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는 순간부터 쓸쓸한 씨앗들이 있다. 귀퉁이가 이지러진 묵정밭 끄트머리에 던져진 존재에게 물은 늘 부족하고 바람은 반드시 혹독함을 지니기 마련이다. 고통이 삶의 이유가 될 순 없으나 일찍 불행을 맛본 씨앗은 어느새 고통에 익숙해져 있다. 거울 속의 사랑은 그 자체로 본영을 꿈꾸고 배반하는 허탈감을 반복한다. 자유롭지 못하여 생살을 파내고서라도 넓히고자 했던 공간에 마음들은 때로 영문도 모르는 채 끌려와 역사를 기록한다. 그 질긴 끌림들은 모두 같은 씨앗의 처음에서 번진 것이다. 고통의 크기만큼 행복이 감미롭다면 나는 아직 덜 고통 받았으므로 불행에 더 가깝다.
불우한 씨앗의 천성을 숨기지 못해 매양 흔들리는 나에게 물을 길어와 척박함을 돌봐준 다정한 당신과 사랑하는 현이, 진이에게 이 시집을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