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집을 발간하기 위하여, 여성 시인들의 시를 다시 감상하며, <병약(病弱)하시면서도 꽃을 사랑하시고, 자신은 가난하셨으면서도 물고기의 굶주림까지 염려하시던 나의 어머니>를 떠올린다. 그리하여 이 분들의 작품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 채, 주관과 객관이 혼재(混在)된 시각으로 일관한 듯하다.
또한 이름을 대면 쩌렁하게 소리 나는 저명한 시인들의 작품보다, 내 어머니처럼 수수하고 따뜻한 분들의 작품과 인연이 된 듯하다. 이 분들의 작품을 읽으면서 스스로 감동하고 행복했음을 밝힌다.
여성 시(남성과 여성을 구분할 필요는 없지만)를 대상으로 한 평설 50여 편 중에서 30편, 450여 쪽으로 편집한다. 여성 시인들에 대한 평설을 모두 수록하면 9백여 쪽 가까운 분량이어서, 20여 편을 수록하지 못한다. 이 글들은 소중한 인연을 좀 더 간직하였다가 다음 평론집을 발간할 때 손을 잡고자 한다.
서둘러 편집하였으매, 부족한 부분과 오탈자가 더러 드러날 터이다. 지적해 주시면 2쇄 발간 시 수정할 것을 약속드린다. 이 평론집을 발간하면서, 문학으로 인연 맺은 분들의 귀함을 새삼 깨닫는다. 끝으로 평론집 발간에 도움을 준 대전문화재단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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又峰 任綱彬 선생님 소천 2주기를 맞습니다. 먹먹한 가슴으로 선생님을 추모하던 중, 불현 듯 선생님의 자취를 정리하여 자료집 성격의 <임강빈 시 읽기>를 발간합니다. 앞으로 누군가 선생님의 작품을 연구할 때 참고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정리한 작업입니다.
① 선생님의 시집 13권, 시선집 2권, 정년퇴임문집 <채우기와 비우기>, 임강빈 선생님 작품에 대한 평설집 <임강빈의 시와 삶>을 서지적 관점에서 정리하였습니다. ② 선생님께서 3회 추천받으신 <현대문학> 원본을 사진 자료로 정리하였습니다. ③ 50여 편의 유고시 중에서, 생전에 허락하신 11편을 수록하였습니다. ④ 산문 쓰기를 금기시하시면서도, 인연에 따라 집필하신 산문을 찾아 수록하였습니다. ⑤ 몇 명 제자의 시집에 쓰신 서문 몇 편을 수록하였습니다. ⑥ 여러 자료를 찾고, 장남(교육자 임창우)의 도움을 받아 선생님의 연보를 1차 정리하였습니다.
이런 내용으로 <임강빈 시 읽기>를 발간하여 선생님을 추모합니다. 이는 선생님의 장손(소설가 임성균)이 조부님의 소천 2주기를 추모하여 발간하는 <임강빈 시 전집>에 맞추려는 충정(衷情)이기도 합니다. 서두느라 혹여 미흡한 부분이 있으면 두고두고 보정(補正)할 요량입니다.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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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참으로 감사한 인연으로 우봉 임강빈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1964년 중학교에 입학하였을 때, 선생님께서는 1학년 담임 선생님이셨고 국어를 가르치셨습니다. 단정한 자세로 또박또박 말씀하시는 선생님께서 시인이라는 것, 가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시는 모습이 너무 멋져 보여, 저도 시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한 후, 저는 아침 7시에 집을 나서 10km를 걸어 통학하였습니다. 그 길에 유구천 나무다리를 건너는데, 홍수가 들면 다리가 떠내려가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하였습니다. 유구천을 건너 바로 앞에 금강(錦江) 디디울나루가 나오는데, 아침저녁으로 나룻배를 타고 건넜습니다. 장마철이면, 지각하는 날이 1/3은 되었습니다. 오후에는 다시 그 길을 되짚어 귀가하는 통학을 6년 동안 지속하였습니다.
1학년 마칠 때, 선생님께서 저에게 ‘개근상’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지각을 여러 번 하였기에 사양하였습니다. 정근상으로 바꾸어 주신다고 하셨지만, 지각 3회가 넘기 때문에 사양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지각 4회로 정리하시면서, “그 먼 길을, 그것도 나룻배로 강을 건너며 다닌 네가 결석하지 않고, 매일 학교에 온 것만으로도 나는 개근한 것으로 생각했다.” 선생님께서는 서늘한 눈빛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문학청년으로 뵈었을 때 그 말씀을 드렸더니, “그 당시 학생들은 대부분 상을 받기 위해, 지각과 결석을 하고도 아니했다고 우겼는데, 주는 상을 싫다고 한 학생은 너밖에 못 보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동석했던 문단의 어르신들도 깜짝 놀라며, 사제 간의 인연을 뜻깊어 하셨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대전으로 전근가신 선생님을 여러 해 뵙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대전의 학교로 옮겨 근무하면서 뵌 선생님께서는 충남문인협회 회장을 맡고 계셨습니다. 찾아뵙고 인사드렸더니 반가워하셨고, 제가 대표로 있는 ‘도가니문학회’의 고문을 응락하셨습니다. 창립 시부터 고문이신 김명배 선생님, 그리고 대학의 원종린 은사님을 고문으로 모셨습니다. 그 인연과 사랑은 ‘오늘의문학회’와 ‘문학사랑협의회’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규모가 커질 때에도 한결같으셨습니다.
1982년에 저는 첫 시집 <갈채의 숲>을 발간하였습니다. 제자의 첫 시집에 기꺼이 ‘서문’을 써주셨습니다. 이 일이 얼마나 고마운 은혜인가를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문학잡지를 발행하려고 출판사 ‘오늘의문학사’를 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내 시집을 출판사 첫 번째 책으로 낼 터이니, 잘 만들어라. 조금은 문인들에게 홍보효과를 볼 게다.” 말씀하셔서 ‘오늘의문학 시인선 1번’ <버리는 날의 반복>이 탄생하였습니다. 이 일도 얼마나 고마운 은혜인가를 나중에야 알게 되었으니, 눈물로 부복(俯伏)할 뿐입니다.
그 후, 특별히 잘 모시지는 못 하였지만, 충심으로 존경하며 곁을 지켰습니다. 2016년 7월 중순에 선생님께서 입원을 하셨다는 가족의 전달을 받았습니다. 찾아뵈었더니, 많이 수척해지셔서 말없이 손만 잡아드렸습니다. 며칠 후 7월 16일 아침에 선생님께서 위중하시다는 말씀을 듣고 찾아뵈었습니다. 이미 소천하신 후였습니다. 반은 제자(弟子)요, 반은 상주(喪主)라는 마음으로 대전문인 장례식을 준비하였습니다. 참으로 많은 분께서 조문하셨습니다. 7월 18일 영결식을 엄숙하게 진행하였습니다. 약력보고, 조사, 조시 낭독, 조곡 연주, 헌화 순으로 선생님의 성품처럼 깔끔하게 모셨습니다.
그리고 2017년 7월 16일, 선생님을 사랑하는 문인들과 가족들이 선생님의 묘소를 찾아 추모하였습니다. 이제 2018년 7월 16일에 다시 추모 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날 생시에 뵐 때처럼 존경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이 책을 선생님 영전에 바치겠습니다. 선생님, 오늘도 먹먹한 가슴으로 선생님을 그리며, 고운 인연에 옷깃을 여밉니다.
2018년 7월 선생님을 그리는 문하생
문학 창작을 시작하면서부터, 시(詩)와 시조(時調)를 같이 배웠습니다. 1977년에 동인지를 창간할 때부터 시와 시조를 발표하였고, 한국문인협회 충남지회에는 시조분과에 가입할 정도로 시조에 경도되어 있었습니다.
소정 정훈 선생님께서 별세하시기 전에 여러 번 시와 시조를 창작하고 계신 소이연(所以然)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들을 요약하여 <車嶺>창간호에 수록하셨습니다.<우리 겨레도 우리의 노래와 詩를 갖고 있습니다. 鄕歌나 高麗歌詞 등이 그런 것이요 그 變型이 우리 겨레와 喜怒哀樂을 같이하며 時調詩로 發展해 왔습니다. 뿌리 있는 생명체는 쉽사리 시들지 않습니다. 千年 가까이 뿌리를 내려 오늘에 이르는 時調는 우리 祖上들의 슬기와 생각과 情이 따뜻한 體溫마저 함뿍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들 血肉이 되어 아낌을 받았고 所重히 가꾸어져 왔습니다. 時調詩야말로 寶玉같이 값진 하나밖에 없는 우리들의 文學遺産인 것입니다.> 이 말씀에 공감하여 ‘차령’을 발간하는 차령시조문학회에 발을 들였고, 뒤를 이은 ‘가람문학’을 발간하는 가람문학회에도 손을 얹었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맺어진 터라, 시조에 대한 사랑은 변함없었지만, 사제(師弟)의 특별한 인연에 따라 ‘시’와 ‘문학평론’으로 등단하여, 시조와 장르를 달리하게 되었습니다. 시조에 대한 관심은 평설로 드러내게 되었고, 그 동안 발표한 평설(논문, 평론, 해설 등)을 하나로 묶습니다.
제1장에는 소정 정훈 선생님에 대한 평설 5꼭지를 편집하였습니다. 제2장에는 정훈 선생님과 동시대를 사신 전형 선생님, 그리고 뒤를 이어 시조를 빚은 분들에 대한 평설을 편집하였습니다. 제3장에는 그 뒤를 따라 시조집을 발간한 분들 중에서 연만한 분들에 대한 평설을 편집하였습니다. 제4장은 시조집을 발간한 분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젊은 분들에 대한 평설을 수록하였습니다. 제5장은 심포지엄 발표문, 리헌석의 1시조집 <섬바위>의 해설을 수록하였습니다.
겨레시로서의 시조는 부흥해야 하고, 많은 시조시인들이 창작의 삽질을 쉬지 않고 있습니다. 범위를 한정한 ‘충청권’에도, 이 책에 평설이 수록된 분들보다 더 많은 분들이 겨레시를 경작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책에는 현생에 지어진 인연으로 집필한 평설을 한 권에 묶었을 따름입니다. 그 인연을 소중하게 가꾸며, 부족한 부분은 채우고, 오류는 바로잡겠습니다.
이제 ‘소설’에 대한 평설, ‘아동문학’에 대한 평설, ‘수필’에 대한 평설 등을 별책 평론집으로 묶어낼 요량입니다. ‘시’에 대한 평설은 시기나 주제별로 4~5권 묶으려고 합니다. 이 책을 발간하도록 도와준 대전문화재단에 고마운 인사를 드리며, 수준 높은 평설을 집필하기 위해 가일층 노력하겠습니다.
2018년 1월 - 책머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