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분노해야 할 때 먼저 분노하고 슬퍼해야 할 때 함께 슬퍼해야 한다고 자못 결기 가득한 표정으로 부르르 떨기도 하지만, 그렇게 떠오르는 이원에서의 모습들이 나를 더 넓고 깊은 곳으로 이끌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서로 아껴주고 보듬어가는 참 우리의 세상.
내 시가 그렇게 넓고 깊어져서 그늘지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리산 언저리에 있는 “갤러리 길섶”
여기에 오면 모든 것이 가만 머문다.
둘레길을 홀로 걷다 들어온
젊은 처자의 무거운 발걸음도 머물고
세상사 잠시 내려놓고 먼 길 떠나온
중년 사내의 힘없는 눈길도 머물고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 그치지 않는
아직 어린 연인의 보드라운 손목도 머문다.
그 발걸음 그 눈길 그 손목
어루만지며 다독거리며 쓰다듬으며
초아흐레 달빛도 머물고
그 달빛에 잠시 넋을 놓은
뒷산 소나무 향기도 머물고
그 소나무 향기 속에 살며시 스며든
바람도 잠시 숨을 멈추고 머문다.
그렇게 나도 맑은 당신 곁에 오래오래 머물고 싶다.
어루만지며, 다독거리며, 쓰다듬으며,
2017.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