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Ryane Clayton
진 필립스 Gin Phillips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태어났다. 버밍햄서던 칼리지에서 정치언론학을 전공하고 십 년 넘게 잡지기자로 활동했다. 첫 장편소설 『우물과 탄광The Well and The Mine』으로 2009년 반스 앤드 노블 디스커버상을 수상하고 전 세계 29개국에 판권을 수출했다. 이후 꾸준한 작품활동을 통해 평단과 대중 모두의 호평을 받는 작가로 이름을 알리며 청소년소설로도 영역을 넓혔다. 다섯번째 장편소설 『밤의 동물원』이 2016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화제작으로 주목받았고 28개국에 판권을 수출하면서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앨라배마주 버밍햄에서 가족과 함께 살며 작품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FIERCE KINGDOM
by GIN PHILLIPS
Copyright ⓒ Gin Phillips, 2017
All rights reserved.
Korean translation copyright ⓒ MUNHAKDONGNE Publishing Corp., 2018
Korean translation rights arranged with InkWell Management, LLC through EYA(Eric Yang Agency), Seoul.
이 책의 한국어판 저작권은 EYA(Eric Yang Agency)를 통해 InkWell Management, LLC와 독점계약한 ㈜문학동네에 있습니다.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 전재 및 무단 복제를 금합니다.
1. 주석은 모두 옮긴이주다.
2. 본문 중 고딕체와 볼드체는 원서에서 강조한 부분이다.
마음속에 온 세상을 품고 있는
일라이에게
나는 다만 알고 싶을 뿐이다.
울음소리가 나는 곳에 소년이 있는지. 아니면,
자기를 부르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생각이 들 때
여자는 어머니로 거듭나는 것일까.
_엘리자베스 휴이, 「에밀리에게 보내는 질문」
조앤은 맨발로 무릎을 구부린 채 앞꿈치를 오므리고 서서, 흙바닥에 치마가 스칠 듯 말 듯, 꽤 오랫동안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허벅지에 힘이 풀린다. 그녀는 한 손을 바닥에 짚고 모래밭에 늘어진다.
무언가 엉덩이뼈를 세게 찌른다. 다리 아래로 손을 뻗어 작은 플라스틱 창을 끄집어낸다. 기껏해야 손가락 길이. 놀랍지는 않다. 그녀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초소형 무기들을 발견한다.
“창 잃어버렸어?” 그녀가 묻는다. “아니, 왕의 지휘봉인가?”
링컨은 대답하지 않지만 그녀의 펼친 손에서 플라스틱 조각을 가져가기는 한다. 그녀의 무릎에 앉을 수 있게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게 분명하다. 아이는 몸을 젖혀 그녀의 허벅지에 편안하게 자리잡는다. 몸에는 모래 한 톨 묻지 않았다. 어쩐지 까다로운 구석이 있는 녀석이다. 핑거페인팅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코 갖고 싶어, 엄마?”
“엄만 코 있는데.”
“하나 더 갖고 싶어?”
“당연하지!”
어두운색 곱슬머리는 또 자를 때가 됐다. 아이는 이마에서 머리카락을 쓸어낸다. 나뭇잎이 두 사람 주변을 떠다닌다. 거칠고 둥근 목재로 받쳐놓은 나무지붕 덕분에 그들은 온전히 그늘 안에 들어가 있지만, 지붕 너머로는 나무 사이로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는 햇빛과 그림자가 회색 자갈들에 아롱진다.
“이런 여벌 코들은 어디서 나는 거야?”
“코 가게에서.”
그녀는 웃는다. 손을 짚고 몸을 뒤로 젖혀 달라붙는 흙의 촉감에 자신을 내맡긴다. 축축한 모래알을 손톱 밑에서 두어 번 튕겨낸다. 햇살이 전혀 닿지 않는 공룡 마당은 언제나 축축하고 차갑다. 치마에는 모래가 묻고 스웨터에는 낙엽이 달라붙지만 그래도 이곳이 아마 그녀가 동물원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역일 것이다. 주요 관람로에서 벗어나 회전목마와 동물 체험마당, 그리고 수탉 닭장을 거쳐 삼림지대라는 이름이 붙은, 잡초투성이에 나무가 빽빽한 구역을 지난다. 이 뒤쪽의 좁다란 자갈길을 따라서는 대체로 나무와 바위, 외톨이 동물 몇 마리뿐이다. 우리에는 대머리독수리가 한 마리 산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은 녹슬어빠진 픽업트럭과 함께 있다. 허공에 매달린 씹는 장난감을 노려보는 올빼미도 한 마리 있다. 언제나 앉은 채로 움직이지 않는 야생 칠면조들도. 그녀는 그 칠면조들에게 정말 다리가 있는 건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잔인한 사냥꾼의 장난질을 상상한다. 칠면조 발 여러 개가 달랑거리고 땀으로 얼룩진 목걸이를.
조앤은 이 숲의 무계획적인 기이함을 좋아한다. 이 기이함은 진짜 볼거리로 변해보고자 늘 어정쩡한 시도를 한다. 현재는 집라인zipline이 숲을 가로질러 걸려 있지만 그걸 이용하는 사람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두어 해 전 이곳에 있던 애니머트로닉* 공룡들도 기억난다. 언젠가는 그야말로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유령의 길도 있었다. 좀더 추상적인 형상들을 넌지시 나타내는 것들도 있다. 진짜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있는 커다란 바위들, 쪼갠 통나무로 만든 울타리와 개척자의 작은 집. 이중 어느 것에도 뚜렷한 목적은 없다. 텅 빈 시멘트 웅덩이들은 대형 포유류의 급수장이었을지 모른다. 이따금 자연탐방로를 만들어보려던 노력의 흔적이 보인다. 산책에 마디를 지어주기보다는 오히려 풀어버리는 임의의 표지판 같은 것. 이를테면 주변 스무 그루의 나무에는 아무런 이름도 붙어 있지 않은데, 한 나무에만 사사프라스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다든지.
* 동물처럼 보이게 만든 로봇.
“있잖아, 내가 뭐 말해줄게.” 링컨이 그녀의 무릎에 손을 내려놓으며 운을 뗀다. “오딘은 어디 가면 좋게?”
그러니까 요즘 그녀는 고대 스칸디나비아 신화의 신들을 아주 많이 알아버렸다.
“눈 가게일까?”
“응, 맞아. 그러면 안대를 그만 해도 되니까.”
“안대를 좋아할 수도 있잖아.”
“그럴 수도 있겠네.” 링컨이 맞장구친다.
주변의 모래에는 작은 플라스틱 영웅과 악당들이 흩뿌려져 있다. 토르와 로키, 캡틴 아메리카, 그린 랜턴, 아이언맨. 최근에는 모든 게 슈퍼히어로로 귀결된다. 이 모래 구덩이에는 그 영웅들 밑으로 가짜 해골들이 웅크리고 있어서, 몇몇 멸종동물의 척추가 두 사람 뒤쪽 모래 밖으로 튀어나와 있다. 모래를 쓸어낼 때 쓰는 닳아빠진 붓들이 담긴 양동이도 있다. 지금은 전생의 일처럼 느껴지는 링컨의 네 살배기 시절, 그녀와 링컨은 여기에 와서 공룡 뼈를 발굴하곤 했다. 하지만 다섯번째 생일을 맞고도 두 달이 지난 지금 아이는 이미 과거의 고고학자로부터 몇 차례의 환생을 거친 뒤였다.
공룡 구덩이는 이제 토르의 장난꾸러기 형제 로키가 갇혀 있는 침묵의 섬이다. 여벌 코에 관한 질문이 제기되지 않을 때면, 공기 중에는 서사시적 전투의 소리가 울렸다. 토르는 로키에게 불의 악마를 만들어낸 사실을 자백하게 하려 한다.
링컨이 몸을 앞으로 숙인다. 아이의 서사시가 다시 시작된다.
“사악한 악당이 낄낄거렸다.” 링컨이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때 토르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지!”
아이가 이야기라고 부르는 이런 서사시는 가만히 놔두면 몇 시간이고 이어질 수 있다. 그중에서도 조앤은 링컨의 창작 인물들이 나오는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아이는 사람들을 말로 변신시키는 호스맨이라는 이름의 악당을 만들어냈다. 호스맨의 천적은 그 말들을 다시 사람으로 바꾸어놓는 호스본이라는 녀석이었다. 잔인한 순환 고리.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움직일 때마다 어조와 억양이 바뀌는 링컨의 목소리를 반쯤 흘려들으며, 조앤은 기분좋게 빈둥대는 중이다. 아침에는 유모차며 요가 바지를 입은 엄마 들로 북적거리는 이 오솔길도 늦은 오후에는 방문객들이 뜸하다. 유치원이 끝나면 그녀는 가끔 아이를 데리고 이곳에 오는데—동물원과 도서관, 여러 공원과 과학박물관을 번갈아가며 다니기 때문에—그럴 때면 가능한 한 링컨을 숲 쪽으로 데려간다. 이곳에는 귀뚜라미나 귀뚜라미 비슷한 소리가 나는 무언가가 있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와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하지만 링컨이 크게 외쳐대는 대사를 제외하면 사람 소리는 나지 않는다. 아이는 슈퍼히어로 특유의 빠른 말투를 흡수해, 완전히 자기 것처럼 그 대사들을 반복할 수 있다.
“그자의 허리띠에 비밀 병기가 있었다!”
“놈의 사악한 계획은 실패했다!”
아이는 신이 나 몸을 흔들어댄다. 발가락 끝부터 똥똥한 두 주먹까지 온몸이 떨린다. 토르는 공중에서 깐닥거리고 링컨은 깡충깡충 뛴다. 착한 놈이 나쁜 놈을 이긴다는 생각이 좋은 건지, 아니면 흥미진진한 전투에 신이 나는 건지 그녀는 궁금하다. 선과 악 사이에는 중간지대가 있으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는 걸 언제부터 분명히 말해주는 게 좋을지도 고민이다. 어쨌든 링컨은 기분이 아주 좋고, 그녀는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다.
“엄마, 그다음엔 어떻게 되게?” 아이가 묻는다. “토르가 얘를 때리고 나면?”
“응?”
그녀는 정신의 절반이 휘돌아 소용돌이치는 동안에도 나머지 반으로는 귀를 기울이는 기술을 완벽히 익혔다.
“원래 로키가 토르의 정신을 조종했던 거야. 근데 주먹으로 때려서 얘가 힘을 잃어버렸어!”
“아아,” 그녀가 말한다. “그럼 어떻게 되는데?”
“토르가 목숨을 구하는 거지!”
링컨은 계속해서 말한다. “하지만 마을에 새로운 악당이 있다, 친구들!” 그러는 동안 조앤은 발가락을 구부렸다 폈다 하며 생각에 잠긴다.
친구인 머리의 결혼 선물을 아직도 정하지 못했다. 개를 그리는 화가가 있는데 그 작품이면 사려 깊은 선택이 될 것 같다. 이메일을 보내 주문을 넣을지 생각해봐야겠다. ‘주문’이란 화가에게는 좀 모욕적인 단어겠지만. 오늘 아침 고모할머니에게 전화하려던 일도 떠오른다. 어쩌면 전화보다는—그녀는 여러 문제를 이리저리 풀어본다, 로키가 모래 속에 파묻힌 지금 정신적 효율성이 한껏 증폭하고 있으니까—링컨이 학교에서 만들어 온 우스꽝스러운 종이봉투 원숭이를 소포로 보내드리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그럼, 그럼. 미술작품인데 당연히 전화 한 통보다는 낫지. 이런 생각엔 약간 이기심이 들어 있기도 하지만. 전화 통화를 싫어하는 그녀로서는, 그래, 뭐 꽁무니를 빼고 도망치는 셈이니 말이다. 그녀도 안다. 하지만 어쨌거나 종이봉투 원숭이로 결정한다. 고모할머니가 만드는 스쿼시 드레싱을 생각한다. 부엌 찬장에 남은 플랜틴 칩이 생각난다. 브루스 박스라이트너가 떠오른다. 중학생 시절 〈미녀 첩보원〉에 출연한 브루스에게 약간 집착했던 그녀는 프로그램 전체가 온라인에 풀렸다는 사실을 알고 한 편씩 다시 보는 중이었다. 냉전시대 스파이들과 곱슬머리들이 나오는 1980년대 프로그램치고는 앞뒤가 잘 맞는다. 리와 아만다가 드디어 입맞춤을 했던 게 시즌 2가 끝날 때였던가, 아니면 시즌 3? 기억나지 않는다. 아직 시즌 2가 여섯 편 남았지만 시즌 3으로야 언제든 넘어갈 수 있지.
딱따구리가 근처 어딘가에서 나무를 쪼아대고, 조앤의 시야에 지금 이곳이 다시 들어온다. 링컨 손에 난 물사마귀가 점점 커지는 게 보인다. 말미잘처럼 생겼다. 자갈밭에선 그녀가 익히 알고 있는 아름다운 그림자의 변화가 일어나고, 링컨은 특유의 짓궂은 악당 웃음을 터뜨린다. 숲속에서 아들의 무게를 다리에 얹고 있는 이런 오후가 문득 희열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토르가 그녀의 발에 떨어지면서 플라스틱 머리가 발가락 위로 내려앉는다.
“엄마?”
“응?”
“토르는 영화에서 왜 투구 안 써?”
“투구를 쓰면 앞을 보기가 어려워서 그런가봐.”
“근데 머리를 보호해야 되잖아.”
“엄마 생각엔, 어떨 때는 쓰고 어떨 때는 안 쓰는 것 같아. 기분에 따라서.”
“머리는 항상 보호해야 할 것 같은데.” 아이가 말한다. “투구를 안 쓰고 싸우면 위험해. 캡틴 아메리카는 왜 복면만 써? 보호가 잘 안 되는데. 맞지?”
폴은 이런 슈퍼히어로 수다를 지루해한다—남편은 미식축구 대형이나 NBA 라인업 이야기를 훨씬 좋아한다. 하지만 조앤은 괜찮다. 그녀도 원더우먼에게 홀딱 반했던 시절이 있다. 슈퍼특공대. 인크레더블 헐크. 둘이 싸우면 누가 이겨? 한번은 그녀가 외삼촌에게 물었다. 슈퍼맨이야, 인크레더블 헐크야? 외삼촌은 말했다. 글쎄, 슈퍼맨은 지고 있으면 언제든 날아갈 수 있지. 그녀는 눈부시게 기지 넘치는 답변이라고 생각했다.
“캡틴 아메리카한테는 방패가 있잖아.” 그녀가 링컨에게 말한다. “그걸로 보호하는 거야.”
“머리 위로 빨리 방패를 못 올리면?”
“캡틴 아메리카는 아주 빨라.”
“그래도.” 아이가 납득할 수 없다는 듯 말한다.
“그래, 네 말이 맞아.” 그녀가 말한다. 링컨이 옳으니까. “정말 투구를 써야겠네.”
베이지색에 툭 불거져나온 인공 바위 같은 것이 구덩이 뒤쪽 벽을 이루고 있다. 작은 동물 한 마리가 그 뒤에서 뭔가를 찾아 사방을 뒤적거린다. 그녀는 그게 쥐가 아니기를 바란다. 다람쥐라고 상상하면서도 고개를 돌리지 않으려고 신경을 쓴다.
그녀는 핸드백을 열어 핸드폰을 본다. “한 오 분쯤 있다가 정문으로 슬슬 가야겠다.”
놀이 시간이 끝났다고 알려줄 때면 자주 그러듯, 링컨은 엄마한테 아무 말도 듣지 못한 것처럼 행동한다.
“닥터 둠은 맨날 가면을 써?”
“엄마 말 들었어?”
“응.”
“엄마가 뭐라고 했는데?”
“이제 곧 가야 한다고.”
“좋아.” 그녀가 말한다. “그래, 닥터 둠은 항상 가면을 써. 흉터 때문에.”
“흉터?”
“응, 연구실에서 실험하다 생긴 흉터.”
“왜 흉터 때문에 가면을 써?”
“흉터를 가리고 싶으니까.” 그녀가 말한다. “보기 싫다고 생각하거든.”
“왜 보기 싫다고 생각하는데?”
그녀는 밝은 주황색 낙엽이 내려앉는 걸 지켜본다. “글쎄, 흉터 때문에 자신이 남들이랑은 달라 보이니까.” 그녀가 말한다. “어떨 때는 사람들이 달라 보이는 걸 싫어하거든.”
“흉터 보기 싫지 않은데.”
아이가 말할 때 숲 너머에서 크고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온다. 파열음 두 번, 이어서 몇 번 더. 빵, 마치 풍선이 여러 개 터지는 것 같다. 아니면 불꽃놀이이거나. 그녀는 동물원에서 뭘 하면 작은 폭발음 같은 게 날 수 있을지 떠올려본다. 핼러윈 축제와 관계된 걸까? 사방에 조명이 걸려 있긴 하다. 이곳 삼림지대는 아니지만 좀더 인기 있는 관람로에는 온통. 그 바람에 변압기라도 하나 터진 걸까? 공사중인가? 착암기라든지.
또 한 번 빵 소리가 난다. 또 한 번, 또 한 번. 풍선이라기엔 너무 시끄럽고 착암기라기엔 빈도가 너무 낮다.
새들은 조용하지만 낙엽은 계속해서 빠르게 떨어져내린다.
링컨은 신경쓰지 않는다.
“닥터 둠 대신 배트맨을 써도 돼?” 아이가 묻는다. “배트맨은 까만색 옷 입잖아. 엄마가 딱 맞는 가면 만들어줄 수 있어?”
“당연하지.”
“뭘로 만들 거야?”
“포일로.” 그녀가 제안한다.
다람쥐 한 마리가 흙구덩이의 지붕을 파헤친다. 녀석이 나무로 펄쩍 뛰면서 부드러운 휙 소리가 들린다.
“그럼 쉐터에는 뭘 쓸 거야?”
그녀는 아이를 내려다본다.
“스웨터?” 그녀가 되묻는다.
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도 마주 고개를 끄덕이며 곰곰이 생각에 잠겨 기억을 되돌린다. 링컨의 머리가 작동하는 방식을 해독하는 데 전념한다. 이건 존재하는지도 몰랐기에 더욱 즐거운 엄마 노릇의 일부다. 아이의 정신은 복잡하고 독특해 고유한 세계를 엮어냈다. 자면서는 가끔씩 완전한 문장을 외친다. “계단 밑은 안 돼!” 그 마음속 구조를 들여다볼 창, 엿볼 만한 틈새들도 있었다. 하지만 결코 그 전체를 알지는 못할 것이다. 바로 그게 짜릿한 부분이었다. 그녀가 실재하는 것만큼 아이는 전적으로 독립된 존재였다.
쉐터라. 그녀는 수수께끼를 풀어본다.
“얼굴의 쉐터 말하는 거야?”
“응. 보기 싫다고 생각하는 거.”
그녀는 웃는다. “아. 엄마는 ‘흉터’라고 한 거야. 그 왜 아빠 팔에, 아빠가 어렸을 때 뜨거운 물에 덴 자리 같은 그런 거. 엄마가 넘어졌을 때 무릎에 생긴 것 같은.”
“아.” 아이가 부끄러워하며 말한다. 그리고 웃는다. 아이는 농담을 빨리 알아듣는다. “흉터구나, 쉐터가 아니고. 그럼 쉐터가 보기 싫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닥터 둠이 쉐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잘 모르겠네.”
“얼굴에는 쉐터가 없잖아.”
“응. 그건 흉터야.”
그녀는 귀를 기울인다. 반쯤은 흉터 문제를 좀더 재치 있게 다룰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반쯤은 총성을 생각한다. 하지만 총성이었을 리는 없다. 총성이었다면 지금쯤은 다른 소리도 들렸어야 한다. 비명이나 사이렌 소리, 혹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안내방송 목소리라든지.
아무 소리도 없다.
전투 장면을 너무 많이 봤나보다.
그녀는 핸드폰을 확인한다. 동물원이 문을 닫을 때까지 몇 분밖에 남지 않았다. 사람들이 숲 뒤쪽 이곳에 있는 둘을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그녀는 그런 경우를 여러 번 상상해보았다. 동물원에서의 하룻밤 야영. 어쩌면 의도적으로 이 뒤쪽에 숨어 칠흑 같은 깊은 밤에 동물들을 만나러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을 다룬 어린이책도 있지 않은가. 물론 터무니없는 소리다. 당연히 경비원들이 있을 테니까. 그렇다고 여기에서 경비원을 본 적이 있는 건 아니지만.
가야 한다.
“가야겠다, 아들.” 그녀가 무릎에서 아이를 들어올린다. 자기 발에 몸무게를 실을 때까지 기다리니 아이는 마지못해 그렇게 한다. 그녀는 재킷을 입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춥지 않다고 맹세까지 하는 바람에 재킷을 차에 두고 오도록 했는데.
“좀만 더 있으면 안 돼?”
그녀는 모래밭에서 일어나 샌들에 발을 밀어넣는다. 샌들을 선택하는 바람에 링컨에게 재킷을 입으라고 말할 도덕적 권위를 잃어버렸다.
“안 돼.” 그녀가 말한다. “거의 다섯시 반이야. 문 닫을 시간이 됐어. 안됐지만 빨리 나가지 않으면 여기에 갇힐지도 몰라.”
그럴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그녀는 이제 슬슬 초조해진다. 너무 오래 기다렸다. 숲에서 그 먼길을 걸어나간 다음에도 어린이 구역을 통과하는 긴 관람로를 지나야 한다. 정말이지 시간을 아껴야 한다.
“놀이터에 들렀다가 다리로 건너가면 안 돼?”
“오늘은 안 돼. 내일 다시 오자.”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모래밭에서 듬성듬성한 풀밭으로 내려선다. 링컨은 규칙을 어기는 걸 싫어한다. 동물원 사람들이 집에 가야 할 시간이라고 하면 집에 가는 것이다.
“신발 신는 거 도와줄 수 있어?” 아이가 묻는다. “그리고 내 친구들 엄마 가방에 넣어도 돼?”
그녀는 허리를 숙여 아이의 발에서 모래를 털어낸 뒤 창백한 발가락과 볼이 넓고 짤막한 두 발에 양말을 신긴다. 운동화에서 찍찍이끈을 떼어낸다. 눈을 드니 팔 하나 길이만큼 떨어져 있는 곳에 내려앉는 홍관조가 보인다. 이곳 동물들은 그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몇 센티미터 거리 안에 있는 참새나 얼룩다람쥐나 다람쥐가 종종 눈에 띈다. 녀석들은 링컨이 연출하는 전투는 무엇이든 지켜본다.
그녀는 플라스틱 모형들을 핸드백 안으로 떨어뜨린다.
“다 됐다.”
조앤은 빠뜨리고 가는 플라스틱 인간은 없는지 모래 구덩이를 훑어본 다음 링컨의 손을 잡고 숲에서 나가는 오솔길로 향한다. 언제쯤 아이가 엄마 손을 더이상 잡고 싶어하지 않게 될지 궁금하다. 어쨌든 지금은 두 사람 다 똑같이 만족한다. 스무 걸음도 가기 전에 나무들이 걷히고—이곳의 고립이란 그저 환상일 뿐이다—수달 우리 앞 바위들 위로 후드득 폭포 쏟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수달은 조앤과 링컨이 가장 좋아하는 동물 중 하나로, 이야기에 빠져 있는 링컨의 주의를 돌릴 수 있는 동물은 수달을 포함해 몇 종류 안 된다. 그 수달 두 마리는 인조 바위 돌출부가 있는 동굴식 우리에 산다. 녀석들은 널찍한 유리벽 뒤 녹색 웅덩이에서 유유히 헤엄치거나 몸을 뒤집고 자맥질을 한다. 바위들은 인도 바로 위에 있다. 관람객들의 머리 위쪽에 있는 폭포가 쏟아져 수련 잎과 갈대, 보라색 꽃이 피는 줄기 따위로 빽빽한 거북 연못으로 흐른다. 연못 위로 구불구불 나아가는 목재 오솔길은 그녀에게 언제나 삼림지대에서 가장 예쁜 곳으로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저 텅 빈 듯 보인다.
옆에서 링컨이 웃는다. “수달 좀 보렴. 수영하는 거 봐봐.”
아이는 아직도 ‘ㅜ’ 발음을 어려워한다. ‘수달’ 대신 ‘슈달’이라고 한다. 렉스 류터*. 츅구에서 골 넣기.
* 렉스 루터. 〈슈퍼맨〉에 나오는 악당.
“엄만 수달 발이 좋더라.”
“발이 있어? 지느러미가 아니고? 강아지 발 같은 진짜 발? 원숭이 발처럼 손가락 달린 발?”
그녀는 잠시 멈추어 수달의 해부학적 구조를 짚어주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삶이 온갖 놀라운 것들로 가득차 있음을 아이가 아는 것, 주의를 기울여야 함을 아는 것이야말로 아마 그녀가 가장 바라는 일일 테니 말이다. 저거 봐, 예쁘지? 링컨은 동물원 주차장에서 휘발유 웅덩이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 손을 잡아당기자 아이는 수달에게서 빨리 고개를 돌리지 못하면서도 쉽게 따라온다. 그들은 나무다리에 발을 디딘다. 양옆에는 수련 잎이 있다. 그녀는 다른 누구라도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늦어서 뛰면서도 수다를 멈추지 않는 다른 가족 말이다. 그렇다고 이 길에 그들만 있는 게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다. 오후에는 출구로 가는 내내 아무도 보지 못하는 일이 자주 있다. 오늘은 폐장 시간이 가까워질 때까지 평소보다 오래 버티기도 했고. 그녀는 속도를 낸다.
“달리기 할까?” 그녀가 묻는다.
“아니.”
“깡충 뛰기는?”
“아니, 괜찮아.”
링컨은 터벅터벅 걷는다.
뭔가를 하지 않겠다는 아이의 고집이 그녀가 보이는 열정의 양에 정비례하는 건 아닌지 가끔 궁금해진다. 아이는 계속해서 한가롭게 다리를 건너며 가끔씩 멈추어 사소한 일에 정신을 팔거나 비단잉어를 내려다본다. 아예 멈춰 서서 턱을 긁기도 한다. 서두르라는 말에 인상을 쓴다. 표정을 보고 그녀는 아이가 무얼 부탁할지 알아챈다.
“안아줘.”
“차까지 계속 안고 갈 수는 없어.” 그녀가 말한다. “네가 너무 자라서.”
그녀는 처지는 아이의 입술을 지켜본다.
“대신 이렇게 하자.” 그녀는 일이 커져서 속도가 더 느려지기 전에 말한다. “허수아비 있는 데까지만 가자. 그럼 거기서부터는 엄마가 안고 갈게. 허수아비까지 잘 걸어가면.”
“알겠어.” 목소리가 떨리고 입은 더 삐쭉거린다. 그녀와 속도를 맞추어 발을 움직이면서도 울음을 터뜨리려 한다.
문득 그녀는 걸을 때 울면 안 된다는 말을 구체적으로 해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엄밀히 따지면 아이는 그녀의 조건에 맞추고 있다. 어쩌면 울다가도 몇 초 만에 토르의 투구나 오딘의 안대 같은 스쳐가는 생각에 정신이 팔릴지 모른다. 또는 더 시끄럽게 울어서 그녀가 포기하고 안아주게 될 수도 있다. 그때쯤이면 실제로 꽤 긴 거리를 그 작은 다리로 불평 없이 걸었을 테니까. 계속 울더라도 차 있는 곳까지 걸으라고 단호하게 버틸 수도 있다. 그녀는 링컨이 그런 떼쓰는 아이로 자라기를 원치 않으니 말이다.
부모 되기란 예상과 추정, 그리고 비용 대 이익 계산으로 이루어진 견제와 균형의 엄청난 시스템이다.
잠자리 한 마리가 맴돌다 쏜살같이 날아간다. 왜가리가 물가를 따라 길을 쪼며 나아간다. 목재로 포장된 오솔길은 나무와 거친 풀밭을 이리저리 가르며 이어진다.
링컨이 칭얼거리던 걸 그쳤다. 조지아 불도그의 응원가를—“우리의 조지아에 영광, 영광!/우리의 조지아에 영광, 영광!”—흥얼거리고 있는 게 틀림없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아이는 텍사스 롱혼의 응원가로 갈아탄다. 가족 중 두 팀의 팬은 없지만 링컨은 슈퍼히어로와 악당들을 흡수하듯 응원가 가사를 흡수한다.
아이는 수집가다. 뭔가를 모은다.
나무들 사이로 텐트처럼 생긴 회전목마 꼭대기가 보인다. 설거지 구정물 같은 하늘에 대비되어 하얗게 빛나고 있다. 두 사람은 닭장처럼 생긴 우리들을 지난다. 외발독수리의 폐쇄형 우리와 거의 보이지 않는 왜가리 한 쌍의 우리다. 죽은 통나무와 맥문동, 연녹색 잡초들이 있다. 조앤은 늘어진 나뭇가지를 향해 걸어간다. 이파리 하나가 떨어져 노란 나비로 변하더니 하늘로 이리저리 날아오른다.
마침내 그들은 대로처럼 넓은 콘크리트 인도로 돌아와 있다. 핼러윈 장식용 호박 램프가 울타리 기둥마다 얹혀 있다.
문명 세계로 몇 걸음 들어가며 그녀는 회전목마를 힐끗 본다. 목마는 고요하고 조용하다. 그려진 기린과 얼룩말과 곰과 고릴라와 타조들은 얼어붙은 상태다. 링컨은 한때 회전목마를 아주 좋아했다. 타본 건 얼룩말뿐이지만. 지금 회전목마 동물들 주변에는 고무 박쥐와 클리넥스로 만든 초소형 유령들이 회전목마의 목조 뼈대에 매달려 둥둥 떠 있다. 그녀와 링컨은 회전목마를 덮은 하얀 캔버스 천이 그들 위로 펼쳐진 곳까지 가까이 다가간다. 밝고 고요하다.
“엄마,” 아이가 말한다. “안아줘.”
“허수아비까지 가면.” 그녀가 자신을 향해 뻗어 있는 두 팔을 모른 체하며 말한다. “조금만 더 가자.”
이번에는 반항하지 않는다. 둘은 서둘러 회전목마를 지나 푸드코트와 어린이 구역 물의 나라를 향해 간다. 어깨 높이의 분수들이 그때까지도 아치를 그리며 블루라즈베리 색깔 물놀이터로 떨어지고 있다.
“여기 메두사가 왔었어.” 링컨이 큰 소리로 알은체를 하자 그녀가 물안개 너머 그늘진 곳을 본다. 거기에 거북이와 개구리, 도마뱀의 석상이 있다. 아이는 요즘 석상이 보이기만 하면 메두사가 지나간 흔적이라고 말한다. 거미줄을 보면 여기 스파이더맨이 왔었어, 라고 한다.
“저런, 불쌍해라.” 메두사의 희생자들을 지나칠 때마다 그녀가 으레 하는 말이다.
“눈을 감았어야지.” 아이가 으레 하는 말이다.
그녀는 코알라 카페의 불 꺼진 유리창을 힐끗 본다. 비닐로 싼 샌드위치와 과일 젤리와 삶은 달걀이 놓인 선반들이 보이지만 안에서는 어떤 기척도 없다. 플라스틱 의자가 네모난 테이블 위에 거꾸로 얹혀 있다. 보통 폐장 시간 십오 분 전에 직원이 식당을 닫고 건물을 잠그기 때문에 놀랄 일은 아니다.
오른쪽으로 좀 떨어진 곳에는 바위산과 흔들다리를 갖춘 놀이터가 있다. 옛날 옛적, 링컨이 남극에 관심을 가지던 시절에 그 큰 바위들은 빙하였다. 작년 봄에는 흔들다리 위에서 기사와 성 놀이를 하며 보이지 않는 왕들에게 대포를 가지고 나오라고, 투석기에 바윗덩어리를 채우라고 고함을 쳐댔다. 똑같은 다리가 이제는 지상으로 내려오는 토르의 무지갯빛 통로다. 일 년 후면 링컨도 유치원에 간다. 근래의 슈퍼히어로 시절도 빛이 바래 그녀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무언가로 대체될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는 동물원 자체가 대체되고 인생은 사라져버릴 것이며, 그녀의 손을 잡고 있는 이 아이는 완전히 다른 누군가로 변해 있을 것이다.
지금 그들은 서두르고 있다. 선물가게며, 구멍에 머리를 집어넣고 고릴라 시늉을 할 수 있는 나무판자를 서둘러 지난다. 어린이 구역 가장자리의 바닷말이 달라붙은 수족관 근처에 이르자 속도를 늦춘다—링컨이 참지 못하고 거대거북을 찾아본다. 몇 미터 앞에서 나이든 여자가 수족관의 둥근 벽면을 바로 돌아 약간씩 뒤로 휘청거리며 나타난다. 손에는 신발 한 짝을 들고 있다.
“바위가 나왔네, 타라야.” 나이든 여자가 말한다. 그 목소리에는 그녀가 누군가의 할머니라는 걸 알게 해주는 어떤 발랄한 절망감이 어려 있다. “서둘러야지, 자.”
자매임이 분명해 보이는 금발 여자아이 두 명이 시야에 들어온다. 할머니는 몸을 숙여 더 작은 아이에게 신발을 내민다. 머리를 땋은 그 아이는 링컨보다 약간 어려 보인다.
“가야 돼.” 애써 작은 발에 고무 샌들을 신기며 할머니가 말한다. 그런 다음 몸을 편다.
작은 아이가 무슨 말을 하는데 너무 작아서 들리지 않는다. 이제는 겨우 1미터쯤 떨어져 있는데도 말이다. 날벌레 몇 마리가 수족관 유리에 부딪힌다.
“차에 도착하면 벗겨줄게.” 할머니가 숨찬 목소리로 말하며, 두 아이의 손목을 잡고서 기우뚱 한 발을 내디딘다. 아이들이 링컨에게 눈을 깜빡이지만 할머니는 아이들을 재촉해 앞으로 간다.
“할머니다.” 너무 큰 소리다. 링컨이 아주 갑작스럽게 멈추는 바람에 조앤의 팔이 홱 당겨진다.
“엄마가 보기에도 그러네.” 그녀가 속삭인다.
조앤은 나이든 여자를 힐끗 본다. 공기에서 꽃향기가 밴 화학물질 냄새가 풍긴다. 6학년 시절의 매닝 선생님을 떠오르게 하는 향수 냄새다. 매닝 선생님은 학교 마지막날, 오직 그녀에게만 『푸른 돌고래의 섬』을 주었다. 어느새 할머니와 손녀들은 사라졌다. 이미 수족관의 마지막 둥근 벽면을 지나가버렸다.
“나한테도 할머니가 있으면 저렇게 생겼을까?” 링컨이 묻는다.
아이는 요즘 할아버지나 할머니에게 집착한다. 그녀는 그 집착도 다른 모든 단계처럼 빠르게 지나가기를 바란다.
“너 할머니 있잖아.” 조앤이 아이를 다시 앞으로 당기며 말한다. “할머니. 아빠네 엄마. 크리스마스 때 여기 오셨어, 기억나지? 그냥 멀리 사시는 것뿐이야. 가야겠다, 아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주 많은 사람들도 있잖아. 난 한 명밖에 없어.”
“아냐, 세 명 있어. 기억 안 나? 지금 안 가면 골치 아파져요.”
이 말은 마법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속도를 올린다. 표정이 그토록 진지하고 단호할 수 없다.
또 한 번 빵 하는 소리가 난다. 전보다 더 크고 가까워졌다. 열두 번쯤의 날카로운 파열음이 허공에 울려퍼진다. 그녀는 무슨 유압식 장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새 연못 가장자리에 도착했다. 동물원에서 가장 큰 그 연못은 거의 호수에 가깝다. 그녀는 물을 가로지르는 백조들을 힐끗 본다. 오솔길이 둘로 갈린다. 오른쪽 길은 연못 반대편 아프리카관까지 이어지지만, 왼쪽 길을 따라가면 몇 분 후에 출구에 이른다. 저 앞에서 녹색과 빨간색 앵무새들이 휙휙 날아오르는데 비정상적으로 조용하다. 그녀는 이 모든 콘크리트 한가운데에 있는 그들만의 작은 섬, 풀로 뒤덮인 둔덕과 막대기 같은 나무들이 있고 벽돌로 둘러싸인 그 웅덩이를 좋아한다. 이 섬은 첫번째이자 마지막 정거장이므로, 동물원에 올 때마다 마지막 의례로 거쳐간다.
“앵무새 울음소리 연습해볼까?”
“연습 싫어.” 아이가 말한다. “그냥 허수아비가 보고 싶어.”
“어차피 걸어가는 동안 허수아비가 보여.”
연못을 둘러싼 울타리를 따라 허수아비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그중 대부분이 머리 대신 호박을 달고 있어 링컨은 거기에 사로잡혔다. 아이는 슈퍼맨 허수아비와 흰 우주 헬멧처럼 칠한 호박 머리를 한 우주비행사 허수아비를 아주 좋아했고, ‘더 캣*’ 허수아비는 특히 더 좋아했다.
* 닥터 수스의 동화책 『더 캣 인 더 해트』의 주인공.
“어서, 아가.” 그녀가 말한다.
아이가 손을 놓고 두 팔을 든다.
울타리 저편을 힐끗 본 그녀는 ‘고양이 피터*’의 선명한 파란색 머리를 알아본다. 울타리를 반쯤 내려간 곳에 몇몇 허수아비가 쓰러져 있다. 바람에 날렸나. 아니, 돌풍은 없었다. 그런데도 허수아비들이 쓰러져 있다. 앵무새 우리와 그 뒤로 대여섯 개가 사방에 흩어져 있다.
* 에릭 리트윈의 동화책 『고양이 피터』의 주인공.
아니, 허수아비가 아니다. 허수아비가 아니야.
움직이는 팔 하나가 보인다. 허수아비라기엔 너무 작은 몸이 보인다. 창백한 엉덩이 위로 치마가 아무렇게나 들려 있고 두 다리가 구부러져 있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들어 더 먼 곳을 바라본다. 땅 위의 형체들과 앵무새들을 지나 더 먼 곳, 공중화장실과 직원 전용 문들이 있는 길고 납작한 건물이 보이고, 가만히 서 있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얼굴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어 보이지 않는다. 분수 옆이다. 청바지와 어두운색 셔츠 차림에 외투는 입지 않았다. 머리카락은 갈색 혹은 검은색이고 더 자세히는 보이지 않는다. 마침내 남자가 움직이자 어쩔 수 없이 그 움직임이 눈에 띈다. 남자가 화장실 문을 걷어차고 팔꿈치를 들어 문을 붙든다. 오른손에 총이, 라이플총처럼 길고 검은 총이 쥐여 있다. 여자화장실의 빛바랜 녹색 벽 뒤쪽으로 사라지는 그의 어두운색 머리카락 위로 좁다란 총끝이 더듬이처럼 뻗어 있다.
앵무새 근처에서 뭔가가 또 움직인 것 같다. 다른 누군가가 서 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돌아서고 있다. 더이상 보지 않는다.
그녀는 링컨을 꽉 붙들고 안아올린다. 아이의 두 다리가 그녀의 엉덩이에 부딪히며 무겁게 흔들린다. 그녀는 링컨의 엉덩이 아래에서 오른손으로 왼쪽 손목을 잡아 두 팔을 연결한다.
그녀는 달린다.
그녀는 앞으로 간다. 물론 시체들 쪽이 아니라 연못을 돌아 아프리카관을 향해서. 움직이는 동안 숲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는 생각과 지금이라도 뒤로 돌아 둘만의 공룡 마당이나 키 큰 나무 그늘로 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돌아서고 싶지 않다. 그 남자가—아니, 남자들인가?—자기들을 보았는지, 따라오고 있는지 확실하지 않으니까. 어쩌면 뜸을 들여 따라오는 중인지도 모른다. 총을 쥐고 있는 건 그놈이니까, 놈은 서두를 필요가 없으니까. 마음속 한곳에서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우며 앞으로 가는 게 더 낫다는, 그쪽이 더 안전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 가. 가. 그녀의 머릿속에서 그 말이 반복된다. 두 발이 그 말에 박자를 맞추어 콘크리트 바닥을 두드린다.
무장괴한이 그들을 지켜보며 걸음을 떼는 모습이, 얼굴에 점점 미소가 번지며 호숫가를 도는 모습이 떠오른다. 속도를 올리는 그가 상상된다.
그녀는 견딜 수가 없다. 어깨 너머로 힐끗 봐서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제대로 살펴볼 수는 없다, 속도를 늦추고 싶지 않으니까.
달음질을 치자 니트 스커트가 다리에서 팽팽하게 늘어난다. 치마를 더 높이 끌어올리고 싶지만 남는 손이 없다. 찢어질지도 몰라, 차라리 그랬으면. 신발 밑에서 작은 돌들이 긁히는 소리가 난다. 그녀는 두 발가락 사이의 샌들 끈을 꽉 잡는다. 신발 바닥이 파닥이는 소리가 들린다. 신발이 벗겨지는 것, 또하나의 공포다.
이 길을 따라서는 머리 바로 위로 온통 핼러윈 조명이 걸려 있다. 한 걸음씩 나아갈 때마다 즐겁게 빛난다. 하얀, 선명하게 하얀 조명. 링컨이 실수로 그녀의 눈에 손전등을 비췄을 때와 같다.
하늘이 어두워진다.
“우리 왜 뛰는 거야?” 링컨이 묻는다. 18킬로그램에 달하는 몸무게가 통째로 그녀의 엉덩이뼈에 부딪쳐 튕긴다. 아이가 그토록 오랫동안 조용히 있었다는 게 놀랍다. 어쩌면 행선지가 주차장이 아니라는 걸 이제야 알아차린 건지 모른다.
그녀가 대답하려고 숨을 모으는데 폐가 타는 듯하다.
“이따가,” 그녀가 말한다. 숨을 들이쉬어야 한다. “말해줄게.”
아이의 두 팔이 그녀의 목 주변을 조인다. 밝은 조명 바로 뒤로는 그들이 가는 방향과 평행하게 기찻길이 뻗어 있다. 지금 이 순간 옆으로 다가와 두 사람을 휙 실어갈 빨갛고 검은 작은 기차를 볼 수만 있다면 무엇인들 내주지 못할까. 직접 달리는 게 그 기차보다 더 빠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렇더라도 기차를 원한다. 조앤은 두 팔이 이미 아프기 시작했다. 공원으로 산책하러 갔던 지난주가 문득 떠오른다. 오리도 이빨이 있어? 진짜로 나 안 물어? 오리도 발 있어? 애기 때는 나 왜 안 걸었어? 나는 발 있었어? 다리는? 사실 그날 오후에는 집으로 돌아가던 중 더이상 아이를 안고 갈 수가 없어서 우는 아이를 풀밭에 내려놓아야 했다.
오늘 그녀는 아이를 내려놓지 않을 것이다.
“엄마!” 짜증이 나는지 아이가 그녀의 얼굴에 손을 대고 말한다. “‘이따가’는 아까 지났잖아.”
“나쁜 사람이 있었어.” 조앤이 말한다. 겁에 질려 넋이 나가지 않았더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말이다.
“어디에?”
그녀는 맥락을 놓쳤다. “뭐가 어디야?”
“나쁜 사람이 어디에 있었어?” 아이가 묻는다.
그녀는 두 걸음 만에 기찻길 교차로를 뛰어넘는다. 기차가 온다면 그걸 모는 또다른 인간이 있다는 뜻이고, 그녀는 다른 사람을 보고 싶었다. 뒤에는 호수가 있고, 그 건너편에는 시체들과 그 남자가 있다. 좋은 일이다. 구불구불 언덕을 따라 아프리카관까지 올라가는 길에는 양옆으로 나무들, 잎사귀가 널찍한 열대우림의 식물들이 심겨 있다. 나무들 덕분에 아무도 두 사람을 보지 못할 것이다. 이제 두 사람은 확실히 눈에 덜 띄었다. 누가 보고 있다면 말이다.
“저 뒤에 있었어.” 그녀가 하마터면 발을 헛디딜 뻔하며 말한다.
사이렌 소리가 들린다. 얼마나 가까운지 알 수는 없지만 경찰이 오고 있다는 뜻이다. 그들이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녀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난 나쁜 사람 못 봤는데. 나쁜 사람인지 어떻게 알아?” 아이의 턱이 그녀의 어깨에 부딪친다.
그녀가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면 링컨은 기분이 나빠진다.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는 건 바라지 않는다. 큰 소리를 내서는 안 되니까. 또 떼를 쓰기 시작하거나 더 나쁘게는 몸을 축 늘어뜨릴지 모르니까. 몸을 늘어뜨리면 두 배는 무거워진다.
“도망가야 돼.” 그녀가 헐떡이며 말한다. “지금 당장. 그러니까 엄마 좀 도와줘. 다리 좀더 조이고 꽉 잡고만 있어. 안전한 곳에 가게 해주면 그때 대답해줄게.”
그녀는 간신히 모든 말을 내뱉는다. 폐가 터질 듯하고, 허벅지는 비명을 지른다. 해는 나무 꼭대기 너머로 떨어진 뒤이고 발아래 식물의 그림자들은 길고 여위어 보인다.
팔꿈치가 바나나 잎에 스친다. 날개처럼 단단하고 넓적하다.
“어디야?” 아이가 묻는다. 그럼 그렇지, 아이는 절대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어디 가는데?”
그녀도 모른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하지? 그다음에는? 대체 뭘 찾는 거야? 두 발의 리듬을 유지하고서 그녀는 발가락을 더 꽉 조인다. 이 길이 오르막이 아니기만을 바라며.
이 짓을 오래, 더는 할 수 없다.
숨는다. 숨어야 한다.
틀림없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그다음엔 경찰이나 폴, 아니면 둘 다에게 전화를 걸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경찰을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그냥 그녀와 링컨이 여기 갇혔다는 걸 알려주려고? 당연히 경찰도 동물원에 남아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녀는 오른쪽 엉덩이에서 왼쪽 엉덩이로 아이를 옮기고 붙잡은 손을 다시 바로 잡는다.
“엄마!” 아직도 대답 같은 걸 바라며 아이가 말한다. 링컨은 항상 대답을 원한다.
조앤과 링컨은 드디어 언덕 꼭대기에 올라왔다. 대단히 야생적으로 조경된 식물들의 벽을 빠져나와 아프리카 코끼리 구역을 바라보고 있다. 온통 모래언덕과 초원, 흐르는 시냇물뿐이다. 왼쪽으로든 오른쪽으로든 돌아야 한다. 오른쪽 길은 기린과 사자와 호랑이에게로 이어진다. 왼쪽 길은 코뿔소와 들개와 원숭이 들을 돌아간다.
“엄마!”
조앤은 아이의 머리에 입을 맞추고 왼쪽으로 돈다.
“엄마 어깨에 이빨 부딪쳤어.” 아이가 말한다.
“미안.” 그녀가 말한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숲과 공룡 마당으로 이어지는 그 익숙하고 좁은 오솔길로 향하지 않은 게 다행스럽다. 키 큰 나무들이 주변에 잔뜩 있어도 몸을 숨길 곳은 마땅히 찾지 못했을 것이다. 몇 안 되는 좋은 자리는—통나무 오두막과 나비 집 정도일까?—너무 뻔했을 테고. 물론 발견되면 도망쳐 운신할 공간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링컨이 붙어 있는데 얼마나 움직일 수 있을까? 아니, 필요한 건 도망칠 공간이 아니다. 누군가 그들을 발견한다면 아무리 달려봐야 소용없다.
바로 이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그녀의 뇌리를 스친다. 혼비백산하는 와중에도 뇌가 제 기능을 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렇다. 아무리 달려봐야 소용없다. 보이지 않게, 아주 잘 숨어야 한다. 누가 바로 옆을 지나가더라도 보이지 않게. 그녀에게는 토끼굴이 필요하다. 벙커가. 비밀 통로가.
아이는 더이상 그녀를 부르지 않는다. 그녀의 두려움 속 무언가가 저절로 전달된 게 틀림없다. 다행이다. 적당한 공포라면, 아이를 얌전하게 만들 뿐 겁에 질리게 하지는 않는 공포라면. 그게 어느 정도의 공포인지 사실은 알 수 없다. 일단 안전해지고 나면 알아낼 것이다.
코끼리 구역은 끝없이 펼쳐져 있다. 난간을 돌자 음악소리가 들린다. 처음엔 알아들을 수 없이 여기저기 울리는 음일 뿐이었지만 머잖아 그녀는 〈고스트 버스터즈〉의 주제곡이란 걸 알아챈다. 콜라 자판기를 지날 때쯤 들려오는 음악은 명랑하고 지나치게 시끄럽다. 링컨은 그 자판기를 배트맨 컴퓨터라고 상상하곤 한다.
조커가 또 장난을 하려 드는군! 배트모빌로 가자! 엄마, 배트맨 전용 세차장이 있어? 배트모빌도 더러워질 텐데 컨버터블이잖아. 씻을 수 있어? 발목이 약간 돌아가지만 그녀는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오른쪽 난간에는 진짜 코끼리가, 졸린 표정의 코끼리가 놀랄 만큼 가까운 곳에 있다. 녀석의 튼튼한 몸집이 다행스럽다. 녀석의 코에서 나는 부드러운 딱딱 소리가 눈에 보이는 듯 그 리듬이 읽힌다. 하지만 그녀는 반대 방향으로, 왼쪽으로 돌아서며 불과 몇 미터 떨어져 있는 넓은 건물을 훑어본다. 사바나 스낵바. 그 건물의 억새지붕 아래에서 천장 선풍기가 불어내는 여름공기를 맞으며 건포도를 먹은 적이 있지만, 실제 식당 건물 안에 앉아본 적은 없다. 그녀는 밖에 남아 코끼리를 지켜보며 아프리카에 있다고 상상하길 좋아한다. 언젠가는 링컨을 아프리카에 데려가야겠다고 늘 생각해왔으니까. 아이에게 보여줄 그 모든 장소들을 떠올리는 것이 좋다. 태국에서 진짜로 코끼리 탔어, 엄마? 응, 네가 태어나기 전이야. 그녀는 지나가는 길에 화장실을 눈여겨보며 속도를 늦추지만 걷어차이던 문을 떠올리고는 다시 속도를 올린다. 식당 건물. 지금은 저곳이 더 안전할지도 모른다. 당연히 문에는 자물쇠가 있을 테고, 안의 공간도 더 넓을 것이며, 사무실과 창고에도 더 좋은 자물쇠와 숨을 곳과 벽장들이 있을 테니까. 문에 기대어 쌓아놓을 의자나 테이블, 무거운 상자들도 있을지 모른다. 순간적으로 든 생각에 그녀는 마음이 기운다. 억새지붕 그늘 아래로 쏜살같이 나아가 유리문을 밀친다. 하지만 문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안은 사방이 어둡다.
영업중. 표지판에는 그렇게 적혀 있다.
마녀의 물약 슬러시. 다른 표지판에 보라색과 분홍색으로 쓰인 말이다. 소름 끼치게 맛있다!
조앤은 빙 돌아 다시 뛰기 시작한다. 링컨의 두 팔이 목을 꽉 조인다. 덕분에 팔에서는 약간이나마 아이의 몸무게가 덜어진다. 그러나 그녀는 기운이 다 빠져 균형을 잃은 상태다. 하마터면 콘크리트 기둥을 들이박을 뻔했다.
알고 보니 머리 위에 스피커가 있다. 음악이 요란하게 울린다. 당신 침대에 잠들어 있는/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누구를 불러야 할까?/고스트 버스터즈.
그녀는 파빌리온*에서 멀리, 스피커에서 멀리 떨어져나와 어둑해지는 햇빛 속으로 되돌아간다. 코끼리와 녀석의 우아한 코는 사라지고 없다. 그렇게 큰 게 어떻게 사라질 수 있을까? 그녀는 링컨의 귀에 괜찮아,라고 계속 속삭인다. 이렇다 할 목적은 없지만 다시 속도를 높인다. 평상시 동네를 돌 때의 안정적인 달리기 리듬과는 전혀 다르다. 그녀는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았다. 오빠가 떠오른다. 군대에서 훈련을 받던 시절 오빠는 13.6킬로그램짜리 자루를 몸에 묶은 채 수킬로미터를 달리는 러킹이라는 운동에 흠뻑 빠져 있었다. 그때는 오빠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오빠는 아버지와 함께 오하이오로 이사했다가 그녀보다 한참 전에 집을 떠났고, 여름에 이 주 정도나 간혹 명절에 만날 수 있을 뿐이었다. 오빠는 성인이 되어 그녀를 만나러 오더니 그녀에게 슬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