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시 혹은 사랑시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시들을 모았다.
이렇게 많은 사랑시들을 왜 썼을까 싶은데… 사랑, 영원한 사랑 같은 말은 그게 간절하기는 하지만 삶속에서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사랑은 시의 몸을 입고 나타나기에 좋은 주제이다. 거기에 인연에 대한 신비로움과 오래된 사랑에 대한 개인적인 끌림이 더해져 나는 사랑시를 쓰고 있는지 모른다.
사랑은 작고 애매하고 미완성적인 것으로서 내게 소중하다. 그렇지만 사랑시란 사랑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비우는 과정이다. 운명적인 사랑은 항상 안에 있으면서 새로운 무언가가 내 시에 등장할 수 있도록 공간을 내주는 역할을 했다. 그러한 사랑은 한번으로도 족할 수 있고, 백번으로도 부족할 수 있다.
시간이 밀려오고 쓸려가는 것이 느껴지는 저녁 무렵, 가능하면 멀리 가서 어두워지는 것이 잘 보이는 그런 곳에서 사랑을 간직하며 살 수 있는 시를 꿈꾼다. 사랑을 했고 나는 무엇인가 이해했다는 기쁨을 맛보지만 그게 무엇인지 아직 다 알지는 못한다. 시의 한쪽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춤을 출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화가 우창헌 님과 함께 공동으로 사랑시화집을 내게 되어 기쁘다. 창의적인 그림이 시의 어떤 면을 더하기도 하고 다른 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나의 발자국에 다른 발자국이 나란히 찍힌 정성스러운 책이 되었다. 감사하기 이를 데 없다. - 머리말
이탈리아와 아프리카는 다소 생뚱맞은 결합이지만 개인적으로 내게는 아주 밀접하고 자연스러운 연결이다. 아프리카를 출입한 지 15년이 되는데 난 자주 로마를 경유해 오갔다. 로마에서 아프리카행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다 피렌체나 베네치아로 가거나 폼페이나 소렌토에 다녀오는 식이었다. 베네치아에선 늘 오래 묵었다. 이 책에서 이탈리아와 아프리카가 한자리에 놓이고 베네치아가 한 부部를 이룬 이유는 그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북아프리카는 옛 로마와 무관하지 않지만.
이 책은 여행담이나 길 위에서 만난 낯선 삶의 풍경을 이야기하려 한 것은 아니다. 문학을 생각한 것도 사람살이를 주제로 다루려는 의도도 없다. 단지 여행지에서의 감정과 마음의 무늬를 뒤따라갔다. 여행지에서의 순수한 감정이란 결국 사랑의 감정이 아닐까. 내게 있어 여행은 숫제 사랑을 따라가는 일에 다름 아니다.
사랑의 발자국을 디디며 이탈리아와 아프리카를 다녔다. 그곳엔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커다란 폐허가 있으며 그 내력엔 무엇보다 ‘당신’이 있다. 안개 속으로 사라져가는 ‘당신’의 뒷모습과 걸음걸이는 얼마나 많은 것을 머릿속에 떠오르게 하는지, 그것을 그리면서 짧은 이 글들을 썼다. 내게 ‘당신’과의 사랑은 사실이자 환상이며 그 둘의 그림자이자 그것들의 결합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중간중간 습한 세상과 마음이 가는 사람을 바라보지만 내 시선은 언제나 내 괴로움이 지나온 ‘당신’에게 가 멎고 여정은 마지막 남은 ‘당신’과의 서사시이며, 시다. 그리하여 이 책 속에서의 ‘당신’은 내가 세상에 없던 아주 오랜 과거의 시간을 다룰 때조차 나와 관계하고 실재한다. 그만큼 ‘당신’은 언제나 여행하고 생각하며 사랑하는 내 안에 함께 있다.
35년이 지나 다시 세상에 나오는 나의 첫 시집이 요즘 시 읽는 이들에게 새삼 줄 수 있는 작은 의미라도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계속 시를 쓰며 내가 주목하는 곳을 향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여러 시편이 처음 시집에서 부분적으로 퇴고되어 있어 이 시집에 실린 시를 정본으로 삼는다.
2023년 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