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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1910년 함남 북청에서 출생했다. 아호는 무종(務鍾)으로, 북청공립보통학교, 경성제2고보를 거쳐 일본 릿쿄(立敎)대학, 와세다대학 노문학과, 연희전문 등을 다녔다. 일본 무산자사(無産者社)와 관계를 맺으면서 당시 도쿄에 와 있던 시인 임화(林和)를 만나 사귀었다.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화연맹 코프(KOPF)의 조선협의회에서 활동했고 귀국 후 가정교사, 경성중앙고보 교원 등을 거치면서 어렵게 생활했다. 다시 도일해 신고송(申鼓頌) 등과 함께 동지사(同志社) 편집위원으로 참여하다가 서울에 돌아와 카프(KAPF) 중앙위원으로 활동했다. ≪문학건설≫지 창간에 참여했다가, ≪별나라≫ 사건으로 체포되었다. 석방 후 일제 경찰은 시인을 북청으로 강제 귀향시켰다. 생계를 위해 관납상회, 북청문화주식회사(인쇄소), 양조장 등에서 일했으며 시집 ≪대망(待望)≫(1937), ≪분향(焚香)≫(1938), ≪망양(茫洋)≫(1940), ≪해방≫(1945), ≪화원(花園)≫(1946), ≪승리의 기록≫(1947), ≪쏘련시초≫(1947), ≪리찬 시선집≫(1958) 등을 발간했다. 1946년 평양에서 북조선문학예술총동맹 서기장에 뽑혔고 북한에서 ‘혁명시인’ 칭호를 받았다. 1974년 사망했다. 추모시선집 ≪태양의 노래≫(1982)가 평양에서 발간되었다.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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