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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전향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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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박실마을 풍경 듣다>

박실마을 풍경 듣다

어느 날, 서재에 앉아 내게 보내온 수많은 시집들 중에 한 권을 골라 읽어나다가, 아차! 불현듯이 천 길 아래로 떨어지는 충격을 받고 잠시 비틀거렸다. 시를 쓴다고 하면서도 내가 현실의 시 세계에서 너무 멀리 도망쳐 나와 있었구나, 시인이면서도 시인이기를 너무 거부해온 내 삶과, 그것을 회피하기 위해 애써 ‘현장 문학’이라 에둘러 핑계를 만들어왔던 내 자신이 너무 치졸하고 교만해보였다. 그리고 그동안, 그나마 시인이기를 넌지시 바랐던 마음으로 써놓았던 시편들을 들추는 순간, 나는 너무 부끄러웠다. 내 안에, 내 스스로의 벽 안에 안주해왔던 교만과 이기의 쓰레기들을 분리하지 않으면, 어쩌면 나는 더 이상 ‘시인’일 수 없다는 자가진단 앞에서 오래 침묵했었다.

생각 풍경

생각의 풍경들을 펼치며… 자타가 인정하는 산 사나이로 통하기 시작한 지도 20년이 넘었다. 처음 몇 년은 산을 오르면서 그저 앞 사람의 발뒤꿈치만 바라보며 산 정상까지 따라갔었다. 눈앞에 보이는 길만 주시하면서 오르고 내렸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옆 산 구릉도 보기 시작했고 정상을 바라보면서 내가 올라온 저만치 아래도 내려다보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이제는 산을 오르면서 사방을 본다. 겨울 산행을 하면서 암릉을 오르다가 도저히 생명이 있을 거 같지 않은 암벽 한 모퉁이에 푸르게 살아서 뾰족한 잎을 내밀고 있는 한뻠 만한 소나무를 보았고, 봄 산행을 하면서 역시 물 한 방울 없을 것 같은 인적 뜸한 바위틈에 피어난 복수초를 보기도 했다. 산은 하루가 다르게 모습을 달리했고 나는 서서히 그런 산에 묻혀서 채색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산이라는 존재에 물들어가면서 20여 년을 걸어오는 동안 내가 발견한 한 가지 명제가 있다면, 그것은 ‘산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였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산에게, 나는 날마다 이렇게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왜 살아있는가, 나의 가치는 무엇인가…” 산은 결코 쉽게 해답을 주지 않았다. 이제 삶의 3막이 열리는 지천명 시대를 맞았건만, 아직도 나는 청춘이라 한다. 40대를 감성 시대라 한다면 50대는 청춘의 시대라 나는 감히 말한다. 다시 사는 삶, 다시 시작하는 생의 반석위에서 나는 푸르게 돋는 생살을 날마다 발견한다. 적어도 이만큼 살아오는 동안 내가 만난 사람들과 내가 만들어온 삶의 풍경들을 이 한 권의 책에다 다 그려내기란 가당치도 않은 얘기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면서 잠시 잊고, 간과하고 지나치는 감동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 감동들로 인해 가슴 따뜻해지는 사건들이 얼마나 많은가. 기쁘게 만나서 흘리는 눈물, 슬프게 헤어지면서 흘리는 눈물, 너무나 고독해서, 너무나 외로워서, 너무나 행복해서, 너무나 아름다워서… 우리는 울기도 한다. 감성 시대가 지났건만, 나는 다시 청춘을 만든다. 살아온 지난 청춘의 삶을 돌아다본다. 수많은 추억들이 지나갔고, 수많은 생각들이 숲을 이룬다. 그 생각의 숲은 하나의 풍경이다. 하나하나의 풍경들마다 우리들 삶의 궤적은 넉넉히 담겨져 있다. 나는 이 청춘의 시대에 당도해서야 그 숲속에 잠긴 생각들을 낚아 올린다.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 어찌 이것들뿐이랴. 내 안에서 오래토록 희석되어가던 생의 편린들이 어찌 하나같이 소중하지 않으랴. 그러나 이것들 모두 꺼내 세상에 내놓는다는 사실을 놓고 나는 오랫동안 고민을 해야 했다. 실명으로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허락 없이 세상에 공개해도 괜찮을까… 민망해진 얼굴로 나는 그들에게 절을 올린다. 그러나, 치부 같았던 나의 이야기들을 조근 조근 포장마차에서 들려주듯 이렇게 주저리 내놓고 나니 오랜 곯음 하나 빠져나가는 기분을 숨길 수가 없다. 여기 내놓는 삼십여편의 작품들은 모두 하나같이 장편소설을 축약하고 있다. 이만큼 살아오는 동안의 나의 자전적 소설이라 할 수 있으며 공유가 가능한 감성 에스프리다. 나의 형 전성규 이야기며 누부야를 그리는 글을 쓸 때와 우리 집근처에서 수레로 박스를 주우시던 할머니의 돌아가신 이야기, 그리고 엄마 찌찌 만지던 소동을 그렸던 ‘엄마 찌찌 참 이뿌네’를 쓸 때는 참 많이도 울었다. 그렇게 눈물을 찍어서 써낸 생각풍경들이다 이 이야기들이 한 권의 책으로 나오도록, 계기가 되게 하신 나의 아내 아프로디테 미주, 사랑하는 나의 아들 승우, 또 나의 영원한 후원자이신 어머니 박소남 집사님께 무한정 포옹을 바친다. 그리고 나의 아프로디테를 만들어주신 이우용, 석희숙, 그리고 처형… 이런 소중한 이름들 위에 넘치는 감사를 얹는다. 주저리 흘려놓았던 생각들을 하나의 풍경되게 정리해주신 도서출판 시디안 한윤희 사장에게 축복을 빌며, 끝으로 지금도 희미한 웃음으로 하늘나라에서 이 책의 출판을 기뻐하실 故전성규, 故전운규 두 형에게도 이 책을 바친다. 이천구년, 가슴시린 사월 끝자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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