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은 내비게이션이다
스마트폰을 열고
T-map[이하'내비']을 연다
'최근목적지'를 누르니
위에 '대각사'가 뜨고
그 아래에 '우리절'이 뜬다
종로 대각사는 공찰公刹이고
곤지암 우리절은 사설사암으로
'경기 광주시 도척면 시어골길'이다
대각사에 특별한 행사가 없다면
어김없이 일요일 아침 여장을 꾸린다
매주 일요법회를 여는 까닭이다
여장이라지만 대단한 게 없고
설레는 마음이 전부다
자주 가는데 우리절은 설레고
늘 주석하는데 대각사는 편안하다
시동을 걸면 전원이 들어오면서
자동차에 설치된 내비는 저절로 켜진다
그런데도 나즈막한 문을 들어서려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듯이
습관처럼 스마트폰 내비를 켠다
스마트폰 내비는 실시간이라나 뭐라나
만일 내비를 켜놓고 출발하지 않으면
'경로를 다시 변경합니다'라는
멘트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화면에는 목적지까지의 전체 거리와
그 옆에 소요시간이 함께 뜬다
가는 도중 도로 사정에 따라
약간씩은 바뀔 수가 있다
내비에 과거는 없다
오직 현재와 미래가 있을 뿐이다
교통신호와 함께 과속의 범위
통과하는 지역의 특성까지도 소개한다
내비는 이른바 전체적이다
거기에는 종교가 없고
거기에는 정치가 없다
이데올로기가 없고
남녀男女가 없고
노소老少가 없고
피부 빛깔이란 것이 없다
하물며 이판사판을 따지겠는가
선禪과 교敎와 율律이 없다
명상이니
간화선이니
또는 지식이나
불입문자를 내세우지 않는다
내비는 사랑받는다
선사禪師도
율사?師도
수행자修行者도
학자도 그리고 그 누구도
격의 없이 내비를 사랑한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금강경은 내비navigation다
분명 불교 경전인데
종교에 얽매이지 않는다
점교漸敎 돈교頓敎도 떠나고
소승 대승도 뛰어넘는다
그런데 다른 게 하나 있다
내비는 과거가 없으나
금강경은 삼세를 두지 않는다
시공간에 집착하지 않기에
오히려 한없이 자유롭다
제8 '의법출생분' 끄트머리에서
서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제자 수보리에게 설하신다
'불법佛法과
비불법非佛法은
하나로 이어져卽 있다.'
이를 나는 이렇게 풀이한다
'불법은
불법 테두리에
갇혀 있지 않는다'고
당신의 목적지를 입력하는 순간
도로를 따라가야 할 코스를
친절히 안내하는 내비처럼
금강경을 손에 드는 순간
당신의 마음 길을 안내할 것이다
비록 내비가 있다 하더라도
켜지 않으면 의미가 없듯
금강경도 손에 잡고 펼칠 때
당신의 길은 밝게 펼쳐질 것이다
끝으로 이 책이 나오기까지 애쓰신
도서출판 도반 관계자 여러분과
앞으로 이 책을 접하게 될
귀한 독자분들에게
'금강내비게이션' 공덕이
한없이 열려가기를 염원한다
- 종로 대각사 봉환재에서 - 머리글
사람으로서 어린 시절을 거치지 않고 바로 어른이 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설까 어릴 적에 배운 노래나 들은 이야기들은 오래도록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어릴 때를 회상하며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선정하라면 '고향의 봄'이 먼저 떠오릅니다. 2006년 가을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에 머물 때 날 찾아온 고 이태석 신부님과 킬리만자로 기슭 마랑구에서 만나 함께 목놓아 부른 노래도 바로 '고향의 봄'입니다.
책을 낸다는 것처럼 조심스러운 게 없습니다. 특히 어린이를 위한 교과서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조선 중종 때 <동몽선습>을 처음 편찬한 박세무 선생님도 그런 쪽에서는 아마 많이 망설였을 것입니다. 어린이를 위한 책을 내려면 작가 스스로가 어린이가 되지 않으면 안 되었을테니까 말입니다.
아이 동童, 어릴 몽蒙, 먼저 선先, 익힐 습習으로서 남자 아이童, 여자 아이蒙 할 것 없이 먼저先 익힐習 책이 다름 아닌 <동몽선습>이란 책입니다. 이 책이 어린이 교재로 채택된 데에는 오륜五倫과 함께 실린 중국과 한반도 조선 역사가 몫을 더했을 것입니다.
물론 조선의 역사와 척불숭유斥佛崇儒 사조에 관해서는 다시 조명할 곳이 많지만 말입니다.
1983년 3월 30일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열린 세계 아동 교과서 전시회에서 <동몽선습>이 세계 최초 아동 교과서로 선정되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이토록 멋지고 아름다운 역사를 잘 모르고 있습니다.
오륜의 덕목은 결국 사람이 바탕입니다. 부모와 자녀에서 어른과 어린이, 벗에 이르기까지 사람이 중심이기에 동몽선습 첫머리 '하늘과 땅 사이 모든 생명 중에서 오직 사람이 가장 존귀하나니.....'란 한 마디가 가슴에 와닿습니다. 그리고 이 한마디가 이 책의 가치를 높여 주고 있지요. 알고 보면 오늘날 우리 삶에 있어서도 가장 소중한 덕목입니다.
아동 교과서 <동몽선습>을 강설하면서 아쉬움으로 남는다면 나 자신이 어린이 마음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쉬운 말도 되려 어렵게 표현함입니다. 이에 관한 평가는 독자들께 맡기겠습니다.
굳이 세이 법칙이 아니더라도 공급은 수요를 따른다고 했듯이 이 책이 나오기까지 기다려 준 독자들과 애쓰신 도서출판 도반 가족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비눗물에 빨대를 꽂고 후~하고 불면
뽀글뽀글 하얀 거품이 일어납니다
표면 장력이 아니면 어떻습니까
거품이 이는 게 참 재밌습니다
담갔던 빨대를 꺼내어 하늘을 향해
호~ 불면 방울방울 날아갑니다
날개를 붙여 주지 않더라도
가볍게 훌훌 날아가지요
옆에 있는 아이들이 약속이나 한 듯
여기저기서 호호~ 불어 제칩니다
온통 비눗방울 세상이 됩니다
드론drone의 바탕이지요
물은 본디 중력의 법칙을 따라
낮은 곳으로 흐른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물이 끓어 기체로 변하게 되면
마침내 중력을 거슬러 높이 나는데
양력을 이용할 줄 아나 봅니다
일어날 기起 자에 거품 포泡 '기포'는
금강반야바라밀경 마지막 단락
제32 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에
꿈, 환상, 거품, 그림자와 함께
이슬과 번갯불이라고 하는
여섯 가지 비유 소재의 하나입니다
거기에 실린 거품과 연결 지어
기포起泡라 명명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스와힐리어로
기포Kipoo가 아프리카의 지붕인
킬리만자로 정상 우후루 피크
만년설의 이름을 뜻합니다
스와힐리어 모음 oo의 중복은
장음長音의 뜻이 깃들어 있습니다
우'ㅜ' 가 아니라 오~'ㅗ'지요
따라서 '키푸'가 아닌 '기포'입니다
탄자니아에서 쉰두 달을 머무는 동안
킬리만자로 기슭 마랑구 현지인들이
내게 붙여 준 아프리칸 네임입니다
스와힐리어 기포Kipoo와 함께
한자 기포起泡를 하나로 놓고 보니
기포Kipoo는 순백의 눈이 되고
기포起泡는 하얀 거품이 됩니다
눈도 언젠가는 녹을 것이고
거품도 언젠가는 꺼질 것입니다
<기포의 새벽 편지>도 그러합니다
이를테면 불변不變의 지루함보다
무상無常의 변화가 아름답지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기에
시간이 보석처럼 소중할 것이고
생로병사生老病死를 받아들일 때
짧은 생애가 더욱 값지지 않겠는지요
새벽曉은 시간의 시작이 아니라
곧 하루日의 시작堯입니다
시간은 시작도 끝도 없이
이어지는 지루함의 연속이지만
하루를 새벽 아침 한낮으로 나누고
오후 땅거미 깊은 밤으로 나눔은
밤낮의 변화를 느끼게 합니다
날숨呼 만이 이어지거나
들숨吸 만 이어질 수는 없지요
날숨으로 빈자리에 들숨이 차듯
매일매일 새벽이 있다고 하는 것은
그래서 더더욱 행복하지 않겠는지요
동봉 스님 법어집 <기포의 새벽 편지 1권>
2023년 새해 벽두에 모습을 드러낼
산승 기포의 제68권째 책입니다
<기포의 새벽 편지>의 벗이 될
독자분들에게 행복이 깃들고
귀하게 책으로 만들어 준
도서출판 도반 모든 가족에게
아름다운 나날이 이어지길 빕니다 - 머리글
뼈 없는 몸을 생각해 본다
느끼기에 따라서는
하루 종일
한 주 내내
한 달이 가고
한 해가 다 가도록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뼈가 없으면
단 한시도 살 수가 없다
살갗 없는 몸을 생각해 본다
이 또한 마찬가지로
살갗 없는 삶이란
찰나도 있을 수 없다는 데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평소에는
아예 생각조차 잊고 산다
206개로 이루어진 몸의 뼈
뼈가 이렇게 소중하니
그럼 뼈만 있으면 되겠네
관절도 필요없고
물렁뼈도 필요없고
골수骨髓도 필요가 없겠네
한데 이들 없이 뼈가 할일을 다 할까
피를 만들어내고
칼슘을 만들어낼까
몸을 자유롭게 굽혔다 폈다 하며
걷고 뛰고 수영하고 춤출 수 있을까
스마트폰을 열어볼 수 있을까
수저를 들어 밥을 먹고
시를 쓰고 메일을 보내고
사진 찍고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살갗이 없다면
산들바람을 쐴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살갗 없는 얼굴을 보일 수 있을까
뼈는 눈에 띄지 않지만
살갗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살갗이 없으면 많이 흉측하겠지
나는 얘기한다
법성게는 우리 몸의
뼈와 같고 살갗과 같다고
법성의 ‘법法’이 감싼 살갗이라면
법성의 ‘성性’은 숨은 뼈라고
그래서 평소 인식하지 않더라도
찰나도 없어서는 절대 안 되는 것들이다
법성게는 두 요소로서 짜여 있다
우주 대자연의 변화와 더불어
그를 도와주는 틀과 질서다
법法은 드러난 모습이니
사람의 살갗과 같고
성性은 감추어진 것이니
사람의 뼈와 다름없다
화엄일승법계도 그림을 보노라면
뼈와 뼈를 잇는 관절과 마디를
쉰 네 각도로 그린 것 같다
나는 살갗에 해당하는
법성게의 ‘노랫말偈’ 이전에
뼈와 관절에 해당하는
화엄일승법계도를 중시重視한다
90°로 꺾인
54각을 따라 걷노라면
우리의 뼈는
더욱더 건강해지겠지
54단계를 거쳐
‘마음부처’가 되기 전에
건강한 ‘몸부처’가 먼저 되어 있으리
이 책이 나오기까지
교정하고 편집하고
제본하고 애쓰신 분들과 함께
출판사 관계자분들에게 참 고맙다
이 법성게를 읽는 이들은
두 가지 소원을 동시에 이룰 것이다
행복한 마음부처를 이룰 것이고
건강한 몸부처를 이룰 것이다
2018년 12월 22일
연중 가장 길한 동짓날
종로 대각사에서 주지 동봉東峰 합장
탄소 발자국과 더불어
시간의 발자국이
저리 깊은데
차 한잔
나누자 하면
실례되지 않을까
온화和하고
경건敬하며
조촐淸하고
고요寂한 공간에서
산소Oxygen로 병풍을 두르고
추억의 차를 마시고 싶다
활활 타던 화톳불이
무드러기가 되고
건질 사리마저
없어진다고 해도
둥글團欒게 둘러앉아
시간의 발자국을 느끼고 싶다
나의 두 번째 시집을
곱게 만들어 준
도우미와
그리고
독자분들에게
차 한잔 드리고 싶다 - 머리글
우리는 살아가면서 역할을 대신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이를테면 부모가 자식을 대신하고 보살이 중생들을 대신하여 고통을 받는 경우지요. 부처님의 본생이 그러하셨고 예수님의 대속이 그러하셨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게 인과론 입장에서 보았을 때 대신 역할이 가능할까요? 결론적으로 어느 누구도 대신 살아주는 삶은 없습니다. 남의 사랑을 대신할 수 없듯이 내 사랑을 남에게 대신 맡길 수도 없습니다.
미움이 그러하고 수행이 그러합니다. 어떤 경우도 극락을 대신 가고 지옥을 대신 가는 일은 없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생명들의 삶에 있어서 대역이란 있을 수 없다는 이치를 극명하게 보이셨습니다. 나는 《불설아미타경》을 읽는 내내 단 한 순간도 이 생각을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디지털 시대요, 멀티 시대요, 스마트 시대라 해도 마음을 닦고 언어와 행동을 바로 하는 일은 결코 남에게 부탁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직접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불설아미타경》은 수행의 가교이고 정토로 나아가는 안내서입니다. 나는 이 경전
을 해설하면서 가능하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기초과학과 연결시키려 애썼습니다. 바로 이 점이 이 책이 지닌 특징이라면 특징일 것입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마음 써 주신 민족사 대표 창화 윤재승 선생님, 저자와 독자들의 생각을 잘 조화시키는 사기순 주간님, 민족사와 함께하는 모든 식구들 고맙습니다. 우리절 운영위원회 임원진과 평소 꼼꼼히 교정을 보아 준 실린달 보살님, 아울러 이 땅의 독자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세상은 살아가는 자의 것이고, 삶은 생각하는 자의 것이며, 미래는 닦아가는 자의 것이듯 책은 읽는 자의 것입니다.
2015년 2월 설날 아침에
곤지암 우리절 선창에서 비구 동봉
나의 시집 처녀작
음펨바 효과
말씀言의
사원寺을 일러
시詩라고 표현했던가
시詩는
산소와 같아
눈에 띄지 않지만
언제나 함께하고 있지
다만 느끼느냐 아니냐일 뿐
Aechmea fasciata
에크메아 파시아타
꽃말이 ‘만족’
조화인 듯
이쁘다
Mpemba Effect
음펨바 효과의
출산 도우미
그리고
함께하는
모든 이들에게
만족의 꽃을 드린다