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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저자 > 문학일반

이름:고은

성별:남성

국적:아시아 > 대한민국

출생:1933년, 대한민국 전라북도 군산 (사자자리)

직업: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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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무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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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950년대

"아아 1950년대!" 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논리를 등지고 불치의 감탄사로서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1950년대의 정열과 광태와 퇴폐들을 사랑한다는 것은 폐허를 사랑한다는 뜻이 된다. 모든 것이 끝났다. 그리고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것은 오랜 뒤에 하나의 환상으로밖에 보상받을 수 없었지만 그 시대는 그런 상황 한계에 직면케 한 것이다.

개념의 숲

이것을 내보낸다. 이것이 세상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한 바보의 낙서인 줄을 내일 모레도 모를 것이다. 이 같은 내 어리석음도 세상의 값이라도 믿는다. 어처구니 없으리라.

고은

시 혹은 문학에 대한 내 생각은 문학을 이데올로기로 고착시키지 않는 데 있다. 문학이 정치와 단절될 수 없는 현실 유기체임이 분명하고 작가는 지속적으로 사회적 관심으로부터 일탈할 수 없다. 하지만 문학의 존엄성만이 문학의 예술적 존립을 지켜준다는 것과 시가 시의 자궁인 현실이 있어야 태어난다는 것을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요컨대 나는 나만의 동굴과 내가 내달릴 산야가 필요한 시의 맹수인 것이다.

고은 동시집 차령이 뽀뽀

……아기가 이 세상에 왔을 때 덩달아 나도 이 세상에 새로 나왔다. 아기가 이 세상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거듭하며 자랄 때 나도 덩달아 자라났다. 아기가 이 세상의 말을 배울 때 그 ‘엄마!’라는 말을 나도 배웠다. 언젠가 아기가 오기 훨씬 앞서서 나도 ‘엄마’라는 처음의 말을 배웠을 것이나 그것을 기억하고 있지 못하므로 이제야 그 말을 새삼스레 처음으로 배워서 입 안에서 ‘엄마, 엄마’를 뇌어 보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아기의 울음소리를 내 울음소리는 그대로 시늉하지 못한다. 그것은 내가 긴 밤의 귀뚜라미 소리를 흉내 낼 수 없는 것하고 엇비슷하다. 이러는 동안 아기는 잘도 자라나서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다니게 되었고, 그 무렵의 그 빛나는 날들의 어떤 겨를들을 아쉬운 대로 옮겨 본 것이 이 어린 노래《차령이 뽀뽀》였다. 그동안 이것이 여러 번 인쇄되어 나라 안의 엄마와 어린이에게 읽혔다. 이제 이것의 일부가 새 책으로 만들어지고 다른 말로도 옮겨지게 되었다. 사람이나 뭇 생명들에게 어린 시절이 있다는 것은 아직 살지 않은 미래와 살아온 과거 사이에서 가장 눈부신 삶이 있었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그 시절은 삶의 끝까지 닿아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격류였다

하루의 낮 동안은 감탄사가 필요 없다. 하지만 그 하루가 저물 무렵에는 그것이 필요하다. 그래선가, 자주 나는 해가 질 때는 북녘의 국풍(國風)보다 남녘의 소체(騷體)가 좋아진다. 초사(楚辭)의 그 감탄 탓이리라. ‘그대’가 ‘그대에’가 되는 시간이 저녁 아닌가. 돌이켜보거나 내다보거나 태어나는 것 죽는 것에는 나의 뜻이 들어가지 못한다. 나에게는 시도 그럴 수밖에 없다. 저 25세 이후의 세월로 남긴 것들이 어찌 나의 뜻만이겠는가. 결코 사절할 것 없는 산천과 산천 위의 수없는 삶들 이것저것이 던져준 바를 어떻게 부인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내가 쓴 시들은 세상의 질문에의 대답이라 여기지 않는다. 기껏 할 수 있는 일이란 또 다른 질문밖에 나올 것이 무엇이겠는가. 대답 없는 운명이 내 시의 운명 아닌가. 말하자면 여기 모인 것들은 그런 질문 기슭에서 펼쳐 나가는 질문의 사절(使節)인지 모른다. 관악 4년차이다. 강좌 ‘고은의 지평선’의 강의실은 흥겨웠다. 흥겨움이란 땅에 술을 부어 지신을 불러내는 것을 뜻한다. 이런 행복에 더해서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장 김성곤 교수와 형난옥 본부장의 권유가 있었다. 감사를 거듭한다. 그렇다는 것은 비록 이것의 알속은 남루하나 이것을 세상에 펴내는 정성은 찬연하다. 앞머리에 한 조각 마음을 감히 놓는 까닭이 있다.

늦은 노래

폐허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시인 수십 년을 살아온 갈애(渴愛)의 삶은 아직도 끝날 줄 모른다. 나는 나의 미래이다. 언제쯤 다른 주술이 찾아올까. 언제쯤 다른 춤이 신 내려 못 견딜까. 돌아서서 한숨을 한 번 쉰다. 올 정월에 <두고 온 시>를 세상 독자에게 전했다. 가을에 접어드니 가을걷이 어설픈 바가 이것인 줄 나는 안다. 마침 전집 간행 그 직후에 이 시집을 놓는다. 제2부는 북녘 방문과 그 밖의 행위에 있어야 할 소산이었다.

마치 잔칫날처럼

가야산에서의 첫 시집-앞서서 인쇄 도중 화재로 타버린 첫 시집의 소멸을 이어준 시집-이래 제주도와 제주도 직후의 두 시집, 서울에서의 서너 시집을 지나면 그뒤 안성 30년의 시집들로 내 시의 합산이 된다. 그뒤가 다른 시작이다. 이것의 표제 ‘마치 잔칫날처럼’은 어느 책갈피 속에 박혀 있는 것을 떼어왔다. 이 선집은 누차 오랜 벗과 후배 들의 과분한 은덕으로 가다듬어진 것이다. 허수아비에 비단이겠다. 10년 전 ‘어느 바람’이라는 섣부른 이름이다가 이제 10년간의 무당 푸념들이 무작위 삼아 더해졌다. 창비의 사랑이 또 이것이다. 갇히지 않으려고 버둥치지 않아도 가둔 힘이 운명 안에 고여 있는 자유에 의해 스스로 풀어지면서 시가 기율을 버리거나 기율이 시를 흘끔흘끔 뒤따르거나 하는 해방의 풍모를 그동안 지녀주었다. 시는 밤바다와 달 사이의 요염한 우주 인연을 지우기도 하고 되받아오기도 했다. 나의 시 말이다. 앞으로 어이될지 모르겠는데 이 미혹은 어떤 깨달음도 사절하며 남아 있는 풀더미 속을 들어선다. 안성 시절 다음 수원의 삶이 그것이련다. 언제까지나 귀향의 답은 없다. 도상(途上)일 것이다. 시의 55년을 앞두고 있다. 얼마 전 노르웨이에서 만난 아도니스가 그의 모국어 아랍어로 ‘Ko Un’의 발음은 ‘존재하다’라는 뜻이라 했다. 장차 내 부재의 어느 날도 존재이기를 누추하게 꿈꾸지 않는다. 나에게는 오로지 현재가 내 꿈의 장소이다. 허나 현재란, 꿈이란 얼마나 천년의 가설인가. 2012년 가을

만인보 완간 개정판 1.2.3

만인보 25년, 이 바람 치는 여덟 바다에 그물을 펼쳐두었다(張羅八海). 이제 그 그물을 뉘엿뉘엿 걷어올린다. 산목숨과 죽은 목숨 그네들을 누가 감히 따로따로 놔두겠는가. 이로써 두둥실 달밤 심광심(深廣心)의 끝을 자못 꿈꾸리라. 만인보 30권, 끝이라니 이 허허망망한 청사(靑史) 속 그 어느 구석에 처음이라는 것 끝이라는 것 함부로 있겠느냐. 나에게는 신석기시대의 어느날도 백년 뒤의 어느날 밤도 현재이다. 2010년 봄

만인보 완간 개정판 10.11.12

만인보 25년, 이 바람 치는 여덟 바다에 그물을 펼쳐두었다(張羅八海). 이제 그 그물을 뉘엿뉘엿 걷어올린다. 산목숨과 죽은 목숨 그네들을 누가 감히 따로따로 놔두겠는가. 이로써 두둥실 달밤 심광심(深廣心)의 끝을 자못 꿈꾸리라. 만인보 30권, 끝이라니 이 허허망망한 청사(靑史) 속 그 어느 구석에 처음이라는 것 끝이라는 것 함부로 있겠느냐. 나에게는 신석기시대의 어느날도 백년 뒤의 어느날 밤도 현재이다. 2010년 봄

만인보 완간 개정판 13.14.15

만인보 25년, 이 바람 치는 여덟 바다에 그물을 펼쳐두었다(張羅八海). 이제 그 그물을 뉘엿뉘엿 걷어올린다. 산목숨과 죽은 목숨 그네들을 누가 감히 따로따로 놔두겠는가. 이로써 두둥실 달밤 심광심(深廣心)의 끝을 자못 꿈꾸리라. 만인보 30권, 끝이라니 이 허허망망한 청사(靑史) 속 그 어느 구석에 처음이라는 것 끝이라는 것 함부로 있겠느냐. 나에게는 신석기시대의 어느날도 백년 뒤의 어느날 밤도 현재이다. 2010년 봄

만인보 완간 개정판 16.17.18

만인보 25년, 이 바람 치는 여덟 바다에 그물을 펼쳐두었다(張羅八海). 이제 그 그물을 뉘엿뉘엿 걷어올린다. 산목숨과 죽은 목숨 그네들을 누가 감히 따로따로 놔두겠는가. 이로써 두둥실 달밤 심광심(深廣心)의 끝을 자못 꿈꾸리라. 만인보 30권, 끝이라니 이 허허망망한 청사(靑史) 속 그 어느 구석에 처음이라는 것 끝이라는 것 함부로 있겠느냐. 나에게는 신석기시대의 어느날도 백년 뒤의 어느날 밤도 현재이다. 2010년 봄

만인보 완간 개정판 19.20

만인보 25년, 이 바람 치는 여덟 바다에 그물을 펼쳐두었다(張羅八海). 이제 그 그물을 뉘엿뉘엿 걷어올린다. 산목숨과 죽은 목숨 그네들을 누가 감히 따로따로 놔두겠는가. 이로써 두둥실 달밤 심광심(深廣心)의 끝을 자못 꿈꾸리라. 만인보 30권, 끝이라니 이 허허망망한 청사(靑史) 속 그 어느 구석에 처음이라는 것 끝이라는 것 함부로 있겠느냐. 나에게는 신석기시대의 어느날도 백년 뒤의 어느날 밤도 현재이다. 2010년 봄

만인보 완간 개정판 21.22.23

만인보 25년, 이 바람 치는 여덟 바다에 그물을 펼쳐두었다(張羅八海). 이제 그 그물을 뉘엿뉘엿 걷어올린다. 산목숨과 죽은 목숨 그네들을 누가 감히 따로따로 놔두겠는가. 이로써 두둥실 달밤 심광심(深廣心)의 끝을 자못 꿈꾸리라. 만인보 30권, 끝이라니 이 허허망망한 청사(靑史) 속 그 어느 구석에 처음이라는 것 끝이라는 것 함부로 있겠느냐. 나에게는 신석기시대의 어느날도 백년 뒤의 어느날 밤도 현재이다. 2010년 봄

만인보 완간 개정판 24.25.26

만인보 25년, 이 바람 치는 여덟 바다에 그물을 펼쳐두었다(張羅八海). 이제 그 그물을 뉘엿뉘엿 걷어올린다. 산목숨과 죽은 목숨 그네들을 누가 감히 따로따로 놔두겠는가. 이로써 두둥실 달밤 심광심(深廣心)의 끝을 자못 꿈꾸리라. 만인보 30권, 끝이라니 이 허허망망한 청사(靑史) 속 그 어느 구석에 처음이라는 것 끝이라는 것 함부로 있겠느냐. 나에게는 신석기시대의 어느날도 백년 뒤의 어느날 밤도 현재이다. 2010년 봄

만인보 완간 개정판 27.28

만인보 25년, 이 바람 치는 여덟 바다에 그물을 펼쳐두었다(張羅八海). 이제 그 그물을 뉘엿뉘엿 걷어올린다. 산목숨과 죽은 목숨 그네들을 누가 감히 따로따로 놔두겠는가. 이로써 두둥실 달밤 심광심(深廣心)의 끝을 자못 꿈꾸리라. 만인보 30권, 끝이라니 이 허허망망한 청사(靑史) 속 그 어느 구석에 처음이라는 것 끝이라는 것 함부로 있겠느냐. 나에게는 신석기시대의 어느날도 백년 뒤의 어느날 밤도 현재이다. 2010년 봄

만인보 완간 개정판 29.30

만인보 25년, 이 바람 치는 여덟 바다에 그물을 펼쳐두었다(張羅八海). 이제 그 그물을 뉘엿뉘엿 걷어올린다. 산목숨과 죽은 목숨 그네들을 누가 감히 따로따로 놔두겠는가. 이로써 두둥실 달밤 심광심(深廣心)의 끝을 자못 꿈꾸리라. 만인보 30권, 끝이라니 이 허허망망한 청사(靑史) 속 그 어느 구석에 처음이라는 것 끝이라는 것 함부로 있겠느냐. 나에게는 신석기시대의 어느날도 백년 뒤의 어느날 밤도 현재이다. 2010년 봄

만인보 완간 개정판 4.5.6

만인보 25년, 이 바람 치는 여덟 바다에 그물을 펼쳐두었다(張羅八海). 이제 그 그물을 뉘엿뉘엿 걷어올린다. 산목숨과 죽은 목숨 그네들을 누가 감히 따로따로 놔두겠는가. 이로써 두둥실 달밤 심광심(深廣心)의 끝을 자못 꿈꾸리라. 만인보 30권, 끝이라니 이 허허망망한 청사(靑史) 속 그 어느 구석에 처음이라는 것 끝이라는 것 함부로 있겠느냐. 나에게는 신석기시대의 어느날도 백년 뒤의 어느날 밤도 현재이다. 2010년 봄

만인보 완간 개정판 7.8.9

만인보 25년, 이 바람 치는 여덟 바다에 그물을 펼쳐두었다(張羅八海). 이제 그 그물을 뉘엿뉘엿 걷어올린다. 산목숨과 죽은 목숨 그네들을 누가 감히 따로따로 놔두겠는가. 이로써 두둥실 달밤 심광심(深廣心)의 끝을 자못 꿈꾸리라. 만인보 30권, 끝이라니 이 허허망망한 청사(靑史) 속 그 어느 구석에 처음이라는 것 끝이라는 것 함부로 있겠느냐. 나에게는 신석기시대의 어느날도 백년 뒤의 어느날 밤도 현재이다. 2010년 봄

만인보 완간 개정판 박스세트 - 전11권 + 부록

만인보 25년, 이 바람 치는 여덟 바다에 그물을 펼쳐두었다(張羅八海). 이제 그 그물을 뉘엿뉘엿 걷어올린다. 산목숨과 죽은 목숨 그네들을 누가 감히 따로따로 놔두겠는가. 이로써 두둥실 달밤 심광심(深廣心)의 끝을 자못 꿈꾸리라. 만인보 30권, 끝이라니 이 허허망망한 청사(靑史) 속 그 어느 구석에 처음이라는 것 끝이라는 것 함부로 있겠느냐. 나에게는 신석기시대의 어느날도 백년 뒤의 어느날 밤도 현재이다. 2010년 봄

무의 노래

시집 『초혼』과 『어느날』이 나온 뒤로 5년이다. 다섯 번의 가을을 애지중지로 지내는 동안 둘은 하나와 하나로 돌아간 적 없다. 늘 둘로 무애無涯의 율律을 자아냈다. 시와 시속의 화자 사이의 팽팽한 시절 인연이다. 쓰기와 읽기로 손과 눈이 놀았다. 거의 연중무휴로 시의 시간을 살았다. 몇 날 며칠을 읽어야 하는 긴 서사시의 교열을 뒤이어 내 오장육부의 완연한 파도들이 울긋불긋 시편들로 쌓여왔다. 이런 날들의 평상 가운데서 나의 황홀한 플랑크톤 빛 알갱이들이 남몰래 춤추었다. 본디 무시무종無始無終의 공간을 떠도는 파동이 내 운명의 입자들을 몰고 다닌다. 이런 무작위의 생태가 이따금 두렵기도 하고 기쁘기도하다. 아내의 탁마가 있었고 딸도 돌아와 있는 동안 초고들을 입력해 주었다. 이런 가족의 은덕이 세상의 은덕과 함께 나의 정신의 모항母港을 열어주었다. 저 1970년대 말 어렵사리 태어난 실천문학사가 작가 윤한룡의 정성으로 튼실해지면서 이번 시집이 거기서 나오게 되었다. 감은이 깊다. 2022년 가을 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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