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경향신문사 뉴스메이커 기자를 거쳐 민주일보 사회부 차장과 일요신문 사회부장, 일요서울 편집국장을 역임하였다. 1997년 『초록빛 모자의 천사』(1, 2, 3)으로 독자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은데 이어 『너는 사랑이다』(1, 2), 『바다 위의 피아노』(1, 2)를 발표하였다.
『돼지들』은 오래전부터 북파 공작원의 존재에 관심을 가져온 작가가 치밀한 자료수집과 취재를 거쳐 완성한 작품으로, 작가는 현재 작은 섬에 집필실을 두고 창작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나는 나의 삶이 바둑판 위의 축처럼 몰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꺼져 있는 상태였고, 나는 타고 싶었고, 보다 따뜻한 불씨를 찾고 싶었다. 그 불씨를 찾으러 떠났다. 강원도 오지의 한 마을에 들렀을 때였다. 강 건너에 폐교가 있었다. 교실 벽의 칠판을 바라봤을 때였다. 하얀 백묵으로 쓴 낙서가 눈에 들어왔따. 몇 줄 안되는 낙서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비는 싫지만 소낙비는 좋다.
인간은 싫지만 너만은 좋다.
내가 꽃이라면 너에게 향기를 주고 싶지만
내가 사람이기에 너에게 사랑을 준다.
그 낙서를 보는 순간, 나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한 여자의 모습이 떠올랐따. 살인수. 하지만 한땐 대학에서 그림을 전공했던 예쁘고 착한 여자.
나는 지방의 한 교도소에서 처음 그녀를 만났다. 그녀를 본 순간,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살인죄를 지은 사람의 얼굴이 저렇듯 말고 평온할 수 있을까 하고...... 그녀의 사랑 이야기를 들었다. 슬프도록 아름다운..... 그러나 가슴을 여미게 하는 그 이야기가 두고두고 가슴에 맴돌았다.
그건 한 여자에게, 베풀 수 있는 모든 것을 베푼 한 남자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였다. 그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사랑은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사랑은 외롭고 힘들 때마다 말없이 손을 내밀어주는 것이라고, 사랑은 함께 있으면서 평화를 느끼는 거라고, 사랑이란 뜨거운 것이 아니라고, 소리없이 흐르는 깊은 강물 같은 것이라고....
해가 바뀌고, 다시 그녀를 찾아갔을 때 그녀는 교도소에 없엇다.
그날, 나는 전깃불도 끊긴 그 폐교에서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밤이 지나가고 새벽이 찾아왔을 때, 나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쓰겠다고......
1997년 10월 이 정 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