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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잉마르 베리만 (Ingmar Bergman) (Ingmar Bergman)

본명:Ernst Ingmar Bergman

성별:남성

국적:유럽 > 북유럽 > 스웨덴

출생:1918년, 웁살라 (게자리)

사망:2007년

직업:영화감독

기타:스톡홀름 대학교

최근작
2024년 12월 <잉마르 베르히만의 인도로 가는 배 : 리마스터>

스웨덴 웁살라의 목사 집안에서 태어나 엄격한 규율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이같은 환경으로 부모님과의 다툼과 오해는 그를 종교적 신념에 대한 회의로 몰아갔다. 청년기를 연극무대에서 보낸 베리만은 1946년 <위기>를 통해 감독에 데뷔했다. <모니카와의 그 여름>, <한 여름밤의 미소> 등 그의 초기작들은 주로 각양각색의 남녀들이 벌이는 연애담이었다. 19세기 실내극의 영향을 받은 이 작품들은 베리만에게는 일종의 상업적 타협과도 같은 것이었다. <한 여름밤의 미소>가 칸영화제 '시적 유머상'을 수상한 뒤, 베리만은 여러 번 거절당했던 시나리오 <제7의 봉인>의 제작비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57년, 유럽 영화계는 신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하며 죽음과 맞대결을 선언한 이 전대미문의 작품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스웨덴에서 온 이 젊은 감독은 영화가 철학적 사유의 매체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같은해 말 등장한 <산딸기>는 베리만을 모더니즘 영화의 선구자로 자리매김시켰다. 펠리니, 안토니오니, 그리고 프랑스 누벨 바그 감독들과 함께 유럽 영화계가 변화를 꾀하고 있던 때였다. <제7의 봉인>에서 신학적 주제에 몰두했던 베리만은 <산딸기>에서 좀더 본격적으로 죽음의 문제를 탐구하기 시작했다. 과거와 현재, 꿈과 현실, 환상과 실재를 부드럽게 넘나드는 이 영화의 스타일은 베리만 후기작들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60년대 초반, 베리만은 ‘신의 침묵’ 3부작(<어두운 유리를 통해>, <겨울빛>, <침묵>)을 통해 자신의 영화 세계를 집약해냈다. 양차대전을 겪은 유럽의 불안한 사회적, 역사적 상황 속에서 신은 그저 침묵하고 있을 뿐이었다. 신앙은 붕괴됐으며 삶은 부조리와 고통으로 가득 찬 것에 불과했다. 놀랍게도 베리만은 96년 출간한 회고록 <잉그마르 베르이만의 창작노트 Bilder>에서 이 3부작을 "술 취했을 때 떠올린 생각일 뿐 맨정신일 때도 계속 유지되지는 않는 아무런 근거 없는 개념"이라고 단정지었다. 그러나 개인의 삶과 신앙의 역학관계를 집요하게 추적했던 당시 베리만의 작품들은 실존주의 철학과 맞물려 큰 반향을 일으켰다.

60년대 후반부터 베리만은 자신의 영화적 주제에 여성을 끌어들였다. 연극 공연중 침묵에 빠진 한 여배우와 간호사의 만남을 통해 모성과 어머니의 역할, 여성의 자기 정체성에 물음을 던진 <페르소나>(66)가 바로 그런 작품. 2년 뒤, 유럽은 68년 혁명과 베트남전을 경험하면서 더욱 광포한 공간으로 변모해갔다. 러시아와 스웨덴 사이에 있는 포뢰섬을 배경으로 한 ‘악마의 삼부작’(<늑대의 시간> <수치> <정열>)은 그런 상황을 목격한 베리만의 심리적 분열을 반영한다. 이후 베리만은 다시 초기의 실내극으로 돌아갔다. 72년작 <외침과 속삭임>은 죽어가는 한 여성을 둘러싼 세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 치밀한 심리극이다. <제7의 봉인> 이후 그가 끈질기게 매달려왔던 ‘죽음’에 대한 실존적 고민이 비로소 여성들의 삶을 포용해낸 것이다. 잉그리드 버그먼의 유작인 <가을 소나타>(78) 역시 어머니와 딸의 뼈아픈 재회를 소재로 예술가에 대한 베리만의 자기 성찰을 담아낸 작품이다.

잉마르 베리만은 83년 <화니와 알렉산더>를 끝으로 영화계를 공식 은퇴했다. 96년 국내 개봉된 바 있는 이 영화는 유례 없이 낭만적이고 화사한 톤으로 어느 대가족의 희로애락과 한 소년의 통과의례를 다룬다. 베리만은 74년부터 탈세 혐의로 구설수에 올랐는데, 사건이 잠잠해진 78년 경 어떤 안도감과 해방감에서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베리만은 청년기에 매료되었던 스트린드베리와 입센의 희곡을 무대에 올리며 지금까지 연극 연출에 몰두하고 있다.

40여 년 간 영화계에 몸담으면서 폭력과 고통에 얼룩진 세상을 염려했던 베리만은 신으로부터 구원을 갈망했으나 번번이 좌절하는 듯했다. 현대 영화사에 새로운 좌표를 그린 그의 작품들은 스크린 위에 쓴 형이상학이라 할 만했다. 물론 그의 형이상학은 언제나 인간의 삶에 밀착해 있었다. 리브 울만의 <불신>을 통해 그가 까마득한 젊은 날의 쓰라린 흉터를 어루만지는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지. 98년 <불신>의 영화화와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베리만은 "카메라 옆으로 물러서는 것도 괜찮다. 연출은 그만뒀지만 글쓰기는 재미있고, 내가 살아있는 한 이 일은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7년 7월 30일, 발틱해 연안의 파로섬의 자택에서 편안한 모습으로 숨을 거뒀다. 향년 8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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