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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웁살라의 목사 집안에서 태어나 엄격한 규율 속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으며, 이같은 환경으로 부모님과의 다툼과 오해는 그를 종교적 신념에 대한 회의로 몰아갔다. 청년기를 연극무대에서 보낸 베리만은 1946년 <위기>를 통해 감독에 데뷔했다. <모니카와의 그 여름>, <한 여름밤의 미소> 등 그의 초기작들은 주로 각양각색의 남녀들이 벌이는 연애담이었다. 19세기 실내극의 영향을 받은 이 작품들은 베리만에게는 일종의 상업적 타협과도 같은 것이었다. <한 여름밤의 미소>가 칸영화제 '시적 유머상'을 수상한 뒤, 베리만은 여러 번 거절당했던 시나리오 <제7의 봉인>의 제작비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57년, 유럽 영화계는 신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하며 죽음과 맞대결을 선언한 이 전대미문의 작품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스웨덴에서 온 이 젊은 감독은 영화가 철학적 사유의 매체가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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