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들추며
감나무에 달린 홍시는 유난히 붉었습니다.
얼마나 붉었던지 작은 해처럼 빛났습니다.
그래서 더 맛있게 보였습니다.
여러 번 돌팔매질에도 홍시는 떨어지지 않았고 입맛만 다셨습니다.
그런 홍시가 겨울바람에도 가지 끝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꼭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하늘에 한 점으로.
햇빛은 늘 한결같았습니다.
장대를 휘두르는 걸 본 아버지는 ‘그냥 놔둬라’ 하셨습니다.
헛헛한 마음을 곶감으로 달래 주셨습니다.
눈 속에 빛나는 홍시를 자랑하던 아름드리 감나무가 개량된 큰 감나무에 밀려 그루터기로 남았습니다.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가만히 눈을 감아봅니다.
감나무에
남겨진 감
미처
까치가 오기도 전
빠알갛게
얼었다
얼마나
추울까
하얀 털모자 씌웠다
첫눈이
첫 느낌
오래오래 남겠다
그냥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첫 느낌으로 오래오래 남았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담쟁이꽃, 묵묵히
지나는 바람에
윤기 흐르는 잎을 푸른 빛으로 한껏 자랑하는 담쟁이.
넓적한 이파리 사이로 웅웅거리며 벌들이 들락거리고 있었습니다.
웬 벌?
궁금해 자세히 보았습니다.
세상에나!
꽃이 숨어있었습니다.
노란 꽃술을 내밀고 작은 꽃들이 다닥다닥 모여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담쟁이도 꽃을 피우는구나!
작은 청포도 알처럼 열매를 키우고도 있었습니다.
담쟁이를
푸른 잎으로만 보았던 게 미안해졌습니다.
역시,
백과사전에는 포도과에 속하는 식물이라고 나와 있었습니다.
한여름 뙤약볕에서도 잎이 무성했던 것은 씨앗을 키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묵묵히 푸른 잎을 키우며 한 땀 한 땀 온몸으로 벽을 오르던 몸짓은
포도처럼 낮은 밭이 아닌 더 높은 곳을 보여주려한 마음의 표현이었던 겁니다.
얼마나
뜨겁고 아팠을까요?
엄마를 떠올리며
오롯이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시멘트벽을 불평 없이 묵묵히 오르는 담쟁이, 단풍도 참 곱게 들어갑니다.
2022년 겨울을 맞이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