼룩져 있었다. 그래서 얼굴을 찌푸린 듯 침울한 정면은 훨씬 더 음산한 모습을 띠고 있었다. 참나무 문의 묵직한 쇠 장식 위에는 녹이 슬어 있어서 신세계에 있는 다른 어느 것보다도 더욱 고색창연하게 보였다. 범죄와 관계있는 것이 모두 그러하듯 이 감옥도 화려한 청춘 시절은 일찍이 한 번도 누려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이 흉한 건물 앞에, 그리고 건물과 마찻길 사이 풀밭에 우엉이며 명아주며 아가위 같은 볼품없는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 보기 흉한 잡초들은 ‘감옥’이라는 문명사회의 검은 꽃을 그렇게 일찍이 피워 준 이 땅에서 뭔가 자신들과 같은 성질의 것을 발견했음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감옥 문 한쪽에서는 거의 문턱까지 뿌리를 박고 자란 들장미 덤불이 6월을 맞아 보석처럼 아름다운 꽃송이로 뒤덮여 있었다. 어쩌면 이 들장미 덤불은 죄수가 감옥 안으로 들어가거나 유죄판결을 받은 사형수가 형을 받으러 끌려나올 때, 대자연의 깊은 마음이 그를 동정하고 반긴다는 표시로 그윽한 향기와 함께 덧없는 아름다움을 바치고 있다고 생각해도 좋으리라.
이 들장미 덤불은 기묘한 우연으로 지금까지 역사 속에 그대로 살아남아 있다. 본디 들장미 덤불을 뒤덮고 자라던 우람한 소나무들과 참나무들이 쓰러지고 한참이 지난 뒤에도 황량한 옛 황야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것인지, 아니면 꽤 믿을 만한 근거가 있듯 성자 같은 앤 허친슨5)이 감옥 문 안으로 들어갈 때 그녀의 발바닥이 닿은 땅에서 솟아난 것인지, 이에 대해서는 지금 뭐라고 단정을 짓지 말기로 하자. 지금 막 저 불길한 감옥 문에서부터 우리가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순간 들장미 덤불을 그렇게 직접 발견했으니 우선 그 꽃 한 송이를 꺾어 독자들에게 선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꽃 한 송이가 어쩌면 이 이야기 도중에 만나게 될지도 모를 어떤 향기로운 도덕의 꽃을 상징하거나, 아니면 인간의 연약함과 슬픔을 다룬 이 이야기의 어두운 결말을 좀 더 밝게 해 주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지금부터 적어도 2세기 전 어느 여름날 아침, 프리즌레인에 있는 감옥 앞 풀밭에는 보스턴 주민이 꽤 많이 모여 무쇠 못을 박아 고정해 놓은 참나무 문을 하나같이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 이런 일이 다른 지방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났다든가 아니면 뉴잉글랜드6) 역사에서 좀 더 뒷날에 일어났더라면, 턱수염을 기른 이 착한 주민들 얼굴에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 감돌고 있는 것을 보고 아마 무슨 끔찍스러운 일이라도 한창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짐작했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어느 악명 높은 죄수의 형을 예상대로 집행하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 죄수에 대한 법정의 평결은 일반 백성들의 판단을 확인해 주는 것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초기 청교도들의 엄격한 성격에 비추어 볼 때, 이와 같은 추측을 그렇게 자신 있게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게으름 피우는 종이나 부모가 관원의 손에 넘긴 불효자식이 태형(笞刑) 기둥에서 처벌을 받는 장면이었을지도 모른다. 또는 도덕률 폐기론자7)나 퀘이커교도8)나 그 밖의 이단적인 신도가 채찍을 맞으면서 마을 밖으로 쫓겨나거나, 아니면 집 없이 떠돌아다니는 게으름뱅이 인디언이 백인의 화주(火酒)를 마시고 곤드레만드레가 되어 길거리에서 야단법석을 떨다가 회초리를 맞으며 어두운 숲 속으로 쫓기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어느 마녀가 치안판사의 마음씨 고약한 미망인인 히빈스 노파9)처럼 처형대의 이슬로 사라지고 있는 장면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어떤 경우이든 구경꾼들의 태도는 이 무렵의 사람들과 어울리게 하나같이 아주 엄숙했다. 그들 사이에서는 종교와 법률이 거의 동일했고 그들의 성격에는 이 두 가지가 하나로 너무 잘 융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벼운 것이든 무거운 것이든 공적인 처벌 행위는 존경의 대상인 동시에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러므로 처형대에 오른 죄수가 그런 구경꾼들에게서 바랄 수 있는 동정이란 참으로 보잘것없고 눈물겹도록 냉혹한 것이었다. 한편 요즈음 같으면 한낱 수치거리나 조롱거리에 지나지 않을 처벌도 이 무렵에는 사형 자체 못지않게 준열한 위엄을 지녔을지도 모른다.
우리 이야기가 시작하는 그 여름날 아침, 군중 틈에 끼어 있던 아낙네 몇 명이 바야흐로 벌어지려고 하는 처벌이 무슨 처벌이건 그것에 유난히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이 무렵으로 말하자면 그렇게 세련된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페티코트나 파딩게일10)을 입은 사람들이 뭇사람이 다니는 큰길에 나와 사형 집행 중인 처형대 바로 가까이 있는 구경꾼 사이로, 필요하다면 작지도 않은 몸뚱이로 파고드는 것을 무례한 짓이라고 여겨 삼가는 일은 없었다. 고국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 아낙네들과 처녀들은 그 바탕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예닐곱 세대 뒤의 여성들보다 훨씬 더 거칠었다. 대를 이어가는 동안 어머니들은 딸들에게 비록 자신들보다 무기력하고 연약한 성품을 물려주지는 않았더라도 좀 더 옅은 혈색과 섬세하고도 속절없는 아름다움 그리고 가냘픈 체격을 물려주었기 때문이다. 지금 감옥 문 앞에 서 있는 아낙네들은 사내 같은 엘리자베스 여왕11)이 이 무렵의 여성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제법 어울리던 때로부터 미처 반세기도 지나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었다. 이 아낙네들은 엘리자베스 여왕과 같은 민족이었다. 쇠고기와 맥주 같은 고국의 음식이, 그런 음식보다 조금도 더 세련되었다고 할 수 없는 정신적인 양식과 함께 그들의 기질 속에 스며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날 아침 빛나는 태양은 딱 벌어진 두 어깨와 잘 발달된 젖가슴, 그리고 아득히 먼 고향 섬나라에서 무르익은 뒤 뉴잉글랜드의 대기 속으로 옮아왔어도 아직껏 창백해지거나 야위지 않은 불그스레하고 토실토실한 두 뺨 위에 내리비추고 있었다. 더구나 대부분이 기혼인 듯한 이 아낙네들은 대담하고도 낭랑한 목소리로 지껄이고 있었다. 만약 오늘날의 사람들이 그들의 대화를 듣는다면 말뜻으로 보나 성량으로 보나 자못 놀랐을 것이다.
“이봐요, 아주머니들. 내 얘기 좀 들어 보시우.” 쉰 살 가량의 험상궂게 생긴 여인이 말문을 열었다. “나이도 지긋하고 교회 신자로 평판이 좋은 우리 여편네들이 저 헤스터 프린 같은 죄인을 다루는 게 공익에 훨씬 이롭지 않겠냐고요. 아주머니들은 어떻게 생각하시우? 만약 저 뻔뻔스러운 것이 지금 이 자리에 함께 모여 있는 우리 다섯 사람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된다면, 저 훌륭하신 치안판사 나리들이 내린 그 정도 판결로 그칠 줄 아우? 어림 반 푼도 없지요!”
“들리는 소문에는 말이지요.” 다른 아낙네가 말을 꺼냈다. “저 여자의 담당 목사인 그 믿음 두터운 딤스데일 목사님께서는요, 자기 신도들 중에서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서 무척 가슴 아파하신다고 그러더만요.”
“치안판사님들은 믿음은 두터운지 몰라도 너무 인정이 많으셔서 탈이지.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똑바로 하라고.” 중년에 들어선 세 번째 아낙네가 거들었다. “아무리 가볍게 처벌한다 해도 헤스터 프린의 이마빼기에 활활 불타는 낙인을 찍어 맛 좀 보여 줘야 해. 정말 그렇게 해야 헤스터가 따끔해할 게 아닌가. 하지만 저 여자는, 저 앙큼한 화냥년은 말이지, 자기 옷가슴에 뭔가를 달게 한다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년이지! 글쎄, 두고 보라고, 브로치나 이교도 장식물 같은 걸로 보이지 않게 감추고는 뻔뻔스럽게 전처럼 길거리에 쏘다닐 테지!”
“아아, 그래도 말이에요.” 어린애 손목을 쥐고 있던 젊은 아낙네 하나가 한결 상냥스러운 말투로 말을 가로막았다. “아무리 그 징표를 감춰 봤댔자 그 가슴속은 늘 괴로울 거예요.”
“옷가슴이든 이마빼기든 징표와 낙인이 다 무슨 쓸데없는 소린가?” 스스로 재판관이라고 생각하는 그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매정하고 못생긴 또 다른 아낙네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이 계집은 우리 모두를 망신시켰으니까 죽여 버려야 마땅하다니까. 이 세상에는 이런 경우에 적용할 법도 없는가? 암, 있고말고. 성경이나 법령집 속에 분명히 들어 있지.12) 그런데도 그 법을 우습게 생각했으니 치안판사 나리들은 자기 마누라들이나 딸자식들이 길을 잘못 든다 해도 자업자득이라니까!”
“원 참, 아주머니도.” 군중 가운데에서 사내 하나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래, 여자들은 처형대가 무서워서 정절을 지킨단 말씀인가요? 그것 듣던 중 참으로 기가 막히는 말이군요! 자, 조용히들 하십시오, 아주머니들. 이제 감옥 문 열쇠가 돌아가고 프린 부인이 나타나고 있으니.”
마침내 감옥 문이 안쪽에서 활짝 열리더니 허리에 칼을 차고 한쪽 손에 관장을 쥔 무섭고 흉측스럽게 생긴 마을 관리가 마치 햇빛 속으로 뛰어드는 검은 그림자처럼 맨 먼저 불쑥 나타났다. 이 사내의 모습은 청교도 법전이 지닌 추상 같은 준엄성을 미리 전형적으로 보여 주고 있었으며, 그가 맡은 직책은 이 법전을 최대한 엄격하게 적용해 죄인을 가차 없이 다루는 것이었다. 사내는 왼손으로는 관장을 내밀고 오른손으로는 한 젊은 여자의 어깨를 잡고 그녀를 앞으로 끌고 나왔다. 여자는 감옥 문턱에 이르자 타고난 듯한 위엄과 강인한 성격을 보여 주는 동작으로 사내의 손을 뿌리치고 마치 자발적으로 그러는 듯 바깥으로 걸어 나왔다. 여자는 두 팔에 태어난 지 세 달밖에 되지 않은 젖먹이를 안고 있었는데, 그 갓난아이는 햇빛에 눈이 부셔 사뭇 눈을 깜박거리며 조그마한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이 갓난아이는 지금껏 희뿌연 지하 감방이나 다른 어둠침침한 방에만 익숙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젊은 여자는 — 갓난아이의 어미 말이다. — 군중 앞에 온몸을 드러내고 설 때 충동적으로 아기를 가슴에 꼭 껴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은 모성애가 치솟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렇게 함으로써 수를 놓아 옷에 꿰매어 달은 그 무슨 징표를 행여 감출 수 있을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현명하게도 한쪽 치욕의 징표로 다른 쪽 치욕의 징표를 감추려고 해 봤자 별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아기를 한쪽 팔에 안고 얼굴을 붉히면서도 오만한 미소를 띤 채 조금도 부끄러워하는 기색 없이 마을 사람들과 이웃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웃옷 가슴에는 화려한 주홍빛 헝겊에 금실로 꼼꼼하게 수를 놓아 환상적으로 멋을 부린 ‘A’ 자가 보였다. 그 글자는 아주 예술적으로 만든 데다가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공상을 마음껏 발휘한 것으로, 그녀가 입고 있는 옷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장식적 효과를 내고 있었다. 또 그녀의 옷은 이 무렵의 취향에 맞게 화려했지만 식민지의 사치 금지법13)이 허용하는 한도에서 훨씬 벗어나 있었다.
이 키가 큰 젊은 여자는 몸매가 이를 데 없이 우아했다. 검고 풍성한 머리채는 너무나 윤기가 흘러 햇빛이 반사되어 눈이 다 부실 정도였다. 얼굴은 이목구비가 단정하고 살빛이 화사한 데다가 훤히 드러난 이마와 움푹한 검은 눈 때문에 한층 더 인상적이었다. 또한 이 무렵의 명문가 아녀자답게 제법 귀부인다운 데가 있었다. 이 무렵에는 요즈음 귀부인들의 표준처럼 섬세하고 연약하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우아함이 아니라, 조금 당당하고 위엄 있는 것이 귀부인들의 표준으로 통했다. 그런데 옛날 표준에 비춰 보더라도 헤스터 프린이 감옥에서 나올 때보다도 더 귀부인답게 보인 적은 일찍이 없었다. 전에 그녀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그래서 그녀의 얼굴이 불행의 먹구름에 휩싸여 어둡고 그늘져 있으려니 기대했던 사람들은 도리어 그녀의 아름다움이 빛을 내뿜고 그녀를 에워싼 불행과 치욕이 오히려 후광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하다 못해 아연실색할 정도였다. 그러나 예리한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마 이런 모습 속에도 몹시 괴로운 그 무엇이 어려 있다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일을 위해 그녀가 감옥에서 공상을 한껏 발휘하여 만들어 입은 옷은 그 분방하고 그림처럼 멋진 특징으로 그녀의 마음가짐, 즉 절망적이고 무모한 심정을 드러내 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군중의 시선을 끌고, 다시 말해 그 옷을 입고 있는 여자의 모습을 전혀 달라 보이게 한 것은, 그토록 환상적으로 수놓아 가슴에 장식한 ‘주홍 글자’였다. 바로 그 때문에 헤스터 프린을 잘 알고 있던 사내들이나 아낙네들도 지금 그녀를 생전 처음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지만 말이다. 그 글자는 정상적인 인간관계에서 그녀를 떼어 내어 그녀만의 세계 속에 가두어 두는 마력 같은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그년 바느질 솜씨 하난 끝내주는구먼.” 아낙네 구경꾼 가운데 하나가 말했다. “저 뻔뻔스러운 계집 말고 저런 식으로 그걸 내보이는 계집이 이 세상에 또 어디 있었담! 글쎄, 아주머니들, 저년이 믿음 깊은 치안판사 나리들을 보라는 듯 비웃어 대며 나리들이 처벌 삼아 달게 한 것을 도리어 저렇게 자랑거리로 삼고 있는 게 아니겠우?”
“헤스터의 미끈한 어깨에서 말이지.” 아낙네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사납게 생긴 여인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저 좋은 옷을 홀랑 벗겨 버렸으면 좋겠다니까. 저렇게 공들여 수놓은 주홍 글자로 말하자면, 저것 대신 내가 쓰는 류머티즘용 플란넬 조각이나 걸쳐 주면 썩 잘 어울릴 거란 말이지!”
“아주머니들, 조용히요. 제발 조용히 좀 하세요!” 그중 가장 나이 어린 여자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저 여자 귀에 들리지 않게 하라고요! 저 글자를 한 바늘 한 바늘 수놓을 때마다 저 여자의 가슴을 쿡쿡 찌르지 않았던 바늘이 하나도 없었을 거예요.”
이때 마침 험상궂게 생긴 마을 관리가 관장을 휘두르면서 외쳤다.
“길을 비켜라. 왕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어서 길을 비켜라.” 그가 큰 소리로 외쳤다. “길을 열어 주면 지금부터 오후 1시까지 이 프린 부인의 뻔뻔스러운 옷차림을 남녀노소 모두 잘 볼 수 있는 곳에 그녀를 반드시 세워 놓겠소. 부정한 죄를 기어이 백일하에 들춰내고야 마는 정의로운 매사추세츠 식민지에 신의 축복이 있을지어다! 자, 어서 따라오지 못해, 헤스터. 시장터에 서서 그 주홍 글자를 사람들에게 구경시키란 말이야!”
그러자 곧바로 떼 지어 모여 있는 구경꾼들 사이로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만한 길이 열렸다. 마을 관리가 앞서고, 양쪽에서 험상궂은 표정의 사내들과 매정한 얼굴의 아낙네들이 아무렇게나 줄을 지어 뒤따르는 가운데 헤스터 프린은 형벌을 받기로 되어 있는 장소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호기심 많고 신바람 난 학생들이 무리를 지어, 지금 벌어진 사건 때문에 학교를 반나절 쉬게 되었다는 것밖에는 영문도 모른 채, 걸어가는 헤스터 앞으로 내달리면서 계속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얼굴이며 두 팔에 안겨 눈을 깜박이는 갓난아이며 가슴에 단 치욕의 글씨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당시 감옥 문에서 시장터까지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죄인의 마음에는 그 거리가 꽤 먼 것처럼 생각되었을 것이다. 비록 그녀의 태도는 도도했지만 아마 자신을 구경하려고 몰려든 사람들의 발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치 심장이 한길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구경꾼의 발길에 걷어채고 짓밟히는 듯한 고통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천성에는 놀랍고도 자비로운 섭리가 있어 고통 받는 자는 자기가 지금 당하고 있는 고통이 얼마나 괴로운지 당장에는 헤아릴 수가 없고 주로 뒤에 저려 오는 아픔으로 짐작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헤스터 프린은 침착에 가까운 태도로 이 시련의 길을 걸어 시장터 서쪽 끄트머리에 있는 처형대에 이르렀다. 그것은 보스턴에서 제일 먼저 생긴 교회당14) 처마 밑 언저리에 우뚝 서 있었기 때문에 교회당의 부속 건물처럼 보였다.
사실 이 처형대로 말하자면 형벌 도구의 일부였다. 두세 세대 뒤의 우리 사이에서는 한낱 역사에 속하는 전설적인 것이 되어 버리고 말았지만, 옛날에는 선량한 시민 정신을 고양시키는 데 프랑스 공포정치가들의 단두대 못지않게 효과적인 도구였다.15) 한마디로 그것은 형틀을 올려 놓은 단(壇)이었다. 그 위에는 사람의 머리에 칼을 씌워 다른 사람들이 구경할 수 있도록 머리를 숙이지 못하게 떠받치는 형틀이 세워져 있었다. 나무와 무쇠로 된 이 장치 속에 치욕이 더할 나위 없이 구현되고 드러나 있었다. 그 죄인의 과실이 무엇이든지 간에, 죄인이 창피해서 얼굴을 숨기지 못하게 하는 것보다 더 인간성에 어긋나는 모욕, 더 잔인무도한 모독은 아마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 이 형벌의 기본 정신이었다. 그러나 다른 죄인의 경우에도 자주 그렇듯이 헤스터 프린의 경우에도, 그녀가 받은 판결은 일정한 시간 동안 처형대 위에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일 뿐, 목에다 칼을 쓰고 머리를 숙이지도 못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어떻게 해서든지 그 짓을 시키고 싶다는 것이 이 꼴사나운 장치가 지닌 가장 흉악한 특징이었다.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잘 알고 있는 그 여자는 나무 계단을 올라가서 사내의 어깨 높이쯤 되는 곳에 서서 주위에 몰려 있는 군중 앞에 자신을 모습을 훤히 드러내 보였다.
만약 이 청교도들의 무리 속에 가톨릭 신자가 있었다면 아마 옷과 풍모가 그림처럼 아름다운 이 여인이 가슴에 갓난아이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고, 예로부터 그토록 많은 유명 화가들이 앞을 다투어 그렸던 성모마리아의 모습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녀의 모습은 이 세상을 구원할 아기를 안고 있는 신성 무구한 성모마리아의 거룩한 모습 같은 것을 분명히 떠올리게 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직 대조를 통해서만 그런 모습을 떠올리게 해 주었을 뿐이다. 인간 삶에서도 가장 신성한 모성 속에 가장 깊은 죄악의 오점이 들어 있어, 세상은 이 여인의 아름다움 때문에 한층 더 어두워지고 이 여인이 낳은 갓난아이 때문에 그만큼 더 길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이웃 한 사람이 죄를 지어 수치를 당하고 있는 광경을 지켜보고 몸서리치기는커녕 미소 지을 정도로 사회가 타락하기 전에는 으레 따르게 마련인 두려움이 이 장면에 감돌고 있었다. 헤스터 프린의 처벌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아직도 순박한 바탕을 잃지 않고 있었다. 물론 그녀가 받은 판결이 사형일지라도 그들은 가혹한 판결에 단 한 마디 불평도 없이 그것을 바라볼 만큼 준엄했다. 그렇다고 지금 같은 형벌 장면을 한낱 조롱거리로밖에 여기지 않는 다른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냉혹함은 티끌만큼도 없었다. 비록 이 사건을 웃음거리로 취급해 버리려는 경향이 있었다고 해도, 총독과 그의 행정 위원 몇 사람, 판사 한 사람, 장군 한 사람, 마을 목사들 같은 위엄 있는 인사들이 모두 교회당 발코니에 서서 처형대를 굽어보고 있는 근엄한 상황에서 그런 기분은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압도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들이 지위나 관직의 위엄과 존엄을 손상시키지 않고 이런 광경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을 때는 판결의 집행이 진지하고도 효과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추측해도 좋으리라. 따라서 군중은 하나같이 진지하고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수많은 시선이 자신을 응시하고 자기 가슴 한가운데로 무자비하게 쏠리는 가운데, 이 가엾은 죄인은 여자로서 버틸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몸을 가누고 꿋꿋이 서 있었다. 그것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천성이 충동적이고 열정적인 그 여자는 온갖 모욕으로 나타나는 가시나 독을 품은 비수 같은 군중의 오만에 맞서기로 단단히 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군중의 엄숙한 분위기에는 그보다 훨씬 더 끔찍한 그 무엇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그 굳은 얼굴들이 차라리 자신을 조롱하는 웃음으로 일그러졌으면 하고 바랐다. 만약 군중이, 사내들도 아낙네들도 목소리가 날카로운 아이들도 저마다 자신의 몫을 맡아 우레 같은 웃음을 터뜨렸다면, 헤스터 프린은 경멸의 쓰디쓴 비웃음으로 그들을 맞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납덩이같이 무거운 고통을 별수 없이 꾹 참아야 하는 그녀는 목청이 터지도록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처형대에서 땅바닥으로 몸뚱이를 내동댕이치거나, 아니면 당장 미쳐 버릴 수밖에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가끔 있었다.
그러나 헤스터가 가장 눈에 띄는 대상인 이 장면 전체가 이따금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진 듯하거나, 적어도 형체가 희미한 한 덩이 유령의 이미지처럼 눈앞에 어렴풋이 어른거리는 순간도 있었다. 그녀의 정신력과 특히 그녀의 기억력은 유난히 활발하게 작용하여, 서쪽16) 황야의 한 가장자리에 자리 잡은 조그만 마을의 아무렇게나 닦아 놓은 길거리와는 다른 장면, 그리고 뾰족한 고깔모자 차양 밑에서 얼굴을 찌푸리고 그녀를 노려보고 있는 얼굴들과는 다른 얼굴들을 끊임없이 머릿속에 떠오르게 했다. 가장 보잘것없고 대수롭지 않은 기억이며, 어린 시절과 학생 시절에 일어났던 일들이며, 운동 경기며, 어린애답게 싸우던 일이며, 처녀 시절의 자질구레한 집안일들이 머릿속에 한꺼번에 떠올라 그 뒤에 일어난 아주 중요한 일이 무엇이든 그것과 한데 뒤섞여 버렸다. 그 회상 장면 하나하나가 모두 생생했으며, 마치 모든 것이 비슷한 중요성을 띠고 있거나 한 편의 연극 같기도 했다. 어쩌면 그것은 주마등같이 변화무쌍한 환상을 머릿속에 그려 냄으로써 가혹한 현실의 압력과 무자비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녀의 정신이 본능적으로 꾸며 낸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형틀이 놓여 있는 처형대는 헤스터 프린이 행복했던 소녀 시절부터 지금까지 걸어온 인생 여정을 그녀에게 남김없이 보여 주는 하나의 조망대와 같았다. 이 비참하고 높다란 자리에 서 있는 그녀에게 또다시 고국 영국의 고향 마을과 부모의 집이 새삼스럽게 보였다. 허물어져 가는 잿빛 돌집은 가난에 찌든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현관 위에 걸려 있는 반쯤 지워진 방패형 문장(紋章)이 유서 깊고 지체 높은 가문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뒤이어 대머리 진 이마에, 점잖은 흰 수염이 옛날 엘리자베스 시대풍의 주름깃 위까지 늘어져 있는 아버지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 언제나 떠오르는, 애정 많은 어머니의 걱정과 근심에 찬 얼굴도 보였다. 어머니의 표정은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이따금 헤스터의 인생행로에 자애로운 충고가 되어 발길을 멈추게 했었다. 또한 그녀 자신의 얼굴도 보였다. 묘령의 아름다움이 눈이 부시도록 빛이 나서, 그녀가 늘 들여다보곤 했던 침침한 거울 속이 온통 환해지는 듯싶었다. 그 거울 속에는 창백하고 수척한 학자다운 용모에다 나이가 지긋한 사내의 또 다른 얼굴이 보였다. 등불 밑에서 묵직한 책을 골똘히 많이 읽은 탓에 두 눈이 희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 침침한 눈은 일단 인간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려고 마음먹기만 하면 신통한 통찰력을 발휘했다. 헤스터 프린이 여성 특유의 공상으로 어쩔 수 없이 기억해 낸 그 사람은 은둔자로 서재에 틀어박혀 사는 사내로, 기형적으로 왼쪽 어깨가 오른쪽 어깨보다 조금 치켜 올라가 있었다. 기억의 화랑 속에서 그다음 그녀 앞에 나타난 것은 어느 대륙의 한 도시17)에 있는 복잡하고 좁다란 한길이며 드높은 회색 집이며 오래된 데다가 괴이한 건축 양식의 우람한 성당과 낡은 공공건물들이었다. 그런데 이 도시에서는 그녀의 기억 속에서 여전히 기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한 학자와 맺어진 새로운 생활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명색은 새살림이었지만 실제로는 무너져 가는 담장 위에 낀 푸른 이끼처럼 시간이 흘러 케케묵은 물질을 먹고 살아가는 그런 생활이었다. 그리고 장면은 잇달아 바뀌어 마지막으로 이런 것 대신에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헤스터 프린을 — 그랬다, 바로 그녀 자신을 말이다. — 추상 같은 눈초리로 쏘아보고 있는 청교도 식민지의 투박스러운 시장터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두 팔에 갓난아이를 안고 가슴에는 금실로 환상적으로 수놓은 주홍 글자를 단 채 처형대 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정녕 이것이 현실이란 말인가? 헤스터가 갑자기 갓난아이를 품 안에 꽉 껴안는 바람에 아기가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슬며시 주홍 글자를 내려다보고 심지어 갓난아이와 치욕의 징표가 과연 실제로 존재하는지 확인하려고 손가락으로 만져 보았다. 그렇다! 이것은 정말로 그녀의 현실이었다. 그 밖의 다른 것은 이제 모두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주홍 글자를 가슴에 달고 있는 여자는 군중의 끝자락에서 자신의 생각을 사로잡고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하자 자신이 뭇사람의 매정한 눈초리를 받고 있다는 뼈저린 의식에서 마침내 벗어났다. 원주민 옷을 입은 인디언 한 사람이 그곳에 서 있었다. 그러나 이 무렵에는 인디언들도 영국 식민지에 곧잘 드나들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 인디언 한 사람쯤 나타났다고 하여 헤스터 프린의 주목을 끌 수는 없었다. 더구나 이 인디언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온갖 다른 일과 생각을 말끔히 씻어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 인디언 곁에는 분명히 그의 동행인 듯한 백인 한 사람이 문명인의 옷과 야만인의 옷을 이상하게 뒤섞어 입고 서 있었다.
그 사내는 키가 작달막하고 얼굴에는 주름살이 잡혀 있었지만 아직 늙은이라고는 부를 수 없었다. 정신적인 면을 너무 계발한 탓에 육체적인 면도 어쩔 수 없이 정신을 닮게 되어 마침내 그 정신이 온몸에 뚜렷이 드러나 있는 사람처럼 얼굴에는 지적인 풍모가 두드러져 보였다. 얼핏 보기에는 이질적인 옷을 아무렇게나 입고 자신의 괴상한 모습을 감추거나 알아보지 못하게 하려고 애쓰고 있었지만, 그 사내의 한쪽 어깨가 다른 쪽 어깨보다 치켜 올라가 있는 모습이 헤스터 프린의 눈에는 분명히 보였다. 사내의 야윈 얼굴과 약간 기형적인 모습을 알아차린 순간, 그녀가 갓난아이를 가슴에 너무 세게 끌어안는 바람에 아기는 다시 괴로운 듯 울부짖었다. 그런데도 어미의 귀에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시장터에 도착한 이 낯선 사내는 헤스터 프린의 눈에 띄기 얼마 전부터 이미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로 마음속을 살피는 버릇이 있고 겉에 드러난 것들이 마음속의 어떤 것과 관계가 있지 않는 한 아무런 가치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처음에는 무심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곧이어 사내의 눈초리는 무엇을 꿰뚫기라도 하듯 날카로워졌다. 마치 뱀 한 마리가 재빨리 그 위를 지나가면서 둘둘 감은 모습을 환히 드러내고 잠깐 멈추는 것처럼, 몸부림치는 공포가 사내의 얼굴 위에 굽이치며 지나갔다. 어떤 벅찬 감정으로 그의 얼굴은 어두워졌지만 즉시 의지의 힘으로 감정을 억눌러 버렸는지 한순간을 빼놓고서는 그 표정은 평온하다고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른다. 잠시 뒤 흥분의 빛은 거의 눈에 띄지 않게 걷히고 마침내 그의 본성 속으로 깊이 가라앉고 말았다. 헤스터 프린의 시선이 자기에게로 쏠리고 그녀가 자기를 알아본 듯하다는 것을 알아차리자 사내는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손가락을 쳐들어 허공에 손짓을 보낸 뒤 입술에 갖다 댔다.
그러더니 그 사내는 바로 옆에 서 있는 마을 사람 한 명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예의 바르고 정중하게 말을 건넸다.
“여보시오, 잠깐 실례해도 될까요.” 사내가 말했다. “저 여인은 누굽니까? 그리고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저렇게 군중 앞에 끌려 나와 치욕을 당하고 있는 겁니까?”
“당신, 이 고장 사정을 잘 모르시나 보군요.” 마을 사람은 질문하는 사람과 그와 동행하고 있는 야만인을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면서 대답했다. “그렇지 않다면야 반드시 당신도 헤스터 프린 부인과 그녀의 부정한 짓에 관한 얘기를 벌써 들었을 테니까요. 저 계집이 그 신앙심 두터운 딤스데일 목사님 교회에서 굉장히 추잡한 물의를 일으켰어요.”
“그래요, 당신 말이 맞습니다.” 사내가 대답했다. “난 이 지방 사정을 전혀 모르는 이방인이지요. 본의 아니게 지금껏 여기저기 떠돌아다녔어요. 그간 바다와 육지에서 불행한 재난을 겪었고, 저 남쪽 인디언들한테 오랫동안 붙잡혀 있다가 몸값을 치르고 풀려나 이 인디언을 따라 여기까지 온 길이지요. 그러니 저 헤스터 프린에 대해, 제가 이름을 제대로 말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저 여자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도대체 왜 저렇게 처형대에 끌려가게 되었는지 좀 얘기해 주시겠습니까?”
“아무렴요, 형씨. 그간 황야에서 갖은 고초를 겪은 끝에 마침내 이곳으로 오게 되었으니 오죽이나 기쁘겠소.” 마을 사람이 말했다. “이곳 거룩한 뉴잉글랜드에서는 부정한 짓을 저지르면 반드시 만천하에 들춰져 통치자들과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처벌을 받게 마련이지요. 저 계집은 어느 학자의 아내였지요. 영국에서 태어나 암스테르담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그 남편은 얼마 전, 대서양을 건너 매사추세츠로 와서 우리와 운명을 같이할 작정을 내렸었다나 봐요. 그럴 목적으로 그 학자는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자신은 뒤에 남아 필요한 정리를 했다지요. 그런데 형씨, 보십시오, 아내가 이곳 보스턴에 자리를 잡고 산 지 두 해 남짓 되었는데도 그 학자인 프린 영감한테서는 소식이 두절된 겁니다. 그러자 보시다시피, 이 젊은 아내는 혼자 남게 되고 그만 길을 잘못 든 겁니다.”
“아하! 아하,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낯선 사내가 쓰디쓴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당신이 말하는 그 학자는 마땅히 그런 것도 책에서 배웠어야 하지 않았을까요. 한데, 이보시오, 실례지만 프린 부인이 두 팔에 안고 있는 저 갓난아이는, 태어난 지 서너 달밖에는 안 돼 보이는데 말입니다, 그 아비가 도대체 누구랍니까?”
“형씨, 그건 정말로 수수께끼랍니다. 그 수수께끼를 풀어 줄 다니엘18) 같은 명재판관이 아직껏 나타나지 않았지요.” 마을 사람이 대답했다. “헤스터 부인이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까 아무리 재판관들이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열어도 소용이 없었지요. 모르긴 몰라도 죄를 지은 그 사내는 하나님이 자신을 보고 계시다는 것도 잊은 채 지금 이 슬픈 광경을 남몰래 지켜보고 서 있을 겁니다.”
“그럼 마땅히 그 학자란 자가 직접 나타나서 그 비밀을 풀어야겠군요.” 낯선 사내가 또다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아직 살아 있다면야 물론 그래야겠지요.” 마을 사람이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형씨, 우리 매사추세츠의 재판관들은 저 계집이 젊고 예뻐 억센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타락했으려니 생각하여, 게다가 계집의 남편이 필시 바다에 빠져 죽었으려니 생각하여, 공정한 법이 정한 극형을 저 계집한테 적용할 용단을 내리지 못했지요. 법대로 형벌을 내린다면 사형에 처해야 마땅하지요. 그런데 자비로운 나리들은 프린 부인에게 고작 세 시간 동안 처형대 위에 서 있은 뒤, 살아 있는 동안 내내 가슴에 치욕의 징표를 달라고 명령했을 뿐이지요.”
“생각해 보면 현명한 판결이로군요!” 낯선 사내가 정중하게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면 저 여인은 치욕의 글자가 비석 위에 아로새겨질 때까지, 죄를 훈계하는 살아 있는 설교가 될 테니까요. 그런데 저 여인과 함께 불륜을 저지른 사내가 적어도 자기 연인과 나란히 처형대 위에 서지 않다니 참 애석하구려. 하지만 그 사내도 어차피 알려지게 되겠지요! 이제 곧 그 정체가 드러날 거라고요! 암 드러나고말고요!”
사내는 이 이야기를 전해 준 마을 사람에게 정중히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한 뒤 동행한 인디언에게 뭐라고 몇 마디 수군거리며 군중 사이를 함께 빠져나갔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동안에도 헤스터 프린은 낯선 사내를 한결같이 뚫어지게 바라보며 처형대 위에 서 있었다. 너무나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온통 정신을 빼앗기고 있던 순간에는 이 물질 세계의 온갖 만물이 말끔히 자취를 감추고 오직 그 사내와 자기만이 남아 있는 듯싶었다. 만약 단둘이서 만났더라면, 그녀의 얼굴 위로 대낮의 뜨거운 태양이 내리비쳐 치욕을 환히 드러내고 있는 지금 그와 만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끔찍스러웠을 것이다. 지금 그녀는 가슴에 치욕의 징표인 주홍 글자를 달고 두 팔에 불륜의 씨앗인 갓난아이를 안고 있는데, 사람들은 무슨 잔치 구경이라도 나온 듯 몰려나와 행복한 가정의 아늑한 난로 불빛에서나 교회에서 기혼 부인의 베일 밑에서나 볼 수 있는 그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리 소름 끼치는 일이라고 해도 그녀는 숱한 구경꾼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하나의 도피처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사내와 자기 사이에 이처럼 수많은 군중을 두고 서 있다는 것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단둘이서 만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았던 것이다. 말하자면 그녀는 군중 앞에서 자신의 몸을 드러냈다는 사실을 하나의 도피처로 삼아 피했고, 그래서 그와 같은 보호를 빼앗길지도 모를 순간을 두려워했다. 이런 생각에 정신을 빼앗기고 있는 바람에 그 여자는 등 뒤에서 부르는 소리를 미처 듣지 못했고, 그러자 마침내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온 군중에게도 들릴 만큼 더 크고 엄숙하게 몇 번이나 그녀의 이름을 불러 댔다.
“내 말을 잘 들어라, 헤스터 프린!” 그 목소리가 큰 소리로 외쳤다.
앞에서 말했듯이 헤스터 프린이 지금 서 있는 처형대 바로 위쪽에는 일종의 발코니, 즉 지붕 없는 회랑 같은 것이 교회당에 붙어 있었다. 그곳은 재판관들이 모두 모여 이 무렵 그런 공식 의식 때면 으레 따르는 온갖 격식을 갖추고 포고를 내리는 장소였다. 지금 우리가 묘사하고 있는 장면을 지켜보기 위해 벨링엄 총독19)은 의자 주위에 미늘창을 든 근위병 넷을 의장병으로 거느리고 몸소 앉아 있었다. 모자에는 검은 깃털을 달았고 외투의 가장자리에는 수를 놓았으며 그 안에 검은 벨벳 옷을 입고 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신사로 얼굴에 아로새겨진 주름살은 지난날에 겪은 온갖 고초를 말해 주고 있었다. 그는 이 공동사회의 우두머리와 대표로서 그리 부적절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이 사회의 건설과 진보 그리고 현재의 발전 상태는 젊은이들의 혈기보다는 장년의 엄격하고 단련된 정력과 노년의 엄숙한 지혜에 힘입은 바 컸다. 장년이나 노년은 너무 적은 것을 꿈꾸고 너무 적은 것에 희망을 두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우두머리 통치자 주위에 앉아 있는 다른 명사들의 풍채에도 권력 형태에는 신이 마련한 제도의 신성함이 깃들어 있다고 여기던 시대에 어울리는 위엄이 감돌았다. 그들은 의심할 나위 없이 선량하고 공정한 현인들이었다. 그러나 죄를 지은 여자의 마음을 심판하고 그물처럼 뒤얽힌 선악을 가리는 일에 있어, 온 인류 중에서 지금 헤스터 프린이 고개를 쳐들고 바라보고 있는 이 준엄한 표정의 현인들보다 더 무능한, 그러면서도 현명하고 덕망 있는 사람들을 그들의 수만큼 선택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헤스터 프린은 동정을 구할 수 있다면 그나마 한결 너그럽고 따스한 군중의 마음속에서나 기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발코니 쪽을 쳐다보면서 이 가엾은 여자는 얼굴이 파랗게 질려 몸을 바르르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헤스터를 불러 주의를 끈 것은 유명한 존 윌슨 목사20)의 목소리였다. 그는 보스턴 목사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데다가 이 무렵 성직에 있는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훌륭한 학자였으며,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는 이 친절하고 다정한 성격을 타고난 지성보다는 공을 덜 들여 계발했고, 실제로 그는 그 성격을 자랑거리로 여기기보다는 차라리 부끄러움으로 여기고 있던 터였다. 윌슨 목사는 모자 밑으로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을 삐죽이 드러낸 채 그곳에 서 있었다. 서재 안의 갓을 씌운 등불에만 익숙해진 그의 눈은 헤스터의 갓난아이 눈처럼 환한 햇빛을 받아 사뭇 깜박거렸다. 그의 모습은 마치 오래된 설교 책 앞장에 찍혀 있는 거무스름한 판화 초상화의 모습과 비슷했다. 이런 초상화 중 하나가 걸어 나와서 인간의 죄악이며 정열이며 고뇌 같은 문제를 간섭할 권한이 없듯이 이 목사에게도 그런 권리가 없는 듯했다.
“헤스터 프린.” 윌슨 목사가 말을 건넸다. “나는 자네가 영광스럽게도 설교를 듣고 있는 교회의 이 젊은 형제와 옥신각신하고 있었소.” 여기서 윌슨 목사는 곁에 있는 창백한 젊은이의 어깨 위에 한 손을 얹었다. “하나님이 굽어보시는 이 자리에서, 또한 현명하고 고결한 통치자들 앞에서, 그리고 온 주민이 귀담아 듣는 가운데서 자네가 저지른 더럽고 흉악한 죄를 이 거룩한 젊은 분더러 다스려 달라고 설득해 왔소. 이분이 나보다 자네의 성격을 더 잘 알고 있으니 자네의 완고한 고집을 꺾는 데 어떤 설법을 써야 할지, 부드럽게 타일러야 할지 아니면 무섭게 협박을 해야 할지 더 좋은 판단을 내릴 수 있을 테고, 그래서 자네를 무서운 타락의 구렁으로 꾀어낸 사내의 이름을 더 이상 감추지 못하게 할 수도 있을 테니 말이오. 그런데 이분은 이런 대낮에 수많은 군중이 지켜보는 앞에서 가슴속의 비밀을 밝히라고 강요하는 건 여성의 본성 자체를 모독하는 행동이라면서 내 말을 듣지 않는군.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사려 깊지만 젊은 탓에 지나치게 마음이 여리지. 내가 이분에게도 납득시키려 했지만, 인간이 참으로 수치스럽게 생각해야 할 일은 죄를 범하는 일이지 지은 죄를 고백하는 일이 아니오. 딤스데일 형제, 한 번만 더 부탁해도 되겠소? 이 가엾은 여인의 영혼을 당신이 직접 다루겠소, 아니면 내가 맡아야 하겠소?”
발코니에 앉아 있던 위엄 있고 경건한 사람들 사이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벨링엄 총독은 젊은 목사에 대한 예의로 부드럽기는 하지만 권위 있는 목소리로 목사를 향해 그들의 뜻을 전했다.
“딤스데일 목사.” 그가 말했다. “이 여인의 영혼에 관한 책임은 당신에게 있소. 그러므로 그녀를 타일러 회개시키고 회개한 증거와 결과로 죄를 고백시키는 일은 마땅히 당신이 해야 할 일이오.”
너무나 솔직한 이 호소를 듣자 군중의 시선이 온통 딤스데일 목사한테로 쏠렸다. 이 젊은 목사는 영국의 어느 훌륭한 대학교21) 출신으로 이 무렵의 모든 학문을 이곳 황야에 옮겨 온 사람이었다. 그의 말솜씨와 종교적 열정은 벌써 종교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의 용모는 눈에 띄게 아주 수려하고, 이마는 환하고 높게 튀어나왔으며, 큼직한 갈색 눈은 수심에 잠겨 있었고, 입은 굳게 다물고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떨고 있는 듯싶어 신경이 과민하고 굉장한 자제력이 있음을 보여 주는 사람이었다. 타고난 재주와 학자다운 교양이 풍부하면서도 이 젊은 목사의 몸가짐에는 어딘지 모르게 한 표정이, 불안스럽고 놀라고 조금 겁을 먹은 듯한 표정이 감돌고 있어, 마치 인생 항로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되었음을 스스로 느끼고 자기 혼자서만 있을 수 있는 곳에서나 비로소 마음이 놓이는 사람 같았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임무가 허락하는 한 그늘진 오솔길을 산책하면서 순박하고 어린아이처럼 천진한 마음을 유지했다. 그리고 필요할 때면 신선함과 그윽한 향기와 이슬처럼 해맑은 사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천사의 말로 그들을 감동시켰다.
윌슨 목사와 총독이 그토록 공공연하게 군중에게 소개한 목사, 더럽혀졌을망정 여전히 성스러운 여인의 영혼이 간직하고 있는 비밀을 온 군중이 듣는 앞에서 고백시키라는 명령을 받은 이 젊은 목사란 바로 이런 사람이었다. 입장이 너무나도 난처해진 그의 두 뺨에서는 핏기가 사라졌고 입술은 사뭇 떨리고 있었다.
“형제여, 저 여인에게 말 좀 해 보시오.” 윌슨 목사가 말했다. “그건 저 여인의 영혼을 위해서뿐 아니라, 총독 각하의 말씀대로 그녀의 영혼을 책임지고 있는 당신의 영혼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오. 진실을 고백하도록 타일러 보란 말이오!”
딤스데일 목사가 마치 묵도(默禱)라도 드리는 듯 머리를 숙이고 나서 마침내 앞으로 나섰다.
“헤스터 프린.” 젊은 목사는 발코니 난간 위로 몸을 굽히고 그녀의 눈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그대는 이분의 말씀을 들어서 내가 짊어진 책임을 잘 알고 있겠지요. 그대가 마음의 평화를 위해 도움이 된다고 느끼고, 또한 그로 말미암아 지상에서 받는 형벌이 구원에 한층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면, 부디 그대와 함께 죄를 저지르고 고통 받고 있는 그 사내의 이름을 밝혀 주시오! 그 사내에 대한 그릇된 동정과 온정 때문에 침묵을 지키지는 마시오. 헤스터, 정말이지 비록 그 사내가 고귀한 자리에서 내려와 치욕의 처형대 위 바로 그대 곁에 서게 될지라도 평생 동안 마음의 죄를 감추고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나을 것이오. 그러니 그대의 침묵이 그 사람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소. 기껏해야 그 사내를 유혹하여, 아니, 말하자면 강요한 것이겠지요, 이미 저지른 죄에 위선의 죄를 덧붙이게 할 따름이 아니겠소? 하나님은 그대에게 마음속의 악과 겉으로 드러난 슬픔을 딛고 승리하도록 공개적인 치욕을 당할 기회를 주셨소. 지금 그대는 그 사내에게 입에는 쓰지만 영혼에는 이로운 술잔을, 그 사람은 어쩌면 용기가 없어 스스로 그 술잔을 들지 못하는지도 모르지만, 지금 그대 입술에 들이대고 있는 그 잔을 그 사람에게 주기를 거부하고 있다는 걸 명심하시오!”
떨리면서도 달콤하고 낭랑하면서도 그윽한 젊은 목사의 목소리는 단속적으로 띄엄띄엄 흘러나왔다. 목사가 말하는 직접적인 내용보다도 그 말이 풍기는 감정이 군중의 심금을 울려 마침내 청중을 똑같은 동정의 도가니 속에 몰아넣었다. 심지어 헤스터의 품 안에 안긴 갓난아이마저 똑같은 힘에 감동을 받은 듯했다. 지금껏 멍하던 눈을 딤스데일 목사 쪽으로 돌리면서 두 팔을 쳐들고 기쁜 듯 슬픈 듯 조그마한 소리로 뭐라고 웅얼거렸기 때문이다. 목사의 호소가 너무 진지했기 때문에 헤스터 프린이 함께 죄를 지은 사내의 이름을 밝히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 사내 자신이 지위가 높건 낮건 가리지 않고 어쩔 수 없는 내적인 힘에 이끌려 스스로 처형대 위에 올라오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헤스터는 고개를 내저었다.
“여인이여, 제발 하나님이 베푸시는 자비심의 한계를 넘어서지 마시오!” 윌슨 목사가 조금 전보다 거친 목소리로 소리쳤다. “저 갓난아이도 타고난 목소리로 그대가 방금 들은 가르침에 동의하고 그것을 확인했거늘. 어서 그 사내의 이름을 밝히도록 하시오! 그렇게 하고 또한 회개를 하면 그대의 가슴에서 주홍 글자를 떼는 데 도움이 될 것이오.”
“천만의 말씀입니다!” 헤스터 프린은 윌슨 목사가 아니라 젊은 목사의 수심 어린 그윽한 눈을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그건 너무나 깊이 낙인이 찍혀 있어요. 그래서 떼어 버릴 수가 없지요. 바라건대, 저 자신의 괴로움은 물론이고 그분의 괴로움까지도 제가 짊어지고 싶어요!”
“어서 말해라, 여인이여!” 처형대 둘레의 군중 사이에서 또 다른 누군가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준엄하게 소리를 질렀다. “어서 이름을 대서 자식에게 아비를 찾아 주도록 해라!”
“절대로 말하지 않겠어요!” 헤스터는 죽은 사람처럼 얼굴이 창백해졌지만 너무나도 귀에 익은 이 목소리에 대답했다. “이 아이에게는 하늘의 아버지를 찾게 해 주겠어요. 지상의 아버지를 결코 가르쳐 주지 않겠다고요!”
“이 여자는 죽어도 말하지 않겠군요!” 발코니 난간 위에 몸을 굽히고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자신이 호소한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딤스데일 목사가 중얼거렸다. 그는 한숨을 푹 내리쉬면서 뒤로 물러났다. “참으로 놀랄 만한 힘과 관대한 마음씨를 지닌 여인이로군요! 끝까지 말하지 않을 겁니다!”
가엾은 죄인의 외고집을 도저히 꺾을 수 없음을 깨달은 원로 목사는 군중에게 이 경우를 위해 미리 준비해 두었던 죄악에 관해 설교하면서 온갖 죄악을 끊임없이 이 치욕의 글자와 관련시켰다. 나이 지긋한 목사가 한 시간 이상 주홍 글자의 의미를 힘차게 설명하며 군중의 머리 위에 화려한 표현으로 열변을 토하는 바람에 주홍 글자는 그들의 머릿속에서 색다른 공포의 빛을 띠었고, 그 주홍빛은 지옥의 불길에서 얻어 온 듯했다. 그동안 헤스터 프린은 흐릿한 눈빛을 한 채 지치고 무관심한 태도로 치욕의 처형대 위에 계속 자리를 지키고 서 있었다. 이날 아침 그녀는 인간이 참을 수 있는 한도까지 견뎌 냈다. 아무리 힘겨운 고통일지라도 졸도하여 회피하는 성미가 아니기 때문에 그녀의 정신은 돌같이 딱딱한 무감각의 껍질 속에 숨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동안에도 육체를 지탱하는 기능은 고스란히 살아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목사의 목소리가 우레와 같이 무자비하게 울려 왔지만 그녀의 귀에는 마이동풍과 다름없었다. 그녀의 시련이 막바지에 이르자 갓난아이가 공기를 찌르듯 날카롭게 울부짖었다. 헤스터는 기계적으로 갓난아이의 울음을 멈춰 보려고 했지만 아기의 괴로움을 가엾게 여기는 것 같지는 않았다. 전처럼 도도한 태도로 헤스터는 감옥으로 다시 끌려 들어가 무쇠 꺾쇠를 박은 문 안에서 마침내 군중의 시야로부터 사라지고 말았다.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말에 따르면, 헤스터가 감옥 안의 어두컴컴한 통로를 지나갈 때 주홍 글자가 밝게 불타는 듯 빛을 내뿜더라는 것이다.
감옥으로 다시 돌아온 뒤 헤스터 프린의 신경이 매우 흥분한 상태에 놓여 있는 탓에, 혹시 그녀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라도 하거나 반미치광이가 되어 가엾은 갓난아이에게 해라도 입히지 않을까 하여 간수들은 한시라도 감시를 늦출 수 없었다. 밤이 다가오도록 꾸짖기도 하고 벌을 주겠다고 위협하기도 했지만 끝내 말을 듣지 않자 간수인 브래킷 씨22)는 의사를 부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간수의 말에 따르면, 그 의사는 기독교 세계의 의학에 두루 조예가 깊을 뿐 아니라 숲 속에서 자라는 약초에 관해 야만적인 인디언들이 가르쳐 줄 수 있는 지식에도 해박한 사람이라고 했다. 사실 헤스터 자신을 위해서뿐 아니라 갓난아이를 위해서도 당장 의사의 도움이 필요했다. 어미의 가슴에서 젖을 빨아 먹으면서 갓난아이는 젖과 함께 어미의 온몸에 퍼져 있는 혼란과 고통과 절망도 빨아먹은 것 같았다. 괴로움으로 몸부림치는 이 갓난아이는 지금 이날 낮에 헤스터 프린이 견뎌 냈던 정신적 고뇌를 그 조그마한 몸뚱이에 역력히 드러내고 있었다.
간수의 뒤를 바짝 따라 어두컴컴한 감방에 모습을 드러낸 사내는 아까 군중 틈에 끼어 주홍 글자를 달고 있는 여자에게 깊은 관심을 나타냈던, 기이한 모습을 한 바로 그 사람이었다. 이 사내도 감방에 머물고 있었는데, 무슨 죄의 혐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의 몸값과 관련하여 치안판사들이 인디언 추장들과 해결을 볼 때까지 당분간 이곳에 머무는 것이 가장 편리하고 적절했기 때문이었다. 이 사내의 이름은 로저 칠링워스라고 했다. 사내를 감방으로 안내한 간수는 사내가 감방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감방 안이 비교적 조용해진 것에 놀라서 잠깐 멈칫 서 있었다. 갓난아이가 괴로움에 계속 신음 소리를 내며 칭얼거렸지만 헤스터 프린은 즉시 죽은 사람처럼 조용해졌기 때문이다.
“여보시오, 간수 양반, 환자와 단둘이 있게 해 주구려.” 의사가 말했다. “간수 양반, 틀림없이 감방 안을 곧 조용하게 해 드릴 테니. 내 약속하리다. 이제부터 프린 부인이 지금까지 당신이 보았던 그 어느 때보다도 당국의 말을 고분고분하게 잘 듣도록 해 드리겠소.”
“글쎄, 당신이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야.” 브래킷 씨가 대답했다. “둘도 없는 명의라고 인정해야겠지요! 정말이지, 저 여자는 꼭 귀신에 홀린 사람 같았다고요. 채찍을 써서 마귀를 몰아내는 일이라면 나도 자신은 있소만.”
낯선 사내는 자기 직업이라고 밝힌 의사의 모습에 어울리게 조용히 감방 안으로 들어섰다. 간수가 물러가고 여자와 단둘이 얼굴을 맞대고 있을 때도 사내의 태도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아까 이 여자가 군중 속에 섞여 있던 이 낯선 사내를 골똘히 바라보았다는 사실은 두 사람이 서로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암시했다. 사내는 먼저 갓난아이를 보살펴 주었다. 사실 바퀴 달린 침대에서 몸부림치며 울어 대는 갓난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자니 만사를 제쳐 놓고 먼저 아기의 괴로움을 덜어 줄 수밖에 없었다. 사내는 조심스럽게 갓난아이를 진찰한 뒤 옷 밑에서 꺼낸 가죽 가방을 열어젖혔다. 그 안에는 몇 가지 약들이 들어 있는 것 같았고, 사내는 거기에서 약 하나를 꺼내 물 한 컵과 섞었다.
“옛날 연금술을 배운 데다가 약초의 효능에 정통한 사람들과 어울려 1년 이상 지내 온 덕분에 난 의학박사 운운하는 작자들보다도 훨씬 훌륭한 의사가 되었소.” 사내가 말문을 열었다. “자, 부인, 이걸 받으시오! 이 갓난아이는 당신의 아이요. 내 아이는 아니란 말이오. 내 목소리를 들어도, 내 얼굴을 보아도 제 아비라고 생각하진 않을 테니까. 그러니 이 약을 당신이 손수 먹이도록 하시오.”
헤스터는 자기 눈앞에 내미는 약을 물리치면서 동시에 몹시 근심 어린 눈길로 사내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당신은 애꿎은 아기에게 앙갚음을 할 셈인가요?” 그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리석은 여자 같으니라고!” 의사는 한편으로는 냉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달래는 듯 대꾸했다. “내가 무엇 때문에 가엾게 태어난 불륜의 자식을 해친단 말이오? 이 약은 효능이 좋소. 비록 이 아이가 내 자식이라도, 그렇소, 당신과 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라도 말이오! 이보다 더 좋은 약을 줄 수 없을 것이오.”
사실 헤스터의 정신 상태는 사리를 제대로 분별할 만한 정도가 아니어서 그녀가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는 동안 사내는 두 팔에 갓난아이를 안고 손수 약을 먹였다. 약은 의사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금방 효능을 나타냈다. 어린 환자의 신음 소리는 곧 가라앉았다. 그리고 이리 뒤치고 저리 뒤치던 발작도 점점 멎어 잠시 뒤 괴로움이 사라진 갓난아이가 으레 그러듯 아늑한 잠에 깊이 빠졌다. 확실히 의사라고 부를 만한 그 사내는 곧이어 그 어미를 돌보아 주었다. 조용히 그리고 아주 면밀히 그녀의 맥을 짚고 눈을 들여다보더니 — 그 시선은 무척 낯이 익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이상스럽고 차디찼기 때문에 그녀의 가슴을 두려움으로 떨게 했다. — 마침내 진찰을 충분히 하고 나자 또 다른 약을 조제하기 시작했다.
“나는 레테23)니 네펜테24)니 하는 건 잘 모르지만 황야에서 새로운 비법을 많이 배웠소.” 사내가 말했다. “이 약이 바로 그중 하나인데, 파라셀수스25)만큼이나 오래된 내 지식을 원주민 인디언들에게 가르쳐 준 대가로 그들에게서 배운 처방이오. 어서 마셔 보시오! 죄 없는 양심보다야 마음을 진정시켜 주는 효과가 적을지는 모르지만. 내가 그런 깨끗한 양심을 당신에게 줄 도리는 없잖소. 하지만 풍랑이 거친 바다 위에 기름을 끼얹은 것처럼 이 약은 당신의 부풀어 오른 감정을 가라앉혀 줄 것이오.”
사내가 헤스터에게 잔을 내밀자 그녀는 사내의 얼굴을 진지한 표정으로 천천히 바라보며 그 잔을 받아 들었다. 딱 꼬집어 공포가 어린 표정이라고는 할 수 없을지 몰라도 사내의 속마음을 자못 궁금해하는 의혹으로 가득 찬 표정이었다. 그녀는 고이 잠자고 있는 갓난아이도 바라보았다.
“저는 죽어 버릴까 생각했어요.” 그녀가 말문을 열었다. “정말로 죽기를 바랐지요. 아니, 저 같은 것도 무엇을 바라고 기도 드릴 수 있다면 죽음을 달라고 기도 드리려고까지 했지요. 하지만 이 잔 속에 죽음이 들어 있다면, 당신이 보는 앞에서 제가 들이켜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자, 보세요! 잔이 입술에 닿았어요.”
“그렇다면 어서 마셔요.” 사내는 한결같이 냉정하면서도 침착하게 대답했다. “헤스터 프린, 나를 그렇게도 모른단 말이오? 내가 그처럼 생각이 좁단 말이오? 설령 내가 복수의 흉계를 꾸미고 있다고 해도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당신을 살려 두는 게 더 낫지 않겠소? 생명을 해치거나 위태롭게 하지 않도록 당신에게 약을 주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 그러면 불길 같은 그 치욕의 징표가 당신 가슴에서 언제까지나 빛나게 할 수 있으니까 말이오.” 이렇게 말하면서 사내가 길쭉한 집게손가락을 주홍 글자 위에 올려 놓자 그 글자는 마치 빨갛게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듯 즉시 그녀의 가슴속을 태우고 들어가는 것 같았다. 사내는 헤스터가 무심결에 움찔하는 것을 보고 빙그레 웃었다. “그러니까 살아서 사내들과 여인네들이 보는 앞에서, 일찍이 당신이 남편이라고 부르던 사내가 보는 앞에서, 그리고 저기 저 갓난아이가 보는 앞에서 당신의 운명을 짊어지고 다니란 말이오! 자, 그러니 살아가기 위해 어서 이 약을 받으시오.”
헤스터 프린은 더 이상 간청하거나 머뭇거리지 않고 곧바로 잔을 비워 버렸다. 그리고 의사가 손짓하는 대로 갓난아이가 잠들어 있는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사내도 방 안에 하나밖에 없는 의자를 끌어당겨 그녀 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렇게 사내가 준비하는 것을 보고 헤스터는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인정이나 원칙 또는 말하자면 세련된 잔인함에 이끌려 육체적 고통을 덜어 주는 일을 모두 끝냈으니 사내는 이제부터는 회복할 길 없이 깊은 상처를 입은 남편의 입장에서 자신을 상대하리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헤스터.” 사내가 말했다. “난 당신이 왜, 또 어떻게 해서 그런 구렁텅이에 떨어지게 되었는지, 아니, 내가 당신을 발견했던 그 치욕의 처형대 위로 올라서게 되었는지 묻지 않겠소. 그 이유는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으니까. 내가 어리석고 당신이 나약했기 때문이오. 나같이, 사색을 즐기는 사람이, 여러 훌륭한 도서관에서 살아가는 책벌레에 지나지 않는 사람이, 지식에 굶주린 꿈을 꾸느라고 가장 좋은 세월을 허송하다가 이미 시들어 버린 사람이, 당신처럼 젊고 아름다운 여자와 무슨 연분이 있었겠소! 태어날 때부터 불구인 내가 타고난 지적 능력을 사용하여, 내 육체적 결함을 젊은 여자의 환상을 통해 감추어 보려고 한 게 얼마나 부질없는 망상이었는지! 세상 사람들은 나더러 현명하다고 했소. 하지만 만약 현명한 사람이 자신의 일에 있어서도 현명하다면 나는 미리부터 이런 일을 짐작할 수 있었으련만. 광막하고 황량한 숲에서 빠져나와 이 기독교인들의 개척지에 들어설 때, 맨 처음 내 눈에 들어온 것이 군중 앞에 치욕의 조상(彫像)처럼 서 있는 바로 당신, 헤스터 프린이리라는 것을 미리 짐작했을 것이오. 아니, 어디 그뿐이겠소? 우리가 한 쌍의 부부가 되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저 옛 교회당 계단을 내려서는 순간부터, 우리가 걷는 길 한쪽 끝에서 주홍 글자가 화장 장작더미 불길처럼 타오르는 것을 보았을지 모르오!”
“당신도 아시다시피.” 헤스터가 말했다. 비록 풀이 죽어 있을망정 치욕의 징표를 찌르는 창처럼 날카로운 이 조용한 마지막 말만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신도 잘 아시다시피, 전 당신한테 솔직하게 대했어요. 전 당신에게 한 번도 사랑을 느낀 적이 없었고, 또한 사랑하는 척한 적도 없었어요.”
“그건 맞는 말이오!” 사내가 대꾸했다. “모두 내가 어리석었던 탓이오! 그건 내가 이미 말했잖소. 하지만 그 무렵까지 난 인생을 헛되이 살았었소. 세상은 참으로 재미가 없었소! 내 가슴은 많은 손님을 맞아들일 만큼 컸지만 외롭고 싸늘했으며, 아늑한 화롯불 하나 없었소. 하지만 난 거기에 불을 피우고 싶었소! 그리 엉뚱한 꿈은 아닌 성싶었지. 비록 늙고 성격이 침울한 데다가 불구이기는 했지만, 사방에 넓게 흩어져 있어 인간이라면 누구든 주워 모을 수 있는 그 소박한 행복을 나도 얻을 수 있으려니 했었소. 헤스터, 그래서 난 내 가슴속에서도 가장 깊은 방으로 당신을 끌어들여 당신이 있음으로 해서 생긴 포근한 온기로 당신을 따뜻하게 녹여 주려고 했던 거요!”
“전 당신에게 몹쓸 짓을 했어요.” 헤스터가 중얼거렸다.
“그건 서로가 마찬가지요.” 사내가 대답했다. “잘못을 먼저 저지른 쪽은 나요. 마치 꽃봉오리 같은 당신의 청춘을 꾀어 이미 시들어 버린 나와 위선적이고 부자연스런 관계를 맺게 했으니. 그러니 헛되이 사색하고 철학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나는 당신에게 복수를 하거나 무슨 흉측한 짓을 꾸미진 않을 것이오. 당신과 나 사이에는 저울대의 형평이 서로 팽팽하니까. 하지만 헤스터, 우리 두 사람에게 못할 짓을 한 사내는 아직 살아 있잖소! 도대체 그자가 누구요?”
“그건 묻지 마세요!” 헤스터 프린은 사내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그것만은 절대로 가르쳐 드릴 수 없어요!”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고 했소?” 사내는 자신만만하면서도 교활한 미소를 띠고 되물었다. “절대로 가르쳐 주지 않겠다는 말이지! 날 믿으시오, 헤스터. 불굴의 정신으로 가차 없이 비밀을 밝히려고 몸을 바치는 사람에게는, 눈에 보이는 바깥의 세계에서건 어느 정도까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상의 세계에서건, 숨길 수 있는 것이란 별로 없는 법이오. 당신은 비밀을 들추어내기 좋아하는 군중에게는 비밀을 감출 수 있을지 모르오. 또한 오늘 목사들과 치안판사들이 당신이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그 사내의 이름을 끄집어내어 그를 당신과 더불어 처형대 위에 나란히 세우려고 했을 때처럼, 그들의 눈길이 미치지 않게 비밀을 감출 수도 있을 거요. 하지만 난 그들과는 전혀 다른 감각을 가지고 비밀을 밝힐 것이오. 책 속에서 진리를 찾아왔듯이, 그리고 연금술로 금을 얻으려고 했듯이 그 사내를 꼭 찾아내고야 말겠소. 나한테는 그 사내를 알아내는 교감이 있소. 내가 그 사내의 옆에만 가도 그 사내가 몸을 떠는 게 느껴질 테지. 그러면 나 역시 나도 모르게 갑자기 몸을 떨게 될 거요. 조만간에 그자는 반드시 내 손아귀에 들어오고야 말 거요!”
주름 잡힌 학자의 두 눈이 이글이글 불타오르며 헤스터 프린을 노려보는 바람에 그녀는 가슴속의 비밀이 금방이라도 드러날까 봐 두려워 가슴 위로 손을 모았다.
“당신은 끝내 그 사내의 이름을 밝히지 않겠다는 거요? 그렇지만 그자는 내 손아귀에 들어오고야 말 거요.” 사내는 마치 운명의 신이 자기와 한패인 것처럼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자는 당신처럼 옷에다 치욕의 글자를 수놓아 가지고 다니진 않겠지. 하지만 나는 그자의 가슴속에 씌어 있는 글자를 알아볼 수 있을 거요. 그렇다고 그자를 걱정할 건 없소! 하나님이 친히 내리시는 형벌에 내가 참견한다거나, 나 자신한테는 손해가 되는 일이지만 그자를 인간이 마련한 법률의 손아귀에 맡기리라고 생각하지 마오. 또한 내가 그자의 생명을 해치려고 무슨 흉계를 꾸민다고 생각하지도 마오. 내가 지금 판단하는 것처럼, 만약 그가 명성깨나 높은 사람이라면, 그자의 명예를 더럽히려고 한다고도 생각하지 마오. 그자를 그냥 살려 두시지! 세상의 명예 속에 숨어 있을 수 있거든 어디 숨어 보라고 하시지! 그러나 그자는 결국 내 손아귀에 들어오고야 말 거요!”
“당신은 자비롭게 행동하시는 것 같군요.” 헤스터가 무서워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말했다. “하지만 당신의 말을 들으면 당신이 끔찍스러운 사람처럼 생각돼요!”
“단 한 가지, 내 아내였던 당신에게 일러둘 것이 있소.” 학자는 계속 말을 이었다. “당신은 지금껏 정부(情夫)의 비밀을 지켜 왔소. 그러니 마찬가지로 내 비밀도 지켜 주시오! 이 지방에서 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소. 그러니 누구한테도 당신이 일찍이 나를 남편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밝히지 말기 바라오! 난 지구의 한 귀퉁이 황량한 이곳에 나의 천막을 세우겠소. 다른 지방에서라면 난 인간사에서 떨어져 나온 한낱 방랑자에 불과하지만, 이곳에선 나와 끊으려야 끊을 수 없이 인연 깊은 한 여자와 한 사내, 그리고 한 어린아이가 살고 있으니 말이오. 사랑이건 미움이건, 또한 옳은 짓이건 그른 짓이건 아무 상관없소! 헤스터 프린, 당신과 당신의 것은 이제 모두 나에게 속해 있소. 당신이 있는 곳이 바로 내 집이요, 또한 그자가 살고 있는 곳이 내 집이오. 하지만 부디 나를 배반하지 마시오!”
“어째서 당신은 그런 걸 원하시나요?” 그의 의도는 잘 알 수 없지만 헤스터는 이 비밀스러운 관계를 생각하고 움찔하며 물었다. “무엇 때문에 당신은 사람들 앞에 신분을 밝히고 당장에 저를 내치지 않나요?”
“어쩌면 말이오.” 사내가 대답했다. “부정한 계집의 남편이 받아야 할 굴욕을 당하기 싫어서인지 모르오. 그 밖의 다른 사정이 또 있을지도 모르지만. 다만 남몰래 살다가 죽는 게 내 소원이오. 그러니 부디 세상 사람들한테는 당신의 남편이 이미 죽어서 아무 소식도 올 턱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해 주구려. 행여 나를 만나더라도 말로나 신호로나 표정으로나 부디 알은체하지 마시오! 그리고 누구보다도 당신의 정부에겐 절대로 이 비밀을 밝혀서는 안 되오! 만약 이것을 어기는 날에는, 조심하오! 그자의 명예며 지위며 목숨이 몽땅 내 손아귀에 들어오게 될 거라는 걸. 이 점을 꼭 명심하기 바라오!”
“그분과 비밀을 지키듯 당신과도 비밀을 지키겠어요.” 헤스터가 대답했다.
“그럼 맹세하시오!” 사내가 말했다.
그래서 그녀는 정말로 맹세를 했다.
“자, 그럼, 프린 부인.” 이제부터 로저 칠링워스 노인이라고 부르게 될 이 사내가 말했다. “그럼 난 이만 가 보리다. 당신에게 저 갓난아이와 주홍 글자만을 남겨 두고 가겠소! 참, 헤스터, 어떻게 하기로 되어 있소? 당신의 판결문에 잠을 잘 때에도 저 징표를 달고 있으라고 되어 있소? 당신은 가위에 눌리거나 끔찍스러운 악몽을 꿀까 봐 무섭지 않소?”
“당신은 왜 저를 보고 그런 식으로 미소를 짓는 거지요?” 헤스터가 사내의 눈웃음을 보고 괴로운 듯이 물었다. “당신은 우리 주변 숲 속에 자주 나타나는 마귀 같은 분인가요? 저에게 계약을 맺게 유혹하여 제 영혼을 파멸시키려는 건가요?”
“당신의 영혼은 아니오.” 사내는 또다시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정말이지, 당신의 영혼은 아니오!”
마침내 헤스터 프린의 감옥살이 기한이 끝났다. 감옥 문이 활짝 열리자 그녀는 햇빛 속으로 걸어 나왔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골고루 비춰 주는 햇빛이지만, 그녀의 쇠약하고 병든 마음에는 자신의 가슴 위에 달려 있는 주홍 글자를 환히 비추는 것 말고는 다른 목적이 없는 것 같았다. 앞에서 말했듯이 그녀의 뒤를 줄줄 따라온 많은 사람들 앞에서 구경거리가 되었던 때와는 달리, 처음으로 호송도 없이 혼자서 감옥 문턱을 걸어 나온 지금, 어쩌면 그녀는 한층 더 뼈저린 고통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때는 그녀에게 손가락질을 하기 위해 소집된 온 세상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치욕을 당했었다. 그러나 그때 헤스터는 이상할 정도로 긴장되어 있었던 데다가 타고난 성품의 투쟁 의지로 몸을 지탱하고 서 있었고, 바로 그런 투쟁 의지 때문에 그 장면을 일종의 끔찍한 승리로 바꿀 수 있었다. 더구나 그것은 그녀의 일생에 오직 한 번밖에 일어나지 않는 고립된 사건이었다. 그래서 조용한 삶에서라면 아마 몇 년 동안이라도 쓰고도 남을 생명력을 그 사건을 겪는 데 아낌없이 마구 쏟아 부을 수 있었다. 그녀에게 유죄를 선고한 바로 그 법률이, 준엄한 얼굴을 하고는 있지만 무쇠 같은 팔뚝으로 인간을 때려 부수기도 하고 부축해 주기도 하는 힘을 지닌 거인 같은 그 법률이, 그녀가 치욕적이고 엄청난 시련을 받는 동안 그녀를 떠받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아무런 호송도 받지 않고 혼자 감옥 문에서 걸어 나오는 이 순간부터 그녀의 일상생활은 시작되었다. 그녀는 이제 그녀 본성이 가진 보통 힘으로 삶의 무게를 지탱해 나가거나, 아니면 그 밑에 깔려 쓰러지는 것밖에는 별 도리가 없었다. 현재의 슬픔을 이기는 데 도움을 받기 위해 미래로부터 힘을 빌려 올 수도 없었다. 내일은 내일의 시련을 가져올 것이고, 그 이튿날은 그 이튿날의 시련을 가져올 것이며, 그리고 그 이튿날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렇게 날마다 저마다의 시련을 싣고 오겠지만, 그 시련은 언제나 현재의 시련처럼 견뎌 내기가 더할 나위 없이 고통스러울 것이다. 아득히 먼 미래의 나날은 자꾸만 앞으로 고통스러운 길을 더듬어 나가면서 여전히 그녀로 하여금 똑같은 짐을 짊어지고 가게 할 뿐 그 짐을 결코 내려 놓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날이 가고 해가 바뀌면서 산더미같이 쌓인 치욕 위에 그 괴로움을 더 쌓아 올리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개성을 잃어버리고, 마침내는 목사와 도덕가가 가리키는 일반적인 상징이 될 것이며, 또한 그들이 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