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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민전라남도 순천시 상사면 출신으로, 일제 강점기에 꾸준하게 한시를 창작했던 문인이자 농민 운동에 투신해 소작 쟁의를 주도하는 등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던 인물이다. 그는 3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어릴 때의 이름은 희수(熙守)다. 일찍이 한학(漢學)과 서예를 익혔으며, 취산(醉山)과 벽소(碧笑) 그리고 ‘옥류정 주인(玉流亭主人)’이라는 호를 사용했다.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인 순천으로 돌아와, 야학을 개설해(1902) 후학들을 위한 교육 운동을 벌였다. 이후 황전면 출신의 지주인 박승휘(朴勝徽)와 함께 순천남학당(현 순천남초등학교)을 공립으로 인가받아, 1912년부터 1916년까지 교원으로 재직했다. 일제의 탄압 정책이 거세지자 이에 항의하는 뜻으로 교원을 사직했으며, 이듬해인 1917년부터 약 3년간 중국으로 가서 망명 생활을 하며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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