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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 년 전, 초창기 인류가 진화의 기본 단계를 끝낸 뒤 불을 발명하고 호랑이나 뭐 그 비슷한 것들을 다 물리치고 나자 도덕 이야기를 시작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는 이유를 생각하는 데 귀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바쳤고 그것을 더 잘, 그리고 더 정의롭고 공평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심했다. 그들이 죽기 전 다른 누군가가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다른 사람과 의논했다. 또 다른 사람들 역시 그렇게 했고 그것은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 왔다.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은 수만 년 동안 윤리에 관한 긴 대화를 계속 이어온 것이다.
p. 188
실용주의는 우리에게 스스로 도덕적 심판관이 되라고 한다. 행동을 직접 살펴보고 결과에 차이가 있는지 판단해 논쟁이 헛된 것인지 의미 있는 것인지 결정하라고 조언한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우리가 스스로 심판을 본다면 또 새로운 질문이 떠오른다. 호루라기를 언제 불어야 하는 걸까? 우리가 볼 때 누군가가 세상에 확연히 부정적 영향을 미칠 나쁜 행동을 했을 때일까? 누군가의 비도덕적 행동을 판단할 뿐 아니라 소리 높여 지적해야 할 때는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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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대화라는 간단한 행동이 격한 파도를 헤쳐가는 데 얼마나 강력한 힘을 내는지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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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일이었고, 이런 일은 전부 어렵다. 이러한 문제를 생각하는 것 자체가 피곤한 일이다. 특히 2,400년간의 철학 이론으로 무장하고도 여전히 확실한 해답을 찾지 못할 때는 더욱 그렇다. 이 순간이 오면 유혹의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힌다. “상관하지 마! 좋은 사람이 되려고 그렇게 노력하지 않으면 삶이 훨씬 쉬워져. 더구나 불가능해 보일 때도 많잖아. 우리는 우주 공간 속 작은 바위 위의 한낱 먼지 같은 존재일 뿐이야. 이런 것들이 중요하기나 할까?” 그래서…, 이런 것들은 중요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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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행한 죄는 국가적으로 사과해야 한다. 그 일이 얼마나 오래 전에 일어났는지는 상관이 없다. 국가적 사과는 단순한 선언 형태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선언과 함께 고통을 겪은 사람들의 후손에게 실제로 보상하는 일이다. 아무튼 첫 번째 단계는 일단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