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전남 벌교에서 태어났으며, 고려대학교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했다. 2002년 <내일을 여는 작가> 신인상에 시가 당선되고, 2005년 동시 「빈 집」 외 5편으로 제3회 ‘푸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군산에서 목회를 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 시집 『다섯 아내를 둔 자의 슬픔』, 동시집 『아빠가 철들었어요』가 있다.
내가 철든 어른으로 살려 할 때면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담벼락에 숨어 옆집 순희 얼굴을 두근두근 엿볼 수 있고
뒷산 봉우리에 올라 음매음매 소에게 꼴을 먹일 수 있고
마당에 송송송 떨어진 감꽃을 주우며
할머니의 콧노래를 들을 수 있겠지요.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수염 달린 까만 염소랑 냇가에 앉아 잠잠히 강과 바다를 궁리할 수 있고
새로 산 운동화를 이불 속에 품고 말똥말똥 잠을 설칠 수 있고
산길을 오르다
멀찍이 나를 보고 섰는 노루와 눈이 마주쳐 화들짝 놀랄 수 있겠지요.
정말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깨에 삽을 메고 논에서 당당히 돌아오는 젊은 아버지를 만날 수 있고
마당 구석구석 싸리비로 비질하는 착한 형을 볼 수 있고
해질녘 용사마! 용사마!
나를 부르는 어여쁜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돌아갈 수 없겠지요.
아무리 돌아가려 해도 돌아갈 수 없겠지요.
그러나 슬프지 않아요. 누군가 그리워 외로운 날이면
내 안에 사는 한 아이가 있어
가만가만 동심의 노래를 불러 주기 때문이지요.
내가 철든 어른으로 살려 할 때면
철없는 아이로 사는 것도 참 멋진 일이라 속삭여 준 동시와
푸른책들과 나의 벗 남주와
별처럼 예쁜 그림을 그려 준 안예리 선생님과
내가 사랑하는 세상의 아이들이여!
꾸벅, 고마워요.
-2009년 3월 봄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