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노트 혹은 짧은 생각 몇 마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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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하나의 생명체이듯이 시조 또한 살아 있는 생물이다.
시인이 시조를 쓰지만 시조 또한 시인을 써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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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만에 빠지지 않으려면 자기 시조에 스스로 속지 말아야 한다.
시인은 그 시조의 실체와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존재일 뿐이다.
시가 곧 그 사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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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시인보다는 청빈한 시인이 아름답다.
청빈한 삶보다는 자족하는 삶이 아름답다.
무소유의 반대 개념은 소유가 아니라 자족이라는 달라이라마의 가르침은 언제나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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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은 생선 먹고 와인 마시고 염소나 키우면 됐다는
먼 나라 작은 섬 이름 없는 어부는 달라이라마의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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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써 인내한다.
자신에게 엄격하지 않으면 시인, 시의 종장宗匠이 아니라 시의 기술자,
시를 국화빵처럼 찍어내는 기술자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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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잔을 계속 쓰면 차심이 들어 처음엔 보이지 않던 빙렬이 나타나든가 빛깔이 바뀌어 간다.
세월에 물든 찻그릇과 사용하지 않아 민낯일 뿐인 그릇은 느낌이 다르다.
시조라는 그릇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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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들어진 찻사발이 가마 안에서 불을 너무 강하게 받아 나올 때가 있다.
그런 경우 사발의 가치는 찻사발과 밥그릇의 경계에 놓인다.
불길을 너무 받은 찻사발처럼 감정과잉이 되지 않도록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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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느낌의 귀얄분청 사발은 힘차고 아름답다.
거친 붓질이 휘돌아 간 자국이 실로 거칠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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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들지 못해 시 쓰기를 멈추지 않으면서 철든 소리를 하고 싶어 하는 심사.
이런 모순이 정좌 속에 혼돈을 키우고 창작의 불꽃을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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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와 평상심시천변만화는 같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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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도 하나의 물질이다.
죽은 자작나무가 품고 있는 차가버섯은 영약이 아니라 쓸모 없는 물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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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내내기, 자기 복제는 자신에게 칼을 겨누는 얼굴 없는 자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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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이란 스스로 되는 게 아니라 제자에 의해 만들어지는 존재다.
자신이 제자라고 생각하는 이가 자기 제자가 아니라
자신을 스승이라 생각하는 이가 자기 제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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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가 곧 자신이 섬겨야 할 자기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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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모든 어머니의 잔소리 치고 오도송 아닌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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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송만 열반송이 아니라 죽기를 각오하고 쓰는 시가 다 열반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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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로 쓰는 게 아니라 몸으로 쓰는 저 삼라만상의 열반송!
시작 노트 혹은 짧은 생각 몇 마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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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일회一期 一會는 선가에서나 다회에서만 쓰는 말이 아니다.
살아가는 한 순간 한 순간이 다 일기일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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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은 즐겁다.
실수투성이인 인생에 객관적 시각은 평형 감각을 길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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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도공이 기계적으로 만든 이 빠지고 금간 찻잔과
유명 작가가 작품으로 만든 찻잔이
백년 세월을 머금으면 골동이란 이름으로 같이 존중받는다.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준다는 데서 차별받을 까닭이 없어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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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배려가 설혹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지라도
배려 없는 인간관계보다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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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내 삶에 만족하는 거기, 모든 것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