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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고적 (高適)

국적:아시아 > 중국

출생:701년

사망:765년

최근작
2017년 4월 <[큰글자책] 고적 시선>

고적(高適)

고적(高適, 701?∼765)은 당(唐)나라 창주(滄州) 수[(蓚, 지금의 허베이성(河北省) 징현(景縣)] 사람으로, 자(字)가 달부(達夫)다. 일찍이 공업 수립의 뜻을 품었으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오랜 기간 송성[宋城, 지금의 허난성 상추현(商丘縣)]에 은거하며 연조(燕趙) 일대를 유람하며 지냈다. 천보(天寶) 8년(749) 나이 49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저양태수(雎陽太守) 장구고(張九皐)의 추천으로 유도과(有道科)에 합격해 봉구위(封丘尉)에 제수되어 관직 생활을 시작했으나 얼마 되지 않아 그만두었고, 가서한(哥舒翰)이 농우절도사(隴右節度使)가 되자 그의 막부(幕府)에 들어가 장서기(掌書記)가 되었다.

안사(安史)의 난이 일어나자 가서한을 도와 동관(潼關)을 지켰는데, 동관이 함락되자 그 패배 원인을 현종(玄宗)에게 아뢰어 간의대부(諫議太夫)로 발탁되었다. 숙종(肅宗)이 즉위하자 어사대부(御史大夫) 겸 양주대도독부장사(揚州大都督府長史)·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가 되어 위척(韋陟), 내진(來瑱)과 함께 영왕(永王) 이린(李璘)의 난을 토벌했다. 그러나 환관(宦官) 이보국(李輔國)의 참언으로 태자소첨사(太子少詹事)로 강등되었으며 오래지 않아 팽주(彭州)와 촉주(蜀州)의 자사(刺史)로 전출되었다가 다시 성도윤(成都尹)·검남서천절도사(劍南西川節度使)에 임명되었다.

대종(代宗) 때에 형부시랑(刑部侍郞)에서 산기상시(散騎常侍)로 옮겼으며 발해현후(渤海縣侯)에 봉해졌고, 영태(永泰) 원년(765) 정월에 병사했다. 변새(邊塞)에서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장수들의 투지와 용맹함을 찬양하거나 병사들의 고통을 써내는 등 많은 변새시(邊塞詩)를 창작해 잠삼(岑參)과 더불어 당대(唐代) 변새시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꼽힌다. 저서로 ≪고상시집(高常侍集)≫ 10권이 있다. 그의 작품은 잦은 이민족의 침입과 정변으로 나라가 어지럽던 시기, 변방을 떠돌며 직접 목격한 백성과 병사들의 고통, 험준한 국경 지역의 풍경, 낯선 이민족들의 생활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평이하고 담담한 표현이 오히려 한층 침울하고 비통한 정서를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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