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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정진규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39년, 대한민국 경기도 안성 (천칭자리)

사망:2017년

최근작
2020년 2월 <나는 너의 말이고 싶다>

저자의추천 작가 행사, 책 머리말, 보도자료 등에서 저자가 직접 엄선하여 추천한 도서입니다.
이 분야에 23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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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개
1.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6월 24일 출고 
  • 이 책의 전자책 : 9,800원 전자책 보기
이 글은 무슨 논이나 비평과는 궤를 달리하는 육신적 들숨과 날숨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늘 머뭇거리고 피해가거나 주변을 맴도는 위장된 모습이기 일쑤인 우리의 삶이 이들 시인들의 삶과 시를 통과하고 났을 때 주르륵 알몸으로 흐르는 자유의 눈물 같은 것을 개운하게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비극의 정체가 아니겠는가. 또한 시의 진정성이 아니겠는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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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왕노의 디카시는 방법이 선행된 만들어진 시가 아니다. 시 자체일 뿐이다. 선시禪詩의 돈오頓悟가 실체로 나타나는 견자voyant의 작업이다. 그 맨몸이다, ‘푼크툼’의 심층을 걸어 내려가는 놀라운 이미지가 있다. 그의 시는 장르의 경계를 뛰어 넘는 ‘시안詩眼’이 있다.
3.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6월 24일 출고 
우리도 사람입니다 나는 그의 연작 시집 『尙州』(1986, 문학세계사)의 발(跋)로부터 구체적인 연(緣)을 맺어오기 시작했으니 실로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뿐이랴, 그의 시와 나의 시가 지닌 정신은 그 전통적 체질을 출생 환경으로 함께하고 있음을 든든하게 여겨 오고 있다. 이번 연작(連作) 『우리도 사람입니다』 시집도 맥(脈)을 같이하는 소산이라고 읽었다. 우리 현대시에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영혼’의 대표적 실상을 가지고 있는 연원(緣源)이 바로 우리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인 동학(東學)으로 나는 요해(了解)코자 하며, 그것을 깊게 천착하고 있는 대표적 시인이 박찬선 시인이라고 본다. 이번 시집을 나는 큰 감동으로 읽었다. 또한 그의 연작시의 구조 자체, 영혼의 실체가 되고 있는 것은 인내천(人乃天)의 삼재(三才, 天·地·人)가 ‘한 몸’을 이루고 있음에서 온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의 연작시는 전체가 하나이며, 한 편 한 편이 독립된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부가 더욱 깊어지고 감성이 소통하고 만져지는 존재의 실체를 들여다보시길 권한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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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왕노 시의 “당국”, 그의 시의 “공화국”은 어디인가. 그의 시에서 “북벌론”은 무엇인가. 그는 극소에서 극대까지 포용하는 초월의 힘을 확장코자 한다. 심지어는 “순이가 몰래 누는 따뜻한 오줌 소리까지”(「무정부 시절」) 적극적으로 수용, 아름다운 힘으로 형상화한다. 그게 그의 정서가 지닌 남성 미학이다. 이 같은 그의 포오즈는 “파락호”와 “건달바”의 심층적 세계가 대변하고 있다. 특히 “파락호”는 서사적인 생래의 것이며 “건달바”(건달패)는 부처의 수행자로서 그의 남성 미학을 시의 초월적 수행자로 씩씩하게 자리바꿈하는 음악의 연주자들이다. 그 실물의 조상彫像을 실제 경주 국립 박물관에 가면 상면할 수가 있다. 그대로 김왕노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그리운 파락호」는 바로 미당未堂이 “애비는 종이었다”는 서사적 고백을 통하여 적극적 섬김의 시 의식을 나타내고 있음과 같은 바로 그런 아버지의 서사적 자전이다. 그의 시가 지니는 남성 미학은 거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고향에 돌아오면 난봉꾼 아버지의 이야기는 거름터 옆에 자라는 개똥참외보다 더 시퍼렇다. 몇 만 평 땅을 이뤄 보리밭으로 끝없이 물결치기도 한다.”(「그리운 파락호」) 실로 시퍼렇게 시원타. 그는 이렇게 그 지경까지 갈 수 있는 아버지의 효자요 시의 효자다. 부처님의 수행자요 시의 효자다. 그가 시의 본원에 끝없이 올리고 있는 상소문, 그 “북벌론”은 시를 가로막는 어떠한 요소도 “작살내고자” 하는 시의 “비자금”이다. “불 들어간다, 나오라고/ 제발 나오라고 외친다 한들 내 귀에 들리겠어요.”(「다비식」)라고 단호함을 보이고 있는 초월자의 의식이다. 이러한 화자 우월주의가 섬김의 의식으로 깔끔하게 극복되어 있는 그의 시를 사랑한다.
5.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6월 25일 출고 
‘앵두나무’와 ‘직박구리’를 통해서 ‘사람의 손이 닿지 못하는’(「사람의 높이」) 무한을 읽어 내고 있다. 작위와 조작의 ‘사다리’를 치워내는 과감이 있다. ‘여름쑥부쟁이’와 ‘사마귀’의 ‘초록’을 ‘끈질긴 적막이 푸르다’(「적막이 푸르다」)고 읽는다. 그의 영혼의 탄소들, 그 저항이 금강으로 수렴되고 있다. 한 마리 ‘왜가리’까지도 ‘꽁꽁 언 강물을 뎁히고도 남는 차가운 정신’(「푸른, 수력발전소」)으로 영혼을 충전하는 ‘수력발전소’가 되고 있다. 얼핏 해학의 여유마저 보이는 그 에돌아감이 놀랍다. 그의 시 속으로 걸어 들어가며 생명의 실체에 대하여 진중해지는 스스로에 신뢰를 갖게 된다. 발견의 깊이와 높이를 가늠하는 견자(見者, voyant)의 눈이 신선하게 살아 있다. 시의 근원인 절제의 미학 또한 자연과의 접합 운용을 야단스럽지 않게 전개하고 있다. 근간의 우리 시들이 지나친 난삽과 굴절 우회로 심층의 탐색을 빙자하거나, 그 같은 상황에 대한 저항과 기피로 시의 평범화 또는 상식화를 일삼아 긴장과 탄력을 잃고 있는 차제에 강경호의 시들은 좋은 견제가 되고 있다. 반갑다. 무엇보다 이번 그의 시집에서 우리는 그의 절제의 미학이 형식과 표현에 머물지 않고 고요와 냉정에 이른, 그래서 시의 관능과 사유를 조절하는 균제미의 성취에 있었음을 읽어내야 할 것이다. 반갑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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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태권도 용어에 <품새>라는 순수국어가 있다. 좋은 우리말이다. 공격과 방어의 기본 기술을 연결한 연계 동작을 이르는 말이다. 서기, 막기, 차기, 지르기 등의 동작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시어의 운용도 이 <품새>의 연계 동작과 다르지 않다. 대상으로서의 사물, 사유, 감성의 행간을 이 품새의 날램이 제대로 채워져 있을 때 시의 완성도가 높아진다. 이정오 시의 이 <품새>가 지니는 연계 동작이 볼 만하다. 이정오는 의미, 이미지, 리듬의 접속과 함량 증가에 신경을 쓰고 있다. 그 연계동작을 <버리고 놓아 주는 일은/ 완강하고 서늘하다>(「차이」)는 말로 시에서 밝히고 있다. 바로 차연(差延diffeerance)일 터이다. 이 시집의 표제 「달에서 여자 냄새가 난다」는 발견부터가 그 연계 동작의 결과이며 그 자체이다. <아기는 달 냄새를 가지고 온다/ 달에서 여자 냄새가 난다>(「달밤」). 이 시집의 표제를 낳게 한 원문이다. <아기>와 <달>, <여자>가 하나의 연계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하나의 생명률(生命律)이라는 필연의 끈으로 이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놀라운 연계동작의 시의 관절이 거기 있다. 서로 다른 것들의 이곳과 저곳의 비의적 통로를 내왕하는 언어를 획득하려는 <품새>로 이 시집은 채워지고 있다. <봄비는 꽃을 덜기 위해 내려요> <부푼 생각의 꽃잎을 하나 둘/ 솎아내야 할 필요가 있어요> (「봄비는 꽃을 덜기 위해 내려요」)라든지 <하얀 별 하나 따서 씹는 입술이 쓰다/ 우주의 맛이다> (「별을 씹다」) 또는 <사다리는 노동의 관절/ 나도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 수세미처럼 관절의 힘을 키웠지> (「노동의 관절」)등 좋은 이미지의 접속을 하나의 리듬으로 깔고 있는 시편들이 곧 그 품새의 소산들이다. 꾸준히 달빛의 생명률을 지속, <배반과 음모가 없는 터를 찾아> <만삭의 몸을> 푸시기 바란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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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조의 시에는 겨울 풍경의 정조가 쓸쓸히 깔려 있다. 그 두께가 독특하다. 지문이 묻어난다. 봄과 겨울 사이, 가을과 겨울 사이, 그건 대체로 11월의 쓸쓸한 들판이거나 공사판의 낡은 포장마차가 펄럭이는 변두리 풍경일 때가 많다. 아니면 살얼음이 잡히는 천변풍이다. 그의 시간의 낡은 수레바퀴는 그런 이미지를 추출해내는 데 능숙하다. 그런 비의(秘儀)의 통로를 그의 시는 통과하고 있다. 봄날 ‘몽환의 산수유’마저 으스스 소름이 돋는다. “엷은 겨울 햇살 총총히 비추는 손수레가 된 낡은 유모차”(「수레바퀴」)가 그의 시를, 그의 시간을 밀고 가고 있다. 등판이 서늘하게 느껴진다. 삶의 속도를 읽는 진정성이 있다. 그의 진정성은 그래서 삶의 ‘따스한 혹한’이라는 패러독스마저 읽어내고 있다. 삶의 ‘눈 덮인 얼음판’을 위태롭게 건너가는 서러운 ‘어머니의 굽은 등’이 보인다. 그의 ‘따스한 혹한’은 삶의 현장으로도 눈을 돌린다. 그의 시의 두께가 단순하지 않다는 증거다. 「물목거리 인력시장 고려인」은 그의 시가 삶을 외면하지 않고 있다는 증거요, 그의 의식이 진정성을 지니고 시의 심층을 통과하고 있다는 참여성의 증거다. 거기에도 겨울 풍경이 있다. “푸른 밤 얼음 갈라지는 소리/월동천과 조령천이 만나는 물목거리/새벽을 여는 한겨울 물바람이 차고 시리다”. “벌판을 달려온 거친 숨 몰아쉬며/한껏 낮은 자세로 불러주길 기다린다 (…) 강바람에 새벽별 하나 가늘게 떨고 있다”. 얼마나 차고 시린 삶의 진정성이 우리의 가슴에 와 닿는가. 여린 서정만이 서정이 아니다. 아픔을 함께하는 울림이 있는 현실이야말로 진정한 서정이다. 그런 겨울의 한가운데를 김정조의 시는 통과하고 있다.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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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에 우는 소를 일러 ‘우황 들었다’고 한다. 김왕노가 우황 들어 울고 있는 시를 지금 내 은신처의 밤 석가헌에서 소중하게 읽으며 나도 우황 든 소의 울음소리를 덩달아 내고 있다. 김왕노의 우황은 사랑의 우황으로 태어난 것으로 명명되어 있으나 넓게는 시의 우황으로 확장된다. 그만큼 이번 김왕노의 시집 속의 시들은 그런 진정성으로 가득 차 있다. 언제나 그래 왔지만 그의 그간의 시력이 그 깊이를 더하고 있다. 굵은 영혼의 골격이 그 빛을 더하고 있다. 실핏줄까지 맑게 그 흐름을 내보이는 시어의 투명함이 정상을 향한다. 우리를 바짝 다가서게 한다. 많은 시들이 불투명으로 시의 현대성을 위장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을 김왕노는 고뇌의 진정성으로 극복하고 있다. “이슬 반짝이는 풀밭까지 번져 가는”(「우황」) 그의 투명한 우황의 울음은 “헐벗은 마음이 곱게 입고 가는/ 세상의 아름다운 기억 한 벌”(「수국 꽃 수의」)로 죽음마저 초월의 아름다운 공간에 아득히 안치시키고 있다. 이 시집에서 그가 자주 만나고 있는 “노동이 고”팠던 아버지도(「노동 해방의 아버지」) “뜨거운 눈물로 비린 눈물로” “다시 나를 낳으”시는 어머니도(「어머니 다시 나를 낳으신다」) 저러한 그의 우황 든 진정성이 만나는 가장 솔직한 실체로 만져진다.
9.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6월 24일 출고 
장정자 시인과의 남다른 시연(詩緣)을 지니고 있다. 상당 기간 나와 함께 시를 논한 인연을 가지고 있고, 그의 첫 시집의 표발(表跋)을 내가 썼으며 이번 유고 시집의 표발을 또한 내가 쓰고 있음이 남다르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이쪽과 저쪽을 시작하고 마감하는 주례(主禮)의 자리에 내가 서 있다. 생각하니 실로 아슬하고 쓸쓸하지 않을 수 없다. 본래 시의 행로가 그러함의 것이 아니겠는가. 그의 시에서도 그러함의 풍경들이 산견되어 있다. 마침 우리 집 석가헌(夕佳軒) 마당에도 한창인 박태기꽃이 장정자 유고 시집 첫 머리에 시로 만발해 있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다. 그 시를 옮겨 적는 것으로 표발을 대신한다. “박태기꽃 속에는 햇빛들이 쫑알쫑알 전생처럼 모여 있다// 부뚜막 얼쩡거리는 강아지 꼬랑지 걷어차는 내가 있다// 입이 댓 발 빠진 며느리가 궁시렁궁시렁 들어 있다// 박태기꽃 속에는 하루 종일 입이 궁금한 시어머니가 있다// 수수꽃다리 하얀 별꽃이 얼핏 숨었다 보였다 한다”
10.
이 글은 무슨 논이나 비평과는 궤를 달리하는 육신적 들숨과 날숨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늘 머뭇거리고 피해가거나 주변을 맴도는 위장된 모습이기 일쑤인 우리의 삶이 이들 시인들의 삶과 시를 통과하고 났을 때 주르륵 알몸으로 흐르는 자유의 눈물 같은 것을 개운하게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게 비극의 정체가 아니겠는가. 또한 시의 진정성이 아니겠는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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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시의식의 문을 열고 그 내면의 층층 계단을 따라 올라갈 수 없을 정도로 그는 그의 시의 ‘다랑논’을 아득하게 개간해놓고 있다. 장례식의 입관 장면을 “싱싱 냉장고를 열고 당신을 비닐 포장해 칸칸마다 넣습니다”(「안성맞춤 장례식」)라고 자리바꿈하는가 하면 “조선왕조 오백 년 된 시 레시피 21세기 셰프, 당신이 맛보지 못한 요리가”(「독(毒)」) 시로 즐비하게 등장한다. 이 ‘다랑논’의 풍경들은 대체로 으스스하다. 그 우글우글대는 불협화음의 풍경들을“환장할 노래의 피”(「기억의, 유령을 퇴치하는 밤」)로 출산된 불온한 것들로 그는 정의한다. 다행인 것은 이런 시의 경우 지나치게 폐쇄 되어 시가 지녀야 할 비의(秘義)의 통로마저 차단되어 시를 그만 상실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가을의 경우는 “종이 책의 글자를 쪽쪽 일자형 포크로 찍어 먹는 입술에 검정 글자의 즙액”(「이 요리를 먹지 마세요」)이 묻어날 정도로 그렇게 흔적을 남긴다는 것이다.
12.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6월 24일 출고 
그는 이미 안과 밖을 등가물로 빚어내는 시어의 생산자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고착화되어 있는 리듬의 더께가 깔끔하게 속살을 내보임을 또한 만날 수 있다. 김일연의 시조는 오늘의 시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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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작가회의 시조분과가 선정한 『2013 좋은 시조』는 여느 문학 단체들의 그 흔한 연간 시집이 아니다. 시조 공부를 하고 있는 나에게는 아주 중요한 길라잡이이다. 이 책의 표제를 옛날식으로 ‘좋은 현대시조집성’이라 붙이면 어떨까 싶다. 우선 나의 주요 텍스트가 되고 있는 차례의 권갑하, 김영재, 김일연, 김제현, 민병도, 박권숙, 박기섭, 박시교, 박명숙, 송선영, 염창권, 유재영, 유종인, 윤금초, 이달균, 이승은, 이종문, 정수자, 한분순, 홍성란 시인들의 이름 밑에 밑줄을 그어본다. 이 시인들은 내게 우리는 왜 시조를 읽고 사랑해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깨우침을 준 분들이다. 우리 현대시는 지금 모어의 근원적 감성과 의미, 리듬, 그 구조를 상실하고 있다. 서구의 방법론을 따르다 보니 그리되었다. 그러나 현대시조에는 그것이 살아 있다. 현대시의 모어로서의 근원 상실을 극복할 수 있는 바탕이 시조에 있다고 나는 믿는다.
14.
  • 어머니학교 - 이정록 시집 
  • 이정록 (지은이) | 열림원 | 2012년 10월
  • 12,000원 → 10,800 (10%할인), 마일리지 600원 (5% 적립)
  • 9.6 (37) | 세일즈포인트 : 1,315
이정록의 어머니 받아쓰기는 시마도 빙의도 아닌 도저한 이정록의 시의식이 드러내고 보아내고 있는 큰 체험의 소식들이요 큰 깨우침들이다. 눈물둑(어머니학교 57)이 터져서 이른바 역경의 ‘감지坎止’를 실현하고 있다. ‘큰 하늘을 모신’ 사그랑주머니(어머니학교 1)는 결코 헤프거나 안달하는 욕심주머니가 아니다. 참고 기다려서 스스로 흘러넘친 길트기요 장강대하長江大河다. 그게 이른바 ‘감지’ 아니겠는가. 우리 현대시에도 위당 정인보의 「자모사慈母思」를 비롯하여 어머니 시詩가 산맥을 이루고 있지만 이토록 삶의 지혜와 해학이 넘치는, 그것도 어머니 연작의 대간은 없었다고 알고 있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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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책의 전자책 : 6,500원 전자책 보기
신선한 장르 하나를 창조해내었다. 김영재 시인이 시와 산문과 사진으로 다시 걸은 우리의 옛길이 여기 우리의 영혼에 아름다운 길을 새롭게 닦아내고 있다. 신작로(新作路)다. 이 새로운 장르는 한 권의 시집이며 산문집이며 사진집이며 자상한 안내서이기도 하다. 새롭게 남을 『신동국여지승람(新東國輿地勝覽)』이다. 유례없는 입체미를 보이고 있는 향기 높은 문맥(文脈)을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짚어가며 삶을 새롭게 열었다.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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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골똘한 고전주의자의 시는 한낱 소재적 원용의 그것이 아니라, 실험을 빙자한 혼몽의 시들에, 시의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는 惺惺의 우주적 질서가 있다. 그 질서는 가볍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의 시에는 ‘신성한 낭떠러지’「말미에 가다」가 있다. 그것이 그의 영혼과 삶의 “처소격‘이다. 그 ‘有限’의 처절함을 거쳐 다시 태어나는 것이 고전주의의 진정한 처소다. 그의 시는 그 쓰라린 소금발(未堂)로 찍어 다시 태어난 아름다운 ‘평사낙안’「평사낙안에서 몸을 굽다」이다. 그냥 ‘강천모설’이 아니다. ‘벼랑에 매달린 소나무’의 쓰라린 ‘忍冬’의 ‘춤사위’「다리를 건너고 있는 강천모설」다.
17.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6월 21일 출고 
  • 이 책의 전자책 : 6,300원 전자책 보기
그에 의해 호명되는 신생, 사물들의 탄생은 ‘비의적 밀도성’이라는 통과의례를 어김없이 치르고 있다. 그의 중심시어라고 할 수 있는 ‘사과’ 한 알 속에 그가 경작하는 상상력의 과원은 그래서 늘 예사롭지 않은 발견을 탄력적으로 밀어낸다. 그는 “몽상과 예감의 거친 파도가 쓸고 간 하늘 아래, 꿈처럼 재현된 과수원에서 사과를” 수확한다. 그 사과들은 “지상에 흘린 에덴의 풍문”이기도 하다. 화자는 그걸 “한입 베어물”고 “불온을 부추기는 균이 고요하게 번식해”가는 시의 발효, 탐미의 황홀을 즐긴다. 이러한 그의 두드러지는 시어의 운용구조는 명사의 동사화에 있다. 다시 말해 사물들의 운동 이미지, 그 형성을 통해 창의적 생산과정을 신선하게 열어 보이고 있다. 흘러가야 할 것은 ‘빗소리’이지만 그의 시에서는 그걸 듣는 ‘귀’가 흘러가게 하는 원초적 기능의 전치를 통해서 ‘빗소리’의 정체, 그 존재성을 초월적으로 확장한다.
18.
  • 지금 택배로 주문하면 6월 24일 출고 
너무 그리하여도 시의 경직과 폐색을 불러오기 쉽지만 시를 供手로 받드는 진정성은 시를 부모 見存의 삶의 그릇이 되게 하고 그 사유의 깊이와 감성의 유연성은 따뜻하게 읽는 이들을 감싸는 서정의 손길이 되게 한다는 말을 첫 시집을 내는 박정수 시인에게 드린다. 이같은 명제를 잊지 않는 시를 박정수 시인이 이미 쓰고 있지만 요즈음 젊은 시인들이 간과적 시 쓰기를 하고 있는 세태이고 볼 때 매우 중요한 하나의 확인이 아닐 수 없다. 박정수의 시에서 이같은 명제가 휼륭하게 수행될 가능성을 읽는다. 그의 시의 풍경, 정신의 풍경에서 읽히고 있는 ‘수런거리는 고요’가 바로 그 한 증좌이다. 生成 직전의 모습이다. 純度100프로다. 매우 싱싱한 작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발효된 입춘’(「봄」). 존재에 대한 사유와 감성이 ‘몸’을 이루어 내고 있는 객관적 등가의 생산 구조가 거기에 있다. 또한 일상적인 삶의 풍경 속에서도 그러한 그의 행위는 지속되고 있다. 암세포마저 밀어내는 ‘봄’의 생성 이미지가 진하게 깔린다. ‘콧날이 찡한 봄 한 움큼을 삼킨다 남자의 절반을 일구며’(「봄의 절반」). 황홀한 소생의 과정이 손에 잡힌다. 이것이 바로 봄이 아니겠는가. 머잖아 滿開할 ‘유두가 발갛게 곤두선’(「문신」) 시의 꽃송이들이 크게 기대된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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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行)’. 이종암은 시의 ‘행’이 무엇인지를 깊게 터득하고 있는 시인이다. 시의 운문 형식으로서의 ‘행’만이 아니라 시의 운신(運身)으로서의 ‘행’을 아는 시인이다. 시를 사는 ‘행’(‘봄날, 하동’)을 생명률로 운행해 가고 있는 시인이다. 그게 예술로서의 성실성이며 이종암 시인의 시의 성실성이기도 하다. 내밀한 비의적 실천과 참여가 거기에 있다. 이러한 ‘행’은 개인적인 자신의 삶에만 한정되지 않고 있다. 대상들 사물들과의 만남, 그 교합(交合)에서 무봉(無縫)으로 확장되고 있다. 그는 음악 용어인 ‘레가토’(‘레가토, 초생달’)라는 말을 ‘속수무책’일 정도로 운명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이 그것이다. ‘레가토’가 음과 음, 음절과 음절이 연이어 연주되는 연결 음표이듯이 사물과 사물, 화자와 사물들이 그의 시에서는 긴밀한 한 몸이 되고 있다. 생명의 ‘탯줄’로 이어지고 있다. 그 틈을 비의적(秘儀的)으로 메꾸어 가는 그의 대상에 대한 매우 경쾌하고 자유로운 응락(應絡)은 또한 해학의 시어들을 창출하고 있어 그의 시를 유연하게 구성해 놓고 있다. 보라. “가랑이를 물 속 깊숙이 담그고 있는 수십 그루의 왕버들 가시내들. 사월 초순 저 가시내들 몸이 달아오른다. 누가 저 머리에 초록 족두리를 올렸는가? 뾰족뾰족, 하늘 오르는 초록에게 짓궂은 바람은 자꾸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긴다.”(‘사월, 주산지’)에 그런 ‘행(行)’이 진하게 감지되지 않는가. 이 내통(內通)의 기류가 바로 ‘율려(律呂)’라는 것이다. 음과 양이 회통(會通)하는 우주적 생명률이다. 그 끝자락에서 이종암은 시의 ‘몸꽃’을 성실하게 피워내고 있는 것이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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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채의 시에는 몸의, 몸살 흔적의 생명 무늬 같은 것이 어려 있다. 그걸 그는 <봉정사 극락전 당초문> 같은 상관물로 객관화하기도 한다. (‘당초문’) 그는 그렇게 분홍빛 맨살에 무슨 당초문 같은 걸 끊임없이 새겨 넣고자 한다. 혹은 발견해 내고자 한다. 그 당초문 같은 걸 끊임없이 새겨 넣고자 한다. 혹은 발견해 내고자 한다. 그 당초문의 정체, 실체는 무엇인가. 그는 그걸 ‘몸꽃’ (‘메밀, 저 꽃들’)이라 부르기도 한다. 짙은 꽃내의 몸꽃을 피워내는 시적 전치, 그 미학의 운용이 도저하다. 비린 생의 관음증들이 파고드는 시력은 존재의 저쪽을 드나드는 ‘見者’의 그것이다. 이에 따라 생성되는 사물과 풍경들의 시적 전이와 확장이 만만치 않다. 그 동일성의 획득이 놀랍게 맞아 떨어진다. 손때 절은 ‘퉁소’와 ‘저 남자’가 경계의 흔적도 없이 하나의 ‘몸’을 얻는다. (‘퉁소’) 見者로서 고요와 적멸의 무늬를 읽어 내는 시각 또한 긴장과 탄력의 그것이다. <이따금씩 목을 꼿꼿하게 치켜들고는 없는 성대로 컹ㅡ 허공을 가르는 덩치 큰 벙어리 개/긴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앉아 있던 햇살이 그의 등줄기를 어루만지고 있다>(‘벙어리 개’)의 앞 행과 뒤 행이 교직(交織)하고 있는 ‘靜存動察’의 운용 전개가 놀랍다. <없는 성대>로 <허공을 가르는> 그렇게 짖는 개의 <등줄기를 어루만지고> 있는 <햇살>이 있는 이 풍경이야말로 ‘고요 속의 외침’ 이다. 삶에서 죽음으로 가는 순간의 풍경을 긴장과 탄력으로 묘파한 대목은 또 어떤가. <각인하듯 필사적으로 내리치는 장대비/질기고 팽팽하던 인대 하나 끊어졌다>(‘흑싸리 꽃’). 적멸의 공간이 아득히 펼쳐짐을 실감케 하고 있다. 이은채의 시. ‘몸살 흔적의 생명 무늬’ 그가 어둠 속에서 현상해 내고 있는 시들은 언제나 분홍빛 ‘봄’이다. <지난 밤 뭉텅 끊겨버린 필름을 현상했다/진물진물 뒤척이는 봄>(‘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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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긴장과 탄력을 자칫 지나치게 서둘거나 튀는 몸짓으로 나타내고 있는 불균형의 시들을 만나게 될 때가 있다. 그러나 윤정구의 시는 언제나 謙, 全의 미학으로 그 의식이나 표현이 평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를 그는 穩全이란 말로 쓰고 있음을 본다. 그 穩全을 그는 주로 나무의 생태에서 시로 수렴하고 있다. 윤정구 시인의 집에 내가 문패를 달아줄 수 있다면, 분명 나는 ‘나무 詩人 윤정구’라고 힘주어 쓸 것이다. 그가 만나고 있는 나무들을 짚어보더라도 金剛松, 귀룽나무, 느티나무, 배롱나무, 버드나무, 은행나무, 쥐똥나무, 사과나무, 산당나무, 無影樹, 살구나무, 자작나무, 相思花, 옥잠화, 백일홍 등 각종의 草木들이 곳곳에 그야말로 ‘穩全’ 그 자체로 자리하고 있다. 그는 그 나무들에서 순수 생명의 원초적 이미지를 실체로 찾아내고, 그의 삶을 거기에 적극 참여시키고 있다. 역사나 개인의 비운이 깔려 있는 시들에서도 나무의 미학으로 고요하게 삶을 긍정적인 세계로 갈아 끼우는 天稟을 보이고 있다. 그는 “하루하루 걱정 속에 사는 일들이/아롱다롱 별이 되어가는 일”(「별」 부분)이라고 해석한다. 나무에 이렇게 귀가 트이고 눈이 밝아져 있는 이 시인의 詩眼은 보이지 않는 시간의 迷宮 속에서도 생성의 실체를 발견해 내는 法力을 지니고 있다. ‘法’은 그 자체가 물의 흐름과 같은 최고의 順理다. “迷宮이라 했던가요/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시간 속을/묵묵히 흘러가던 돌 속에서/벌레와 짐승과 새가 나왔다지요”(「水石을 바라보다」 부분). ‘나무’에서 얻은 순수 생명의 穩全性, 그 기다림의 겸허가 여기에까지 이른 것이다. 좀 더 조붓한 시어들의 구조로 계속 시의 멋과 맛을 더해가는 시인으로 삶의 格을 지키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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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호 시인은 사물과 사물 사이를 거침없이 내왕할 뿐 아니라, 시의 본질인 <知 和 樂>을 매우 자연스럽게 운용하는 시인이다. 다시 말해서 <사이>, 그 접속의 흔적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無縫의 天衣를 펼치는 시인이다. 그가 선택한 사물(대상)은 어김없이 <和而不同>의 <자리바꿈>을 감행한다. 그 전개는 우리에게 시를 쓰고 읽는 일이 놀랍고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여기 그의 시어 선택의 적극성이 높은 해학으로 자리한다. 한 대목만 옮기기로 하자. “지구를 한 바퀴 다 돌리려면 아직도/삼겹살 열두 판은 더 구워야 한다//뭉텅뭉텅 썩은 사과를 낳는 여학생들이/산부인과에서 쏟아져 나온다/산후에는 돼지족발 같은 게 좋대요!/족발 같은 게 치마 밑으로 자꾸 발을 밀어 넣고 있어요” 아울러 서정의 유약성 극복과 그로데스크의 미학을 보여 주고 있다. 이 같은 대상의 함량증가 운동을 자칫 엉뚱한 것으로 폄하할 수도 있으나 그 넘나듦의 이미지에는 동일성의 브릿지가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 뛰어난 시의 독해력일 것이다. 그와 함께 갔던 칠불사였던가, 그곳의 <亞字房> 생각이 난다. 한번 불을 지피면 여간해서 식지 않는다는 그런 시의 운용이 지속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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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안과 밖의 사이에 존재하는 그 <행간>에 틈입해서 온몸으로 그 <행간>을 채우고자 뜨거운 몸짓을 하고 있다. 그것은 한낱 <땜질>이 아닌 소신(燒身)의 포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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