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한국화가. 호는 아원(兒園).
1939년 전북 순창에서 출생하였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과와 미술과를 졸업한 후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1965년 4월, 서울중앙공보관에서 동양화 개인전을 가진 후 화단에 나왔으며, 1990년 시집을 발간하면서 문단에 나왔다. 그 후 청록산수화가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한국예조문학회장직을 맡고 있다.
1995년 한국애서가산악회에서 윤형두 회장과 만난 후 현재까지 28년간 한국애서가산악회보를 편집 제작 발간하고 있다.
시집
《파도여 종을 치는 파도여》
《섬진강에 보내는 편지》
《산동네 구름공장》
《바람이 꽃잎 위에 새긴 시》
《울려라 당신의 종소리》 등이 있으며,
《젊은 아빠엄마에게 주는 72통의 편지》가 있다.
평생 산과 같이 살아온 범우 윤형두 선생의 반세기 산행기
윤형두 회장님의 산오름을 살펴보니 산 하나를 오를 때마다 한 세상을 살 듯 오르셨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겠지만, 기우뚱 발 하나 잘못 디디면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산을 왜 그렇게 올랐는지 윤 회장님께 다시 한 번 물어보고 싶다.
평생 동안 산과 같이 살아온 윤 회장님의 산행기를 쓴다는 것은 애초부터 내 몫이 아니었다. 그래도 부탁하셔서 나와 산에서 만난 이후 한국 애서가산악회 활동의 기록만 써서 드렸더니, 읽어보시고 모든 기록은 내가 쓴 책에 들어 있으니 다시 한 번 써보라 하시었다. 그 말씀을 거절할 수 없어서 재도전을 해보았다.
윤 회장님의 삶을 기록한 모든 책을 보면서 그 책 속에 들어가 책도 같이 만들고 옥고도 같이 치르고 산도 같이 오르면서 한 3년쯤 씨름하고 나니 윤 회장님이 왜 산을 오르고, 일본 북알프스 산을 세 번이나 오르고, 킬리만자로의 산을 두 번씩이나 오르며 하산할 때 맹장이 터져 죽을 고비를 넘기기까지 산행을 해야 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후 산오름은 포기하신 줄 알았는데 이후에도 65세 몸으로 대원 17명을 이끌고 벨로하봉을 오르는 20일간의 시베리아 극지탐험을 완주하셨다.
대체 그 힘과 정신은 어디에 있었는가?
나는 알아냈다. 항상 산에 갈 때마다 배낭 속에 들어 있는 책이다.
오마르 카베싸의 《타오르는 산》, 심산의 《마운틴 오디세이》, 릿타 지로의 《자일 파티》, 마운틴 오딧세이의 《등산과 죽음》 등 수없이 많은 배낭 속 책들이 윤 회장님의 가이드였다.
이제 윤 회장님에게 왜 산에 오르냐고 물으면 ‘책이 있어서 간다’라고 대답할 것 같다. 오직 산 사랑, 책 사랑, 나라 사랑으로 사신 분― 윤 회장님이 120세까지 그 산, 계속 오르시도록 기도하겠다.
쓰고 그렸다는 것이 부끄럽다. 북소리 무겁게 울렸는데 가벼운 나뭇잎을 밟고 걷는 소리만 가득하다.
— 2023년 5월 일산 아원제에서 조경훈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