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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박봉우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34년, 대한민국 전라남도 광주

사망:1990년

최근작
2013년 3월 <박봉우 시선>

박봉우

1934년 전남 광주에서 5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광주서중 시절부터 이미 그는 ≪진달래≫ 동인을 결성했으며, 광주고등학교 재학 중에는 강태열, 윤삼하, 주명영과 4인 공동시집 ≪상록집≫을 간행한 바 있다. 이 무렵의 광주고등학교는 후에 한국 시단의 중심부를 차지하는 시인들을 다수 배출했는데, 1960∼1970년대 민중 서정시의 계보를 형성한 이성부, 조태일이 박봉우의 고교 후배다. 1952년 고교 2학년 때 ≪수험생(受驗生)≫에 작품을 발표해 미당 서정주와 다형 김현승의 주목을 받았던 박봉우는 당시 후배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들은 졸업 후에도 자주 교류하며 문학적 연대 의식을 이어 갔다. 고교 졸업 후 전남대 정치학과에 진학한 박봉우는 동인지 ≪영도≫에 참가해 강태열, 박성룡, 정현웅 등과 함께 본격적인 시 운동을 전개한다. 그러다가 19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휴전선>을 투고해 당선된다. 분단의 아픔과 그 극복 의지를 탁월하게 노래한 이 작품의 심사위원은 무애 양주동과 이산 김광섭이었다.
데뷔 1년 후인 1957년 첫 시집 ≪휴전선≫을 정음사에서 간행했다. 이어서 1959년 둘째 시집 ≪겨울에도 피는 꽃나무≫를 백자사에서 발표하고, 1962년에는 셋째 시집 ≪사월의 화요일≫을 성문각에서 출판한다. 넷째 시집 ≪황지의 풀잎≫이 창작과비평사에서 나오기까지는 무려 14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또한 그의 다섯째이자 마지막 시집이 된 ≪딸의 손을 잡고≫는 그로부터 11년 후인 1987년 사사연에서 발간된다. 이처럼 시집 발표 시기의 편차가 심한 것은 박봉우 시인의 개인사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시인은 대학을 마치고 이십 대 중반의 나이에 전남일보에 입사한다. 이때 그는 ≪전남일보≫ 서울 특파원으로 재직 중이었는데, 취재차 전남 목포에 갔다가 그 지역의 폭력배들에게 끔찍한 구타 사고를 당하게 된다. 그 사건 이후 그는 정신과 치료를 지속적으로 받아야 할 형편에 놓인다. 덕분에 일상생활도 순조로울 수가 없었다. 김현승 시인의 주례로 당시로는 늦깎이 결혼을 해서 슬하에 세 자녀를 두기는 했으나, 결혼 생활은 가난과 불행의 연속이었다. 그의 후기 작품 세계의 상당 부분이 어머니를 향한 간절한 그리움, 아내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미안함, 그리고 자녀들에 대한 아비의 사무치는 부정(父情)으로 넘쳐 나는 것도 이러한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박봉우 시인은 1990년 3월 2일, 만 56세의 나이로 안타까운 삶을 마감한다. 생전에 시인은 전라남도 문화상(1957)과 현대문학상(1962)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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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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