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황석우(黃錫禹, 1895-1959년) 시인은 동인지 <폐허(廢墟)>(1920년)를 전후로 본격적인 활동 무대를 펼쳐갔다. 서울과 동경을 넘나들며 신문화 신문학에의 열정과 식민 치하의 이념적 고뇌를 안고 비평문과 자유시 창작에 몰두했다. 시집 《자연송》(1929년)에 수록된 것 외에도 많은 작품을 남겼다. 해방 이후에는 정치 활동과 교육계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며 창작 활동도 이어갔다.
그의 시문학은 서구문학의 전수(傳受) 차원에서 <폐허>의 동인들과 자유시의 경작(耕作)에 집중했다. 그의 시적 발상법과 우주적 상상력은 특유의 개성의 미를 천착해 냈다. 특히 《자연송》에 수록된 상당수의 작품들에서 시적 대상이 된 자연 세계나 인물 등 사물에 대한 우주적 발상이나 상상력은 특유의 영역을 개척했다.
1959년 지병으로 사망 이후 황석우 시인에 대한 문학적 평가는 동시대에 함께 동인 활동을 했던 김억, 오상순, 김영랑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면 아래로 사라졌었다.
최근 한국문단에서는 황석우 시인의 사적 위상과 문학작품에 대한 평가 작업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정우택의 학위논문 <황석우 연구>를 비롯해 많은 연구 논문이나 에세이들이 발표되고 있다. - 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