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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번역

이름:김영진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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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세트] 내 인생 최악의 일주일 1~2 세트 - 전2권>

김영진

한국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독일에서 번역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독일 본 대학과 HBRS 대학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에밀』, 『당나귀 실베스터와 요술 조약돌』, 『아벨의 섬』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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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걱정의 반대말> - 2009년 9월  더보기

가만 생각해보면 나도 어려서 옛날이야기 듣는 것을 참 좋아했다. 특히 외할머니가 해주시던 이야기들이 참 재미있었는데 아쉽게도 그 구체적인 내용들은 다 잊어버리고 지금은 딱 한 가지, 이야기해달라고 조르는 나의 성화를 피해갈 때 할머니가 곧잘 쓰던 방법만 또렷이 기억난다. “막내야, 지금 말똥이 굴러가고 있거든? 이 말똥이 멈추면 그때 이야기해줄게.” 나는 말똥을 본 적도 없으면서 언덕을 굴러 내려가는 말똥을 머릿속으로 열심히 상상했고, 할머니는 그렇게 상상의 말똥을 굴려놓고 마당의 잡초를 뽑거나 장을 보러 가셨다. 말똥은 하루처럼 느껴지는 한 시간 뒤에도 여전히 굴러가고 있기 일쑤였다. 벤니 린데라우프의 ‘이야기보따리 할머니’도 이따금 말똥을 굴렸을까? 이것 역시 내가 그에게 던진 수많은 질문들 속에 포함시켜야 했을까? 나는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작가와 꽤 많은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그는 이제까지 내가 책을 번역하면서 가장 질문을 많이 던진 작가이고, 그 기록은 아마도 당분간 깨지지 않을 것 같다. 어쨌거나 그는 나의 질문에 늘 친절하게 답해주었고, 나의 어려움을 이해해주었으며, 내가 지적한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며 해결점을 찾아주었다. 벤니 씨와 그의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구체적으로 나누지 못했지만 한 가지, 그가 자신의 할머니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잘 기억해두었다가 거기에 뼈대를 만들고 살을 붙여 흥미진진한 소설을 써 냈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우리에게는 아직 조금 낯설게 들리는 작가 벤니 린데라우프(Benny Lindelauf)는 1964년 네덜란드 싯타르트에서 태어났다. 춤에도 재능이 있었던 린데라우프는 먼저 암스테르담 연극학교에서 무용을 전공했고 뒤이어 여러 극단에서 무용수와 연극배우로 일했다. 그때부터 틈틈이 글을 써오던 그는 더 이상 무용을 할 수 없게 되자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1998년 상상력 풍부한 꼬마 아넬리의 이야기를 다룬 『위로 굴러떨어지는 날』(Omhoogvaldag)을 시작으로, 2001년 백혈병을 앓는 소년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려낸 『재킷에 감싸고』(Schuilen in een jas)를 발표, 벨기에 플랑드르 언어권 청소년문학상인 황금부엉이상 후보에 오르는 등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린데라우프는 언젠가 “글쓰기란 계속해서 새 집으로 이사 가는 것과 비슷하다.”란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의 세 번째 집 『걱정의 반대말』 은 제목처럼 그에게 걱정의 반대말 같은 책이 되어주었다. 네덜란드 원제는 ‘아홉 발 집’(Negen Open Armen)인 이 작품은 상복도 많아 2004년 최우수 청소년 역사소설에게 수여하는 네덜란드 테아벡만 상(Thea Beckmanprijs)과 2005년 네덜란드 출판협회(CPNB)가 수여하는 황금키스 상(Gouden Zoen)을 받았으며, 국제아동도서협의회 세계본부(IBBY)의 2006년도 명예도서목록과 2008년도 독일 아동청소년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등 다양한 영예를 안았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탄탄한 구성이다. 이야기의 날실을 1937년을 살고 있는 핑과 그의 가족들이 쥐고 있다면, 씨실은 1863년을 살았던 칭얼이와 샤르에게 쥐어져 있다. 그 두 시공간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셋 있는데 첫 번째는 아홉 발 집이고, 두 번째는 훔파 하치 그리고 세 번째는 메이 할머니이다. 그러나 아홉 발 집은 말을 못하고, 훔파 하치는 말이 없고, 메이 할머니는 말을 하려 들지 않기 때문에 이 두 가닥의 실이 피륙으로 짜였을 때 거기에 과연 어떤 무늬가 나타날지 처음에는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러나 솜씨 좋은 작가는 앞으로 놀라운 무늬로 나타날 복선들을 여기저기 치밀하게 집어넣으며 이야기의 긴장감을 끝까지 팽팽하게 유지시킨다. 아홉 발 집도, 할머니도 뭔가 좀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복선을 눈치채지 못하고 책장을 넘기던 독자들은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드러나는 무늬의 윤곽에 ‘아하! 이렇게 된 거였구나!’ 하고 무릎을 칠 것이다. 이 책의 또 다른 강점은 개성 넘치고 특성이 뚜렷한 인물들이다. 작가는 이를 위해 네 명의 오빠들처럼 대가족의 구성원이되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인물들에 대한 묘사나 대사는 과감히 덜어내고 할머니, 핑, 뮐케, 예스 등 주요 인물들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사려 깊지만 자신감이 부족한 첫째 핑, 직설적이고 극적인 경험을 하고 싶어 안달하는 뮐케, 겁 많은 응석받이 예스. 그리고 작가가 그 어떤 인물보다도 애정을 가지고 그려낸 메이 할머니. 그녀는 건물의 반석처럼 이 작품의 기반이요, 열쇠를 쥔 인물이다. 할머니의 지나치게 강경한 태도는 실은 당신이 숨기고자 했던 비밀 때문이었다. 남편의 치부를 감추려고 들면 들수록 그녀는 가족들 앞에 거짓 허상을 세워야 했고, 권위의 회초리를 들어야 했다. 비밀은 역시 늘 거짓말이라는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일까? 할머니의 거짓말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가치판단은 부질없다. “시체 없는 지하실 없다.”라는 독일 속담처럼 개인이든 가정이든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일을 모두 한두 가지쯤 지닌 채 살아가는 법이므로. 단, 나이 마흔두 살에 현장감독 견습공이 된 남편을 보며 “솔직히 좀 창피했다.”던 읊조림은 그녀의 실체를 가장 잘 드러내 주는 말이 아니었나 싶다. 그녀는 실은 나약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존재보다는 자신을 에워싼 환경에서 자신감을 얻으려던 사람. 당신은 그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손녀들을 키웠을 뿐이다. 그것도 최선을 다해, 손녀들이 남 보기 버젓한 정숙한 숙녀들로 자라나길 바라면서. 그래서인지 메이 할머니의 거짓말에 대해서는 원망보다 연민이 앞선다. 그러나 손녀 핑이 바란 것은 위선이 아닌 진실이었고, 아이에게는 그것이 진정한 가족애요, 걱정의 반대말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최우수 청소년 역사소설에게 수여하는 네덜란드 테아벡만 상 수상작답게,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 네덜란드인들의 삶을 생생히 그려내고 있다. 가난과 질병과 편견에 맞서 싸워야 했던 그네들의 힘겨운 일상이 우리들의 예전 모습과도 비슷한 듯해 번역하는 내내 친근감이 들었다. 복잡한 사료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 개인적 추억을 근거로 당시의 풍색과 분위기를 전달한 픽션이 역사소설에 수여하는 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조금 놀랍기도 했다. 분량이 만만치 않아 번역하기가 녹록지 않은 작품이었다. 그러나 읽는 이들이 즐겁다면 그것이 내 ‘걱정의 반대말’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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