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거울을 하나 가지고 있었어. 조그만 손거울이었는데, 그래. 그 거울은 훔친 거였어. 나는 어쩌다 그 거울을 욕실에 두고 말았어. 식구들이 다 들락거리는 욕실에 말이야. 거울을 떠올렸을 때는 이미 아빠가 욕실에 들어간 뒤였지. 혹시나 훔쳐 온 거울이라는 걸 들킬까봐 가슴이 터질 듯이 뛰었어. 다행히 아빠는 눈치채지 못했어.
내가 왜 그랬을까? 나는 거울을 계속 치우지 않았어. 그냥 욕실 창문 한구석에 두었지. 식구들이 욕실에 들어가 거울을 사용할 때마다 불안해 하면서도 말이야. 거울을 훔친 게 들통날까봐 두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들키고 싶었나봐. 나를 좀 쳐다봐주길 바랐나봐. 아무도 나한테 관심이 없는 것 같았거든.
나는 들키지 않았어. 모두들 그 낯선 거울이 어디서 난 건지 궁금해하지 않았으니까. 누구 거냐고 물어보기만 하고는 그뿐이었어. 나는 괜히 화가 나서 입을 꾹 다물고 가슴 속에 가족들을 향한 원망을 무럭무럭 키웠어. 사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어. 엄마, 아빠, 언니, 오빠 모두 화난 사람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었지.
그 거울은 아직도 그 집 욕실 창문 한구석에 그대로 있어. 이제는 알 것 같아. 왜 가족들이 그 거울에 관심을 갖지 않았는지.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거울을, 들키고 싶지 않은 상처를 가지고 있었던 거야. 그걸 들여다보느라 다른 사람 거울은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거지. 나 또한 그랬어. - 방미진(지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