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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국내저자 >

이름:윤재철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53년, 대한민국 충청남도 논산

최근작
2024년 4월 <따뜻한 모순>

거꾸로 가자

내일이면 첫서리가 내린단다. 산간에는 얼음이 언단다. 이제 작별을 고하마. 잘 가거라 나팔꽃이여 너를 땅속 어둠으로 다시 돌려보내며 나도 겨울 들판으로 난 쪽문을 민다.

그 모퉁이 자작나무

갈수록 시가 외롭다 잊어버린 눈물이 외롭다 길가 코스모스는 무리 지어 가을바람에 하늘거리는데 길은 자꾸 희미해지고 오고 가는 사람이 없다 꿈꾸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꽃이 외롭다 시가 외롭다

따뜻한 모순

폭우 속에 벤치 밑 제비꽃은 목마르다고 한다 제비꽃에 알을 낳는 은줄표범나비도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다 이제는 조금 겸손해지고 싶다 검소해지고 싶다 이제는 나를 위해서 너를 위해서 북극곰을 위해서 고비사막 낙타를 위해서 슬픔이 해일처럼 푸른 별을 덮을지라도 딱새 한 마리 가슴에 품기 위해서

세상에 새로 온 꽃

너와 함께가 아니라면 나는 숨쉴 수조차 없거늘 너는 어제도 깨고 또 오늘도 깨어 꿈속에 푸르다 내가 푸르다 꿈속의 꿈속을 내가 가고 네가 온다 발랄라이카를 켜라 흐느끼듯 우는 발랄라이카를 켜라 비 오는 날은 너와 함께 잠들리니 빗방울 훅훅 듣는 느티나무 숲길을 꿈속인 듯 간다 꿈속인 듯 온다 아 천년의 꿈이여 바람이여 아 꿈의 꿈이여 아침 느티나무여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온 달빛

도시는 인간이 만들었지만 흙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다 씀바귀는 보도를 뚫고 솟아올라 빗물을 받아 마시며 산다 한 울타리 안에 한 하늘 아래 구두수선 부스에 앉아 고들빼기가 혼자 유튜브를 보고 있다 대지이용원 화단에 사는 사루비아가 머리 깎으러 오라고 카톡을 했다 이발소 의자에 판때기 걸쳐 놓고 바리캉에 잔뜩 겁먹은 채 상고머리 꼬맹이가 거울 속에 앉아 있다

우리말 땅이름

우리말 땅이름은 민중의 언어로, 지역의 언어로 끈질기게 명맥을 이어왔다. 왕이나 사족의 말이 아니라 땅에 엎드려 농사짓고 우물물 길어다 밥 지어 먹고, 대장간 망치 두드리고 발품 팔아 장사 다니던 서민남녀들의 말로 살아온 것이다. 그들이 애초의 명명자이기도 했지만 그 땅에 밀착해서 대를 이어 삶을 이어왔기 때문에 그들의 말로 생활 속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런 탓에 우리말 땅이름은 중앙이 아닌 지방에, 도시가 아닌 시골에, 큰 곳이 아닌 작은 곳에 민중의 언어로 강하게 뿌리박았던 것이다. 지금도 시골 지역에 그리고 작은 땅이름(소지명)에 우리말 이름이 많이 남아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 땅이름은 한번 듣고 잊어버릴 수 있는 단순한 기호는 아니다. 거기에는 수십 혹은 수백의 대를 이어온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의 삶의 숨결이 배어 있고 손때가 묻어 있다. 지리적인 정보 외에도 거기에 깃들여 살았던 민중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들의 정서가 무늬처럼 새겨져 있다. 또한 거기에는 시간과 함께 변화해온 민중의 언어가 똬리를 틀고 있어 국어학의 보고이기도 하다. 이런 모든 것들이 우리가 그 이름들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우리말 땅이름 2

최초의 우리말 땅이름은 무엇이었을까. 그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 할지 모르겠지만 한번쯤 의문을 품어볼 문제이다. 물론 역사서에 기록된 땅이름으로 한정해서 하는 얘기다. 그렇지 않고서는 애초의 땅이름을 무슨 수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이 책은 1권과 마찬가지로 개별 지명에 대한 탐구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어떤 체제를 말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면 지역별 체제라든지 주제별 체제 같은 것은 고려하지 않았다. 부 가름은 단지 편집상의 편의를 위한 것이고 개별 지명의 선택 역시 필자의 임의에 따른 것이다. 나름대로 우리말로 된 특이한 땅이름이나 많이 쓰면서도 잘못 알려진 땅이름에 역점을 두었지만 어떤 체제로 묶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신에 이 책은 개별적인 지명을 좀 더 폭넓게 탐구하려는 데에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역사나 문학, 언어 등 인문학적인 탐구가 지명 이해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했다. (…) 우리말 땅이름에 대해서 좀 더 많은 상식을 얻고 나아가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된다면 이 책의 목적은 달성된다. 우리말 땅이름에는 완전한 정답이 없다. 필자 또한 탐구과정에 있는 학생에 불과하고, 탐구과정에서 얻어낸 하나의 가설을 제시할 뿐이다. -(‘이 책을 펴내며’에서)

우리말 땅이름 3

지명에서 차돌은 흔히 ‘백석’으로 한자화했는데 더러는 ‘진석(眞石)’으로 바꾸어 쓰기도 했다. 어원적으로는 오해한 것이지만, ‘차돌’을 ‘참돌(참된 돌)’로 인식하고 ‘참 진(眞)’ 자를 써서 ‘진석’으로 바꾸어 쓴 것이다. ‘참’이라는 말이 대체로 ‘진실하고 올바르다’는 뜻도 있지만 ‘진짜’라는 뜻도 있고 보면 ‘차돌’을 ‘진짜 돌’로 이해한 것이 억지만은 아닐 것이다. 돌 중의 돌이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백석이 차돌의 흰빛에 주목한 표현이라면 진석은 차돌의 단단한 성질에 주목한 표현이다. 전남 보성군 벌교읍 장양리 진석마을은 마을 위 뒷산 중턱에서 부싯돌로 쓰던 차돌(참돌)이 나온다 하여 진석(眞石)이라 했다(보성문화원). 쇠로 쳐서 불을 일으키는 부싯돌로 쓸 정도로 단단한 돌이라서 진석이라는 말을 썼을 것이다. 차돌이, 차돌메, 차돌바우, 차돌배기 같은 ‘차돌’ 지명은 일차적으로는 차돌이 많이 분포하는 곳이라든지 큰 차돌바위가 있다든지 하는 지리적인 특성에 근거하여 붙여진 이름이지만 거기에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가치관이 반영되어 있다. 흰빛을 신성시한다든지 단단하고 야무지고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선호, 바위에 대한 숭배심 같은 가치관이 보이지 않게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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