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평사리문학대상을 받고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 문화예술위원회에서 창작지원금을 지원받아 창작집 『투망』을, 2020년 창작집 『불꽃선인장』을 출간했다. 함께 쓴 창작집으로 『코비드 19의 봄』 『기침소리』 등이 있다. 2016년 장편동화로 법계문학대상을 받았다. 현재 한국소설가협회와 작가포럼에서 활동하고 있다.
첫 창작집을 낸 지 십 수 년이 지나서야 두 번째 창작집을 출간하게 되었다. 날마다 수많은 신간들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 굳이 나까지 보태야 할까, 하는 생각으로 미적거리다 보니 어느새 세월이 저만치 지나가고 있었다. 내가 만들어놓은 작중 인물들도 세월 따라 안타까이 멀어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고서야 출간을 서두르게 되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가 아는 나’와 ‘나도 모르는 나’가 만나 경계를 지우는 일이다. 그 경계가 지워질 때 느끼는 희열 때문에 나의 글쓰기 여정은 계속된다. 매일 아침 나는 새로운 나를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난다. 하지만 결코 순탄하지 않다. 길이 험하기도 하고 지루하기도 하고, 때로는 늪과 높은 산이 앞을 가로막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좌절하며 주저앉아버리고 싶지만 나는 절대로 멈출 수 없다. 그 후, 찾아오는 고통이 훨씬 더 크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글쓰기에 순응하며 모든 걸 맞추어나가야 하는 내 삶이 문학을 향해 멈출 수 없는 사랑으로 지속되길 바랄 뿐이다.
여기 실린 9편의 작품은 오래 전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발표 시기가 십 년 이상 차이가 난다. 하지만 이 기간을 지나면서 온몸으로 통과해온 삶의 자취를 하나로 묶어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들과 함께했던 여러 감정이 내 속에 스며들어 ‘지금의 나’에 도달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슬픔과 고통, 기쁨과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 오롯이 남는 것은 그리움이었다. 그리움이 내 글쓰기의 근원이었다는 걸 이제야 나는 깨닫게 되었다.
가을볕이 좋은 날이면 마당 한가운데 돗자리를 펴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오래된 책들을 거풍시키곤 했다. 검은 테를 두른 책장에 갇혀 서재의 벽을 차지하고 있던 책들을 꺼내 펼치는 어머니의 손길은 지극히 조심스러웠다. 책 거풍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계속되었다. 누렇게 변색되어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듯한 책장들이 바람에 팔락거리는 모습을 보며 어머니는 나지막하게 혼잣말을 했다.
“사람이 가도 보던 책들은 그대로 남아 있네.”
마당에 한창 피어난 국화와 오래된 책들에서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냄새가 코끝을 스치면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그윽한 목소리. 그 목소리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내 귓가에서 울려나는 듯하다.
이제 이곳에서는 만날 수 없지만 아득히 먼 저곳에서 내 책을 받아들며 환하게 웃을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
2020년, 새로운 해를 시작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