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일상처럼,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가는 생활 여행자.
여행지에서 로컬 맥주를 마시며 골목 구경, 사람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을 꿈꾸었지만 심각한 상황도 시트콤으로 만들어버리는 비상한 재주를 갖고 있다.
툭 하면 흥분하고, 호기심이 많아서 낯선 사람과도 잘 어울리는 전형적인 ENFP형(MBTI).
꽃무늬에 중독됐으며 가난해도 꽃은 사겠다는 낭만주의자.
착하고 의젓한 고양이 알렉스와 말썽꾸러기 고양이 쿠로와 함께 살고 있다.
패션 매거진 『앙앙』, 『싱글즈』에서 기자로, 여행 매거진 『더트래블러』의 편집장으로 일했다.
오늘도 꽃을 사러 갑니다
“정말 소녀 같아요.”
살면서 ‘소녀 같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소녀 같다는 말이 칭찬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이 말을 들으면 이상한 반발심이 생겼다. 누군가를 ‘소녀 같다’고 칭할 때는 긍정적인 의미도 담겨있지만 ‘철없다’는 의미가 탑재된 경우가 많으니까.
일흔이 넘은 나의 엄마는 아직도 소녀 같다. 평생 소녀처럼 사셨다. “옷 사줄까? 쇼핑하러 가자.” 중고등학생 시절, 함께 쇼핑 가자던 엄마와 쇼핑을 하러 갔다가 자신의 옷만 사는 엄마와 싸우고는 나 혼자 삐져서 돌아온 날도 허다하다. 엄마는 자신이 마음에 드는 옷을 산 후 같이 입자고 하셨다. “아니, 이런 아줌마들이 입는 꽃무늬 원피스를 같이 입자고?”(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꽃무늬와 거리가 먼 아이였다).
엄마는 늘 꽃을 샀다. 20년 전 즈음, 땅 사기를 당해서 경기도의 아파트로 이사 갔을 때도 엄마는 꽃을 사서 꽃병에 꽂은 후 “꽃이 참 예쁘다”고 말했다. “아니, 집 다 날리고, 변두리 아파트로 이사 와 놓고, 꽃이 예쁘다고?”
소녀 같은 엄마를 보면서 나는 일찍이 철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고 늘 다짐했지만, 마흔이 넘어서야 나는 깨달았다. 나에겐 속일 수 없는 낭만적 유전자가 있다고.
아버지를 좋아했던 나는 이과생이지만 감성적이었던 아버지의 성격도 많이 닮았다. 정년퇴직 전까지 성실하게 사회생활하고, 책임감 있는 가장이었던 아버지의 성향을 조금이라도 물려받은 덕에 20년 넘게 직장생활을 했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낭만적인 이탈리안, 아버지는 이성적인 독일인을 닮았다고 생각했다(그래서인가, 두 분은 평생 싸우셨다).
낙천적이고 말 많고 로맨틱한 이탈리아 사람과 냉철하고 철학적이며 산책을 즐기는 독일인, 이탈리아와 독일을 여행해보면 두 나라의 상반된 성향이 와닿는다. 이탈리아에서는 노란 햇살 아래서 캄파리부터 와인을 종류별로 마시다가 알딸딸하게 취기가 올라 꽃 파는 아이에게 바가지 써가며 꽃을 한 아름 사고서도 행복했다. ‘아 인생 뭐 있나? 이렇게 낮술에, 꿈에 취하며 사는 거지’라고 생각했다. 제시간에 오지 않는 기차가 수두룩한 기차역과 혼잡한 공항에 가서는 다시 이탈리아엔 오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무질서한 이탈리아를 떠나 독일에 오면 질서정연함에 감동한다. 군더더기 없고 신속한 태도에 마음이 놓인다. 한국인의 성향은 이탈리아 사람과 비슷한 것 같지만 그래도 성질은 급해서 신속한 것을 좋아하니까 말이다. 냉철하고 이성적인 독일인은 시간을 잘 지키고, 규칙적인 시간에 산책을 하고, 사유를 즐긴다. 이탈리아의 공기가 술 마시고, 쉬기에 좋다면 독일의 공기는 걷고, 산책하기에 좋다(그래서 이탈리아에는 예술가들이 많고, 독일에는 철학가가 많은가?).
엄마와 아빠의 기질을 반반씩 물려받은 나는 이탈리아 사람처럼 놀고, 독일 사람처럼 일했다.
터키에 갔을 때도 이탈리아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터키를 이탈리아보다 더 많이 갔는데, 오지랖 넓기로 치면 이탈리아 맞먹을 거 같지만 터키인들의 오지랖은 이탈리아인들의 유난스러움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어떤 의도나 잔꾀가 보이지 않는 달까. 순수함, 순박함과는 다른 어떤 천연덕스러움을 가진 사람들. 한때 세계를 제패했던 민족의 후예답지 않게, 그들에겐 으스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5년 전, 함께 터키를 여행했던 선배가 나에게 말했다. “하연 씨는 터키인들을 닮았어요. 아주 태연하다 할까?”
‘태연하다?’ 둔하다는 이야기일까? 사전을 찾아보니 ‘마땅히 머뭇거리다가 두려워할 상황에서 태도나 기색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예사롭다’는 뜻이었다.
‘태연하다’는 뉘앙스가 마음에 들었다. 내가 지향하는 삶의 태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는 열심히, 성실하게 살았지만 인생의 큰 목표나 계획 같은 건 세워본 적이 없다. 큰 목표 같은 것을 이루기 위해(목표가 없으니 당연한가?) 사고 싶은 것을 참거나, 하고 싶은 것을 미룬 적도 별로 없다.
어쨌든 확실한 건 가난해도 꽃을 살 것이고, (뭐 큰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좋은 와인을 마실 거고, 평생 여행을 다닐 거라는 것.
고양이와 함께 노을 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고, 좋아하는 재료들을 넣은 솥밥에서 올라오는 구수한 밥 냄새를 좋아하고, 낯선 도시의 골목길, 노천 카페에서 마시는 낮맥을 좋아하며 가까운 친구들과 홈파티 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 모든 것을 즐기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평범한 당신들처럼!
5년 전에도 그러했듯이, 10년 후에도 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느슨하지만 꼼꼼하게 일상을 만들어갈 것이다. 낭만을 잃지 않고, 꾸준히 일하고, 많이 웃고, 많은 곳으로 여행을 떠날 것이다.
이 책에는 8년간 잡지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쌓인 여행의 경험들과 내 일상의 조각들이 담겨있다.
느릿느릿 고양이처럼 여유롭고 우아하게 여행하고 사는 것을 꿈꿔왔지만 실제 내 여행과 삶의 여정은 한 걸음 한 걸음, 작은 보폭으로 이루어졌다. 천재 화가가 단번에 그린 그림이 아닌, 시골 할머니들이 한 땀 한 땀 수놓은 퀼트나 조각보 같달까. 나는 아직도 어디로 향할지 몰라 서성이고, 가끔 한눈 팔다가 길을 잃는다. 마흔 살이 훨씬 넘었는데도 내 그림은 완성되긴커녕, 수많은 알록달록한 조각 천들이 먼지 폴폴 날리며 흩어져있는 것만 같다. 언제 이 조각보가 완성될지 알 수 없지만 ‘그 그림은 꽤 나답지 않을까?’ 생각한다.
‘태연하다?’는 단어가 마음에 든 나는 ‘하연하다?’ 라는 나만의 단어를 만들었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나만의 페이스로 느긋하게 즐겁게.’
헐렁헐렁해 보이는 취권으로 상대를 제압하듯, 좋아하는 것들이 모여 취향이 되고, 낭만의 순간이 모여 인생이 된다. 순간에 치열하되, 결과에는 집착하지 않고, 태연자약하게 사는 삶. 오늘도 나는 ‘하루하루는 충실하게, 인생은 흘러가는 대로’의 자세로 산다. 그렇게 살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꼭 뭐가 되지 않더라도, 분명한 건, 행복할 거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