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헤더배너
상품평점 help

분류

이름:채종항

최근작
2012년 9월 <베 홑이불의 전설>

채종항

  

대표작
모두보기
저자의 말

<베 홑이불의 전설> - 2012년 9월  더보기

일상에서의 느낌과 생각을 좋은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작은 행복 하나를 갖춘 셈이다. 그런 점에서 틈틈이 소박하지만 깊이 있는 글을 써 자녀들에게 아름다운 선물로 남겨주신 우리 장모님께서는 작지만, 그러나 매우 값진 행복의 의미를 아시는 분이다. 나는 장모님께서 간간이 딸에게 보내주는 수필들을 옆에서 읽으며 저절로 팬이 되어갔다. 여러 글들 중 특히 「베 홑이불의 전설」은 잔잔한 감흥이 오래도록 남았다. 그 글을 읽어내려 가노라면 장모님의 어릴 적 시골집과 마을 풍경이 눈앞에 아스라이 아른거리고, 옛 시절 어머니가 밤을 새워 길쌈하고 다듬이질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비추는 듯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우리 가슴에 와 닿는 부분은 자식들을 위해 밤낮으로 애쓰시던 그 ‘어머니가 과연 행복하셨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대목이었다. 이는 우리 모두가 한 번쯤 생각해보아야 할 질문이 아닐까 싶다. 지난 세기 극심한 가난과 환란의 와중에서 오로지 자식과 가족을 위해 자신의 삶 전부를 희생하고 던졌던 조선의 모든 어머니들이 과연 행복을 느끼셨을까? 놀랍게도 장모님의 결론은 행복의 긍정에 도달하고 있다. 이러한 긍정을 통해 아마도 장모님께서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것은 다음과 같은 깨달음이었을 것이다-아무리 뼈저린 가난과 그 어떤 일상의 힘든 노역도 가족을 지켜내기 위해 어머니가 베풀며 간직했던 희생과 사랑의 기쁨을 덮어버리지는 못한다. 이러한 어머니의 사랑은, 마치 전설이 그러하듯이,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어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속에 살아 숨쉬며 앞으로도 이어져 갈 것이다. 장모님은 그 글에서 어머니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동시에 인생의 여러 난관을 뚫고 헤쳐 나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우리 모두에게 어머니라는 존재와 삶이 어떠한 것인가에 대하여 큰 깨우침을 주셨다. 장모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가르침을 주실 수 있었던 것은 당신이 겪어오신 경험과 교육이 그것을 가능케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장모님께서는 1925년 함경남도 원산시 문천군 영노리에서 태어나 초중등 과정을 원산에서 마치고 상경하여, 1944년 경성여자사범학교(京城女子師範學校)를 졸업하셨다. 졸업 후에는 1944년에서 46년까지 2년 가까이 고향으로 돌아가 그의 모교인 원산 명석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시다가 1946년 가족과 함께 월남하여 1946년부터 49년까지 서울 창신초등학교 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치셨다. 1949년에는 경성치전(京城齒專)을 마치고 서울치과대학을 제1회로 졸업하여 치과병원을 하고 계셨던 유길형 님을 만나 그해 12월 2일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고는 그 당시 많은 어머니들이 그리하셨던 것처럼, 장모님께서는 결혼 후 바로 학교를 그만두시고 가정주부로서, 그리고 차후 4녀 1남의 어머니로서 평범한 삶을 살아오셨다. 그 당시 드물게 고등교육을 받으셨음에도 젊은 시절 가졌던 자신의 푸른 꿈과 희망을 접고 희생의 길, 헌신의 길, 어머니의 길로 들어서신 것이다. 돌이켜보면, 장인어른께서는 정말 법이 필요 없는 착하고 강직한 분이셨다. 1948년 ‘유길형치과’를 돈암동에서 처음 개업하신 이래 건강이 나빠지셔서 문을 닫은 2005년까지 무려 57년여 동안 오로지 가족만을 위하여 치과의사로서 올곧게 살아오신 분이었다. ‘소박하고 단순한 삶’이 장인 어르신이 세우신 가풍(家風)이었기에, 근검, 절약, 정직, 원칙을 따르는 가족구성원들의 삶은 힘들지 않았지만 적어도 수월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러한 가정을 일상에서 알뜰하게 꾸리고 생활을 원만하게 이끌어가신 분이 장모님이셨다. 장모님의 헌신과 희생 덕분에 4녀1남 모두 따뜻한 사랑 속에서 반듯하게 자라 각자 제자리에서 열심히 정직하게 살아가고 있다. 재작년 2010년 8월 18일에 장인어른께서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늘나라로 먼저 가셨다. 그 후 장모님의 건강이 많이 나빠지셔서 걱정이다. 자식들이 있지만 각자 광주, 서울, 미국 등지로 뿔뿔이 흩어져 직장과 자녀 교육에 얽매이다 보면 아무래도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고 소홀하게 되기 십상이다. 그래서 더욱 외로움을 느끼시게 되는지도 모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장모님께서 일상에서의 느낌과 생각을 글로 쓰기 시작하신 것이 자녀들이 모두 당신의 품을 떠나 당신만의 시간이 많아지신 뒤부터였다. 장모님께서 쓰신 수필들이 모두 90년 이후에 쓰여졌다는 사실이 그를 뒷받침해준다. 이제 60여 년을 같이 해로한 배우자마저 먼저 가셨으니 더더욱 혼자 보내시는 시간이 많아지셨다. 그래서 우리 모든 자녀들은 근래 들어 더욱 죄송하고 송구스러울 뿐이다. 그러고는 장모님이 오래전 질문을 던지셨던 것처럼, 장모님께서 남편과 자식을 위해 헌신했던 삶을 되돌아보면 행복하셨는가를 새삼 되묻게 된다. 그 질문을 되씹으며, 우리는 장모님께서 이미 글을 통해 그러한 삶 자체가 기쁨이고 행복이었다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에 한 줄기 위안을 찾는다. 이것이 ‘베 홑이불의 전설’이라는 제목으로 장모님의 수필집을 펴내며 장모님의 만수무강을 비는 이유이다. 끝으로 이 작은 책자를 만들어 자녀들이 나누어 간직함으로서 장모님의 글 속에 담긴 깊은 생각과 가르침들을 마음속에 길이 간직하도록 했으면 한다. -가족을 대표하여 둘째 사위가 2012년 5월의 어느 아침에 씀

가나다별 l l l l l l l l l l l l l l 기타
국내문학상수상자
국내어린이문학상수상자
해외문학상수상자
해외어린이문학상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