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협동조합
삶과 앎과 노동의 행복한 공생을 꿈꾸는 젊은 인문학 연구자들의 각성과 결의로 출발했다. 공부와 인문학 본연의 상상력과 태도,노동에 대한 존중을 통해 앎과 삶의 불일치를 협동적 활동으로 극복하고, 시민들과 인문학의 공유를 통해 서로의 삶에 보탬이 되게 하고, 인문학자와 인문학 공간들의 네트워크를 지향한다.
김민섭
1983년, 서울 홍대입구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현대 소설을 연구하다가 2015년에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쓰고 대학 바깥으로 나왔다. 대리운전이라는 새로운 노동을 시작했고 2016년 이 사회를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으로 규정하며 《대리사회》를 썼다. 지금은 이런저런 노동을 하며 망원동에서 글을 쓰며 지낸다. 2017년에 에세이집 《아무튼, 망원동》 을 썼다.
김현호
사진 비평가. 대학에서 철학을, 대학원에서 사진학을 공부했다. <사진이론학교>와 격월간 <말과활>의 기획위원을 거쳐 지금은 <보스토크 매거진>의 편집 동인으로 있다. 공부의 목적은 사진을 이해하는 것이다. 특히 사진과 정치, 예술이 기묘하게 뒤엉키는 변곡점들을 찾아 최대한 정교하게 그 의미와 양상을 글쓰기로 펼쳐 낼 수 있기를 바란다. 여러매체에 사진에 대한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2010년 아트인컬처 선정 뉴비전 미술평론상을 받았다.
고영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공부했다. 한국 고전문학을 번역해 여러 권의 책을 펴낸 한편,음식 문헌을 새로이 읽고 소개하는 데에도 힘쓰고 있다. 아울러 다양한 공간에서 음식 문화 및 문헌에 관해 강의를 이어가고 있다. 고영의 음식 관련 글은 <문예중앙>, <한국일보>, <오디너리 매거진>, <시사인>, <경향신문> 등의 지면에서 만날 수 있다.
진실로 원했던 것은
끝내주는 거짓말
《거짓말 상회》는 2010년대 한국 문화사의 특이성에 관한 보고를 담은 책입니다. 이 책의 세 축인 ‘자기 계발’, ‘사진’, ‘음식’은 2010년대 대중이 기댔던 위안과 도피, 환상의 서사를 이르는 키워드입니다. 이 책이 이것들을 통틀어 ‘거짓말’이라 이르는 까닭은 사실 관계의 정확성을 따지는 일에 그치지 않고, 우리 시대가 집단적으로 선택한 무지, 편견, 무성찰의 폐해를 반성하기 위해서입니다.
지난 시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사회는 거짓말을 통해 돌아가는 하나의 거대한 ‘상회’라 할 수 있습니다. 크고 작은 거짓말, 일상을 둘러싼 거짓말과 정치·사회적 차원의 거짓말, 또 비교적 쉽게 드러나는 거짓말과 이미 진실의 얼굴을 하고 깊숙이 숨어 버린 거짓말이 우리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거짓말은 인기 소비재입니다. 대중이 원하는 이야기와 이미지는 잘 팔려 나갑니다. 소비를 통해 체험하는 즉물적 만족감이 진실을 쉽게 압도하는 세태는 새삼스러울 게 없습니다. 이는 소비자라면 누구나 일평생 반복하는 현대적 일상의 관성이기 때문입니다. 소비자의 요구를 기민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거짓말은 시장에서 밀려나고 새로운 거짓말이 주목받게 됩니다. 이 책은 이 시대 ‘자기 계발’, ‘사진’, ‘음식’의 유행이 그 주기의 어디쯤 있는지 가늠해 보려는 기획이기도 합니다.
먼저, 반세기 이상 소설과 비소설로 양분되었던 출판계의 지형이 자기 계발서와 비(非)자기 계발서로 재편된 것은 IMF 외환 위기를 기점으로 한국사회 전반에 신자유주의가 확산하던 흐름과 일치합니다. 2000년대를 거쳐 2010년에 이르러 자기 계발론의 대중적 영향력은 최전성기에 이르렀지만, 최상위 1% 특권층 사회에 포획된 착취 논리가 자기 계발의 실체라는 자각도 급격히 확산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2010년대 이후 청년 담론의 핵심적인 스탠스(stance)이기도 합니다.
또한 사진의 역사에서 2010년대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폭발적인 확산과 함께 평가될 것입니다. 한국의 스마트폰 보급률과 이용 시간은 전 세계 최상위권입니다. 5천만 인구의 85% 이상이 스마트폰을 항시 휴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있는 곳엔 어디에나 디지털카메라가 있는 시대입니다. 각종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의 타임라인에는 막대한 사진 데이터가 쏟아져 들어옵니다. 그것들이 인터넷 네트워크에서 이리저리 옮겨 다니고 공유되는 규모와 속도 역시 상상을 초월합니다.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지구적 네트워크는 유사 이래 인류가 구축한 가장 거대한 사진 아카이브이기도 합니다. 이 연결망의 말단 뿌리에 각종 디지털 기기에 내장된 카메라 렌즈가 이어져 있고, 우리 삶의 희로애락이 이 장치들의 온·오프에 맞춰 영향을 받습니다.
하지만 사진 읽기의 서사는 앙상하기 그지없습니다. 사진은 서사가 아니라 해시태그(#)의 단어로 지시될 뿐이고, 뭔가 있어 보이지만 속이 텅 빈 이미지들이 아톰 비트를 타고 흩어졌다가 픽셀 단위로 헤쳐 모이길 반복하고 있습니다. 사진 안에 담긴 의미쯤은 쉽게 꿰뚫어 볼 수 있다고 자만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기 훨씬 전, 사진의 역사 초기부터 프레임 바깥의 세계를 망각, 회피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거짓말의 형식이 사진이었습니다.
음식 문화에서도 2010년대는 문제적인 전환점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가 명예 고문을 맡았던 한식재단의 출범이 2010년에 있었습니다. 한식 세계화 사업에 무려 1300억 원이 투입되었지만, 성과는 유명무실합니다. 동시에 2010년대는 ‘먹방’과 스타 요리사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요식업계 사업가인 백종원이 방송계의 블루칩으로 승승장구하기 시작한 2015년을 기점으로 방송 채널마다 음식을 메인 콘텐츠로 내세운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자기 계발이 소시민을 위한 성공 매뉴얼이라면, 음식은 남녀노소 누구나 대놓고 즐기는 합법적 포르노로 소비되었습니다. 조건반사적 웃음과 감탄사가 남발하지만, 음식을 둘러싼 사회·정치·경제·문화의 맥락을 진중히 사유하고 토론하는 문화는 기피되었습니다. 음식에 대한 정보 역시 이전 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범람하지만, 호객을 위한 마케팅 언어가 대부분입니다.
《거짓말 상회》는 〈한국일보〉 지면에 발표된 연재물을 발전시킨 책입니다. 연재가 진행되던 2016년 하반기는 박근혜 정부가 급격하게 무너지던 시기였습니다. ‘촛불 혁명’의 파고(波高)는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를 타도하는 것에서 머물지 않았습니다. 저성장 시대에 접어든 이 나라의 일상은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박근혜 정권을 불러들일 수밖에 없었던 2010년대의 속물성과 결별하지 못한다면, 촛불 혁명 이후의 한국이란 대통령 이름만 바뀐 나라에 불과할 것입니다.
오랜 세월 우리는 ‘끝내주는 거짓말’을 갈망해 왔습니다.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 노력한 만큼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 사회 곳곳의 적폐를 몰아내면 사회 정의가 바로 설 수 있으리란 신념은 근사해 보이지만, 구호에 머물지 않는 새로운 오늘의 출발점이란 구체적이고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기 마련입니다. 이를테면 이런 질문에 답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책을 배격할 것인가? 반대로 어떤 책을 가까이할 것인가? 끼니마다 지금까지와 다른 정치와 경제를 부여할 방법은 무엇인가? 사진이 보여 줄 수 있는 것보다 감추고 있는 것이 훨씬 많다는 사실에 눈을 뜨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어디에 있는 줄도 모르는 전지전능한 진실의 세계를 찾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거짓말의 관계를 읽을 수 있는 문해력의 문제일 뿐입니다. 진실과 거짓의 이분법적인 대비가 아니라, 거짓말로부터 비롯되는 현실 구성의 힘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거짓말은 선용(善用)될 수 있습니다. 2010년대를 넘어 새로운 시대로 향하는 ‘끝내주는 거짓말’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이 책이 그 일의 안내자가 되고자 합니다. 문화 비평가이자 에세이스트인 김민섭, 사진 비평가 김현호, 음식 문헌 연구자 고영이 우리 시대의 거짓말을 읽어드립니다.
삶과 앎, 일의 행복한 공생을 꿈꾸는
조합원 동지들과 저자들을 대신해
임태훈 씀
우리는 시대의 수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것을 좌우명으로 삼아 자신을 계발하기를 끊임없이 요구받는다. 그 과정에서 무엇이 거짓인지 읽어 내기는 어렵고 거부하기는 더욱 어렵다. 결국 한 개인은 그 시대의 욕망을 충실히 반영하는 거울이다. 이 글은 나[우리]의 모습이 이미 괴물이 되어 있지 않은지 살피기 위해 썼다. 나는 먼 곳의 작은 악에는 분노하면서도 나와 내 주변의 큰 악에는 쉽게 눈을 감아 왔다. 그런 거짓된 인간으로 살아가며 정의를 부르짖는 것은 민망한 일이다.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한 거짓들을 살피면서 여타 세대와의 관계성을 고려하면서 썼다. 이 글이 작은 위로를, 공감을, 무엇보다도 자신을 향한 물음표를 건넬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사회에서 ‘자수성가’는 미덕으로 받아들여진다. 젊은 시절에 갖은 고생을 겪고 수차례의 실패를 반복하다가 결국엔 성공해 내고야 마는, 전형적인 성공 서사다. 많은 기성세대들은 그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의 폐허에서 개인과 국가의 번영을 이루어 냈음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어쩌면 생존과 노동, 그 자체가 그들에게는 하나의 ‘성가(成家)’였는지도 모르겠다.
부산의 피난민촌에서 태어났다는 나의 아버지 역시 그렇다. 빵의 포장지를 껌처럼 씹었다거나, 웨하스 같은 고급 과자를 먹는 게 소원이었다는, 그러한 이야기를 나는 참 많이 들으며 자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직장을 얻고, 결혼을 하고, 나를 낳았다. 적어도 무엇도 포기하지 않은 세대인 셈이다. 나의 부모 세대가 ‘삼포’와 ‘N포’로 대변되는 지금의 청년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더욱 자연스럽다.
서른이 넘고도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는, 어쩌면 부모에게 용돈 한 번 안겨 주지 못하는 아들이 안쓰럽고 원망스러웠는지 나의 어머니는 언젠가 말했다.
“아버지는 혼자서 다 했는데 너는 왜…….”
나는 굳이 ‘그때는 그랬고 지금은 달라요’ 하는 말을 보태고 싶지 않아 그만두었다. 그러나 이제는 어머니 역시 내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무언가 잘못되었나 보다’ 하는 것을 조금씩 감지하고 있는 듯하다. 자기 세대의 안정이나 성공에 안주하기에는, 이제는 자식(청년) 세대의 몰락이 피부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많은 5060세대 부모들이 자신의 자식들이 왜 연애하지 않는지, 왜 결혼하지 않는지, 왜 결혼하고도 아이를 낳지 않는지, 왜 그렇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마는지 못마땅하게 여긴다. 하지만 자식들이 결혼과 육아라는 제도 안에 편입되는 순간부터는 자신들도 자연스럽게 어느 전쟁에 동원되고 만다.
한 가문이 동원되는 시대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때,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는 선배들은 대개 30대 중반의 나이였다. 서른 언저리에 일찌감치 결혼한 몇몇은 한 가정의 가장이었고 아이도 있었다. 부양할 가족이 없는 이들은 밤늦게까지 연구실에서 논문을 쓰고 강의 준비도 했지만 그들의 사정은 좀 달랐다. 아이를 돌보는 것이 그 무엇보다 우선이었다. 여성 연구자에게 육아란 몇 년 동안 학문과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남성 연구자도 논문을 삶에서 두 번째 순위로 밀어냈다.
그러나 아이도 논문도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해서도 안 되는 것이어서, 결국 최후의 수단을 쓰기에 이른다. ‘부모’를 호출하는 것이다. 양가의 여성 노인 중 조금 더 젊거나 노동에 적합할 만큼 건강한 이가 ‘대리 부모’의 역할을 떠맡게 된다. 돌이 막 지난 아이를 둔 선배 역시 장모님을 집으로 모시게 된 후에야 다시 밤늦게까지 연구실에서 논문을 쓰게 되었다.
그런데 대학원 선후배들뿐 아니라 주변의 친구들 모두가 그랬다. 결혼을 하고 돌봐야 할 아이가 있는 경우에는 대개가 늙은 부모의 도움을 받았다. 집으로 모셔 오거나, 출근부터 퇴근 시간까지 거의 상주를 부탁하거나, 아니면 아예 부모의 집으로 다시 들어가기도 했다. 어느 부모는 “너희 애를 왜 감당 못 하고 나에게 부탁하니?” 하고 자식의 무능을 탓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그 전쟁에 동참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미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한 가문에게 생존의 문제가 되어 버린 까닭이다.
서울대학교의 학위 수여식에서 한 여성 졸업생이
유모차에 탄 딸과 나란히 앉아 있다.
우리 사회는 한 가문의 총력전을 요구한다. 한 개인의 노동력을 한계치까지 끌어 올릴 것을 독려하면서 그를 위해 그의 아내[남편]가, 부모가, 그리고 자식이 희생해야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젊은 부부는 맞벌이로 일하며 밤이 늦어 퇴근하고 그들의 늙은 부모는 육아 전선에 내몰린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 아이를 업고 어린이집으로 가고, 다시 아이를 하원시키고는 놀이터로, 키즈 카페로, 그 어디로 간다. 그들 사이로 폐지를 주워 고물상에 내다 파는 조금 더 늙은 노인들이 지나간다. 어느 젊은 연구자는 박사 학위를 받고는 “아이의 추억과 맞바꾼 논문이에요”라고 했다. 부모와의 추억을 강탈당해야 하는 아이가, 어쩌면 가장 큰 희생자일 것이다. 아이에게는 보육 교사와 함께 ‘뽀로로’와 ‘카봇’과 ‘타요’가 대리 부모가 된다.
이처럼 한 가문의 모든 세대가 동원되어야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 뫼비우스의 띠 같은 구조에서 누구 한 사람이 “나는 여기에 동참하지 않겠다”라며 이탈해 버리면, 혹은 노동을 제공할 수 없는 신체가 되어 버리면, 나머지가 그 과부하를 짊어져야 한다. 결국 “우리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하는 향수는 이제 설 자리를 잃는다.
숭고하고 당연하게 강요되는 희생들
‘열정 페이’라는 것은 이제 어느 한 노동자의 희생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를 둘러싼 여러 가족 구성원들의 열정을 함께 요구한다. 특히 ‘육아’가 시작되는 시점부터는 더욱 그렇다. 어린이집의 보육 시간은 아이의 부모가 노동하는 시간과 현실적으로 연동하지 않는다. 저녁 6시에 아이를 데리러 갈 수 있는 ‘일하는 부모’는 거의 없는데, 어린이집은 대개 그때 문을 닫는다. 육아의 공백 시간이 생기는 것이다.
노동의 시간을 줄이는 것은 근본적인 대책이 된다. 2018년 7월부터는 근로기준법의 개정으로 300인 이상 사업장 기준 68시간이던 주당 근로시간이 52시간으로 줄어든다. ‘워라밸’, 일과 삶의 밸런스를 맞추어야 한다는 신조어가 인기를 끈다. 여기에서 부분적으로나마 가장 혜택을 보는 것은 모든 삶이 육아에 맞추어진 부부들일 것이다.
그래도 육아의 공백 시간은 발생한다. 정부는 지금까지 얼마간의 돈을 보태 주는 것이 전부였다. 오후 4~6시까지 아이들을 돌봐 주는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으면 15만 원, 보내면 미지급, 하는 식이다. 이것은 직장에 다니는 부모들에게는 ‘용돈’ 이상의 의미가 별로 없다. 결국 부부 중 한 사람이 노동을 포기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늙은 부모에게 손을 내밀게 된다. 사회적으로 책임져야 할 비용이 온전히 대한민국의 각 가정에 분담되고 있다.
모든 가족 구성원이 ‘희생’을 요구받는 가운데 특히 여성‘들’이 더욱 그렇다. 어느 한편이 노동을 그만두어야 한다면 거의 여성 노동자가 그 몫을 떠맡게 된다. 그리고 ‘독박 육아자’가 된다. 집안일과 더불어 모든 보육 활동이 공식적으로 그의 차지가 된다. 어머니의 희생은 너무나 당연하고 숭고한 것처럼 여겨지기에 그는 거기에 어떠한 의문을 제기할 수도 없다. 불편을 이야기하는 순간 무책임한 여성[어머니], 자격이 없는 여성[어머니]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굴레는 세대를 막론하고 가서 닿는다. 가문의 육아에 동원되는 편은 대개의 경우 여성 노인이다. 더 정확히는 ‘친정 엄마’가 된다. 남성 노인은 보육 노동자로서 고려 대상이 되지 않는다. 다만 홀로 남겨진 남성 노인에게 모두가 “밥은 누가 차려 주지?” 하는 걱정을 보낸다. 가족이나 주변인들뿐만 아니라 그 역시 자신의 생존을, 의식주를 걱정한다. 그동안 직접 밥을 차려 보거나 옷을 빨아 보거나 공과금을 내 본 일이 없는 이들이다. 배우자인 여성 노인의 육아 참여를 그들이 결정하는 일도 많다. 아내를 ‘내어 줌’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은 물론 자신의 생존을 위협받지 않기 위해서다.
부모 세대가 포기하게 될 것은 ‘노후’
누구나 편안한 노후를 꿈꾼다. 그러나 자식 세대가 자신이 밟아 온 삶의 여러 단계를 포기하거나 힘겨워하는 것을 단순히 노력과 열정의 부족으로 여기던 부모 세대는, 이제 그 굴레가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것을 본다. 이전에는 자식 세대가 은퇴한 부모를 부양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반면 지금은 부모가 은퇴 이후에도 자식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모두가 꿈꾸는 편안한 노후는 은퇴 자금에 더해 자식들의 지원, 혹은 자식들을 부양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안도감에서 온다. 그러나 그 희망은 이제 사치가 되었고, 도리어 부모가 자신의 노동력이나 자금을 지원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렸다.
그래서 이제는 그 누구도 마음 편히 “우리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렇게 말한다 하더라도 ‘세대’가 아닌 ‘시대’를 주어로 두는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자기 세대에 대한 자부심이야 함부로 떼어 낼 수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노오력’해도 도무지 살아남기 힘든 시대라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기 시작하는 것이다.
자식 세대와 부모 세대의 화해는 이처럼 가문의 생존을 위해 일어나고 있다. 어쩌면 그간 반목해 온 대가를 비싸게 지불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두에게 가혹하고 안타까운 시대다.
개인은 한 시대를 포위한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다. 스스로를 주체적 개인으로 믿으면서도 사회적, 국가적, 시대적 요구를 충실히 이행해 나간다. 사실 알게 모르게 은밀히 그에 동참하는 것이다.
우리는 초등교육 시절부터 음악과 구령에 맞추어 집단으로 (국민)체조를 했다. 어느 특정 학교뿐 아니라 전국의 모든 학교가 중요한 의식처럼 그것을 제도화했다. 그렇게 우리는 국가가 원한다면 언제든 동원될 수 있는 신체를 자연스럽게 계발해 왔다. 일제강점기 때도 조선의 학생들은 전쟁에 적합한 신체를 가진 국민이 되기 위해 운동장에서 집단 체조를 했다. 이것은 근대의 국민국가가 국민들에게 강요한 하나의 욕망이다. 우리는 이러한 욕망의 언어들에 둘러싸여 지금도 이 시대를 살아간다. 거기에 순응하며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검열하고 통제한다.
근대 이후의 사회는 ‘감시’, ‘통제’, ‘감금’, 이러한 단어들로 수식되곤 한다. 국가는 제도와 규율을 통해 국민 개인을 감시하고 통제한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인지하고 있듯 기술 공학의 발전과 함께 세련된 방식으로 진화해 나간다. 감옥이나 보호관찰소와 같은 수용 시설은 우리의 눈 바깥으로 밀려나고, 무선정보 인식이나 소셜 미디어의 발전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빅 브라더(Big Brother)가 모든 것을 관장한다고 믿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개인은 그에 투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의 ‘대리 인간’이 된 것처럼 행동한다. 서로를 감시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스스로를 감시하기 시작했고 통제를 위한 언어가 보살핌의 언어로도 받아들여지는 시대다.
그렇게 이 사회는 거대한 수용소가 된다. 합격과 불합격, 패스와 논패스, 반드시 도달해야 할 단계별 목표가 모두에게 주어져 있고 미달한 개인들은 자연스럽게 격리된다. 반드시 수용소에 감금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아도, 기준 미달이라는 낙인을 주변의 평범한 개인들이 이미 서로에게 부여한다. 가족, 친구, 신뢰하는 이들에게 이미 그러한 자격이 있다. 어느 한 개인이 ‘노오력’하고 있는가, ‘열정’을 짜내고 있는가, 하는 감시의 눈길과 손길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온다.
개인은 서로를 감시하는 데서 나아가 스스로를 감시하고 검열하기 시작했다.
거리의 광고가(‘공부하면 치킨 먹고, 공부 안 하면 치킨 배달한다’라든가), 생활 정보지의 구인 공고가(‘용모 단정해야 하고 여성은 화장과 하이힐이 필수’라든가), 회사 정문에 레이저로 새겨진 사훈이(‘우리는 가족이고 회사를 내 몸처럼 아끼고 사랑한다’라든가), 그러한 욕망의 언어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개인은 거기에 순응하며 자기 자신과 주변을 끊임없이 검열해 나간다. 주변을 맴돌던 그 언어는 곧 ‘자기 계발’이라는 명목으로 권장·강요된다.
자기 계발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개인에게 요구되어 왔다. 특히 근대의 시작은 개인에게 새로운 자기 계발의 역사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았다. 이 시기에는 앤드류 카네기, 토머스 에디슨, 헬렌 켈러 등 우리가 아는 많은 위인들이 번역되었다. 그들이 보인 근면, 성실, 절제는 특히 청년 세대가 반드시 지녀야 할 덕목으로 권장되었다.
그런가 하면 잡지를 구독하면 13덕 표1나 일기 표 같은 것이 부록으로 따라오기도 했다. 1월 호 잡지에 다이어리나 플래너 같은 것이 붙어 나오듯, 그때도 그랬다. 개인에게 시간을 주관할 자격을 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근대에 이르러 개인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검열하고 관리하는 새로운 주체가 되어야만 했다. 자신을 규율화하는 것, 그것이 곧 자기 계발이며 또한 근대인이 되는 길이었다.
개인에게 계발의 자유는 허락되지 않았다
자기 계발은 언제부터인가 권장을 넘어 생존의 문제로 모든 개인에게 닿기 시작했다. 이른바 계발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자극적인 자기 계발의 구호가 난무한다. ‘아침형 인간이 되어라’, ‘아프니까 청춘이다’, ‘부자 아빠가 되어야 한다’, ‘미움받을 용기를 가져라’, 이러한 수사들이 누구에게나 익숙하다. 무한한 자기 계발의 방법론이 존재하고 개인은 그 주체로서 자율성을 획득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계발의 자유는 허락되지 않았다. 얼마나 더 자신을 엄격하게 규율화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최대의 효율을 이끌어 내는가 하는 서사 범위를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한 물결에 휩쓸려 개인은 마치 토너먼트와도 같은 경쟁의 장에 내몰린다. 거기에서 승리하거나 살아남기 위해 타인보다 더 ‘노오력’하기를 강요받고, 또한 경쟁의 주체가 되기를 선택한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비주체적 개인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자기 계발의 전선은 살아남기 위한 개인들의 몸부림으로 언제나 치열하다. 누군가에게는 생존만으로도 버거운 사투의 현장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괴물’이 되어야 한다. 타인의 고통에 무감해지거나 위와 아래로 자격의 선을 긋는 버릇이 생긴다. 위로는 갑(甲)이 있고 아래로는 병(丙)이 있는 갑을 사회에 익숙하다. 그런 것은 계발이나 진보가 아니며 오히려 퇴보하는 길이다. 자신에게 땅콩을 까서 대접하지 않았다고 이륙 준비 중인 비행기를 돌려 승무원을 내리게 했던 모 항공사 부사장의 ‘땅콩 회항’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다양한 형태의 ‘갑질’이 우리를 포위하고 있다.
2010년에 들어 “아프니까 청춘”을 위시한 ‘힐링 파티’가 벌어졌던 것은, 그러한 경쟁과 갑질의 주체이자 희생양이 된 개인들에게 위로가 필요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멘토를 자청한 이들은 특히 청년 세대를 대상으로 삼았다. 어디를 가든 멘토를 자처하는 이들이 넘쳐 났다. 특히 청춘 콘서트, 청춘 열차, 청춘 캠프 등 청춘이라는 단어가 이처럼 관심을 받은 때가 있었나 싶을 만큼 성황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같이 ‘원래 힘들고 아픈 거야’, ‘나처럼 노력하면 아프지 않을 수 있으니 힘내’ 하는 식이었다. 청년은 그러한 방식으로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되었고, ‘스스로를 계발해야만 하는 존재’가 되었다. 자신의 힘으로는 일어날 수 없으니 사회적 보살핌과 자기 계발이 함께 필요하다면서, 우리 사회는 청년이라는 한 세대의 권력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놀랍게도, 청춘들은 고작 그것에 위로받았다. 그동안 누구도 눈물을 닦아 준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프냐고 물어보는 이도, 아픈 것을 알아주는 이도 없었다. ‘아프니까 청춘’은 어느 한 세대가 완벽히 승리했음을, 그리고 어느 한 세대는 패배했음을 선언하고 고백하는 그러한 시대적 수사였다.
분노와 혐오의 시대가 열리다
그런데 ‘멘토’들은 우리 사회가 가진 구조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모두 입을 다물었다. 혹은 그러한 구조에 순응하기를 강요했다. 예컨대 멘토의 표상으로 떠올랐던 김난도는 중소기업의 현실이 열악한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오로지 ‘개인의 선택’ 문제로 단순화했다. ‘백수로 지내면서 간만 보는 것과 열악한 회사라도 들어가는 것 중 무엇이 덜 나쁜가?’ 하는 식이었다. 동시에 청춘을 특별한 존재로 규정해 나갔다. ‘꿈’, ‘열정’, ‘도전’, 이러한 단어들이 마치 청춘의 전유물처럼 제시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예찬은 듣는 대상을 잠시 취하게 할 뿐 그 어떤 해결 방법이 되지 못한다. 마치 환각제를 먹여 다시 전쟁터로 내모는 일과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한동안 유행한 힐링 파티에서 지급된 것은 치료를 위한 약이 아니라 화려하게 포장된 환각제였다.
구조적인 문제를 외면한 자기 계발의 거짓말은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개인들을 자신을 둘러싼 구조와 마주할 수 없게 한 것이다. 이 사회의 시스템이나 구조는 잘못되지 않았고 모든 문제는 승리하거나 살아남지 못하는 나약한 개인에게 있다는 자기 계발의 논리, 이것은 패배한 다수의 개인에게 끊임없이 증식되는 자기혐오감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특히 문제적이다.
이후, 힐링을 대신해 ‘분노’와 ‘혐오’가 사회 전반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속한 공간(한국)을 지옥에 비유하는 ‘헬조선’이나, 벌레를 뜻하는 접미사를 더한 ‘-충’이라는 신조어는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혐오의 시대’ 역시 느닷없이 개막되지 않았다. 꾸준히 임계를 향해 치닫던 감정들이 결국 최근에 이르러 그 실체를 드러냈을 뿐이다.
힐링이라는 단어의 소멸 이후, 개인들은 분노와 혐오의 감정을 놀라울 만큼 순차적으로 드러냈다. 더 섬세하게 살펴보자면 ‘N포 세대’로 대변되는 허무와 고독이 있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