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린 매컬로 Colleen McCullough
콜린 매컬로는 1937년 오스트레일리아 웰링턴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문학과 과학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인 매컬로는 문학은 미래가 불안정하다고 판단해 시드니 의대에 진학했고, 졸업 후에는 시드니 왕립 노스쇼어 병원에 신경과학부를 창설했다. 그후 미국 예일대 신경학과에 초빙되어 연구와 강의를 하던 10년 동안 두 종의 소설을 발표했는데, 첫번째가 데뷔작 『팀』, 두번째가 전 세계적으로 3천만 부 넘게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 『가시나무새』다.
『가시나무새』가 이례적인 성공을 거두자 매컬로는 마흔 살에 과학자의 삶을 접고 전업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73년에는 남태평양 노퍽 섬에 정착했고, 1984년 이 섬의 원주민인 남편 릭 로빈슨과 결혼했다.
매컬로는 국내에서 주로 『가시나무새』의 작가로 유명하지만 영미권에서는 역사소설가로 명성이 높다. 노퍽 섬에서 철저한 고증을 통한 로마 시리즈의 첫 책 『로마의 일인자』를 써서 1990년에 세상에 내놓은 뒤 2007년까지 근 20년 동안 〈마스터스 오브 로마〉 7부작을 연달아 발표했다. 매컬로는 원래 카이사르의 죽음으로 마무리되는 6부 『시월의 말』로 이 시리즈의 대장정을 마치려 했지만 독자들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7부까지 쓰기에 이른다. 매컬로는 또다른 역사소설 『트로이의 노래』, 『모건의 길』 등 총 25종의 작품을 썼고, 데뷔작 『팀』과 『가시나무새』 등은 영화화되었다.
1993년 오스트레일리아 매쿼리 대학에서는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의 업적을 기려 매컬로에게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수여했고, 2000년에는 이탈리아에서 역시 이 시리즈의 성과를 기려 그녀에게 권위 있는 문학상인 스칸노 상을 수여했다.
매컬로는 로마 시리즈 6부 『시월의 말』을 발표하고 일 년 뒤, 황반변성으로 왼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그후 지속적인 건강 악화에도 남편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집필 의지를 잃지 않고 『비터스위트』(2013) 등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다. 2015년 1월, 노퍽 섬에서 77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옮긴이
강선재 부산대학교 영어영문학과와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번역학과를 졸업하고 전문번역가로 활동중이다. 옮긴 책으로 『나를 찾아줘』, 『세 길이 만나는 곳』, 『타인들의 책』이 있으며, 현재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를 공역중이다.
신봉아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번역학과를 졸업하고 전문번역가로 활동중이다. 옮긴 책으로 『왜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걸까』가 있으며, 현재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를 공역중이다.
이은주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번역학과를 졸업하고 번역가로 활동중이다. 옮긴 책으로 『무한공간의 왕국』, 『윤리학의 배신』이 있으며, 현재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를 공역중이다.
홍정인 연세대학교 심리학과와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한영번역학과를 졸업하고 번역가로 활동중이다. 옮긴 책으로 『제인 구달 평전』(공역)이 있으며, 현재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를 공역중이다.
MASTERS OF ROME SERIES : CAESAR
Copyright ⓒ 1997 by Colleen McCullough
Published by arrangement with HarperCollins Publishers.
All rights reserved.
Korean translation copyright ⓒ 2017 by Gyoyuseoga, an imprint of Munhakdongne Publishing Group
Korean translation rights arranged with HarperCollins Publishers through EYA(Eric Yang Agency).
이 책의 한국어판 저작권은 에릭양 에이전시를 통해 HarperCollins Publishers사와 독점 계약한 출판그룹 문학동네(임프린트 교유서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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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
주사위를 던져라
친절하고 지혜롭고 현명하며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참으로 좋은 사람,
조지프 메를리노에게
카이사르가 주요 부대들을 이끌고 브리타니아에 가 있는 동안에는 꼭 긴급한 전갈만 그리로 보내라는 명령이 있었다. 심지어 원로원 명령서도 카이사르가 돌아올 때까지 갈리아 본토의 이티우스 항에서 기다려야 했다. 지금 카이사르는 세리카만큼이나 신비에 싸인 그곳, 세상의 서쪽 끝에 자리한 브리타니아 섬으로 그의 두번째 원정을 나간 터였다.
하지만 이것은 로마의 일인자—이자 카이사르의 사위—인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의 편지였다. 따라서 카이사르 군대의 로마 통신참모부 소속 가이우스 트레바티우스는 폼페이우스의 인장이 박힌 기다란 원기둥 모양의 작고 붉은 가죽통을 카이사르가 브리타니아 원정을 마치고 와서 볼 편지함에 넣지 않았다. 그 대신 한숨을 푹 내쉬고, 평생 동안 주로 앉아서 또는 먹으면서 시간을 보낸 탓에 그의 발목과 마찬가지로 살이 퉁퉁하게 오른 두 발을 딛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문밖에 나서니 군 정착지 정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지난해 사용한 숙영지의 뼈대를 그대로 두고 크기만 키워 새로 조성한 곳이었다. 따분한 풍경! 끝없이 줄지어 선 목조 주택들과 잘 다져진 흙길과 드문드문하게 하나둘 자리한 상점들. 나무 한 그루 없이 어디를 보아도 반듯반듯 가지런하기만 했다.
여기가 로마라면 가마에 앉아 편하게 갈 텐데. 트레바티우스는 기다란 프링키팔리스 가도를 따라 터벅터벅 걸으며 혼자 생각했다. 하지만 카이사르의 숙영지에 가마 따위는 없었으므로, 촉망받는 젊은 변호인 가이우스 트레바티우스는 별수 없이 제 발로 걸어야 했다. 짜증이 솟구쳤다. 변호인으로서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한 그가 자신의 경력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포룸 로마눔을 두 발로—또는 가마를 타고—활보하는 게 아니라 고작 전장의 군인들을 위해 일하는 거라니. 그렇다고 계급이 낮은 다른 사람을 불러서 심부름을 보낼 수도 없었다. 평소 카이사르는 자신의 궂은일을 남에게 맡겼다가—군대에서 쓰는 속된 말로—‘조질’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을 때는 반드시 스스로 처리하라고 엄하게 단속했다.
아, 귀찮아! 귀찮아, 귀찮아! 트레바티우스는 그냥 사무소로 되돌아가버리려다, 왼손을 왼쪽 어깨에 걸친 토가 주름에 끼우고 근엄한 자세를 취한 뒤 다시 어기적어기적 걷기 시작했다. 티투스 라비에누스가 그 옆에 느긋하게 서 있는 말의 고삐를 구부린 팔에 걸치고 숙소 벽에 한가로이 기대 서 있었다. 금색을 비롯해 현란한 색으로 치장한 덩치 큰 갈리아인과 한담을 나누는 중이었다. 최근에 아이두이족 기병대 지휘관으로 임명된 리타비쿠스였다. 두 사람은 전임 아이두이족 기병대 지휘관의 비참한 말로를 아직도 이야기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바다 건너 브리타니아까지 끌려가기 싫어서 도망쳤다가 라비에누스에게 붙들려 참수되었다. 이름이 독특하고 멋졌는데, 뭐였지? 둠노릭스. 둠노릭스……. 카이사르와 어느 여자에 대한 소문과 연관 있는 이름 같은데, 맞나? 갈리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트레바티우스는 아직 이런 사정에 어두웠다.
갈리아인과 즐겁게 담소를 나누다니 역시 라비에누스답다. 저치야말로 진짜 야만인이지! 라비에누스는 생김새가 로마인 같지 않았다. 까맣고 짧은 고수머리. 거무튀튀한 살결과 기름이 번들대는 커다란 모공. 잔혹하고 냉정한 검은 눈동자. 셈족을 닮은 매부리코와 칼로 짼 듯 펑퍼짐하게 벌어진 콧구멍. 독수리. 라비에누스는 독수리였다. 군단의 깃발 아래가 그가 속한 곳이었다.
“살 빼려고 걷기 운동하나, 트레바티우스?” 야만족 로마인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옆에 서 있는 말의 이빨만큼 큼직큼직한 치아가 훤하게 드러났다.
“부두에 내려갑니다.” 트레바티우스가 품위를 갖춰 대답했다.
“무슨 일로?”
당신과 하등의 상관도 없는 일이라고 쏘아주고 싶어 입이 근질댔지만, 트레바티우스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어찌됐든 장군이 없을 때는 라비에누스가 대장이었다. “못을 나르는 부속선을 잡으려고요. 카이사르에게 전달할 편지가 있습니다.”
“누가 보낸 거지?”
갈리아인 리타비쿠스가 눈을 빛내며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라틴어를 아는 모양이었다. 아이두이족 사이에서는 특이한 일이 아니었다. 수세대 전부터 로마 치하에 있었으니까.
“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입니다.”
“아!” 라비에누스가 가래침을 칵 뱉었다. 수년간 갈리아인들과 더불어 지내며 생긴 버릇이었다. 역겨워.
라비에누스는 폼페이우스라는 이름을 듣고 대화에 흥미를 잃은 듯 어깨를 으쓱하고 다시 리타비쿠스 쪽으로 돌아섰다. 아, 당연하다! 폼페이우스의 전처 무키아 테르티아가 놀아난 남자가 바로 라비에누스였으니까. 여하튼 키케로가 킬킬대며 단언하기로는 그랬다. 하지만 무키아 테르티아는 폼페이우스와 이혼한 뒤에 라비에누스와 결혼하지 않았다. 그는 결혼상대로는 부족한 남자였으니까. 그녀는 젊은 스카우루스와 재혼했다. 뭐, 최소한 그 당시에는 ‘젊은’ 남자였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트레바티우스는 계속 걸었다. 이윽고 프링키팔리스 가도 맨 끝의 숙영지 출입문을 빠져나와 이티우스 항에 들어섰다. 고기잡이 마을치고 지나치게 거창한 이름이다. 여기 거주하는 갈리아인인 모리니족은 여길 뭐라고 부를까? 카이사르는 군 책자에 이곳의 지명을 단순히 ‘여정의 끝’으로 표기했다. 아니, ‘여정의 시작’이었나? 아무려면 어떤가.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며 고급 양모 튜닉을 적셨다. 장발의 갈리아 지역은 날씨가 온화하고 산뜻하다더니 올해는 영 아니다! 무지하게 덥고 습했다. 그러니 이티우스 항은 늘 생선 냄새가 진동했다. 갈리아인들도 그랬다. 그는 갈리아인들이 싫었다. 이 일이 싫었다. 급기야 카이사르까지는 아니어도 키케로도 미워질 지경이었다. 키케로는 지원자가 몰려든 이 자리를 친애하는 친구에게 얻어주기 위해 직접 나서서 영향력을 행사했던 터였다. 앞날이 촉망받는 젊은 변호인 가이우스 트레바티우스 테스타를 위해.
이티우스 항은 티레니아 해안에서 흔히 보이는 작고 쾌적한 바닷가 마을들과 닮은 점이 없었다. 이런 마을이라면 술집 밖에는 포도덩굴이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천년 전 아이네이아스 왕이 트로이아 배에서 뛰어내렸던 시절의 분위기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기 마련이다. 노래와 웃음소리와 친밀함. 반면 여긴 강풍과 모래바람과 가죽끈 모양의 잡초로 뒤덮인 모래언덕과 갈매기 수만 마리가 가늘게 토해내는 사나운 울음소리뿐이었다.
그래도 거기, 그가 출항 전에 잡으려던 날렵한 부속선은 아직 선착장에 묶여 있었다. 로마인 선원들은 못 통 십여 개 중 마지막 것을 바쁘게 배에 싣는 참이었다. 부속선에 실을 짐은 그게 전부였다. 아니, 배의 크기를 감안하면 그게 실을 수 있는 전부라고 보는 편이 정확했다.
몇 해 전만 해도 가히 전설적이던 카이사르의 운은 브리타니아에서 수명이 다한 듯했다. 지금까지 지중해 전역에 휘몰아친 그 어떤 바람보다도 강력한 강풍이 두 해 연이어 불어닥치더니 카이사르의 배가 모조리 난파된 것이다. 아, 당시 카이사르는 배 800척을 아주 안전하게 배치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바람과 조류가—조류같이 낯선 현상에 누군들 제대로 대처했을까?—강하게 일더니 배들을 마치 장난감인 양 집어던져버렸다. 배들이 전부 부서지긴 했지만, 그것들은 여전히 카이사르의 배였다. 카이사르는 고함을 치지도, 악을 쓰지도, 바람과 조류에 저주를 내뱉지도 않았다. 그저 흩어진 조각들을 그러모아 배를 다시 조립했다. 그래서 못이 필요했다. 그것도 수백만 개가. 정교하게 작업할 시간도, 그럴 인재도 없었다. 겨울이 오기 전에 군대를 다시 갈리아 본토로 데려가야 했으니까.
“못질을 해!” 카이사르가 말했다. “대서양을 50킬로미터 헤쳐 갈 정도면 돼. 그뒤엔 가라앉든 말든 상관없으니까.”
로마 통신참모부로서는 일이 편해졌다. 부속선이 이티우스 항과 브리타니아 사이를 오가며 갈 때는 못 십여 통을 실어가고 올 때는 장군의 전갈을 실어왔으니까.
그러고 보니 내가 거길 직접 갈 뻔했지! 트레바티우스는 이렇게 혼잣말했다. 뜨겁고 습한 날씨에 무거운 토가까지 입었음에도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처음에 카이사르는 서류를 다룰 사람이 필요하다며 그를 브리타니아 원정팀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마지막에 아울루스 히르티우스가 가고 싶다는 의향을 밝혔으니, 세상의 모든 신들이여, 히르티우스를 영원히 보살펴주소서! 이티우스 항은 가이우스 트레바티우스에게 여정의 끝은 될 수 있을지언정 결코 여정의 시작이 될 수는 없었다.
오늘은 배에 승객이 있었다. 앞서 트레바티우스와 트로구스가 카이사르의 지시하에 이 승객의 이동 편의를 마련했으므로(카이사르의 요구가 늘 그렇듯 이번에도 엄청나게 서둘러야 했다) 트레바티우스는 그 갈리아인—정확히 말하면 그 브리타니아인—이 누군지 알았다. 만두브라키우스, 브리타니아의 트리노반테스족 왕. 로마에 협조한 대가로 카이사르의 허락을 받고 자기 백성들에게 돌아가는 길이었다. 벨가이계 갈리아인인 그의 푸른 형체는 꽤나 무시무시했다. 이끼 같은 녹색과 어슴푸레한 청색이 교차하는 바둑판무늬 옷차림에 진한 청색으로 복잡한 무늬를 그려 넣은 피부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카이사르의 말로는 브리타니아 사람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숲속에서 적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다들 그렇게 위장하며, 그러면 불과 1미터 앞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했다. 게다가 전쟁터에서 상대에게 겁을 주는 효과도 있었다.
트레바티우스는 부속선의 선장—이 호칭이 맞나?—에게 작은 붉은색 가죽통을 건네고 다시 사무소를 향해 걸었다. 저녁에 먹을 거위 구이 생각을 하니 입안에 침이 고였다. 모리니족은 별반 내세울 게 없지만 거위 요리 솜씨만큼은 온 세상을 통틀어 최고였다. 그들은 거위 목구멍에 달팽이와 빵을 우겨넣고 그 불쌍한 짐승을 계속 걷게 했으므로—어휴, 걷기라니!—부드러워진 살점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렸다.
한 줄에 여덟 명씩 앉은 부속선 노잡이들은 호르타토르의 북소리 없이도 일치된 동작으로 지치지 않고 노를 저었다. 한 시간 간격으로 물을 마시고 휴식을 취한 뒤, 출렁이는 배의 바닥에 난 골에 발을 끼우고 다시 등을 굽혔다. 선장은 방향타 역할을 하는 커다란 노와 배에 고인 물을 퍼내는 양동이가 놓인 고물에 앉아 노련한 눈빛으로 양 열을 주시했다.
브리타니아의 높고 웅장한 하얀 절벽이 차츰 가까워지자 배의 이물에 앉은 만두브라키우스 왕의 표정이 더더욱 뻣뻣하고 거만해졌다. 그는 이제 고향으로 가고 있었다. 사실 카이사르가 인질들을 장기적으로 어디에 둘지 정하기 전에 임시로 억류해두는 벨가이족 요새 사마로브리바보다 멀리 끌려간 적은 없었지만.
로마의 브리타니아 원정군 주둔지는 길쭉한 모래밭에 마련되어 있었다. 점점 좁아지는 뒤쪽은 칸티족 영토의 소택지로 이어졌다. 모래밭 뒤로 부서진 배들이—정말 많았다!—버팀대 위에 놓여 있었고, 그 주변을 로마군의 훌륭한 방어시설이 에워싸고 있었다. 도랑, 벽, 목책, 흉벽, 탑, 보루가 저 뒤로 수 킬로미터도 넘게 펼쳐진 듯싶었다.
주둔지 대장 퀸투스 아트리우스가 못과 작은 붉은색 가죽통과 만두브라키우스 왕을 전달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이쪽 세상은 태양의 전차가 이탈리아보다 훨씬 느리게 달렸으므로, 날이 밝으려면 아직 몇 시간은 더 지나야 했다. 함께 대기하고 있던 트리노반테스족 몇 명이 왕을 보고 환호하며 그들 부족의 관습대로 왕의 등을 손바닥으로 두드리고 그의 입에 입맞추었다. 폼페이우스에게서 온 작은 붉은색 가죽통과 왕은 즉시 출발할 예정이었다. 카이사르에게 닿으려면 며칠이 걸릴 터였다. 말들이 왔다. 트리노반테스족과 로마 기병 지휘관이 말에 올라 북문을 통과했다. 그러자 그곳에서 대기하던 아이두이족 기병 500명이 100명씩 다섯 줄로 대열을 정비하고 그들을 둘러쌌다. 기병 지휘관이 대열 앞으로 달려가자 뒤에는 왕과 그의 귀족들만 남았다.
“저들이 우리말을 알아듣지 못하리라고 속단하지 말게.” 만두브라키우스가 덥고 눅눅한 공기를 코로 한껏 음미하며 말했다. 고향의 냄새였다.
“카이사르와 트로구스말고는 분명히 모릅니다.” 왕의 친척 트리노벨루누스가 말했다.
“속단해선 안 돼.” 왕이 재차 말했다. “갈리아에 온 지 이제 5년이 다 되어가는데다 주로 벨가이족과 시간을 보냈어. 여자들도 데리고 살고.”
“군인들이나 쫓아다니는 매춘부 년들!”
“여자들이 달리 여자들이겠나. 여자들이 옆에서 끝없이 종알대니 알게 모르게 말을 익혔을 거야.”
바퀴 자국이 무수히 난 길이 저멀리 희미해졌다. 기병 대열은 이제 칸티족 소택지 북쪽에 자리한 거대한 떡갈나무와 너도밤나무 숲 앞에 섰다. 아이두이족 병사들이 바짝 긴장해 창을 바로 세우고 검을 매만지며 작은 원형 방패를 들어올렸다. 조심스레 숲을 지나고 나니 밀을 베고 남은 뾰족한 그루터기가 촘촘한 넓은 공터가 나타났다. 공터 중간에 까맣게 타고 뼈대만 남은 집 두세 채가 황갈색 배경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었다.
“로마인들이 곡식을 가져갔나?” 만두브라키우스가 물었다.
“칸티족 땅에서 난 것은 전부 쓸어갔습니다.”
“카시벨라우누스는?”
“수확할 수 없는 것은 태워버렸습니다. 타메사 강 이북의 로마인들은 배를 곯고 있지요.”
“우리 부족 상황은 어떤가?”
“충분히 갖고 있습니다. 로마인들이 가져간 곡식에 대해서는 돈을 받았고요.”
“그렇다면 로마인들이 다음에 먹을 곡식은 카시벨라우누스의 창고에서 나오게 하는 게 좋겠군.”
트리노벨루누스가 고개를 돌렸다. 저 뒤로 길게 펼쳐진 공터의 황금색을 배경으로, 그의 얼굴과 벌거벗은 상반신에 그려진 파란색 나선형과 소용돌이 문양이 섬뜩하게 빛났다. “카이사르에게 전하를 다시 모셔와달라고 청하면서 앞으로 로마에 협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적을 돕는 것은 명예로운 행동이 아닙니다. 저희는 전하의 결정을 따르기로 다짐했습니다, 만두브라키우스.”
트리노반테스족의 왕이 웃음을 터트렸다. “당연히 카이사르에게 협조해야지! 카시벨라우누스가 실각하면 카시족의 저 넓은 영토와 가축이 전부 우리 소유가 될 거야. 로마인들을 우리한테 유리하게 이용하세.”
로마 기병 지휘관이 그들 쪽으로 왔다. 길이 평탄하고 그가 타고 있는 말도 기운이 좋아서, 말이 마치 경쾌한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좀더 가면 카이사르가 남겨둔 좋은 야영지가 있소.” 그가 아트레바테스족 억양이 밴 벨가이족 언어로 천천히 말했다.
만두브라키우스가 옆의 친척을 향해 눈썹을 치켜세웠다. “내가 아까 뭐랬나?” 그는 그러고 나서 다시 로마인을 보고 물었다. “상태는 온전하오?”
“여기서 타메사 강 사이는 전부 온전하오.”
타메사 강은 깊고 넓으며 물살이 센 브리타니아의 큰 강이었다. 하지만 감조구역이 끝나는 지점에 배를 타지 않고 건널 수 있는 구간이 있었다. 이 구간의 북쪽 둑부터 카시족의 영토였지만, 카시족은 굳이 이곳이나 이곳 너머의 새까맣게 타버린 들판을 차지하려 들지 않았다. 로마군 대열은 새벽에 타메사 강을 건너 구릉진 시골길을 달렸다. 언덕에는 여전히 나무가 무성했지만 저지대는 경작지나 목초지로 쓰이고 있었다. 그들은 타메사 강 너머 동쪽을 향해 60여 킬로미터를 더 달려 트리노반테스족의 영토에 당도했다. 카이사르의 주둔지는 카시족과 트리노반테스족의 경계에 자리한 너른 언덕 위에 자리해 있었다. 로마가 이방의 땅에 세운 마지막 보루였다.
만두브라키우스는 그 위대한 자를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카이사르의 요구에 따라 인질로 보내졌지만, 막상 사마로브리바에 도착하니 카이사르는 알프스 산맥을 넘어 까마득히 먼 이탈리아 갈리아로 떠난 뒤였다. 카이사르는 거기서 곧장 이티우스 항으로 갔다. 곧바로 출항할 생각이었다. 사람들은 그해 여름이 유난히 뜨거울 거라 했고 이는 그 위험천만한 해협을 건너기에 유리한 징조였다. 하지만 일은 계획대로 풀리지 않았다. 트레베리족이 레누스 강 건너편의 게르만족과 접촉을 시도하고 있었고, 트레베리족의 두 정무관—‘베르고브레투스’로 불렸다—은 의견 충돌을 벌였다. 킹게토릭스는 로마의 요구를 받아들이자고 주장한 반면, 인두티오마루스는 카이사르가 브리타니아로 가 있는 사이에 게르만족과 세를 합쳐 로마에 맞서는 것만이 답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자 카이사르는 직접 4개 군단을 경무장하여 늘 그랬듯이 갈리아인들이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행군해 나타났다. 반란은 일어나지 않았고, 두 베르고브레투스는 어쩔 수 없이 서로 악수를 나누었다. 카이사르는 인두티오마루스의 아들을 포함해 인질들을 더 거둬들여 이티우스 항으로 돌아갔는데, 이번에는 작은 강풍이 북서쪽에서 스무닷새 동안 쉼 없이 몰아쳤다. 이어 아이두이족의 둠노릭스가 말썽을 일으켰고—그는 이 일로 죽음을 맞았다—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함대가 예정보다 두 달이나 늦게 출항하면서 위인은 신경이 잔뜩 날카로워졌다.
카이사르는 여전히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였다. 보좌관들은 이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카이사르가 만두브라키우스를 맞이하러 나왔을 때 카이사르와 매일 접촉하는 사람들말고는 아무도 그런 낌새를 알아채지 못했다. 로마인치고 꽤 장신인 카이사르는 만두브라키우스를 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보았다. 하지만 카이사르 쪽이 더 날씬했다. 여느 로마인들처럼 잘 발달한 장딴지 근육이 눈에 띄는 우아한 사람이었다. 로마인들이 늘 말하는 것처럼, 두꺼운 장딴지는 잦은 걷기와 행군의 결과였다. 솜씨 좋은 장인이 만든 듯한 가죽 판갑과 치렁치렁 가죽끈이 매달린 킬트를 입었고, 장검이나 단도를 차지 않은 대신 자신의 높은 임페리움을 드러내는 심홍색 매듭 끈을 판갑 전면에 느슨하게 걸치고 있었다. 여느 갈리아인 못지않은 황금빛 머리칼과 하얀 피부! 숱이 적고 옅은 금빛 머리칼은 정수리에서 앞쪽으로 빗어 내렸고, 눈썹 역시 똑같이 옅은 색이었으며, 피부는 거칠고 주름이 패어 오래된 양피지 색을 띠었다. 입술은 도톰하고 육감적이면서도 장난스러운 구석이 있었고 코는 길고 뭉툭했다. 하지만 카이사르를 알려면 반드시 눈을 보아야 한다고 만두브라키우스는 생각했다. 굉장히 옅은 파란색 눈동자에 검은 띠가 얇게 둘린 그 눈은 마치 상대를 뚫을 듯했다. 냉철하며 모든 것을 다 꿰뚫어보는 듯한 눈빛. 카이사르는 트리노반테스족이 로마에 협력하려는 진짜 이유를 알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만두브라키우스는 생각했다.
“이곳은 당신 나라이니 내가 당신을 환영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군요, 만두브라키우스.” 카이사르가 유창한 아트레바테스어로 말했다. “그보다는 당신이 나를 환영해주기를 바라겠소.”
“기꺼이 환영하겠소, 가이우스 율리우스.”
위인이 건강한 치아를 드러내며 웃음을 터트렸다. “그냥 카이사르로 부르시오. 다들 나를 그냥 카이사르로 알고 있소.”
불현듯 어디선가 콤미우스가 나타나 카이사르 곁에 서더니 만두브라키우스를 향해 씩 미소를 짓고 한 걸음 앞으로 나와 그의 양 어깻죽지 사이를 두드렸다. 이어 인사의 뜻으로 입을 맞추려 했지만, 만두브라키우스는 고개를 돌려 피했다. 벌레 같은 놈! 로마의 꼭두각시! 카이사르의 애완견. 콤미우스는 아트레바테스족에게는 왕이지만 갈리아에게는 배신자였다. 카이사르의 지시를 받드느라 발바닥에 불이 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카이사르에게 만두브라키우스를 인질로 추천한 것도 그였고, 브리타니아 왕들 사이에 불화를 조장하고 카이사르가 브리타니아에 진출할 발판을 내준 것도 그였다.
로마 기병 지휘관이 앞으로 나왔다. 그는 앞서 부속선 선장이 로마의 신들이 내려준 선물인 양 경건하게 건네주었던 작은 붉은색 가죽통을 카이사르에게 내밀었다. “가이우스 트레바티우스가 전해주었습니다.” 그는 카이사르의 얼굴에서 잠시도 눈길을 거두지 않은 채 경례를 하고 뒷걸음질로 물러섰다.
다그다 신이시여, 저들은 이자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요! 만두브라키우스는 생각했다. 사마로브리바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은 과연 사실이야. 저들은 이자를 위해 목숨도 바치리라. 그리고 이자는 그 사실을 알고 잘 이용하고 있어. 카이사르가 기병 지휘관에게 미소를 짓고 직접 이름을 불러 대답하는 것을 보라. 기병 지휘관은 이 순간을 두고두고 간직하며 훗날 미래의 손자, 손녀들에게 이야기하겠지. 하지만 콤미우스는 카이사르를 사랑하지 않았다. 장발의 갈리아인이 카이사르를 사랑할 수는 없었다. 콤미우스는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사랑했다. 콤미우스가 노리는 건 정확히 뭘까? 카이사르가 로마로 영원히 떠날 때 갈리아의 지고왕(至高王)이 되는 것?
“이따가 만찬을 들며 이야기 나눕시다, 만두브라키우스.” 카이사르는 이렇게 말하고, 작별인사의 뜻으로 작은 붉은색 가죽통을 들어 보이더니 그 자리를 떠나 튼튼한 가죽 막사를 향해 걸어갔다. 막사는 주둔지에 인위적으로 쌓아올린 둔덕 위에 세워져 있었다. 막사 앞에 드높이 걸린 장군의 심홍색 깃발이 바람에 힘차게 펄럭였다.
막사 내부에 구비된 물품은 하급 군관의 숙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접이식 의자 및 탁자 몇 개와 순식간에 해체되는 칸막이식 두루마리 보관함. 그중 한 탁자에 장군의 개인 비서 가이우스 파베리우스가 코덱스를 펼친 채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카이사르는 두루마리가 말리지 않도록 손이나 문진으로 고정해야 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겨 낱장으로 된 판니우스 종이 사용을 선호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낱장을 한데 모아서 왼쪽 여백을 바느질로 엮게 했다. 한 장씩 차례차례 넘기며 서류를 끝까지 훑어볼 수 있게 만들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는 이것을 코덱스라고 불렀으며, 이 방식을 사용하면 사람들이 두루마리 형태일 때보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을 더 많이 읽으리라고 단언했다. 또한 각 장의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글씨를 양옆으로 길게 쓰는 대신 3단으로 나누어 썼다. 이 방식을 처음 도입한 것은 그가 반(半)문맹 벌레들의 온상이라고 부르던 원로원에 제출하는 긴급 공문에서였지만, 이 편리한 코덱스 방식은 차츰 카이사르의 서류 전체를 장악해갔다. 하지만 코덱스는 한 가지 심각한 단점이 있어 두루마리를 완전히 대체할 수가 없었다. 자주 사용하면 낱장이 뜯겨나가 쉽게 분실되었던 것이다.
다른 탁자에는 카이사르의 가장 충성스러운 피호민 아울루스 히르티우스가 앉아 있었다. 태생은 초라하지만 능력이 뛰어났던 히르티우스는 자신의 운명을 온전히 카이사르의 별에 걸었다. 체격이 작고 민첩한 그는 문서에 파묻혀 지내는 시간 못지않게 전투와 전쟁의 긴박함도 즐겼다. 그는 카이사르 군대의 로마 통신참모부를 운영하면서, 장군이 이 세상의 서단에 자리한 타메사 강에서 북쪽으로 60여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도 로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반드시 파악하고 있도록 도왔다.
장군이 막사에 들어서자 두 사람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다. 하지만 둘 다 미소는 짓지 않았다. 장군은 요즘 몹시 날카로운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기분이 사뭇 다른 듯했다. 장군이 그들을 향해 미소를 짓더니 작은 붉은색 가죽통을 흔들어 보였다.
“폼페이우스에게서 온 편지일세.” 장군은 이렇게 말하며 이 방에서 유일하게 아름다운 가구로 향했다. 그의 높은 지위를 상징하는 상아 대좌였다.
“무슨 내용일지 다 아시잖습니까.” 이제 히르티우스도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카이사르가 인장을 뜯고 뚜껑을 비틀어 열었다. “하지만 폼페이우스의 글은 개성이 뚜렷해서 읽기가 재미있어. 요즘은 내 딸과 결혼하기 전처럼 경솔하고 투박하진 않지만, 여전히 자기만의 개성을 간직하고 있지.” 카이사르가 가죽통에 두 손가락을 집어넣어 폼페이우스의 두루마리를 꺼냈다. “세상에, 편지가 무척 길군!” 그는 이렇게 소리치더니 허리를 숙여 나무 바닥에 떨어진 다른 두루마리를 집어들었다. “두 통이군.” 그리고 각 편지 가장자리를 유심히 살피더니 낮게 중얼거렸다. “하나는 8월, 다른 하나는 9월에 썼어.”
카이사르는 상아 대좌 옆에 놓인 탁자에 9월 편지를 올려놓았다. 하지만 8월 편지를 바로 펴지는 않았다. 그는 턱을 들고 막사 출입구의 휘장 사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막사에 빛이 충분히 들도록 휘장은 활짝 젖혀져 있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는 걸까, 밀밭 몇 뙈기와 털북숭이 가축 몇 마리를 놓고 호메로스의 시구에나 등장할 법한 시퍼런 야만족들과 겨루면서?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고색창연한 전차를 몰고 전투에 나설까? 으르렁거리는 마스티프 투견과 그를 찬송하는 하프 연주자까지 옆에 싣고서?
나는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안다. 이것은 내 존엄이 시키는 일이다. 지난해에 이 미개한 땅의 미개한 민족은 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완전히 물리쳤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카이사르를 이겼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무도 카이사르를 이길 수 없음을 보여주려는 일념으로 이곳에 돌아왔다. 카시벨라우누스로부터 항복을 받고 조약을 체결해내면 나는 즉시 이 미개한 땅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 하지만 저들은 나를 기억하리라. 내가 카시벨라우누스의 하프 연주자에게 새로운 소재거리를 주었으니까. 그는 로마의 등장과 전설적인 드루이드의 서방으로 사라진 전차들을 노래하리라. 나는 장발의 갈리아에 돌아가서도 그곳의 모든 이들이 나를—그리고 로마를—인정할 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않으리라. 왜냐면 내가 로마이니까. 하지만 나보다 여섯 살이 많은 내 사위는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 로마가 될 수 없다. 그러니 착한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여, 문단속 잘하시오. 당신이 로마의 일인자로 남아 있을 기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카이사르가 간다.
카이사르는 자리에 앉아 등을 꼿꼿이 편 뒤 오른발은 앞으로 내밀고 왼발은 상아 대좌의 X자 모양 가로대 밑에 끼웠다. 그리고 폼페이우스 마그누스가 8월에 쓴 편지를 펼쳤다.
이런 소식을 전하기 정말 싫지만, 카이사르, 고등 정무관 선거가 열릴 기미가 아직도 영 보이지 않네. 오, 로마는 계속 존재할 테고 심지어 정부라는 것도 있을 거야. 호민관들은 어찌어찌 뽑았으니까. 서커스가 따로 없었지! 카토가 무대에 올랐네. 처음에는 자기가 평민 출신 법무관임을 내세워 평민회 선거를 막더니, 그다음엔 특유의 듣기 싫은 목소리로 투표용 서판을 일일이 확인하겠다고 엄포를 놓았어. 투표 결과를 조작한 후보를 발견하면 자기가 직접 기소하겠다고 말이야. 후보들은 혼비백산했지!
물론 이 모든 일은 내 어리석은 조카 멤미우스가 아헤노바르부스와 맺은 협약에서 비롯되었다네. 우리 로마 집정관 선거의 역사가 뇌물로 얼룩졌긴 해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많은 뇌물을 주고받은 선거는 아마 지금껏 없었을 걸세! 키케로는 이번 선거에서 주고받은 돈의 액수가 어찌나 어마어마한지 금리가 4퍼센트에서 8퍼센트로 올랐다고 농을 한다네. 농이긴 하나 아주 틀린 말도 아니지. 내 생각에 이번 선거의 감독을 맡은 집정관 아헤노바르부스는—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는 파트리키라서 자격이 없다네—자기가 선거판을 좌지우지할 수 있으리라고 착각했던 것 같아. 그가 원한 건 내 조카 멤미우스와 도미티우스 칼비누스를 내년 집정관으로 세우는 거였지. 그 작자들—아헤노바르부스, 카토, 비불루스—은 요즘도 자네의 속주 관할권과 군사 지휘권을 박탈하기 위해 자넬 기소할 거리를 찾아서 개처럼 똥밭을 킁킁거리고 돌아다닌다네. 양 집정관과 호전적인 호민관 몇 명을 자기네 편으로 확보하면 그 목표를 이루기가 훨씬 수월하겠지.
일단은 카토 이야기부터 마무리짓기로 하세. 이것참,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내년 집정관과 법무관을 뽑기는 아예 그른 것 같아. 그러면 최소한 호민관들이라도 있어야 하잖나? 솔직히 고등 정무관들이야 없어도 그만이지. 나랏돈 주머니를 원로원이 꽉 쥐고 호민관들이 필요한 법을 제정해주면, 집정관과 법무관 들을 누가 그리워하겠나? 자네나 내가 집정관이 된다면 모를까. 그거야 두말하면 입 아픈 소리고.
결국 호민관 후보들이 단체로 카토를 찾아가 반대를 철회해달라고 통사정했네. 솔직히, 카이사르, 그 상황에서 카토가 어떻게 자기 마음대로만 했겠나? 그런데 호민관 후보들은 거기서 한 발짝 더 나갔어. 카토에게 새로운 제안을 했지. 카토가 선거 개최에 동의하고 직접 감독까지 맡아주면 후보들이 카토에게 각각 50만 세스테르티우스씩 맡기겠다고 말이야! 만일 카토가 선거 결과를 조작한 후보를 발견하면 벌금을 매기는 차원에서 그 후보에게는 돈을 돌려주지 말라는 거였지. 카토는 아주 흡족해서 그 제안에 동의했다네. 하지만 영리하게도 돈을 직접 맡지는 않았어. 그 대신 법적 효력이 있는 어음을 받았다네. 그들이 자기를 횡령 혐의로 고발하지 못하도록 말이야. 참 영악하지?
그리고 마침내 투표일이 되었네. 원래 예정일보다 장날이 세 번 더 지났으니 그렇게 많이 늦은 건 아니었지. 카토는 매의 눈으로 투표장을 살폈다네. 자네가 그자 코의 생김새를 떠올려보면 적절한 비유라고 인정할 거야! 결국 카토는 부정행위를 범한 후보를 하나 발견했고, 그에게 사퇴하고 벌금을 내라고 명령했네. 아마도 그는 이 엄청난 부정부패를 목도한 로마 시민들이 하나같이 놀라서 나자빠지리라고 생각했을 걸세.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어. 평민 지도자들은 격분했지. 법무관이 자기 법정에서 재판관 역할을 하지 않고 정식으로 지명되지도 않은 선거 관리관으로 나서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위법 행위라고 말이야.
상업계의 든든한 기둥인 기사들은 카토의 이름만 들어도 치를 떤다네. 또 상당수 로마인들은 반쯤 벗고 다니며 늘 숙취에 시달리는 그를 미친놈으로 여기지. 어쨌거나 그는 부당취득 법정의 법무관일세! 과거에 속주 총독을 지냈을 정도로 자기보다 위계서열이 높은 자도 서슴없이 자기 재판정에 세운다네! 그러니까 내 전처와 결혼한 스카우루스 같은 자를 말이야! 스카우루스는 아주 유서 깊은 파트리키 가문 사람이잖아! 그런데도 카토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아는가? 스카우루스의 재판을 아주 끝없이 질질 끌고 있어. 하기야 늘 술에 절어 지내는 그가 재판관으로서 진실을 가릴 수나 있겠나. 재판정에 갈 때 신발도 신지 않고, 토가 안에 튜닉도 안 입고, 눈알이 볼까지 축 처진 모습이라네. 공화정 초기에 귀족들이 신발이나 튜닉을 착용하지 않았다는 건 나도 알겠어. 하지만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할 자들이 항상 술에 전 채로 정치 경력을 추구했다는 말은 내 생전 들어보지 못했네.
한번은 내가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에게 카토 좀 괴롭혀달라고 부탁했더니 클로디우스가 정말 시도를 해보긴 했네. 하지만 결국엔 그도 두 손 들었어. 그러고선 나한테 와서 하는 말이, 카토를 정말 괴롭히고 싶으면 갈리아에서 카이사르를 다시 데려오라는군.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는 빌려준 돈을 수금하러 갈라티아로 떠났다가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지난 4월에 스카우루스의 저택을 무려 1천450만 세스테르티우스에 사들였다네! 요즘 부동산 시세가 가히 환상적이야. 베스타 신녀가 남자와 자보면 어떨까 상상하는 것만큼 짜릿할걸. 요강 딸린 벽장도 50만 세스테르티우스에 팔 수 있을 정도라네. 하지만 스카우루스는 그 돈이 간절히 필요했어. 조영관 재임 시절에 경기대회를 연 이래로 줄곧 쪼들려 지냈거든. 작년 속주에 파견되었을 때 주머니 좀 불려보려다 결국 카토의 법정까지 가게 된 거지. 카토의 법정에서는 일이 더디게 진행되니까, 그가 법무관 직에서 물러나기 전까지는 죽 거기 붙들려 지낼 걸세.
반면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의 주머니에선 돈이 흘러넘친다네. 그가 집을 한 채 더 마련한 건 사실 당연한 일이야. 키케로가 자기집을 개축하면서 건물을 지나치게 높이 올리는 바람에 클로디우스의 집 조망은 엉망이 되었거든. 키케로가 그에게 나름 복수를 한 거야, 그렇지? 키케로의 궁전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저급한 취향의 전형일세. 그런 주제에 내 복합건물 극장 뒤편에 붙여서 새로 지은 작고 아담한 빌라를 요트 뒤에 달린 꼬마 돛단배에 빗대더라니까!
보아하니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의 돈은 브로기타로스 왕자에게서 나온 것 같네. 돈을 직접 수금하는 것만큼 짭짤한 게 없다니까. 요즘 같은 시절엔 내가 클로디우스의 표적이 아닌 게 어찌나 다행인지 모르겠어. 자네가 갈리아로 떠나고 얼마 안 되어 클로디우스와 그를 따라다니는 깡패들이 나를 지치게 하던 그 몇 년간은 도저히 못 버티겠다 싶었네. 집밖에 나설 엄두를 내지 못했어. 하지만 내가 밀로를 고용해서 똑같이 깡패를 몰고 다니게 한 건 분명히 실수였네. 밀로는 그 일로 배에 헛바람이 가득찼어. 그래, 입양되었긴 해도 밀로는 어쨌거나 안니우스 가문 사람이야. 가문의 이름대로 모루를 드는 일이나 하면 딱 알맞을 덩치만 큰 멍청이지.
밀로가 어쨌는지 아는가? 날 찾아와서 한다는 말이, 집정관 선거에 출마할 테니 자기를 밀어달래! 그래서 “친애하는 밀로, 그럴 수 없어! 그건 자네와 자네 깡패들이 날 위해 일한다는 걸 세상에 인정하는 꼴이잖나!”라고 말했지. 그랬더니 자기와 자기 깡패들이 나를 위해 일한 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인데 그게 무슨 문제냐는 거야. 결국 서로 껄끄러운 말을 주고받고서야 밀로가 물러갔네.
키케로가 자네 사람인 바티니우스의 무죄판결을 끌어내줘서 기쁘네. 법정 재판장이었던 카토는 잔뜩 골이 났을 거야! 자네를 끓는 죽에 처박을 수만 있다면 하데스의 문을 지키는 케르베로스의 머리 하나를 치래도 서슴지 않을 자이니까. 바티니우스 재판에서 이상했던 점은 키케로가 처음에 그를 무척 싫어했다는 거야. 자네한테 수백만을 빚진 탓에 자네 똘마니들까지 변호해야 한다고 우리 위대한 변호인께서 투덜대는 소리를 자네도 들었어야 했는데! 그런데 재판을 진행하며 둘이 자꾸 어울려 지내더니 뭔가 달라졌어. 이젠 서로가 없으면 하루도 못 살 것처럼 구는 여학생들 같다니까. 뭔가 이상한 한 쌍이긴 한데, 둘이 낄낄대는 모습이 퍽 좋아 보이긴 해. 입심 대단한 재담꾼들이 만나서 나날이 기술을 연마하고 있다네.
지금 우린 가장 뜨거운 여름을 보내고 있네. 올해보다 더웠던 때는 없었던 것 같아. 비조차 내리지 않네. 농부들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 그런데 그 이기적인 인테람나 놈들이 벨리누스 호수에서 나르 강으로 물길을 내서 관개에 이용하기로 했다는군. 문제는 벨리누스 호수에서 물이 사라지자마자 로세아 루라 땅이 다 말라버렸다는 거야. 자네 상상이 가는가? 이탈리아에서 가장 풍요로운 목초지를 망친 걸세! 레아테에서 늙은 악시우스가 나를 찾아와 원로원이 인테람나 사람들에게 호수에 다시 물을 채우라는 명령을 내려줄 것을 부탁하더군. 나는 악시우스의 부탁대로 이 일을 원로원으로 가져갈 생각이야. 필요하다면 내 호민관 하나를 시켜서 법을 제정하게 할 걸세. 자네나 나 같은 군인들은 로세아 루라가 로마 군대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잖아. 그렇게 완벽한 노새들을 그렇게 많이 번식시킬 수 있는 곳이 또 어디 있겠나? 가뭄 문제도 중요하지만 로세아 루라 문제 역시 중요해. 로마에는 노새가 꼭 필요하니까. 하지만 인테람나에는 멍청이들만 득시글하지.
이제 아주 이상한 이야기를 할까 해. 최근에 시인 카툴루스가 죽었네.
카이사르는 나지막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히르티우스와 파베리우스가 카이사르를 흘끗 바라보았지만, 그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보자 고개를 숙이고 하던 일로 돌아갔다. 눈앞을 뿌옇게 흐리던 안개가 걷히자 카이사르는 다시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이 일에 관해 카툴루스의 부친이 쓴 편지가 이티우스 항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 내 생각엔 자네가 사건의 내막을 미리 알고 싶을 것 같아서 말일세. 내가 보기엔 클로디아에게 차인 뒤로 카툴루스는 사람이 영 달라졌더랬어. 카일리우스의 재판에서 키케로가 클로디아를 뭐라고 불렀지? ‘팔라티누스의 메데이아’랬지. 좋은 표현이야. 하지만 나는 ‘싸구려 클리타임네스트라’라는 별명이 더 마음에 들어. 정말 클로디아가 욕조에서 켈레르를 살해했을까? 어쨌든 사람들은 그렇게 수군댄다네.
자네가 신임 공병대장으로 마무라를 지명하자 카툴루스가 자네를 겨냥하여 그 사악하기 이를 데 없었던 풍자시를 쓰기 시작했고, 이에 자네가 몹시 격분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네. 이 세상에서 자네를 가장 믿고 따르는 율리아조차도 그 풍자시들을 읽고 깔깔댔지. 율리아 말에 따르면 카툴루스가 자네를 절대 용서하지 않은 이유는 자네가 마무라라는 형편없는 시인에게 능력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자리를 줬기 때문이래. 카툴루스는 내 조카 멤미우스의 보좌관 자격으로 비티니아에서 임무를 마친 후 주머니가 텅 비어서 돌아왔어. 처음에는 재산을 크게 모으리라고 기대하며 떠났는데 말일세. 카툴루스는 가기 전에 나한테 미리 물어봤어야 해. 그러면 내가 멤미우스는 물고기 똥구멍처럼 꽉 막힌 인간이라고 말해줬을 텐데. 반면에 자네 수하의 하급 군관들은 대부분 보수를 후하게 받는다지.
자네가 그 상황에서 잘 처신했음을 아네. 자네야 늘 그렇잖아? 카툴루스의 부친이 자네의 좋은 친구인 게 참으로 다행이었어. 그가 아들을 베로나로 불러서 자기 친구 카이사르에게 공손히 대하라고 말하자 카툴루스는 자네에게 사과했지. 그뒤로 자네는 이 불쌍한 청년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버렸어. 자네가 어떻게 그리하는지 모르겠네. 율리아 말로는 타고난 거라더군. 어쨌든 카툴루스는 로마로 돌아왔고 카이사르에 대한 풍자시는 더이상 쓰지 않았지. 하지만 그는 변했어. 내 눈으로 직접 봤지. 율리아는 평소 로마의 모든 시인과 극작가 들에게 둘러싸여 지내거든. 시간을 함께 보내기 좋은 사람들인 걸 인정할 수밖에 없더군. 카툴루스는 내면에 남은 불씨가 없는, 그저 지치고 슬픈 모습이었지. 자살한 게 아닐세. 기름이 다한 등잔처럼 그냥 서서히 꺼졌어.
기름이 다한 등잔처럼……. 종이 위의 글씨가 다시 흐려졌다. 카이사르는 눈가에 고인 눈물이 가시기를 기다렸다.
그러지 말아야 했어. 카툴루스는 취약한 사람이었고, 나는 그 점을 이용했다. 그는 아버지를 사랑하는 착한 아들이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순종했다. 나는 그를 만찬에 초대해 내가 그의 작품을 잘 알 뿐만 아니라 문학적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냄으로써 그가 입은 상처를 잘 달래주었다고 생각했다. 참으로 유쾌한 식사였다. 그는 놀랍도록 똑똑했고 나는 그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말아야 했다. 나는 그의 영혼, 그의 존재 이유를 파괴했다. 하지만 내게 달리 어쩔 도리가 있었을까? 그는 내게 다른 선택지를 남기지 않았다. 아무도 카이사르를 웃음거리로 만들어선 안 된다. 설사 그가 로마 역사상 가장 훌륭한 시인이라고 해도. 그는 내 존엄을 깎아내렸다. 로마가 누리는 영광 중 정당한 나의 몫을 깎아내렸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은 영원할 테니까. 그가 나를 공개적으로 웃음거리로 만들 바엔 차라리 언급조차 하지 말았어야 했다. 결국 이건 썩은 고기 마무라한테만 좋은 일이 되었다. 형편없는 시인이자 사악한 인간. 하지만 마무라는 내 군대에 물품을 빈틈없이 잘 조달할 테고, 노새몰이꾼 벤티디우스가 그를 잘 감시하겠지.
눈물이 가셨다. 자명한 논리였다. 카이사르는 이제 다시 편지를 읽을 수 있었다.
율리아는 건강하다고 쓰고 싶지만, 사실 많이 안 좋다네. 내가 율리아한테 자식은 더 필요 없다고 했어. 무키아에게서 얻은 두 아들이 건강하고 딸도 파우스투스 술라와 결혼해 잘 살고 있으니까. 파우스투스 술라는 이제 원로원에 들어갔어. 좋은 청년일세. 술라와 닮은 점이 하나도 없긴 하지만. 어쩌면 그게 나은 일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여자들은 아기를 갖는 것에 집착하잖아. 율리아는 이제 임신한 지 6개월쯤 되었네. 내가 집정관에 출마했을 때 끔찍한 유산을 겪은 뒤로 줄곧 상태가 안 좋아. 사랑스러운 나의 율리아! 자네는 내게 보물을 주었네, 카이사르. 이 감사한 마음을 나는 언제까지나 간직할 거야. 크라수스와 속주를 맞바꾼 건 당연히 율리아의 건강 때문이었네. 시리아는 내가 직접 가야 하지만, 히스파니아는 여기 로마에서 율리아 곁을 지키며 보좌관들을 통해 통치할 수 있으니까. 아프라니우스와 페트레이우스는 아주 믿을 만해. 내 허락 없이는 방귀도 뀌지 않지.
내 존경하는 집정관 동료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두번째 임기에는 첫번째 임기에 비해 그와 훨씬 더 잘 지냈다는 건 인정하겠네) 크라수스가 요즘 시리아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군. 듣기로는 히에로솔리마에 자리한 유대인 대사원에서 2천 탈렌툼에 달하는 금을 빼돌렸다던데. 오, 냄새만으로 황금을 찾아내는 인간을 당할 재간이 있겠나. 나 역시 대사원에 들어가본 적이 있네. 난 그곳이 두려웠어. 세상에 금이 거기에만 있는 것도 아니잖아. 차라리 금을 내주면 내줬지 훔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안 들던데.
유대인들은 크라수스에게 정식으로 저주를 내렸어. 게다가 크라수스는 지난 11월의 이두스에 로마를 떠날 때도 카페나 성문 한가운데에서 정식으로 저주를 받았지. 호민관 아테이우스 카피토가 크라수스가 가는 길을 떡하니 가로막고 앉아 머리카락이 쭈뼛 서도록 끔찍한 저주를 읊은 거야. 결국 내 릭토르들을 써서야 카피토를 옮길 수 있었네. 크라수스는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로부터 반감을 샀어. 게다가 그는 파르티아인 같은 적들이 얼마나 큰 골칫거리인지 제대로 파악이나 하는지 모르겠어. 아직도 파르티아의 철갑 기병을 아르메니아의 철갑 기병과 같게 생각해. 철갑 기병을 그림으로만 봤을 뿐이니까. 사람이랑 말이 둘 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쇠사슬 갑옷을 걸친 것뿐 아니냐고 할걸. 으으!
며칠 전에 자네 어머니를 뵈었네. 만찬에 오셨지. 참 대단한 여인이셔! 훌륭한 분별력 때문만이 아닐세. 여전히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아름다우시더군. 올해 일흔을 넘겼다고 하시던데 말일세. 전혀 마흔다섯 살 이상으로 보이지 않았어. 율리아가 미인으로 태어난 이유를 알겠네. 아우렐리아도 율리아를 몹시 걱정해. 하지만 원체 속내를 요란스레 드러내는 분이 아니지. 자네도 잘 알 거야.
별안간 카이사르가 웃음을 터트렸다. 히르티우스와 파베리우스는 놀라서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줄곧 신경이 곤두서 있던 장군이 저렇듯 기분좋게 웃는 모습은 퍽 오랜만이었다.
“아, 이것 좀 들어보게!” 카이사르가 두루마리에서 고개를 들며 외쳤다. “이건 공문에서 아무도 언급하지 않은 이야기야, 히르티우스!”
카이사르는 고개를 숙이고 소리 내어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언제 보나 놀라운 능력이었다. 구불구불한 글씨들을 한눈에 판별해 읽을 수 있는 사람을 그들은 카이사르 외엔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카이사르가 겨우 웃음을 참으며 읽어 내려갔다. “카토와 호르텐시우스 얘기를 해야겠군. 호르텐시우스는 이제 전처럼 젊지 않아. 루쿨루스의 죽기 전 모습과 약간 비슷해졌지. 이국적인 요리와 포도주 원액과 아나톨리아 양귀비나 아프리카 버섯 같은 이상한 음식을 지나치게 많이 먹어. 오, 요즘에도 법정에 서긴 하지만 변호인으로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과는 실력이 판이하게 다르지. 그가 올해 몇인가? 일흔이 다 됐지?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법무관과 집정관을 몇 년 늦게 지냈어. 내가 서른여섯에 집정관 자리에 오르는 바람에 자기 집정관 취임이 일 년 늦어졌다고 아직도 나한테 앙심을 품고 있다네.
어쨌거나 호르텐시우스는 카토가 호민관 선거에서 보인 일련의 행동이 모스 마이오룸의 위대한 승리라고 생각했어.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어째서 우린 항상 발레리우스는 잊어버릴까?—가 공화국 건립의 영광을 누린 이래 최고의 승리였다나. 그래서 호르텐시우스는 카토를 만나러 뒤뚝뒤뚝 걸어가서 그의 딸 포르키아와 결혼하고 싶다고 했네. 몇 년 전 루타티아가 죽은 이래 재혼 생각이 없었는데 카토가 평민들을 다루는 솜씨를 보고 마음이 달라졌다면서 말이야. 호민관 선거가 열린 날 밤에 유피테르 옵티무스 막시무스가 꿈에 나타나서 꼭 마르쿠스 카토 집안과 혼사를 맺으라고 했대나 봐.
물론 카토는 수락할 수 없었지. 내가 열일곱 살 난 율리아와 결혼을 한다고 그가 얼마나 난리를 피웠나. 포르키아는 심지어 그보다도 어린걸. 게다가 카토는 전부터 포르키아의 결혼 상대로 자기 조카 브루투스를 점찍어뒀잖아. 호르텐시우스도 재산이 상당하지만 어디 브루투스에 비하겠나? 그래서 카토는 거절했네. 포르키아와의 결혼은 안 된다고 말이야. 호르텐시우스는 그러면 도미티우스 가문의 딸들 중 하나와 결혼할 순 없겠냐고 물었어. 아헤노바르부스와 카토의 누이 사이에서 태어난 그 추녀들 말일세. 주근깨투성이에 머리는 마치 장작불 같은 딸들이 몇이나 되더라? 둘? 셋? 넷? 상관없어. 어차피 카토가 그것도 절대 안 된댔으니까.”
카이사르가 눈동자를 굴리며 고개를 들었다.
“이야기가 어디로 흘러갈지 종잡을 수 없네요. 여하튼 흥미진진합니다.” 히르티우스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말일세.” 카이사르가 이렇게 말하고 다시 편지를 읽었다. “호르텐시우스는 노예들의 부축을 받으며 비틀비틀 집으로 돌아갔네. 상심이 컸지. 하지만 그는 다음날 다시 카토를 찾아왔네. 기막힌 생각이 떠올랐거든. 호르텐시우스가 물었어. 포르키아나 도미티아와는 결혼할 수 없다고 했으니까, 그 대신 카토의 아내와 결혼해도 되겠느냐고.”
히르티우스가 기겁했다. “마르키아요? 필리푸스의 딸 말입니까?”
“맞아, 카토는 마르키아와 결혼했지.” 카이사르가 진중하게 대답했다.
“사령관님 조카딸이 필리푸스와 결혼했지요? 이름이 아티아인가요?”
“맞아. 필리푸스는 아티아의 첫번째 남편 가이우스 옥타비우스와 친한 친구였지. 그래서 애도 기간이 지나고 나자 아티아와 결혼했어. 아티아가 결혼할 때 친딸과 친아들뿐만 아니라 의붓딸까지 데리고 들어갔으니, 필리푸스는 마르키아를 기쁜 마음으로 출가시켰을 거야. 그때 필리푸스가 나한테 그랬지. 자기는 딸을 카토에게 내줌으로써 내 진영과 보니파 양쪽에 발을 담근 셈이라고 말이야.” 카이사르가 눈가를 닦으며 말했다.
“마저 읽어주십시오.” 히르티우스가 말했다. “뒷내용이 궁금해죽겠습니다.”
카이사르는 편지를 이어 읽었다. “카토는 좋다고 대답했어! 정말일세, 카이사르, 카토가 좋다고 대답했어! 마르키아가 자기와 이혼하고 호르텐시우스와 재혼하는 걸 허락했단 말일세. 단, 필리푸스도 허락해야 한다는 단서를 붙였지. 두 사람은 그길로 필리푸스를 찾아가서, 마르키아가 퀸투스 호르텐시우스와 결혼해 그 늙은이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도록 카토와 그녀의 이혼을 허락해달라고 청했어. 필리푸스는 턱을 긁적거리더니 좋다고 했어! 단, 식장에서 카토가 신부의 손을 직접 건네주어야 한다는 단서를 붙여서! 수백만 세스테르티우스를 길에 뿌리듯 모든 일이 너무나도 쉽고 빠르게 진행되었어. 카토는 마르키아와 이혼했고 결혼식장에서 직접 그녀의 손을 호르텐시우스에게 건네주었지. 온 로마가 벌렁 나자빠졌네! 온갖 해괴망측한 일들이 매일같이 벌어지는 세상이지만, 이 카토·마르키아·호르텐시우스·필리푸스 사건은 그 망측한 정도가 로마 역사에서 단연 독보적임을 자네도 인정할 거야. 모두들—나 역시!—호르텐시우스가 자기 재산의 절반을 카토와 필리푸스에게 떼어줬을 거라고 생각하네. 물론 카토와 필리푸스는 그 의혹을 강력히 부정하지만.”
카이사르는 무릎에 두루마리를 내려놓고 또다시 눈가를 닦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엾은 마르키아.” 파베리우스가 나직이 말했다.
나머지 두 사람이 놀라서 파베리우스를 쳐다봤다.
“그런 식으론 생각 못했군.” 카이사르가 말했다.
“뒤쥐처럼 성질이 더러운 여자인가봅니다.” 히르티우스가 말했다.
“아니, 그렇지 않아.” 카이사르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마르키아를 직접 본 적이 있네. 그녀가 성년이 되기 직전이었을 거야. 아마 열셋이나 열넷쯤? 그 가문 사람들이 다 그렇듯 살결은 까무잡잡하지만 얼굴이 아주 예뻤지. 율리아와 내 모친은 사랑스럽고 귀여운 여자아이라고 평했어. 당시 필리푸스는 내게 보낸 편지에 마르키아와 카토가 둘 다 서로에게 푹 빠져 있다고 썼지. 루카에서 폼페이우스, 마르쿠스 크라수스와 만나 내 군사 지휘권과 속주 관할권을 유지하는 문제를 의논하던 시기에 받았던 편지야. 마르키아는 원래 코르넬리우스 렌툴루스와 약혼한 사이였는데 그 친구가 죽었어. 그러고 나서 카토가 키프로스를 합병시키고 금과 은이 담긴 보물 상자 2천 궤를 들고 돌아왔고, 필리푸스—그해 집정관이었지—는 카토를 만찬에 초대했어. 마르키아와 카토는 서로 한눈에 반했지. 카토는 마르키아와 결혼하고 싶다고 청했고, 그 때문에 필리푸스 집안에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어. 아티아는 말도 안 된다며 겁을 냈지만, 필리푸스는 양 진영의 경계선에 앉아 있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네. 내 조카딸과 결혼한 그가 나의 가장 큰 정적을 사위로 삼은 거야.”
“그렇다면 카토와 마르키아 사이가 그뒤로 나빠졌나보군요.” 히르티우스가 말했다.
“아니, 그것도 아닌 듯해. 폼페이우스의 표현대로 온 로마가 벌렁 나자빠진 것도 바로 그래서고.”
“그러면 카토는 대체 왜 그런 겁니까?” 파베리우스가 물었다.
카이사르가 히죽 웃었다. 보기 좋은 미소는 아니었다. “카토에 대한 내 판단이 옳다면—난 그렇다고 믿지만—그는 행복한 걸 참지 못해. 카토는 마르키아에 대한 열정을 자신의 약점으로 생각했을 거야.”
“가엾은 카토!” 파베리우스가 말했다.
“흠!” 카이사르는 다시 8월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지금으로는 이 정도가 전부일세, 카이사르. 퀸투스 라베리우스 두루스가 브리타니아에 상륙하자마자 전사했다니 매우 안타깝네. 자네가 보내는 공문들은 참으로 훌륭해!
카이사르는 8월 편지를 탁자에 내려놓고 9월 편지를 집었다. 8월 것에 비해 크기가 작았다. 두루마리를 펼친 그는 인상을 찡그렸다. 잉크가 채 마르기 전에 물이 엎질러진 듯 몇몇 글자가 번지고 얼룩져 있었다.
막사 안의 공기가 바뀌었다. 밖에서 아직 환하게 빛나던 오후의 해가 돌연 사라진 듯했다. 소름이 돋은 히르티우스가 고개를 들었다. 파베리우스도 몸을 부르르 떨었다.
카이사르의 눈길은 여전히 폼페이우스의 두번째 편지를 향해 있었지만, 그는 마치 얼어붙은 듯 미동도 없었다. 히르티우스와 파베리우스에겐 보이지 않았지만 눈동자 역시 얼어붙은 게 분명했다.
“혼자 있고 싶군.” 카이사르가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히르티우스와 파베리우스는 아무 말 없이 일어나 막사에서 나갔다. 종이에 올려두고 간 펜에서 잉크 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오, 카이사르, 이 슬픔을 어찌하나? 율리아가 죽었네. 어여쁘고 사랑스러운 내 아가씨가 죽었어. 스물두 살 나이에 죽다니. 내가 율리아의 눈을 감기고 동전을 얹었어. 뱃사공 카론의 배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앉길 빌며 입에 데나리우스 금화를 넣어주었네.
나한테 아들을 낳아주려다 죽은 거야. 임신한 지 7개월째로 위험한 징조는 전혀 없었어. 줄곧 아프긴 했지. 불평 한 번 안 했지만 난 알고 있었어. 그러다 갑작스레 진통이 와서 아이를 낳았네. 아들이었어. 이틀 살았으니 제 어미보다야 오래 살았지. 율리아는 출혈 끝에 죽었네. 쏟아지는 피를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었어. 끔찍한 죽음이었지! 거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의식이 붙어 있었어. 그저 서서히 기운을 잃으며 창백해졌네. 살결이 너무도 하얬어. 나와 아우렐리아에게 쉴새없이 말을 하더군. 미처 하지 못한 일을 떠올리고, 내게 무언가를 약속해달라고 하고. 개망초가 피려면 아직 몇 달은 더 있어야 하는데 꼭 개망초를 따다가 걸어 말리라는 둥 별별 의미 없는 말들을 했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느냐고, 아주 어릴 때부터 줄곧 사모해왔노라고, 말하고 또 말했어. 내가 자기를 얼마나 행복하게 해주었는지 모른다고, 나와 함께 있으면서 고통스러웠던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다고. 율리아는 어떻게 그런 말을 했을까, 카이사르? 율리아를 죽음으로 내몬 고통, 그 뼈만 앙상하던 짐승새끼를 빚은 당사자가 바로 나인데. 아들이 죽어버려서 차라리 다행이야. 자네 피와 내 피를 한몸에 가진 사내를 이 세상이 감당할 수 있었겠나. 그 녀석은 세상을 바퀴벌레처럼 한 발로 짓뭉개버렸을 거야.
율리아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네. 울고 또 울었는데 여전히 눈물이 나. 율리아의 생명이 가장 늦게 꺼진 곳은 그녀의 눈이었네. 크고 새파란 눈동자. 사랑으로 가득했지. 오, 카이사르, 이 슬픔을 어찌해야 하나? 6년이라는 짧았던 세월. 며칠 지나면 나는 쉰두 살이 되는데, 내가 그녀와 함께한 세월은 고작 6년이었어. 항상 내가 먼저 떠나리라고 생각했네. 그 반대가 될 거라고, 그 시기가 이렇듯 일찍 찾아오리라곤 꿈에서도 몰랐네. 아, 우리가 함께 26년을 살았대도 짧게만 느껴졌겠지! 오, 카이사르, 이 고통! 차라리 내가 대신 죽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율리아는 내게 그녀를 따라서 죽지 않겠다고 엄숙한 맹세를 하게 했어. 그러니 나는 살아야만 해.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내가 살아갈까? 그녀의 기억이 이리도 생생한데! 그녀의 모습, 목소리, 체취, 느낌, 혀끝의 감촉이. 그녀가 내 안에서 리라처럼 울어대는데.
하지만 소용없어. 눈물이 앞을 가려 도저히 글을 쓸 수 없지만 나는 자네에게 모든 걸 알려야 해. 이 편지가 브리타니아까지 전해지리란 걸 아니까. 자네 둘째 외숙부의 아들인 마르쿠스 코타를 시켜서—올해 법무관이 되었지—원로원 회의를 열게 했어. 그리고 원로원 의원들에게 세상을 떠난 내 아가씨를 위해 국장을 치를 수 있게 표결해달라고 청했네. 그런데 그 썩어빠진 개새끼 아헤노바르부스가 안 된다는 거야. 카토도 고관석에서 안 된다고 짖어댔어. 여자에게는 국장을 치러줄 수 없대. 나의 율리아에게 국장을 치러주는 것이 국가를 모독하는 일이래. 사람들이 나를 붙들었어. 안 그랬으면 아헤노바르부스 그 개새끼를 내 손으로 죽였을 거야. 그놈 목을 조르는 상상을 하면 아직도 두 손이 움찔거리네. 원로원은 수석 집정관의 뜻을 절대 거스르지 않는다고 하지. 하지만 이번엔 달랐어. 거의 만장일치로 국장이 결정되었네.
좋은 것은 모두 주었네. 장의사들은 성심껏 일해주었어. 율리아는 너무도 아름다웠지. 피가 다 빠져서 백악처럼 창백한데도 말이야. 장의사들은 그녀의 살결에 은은한 빛을 덧입히고, 율리아의 스물두 살 생일에 내가 선물해준 보석 박힌 빗으로 그 숱 많은 은빛 머리카락을 빗어 그녀가 생전에 즐겨하던 멋진 머리 모양으로 다듬어주었어. 검은색과 황금색 베개를 받쳐 편안한 자세로 관대에 앉혀주니 그 자태는 가히 여신이 따로 없더군. 다른 장례식에서처럼 시신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